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스파인더-19화 (19/256)

19화

* * *

머리 속의 뇌가 내보내 달라고 두개골을 두드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조금만 고개를 움직여도 깡통 속의 돌처럼 골이 마구 쿵쾅여 머리를 부수는 것 같다.

가람의 아침은 그리 유쾌하지 않은 숙취로 시작되었다.

이불에 머리를 박고 나지막이 앓던 가람은 옆으로 반 바퀴 굴렀다. 머리 속의 골도 반 바퀴 굴렀다. 나 죽네.

가람은 가만히 누워 어젯밤을 되뇌고 있었다. 옆에 앉았던 배불뚝이 선원과 주량 싸움을 하던 시점에서 기억은 한 번 끊겨 있었다.

다시 기억이 시작된 지점은 뜬금없는 외침이었다. ‘나중에 배를 타고 가면 바람이 약한 날 낚시나 해 봐. 재미가 아주 그만이라고.’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사람이 바다에서 인어를 낚았댔나? 인어가 맛있다고 했던가? 아니, 이건 다른 사람 말인가.

아무래도 인어 이야기를 했던 사람과 낚시 이야기를 했던 사람은 다른 사람인 것 같은데. 아닌가?

처음에는 분명 맥주를 마신 것 같았는데, 기억이 끊길 때쯤에는 도수가 꽤 센 과일주를 마셨던 것 같다.

그래, 이건 확실하다. 그리고 지금 침대에 누워 있는 걸 보니 제대로 방으로 기어들긴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지금 몇 시지?

손목시계는 오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동이 트는 광경을 본 것 같은 기억도 났다.

설마 술에 취해서 이상한 소리를 하진 않았겠지. 아니, 어차피 뭔가 떠들었어도 주정뱅이의 헛소리라고 취급했을 거다.

어쨌거나, 한바탕 취해서 마시고 널브러졌다 일어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다.

사실 숙취로 머리가 너무 아파서 고민을 할 여력이 없었을 뿐이지만.

한참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는데 누군가 가람의 방문을 두드렸다.

노크 소리가 마치 머리에 못을 박는 소리 같아서 가람은 머리를 움켜쥐고 어기적어기적 걸어 문가로 다가갔다.

완전히 취한 그 와중에도 문단속을 할 정신은 있었는지 가람의 방문은 잠금쇠가 걸려 있었다.

“손님, 일어나셨어요?”

방문자는 가람의 예상대로 로아나였다. 이제 익숙해진 목소리에 방문을 열자 눈이 부시도록 상큼한 얼굴을 한 로아나가 음식이 든 쟁반을 들고 냉큼 방 안으로 들어왔다.

가람의 방 안에는 주정뱅이 가람이 내뿜은 술 냄새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로아나는 늘 내려놓던 그 테이블에 음식을 내려놓은 뒤 창문을 열고 환기가 되도록 조치했다.

창문으로 불어오는 맑은 공기에 가람은 그제야 자신의 방이 얼마나 술 냄새에 찌들었었는지 깨달았다.

어쩐지 민망해서 가람은 애써 로아나의 시선을 피하며 음식으로 다가섰다.

어제 폭음한 가람을 배려했는지, 음식 테이블 위에는 정식 식사 메뉴 외에도 속을 달래 줄 묽은 오트밀과 정체불명의 연녹색 차가 모락모락 김을 뿜어 올리고 있었다.

가람은 오트밀을 집어 들어 후루룩 마셨다. 묽은 오트밀은 부드럽게 목을 넘어가 쓰린 위장을 달래어 주었다.

창문을 열고 침대 시트를 정리한 로아나는 가람이 오트밀을 다 마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했다.

“아침 식사는 일어나지 않으신 것 같아서 취소했어요.”

“아, 네에.”

“그리고 술값 말인데요. 어제.”

그 말에 가람은 어제 골든 벨을 울렸던 것을 기억해 냈다. 가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로아나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3골드 20실버 15쿠퍼 나왔어요. 하지만 15쿠퍼는 깎아 드릴게요. 3골드 20실버예요.”

가람은 가만히 계산해 보았다. 고급술 한 잔에 20쿠퍼 한다고 했으니 1실버면 고급술 다섯 잔이다.

1골드면 고급술 오백 잔, 즉 거의 어제 천오백 잔이 넘는 술을 먹어 치웠다는 뜻이다. 그 사이에 맥주도 섞여 있었을 테니 술의 양은 더 많을 테지.

순식간에 계산을 끝낸 가람은 조금 질리는 기분이 되었다가 곧 어젯밤 여관에 가득 차 있던 사람의 숫자를 떠올리곤 납득했다.

사실, 가람도 최소 서른 잔은 마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드릴게요. 잠시만요.”

가람은 그 자리에서 주머니를 뒤져 금화가 든 돈주머니를 꺼냈다.

그러나 주머니 안에 든 돈은 미스릴 주화인 보석점에서 받은 17만 골드와 잡화 상점에서 받은 1만 골드, 그리고 말을 사고 남은 1천 골드 주화 하나와 100골드 15실버가 전부였다.

3골드 내자고 100골드 주화를 내기엔 좀 난감해진 가람이 남은 소액 금화가 없나 주머니를 뒤졌지만 101골드 90실버가 그녀가 가진 돈의 전부였다.

“저기, 소액 금화가 없는데 어떡하죠?”

“아, 괜찮으시다면 제가 소액 금화로 바꿔 올게요. 마침 오늘 은행에 가야 하거든요.”

가람은 이번 기회에 같이 은행에 가서 경험해 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숙취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로아나가 가져온 녹차 비슷한 맛이 나는 차를 먹고 나니 어느 정도 괜찮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통은 여전히 있었지만 속이 쓰리지 않은 것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그럼 저도 같이 가요.”

가람의 말에 로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가는 것보다 심심하지도 않을 테니 로아나도 환영이었다.

“그럼, 식사 마치시고 같이 나가요.”

“다 먹었어요.”

점심 식사는 흰살생선을 짭짤하게 튀긴 음식이었는데 무슨 생선인지는 몰라도 살 토막이 큼직했다.

토막 난 살이 거의 가람의 손바닥보다 컸으니 실제로는 가람의 다리 한 짝만 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가람은 그 생선 살을 집어 들고 일어섰다. 가면서 먹으면 된다는 뜻이었다.

“제가 좀 기다려도 되는데.”

그렇게 서둘러 먹을 필요 없다는 뜻으로 로아나가 말했지만 가람은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밥을 먹고 앉아 있으면 그대로 자 버릴지도 모른다.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으니 말이 안 되는 일은 아니다.

“가요.”

로아나의 말대로 은행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용병 길드와 서점 근처에 있었는데, 가람이 생각했던 은행의 이미지와는 조금 달랐다.

은행은 마치 골동품점과 도서관을 섞어 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접수창구로 보이는 장소에는 상냥한 은행원 대신 짜증으로 얼굴을 구긴 ‘너를 불친절하게 대하겠다.’라고 안면 가득 광고하고 있는 남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창구는 모두 다섯 개였는데, 가람과 로아나는 그중 중앙의 창구 앞에 섰다.

이유는 단순했다. 줄이 가장 짧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줄이 가장 빨리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가람이 은행 접수창구 뒤의 골동품 같은 조각들과 서적들을 구경하는 동안 줄은 착실히 줄어들어 어느새 로아나의 차례가 되었다.

“이거 입금해 주세요.”

로아나는 가게에서부터 끙끙거리며 들고 왔던 돈주머니와 미스릴 주화를 창구 위로 쿵 소리가 나게 올려 두었다.

창구에 앉아 있던 사람은 약간 유약한 인상의 학자풍 남자였는데, 약 서른 초반 정도 되어 보였다.

그는 특이하게도 안경을 끼고 있었다. 이곳에도 안경이 있었던 것이다. 비록 가람 세계의 것보다는 알도 두껍고 투박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그 안경 덕분에 남자는 두 배 정도 더 차가워 보였다.

남자는 주머니를 열어 옆의 통에 동전들을 쓸어 넣었다. 동화와 금화, 은화가 마구 섞여 있었는데 하나하나 세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간단한 마법으로 동화와 금화, 은화를 나누었다. 살짝 손짓하자 동전들이 모두 같은 단위끼리 모여 선 것이다.

그것도 열 개 단위로 칩처럼 차곡차곡 쌓여서 말이다. 가람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전부 520골드 2실버군요. 입금되었습니다. 수수료는 15실버입니다.”

로아나는 미리 빼 두었던 15실버를 내밀고 미스릴 주화를 받아 들었다. 남자는 무심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가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사실 가람은 이제 시선들에 무감각해져서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보기 드문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제법 괜찮은 구경거리가 되고 있었다.

“다음.”

로아나는 재빨리 가람에게 뒤로 가서 기다리겠다는 눈짓을 한 뒤 줄에서 빠져나갔다.

그녀와 시선을 주고받던 가람은 창구 남자의 짜증스러운 시선에 서둘러 주머니에서 볼일을 꺼내 들었다.

“이 미스릴 주화를 하나로 합쳐 주시고, 여기 1천 골드 주화를 100골드 주화 아홉 개, 10골드 주화 열 개로 바꿔 주세요. 저기, 그리고 문의할 것도 있어요.”

“뭡니까?”

남자는 가람이 내민 미스릴 주화를 받아 들어 처리함과 동시에 천 골드 금화를 소액으로 바꾸며 물었다.

한 손은 미스릴 주화에 마법을 걸고, 한 손은 금화 상자에서 동전을 꺼내는 신기를 부리면서도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무덤덤한 얼굴이었다.

“여기, 혹시 대여 금고 같은 거 있나요? 물건을 좀 보관할 수 있는 거요. 그리고 어디서든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금고는 현재 가람의 여관 침대 아래에 있는 탐욕의 산물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었다.

가람은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금고가 있고, 금고에 며칠이 걸려도 좋으니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내용물을 가져올 수 있는 우편 서비스가 딸려 있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은행은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좋은 것을 제공했다. 조금 비싸긴 하지만 말이다.

“있습니다. 원한다면 당일로 워프 마법을 이용해 물건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가격은 한 번에 10골드입니다. 금고는 크기로 등급이 나뉘는데, 가장 작은 것은 반지 케이스만 한 것도 있고, 큰 것은 집채만 한 것도 있습니다.”

“그 정도까지 클 필요는 없고, 한 요 정도면 좋겠는데요.”

가람이 손으로 대략적인 크기를 잡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10번 금고 정도면 충분하겠군요. 금고 대여료는 1년에 100골드입니다.”

“지금은 맡길 물건을 가져오지 않았어요. 내일 다시 올게요.”

“네. 그럼 여기 미스릴 주화와 소액 금화입니다. 수수료는 15실버입니다.”

가람은 주머니에서 은화를 탈탈 털어 내밀었다. 남자는 무심히 받아 들고 지금까지 그랬듯 ‘다음.’ 하고 외쳤다.

그 보석들은 이곳의 금고에 맡기면 해결이고, 이제 구체적으로 말 등에 얼마나 짐을 실을 수 있는지 알아봐야 할 차례였다.

가람과 로아나가 은행을 나오자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가람은 잠시 용병 길드에 들러 승마를 가르쳐 줄 사람을 알아볼까 하고 고민하다가 일단 오늘은 쉬고 내일부터 하기로 결정했다.

쉴 때는 좀 쉬어 줘야 하는 법이다. 게다가 아직 마구도 사지 않았는데 승마 선생부터 구하는 건 좀 급한 감이 있었다.

결국 가람은 근처의 시장에서 말이 아주 좋아한다는 강아지 당근을 한 아름 사서 여관으로 돌아왔다. 강아지 당근은 정말 기묘한 채소였다.

당근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마치 개가 짖는 것 같은 소리로 캉캉 짖었는데, 잘 짖는 강아지 당근일수록 싱싱하다고 해서 한참이나 강아지 당근들을 뒤적여 가장 싱싱하고 잘 짖는 당근으로 골라 왔다.

여관으로 돌아와 어제의 술값을 계산한 가람은 방으로 올라가려다가 곧바로 마구간으로 향했다.

일단 오늘은 잠을 자고 내일 강아지 당근을 먹이러 갈 생각이었는데, 당근이 너무 시끄럽게 짖는 통에 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섯 개 정도의 당근이 어찌나 소란하게 짖는지 옆방에서 항의가 들어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가람이 마구간에 들어서자 멀리서부터 당근 짖는 소리를 들은 말들이 잔뜩 흥분해 투레질을 하고 있었다.

가람은 낯선 말들을 지나쳐 가장 깊은 곳에 매여져 있는 뽀삐 앞으로 다가섰다. 마구간은 나무를 대충 얼기설기 엮어 지은 허술한 것이었다.

통풍을 위해서 듬성듬성 난 나무 틈으로 노을이 길게 새어 들어와 뽀삐의 얼굴을 비추었다.

“캉! 캉! 으르릉!”

뽀삐는 가소롭다는 듯 강아지 당근을 흘겨보더니 곧 와작와작 씹어 삼켰다.

주변의 말들이 군침을 줄줄 흘리며 뽀삐가 당근을 먹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가람은 마구간에 가득 찬 말똥 냄새에 다시 머리가 아파 오고 있었기에 뽀삐에게 서둘러 당근을 먹인 뒤 마구간을 나섰다.

당근 주제에 씹힐 때마다 끼잉끼잉 하는 소리를 내서, 계속 듣고 있으니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구는 내일 사야겠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축축 늘어지는 몸을 추스르며 가람은 생각했다.

역시 그렇게 마시기엔 나이가 좀 들었나. 그래도 대학교 때는 멀쩡했는데.

* * *

보통 많은 여행자가 오가는 도시에 처음 방문한 여행자는 아무도 자신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오가는 사람만 하루에 수백인데, 그중 하잘것없는 나 하나에 누가 신경이나 쓰겠냐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대체로 틀리지 않다. 문제는 ‘대체로’다. 이런 단어가 강조되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다. 가람이 그 ‘대체로’에 속하지 않으니까.

혼자 돌아다니는 돈 많은 여행자가 ‘휴식의 요정’에서 골든 벨을 울렸다는 소식은 사실 넘치는 게 소문인 이 항구 도시에서 그리 대단한 뉴스거리가 못 되었다.

하지만 그 여행자가 일행도 없는 동양인에, 심지어 마법사도 전사도 아닌 무력한 사람이라는 점은 어떻게 하면 한탕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던 불량배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가람은 그 소문이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웃어. 자, 웃으라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부지런히 말안장을 사러 여관을 나선 가람은, 로아나가 알려 준 건물의 모퉁이를 도는 순간 갑자기 친분을 다지는 현장의 한복판에 서게 되었다.

쉽게 말해서, 우락부락하고 남루한 차림의 남자가 가람에게 억세게 어깨동무를 하며 끌어당겼다는 뜻이다.

그리고 별로 친근하지 않은 단검을 옆구리에 들이대며 씨익 웃었다. 너무 놀라면 비명도 나오지 않는다던가.

백주 대낮에 강도를, 그것도 사람도 많이 지나다니는 길거리에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가람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골목으로 질질 연행되었다.

“저기, 누구세요?”

“응, 네 친구.”

골목길로 들어와 뒤늦게 정신을 차린 가람이 묻자, 그녀를 끌고 들어왔던 남자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불량배는 모두 다섯 명으로, 가람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녀를 빙 둘러싸고 히죽이고 있었다.

그쯤 되자 가람은 상황을 알아차렸다. 사실 상황이야 옆구리에 칼이 달라붙은 그 순간 알았지만 그때에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던 것이다.

“돈이 그렇게 많다며?”

“그래, 동양인이니 귀족도 아닌 것 같고. 뒤탈도 없겠네.”

“불쌍한 사람들한테 적선 좀 해. 어차피 우리 대륙에서 번 돈이잖아?”

가람은 고민했다. 총을 꺼낼까, 돈을 꺼낼까. 지금 그녀의 품에는 혹시나 해서 가져온 리볼버가 탄약을 가득 머금고 매달려 있었다.

하는 행동을 보면 괘씸해서 총을 뽑아 들고 싶은데, 실수로 이 사람들 중 한 명이라도 죽여서 경비대에 잡혀가면 그야말로 망하는 거다.

가람은 절대 사고를 일으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트리거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품에서 10골드 금화를 하나 꺼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가람의 품에서 툭 튀어나온 금화를 본 불량배들의 눈빛이 순간 변했다. 혹시나 해서 찔러 봤는데 정말로 대박이었던 것이다.

일단 가람이 정말로 돈을 갖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 이상, 망설일 건 없었다.

가람의 등 뒤에서 도주를 막고 있던 남자 하나가 덤벼들어 가람의 양손을 잡아챘다.

그러자 다른 불량배가 달려들어 가람의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손발이 착착 맞는 것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야, 이 개……! 놔, 안 놔? 야!”

사실 길에서 강도를 만났을 때, 강도가 원하는 돈을 순순히 내어주는 건 현명한 선택이다. 살인강도범이 강도 행각만 벌이고 만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람의 경우는 꿀단지에서 꿀 한 술을 퍼서 보여 준 거나 다름없었다. 불량배들은 가람이 꿀단지를 갖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들었다.

“어딜 만져!”

발버둥 치던 가람이 불량배 하나를 걷어찼다.

뺨에 정통으로 신발 자국이 찍힌 남자가 붉으락푸르락 얼굴을 붉히더니 욕설을 내뱉으며 가람을 후려치려고 하는 순간, 불량배 하나가 탄성을 내뱉었다.

그의 손에는 미스릴 주화가 들어 있는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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