소설리스트

패스파인더-16화 (16/256)

16화

경찰서의 방을 모조리 다 돌아본 결과, 운 좋게도 총탄을 찾을 수 있었다. 지하의 자물쇠가 채워진 방이었는데 누군가가 들어가려던 참이었는지 문이 열려 있었다.

문이 닫혀 있었다면 절대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경찰서의 무기고는 유인 경비로 삼엄하게 감시된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없고 문이 열려 있으니 주인 없는 구멍가게나 마찬가지였다.

가람은 안으로 들어가 리볼버 옆에 쌓인 탄약들을 챙겼다. 총탄의 종류는 세 개였는데, 하나는 공포탄, 하나는 길고 얇은 것, 하나는 통통하고 조금 짧은 것이었다.

가람은 탄두를 물고 있지 않은 공포탄을 이미 사용한 총탄이라 생각하고 모두 제쳐 놓고 리볼버의 탄창을 열어 탄약을 끼워 본 후 맞는 크기의 탄약을 챙겼다.

거의 200발의 리볼버 탄약을 챙긴 가람은 그 옆에서 의외의 물건을 발견했다. 흔히 말하는 소총, 군인들이 무장하고 다니는 K2 소총이었다.

소총은 군대에서나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경찰서에도 소총을 구비한다.

그 옆에는 K3 기관총이나 다른 화기들도 있었지만 가람이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그리고 어디 용이라도 잡는다면 모를까, 당장 그만한 화력이 필요할 것 같지도 않아서 일단 그것만 챙기기로 했다.

‘왜 안 쏴지지?’

작동이 잘 되는지 확인할 겸 한 발 쏴 보려는데 발사가 안 된다. 고장인가 싶어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던 가람은 손잡이 근처에서 안전장치를 발견했다.

그렇게 복잡한 장치는 아니라서 가람은 곧 연발과 단발 사격 테스트도 할 수 있었다.

실내에서 소총을 쏘는 무식한 짓을 한 탓에 귀가 멍멍했다. 간간이 탄이 튀어 기겁하기도 했다.

발사를 멈추고 벽에 박힌 탄알을 바라보던 가람은 문득 그 바퀴벌레 인간들을 떠올렸다.

그때 이 총 하나만 있었다면 그렇게 도망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이 총을 사람에게 사용할 자신은 없지만, 혹여나 다음에도 그런 놈들을 만날지도 모르니 가져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비록 몹시 무겁고, 이 총기를 손질하는 방법도 잘 모르지만 어차피 고장 나면 여기로 와서 잘 손질된 총으로 바꿔 들고 가면 그만이었다.

가람은 K2 소총의 빠른 발사 속도를 고려해 권총의 열 배 되는 총탄을 챙겼다.

겉보기에도 확 다르게 생겼으므로 권총탄과 구분하기 어렵지 않았다. 탄창도 다섯 개 정도 챙겨 모두 가득가득 총탄을 장전해 카트로 집어넣었다.

그렇게 모은 다섯 개의 카트 앞에서 가람은 멀리 갈 것 없이 바로 앞에 차원 문을 열었다.

여관의 욕실로 연결된 차원 문을 확인한 가람은 카트 안의 물건을 하나씩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귀금속이 들어 있는 쇼퍼 백을 집어 들고 차원 문 안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이쪽’은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뿐 2∼3일이 지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창문의 그림자로 시간을 유추한 가람은 차고 있던 시계로 자신이 저쪽에 얼마나 있었는지 확인했다.

손목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쪽에서 여섯 시간 정도 흐른 셈이다. 이곳의 시간과 속도 차가 거의 나지 않는다.

가람은 손목시계의 시간을 대충 오후 2시로 맞춘 뒤 욕실을 나갔다.

로아나가 한 번 왔었는지 문틈의 쪽지는 보이지 않았다. 쪽지를 써 놓고 간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만약 쪽지가 없었다면 로아나는 손님의 안전을 확인하기 위해 문을 부수는 일까지 감행했을 것이다. 그리고 가람은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경비대와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한숨을 돌린 가람은 가져온 물건들을 모두 한쪽에 정리했다. 많이 가져오긴 정말 많이 가져왔다.

특히 음식물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많이 챙겼는지, 말 등에 저걸 다 올리려고 하면 말이 자신을 걷어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람은 우선 잡화에서 자신이 쓸 물건들을 간추려 낸 후 한쪽으로 모았다. 판매용이었다.

그렇게 덜어 내고 나니 식료품을 제외한 나머지는 크게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 않았다.

저 물건들을 옮기는 것도 가람이 들어갈 만큼 커다란 캐리어 가방을 가져왔으니 그곳에 넣어 옮기면 될 것 같았다.

캐리어 가방을 가져온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어. 가람은 자신을 자찬했다.

대충 판매할 물건들을 추린 가람은 이번에는 쇼퍼 백을 열었다. 누군가가 쇼퍼 백 안쪽을 들여다보았다면 경악했으리라.

두 개의 쇼퍼 백 중 하나는 침대 아래에 밀어 넣어 숨긴 후, 가람은 쇼퍼 백 속에서 장신구를 종류별로 골라내기 시작했다.

다이아, 사파이어, 오팔, 에메랄드, 진주 등의 보석별 금 목걸이와 반지와 팔찌 귀걸이 한 세트, 은, 백금으로 한 세트씩 추려 내었다.

아무런 장식 없이 금을 세밀하게 컷팅 해 반짝이게 하는 기술을 사용한 반지까지 분류하니 금반지만 서른 개나 되었다.

금반지 서른 개, 은반지 열두 개(은은 비싼 금속이 아니라서 그런지 보석을 박은 반지가 많이 없었다.), 백금 스물여덟 개로 반지만 총 일흔 개에 팔찌와 목걸이, 귀걸이까지 사백 개나 되었다.

더 대단한 점은 그렇게 골라내었는데도 쇼퍼 백이 얼마나 컸는지 약 3분의 1 남짓 줄어들었을 뿐이라는 점이다.

귀걸이의 짝을 찾느라 한참 동안 분류에 몰두하던 가람은 그 어마어마한 숫자에 조금 질렸다. 무턱대고 담을 때는 몰랐는데, 세고 보니 엄청나게 많다.

가람은 귀걸이를 다시 쇼퍼 백 안으로 쓸어 넣었다. 반지도 모조리 다 쓸어 넣었다.

그러고 나서 금반지와 백금 반지는 진주와 다이아, 에메랄드와 루비만, 은반지는 보석이 박힌 것과 세밀하게 세공이 된 것만, 팔찌와 목걸이도 보석이 박힌 것과 세공이 뛰어난 것 이렇게 열네 개만 챙겼다.

물건을 모두 챙긴 가람은 남은 것들을 침대 아래에 쓸어 넣은 후 캐리어를 끌고 조용히 방을 나왔다.

홀은 어제와 달리 거의 가득 차 있었다. 분주히 서빙을 하던 로아나가 가람을 알아보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가람은 바빠 보이는 모습에 고개만 숙여 인사하고 어제 기억해 두었던 잡화점으로 향했다.

길을 가는 내내 가람이 자신의 몸보다 큰 가방을 끌고 가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는 시선이 따라붙었다. 동양인인 것도 신기한데, 그 신기한 동양인이 신기한 가방을 끌고 혼자 걷고 있으니 당연히 시선이 따라붙을 만도 했다.

그런 종류의 시선에 요 며칠간 이골이 난 가람은 이제 아무렇지 않게 받아넘길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캐리어 가방 덕분에 무시무시한 덩치와 무게의 짐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옮길 수 있었던 가람은 이곳의 정비된 도로에 크게 감사했다.

흙길이었어도 평탄하기만 했다면 별문제는 없었겠지만, 이곳의 도로는 마치 서울의 보도블록처럼 촘촘한 돌이 깔린 돌바닥이었다.

모두 하나하나 깎았는지 간혹 깨어진 돌부리가 있긴 했지만 모나거나 울퉁불퉁한 곳 없이 평탄했다.

아마 마차나 수레가 지나다니기 편하도록 그렇게 만든 모양이었다.

“어, 왔군.”

가람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침 손님 하나를 접객하던 라분이 그녀를 반가이 맞이했다.

가람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라분이 상대하고 있는 손님 옆에 서서 기다리기로 했다.

잡화점 안의 말린 풀, 정체불명의 뿔과 가죽, 쇳덩이와 밀봉된 통들을 살피던 가람은 귀를 의심하고 싶은 대화에 라분과 그와 흥정하는 남자를 돌아보았다.

“500골드는 너무 비쌉니다.”

“뭐가 비싸? 이 손전등은 마법구처럼 켜는 데 힘이 드는 것도 아니고, 여기 봐라. 여기 이거만 딸깍 누르면 빛이 나는 데다 흔들기만 해 주면 다시 마나가 충전된다고. 땀 뻘뻘 흘리면서 켜는 데에 집중해야 하는 마법구에 비할 게 아니야. 사기 싫으면 관둬, 살 사람이 자네만 있는 것도 아닌데 뭐.”

‘이 손전등’은 가람이 어제 라분에게 팔았던 그것이었다. 가람은 분명 저것을 30골드에 팔았었다. 그런데, 방금 이 사람이 뭐라고 했지? 500골드?

“좋습니다. 450골드라면 생각해 보죠.”

“내 말 못 들었나. 자네? 그렇다면야 550골드에 팔겠네.”

남자는 이 이상 흥정했다가는 저 손전등을 600골드에 사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

그는 이를 바드득 갈고는 품에서 묵직한 주머니를 꺼내 500원짜리 두 배 두께와 크기의 금화 하나와 어제 가람이 보았던 10골드에 해당하는 삼각형 금화 다섯 개를 건네었다.

원형 금화에는 루비가 박힌 지팡이가 조각되어 있었는데 아래에 이곳의 문자로 500골드라고 적혀 있었다.

“이제 주십시오.”

라분은 고개를 끄덕이곤 손전등을 건네었다. 손전등은 고급스러운 벨벳 상자에 담겨 남자에게 넘겨졌다.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한 가람은 남자가 나간 후 굳이 표정을 수습하지 않고 썩은 표정 그대로 라분을 바라보았다.

많은 것이 내포된 그 시선에 라분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 오늘 팔 물건은 뭔가? 오, 그 가방도 참 특이하군.”

“없어요.”

캐리어 가방에 기대 어린 시선을 주며 말하는 라분에게 가람은 딱 잘라 고개를 저었다. 로아나의 소개로 왔는데 완전히 사기당한 기분이다.

가람은 앞으로 파는 전자 제품은 최소한 200골드는 불러야겠다고 생각하며 잡화점을 나가려고 했다. 다급히 붙잡는 라분만 아니었어도 그대로 나갔을 것이다.

“자, 잠깐. 오해가 좀 있는 것 같군.”

“무슨 오해요? 소개받아서 믿고 제값을 받았다고 생각했더니 사실 그게 열 배 넘게 후려친 가격이라는 거요?”

신랄한 가람의 말에 라분이 식은땀을 흘렸다.

“나도 그게 그렇게 비쌀 줄 몰랐단 말일세. 자자, 화 풀고. 내가 손전등값은 오늘 더 쳐줄 테니까.”

“몰랐다니, 무슨 말씀이세요?”

가람이 조금 진정한 것 같아서 라분이 안면 가득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내 말 좀 듣게. 나는 그게 마법구처럼 집중을 해야 켜지는 줄 알았어. 어제 버튼을 누를 때 자네가 집중을 하고 있어서 켜진 걸로 알았지. 그런데 자네가 가고 나서 켜 보니 그게 아니지 뭔가? 그래서 그렇게 비싸게 팔린 거야. 화가 났다면 미안하네. 집중을 해야 켜지는 물건이라면 내가 되팔아도 50골드도 안 했을 거야.”

“집중요? 다른 건 집중을 해야 하나요?”

“음? 당연하지. 그래서 모험가 파티에도 마법구 담당이 따로 있는걸. 만약 야간 전투가 벌어질 경우 마법구에 정신을 집중해서 구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담당하는 사람 말일세.”

그렇게 사리가 안 맞는 말은 아니었기에 가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만 믿어 드릴게요.”

“진짜라니까. 자자, 어제 그 돈에 추가로 400골드 더 주겠네. 난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내 삶의 낙이 일을 마치고 휴식의 요정에 가서 술 한잔 하며 뱃사람들 이야기 듣는 건데, 내가 로아나의 친구에게 그리 박하게 굴겠나?”

그 말에 가람은 마음을 많이 풀었다. 일생 동안 영업을 한 라분의 입담은 보통이 아니어서 그 말투에는 사람의 마음을 녹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라분은 가람의 마음이 어느 정도 풀린 것 같자, 재빨리 푹신한 의자를 끌어다 권했다.

어제 가람을 세워 놓고 이야기하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대접이었다.

“그래, 오늘 팔 건 뭔가?”

가람은 대답 대신 캐리어를 열었다. 그 안에서 보석 주머니만 빼어 내 챙긴 가람은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들에 눈을 반짝이는 라분에게 담담히 말했다.

“일단, 이건 폴라로이드 사진기. 여기에 눈을 대고, 이 버튼을 누르면 여기로 보이는 모습을 사진, 그러니까 그림으로 만들어 줘요.”

가람은 천천히 자신의 물건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카운터 위에 올리며 설명했다.

중간중간 질문을 던지던 라분은 급기야 문밖에 클로즈 팻말을 걸고 본격적으로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이곳에도 있는 물건이 많았지만 그 형태나 질감이 완전히 달랐기에 희소성이 꽤 크다.

게다가 이것들은 거의 처음으로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는 신비한 동양(?)의 물건들이 아닌가.

“……해서, 쓰면 불이 나오는 거예요.”

라이터를 마지막으로 설명을 마친 가람은 라분이 라이터의 가격을 책정하기를 기다렸다.

첫 잡화 상점에서 부싯돌이나 다름없다며 50쿠퍼에 팔았던 라이터에 과연 얼마 정도의 금액이 매겨질지 궁금했다.

라분은 다섯 개가 빈 마흔 개들이 라이터 한 세트에 개당 5골드. 총 175골드의 가격을 매겼다.

그 가격에 가람은 첫날 이곳에 와서 사기를 당했던 잡화점 주인에게 속으로 약한 욕설을 퍼부었다.

“그럼 총 9천230골드네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이 가격은 계산기와 시폰 커튼, 하얀 벨벳,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컵이나 고무줄, 펜 같은 잡화는 크게 비싸지 않아서 저 네 개가 거의 8천 골드를 차지했다.

예상대로, 좀 신기한 전자 제품과 하얀 천 같은 사치품은 아주 비싸고, 그리 생활에 필요치 않거나 좀 특이할 뿐 편리하지는 않은 물건들은 그리 가격이 높지 않았다.

물론, 앞의 물건에 비교해서 높지 않다는 뜻이다. 고무줄이나 펜은 그 가격이 끈이나 깃털 펜에 비하면 거의 천 배가 넘는 가격이었다. 서민은 꿈도 못 꿀 가격이다.

가람은 문득 라분이 그 금액을 전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라분은 물끄러미 가람의 물건을 바라보다가 계산기를 집어 들었다.

태양열로 충전하는 계산기는 그 숫자의 형태가 이곳의 것과 다르지만 수의 크기는 다르지 않았기에 사용에는 문제가 없었다.

가람은 그 계산기를 디자인별로 다섯 개를 가져왔다. 그것에는 천 골드부터 1천500골드까지 다양하게 가격이 매겨졌다.

“저기, 왜 그러세요? 혹시 돈이 모자라세요?”

가만히 계산기를 바라보던 라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냐. 돈은 있어. 걱정하지 말아요.”

가람의 물건들은 제법 동양의 물건을 많이 취급해 보았다고 자신하던 라분조차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애초에 동양의 장식적인 물건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물건들이다. 가만히 물건을 바라보던 라분은 진지하게 제안했다.

“아가씨, 혹시 나와 계약할 생각 없나?”

“계약이요?”

“그래. 계약을 맺고, 아가씨 나라의 물건을 나를 통해 이 대륙에 수입하지 않겠냐는 거야.”

가람은 당혹스러웠다. 이런 경우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 계약은 불가능했다.

가람의 나라는 가상의 나라라서 당연히 그 실체가 없고, 수입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가람은 지금 그런 것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가람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수출을 금지하고 있어요. 사실 이것도 제 사람이 비밀스러운 루트로 저에게 전해 준 거예요. 대량은 무리예요. 규칙적으로 수급할 수도 없고요. 그리고 저는 여기에 계속 머무르지 않을 거라서…….”

“어디로 가는가?”

“그건,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말씀드릴 수 없어요. 다만 아주 많이 떠돌아다니게 될 것 같아요.”

가람의 착잡한 말에 라분은 깊은 사정이 있음을 느꼈다. 아직 한참은 어려 보이는데. 더 말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 그는 빠르게 체념했다.

“그래, 그렇다면 할 수 없지. 혹시 다음에 물건을 팔 일이 있거든 경매장으로 가 봐.

좀 큰 도시에는 경매장이 있는데, 경매인에게 물건을 보여 주고 물건의 효능을 증명하면 경매 물품으로 나가게 되지.

약 1할의 수수료를 물긴 하지만, 나 같은 상인에게 파는 것보다는 훨씬 괜찮은 값을 받을 수 있을 거야. 경쟁을 붙이면 값이 올라가는 법이거든.”

그렇게 말한 라분은 빙그레 웃었다. 가슴이 따듯해지는 얼굴이었다.

푸근한 그 표정은 모든 경계심이나 의혹을 무너뜨리는 힘이 있었지만, 가람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내 잡화상에서만 팔라고 저를 꾀어내도 될 텐데, 저에게 이런 걸 알려 주시는 이유가 뭐예요? 손해잖아요. 라분 씨에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