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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파인더-33화 (33/256)

33화

보통 이런 경우는 거절하는 것이 낫지만, 남자의 부러진 오른팔이 마음에 걸렸다.

발달한 근육의 형태로 보아 제법 뛰어난 검사임이 분명하다. 제때 치료하지 못하면 두 번 다시 오른팔로 검을 휘두를 수 없게 될 테니 가볍게 거절할 수 없었다.

그 자신이 검사인지라 웨이크는 남자의 부상이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검을 잃은 검사는 정말로 슬픈 존재다.

“위험한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꽤 부유해 보이는 데다 도둑이나 강도처럼 보이지도 않고, 꿍꿍이가 있는 것 같지도 않더군요. 그나마 위험해 보이는 게 남자가 검사라는 점인데, 팔다리가 부러졌으니.”

“그럼 웨이크는 침대를 빌려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요?”

“충분히 조심한다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귀중품은 잘 숨기고요.”

“그럼, 빌려드려요.”

신중한 웨이크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괜찮겠지. 가람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가람의 마음도 도와주는 쪽으로 기울고 있던 참이었다.

“만일의 상황이라는 것도 있으니, 제 옆 침대를 빌려주는 게 좋겠군요.”

웨이크는 가람이 돈주머니를 침대 아래에 숨기는 것을 기다렸다가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환자를 들어다가 자신의 옆 침대에 눕혔다.

남편을 눕히고 한숨 돌린 여자는 그제야 이 방 안에 웨이크 외의 숨어 있던 가람과, 벽에 기대어 책을 읽느라 가죽 커튼에 가려 거의 보이지 않던 뮐러를 발견했다.

“아, 저는 데이지예요. 침대를 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가람이에요, 저는 뮐러입니다 하는 등의 인사말이 오갔다. 가람은 지친 그녀를 위해 기차 내에 구비된 꽃잎차를 한잔 우려 건네었다. 슬슬 날씨가 추워지자 침대차 이용객을 위해 승무원이 제공한 것이었다.

여자는 차를 받아 들고 마시는 대신, 손에 쥐고 온기로 손을 녹였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시선은 환자를 향하고 있었다.

“저분은?”

“제 남편이에요.”

남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긴 했지만 아까보다 혈색이 돈다. 복도보다 훈훈한 방 안의 공기에 데이지의 뺨도 달아올랐다.

그녀는 달아오른 뺨에 아직 차가운 손등을 가져다 대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음이 조금 가라앉고 나자 너무 급해서 자초지종도 설명하지 않았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저는 차콘다와 에르노닐을 오가며 가죽과 향신료를 거래하는 상인이에요.”

“저흰 여행자예요. 남편분은 어쩌다가?”

가람의 질문에 데이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이가 좀 다혈질이라, 기차에서 시비가 붙고 말았어요.”

“아, 그럼 싸우다가?”

데이지는 고개를 저었다.

“트라키아 공주님이, 자는데 시끄럽다며…….”

사건은 이러했다. 데이지의 남편인 조드릭은 푸른 매 기사단 출신의 기사였다.

그런데 기차에 마침 ‘푸른 매’ 기사단과 적대적인 ‘백 사자’ 기사단 출신의 남자가 타고 있었고, 그가 시비를 걸어오자 단번에 드잡이질에 들어갔다고 한다.

“아마 침대차를 예약하지 못해서 남편의 기분이 상해 있었나 봐요. 저희는 에르노닐에서 탑승했는데, 침대차가 남아 있지 않았거든요.”

“겨우 그런 일로?”

“이이가 좀 다혈질인 데다, 백 사자 출신의 기사가 좀 빈정거리는 바람에…….”

기사단을 나와서 하는 일이 상인 짓이냐고 했어요. 라며 데이지는 작게 덧붙였다. 그리고 그 뒤는 안 봐도 뻔하다.

승객들이 웅성이고 큰 소리가 나자 트라키아 공주가 잠에서 깨어났겠지. 가람의 예상대로, 몹시 언짢은 기분으로 일어난 트라키아 공주는 마법 열차 내부는 크페타인 영지라며 사이좋게 팔다리를 분질러 주었다고 한다.

“대검의 힐트로 팔다리를 빻아 부러뜨리면서, 시끄럽게 비명 지르면 나머지 한 짝도 부러뜨려 주겠다고 했어요. 정말, 너무 무서웠어요.”

그 후 트라키아는 다시 잠들었고, 승객들은 평화를 되찾았다. 백 사자 기사는 침대차가 있는 모양인지 승무원과 함께 사라졌다.

공포에 질려 있던 그녀는 남편을 끌고 의무실로 향했다고 한다.

그러나 의무실에는 침대가 없었고, 다리가 부러진 남편을 의자에 앉혀 둘 수가 없어서 의무실에서 치료만 받은 상태로 남는 침대를 수소문했다고 한다.

“이 방이 침대가 남은 유일한 방이었어요. 안 받아 주셨으면, 제 남편은 앉은 채로 앓다가 죽었을지도 몰라요. 제 고마운 마음을 다 표현할 수가 없네요. 사례라도 하게 해 주세요. 목숨의 은인이세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50골드 동전을 꺼내었다. 가람은 손사래 치며 거절했지만 이러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며 손에 쥐여 주는 터라 떨떠름하게 동전을 받았다.

이런 비싼 기차를 탈 정도라 씀씀이도 크구나. 그나저나 트라키아. 또 트라키아다. 해결사인지, 아니면 문제를 만드는 쪽인지 알 수가 없다.

“으으…….”

데이지의 남편이 낮은 신음을 흘리자 그녀는 깜짝 놀라 침댓가로 다가섰다. 약 기운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다리뼈가 으깨어지다시피 했으니 고통이 보통이 아니겠지. 고열로 달아오른 얼굴의 입술이 버석하게 말라 있었다.

땀에 젖은 그의 이마를 젖은 수건으로 토닥이던 데이지가 면목이 없다는 얼굴로 슬쩍 가람을 돌아보았다.

“저기,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여기서 머물면서 남편을 돌보아도 될까요? 도저히 제 좌석에 앉아 기다리지 못할 것 같아요.”

충분히 이해할 만한 부탁이었기에 가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흘긋 본 웨이크의 얼굴이 무덤덤한 것을 보니 별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낯선 타인이 갑자기 방에 머물러서 조금 불편하긴 하겠지만, 그동안 방에서 뮐러 등과 지내며 타인과 함께 생활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익숙해진 터라 이제 와서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다만, 밤마다 신음하는 병자의 목소리는 괴로운 것이었다.

데이지는 남편의 맞은편 침대에서 머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의 간호를 했다.

마법 열차에 구비된 진통제는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고, 약효도 매우 짧아 남편은 쉬지 않고 고통을 호소했다.

그녀는 잠들 만하면 깨어나 그의 몸을 닦아 주고, 붕대를 갈고, 약초를 갈았다. 남편의 팔이 영영 못 쓰게 될까 봐 여간 걱정이 아닌지 뺨이 빠르게 여위어 갔다.

수면 부족으로 달달 떨리는 데이지의 손을 본 가람은 결국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 이전에도 돕겠다고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더 신세를 질 수 없다며 데이지는 한사코 사양했고, 밤에 끙끙대는 남편의 신음이 가람과 그 일행의 수면을 방해할까 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가람의 잠을 방해한 것은 남편의 신음이 아니라 데이지의 숨죽인 흐느낌이었다.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나, 데이지는 3일 내내 깊은 밤마다 흐끅이며 작게 울었다. 처음에는 딸꾹질인 줄 알았지만, 이틀째부터는 가람도 모를 수가 없었다.

“여기 부목 이렇게 잡고 갈면 되는 거죠?”

데이지는 멍한 눈으로 가람을 바라보았다. 잠을 자지 못한 눈 밑이 거뭇하다. 퀭한 얼굴을 보니 상황이 빨리 입력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가람은 환자의 팔을 최대한 신경 쓰며 붕대를 풀기 시작했다. 그동안 어깨너머로 본 것이 열 번도 넘으니 거침이 없다.

데이지는 가람이 붕대를 고정한 핀을 뽑고 두엇 바퀴 풀어낼 때까지 멍하니 보고 있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 주지 않으셔도 되는데…….”

“그러다가 쓰러지시겠어요.”

가람은 빙긋 웃고는 ‘이렇게 맞죠?’라고 거듭 확인하며 붕대를 풀었다. 이어 그녀가 소독을 마친 뒤 다시 붕대를 감는 동안 쩔쩔매는 데이지를 대신해 웨이크가 다가섰다.

“부목을 좀 더 단단히 잡고 감으셔야 합니다.”

머리 뒤로 그림자가 진다 했더니 웨이크였다. 관록이 엿보이는 손동작으로 슥슥 부목을 댄 웨이크는 순식간에 남자의 팔을 붕대로 감았다.

그리고 다음 부분은 가람에게 맡긴다는 듯 붕대의 나머지를 내밀었다.

가람은 막상 툭 부어오른 팔을 보자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으나, 꾹 참고 붕대를 감았다. 환자가 움찔거릴 때마다 자신의 팔이 다 아픈 것 같았다.

“잘하셨습니다.”

그 이후로도 가람은 여러 번 붕대를 갈았다. 그러면서 상처에도 익숙해지고 붕대를 감는 손도 능숙해져 갔다.

차콘다에 도착할 무렵에는 완전히 손에 익어서, 웨이크 못지않은 실력을 자랑했다.

가람이 대신 간호를 한 덕분에 잠을 잘 수 있었던 데이지의 뺨에도 혈색이 돌았다.

“이거, 가지세요.”

다음 날, 차콘다 역에 도착하자 이번에 내린다는 가람의 말에 데이지는 커다란 가방을 내밀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제법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죽 가방은 굉장히 묵직해 보였다.

“이게 뭔가요?”

“옷이에요. 저와 제 남편의 옷. 남편의 몸이 이렇게 되었으니, 다시 에르노닐로 돌아갈 생각이에요. 가람 씨는 옷을 준비하지 않으신 것 같던데, 기차 안이라 이 정도지 밖은 굉장히 추워요.”

사실 기차 안도 꽤 추웠다. 초겨울 정도는 되는 온도였다. 그러고 보니 단 한 번도 기차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던 터라 가람은 밖의 온도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이틀 전부터 하얗게 뒤덮이기 시작한 풍경에 추울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퉁퉁한 옷 가방을 그대로 받기가 미안해서 가람은 값이라도 쳐줄까 싶어 금화 주머니를 꺼내었다.

그런 가람을 단호하게 만류하며 데이지는 아예 옷 가방을 풀어서 옷 하나를 걸쳐 주었다. 무슨 가죽으로 만들었는지 모를 부드러운 털가죽 상의였다.

“이거 이렇게 입고, 여기 이 망토를 두르고…….”

눈 깜짝할 사이에 가람은 두꺼운 옷을 겹겹이 입고 말았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움직이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 데이지는 마지막으로 털모자까지 씌워 준 후 빙긋 웃었다.

“옷 크기가 맞아서 다행이네요. 조금 큰 감이 있긴 하지만, 거기 두 분도 이것 입으세요. 제 남편의 옷이에요.”

가람과는 달리 두 사람은 묵묵히 데이지가 내민 옷에 팔을 꿰었다. 온통 털가죽으로 만든 옷이라, 다 입고 나자 무슨 짐승 세 마리가 서 있는 것 같았다.

가죽 특유의 쾌쾌한 냄새에 가람이 인상을 쓰지 않도록 조심하며 어색하게 감사와 작별 인사를 건네었다.

“고마워요. 잘 입을게요. 음, 남편분도 쾌차하시길 바랄게요.”

마지막 날까지 눈을 뜨지 못하는 데이지의 남편이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가람은 방을 나섰다. 아까부터 승무원이 방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승무원을 따라 기차를 나선 가람은 데이지의 호의에 가슴 깊이 감사했다.

눈보라도 치지 않고, 바람도 그리 불지 않는데 눈을 뜨기가 힘들 정도로 추웠다.

털가죽에 푹 파묻힌 데다 그나마 드러나는 얼굴도 깊은 후드 속에 있는데도 귀가 떨어질 것 같고 머리가 얼어붙는 것처럼 추웠다.

매서운 공기에 숨을 쉴 때마다 콧속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기차 안에서 입고 있던 복장 그대로 나섰더라면 순식간에 동사했을지도 모른다.

“추워요.”

이를 악문 가람의 말에 두 남자와 한 마리 말은 묵묵히 동의했다.

Chapter 4

차콘다의 첫인상은 넋이 나가도록 추운 날씨였다.

눈알이 얼어붙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추워서, 혹독하다는 말을 그대로 체감하게 만들었다.

세 사람은 당혹스러운 추위에 그저 기차를 내려 멍하니 마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냉기가 몸을 유린하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나마 이런 경험이 많은 웨이크가 재빨리 그저 추워하고 있는 두 사람과 한 마리를 이끌었다.

“이쪽입니다.”

차콘다의 역은 게르하론과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없는 하얀 건물이었다. 생긴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가람이 있던 세계처럼 역 주변에 이것저것 생기게 되겠지.

가람은 매우 북적이는 차콘다를 상상해 보다가 눈앞에 보이는 지금의 차콘다와의 괴리감에 그 생각을 지워 버렸다.

기차역 밖의 마을은 마을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초라했다.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역을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보이는 건물은 단 일곱 개. 전체적으로 집이 매우 크긴 했지만, 건물은 단 일곱 개밖에 없었다.

마을이라기보다 임시 캠프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나마 건물들의 초라한 외관을 흰 눈이 덮고 있어서 미관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으으, 여관은 어디죠?”

가람이 딱딱 부딪히는 이를 악물며 질문했다. 하지만 물을 필요도 없었다.

바로 보이는 일곱 개의 건물 중 하나에서 술 취한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뛰쳐나왔기 때문이다.

제법 커다란 체구의 남자는 코가 새빨개진 얼굴로 북부의 것으로 보이는 노래를 부르며 일곱 개의 집 중 다른 집으로 들어갔다.

털가죽을 겹겹이 두른 모양새라 가람은 곰이 한 마리 튀어나온 줄 알았다.

“저쪽입니다.”

가람은 몸을 감싸 안고 발을 바쁘게 놀렸다. 데이지가 선물해 준 옷 중에 신발은 없었기 때문에 발이 얼얼했다.

어쩌면 이미 얼어붙었을지도 모른다. 추워도 너무 추웠다. 한국의 겨울은 이 추위에 비하면 가소로운 수준이었다.

춥다 못해서 아팠다. 뺨이 당기며 짱짱하게 얼어붙는 느낌이 들었다. 가람은 손으로 연신 뺨을 문지르며 이 말도 안 되는 추위에 놀란 가슴을 달래었다.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벌써 등에 땀이 났다. 가죽옷은 굉장히 무거워서, 체력을 길러 두지 않았으면 입고 걷는 것만으로 금세 지쳐 버렸을 것 같았다.

그래도 땀이 나니 추위는 한결 나아져, 주점에 도착할 때쯤에는 이 욕 나오게 추운 날씨를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마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주점입니다. 건물이 큰 걸 보니 여관도 겸업하는 모양이군요.”

뮐러가 넌지시 말했으나 가람은 묵묵히 여관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엄습하는 지독한 악취에 코를 부여잡았다.

“욱.”

무언가가 속에서 울컥 비집고 올라와서 가람은 필사적으로 그걸 삼켜 내었다.

썩은 걸레와 음식물 쓰레기, 토사물과 대소변을 섞은 것 같은 구역질 나는 냄새가 여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커다랗게 뜨인 눈에 설핏 눈물이 어렸다. 어찌나 냄새가 지독한지 눈이 아려 올 지경이었다.

뒤의 두 사람도 상상을 초월하는 악취에 조금 놀란 듯했으나 금세 적응하고 여관 안쪽을 둘러보았다.

스무 개의 탁자와 긴 바가 놓여 있는 구조는 통상적인 펍과 그렇게 다르지 않았으나, 손님들이 모두 곰과 같은 형상의 사람들이라는 건 조금 특이했다.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엄청나게 장신이라 처음에는 여자와 남자가 섞여 앉아 있는지도 몰랐다.

손님들은 남녀 가리지 않고 모두 허리나 등에 제각각 메이스나 모닝 스타, 커다란 도끼 같은 흉흉한 물건을 차고 있었는데, 간혹 검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긴 했지만 이미 검이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의 대검밖에 없었다.

“어서 오세요. 세 분입니까?”

멍하니 살벌한 손님들을 둘러보는데, 웬 곰 같은 남자가 불쑥 인사를 건네어 왔다.

남자는 가람이 고개를 꺾어 올려다보아야 할 정도로 커다랬다. 손등에는 털이 부숭부숭 나 있었는데, 무슨 손이 커다란 나무둥치 같았다.

얼굴만 보면 행인 여럿 털어 먹었을 것 같은 흉악범인데, 미묘하게 예의가 발라서 가람은 한참 뒤에 그 남자의 정체를 깨달았다. 당연하겠지만, 주점의 주인이었다.

“아, 네. 밖에 말도 있어요. 검은 흑마예요.”

“말은 하루 맡기는 데 20실버입니다.”

비싸다. 베록과 비교하면 엄청 비싼 가격이었다. 베록에서 말을 하루 먹이는 데, 자세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1실버가 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후드 밖으로 나온 가람의 떨떠름한 입매를 본 여관 주인이 미간을 모으더니 나직하게 설명했다.

“비싸지만, 여기서는 뭐든 남부보다 비싸요. 손님의 말이 눈을 먹는다면 몰라도, 여기서는 자라지도 않는 야채를 먹으니.”

수입해 오는 야채가 매우 비싸니, 그만큼 값을 내라는 뜻이다. 남부에서 오는 손님과 곧장 실랑이가 있었던지 주인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가람은 1골드를 내밀고 거슬러 주려는 주인에게 재빨리 덧붙였다.

“주스 세 잔과 뭐라도 좋으니 빨리 되는 따듯한 음식 3인분 주세요.”

“주스 같은 건 없소.”

주스라는 것은 신선한 과일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과일은커녕 풀 한 포기 살아남기 힘들어 보이는 이 기후에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럼 뭐가 있죠?”

“술밖에.”

대낮부터 마시는 술이라는 건 참 어색한 것이었지만 몸을 데우기에는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가람이 주변을 둘러보니 탁자마다 술로 보이는 것이 빠지지 않고 놓여 있었다.

“그럼 술로 주세요.”

“술은 뭘로?”

“대충 1골드에 맞춰서 주세요.”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마구간지기로 보이는 남자에게 손짓을 했다.

마구간지기가 문을 열고 나가서 뽀삐의 고삐를 잡고 이 말이 맞는지 확인하더니 곧 문을 닫고 사라졌다.

밀려 들어온 냉기에 주점 안의 시선이 모였다가 다시 흩어졌다.

“아무 데나 앉으시오.”

주인은 비어 있는 근처의 테이블 하나를 적당히 손짓한 후 카운터로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가람은 그가 가리킨 곳에 앉았다. 앉고 보니 주변 사람들의 덩치가 확 실감이 나서, 커다란 곰들 틈에 앉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가람보다 머리 두 개 정도는 컸고, 일행 중 가장 장신인 웨이크보다도 머리 하나는 컸다.

간혹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리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자리에 앉자 웨이크가 기다렸다는 듯 질문했다.

“더 가야 합니까?”

웨이크가 묻는 순간 주점의 문이 열리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들이닥쳤다. 춥다며 야단법석을 떠는 것이 아마 기차에서 내린 사람들인가 보다. 그러나 주점은 그중 절반밖에 수용할 수 없었다.

남은 테이블이 없자,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은 서서 술을 마셨다. 그 소란스러움에 가람은 웨이크의 말을 잠시 놓쳤다.

“아, 뭐라고 하셨죠?”

“목적지까지 아직 많이 남았습니까?”

가람은 팔 부분의 가죽옷을 끌어 올려 손등의 문양을 확인했다.

아주 약간 바늘이 줄어들긴 했으나 여전히 북쪽을 가리키고 있다. 근처에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직 북쪽을 가리키고 있어요. 꽤 멀어 보여요.”

“그러면 크페타인까지 가야겠군요.”

“3일 정도 걸립니다.”

뮐러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 말에 가람은 걱정스러웠다.

“노숙을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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