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스파인더-42화 (42/256)

42화

걸렸구나. 상인은 솔깃한 얼굴로 다가앉는 가람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상인의 매처럼 빛나는 눈이 슬쩍 낡은 모자챙 안으로 사라진다.

뮐러는 그 모습을 보며 가람을 말릴까 하다가 내버려 두기로 했다. 상대는 바랄라인의 명물, 과일 포션 상인이다.

“손님 많이 다치셨지 않습니까?”

“그렇죠.”

“제가 파는 이 포션들은 세기에 다시없을 명약입니다. 힐링 포션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아뇨.”

“제 고조할아버지께서는 모험가셨습니다. 아주아주 뛰어난 모험가셨죠. 그분이 가 보지 않은 곳이란 없습니다. 바다의 황금 도시, 드래곤의 레어, 하늘의 신의 나라까지! 이 포션은 바로 그 신의 나라에서 가져온 겁니다. 세상에 단 다섯 개뿐인 비약이죠. 원래는 가문 대대로 물려받던 가보였으나, 제 대에서 가세가 기울어 이렇게 눈물을 머금고 팔러 나온 것입니다.”

상인은 이제 완전히 스스로의 이야기에 도취되었다. 뮐러는 오랜만에 보는 풍경에 웃음을 참으며 상인의 연극을 관람했다.

마지막에는 눈물까지 머금는 것이, 과연 바랄라인의 상인다운 자세다.

아픈 가람에게는 솔깃한 이야기라서 그녀는 땅에 내려놓은 다섯 병의 세기의 비약을 바라보았다.

낡은 유리병은 가만히 보면 제법 몇 대에 걸쳐 보관되었던 가보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포션을 마시고 자고 일어나면, 아픈 곳이 싸악 나아 있습니다. 단, 반드시 자고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잠든 사이 신께서 몸을 어루만져 주거든요. 이 놀라운 포션이 한 병에 단돈 10골드!”

반드시 자야 하는 이유에는 그래야 그사이 상인이 모습을 감추고 도망칠 수 있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건 손님이 알 필요 없는 이야기다.

“정말요?”

가람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뮐러였다. 그는 그녀의 귀에 대고 짧게 속삭였다. ‘딸기주스입니다.’ 가람이 깜짝 놀라 반문했다.

“딸기주스라고요?”

상인이 갑자기 험악한 얼굴로 뮐러를 노려보았다. 어중이떠중이를 속여 먹나 했더니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놈이 방해를 한다.

장사를 망치는 뮐러를 노려보며 상인이 외쳤다.

“딸기주스라니! 우리 가문의 가보를 무시하는 거요!”

주변의 상인―이라고 쓰고 사기꾼이라고 읽는다―들이 뮐러를 노려보기 시작한다.

사나운 시선의 폭풍에 휘말린 그는 잠시 당황하다가 멋쩍게 웃어 버렸다.

그 분위기에 가람은 상인의 말이 거짓이며, 병에 든 것이 비약이 아닌 딸기주스임을 눈치챘지만 일부러 뮐러를 타박하듯 말했다.

“그래도 먹어 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죠! 비약일지도 모르잖아요? 한 병 주세요. 아니, 다 주세요.”

가람은 빙그레 웃으며 10골드 금화 다섯 개를 꺼내어 상인에게 건네었다.

상인은 가람이 세기의 다시없을 호구인가 하고 생각하다가 조용히 웃는 눈을 마주치고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소란에 휘말리기 싫은 것이다. 뭐 자신이야 돈만 벌면 그만이니.

“어디서 가짜 약이라도 산 모양이지요. 이 비약을 사시는 예쁜 아가씨는 행운이신 겁니다.”

상인은 일부러 장단을 맞춰 주며 포션과 금화를 맞바꾸었다. 가람은 포션을 챙겨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잠깐 사이 한 상인 앞에 서 있던 웨이크를 잡아끌었다.

웨이크는 상인의 언변에 넘어가 주먹만 한 조잡한 목각 인형을 2골드나 주고 사기 직전이었다.

“웨이크, 저게 마음에 들었어요?”

가람이 묻자 웨이크가 담담히 대답했다.

“몸에 지니면 액을 막아 준다고 하더군요.”

가람은 웨이크가 들고 있던 목각 인형을 떠올렸다. 그것은 커다란 입을 가진 대충 깎은 배불뚝이 사람상이었다.

괴상한 형태에 조악함까지 더해져 아무리 봐도 액을 막아 주기는커녕 불러올 것 같은데. 차라리 미스릴 주화를 몸에 지니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을까?

역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바닥에 깔아 둔 상인들의 조잡한 물건을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고, 마찬가지로 조심하며 걷는 앞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길에서 일행을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라, 사람들은 모두 서로의 손이나 옷을 꽉 붙잡고 조심조심 이동하고 있었다.

잠깐 사이 앞에 걷던 사람이 그릇 상인의 그릇을 밟아 깨어 버린다. 실랑이를 하는 틈에 가람 일행은 재빨리 앞으로 나서서 역을 빠져나왔다.

그릇을 밟아 깨는 사람도 있고, 술 그릇이나 먹을 것을 밟거나, 쌓아 둔 오리 알 위로 넘어져 난황 범벅이 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그 주위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가람처럼 그 틈에 후다닥 제 잇속을 챙겨 역에서 벗어나는 사람도 많았다.

역을 빠져나오자 그제야 숨통이 트인 가람이 공기를 길게 들이마셨다. 온갖 냄새가 들어차 있던 안과 달리 밖에는 제법 시원 상쾌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그런 가람의 앞에 작은 손이 들이밀어진다. 앙상하고 지저분한 손이다.

손의 주인은 이제 네 살은 되었나 싶은 작은 아이였다. 아이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도와주세요. 나으리.”

누군가 이 대사를 교육시킨 것이 틀림없다. 말에는 감정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가람은 망설이다가 주머니에서 은전 하나를 꺼내었다. 쉽게 적선을 하는 성격은 아니었으나 저 빼빼 마른 팔을 보고 그냥 지나가자니 대단히 나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라 가슴께가 따끔따끔했다.

가람은 작은 단위의 돈을 넣어 두는 주머니에서 손톱만 한 은화 한 닢을 꺼내어 아이의 손에 쥐여 주었다. 1실버. 이 금액이면 괜찮은 식사를 살 수 있으리라.

그러나 걸음을 옮기려는 가람에게 아이는 다시 매달려 왔다. 나으리 나으리 하고 매달리는 손이 순식간에 두 쌍, 네 쌍으로 불어난다.

잔뜩 달라붙은 앙상한 손들이 기아를 호소하며 매달린다. 앙상한 팔과 툭 튀어나온 눈이 굶주린 생활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무시하는 게 좋습니다.”

뮐러가 조언했으나 가람은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돈을 받는 아이를 목격한 거지들은 한 푼이라도 받지 않고서는 비켜 주지 않겠다는 기세로 길을 막아섰다.

가람은 걸어가며 내밀어진 손바닥 위에 일일이 1실버 은화를 쥐여 주었다. 은화가 다 떨어지고 빈 주머니가 될 때까지 적선을 했다.

그녀를 부축하던 뮐러는 아까운 마음에 그 금액을 다 세었다. 정확히 42실버. 통행세치고는 과한 금액이다.

황금의 도시 바랄라인, 뮐러는 찬란한 미사여구로 이 도시를 묘사했지만, 가람이 느낀 이 도시의 첫인상은 아름답다거나 웅장하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거지가 아주 많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지들의 손에 돈을 쥐여 주느라 가람은 황금으로 만든 황성이나 잘 닦인 도로, 화려한 화단을 거의 감상하지 못했다.

역을 떠나 금화 한 닢에 도착할 때까지 가람은 열 번이 넘는 적선을 했다. 역을 벗어나자 이번에는 어른 거지들이 자못 흉흉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 기세는 구걸이 아니라 통행세 갈취에 가까웠지만 피곤하고 지친 마음에 가람은 달라는 대로 동전을 쥐여 주었다.

동전에는 5실버, 10실버 동전이 섞여 있었지만 금화만 아니면 되었다. 어른 거지들은 은화를 쥐고 만족하며 물러났다.

여관에 도착할 때쯤 되자 은화와 동화 주머니가 눈에 띄게 가벼워졌다.

그래도 드디어 도착했다는 생각에 가람은 감개무량한 기분으로 여관을 올려다보았다. 그리 멀지 않았던 거리인데 천 리 길을 온 것처럼 고단하다.

금화 한 닢은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건물이었다. 주위의 키 작은 건물들을 압도하는 8층 높이의 위엄이나 마치 예술품처럼 조각한 간판이 위풍당당하다.

간판의 테두리는 구리를 둘렀고, 중앙에는 황동으로 커다란 금화를 만들어 박아 놓았다. 그 황동 금화는 화창한 날씨에 힘입어 찬란하게 빛났다.

“드디어 도착했네요.”

가람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며 뮐러는 주변을 살폈다. 여관 앞에서 호객을 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분명 금화 한 닢의 점원인데 그들은 입구에 선 가람 일행을 그저 무시하고 지나쳤다. 대신 지나는 길손들의 옷자락을 잡으며 호객하기에 바쁘다.

이렇게 티가 나게 여관 앞에 말까지 데리고 서 있는데 손님임을 알아보지 못하다니.

그러나 뮐러는 곧 자신들의 옷차림에서 이유를 깨달았다. 북부의 노린내 나는 털가죽 옷을 걸친 그들은 향기로운 고급 여관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대로 어딘가의 곰 굴에서 잠을 청하면 딱일 것 같다.

뮐러는 손톱만 한 금화 하나를 꺼내 들었다. 1골드 금화다. 금화 중에 가장 작은 이것은 엄지손톱보다 조금 작으며 두께 또한 손톱과 비슷하다.

이로 힘주어 깨물면 약간 찌그러질 정도로 얇고 작다. 동전이라기보다 금 조각에 가까운 모습이다.

그러나 그 작은 금전에서 냄새라도 나는지 뮐러가 그것을 꺼내 들자 주위 거지들의 시선이 확 당겨 왔다.

“우리는 금화 한 닢에 온 손님이다. 제일 빨리 행동하는 녀석이 이걸 가지게 될 거다.”

뮐러가 제법 오만한 척 말했고, 효과는 뛰어났다. 대번에 표정을 바꾸고 달려드는 점원 중 가장 행동이 빨랐던 소년이 싹싹하게 달라붙는다.

꼬리가 달려 있었다면 분명 바람이 불도록 흔들고 있었을 모양새였다.

“손님, 말고삐를 이리 주시지요. 안내하겠습니다.”

손바닥을 비비며 따라붙는 소년의 시선이 금화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가람이 내미는 고삐를 건성으로 받아 들며 소년은 애타게 금화를 갈망했다.

그러나 뮐러는 약 올리듯 금화를 튕겨 보인 후 주머니에 챙겼다.

“농담이었다.”

소년은 세상의 모든 기쁨을 빼앗긴 사람처럼 금세 시들었다. 추욱 늘어진 소년이 터덜터덜 걸음을 옮긴다. ‘이쪽으로요.’ 하고 말하는 말에도 힘이 없다.

클클 웃는 뮐러를 보며 가람은 한숨지었다.

“재밌어요?”

가람의 질문에 뮐러가 웨이크를 부축하며 대답했다.

“어린것들이 벌써부터 사람 차림새로 차별하는 게 괘씸하지 않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웨이크?”

대답이 없다.

웨이크는 생전 처음 와 보는 제국의 수도가 신기한지 아까부터 말없이 사방을 살피기에 바빴다.

바람직한 시골 촌놈의 모습이라 지나던 거지마저 시시덕거리며 그를 비웃는데, 정작 본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다.

뮐러는 입맛을 다시곤 괜히 뽀삐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기운 없는 점원을 보다 못한 가람이 결국 금화를 쥐여 주었다. 은화는 적선하느라 다 써서 금화뿐이었다.

아르바이트 경험이 없던 것도 아니라서 이렇게 한 푼 두 푼 생기는 팁이 삶에 얼마나 활력소가 되는지 잘 아는지라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터덜터덜 걷던 점원의 눈에 생기가 돌더니 흥겨운 감사 말이 튀어나온다.

“캄사합니다!”

점원은 언제 풀이 죽었냐는 듯 생생하게 살아나서 반짝이는 눈으로 가람을 바라보았다.

고급 여관이라고 해도 여관은 여관이다. 귀족도 묵어간다는 명성이 자자한 곳이지만, 잠시 머물다 가는 귀족은 수도에 저택을 구입할 여력이 없거나, 하룻밤 재워 줄 연줄이 없는, 그야말로 자작도 되지 못한 귀족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반 여관에 묵기는 체면이 상하니, 금화 한 닢에 묵는 것이다.

영지라고 해도 조그마한 마을 수준의 영지를 갖고 있을 뿐인 그들은 오히려 이름 있는 상인보다 주머니가 열악해서 금화를 팁으로 준다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짜기는 얼마나 짠지 오히려 한탕 하고 오랜만에 육지에 돌아와서 맥주를 퍼마시는 용병이나 선원들이 씀씀이가 더 클 지경이다.

점원은 가람 일행 또한 그런 용병들이나 모험가라고 짐작했다.

점원이 안내한 마구간은 고급 여관답게 아늑하고 깨끗했다. 말똥을 자주 치우는지 마구간 특유의 냄새도 심하지 않다. 말구유 냄새와 짚단 냄새가 뒤섞여 구수하고 따듯한 냄새가 났다.

뽀삐는 마구간이 마음에 들었는지 따각따각 걸어 스스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 뽀삐의 등에서 뮐러가 짐을 끌러 낸다.

금화 하나를 받은 점원은 눈치 빠르게 그것을 도왔다. 늘 웨이크가 하던 일이었으나 그는 지금 부상이 낫지 않았다.

웨이크라면 혼자서도 들 수 있었겠지만 뮐러는 아니었다.

“미안해요, 뮐러. 뮐러도 몸이 성치 않을 텐데.”

가람의 말에 받아먹은 게 있는 점원이 싹싹하게 고개를 숙였다.

“짐은 제가 방까지 들어다 드리겠습니다.”

소년의 나이는 열다섯, 열여섯 정도로 보인다. 어쩌면 더 어릴지도 몰랐다.

근육이 채 영글지 못한 팔은 노동으로 다져져 제법 그럴듯하긴 했지만 웨이크 같은 단단함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낑낑거리며 뮐러가 건네는 짐들을 받아 들었다. 보다 못한 뮐러가 슬쩍 짐 중 절반을 들어낸다.

아주 나쁜 놈인 줄 알았던 뮐러가 도와주자 소년의 눈이 둥그렇게 뜨였다. 뮐러는 모른 척 시선을 돌렸다.

“여기서 가장 좋은 방은 얼마죠?”

“그, 금화 백 닢 말씀이십니까?”

금화 한 닢이라는 이름의 이 여관은 가장 기본적인 1인 숙박실의 하루 숙박비가 금화 한 닢이었고, 그 위로 두 닢, 세 닢의 방들이 있었다.

가장 좋은 방은 꼭대기 층의 금화 백 닢이었는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이 방은 기함할 만한 그 금액 덕분에 귀족들도 쉬이 묵지 못하는 방이다.

점원의 흥분해서 떠드는 말을 들으며 가람은 마구간을 나섰다. 진통제의 약 기운이 떨어졌는지 다시 온몸이 욱신욱신 아파 온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뼈마디가 달캉달캉 흔들렸다. 이를 악문 가람의 턱이 단단하게 굳어진다.

결국 가람은 이제 거의 다 떨어져 가는 진통제를 꺼내어 한 번에 세 알을 삼켰다.

“이쪽입니다. 이쪽.”

소년의 걸음은 느렸다. 가람 일행의 몰골을 보고 환자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팔에 든 짐이 너무 무거워서 그런지는 알 수 없었으나 가람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소년을 따라 여관 안으로 들어서자 여관 특유의 묵직하게 달궈진 공기가 훅 끼쳐 왔다. 조금 서늘한 날씨에 식어 있던 뺨이 순식간에 달아오른다.

여관 안의 손님들은 갑자기 나타난 곰 같은 몰골의 세 사람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술값도 비싼 여관인지, 여관 안에서 먹고 마시는 이들의 옷차림은 다들 번듯했다.

눈사태로 짐만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돈과 몸에 지니고 있던 몇 가지 물건을 제외한 대부분을 잃어버린 가람 일행은 등산할 때 입고 있던 옷이 현재 가진 유일한 옷이었다. 그나마도 겉옷은 손상이 심해서 버리고 왔다.

“여기서 잠시 기다려 주세요.”

가람 일행을 여관 구석 틈에 세워 둔 소년은 잠시 짐을 내려놓고, 마치 집사처럼 보이는 인상의 중년 남자에게 다가가 작게 속삭였다.

거리가 멀어 말이 들리지는 않았으나, 가람은 깜짝 놀라는 남자의 표정으로 어느 정도 말의 내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잠시 기다리자, 남자가 다가와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금화 백 닢에 묵으실 손님이라고 들었습니다.”

슬슬 벗겨지기 시작하는 그의 정수리를 바라보던 가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실례지만 선불로 지불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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