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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파인더-28화 (28/256)

28화

가람이 질문하는 순간, 은은하게 빛나고 있던 건물의 마법 문자들이 확 하고 밝아졌다. 따로 전등이 필요 없을 정도다.

갑자기 찾아온 밝음에 잠시 눈을 찌푸렸다 뜬 가람은 그 노란 별의 정체를 깨달았다.

“기차인 것 같군요.”

한 박자 늦게 뮐러가 대답했다. 어느새 역 안의 모든 사람들은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찬탄 어린 시선의 홍수 속에서, 마법 열차는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역 안으로 들어왔다.

요란한 마찰음은 없었다. 소리가 있다면 공기가 미끄러지는 소리 정도이리라. 열차는 허공에 떠 있었기 때문이다.

가람은 문득 뮐러가 왜 그렇게 급하게 자신을 끌고 나왔는지 깨달았다.

확실히 저 매표소의 인파 사이에 있었다면 기차가 들어오는 모습은 볼 수 없었을 테니까.

열차는 역과 닮아 있었다. 돌 같기도 하고, 금속처럼 광택이 나기도 하는 열차는 모서리가 부드러운 사각 형태였다.

차체 전체를 감싼 빛을 내뿜는 문양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푸른색과 황금빛을 오갔다.

그에 따라 열차는 얼음처럼, 황금처럼 모습을 바꾸었다. 역내의 사람들은 모두 말을 잃어버렸다.

가람이 생각했던 이 세계의 ‘열차’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박살 내는 모습이었다.

낡은 나무나 녹슨 쇠 등을 생각했던 가람은 어째서 역에 레일이 없는지 알게 되었다. 열차는 스스로 내뿜는 빛으로 길을 만들고 있었다.

길은 금빛에서 물빛으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여름에서 겨울로 달리는 길이었다.

거대한 열차가 허공에 사뿐하게 떠 있는 모습은 정말 비현실적이었기에, 가람은 열차의 창문이 세 줄로 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3층 열차……?”

마치 3층 버스를 줄줄이 이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열차는 레일도, 바퀴도 없었지만 열차 특유의 여러 객차를 줄줄이 이은 구조만은 똑같았다.

그러나 열차의 창문은 3층이었다. 그 너머로 각각 층의 복도가 보였다.

가람은 4등급 객실의 패를 꺼내 보았다. 3-53. 앞의 3은 분명 층수를 이야기하는 것이리라.

뒤늦게 곳곳에서 잊고 있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앞다투어 열차에 대한 감상을 나누기 시작했다.

슬슬 왁자지껄해지기 시작하는 소란 통 속에서 웨이크가 조용히 말했다.

“출발은 내일이지만, 오늘 바로 들어가서 묵을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입니까?”

뮐러조차도 몰랐다는 얼굴에 가람은 사실 웨이크가 기차에 대해 굉장히 기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했다.

그러나 고삐를 잡은 채 열차를 향해 성큼성큼 걷는 그를 따라잡느라, 생각은 길어지지 않았다.

기차는 여전히 비행하고 있었지만 그 높이는 계단 한 단 정도의 높이로 그리 높지 않았다.

덕분에 세 사람은 별 어려움 없이 기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어떤 지지대도 없이 그저 허공에 떠 있는 기차라 가람은 자신이 발을 디디면 출렁하고 흔들리지 않을까 상상했지만 발아래는 몹시 단단했다.

흡사 그냥 땅을 밟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헷갈리는데, 이걸 기차라고 해야 할지 비행기라고 해야 할지.

“탑승 패를 확인하겠습니다.”

승차하자 문 바로 앞에 서 있던 승무원이 정중하게 막아섰다. 이 기차의 제복인 것 같은 베이지색 옷이 그를 꽤 절도 있어 보이게 만들었다.

가람은 손에 쥐고 있던 패를 내밀며 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기차 내부를 흘끔거렸다.

기차가 아니라 무슨 호텔의 복도 같았다. 횃불도 없어 보이는데 복도는 환했다.

그 빛에 반사되는 내부의 기물들은 무엇 하나 투박한 것이 없었다. 모두 매끄럽고 깨끗했다. 새것이라고 외치듯 반짝반짝 윤이 났다.

“확인되었습니다. 10등석 승객은 말이군요. 말은 복도로 들어올 수 없으니 저희가 동물 전용 칸에 매어 두겠습니다. 뒤의 저 말입니까?”

그 말에 아직 탑승하지 못한 뽀삐가 신기하게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듣기라도 한 모습이었다.

가람이 딱히 대답하지는 않았으나 승무원은 그것만으로 이해하고 다음 절차를 진행했다.

“내리실 때 승무원에게 패를 보여 주면 말을 찾아올 것입니다. 한 시간 전에는 이야기하셔야 합니다. 제 옆의 이 직원이 3-50호부터 3-60호까지 관리를 담당한 직원이니, 차내에서 문제가 발생 시 이 직원에게 이야기하십시오.”

승무원이 턱짓한 직원은 두 명이었다. 하나는 조금 무뚝뚝한 인상의 남자였고, 하나는 싹싹한 얼굴의 여성이었다. 젊지는 않았고, 둘 다 서른 중후반은 되어 보였다.

아가씨보다는 아주머니라는 호칭이 어울릴 것 같은 포근한 인상의 그녀는 가람과 눈이 마주치자 습관처럼 웃으며 싹싹하게 말했다.

“문제뿐만이 아니라 필요하신 것이 생겨도 말씀하세요. 제 이름은 멜니, 이 남자는 필비예요. 필비?”

멜니는 필비가 가람에게 인사를 건네기를 바란 모양이지만 필비는 그대로 무시했다.

“안내하겠습니다.”

필비는 기다리지도 않고 성큼성큼 걸었다. 가람은 급히 뽀삐와 눈인사를 한 후 그를 따라 걸었다.

그런 가람의 뒤를 어느새 뽀삐에게서 등짐을 넘겨받은 웨이크가 막아서듯 뒤따랐다.

등 뒤에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는 것은 계단을 오르며 눈치챈 것이었다.

계단을 오르기 위해 방향을 틀자 돌려진 시야로 방금까지 검표원과 이야기하던 문이 보였다.

탑승할 수 있는 문은 단 하나뿐이었고, 웨이크가 서두르는 덕분에 가람이 1착으로 탑승하긴 했지만 그 뒤로 길게 줄이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본의 아니게 앞을 막고 있었던 셈이다.

“이곳입니다.”

나선형의 계단을 뱅글뱅글 올라 객차 세 번째 방이었다.

금속 문에 3-53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문의 손잡이는 물결이 치는 것 같은 섬세한 세공이 되어 있었는데 그림자와 빛의 방향에 따라 세공된 그것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필비는 그 섬세한 손잡이를 전혀 섬세하지 않게 잡고 덜컥 열었다.

무척 정돈된 냄새가 났다. 문을 열자마자 확 끼쳐 오는 냄새는 매우 차분하고 편안했다.

보송보송하게 말린 시트에서 나는 것 같은 냄새다. 방에는 모두 여섯 개의 침대가 놓여 있었다.

세 개씩 나뉘어서 양쪽 벽에 머리를 대도록 배치된 그 침대는 두꺼운 가죽으로 커튼을 쳐 간이 개인실을 만들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가죽이 충분히 두꺼웠기에 벽이 아쉽지 않을 정도의 격리성을 과시했다.

침대에는 푹신해 보이는 쿠션과 이불이 준비되어 있었고, 그 아래에는 물품을 보관하라는 뜻인지 빼낼 수 있는 바퀴가 달린 트레이가 들어가 있었다.

트레이 위에 물건을 얹고 침대 아래로 쏙 밀면 된다. 부족한 수납공간을 위한 조치인 것 같았다.

침대 옆에 부착된 얼굴만 한 거울과 한쪽에 놓인 6인용 테이블에는 치즈나 빵 따위까지 준비되어 있다.

제법 준비가 세세하다. 사실 별건 없었지만 방이 꽤 작아서 꽉 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식당이나 화장실, 욕실 등의 편의 시설은 1-50실에 있습니다. 그 밖에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이용하실 수 있는 시설은 안내 책자를 참고해 주세요. 그리고 저희에게 용무가 있을 시 저 끈을 당기시면 됩니다. 여러 방에서 한꺼번에 호출되었을 경우에는 조금 늦게 도착할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그리고 이 방에 있는 식료품 등은 모두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것이니 이용하시면 됩니다. 그럼.”

다른 승객의 안내를 위해 필비와 멜니는 서둘러 안내한 후 떠나갔다. 조심스럽게 문이 닫히자 곧 짧은 적막이 이어졌다.

가람은 방을 둘러보다가 적당한 침대 하나를 고르며 웨이크에게 말했다.

“일단 짐부터 정리할까요? 마음에 드는 침대를 고르세요.”

만약 차콘다까지 가야 한다면 8일간 이곳에서 지내야 한다. 도중에 내릴지도 모르지만 미리 좀 정리해 둘 필요성은 있었다.

가람은 웨이크가 든 짐에서 세면도구와 책, 옷 같은 개인용품을 받아 침대 아래 트레이에 차곡차곡 정리했다.

돈주머니는 어떡할까 하다가 그냥 옆구리에 차고 상의로 덮었다.

개어져 있는 이불을 펼쳐 잘 준비까지 마치고, 가죽 커튼도 한 번 쳐 보았다. 커튼을 치자 완전히 별실같이 되어 버린다. 소리 같은 건 차단되지 않겠지만, 훨씬 나았다.

적당히 손을 본 후 가죽 커튼 밖으로 나오니 이미 짐 정리를 끝낸 두 남자가 테이블에 앉아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걸 보니 목이 말라서 가람도 테이블에 앉으며 물 한 잔을 청했다.

그러자 뮐러가 재빨리 따라 주었다. 웨이크는 테이블 위의 음식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주먹만 한 치즈 한 통과 짜리몽땅한 바게트 같은 빵이 네 개, 놋쇠로 된 물 주전자와 컵이 놓여 있다.

“큼, 흠. 배고프시죠? 일단 이거라도 먹어요.”

그렇게 말하며 가람은 물컵을 내려놓고 치즈와 빵을 쪼개어 들었다. 눈치를 보던 두 남자는 가람이 빵을 베어 먹으며 거듭 권하자 마지못해 빵에 손을 대었다.

빵은 별맛이 없었다. 하지만 뭐라도 씹자 일단 허기는 가시는 것 같았다. 가람은 빵을 씹으며 테이블 위의 안내 책자를 펼쳤다.

책자에는 객실에서 주문할 수 있는 요리와 객차의 시설들이 적혀 있었다.

그 밖에 주의 사항도 적혀 있었는데 상식적인 수준이라 그리 중요해 보이는 건 없었다. ‘살인을 하지 마시오.’, ‘실내에서 방뇨하지 마시오.’ 정도의 안내였다.

가람은 잠시 음식 페이지를 바라보다가 묵묵히 앉아 빵만 베어 먹는 두 남자를 바라보았다. 슬슬 배가 고플 시간이다.

“음식도 주문할 수 있네요. 뭔가 주문할까요? 사양하지 마시구요. 흠, 구운 필록스? 이게 뭐지?”

“남쪽에서 산다는 털이 없는 염소입니다. 맛이 그리 나쁘지 않죠.”

치즈를 씹던 뮐러가 대답했다.

“그럼 저는 이걸로 할래요. 두 분도 딱히 급한 일이 없으시면 식사나 하면서 이야기 좀 해요. 술도 좀 시키는 게 좋겠어요.”

가람은 사실 걸으며 두 남자와 많은 대화를 나눌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게르하론에 일찍 도착하기 위해 걸음을 서두르면서 무너졌다.

오르막길이 계속되거나, 아니면 돌무더기를 넘어가거나 하는 식의 길은 마치 험하지 않은 산을 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두 시간도 아니고 새벽부터 노을이 질 때까지 계속해서 그런 길을 걸었으니 입에서 단내가 날 지경이다.

종국에는 그 단내 나는 숨을 삼키기에 급급했다. 말을 하는 것이 생각보다 많은 체력을 소모한다는 것을 가람은 이번 기회에 절절히 깨달았다.

의자에 앉으니 그제야 다리가 풀릴 듯이 후들거려서, 가람은 다음 날의 근육통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만약 오늘 기차를 타지 않았다면 꽤 고생해야 했으리라. 뽀삐의 등에 타거나, 걸음을 늦추는 식으로 말이다.

“골랐습니다. 시킬까요?”

가람은 두 남자가 고른 것을 바라보았지만 이름만 봐서는 무슨 음식인지 알 수가 없었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자 뮐러가 줄을 잡아당겨 승무원을 호출했다.

마침 근처에 있었던 모양인지 줄을 당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승무원이 문을 발칵 열고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예. 지금 주문 가능합니까?”

이런 일에 나서는 것은 늘 뮐러였다. 문가로 다가가 승무원을 상대하는 그의 등을 가람이 바라보았다.

“피곤합니까?”

가만히 뮐러를 보고 있자니 웨이크가 불쑥 질문했다. 가람은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가람의 눈이 느릿하게 깜빡여진 후 엷게 웃었다.

“조금요.”

사실 많이 피곤했다. 앉고 나니 꾹꾹 눌러두었던 피로가 물밀듯 밀려왔다.

하지만 자기에는 꽤 이른 시간이다. 가람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아직 7시가 조금 지났을 뿐이다.

“그래도 자긴 좀 이른 시간이잖아요. 웨이크 씨는 피곤하지 않나요?”

“웨이크라고 부르는 걸로 충분합니다. 저는 별로 피곤하지 않습니다.”

한창 사냥꾼으로 살 때에는 3일에 한 번 30분씩 선잠을 자며 버틴 적도 있었다. 와이번은 약삭빠르고 민감한 짐승이다.

신경 줄을 팽팽하게 당긴 채로 긴장을 풀지 않아야 한다. 한 자리에서 이틀을 있어야 할 때도 있고, 물 위에서 잠을 자야 할 때도 있다.

산에 비가 와서 젖은 나무로 가득할 때면 익지 않은 고기를 먹어야 할 때도 있었다.

식량이 떨어지면 독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삼켜야 한다.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 가람과 함께 하는 여행은 유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군요. 웨이크도 가람이라고 부르세요.”

사실 두 남자는 의도적으로 가람에 대한 호칭을 생략하고 있었다. 노예인 두 남자가 가람에게 붙여야 하는 호칭은 당연히 ‘주인님’이다.

하지만 웨이크가 보기에 가람은 그런 호칭에 자신들 만큼이나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살면서 노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노예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만약 안다면 이런 식으로 대할 수는 없었다. 기간 노예라고 해도 노예는 노예이다.

험하게 다루는 곳에서는 계약 기간이 끝날 때 즈음에는 거의 병신으로 만들어 두기도 했다.

“무슨 재미있는 대화 중이십니까?”

어느새 주문을 마친 뮐러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아, 호칭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뮐러 씨도 저를 가람이라고 부르세요.”

“그렇군요. 가람도 저를 뮐러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뮐러는 말을 마치고 빙긋 웃었다. 호의 어린 태도에 가람도 마주 웃어 주었다. 웨이크는 여전히 표정 없는 얼굴로 둘을 번갈아 보다가 빵만 덥석 물었다.

“그런데 아직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저는 가람, 스물다섯이에요. 여러분을 구입한 이유는, 제가 뭘 찾아다니고 있는데 혼자 다니기엔 좀 위험한 것 같아서요. 뮐러의 여행 노하우와 웨이크의 검 솜씨에 많이 기대하고 있어요.”

예상한 것보다 훨씬 많은 나이였다. 하긴, 혼자 이 낯선 대륙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스물은 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체구가 작아서 그런지 적게 보면 십 대 중반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다.

먼저 놀람을 수습한 것은 뮐러였다. 가람의 소개가 끝나자 그가 재빨리 차례를 이어받았다.

“제 이름은 아실 테니, 스물아홉 물 마법사입니다. 연구비와 여행비를 빌리느라 빚을 많이 졌는데, 그걸 갚기 위해 저를 팔았습니다. 안 그러면 변사체로 만들어 준다고 협박하더라고요. 마법사라고 해도 물 화살 세 개를 만들면 지쳐 버리는지라, 도망도 못 가고. 하하. 어디 귀족 가문에 팔려 가서 혹사당하거나 실험체가 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입니다.”

웃으면서 할 만한 이야기가 아닌 내용이었지만 뮐러는 말을 마치며 다시 허허롭게 웃었다. 가람은 조금 질린 느낌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웨이크와 눈이 마주쳤다.

“28세, 전직 사냥꾼입니다. 원래 사냥터였던 베녹사스에 용이 둥지를 트는 바람에 사냥터를 잃고 돈을 마련하기 위해 노예가 되었습니다.”

“용이요?”

“네. 독룡 다라즈녹이라고 하더군요. 화룡 카마르혼과의 영역 싸움에서 패해 그곳까지 왔다고 합니다. 화가 엄청나게 났는지, 하루 만에 놈이 자리 잡은 일대가 새카맣게 녹아내리더군요. 가까이 있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웨이크는 마치 날씨라도 이야기하듯 담담하게 말했다. 늘 죽음을 지척에 두고 살아왔던 사람 특유의 무심한 말투에 가람은 잠시 할 말을 잊어버렸다.

짧은 적막이 내려앉자 기다렸다는 듯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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