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스파인더-60화 (60/256)

60화

“그럼, 마을 가면 강아지 당근 사 주세요.”

“응, 사 줄게.”

“많이요?”

“응. 많이.”

뽀삐는 대단히 기쁜 기색으로 푸릉거리더니 곧 머리를 숙이고 잠을 청했다. 아마 오늘 하루 종일 산을 오르느라 대단히 피곤했던 모양이다. 문득 가람도 잊고 있던 피로가 밀려왔다.

가람이야말로 산도 오르고, 하루 종일 곡괭이질도 하느라 몸이 금방이라도 줄줄 녹을 듯이 피곤했다. 가람은 뽀삐의 갈기를 두어 번 쓸어 주었다.

어색하게 자신의 말에서 등짐을 끌어 내린 웨이크와 뮐러도 침낭을 펴고 누웠다. 첫날 같은 경계는 사라진 모습이다.

가람은 잠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기다리고 있던 트리거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Chapter 8

패스가 다시 차는 동안 가람이 매달린 일은 자신이 파헤친 동굴을 다시 메우는 일이었다.

트리거는 괜찮다고 했지만 뻥 뚫린 동굴의 중앙을 볼 때마다 짓는 쓸쓸한 표정이 가람의 마음을 콕콕 찔렀다.

어차피 패스가 차는 동안 할 일도 없고, 몸을 단련하기 위해 운동도 해야 하는 처지다.

트리거 동굴의 보수 공사는 그것에 딱 제격이었다. 마음과 몸에 좋은 운동이니 안 할 이유가 없다.

당연하겠지만 파내는 것보다 메우는 것이 더 쉬웠다.

가장자리에 쌓인 돌들을 발로 툭툭 밀어 다시 던져 넣고 그 위에 고운 흙을 덮어 마무리한 후 푹신하라고 마른 낙엽까지 주워다가 깔아 주었다.

썩지 않도록 바삭하게 잘 마른 낙엽으로 구해 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메우는 것보다 오히려 썩지 않은 낙엽을 구하는 것이 시간을 더 많이 잡아먹어서, 만족할 만큼 낙엽을 모았을 때는 이미 열흘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이번 패스는 참 쉬웠어요. 늘 이러면 좋을 텐데.”

확실히 이번 패스는 쉬웠다. 가람이 깨끗하게 청소된 동굴 벽에 기대어 말하자 트리거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동굴 안은 처음의 그 지저분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가람이 헝겊에 물을 묻혀 물청소까지 싹 하고 웨이크가 작은 선반까지 만들어서 달아 준 덕분에 호랑이가 아니라 사람이 산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근사하게 변했다.

“그때마다 내 집을 부술 참이냐? 지붕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뭐, 쉬웠으면 좋겠다는 말은 동감이다만.”

“부수면 다시 하나 파 드릴게요.”

“아서라. 나는 케르타가 나를 주워 와 기른 이 동굴을 꼼짝없이 잃는 줄 알았다.”

“그런 사연이 있었어요?”

“뭐 그렇지.”

대화가 잠시 끊겼다. 트리거는 눈을 지그시 감고 동굴 입구로 들어오는 햇살을 즐겼다. 그리고 툭 던지듯 물었다.

“그런데, 언제 갈 거냐. 다 찬 것 같은데.”

“눈치챘어요?”

“갑자기 짐을 싸고 몇 번이나 확인하던 손등을 보지도 않는데 눈치 못 챌 리가 있나.”

호랑이가 눈치 한번 빠르다. 가람은 괜히 뻘쭘해서 흠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패스가 다 찬 것은 사실 오늘 아침이었다.

그런데 떠나야겠다는 말이 좀처럼 입 밖으로 나오지 않고, 엉덩이가 한없이 무겁게 처지는 기분에 어쩌나 하고 있었더니 트리거가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슬슬 가려고 하던 참이었어요.”

가람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트리거가 따라서 일어나더니 곧 어슬렁어슬렁 앞서 걷는다.

따라서 동굴 밖으로 나서니 오랜만에 등짐을 벗고 가볍게 뛰어놀던 말 두 마리와 운동하던 웨이크, 뮐러가 눈치 빠르게 다가왔다.

“가는 겁니까?”

가람은 뮐러의 말에 끄덕여 주며 뽀삐에게 등짐을 실었다. 뽀삐가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당연한 일이지만 가람은 뽀삐에게 타는 것도, 짐을 씌우는 것도 껄끄러워졌다.

원한다면 야수들판에서 동물들과 함께 어울려 살도록 풀어 줄까 하고 권유했더니, 뜻밖에 뽀삐는 대단히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거부했다. 그리고 여러 번 더듬고, 단어를 헤매어 가며 이야기했다.

“어차피 저는 도시에서 자라 여기서 어울리지도 못할 텐데요. 뭐. 이게 제 삶이에요. 주인님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지금에 만족해요. 태어나서 쭉 이렇게 살았는걸요.

군마가 되지 못하고 짐말이 되었을 때는 약간 슬펐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숲에는 신선한 풀이나 신기한 것들이 많겠지만 좋은 짚으로 가득 찬 마구간도 없고, 귀리와 강아지 당근이 섞인 여물도 없잖아요. 사실 저는 이렇게 사는 게 뭐 어떻다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뽀삐는 나름대로 무거운 짐을 얼마나 많이 들 수 있는지, 다른 말보다 얼마나 체력이 좋은지 등에서 소소한 삶의 행복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나머지 두 마리 말도 마찬가지였다. 가람은 납득했고 뽀삐는 다시 말하지 않았다.

뭔가 질문하면 대답하긴 했지만 스스로의 생각을 이야기하거나 먼저 말을 거는 일은 없었다.

먼저 말을 걸어도 된다고 가람이 말했지만 뽀삐는 심리적으로 대단히 부담스러운 듯싶었다.

가람은 더 이상 요구하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뽀삐는 대단히 기뻐하며 마지막으로 딱 한마디 하고 그 후로 입을 열지 않았다. ‘마을 가면 강아지 당근 싱싱한 걸로 매일 먹고 싶어요.’

“다 챙겼냐?”

가람의 짐은 홀쭉 줄어 있었다. 그 이유는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바늘은 동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야수들판의 동쪽에는 항구 도시 베록이 있다. 아마 이번 패스는 베록에 있는 모양이었다.

드넓은 베록시 어디에 있는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그래도 크페타인 같은 극악한 곳이 아니라니 다행이다.

도시에 가면 물자는 얼마든지 보급할 수 있었으므로 가람은 대부분의 식량을 모두 트리거에게 선물했다.

짐의 상당량을 차지하던 식량이 줄어들자 무게도 훨씬 줄어서 말들의 표정도 밝다.

베록은 걸어서도 하루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으니 말을 타면 금방일 거다.

“같이 갈 생각 없어요?”

“없다. 쑥도 없고.”

아쉬움에 가람이 넌지시 묻자 트리거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다. 어느새 떠날 채비를 다 한 뮐러와 웨이크가 재촉하듯 앞서 가람을 돌아본다. 가람은 더 권하지 못했다.

트리거에게는 트리거의 자리가 있다. 그렇게 주렁주렁 매달리던 작은 동물들은 모두 트리거가 지켜야 할 가족들이다.

가람이 쓸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트리거가 꼬리로 가람의 등을 툭 친다.

“뭘 그런 표정을 하고 그래. 어차피 나야 늘 여기 있으니 보고 싶을 때 오면 언제든 볼 수 있을 텐데. 안 그러냐? 갈 길 바쁜데 얼른 가라. 해 지겠다.”

트리거가 등 떠밀자 가람은 아쉬운 얼굴로 뒤를 돌아보는데 오히려 뽀삐가 신이 나서 걷기 시작했다.

마을에 가면 강아지 당근을 양껏 먹게 해 주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들뜬 모양이었다.

트리거는 빨리 가라 할 땐 언제고, 막상 가람이 멀어지자 길 밖의 아슬아슬한 곳까지 걸어 나와 가람이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멀리서 보이는 대호의 형상에 괜히 길 가던 여행자 몇몇만 안색이 허옇게 질려 뒷걸음질 쳤다.

이제 말을 타는 데도 상당히 익숙해졌고, 짐도 별로 없는 데다 뽀삐와 말까지 통하니 달리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사실 말을 나눌 필요도 없었지만, 여하튼 가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베록시의 성문 앞에 도착했다.

문지기가 나른하게 하품을 하며 서 있는 모습이 바랄라인의 칼날 같던 기세와 전혀 다르다.

바다의 짠 내와 물건을 나르고 오가는 사람들이 뒤섞여 도시는 거대한 시장통 같은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좋은 일만 겪지는 않았지만 가람은 오랜만에 보는 풍경에 마음이 풀렸다.

고삐를 잡은 손등의 바늘을 보니 여전히 동쪽을 가리키고 있다. 게다가 바늘의 길이도 꽤 길다.

가람이 살짝 불안해지려던 찰나, 뽀삐가 푸힝 하고 짧게 울었다.

대단히 시끄러웠다. 캉캉 짖는 강아지 당근 울음소리가 사방에 가득하다. 자기 텃밭에서 기른 채소를 가져다가 파는 사람들의 채소 노점상 거리다.

어디로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더니 당근 냄새를 맡고 여기까지 온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당근이 먹고 싶었던 걸까.

가람은 여관에 가면 여물통 가득 넣어 주겠다고 다독이며 일단 당장 먹을 당근 두 개를 구입하기 위해 말에서 내렸다.

도시에서 말을 타는 게 금지되어 있는 일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좋은 시선을 받을 만한 일은 아닌 것이다.

“나으리, 숙소를 찾으십니까요?”

가람이 말에서 내리자 갑자기 웨이크에게 누군가가 다가왔다. 척 보기에도 돈깨나 있어 보이는 여행자들이니 호객꾼이 나선 것이다.

눈대중으로 가장 키가 크고 노련한 티가 나는 웨이크가 일행의 대장이라고 짐작한 모양인지 손을 비비는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가람은 그 모습에 언젠가 묵었던 ‘휴식의 요정’을 떠올리며 뽀삐의 입에 당근을 물려 주었다.

힘차게 짖던 강아지 당근은 잠시 까독까독 하는 소리 후 조용해졌다.

“숙소는 이미 정했어요.”

가람은 호객꾼을 슬쩍 밀어 내고 바늘을 따라 걸었다.

등 뒤에서 호객꾼의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 다른 여행자를 발견했는지 살살 녹을 듯이 ‘나으리―’ 하는 소리가 이어진다. 별로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두 남자는 가람이 아랑곳하지 않음을 깨닫고 조용히 뒤를 따랐다.

한참 걷고 있자니 갑자기 무언가가 손을 턱 당긴다. 뒤돌아보니 뽀삐가 멈춰 있었다.

가자는 뜻으로 고삐를 툭툭 당겨도 못 박힌 듯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뽀삐를 멈추게 한 것은 산포 장수의 산포였다. 딸기만 한 크기에 핑크색 사과를 닮은 이 과일은 베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열매다.

사람도 좋아하고, 풀을 먹는 동물이라면 다들 환장을 하고 좋아하는 과일이다.

“저게 먹고 싶어?”

뽀삐는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짜증이 날 법도 한데 가람은 돈주머니를 꺼내어 벌써 멀어지고 있는 산포 장수에게 다가갔다. 어차피 사는 데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

“산포 사시오, 산포. 두 개에 10쿠퍼! 다섯 개에 30쿠퍼!”

“열 개 주세요.”

산포 장수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늙은이였다. 막대의 양 끝에 산포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매단 모습이 마치 천칭을 닮았다.

산포 장수는 산포 열 개를 담으면서도 입으로 연신 두 개에 10쿠퍼, 다섯 개에 30쿠퍼를 외쳤다.

아무 생각 없이 60쿠퍼를 꺼내어 주려던 가람은 문득 대단히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깐, 어째서 두 개에 10쿠퍼인데 다섯 개에 30쿠퍼지? 여섯 개에 30쿠퍼여야 하는 게 아닌가.

“저기, 여섯 개에 30쿠퍼여야 하는 거 아닌가요?”

산포 장수 할아버지는 가람의 말에 갑자기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더니 누가 들은 사람이 없나 하고 사방을 살폈다.

그리고 목소리를 죽여 대단한 비밀이라도 말하는 것처럼 속삭였다.

“그게 바로 사업의 비밀이라네.”

“네?”

“비밀이라고. 에잇, 산포 세 개 덤으로 줄 테니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알았지?”

“어, 어?”

산포 장수 할아버지는 떠넘기듯 가람에게 산포를 넘겨주고는 60쿠퍼를 낚아채어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가람은 멀어지는 산포 장수의 목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서 있다가 뽀삐가 다가와 커다란 나뭇잎에 싸인 산포에 코를 문지르자 곧 정신을 차렸다.

이곳 사람들이 워낙 계산이 느리니 저런 수법도 먹히는 모양이다.

“이거면 됐어?”

“네.”

뽀삐가 대답하자 갑자기 지나가던 꼬마가 화들짝 놀라 돌아본다. 그러더니 제 손을 잡은 엄마에게 팔딱팔딱 뛰며 말했다.

“엄마, 엄마. 저 말 방금 말했어.”

“말이 어떻게 말을 하니.”

“아냐. 진짜 말했어. 저 누나가 말이랑 대화도 했어.”

“쉿, 저런 거 보면 안 돼. 어서 가자.”

“진짜야. 진짜라니까?”

아이의 소란에 갑자기 지나던 사람들이 가람과 뽀삐를 번갈아 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가람은 조용히 뽀삐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마을에서는 말하지 말아 줘…….”

뽀삐는 고갯짓으로 대답하곤 산포 열세 개를 홀랑 먹어 치웠다. 그리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것이 굉장히 만족한 모양이다.

가람은 당근에 산포도 섞어 사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바늘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가람은 뜨거운 숯 상점을 지나 대장간, 이발소, 잡화 상점, 피혁 상점, 짐마차가 줄줄이 쌓인 상인 길드, 도공 길드, 대장장이 길드를 넘어 마침내 로아나가 일하는 휴식의 요정까지 도착했다.

그러나 바늘은 여전히 동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람은 불안을 내리누르며 여관에 들어가는 대신 다시 부둣가를 따라 걸어 마침내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선착장의 끝에 서서 여전히 동쪽을 가리키는 바늘을 보고 침음성을 낼 수밖에 없었다. 끝없는 수평선 저 어딘가에 패스가 있다는 건가.

가람은 망연히 서서 수평선과 노을이 물결 위에서 이지러지는 모습을 보았다.

커다란 갤리선에 짐을 적재하던 선원들이 우두커니 선 가람 일행을 흘끔인다.

상의를 탈의하고 땀 흘리며 배와 선착장을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고삐를 잡고 선 세 사람은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어떡하지…….”

아득한 바다를 보니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언젠가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다라니? 바다 어디에 패스가 있을 줄 알고. 섬과 섬, 대륙과 대륙을 오가는 배를 탈 수도 없었다.

패스가 바다 어디에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패스를 지나칠까 봐 기차를 탔을 때도 늘 바늘을 보고 있었다. 차라리 기차는 역이라도 있지, 배는 그런 것도 없다.

가람은 문득 배를 수배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배가 택시도 아닌데 갑자기 구한다고 해서 나타날 리도 없다.

게다가 경험한 바가 없어 대체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연하기만 하다.

일단 배를 먼저 사야 하나? 배는 어디서 사지? 사고 싶다고 살 수 있나? 배는 누가 몰지? 선원은 어디서 구하지? 선원을 구할 수 있는 건가?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구하려면 여기 선원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되는 걸까?

고민하던 가람은 일단 선착장을 나왔다. 선착장에도 선원 같은 사람이 많이 보였지만,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사람을 붙잡고 제 궁금증을 풀 만큼 가람은 뻔뻔하지 않았다.

게다가 기다란 말 세 마리를 대동하고 서 있었더니 눈총이 따갑게 쏟아지기도 해서, 일단 가람은 자리를 피했다.

“혹시 원하는 곳까지 태워다 주는 배가 있는지 아세요?”

뮐러와 웨이크가 혹시 알까 싶어 질문했지만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내륙 태생이고 배를 탈 일도 없었던지라 이렇게 선착장 안쪽까지 들어와 본 것도 처음입니다. 늘 연구실에서 살았으니까요.”

“저도 숲에서라면 잘 알지만…….”

결국 선원에게 묻는 수밖에 없나. 가람은 혹시나 한가한 사람이 있을까 싶어 주위를 둘러봤지만 대부분 양피지 장부에 무언가를 기록하거나, 짐을 들고 땀을 번들거리며 오가는 선원들이었다.

붙잡기도 무섭게 분주해서 도저히 말을 걸 엄두가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여기서 이러는 것보다,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좀 풀어진 선원에게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다.

“어머, 혹시 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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