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일단 잠깐 가볍게 잠수만 해 보는 거예요.”
돛을 다 접은 상태라 망루 위의 선원도 갑판의 소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망루에 있는 선원은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보며 해적선이나 불길한 구름이 몰려오지는 않는지 살피는 것이 일이다. 하지만 요 며칠간은 그런 일이 없었다.
항해란 지루할수록 좋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지루한 것이 달갑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그는 흥미로운 얼굴로 이 소란이 어떻게 끝날 것인지 턱을 괴고 내려다보았다.
“말도 안 됩니다. 게다가 혼자 가겠다니요.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이 배의 남자들은 모두 겁쟁이만 모여 있는 게 아닙니다!”
아무래도 브라한이 너무 좋은 사람들로만 모아 온 모양이다. 가람은 제 일처럼 흥분해서 소리치는 선원을 만류했다.
이름이, 그러니까. 역시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통성명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가람은 한숨을 내쉬고 수경을 내려 썼다.
검은 전신 수영복을 입고 발에는 오리발, 눈에는 물안경을 낀 가람의 모습은 퍽 괴상해서, 선원 중 몇몇은 저 장비들이 무슨 마법이라도 부리는 물건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막무가내로 달려들 수 없었다.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가람은 허리에 밧줄을 단단히 묶고 잘 가라앉기 위한 돌을 매달았다.
밧줄의 나머지 끝은 배와 연결되어 가람이 조류에 휩쓸려 가는 것을 막아 줄 것이다.
“숨은 어떻게 쉴 생각입니까?”
“저도 그게 걱정이네요.”
가람의 초탈한 대답에 웨이크는 아연한 얼굴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선원이 다시 괴담을 떠들어 대며 가람을 겁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원이 하는 말은 별 의미가 없었다. 가람은 이미 충분히 겁을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잠수는 예행연습이다. 패스가 의외로 눈 닿는 곳에 있거나, 생각보다 오래 잠수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일단 그냥 부딪혀 보는 거다.
만약 정말로 안 되겠으면 숨 쉬는 능력이든 뭐든 구입하면 된다. 사실 가람은 어느 정도 타협안을 생각해 둔 상태였다.
“뮐러, 무슨 방법 없겠습니까?”
가람은 오리발을 잡아당겨 꾹꾹 스트레칭을 하며 심호흡을 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웨이크의 질문에 뮐러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바람 마법사라면 몰라도, 물 마법사라서……. 물을 어떻게든 조종할 수는 있지만 그 안에 바람을 채우지는 못합니다.”
선원들은 가람과 꽤 오랫동안 일행이었던 것처럼 보이는 이 두 남자가 어째서 그녀를 말리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뮐러와 웨이크는 말려도 소용이 없을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가람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것을 보았고, 결국 결론이 이렇게 났다면 자신들이 손을 댈 수 있는 부분은 없었다.
“브라한 씨! 어떻게 좀 해 보세요!”
괴담을 떠들던 선원은 자신의 말이 전혀 효력이 없음을 깨닫고 브라한에게 매달렸다.
아침부터 안 보이던 브라한은 무언가를 주렁주렁 들고 나타났는데, 흡사 관을 돌돌 말아 둔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는 매달리는 선원의 머리를 툭툭 두드려 준 뒤 가람에게 관의 한쪽 끝을 내밀었다.
“숨을 쉴 수 있도록 도와줄 겁니다. 너무 깊게만 가지 않는다면.”
관의 전체 길이는 10미터가 약간 안 되어 보였지만 가람은 이 뜻밖의 선물에 눈을 크게 떴다.
만약 10미터대에 패스가 없거나 타협안대로 한다면 이 관은 쓸모가 없을 테지만, 가람은 일단은 얼떨떨하게 감사 인사를 했다.
브라한은 예의 그 딱딱한 얼굴로 고개만 까딱였다. 그리고 관의 반대편 끝을 자신의 허리춤에 매었다.
관은 약간 부드럽지만 조금 단단하기도 했다. 무엇으로 만들어진 걸까 추리하던 가람은 모르는 것이 더 낫겠다는 마음에 생각을 그만두었다.
알 게 뭔가. 숨만 쉬면 되는 것이다. 괜히 찝찝한 것을 알아서 기분 상할 필요는 없다.
가람은 배 옆에 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작은 보조선에 올랐다. 보조선에는 브라한과 뮐러가 먼저 타고 있었다.
두 남자는 신중한 얼굴로 가람이 지시하는 지점까지 배를 몰았다. 긴장 어린 침묵이 배 위를 감돈다. 말 많은 뮐러조차도 입을 열지 않았다.
가람도 딱히 밝은 말을 꺼낼 기분이 들지 않아서 시커먼 수면을 내려다보았다.
깊이가 얼마나 되는지, 그 속에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가람은 떨려 오는 손끝을 다잡았다.
물어뜯었던 손끝은 거의 아물어 있었다. 두려움 때문인지 숨이 격렬하게 차올랐다.
진정, 진정하자. 단지 바다일 뿐이다. 여름에 해수욕하러 많이 갔었던 바다. 별것 없을 거다. 지나치게 무서워할 필요 없다. 가람은 스스로에게 세뇌하듯 몇 번이고 되뇌었다.
가람이 수면을 내려다보며 초조한 손끝을 주무르자 뮐러가 조심스레 제안했다.
“역시 제가 함께 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마터면 가람은 그 제안을 받아들일 뻔했다. 대단히 유혹적인 제안이었다. 하지만 가람은 거절했다.
“안 돼요.”
만약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은 차원 문으로 몸을 뺄 수 있다. 하지만 뮐러와 다른 사람들은 꼼짝없이 당하고 말 것이다.
명령에 가까운 단호한 거절에 뮐러는 한숨을 내쉬었다.
“브라한 씨. 일단 3분 정도 지나면 저를 끌어 올려 주세요.”
3분. 3분이나 버틸 수 있을까. 하지만 3분 정도는 있어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패스만 찾는다면 공기가 부족해 기절하더라도 브라한이 끌어 올려 주면 된다. 그 외의 문제들은 차원 문이 해결해 줄 것이다.
만약 그걸로도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패스를 써야겠지. 하지만 되도록 쓰지 않도록 노력할 생각이었다.
가람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본선에 남아 있는 모든 선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입수했다.
세상이 절반으로 나뉘고 물이 체온을 앗아 갔다. 끔찍하게 차가운 온도에 가람은 기껏 마셨던 숨을 모조리 토해 버렸다. 그리고 작은 배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숨을 몰아쉬었다.
놀란 심장이 격렬하게 뛰자 천천히 체온이 올라가서 사정이 점점 나아졌다. 그녀는 물에 몸이 적응하도록 잠시 기다리다가 짧게 잠수했다.
첫 잠수는 약 2미터 정도였다. 아직까지는 햇살과 맑은 물 덕분에 시야가 괜찮았다. 가람은 눈에 핏발이 서도록 필사적으로 사방을 살폈다.
아직까지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오리발을 이용해 3미터까지 잠수하다가 다시 몸을 솟구쳐 뱃전에 매달렸다. 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바닷속에 물고기가 없어요. 아직 얕아서 그런 걸까요?”
그 점에 대해서는 브라한과 뮐러도 아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가람은 잠시 대답을 기다리다가 다시 잠수했다. 회를 반복할수록 조금씩 익숙해져서 그런지 몸이 편안해졌다.
미지에 대한 공포로 날뛰던 심장이 막상 잠수하고 나니 별것 없는 상황에 침착함을 되찾았다.
하지만 숨이 닿는 거리에서는 여전히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조금 더 깊이, 더 깊이 가야 한다. 하지만 한계점은 분명했다. 7미터 이하로는 내려가기 힘들었다.
가람은 텅 빈 바닷속을 유영하다가 다시 몸을 솟구쳐 뱃전에 달라붙었다. 패스는 7미터보다 더 깊은 곳에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참아도 7미터 이하로는 내려가기 힘들었다.
호흡기를 쓰더라도 문제가 있었는데, 깊이 들어가니 중간에 관이 짜부라 들어 공기가 오갈 수 없어졌던 것이다.
게다가 급조한 호흡기의 틈으로 물이 새어 들어와서, 가람은 중간부터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브라한이 가람을 끌어 올리는 간격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3분은 어느새 5분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람은 그것으로도 만족하기 힘들었다. 다시 잠수하며 가람은 타협안을 떠올렸다.
영원히 물속에서 숨 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는 능력이라면 저렴하지 않을까?
한 시간 정도 참을 수 있는 능력이라면, 계속 참는 것보다는 훨씬 약한 능력이니까. 덤으로 수압까지 견딜 수 있다면 더 좋겠지.
대답은 빠르게 돌아왔다. 15패스. 가람은 더 고민하지 않고 그 능력을 구입했다. 구입한다는 생각만으로 충분했다.
손등에서 작은 패스 조각이 떠올라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가람은 허덕이던 자신의 몸이 빠른 속도로 안정을 찾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그렇게 숨이 차지 않았다. 10초 정도 지났을 때 숨이 차는 정도와 비슷했다.
하지만 숨이 차지 않아도 내려갈수록 점점 어두워지는 바다와 수압은 힘겨운 적이었다. 그러나 좋은 점도 있었다.
바닷속에는 시야를 가로막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부재하는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는 아군이었다. 광활한 수면 아래에서 가람은 아주 멀리 떠 있는 빛 조각을 발견했다.
익숙한 황금빛의 그것. 패스다. 패스였다. 드디어 찾은 패스는 마치 푸른 우주 속의 별을 닮아 있었다.
가람은 우주의 물살을 헤치고 스스로가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헤엄쳤다. 발견한 이상 이제 가까이 가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모를까, 목적지가 보이자 무언가 숨어 있을 것 같은 기기묘묘한 바닷속의 풍경도 시커먼 어둠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가람은 어서 패스를 손에 넣어서 떠나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패스가 제법 커 보여서 마음은 더욱 설레었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되는데, 붙잡는 것이 있었다. 허리의 끈. 따라가듯 시선을 들자 해초처럼 흔들리는 끈이 보였다.
패스는 이제 지척에 있었다. 가람은 잠시 갈등했다.
아주 잠깐 끈을 푸는 것은 괜찮지 않을까? 이만큼이나 내려왔는데 다시 올라가는 것은 너무나 아쉽다.
하지만 가람의 고민은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브라한이 끈을 잡아당겨 가람을 끌어 올리고 있었다.
등 뒤로 물살을 느끼며 가람은 눈에 새기듯 패스의 위치를 확인해 두었다. 올라가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사이 가람은 거의 20미터 가까이 잠수했던 것이다.
패스로 한 시간에 한해서는 수압에 대한 피해를 받지 않는 능력을 구입한 덕분에 본인조차 스스로가 얼마나 깊이 잠수했는지 자각하지 못했다.
브라한은 기절했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대단히 멀쩡하게 수면 위로 솟아오르자 놀람을 감추지 않았다. 가람은 서둘러 배 위로 올라가 허리의 밧줄을 풀어냈다.
“숨을 정말 잘 참으시는데요. 다 끝난 겁니까?”
뮐러의 말에 가람은 다시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으로 대답했다. 밧줄도 없이 맨몸으로 뛰어들자 브라한이 물보라 사이로 급히 가람의 팔을 잡아챘다.
“묶고 가십시오.”
“끈이 너무 짧아요.”
“맨몸으로 가는 건 정말로 자살행위입니다.”
가람이 직접 몸으로 체험한 바에 따르면 현재 바다는 매우 잔잔했다.
하지만 브라한과 뮐러의 걱정스런 눈매에 그런 말은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가야 한다.
“끈 더 있어요?”
브라한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 꼭 가야 해요. 아니, 지금 꼭 가야 해요. 해가 지면 내일로 미뤄질지도 모르고, 날씨가 흐려지면 더 조건이 안 좋아지니까. 만약 내가 어딘가로 떠내려가는 게 걱정이라면 망루의 선원에게 말해서 주변을 살피고 있어 줘요. 제가 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떠올라도 발견될 수 있도록.”
재차 만류하려는 브라한을 이번에는 뮐러가 말렸다. 가람에게는 비밀이 있었다.
눈사태 때도 그렇고 겁이 많은 편인 그녀가 이만큼이나 막무가내로 돌진할 때는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다는 뜻이다.
그게 무엇인지 설명해 주지는 않지만, 그는 가람을 믿기로 했다.
“기다리겠습니다.”
이제 거의 다 왔는데, 지나치게 결연한 얼굴이다. 이러고 10분도 되지 않아서 다시 만나면 민망할 텐데. 가람은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 괜히 웃어 주었다.
“누가 보면 죽으러 가는 줄 알겠어요. 얼른 다녀올게요.”
가람은 다시 잠수한 뒤 혹시나 해서 사방을 살펴보았다. 멸치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여기는 낚시하는 재미가 없는 곳이겠어. 가람은 괜히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아래로, 아래로 헤엄쳤다.
끈이 없는 탓인지 몸이 해류를 따라 제멋대로 떠내려가려고 했지만 오리발을 휘둘러 헤엄치자 그럭저럭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육지에 있을 때와 달리 가람은 손등을 수직으로 세우고 움직였다. 좀 더 아래, 아래에 있다. 위치를 한 번 봐 둔 덕분인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금빛을 발견했고, 가까이 다가가는 데에도 성공했다. 그리고 패스를 흡수하는 것까지 완료했다.
50패스. 이로써 가람이 가지게 된 패스는 모두 120패스였다.
가람은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하며 허리에 매단 돌을 풀어내었다. 끈으로 당겨 주는 사람이 없으니 돌을 버리고 올라가는 수밖에 없다.
수월한 일은 아니었지만 걱정했던 것만큼 큰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었다.
모든 공포는 모르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하던가. 막상 부딪히면 이렇게나 별것 없는데 말이다.
사방은 여전히 검푸른색이었지만 가람은 더 이상 그 어두움이 처음처럼 무섭지 않았다.
그녀는 패스를 찾아 홀가분한 기분으로 반짝이는 해수면을 향해 힘껏 헤엄쳤다.
아니, 헤엄치려고 했다. 그러나 무언가에 가로막혀 멈춰 섰다. 보이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바다는 고요했고 시야는 훤히 뚫려 있다. 햇살이 뛰노는 해수면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이게 뭐지?’
가람은 손을 뻗어 가로막은 것을 두드려 보았다. 무슨, 딱딱한 바위 같은 감촉이었다. 투명한 유리를 두드리는 것 같기도 했다.
어쩐지 불길한 느낌이 등줄기를 따라 흘러내렸다. 패스를 찾은 이상 여기에 더 머물 이유는 없다.
가람은 그것에 대해 알아보기를 포기하고 빙 돌아서 수면 위로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 순간, 투명한 공간이 갈라지며 거대한 입이 쩌억 열려 그 흉흉한 이빨 사이로 가람을 집어삼켜 버렸다.
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