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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파인더-27화 (27/256)

27화

웨이크는 무덤덤하게 납득했지만 뮐러는 곧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여행을 많이 다닌 뮐러조차 크페타인까지는 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풍문으로 그곳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는 알고 있었다.

와이번 슬레이어라는 저 남자는 몰라도 자신의 전투력으로는 거친 범죄자들의 한 입 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무슨 목적으로 가시는 겁니까? 크페타인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동양인 아가씨의 단순한 서대륙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향하기에는 지나치게 위험한 장소였다. 가람은 뮐러의 생각을 눈치챘다.

차라리 자신도 취미나 여행 삼아 가는 거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가람이 걸을 곳은 가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가람의 손등에 달린 작은 검은 바늘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

“찾을 것이 있어요.”

가람은 입을 꾹 다물고 발걸음에 힘을 주었다. 단호한 태도에 뮐러는 더 묻기를 포기했다.

어차피 팔린 처지에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

만약 가람이 보통의 통상적인 고용주였다면 이런 무례한 질문은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위험한 곳으로 가겠다면 받은 돈을 모두 돌려주는 한이 있더라도 계약을 파기했을 거다.

그러나 가람의 상냥함이 뮐러가 모진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크페타인까지는 걸어서 얼마나 걸리나요?”

가람이 슬쩍 뒤를 돌아보며 질문했다. 거의 두 시간은 넘게 걸었는데 지형 탓인지 아직도 떠나온 마을이 보였다. 벌써 다리가 욱신거렸다.

어딘가로 간다면 당연히 자동차나 지하철을 타는 세상에서 살던 가람은 걸어서 이동하는 이 방식이 몹시 느리고 힘들게 느껴졌다.

한 걸음을 떼면, 겨우 한 걸음 뗀 만큼만 앞으로 나아갔다. 정직한 이동은 몸보다 정신을 지치게 만들었다.

“이 속도라면, 두 달은 걸릴 겁니다.”

“두 달이요?”

가람은 우뚝 멈췄다가 어느새 앞서가 버린 두 사람을 따라잡으며 재차 물었다. 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람은 타박타박 걷고 있는 뽀삐를 바라본 후 잠시 생각하다가 질문했다.

“짐마차를 사서 타고 간다면 어떨까요?”

“빨리 가야 합니까?”

“빨리 갈수록 좋긴 해요.”

“걷는 것보다는 속도가 날 겁니다. 한 달 조금 넘게 걸리지 않을까요? 45일 정도? 변수가 없다면 그 정도일 겁니다.”

“뭔가 좀 더 빠른 방법은 없나요?”

뮐러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다리는 여전히 부지런히 길을 밀어 내고 있었다.

“저도 크페타인은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군요. 만약 돈이 많으시다면 마법 철도를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입니다.”

“마법 철도요? 기차가 있어요?”

가람의 질문에 뮐러가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마법 철도는 그조차도 최근 마법 학술회지에서 읽은 새로운 소식이었다. 마법사 중에서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미르드에서 차콘다를 오가는 노선일 뿐이지만, 북공은 이 노선에 많은 기대를 하는지 어마어마한 거액의 투자금을 내어주었다고 한다.

“알고 계셨습니까? 최근에 생긴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크페타인까지 바로 가진 않더라도 차콘다에서 내린 뒤 걸으면 3일 만에 크페타인까지 닿을 수 있죠.”

가람은 고민했다. 이 바늘이 언제까지 북쪽을 가리킬지도 알 수 없는 데다 만약 기차를 타고 가다가 지나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두 사람과 말 한 마리는 심각한 얼굴로 고민하는 가람을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그거 중간에 내릴 수도 있어요?”

“대도시에 한해서 중간에 정차하기도 한다고 들었습니다.”

나침반의 바늘이 가장 짧아지는 역에서 내리면 괜찮겠다고 생각하며 가람은 기차를 타는 쪽으로 거의 마음을 기울였다.

무언가를 타고 갈 수 있는데 일부러 걸어서 몸을 학대할 만큼 그녀의 체력이 막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도 탑승할 수 있나요?”

“귀족들의 애마를 위해 마구간도 있다고 하더군요. 만약 타실 거라면 여기서 서쪽으로 하루 종일 가면 역이 있는 도시가 나옵니다. 서두르면 내일 기차를 탈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미르드에서 차콘다까지 편도로 14일이 걸리는 노선이니 여기서 탄다면 차콘다까지 기차를 타고 8일 정도 걸릴 겁니다. 사정에 따라 며칠 지연되기도 하지만요.”

가람은 뮐러의 말에서 자신들의 위치가 미르드와 차콘다의 중간쯤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뮐러의 말대로라면 넉넉잡아 12∼13일이면 크페타인까지 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거의 4분의 1로 시간이 줄어든다면 기차를 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좋아요. 그럼, 오늘은 그 도시로 가요. 그런데 도시 이름이 뭐죠?”

“게르하론입니다.”

* * *

세 명과 말 한 마리는 노을이 지기 직전에 게르하론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부지런히 걸은 보람이 있었다.

게르하론의 첫인상은 하는 일 없어 보이는 성문지기의 입이 찢어질 것 같은 하품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이었다.

사람들은 나무 밑이나 잔디, 혹은 약간의 그늘 아래에서 저마다 책을 읽고 있었다.

솔직히, 공원 같은 것이 없었기에 여기저기에 책 읽는 거지가 널브러져 있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베록시와는 달리, 손에 해산물이 아닌 책을 들고 있는 풍경이 몹시 생소했다. 도시 전체가 조금 따분하고 조용하며 평화로웠다.

마치 먼지가 부옇게 찬 오래된 서가에 잘 익은 꿀색 햇살이 낡은 책을 비추고 있는 풍경 같았다.

도시의 모든 것들은 매우 낡아 있었고, 사람들은 그 사실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낡은 옷을 몇 겹이나 꼼꼼히 감싸 입고 있는 시민들은 그리 부자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품위는 있어 보였다.

베록의 청년들이 툭하면 벗고 울끈불끈한 근육을 뽐내던 것과 달리 이곳은 아무도 상의를 탈의하고 있지 않았다.

청년과 처녀들은 모두 학자처럼 보였고, 나이가 든 사람은 신사, 노부인, 선생님처럼 보였다.

베록이 여행자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것에 비하면 게르하론의 시민들은 잠깐 동양인에게 시선을 주긴 했지만 곧 자신이 들고 있는 책으로 주의를 집중했다.

간혹 몇몇은 가람에게 말을 걸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손에 들고 있는 책의 제목이 ‘동양, 그 신비’, ‘동양의 100가지 거짓말’ 등인 것으로 보아 단순한 학문적인 호기심일 뿐인 것 같았다.

그리고 소심한 성격 탓인지 실제로 다가오지도 못했다.

그들을 흘긋거리느라 가람의 걸음이 처지자 뮐러가 재촉했다.

“이쪽입니다.”

게르하론과 베록의 대표적인 차이는 바로 도시 곳곳에 있는 이정표였다.

여행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의외로 이정표는 꼼꼼하고 친절하게 작성되어 있었다.

특히 도시 입구에 커다란 마을 지도가 조각되어 있는 것은 매우 인상 깊었다.

뮐러가 이 도시의 길을 잘 알고 있었던 탓에 지도는 별로 필요가 없었지만, 게르하론이 지식과 세련미가 넘치는 도시인 것 같은 느낌은 확실히 받았다.

“게르하론 사람들은 무뚝뚝해 보이는데, 의외로 배려심이 깊은가 봐요.”

가람은 벌써 일곱 개째의 이정표를 보며 말했다. 그러나 뮐러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어째서요?”

“단순히 책을 읽고 있을 때, 여행자가 길을 물어서 방해하는 걸 싫어하는 것뿐이에요.”

“설마요.”

“궁금하면 시험해 보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말한 뮐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할까요?’ 하는 표정을 지었다. 가람은 정확히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한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뮐러는 그 근처의 집 벽에 기대어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섰다.

“저기, 길 좀 물…….”

‘어볼 수 있을까요?’라는 말이 채 나오기도 전이었다. 유순한 학자처럼 보이던 남자는 갑자기 확 얼굴을 구기고는 노골적으로 질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은, 언젠가 가람이 커다란 바퀴벌레 괴물을 보았을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남자는 외쳤다.

“당신 눈에는 저 이정표도 보이지 않습니까? 이 등신아! 눈알이 달렸는데 왜 이정표도 보지 못하고 책 읽는 걸 방해하는 겁니까? 댁같이 멍청한 사람과 달리 나는 책을 읽는 시간이 정말로 소중하단 말입니다. 물론 당신처럼 지식이라곤 없는 인간은 절대 그 가치를 모르겠지만! 알아들었으면 당장 꺼져서 천한 일이나 찾아서 움직이기나 해요! 이정표도 보지 못할 정도로 멍청한 댁의 머리로 할 수 있는 일 말이오!”

남자의 외침은 너무나 박력이 있어서 입에서 바람이 뿜어져 나와 뮐러의 머리카락이 휘날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남자는 그렇게 외치곤 다시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가 책에 집중했다. 감정을 빨리 수습해야 다시 책에 집중할 수 있을 테니 그런다는 듯한 깔끔한 마무리다.

묘하게 상스럽고 예의 바른 욕설이었다. 기분이 나쁘다기보다 황당해서 가람은 ‘봤죠?’ 하는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는 뮐러와 남자를 번갈아 보았다.

“얼마나 싫어하는지 이해했어요.”

가람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쪽에서 비스듬히 선 채 지켜보던 웨이크가 붉은빛이 돌기 시작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해가 지고 있습니다. 서두르죠.”

그렇게 말하고 그는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조금 당황하던 두 사람은 곧 웨이크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도시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책을 읽던 사람들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각자 자신이 기대앉아 있던 집의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라, 거리는 순식간에 텅텅 비어 버렸다.

“해가 지니까 들어가는 겁니다. 낮에는 책을 읽고, 밤에는 먹을 것을 만들거나 하죠.”

“대체 무슨 일을 해서 어떻게 먹고사는 거죠?”

가람은 황당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부유하지 못했다. 그리고 산업도 대체로 1차 산업에 집중되어 있었다. 어업이나 농업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이곳에는 밭도, 바다도 아무것도 없었다. 책이라도 뜯어 먹고 사는 걸까?

“식량이나 생필품은 모두 다른 영지에서 수입합니다. 사실 이곳의 영지민들은 대부분 학자나 마법사라 영지에 고용되어 있거든요. 영지민이 되는 순간 월급을 받을 수 있죠. 주로 실험이나, 자료 조사 등으로 지식을 제공하고 이바지하죠. 영지민이 되려면 영지에 보탬이 되는 지식을 제공하면 심사 후 자격을 얻게 됩니다. 당연히, 세금은 내지 않습니다.”

“이 영지가 그렇게 돈이 많나요?”

가람의 질문에 뮐러는 대답 대신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 턱 끝에는 척 보이게도 무언가 있어 보이는 거대한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마치 새하얀 신전 같은 건물이었는데, 건물 전체에 빽빽하게 보라색 마법진들이 그려져 있었다. 가람의 은행 금고 겉에 그려져 있던 마법진과 비슷한 색이다.

“이 역이나, 이곳에서 내는 책 등으로 수익을 얻으니 아주 부유하지는 못하더라도 여유 있게 운영이 될 정도는 됩니다.”

“이게 역이군요.”

가람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찬찬히 건물을 살펴보았다. 건물은 역이 아니라 그리스 신전에 보라색 야광 물감으로 기하학적인 문양을 낙서해 둔 것 같았다.

사실 ‘건물’이라고 부르기도 좀 어색했다. 역은 건물이 가져야 할 많은 것들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장과 바닥, 기둥만이 있을 뿐 바람을 막거나 하는 것에 필요한 벽이나 창문이 없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현관문이나 입구도 없어서 그냥 기둥 사이에 뚫린 틈으로 세 사람과 말 한 마리는 어색하게 들어섰다.

“저쪽이 매표소인 것 같군요.”

뮐러가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를 가리키며 그쪽으로 향했다.

가람은 그 뒤를 따르면서도 역 안을 관찰했다. 솔직히, 관찰할 것도 없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없었다.

바람이 아주 잘 통할 것 같은 역은 밖―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에서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의자도 없고 휴게실이나 안내판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레일조차도 말이다. 그래서 가람은 사람들을 관찰했다.

대체로 낡고 단순한 옷을 입은 이곳의 토박이들과 달리 역 안의 사람들은 척 보기에도 돈이 꽤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입고 있는 옷은 매우 고급스러웠고, 수행원이 딸린 아가씨나 기사, 로브를 깊게 눌러쓴 평범해 보이지 않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가람은 문득 자신들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해 보았다. 동양인 여자 하나와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 하나, 앞서 걷는 평범한 남자 하나, 말 한 마리. 말?

“웨이크 씨. 죄송하지만 뽀삐의 고삐를 좀 잡고 여기서 기다려 주시겠어요?”

하마터면 말고삐를 잡고 생각 없이 돌격할 뻔했다. 가람의 말에 웨이크는 말없이 손을 뻗어 뽀삐의 고삐를 잡았다. 잡지 않아도 뽀삐가 도망가거나 하는 일은 없을 테지만 주변 사람을 배려한 것이었다.

군마의 혈통을 타고났다며 침이 튀도록 칭찬했던 마상인 톨란의 말대로, 뽀삐는 겉으로만 보자면 아주 기세등등한 군마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앞다리를 휙 들어서 사람 하나 정도는 우습게 으깨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외형이라, 담이 작은 사람들은 뽀삐를 피해 슬금슬금 물러서고 있었다.

“이쪽입니다.”

그사이 뮐러는 착실히 길을 뚫어 두고 있었다. 상냥한 빛깔의 녹색 눈동자가 쉼 없이 양해를 구하고 감사의 눈인사를 한다.

가람도 함께 뮐러의 시선을 따라가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사람들이 몰려 있긴 해도 저마다 서로 닿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두 사람은 그 틈을 약간만 넓히는 것만으로 수월하게 매표소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람은 매표소 앞에 사람이 왜 몰려 있는지 알게 되었다.

매표소는 마치 간이 화장실 같은 느낌이었다. 커다란 흰 상자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그런 상자 네 개가 붙어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창구를 열고 있었다.

매표소의 겉면에는 가격과 남은 좌석의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귀족을 겨냥하고 만든 것이라 그런지 가격들이 만만치 않았다.

좌석의 분류 시스템은 가람이 있던 세계와 조금 비슷했다.

1부터 10까지의 등급이 있었는데, 최하급인 10등급은 좌석이 없었고 말 등과 함께 타야 했다.

9등급부터 좌석이 있었는데, 5등급 위로는 객실로서 침대칸이었다.

5등급이 네 명, 4등급이 여섯 명 식으로 등급이 올라갈수록 수용하는 인원이 두 명씩 늘어났다.

푯값은 위로 올라갈수록 세 배로 가격이 뛰었다. 가장 저렴한 칸인 10등급이 1골드, 9등급은 3골드, 이렇듯 한 등급이 올라갈수록 9, 27, 81, 243, 729…….

1등급 객실은 무려 2만 골드에 육박했다. 1등급 객실은 단 하나만이 남아 있었고, 9등급과 8등급은 매진이었다.

몰려 있는 이 사람들은 9등급과 8등급의 표가 나오지 않을까 해서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가람이 가격을 보는 그 순간에도 몇몇 사람들이 좌석이 나오지 않았는가 하고 소리 내어 질문했다.

당연히 불친절한 매표소 안의 직원은 그 질문을 가볍게 무시했다.

가람은 침대칸이 있는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섯 시간 동안 기차를 타는 것도 힘이 드는데, 며칠이나 앉아서 기차를 타고 가면 얼마나 피곤할까.

“침대칸으로 해야겠어요.”

“5등급 말입니까?”

“네. 그리고 뽀삐를 태울 10등급도…….”

가람이 대답하는 순간, 직원이 5등급 객실의 숫자 패널을 0으로 바꿔 버렸다. 마치 맞춘 듯이 절묘해서 가람은 짧게 웃고 말았다.

“4등급은 아직 다섯 개 남았네요.”

“침대 세 개가 남는데, 괜찮습니까?”

4등급의 객실은 여섯 명이 정원이라 남는 침대가 좀 아깝지만 가람은 어깨를 으쓱였다.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좀 넓게 쓰죠 뭐.”

뮐러는 가람이 보석을 팔아 몇 십만 골드를 챙기는 것을 보았기에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돈을 주시면 제가…….”

“아니에요, 제가 할게요.”

가람은 노예의 사명을 다하려는 뮐러를 만류하며 주머니에서 천 골드 주화를 꺼내 매표소 앞에 섰다.

이미 표를 구입할 사람들은 다 구입했는지 줄을 서 있는 사람은 없었기에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창구 안에서 딱딱하고 불친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무 상자에 작은 구멍만 뚫어 놓았을 뿐이라 얼굴도 뭣도 보이지 않는다.

“4등급 객실 하나랑 10등급 하나요.”

“10등급 이용 승객은 사람입니까?”

“아뇨, 말이에요.”

그게 끝이었다. 조금 큰 손이 천 골드 주화를 닦아 내듯 쓸어 가더니 잔돈과 함께 팽개치듯 작은 금속 패 두 개를 내어놓았다.

금속 패 하나에는 4등급 객실의 호수가 적혀 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10등급인 동물 칸, 마찬가지로 호수가 적혀 있었다. 4등급 객실 3-53, 10등급 1-56.

가람이 패를 받는 사이 뮐러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가람을 급하게 잡아끌어 인파 속을 빠져나왔다.

“왜 그래요?”

얼떨결에 끌려 나온 가람은 어리둥절하게 질문했다. 안에 있는 게 싫었나? 그러나 대답은 웨이크가 했다.

“저쪽.”

두 남자가 역의 끝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가람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옮겼다. 잠깐 표를 끊는 사이 이미 노을은 차갑게 식어 남색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 어두운 하늘에서 가람은 무언가를 발견하긴 했다. 그러나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언뜻 보자면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노란색 별 같았다. 아주 낮게 떠 있는 별 말이다.

잠시 두 남자를 번갈아 본 후 다시 그쪽을 한참 동안 바라본 가람은 그 빛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게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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