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스파인더-66화 (66/256)

66화

* * *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가람은 자신이 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머리가 여러 갈래로 쪼개어져 쓸데없는 억측과 가설을 무기 삼아 싸워 대기 시작했다. 흔히 혼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전쟁터로 나가 버린 머리가 부재한 사이에도 가람의 몸은 본능대로 움직였다. 생존의 몸짓이다.

하지만 가람은 자신의 팔다리가 어떤 모양으로 놓여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가람은 간신히 정신을 다잡고 자신에게 일어난 비극을 받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자신은 무언가에 먹힌 것이다. 먹혔다. 가람은 먹는다는 단어가 그렇게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에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먹히다니? 아직 아픈 곳도 없는데? 씹히지도 않았는데? 그보다 나는 음식이 아닌데?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가람이 약간의 침착함을 되찾았다고 생각한 몸이 그제야 모아 두었던 고통을 풀어놓았다.

제일 먼저 찾아온 고통은 이빨을 잡고 있는 손이 짓씹히는 고통이었다.

‘그것’은 이 사이에 낀 음식물을 빼내기 위해 턱을 좌우로 비비며 강하게 흡입했다.

그럴 때마다 창살 같은 그 이빨을 필사적으로 붙들고 있던 가람의 손이 뼈가 드러날 정도로 상처 입었다.

빛이 없어 얼마나 다쳤는지 볼 수 없다는 점이 가람에게 있어서 축복이었다.

하지만 눈이 조금씩 어둠에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가람은 섬세한 것(뼈가 드러난 손가락이나 끊어진 혈관 다발)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것보다 덜 섬세한 것의 형태는 볼 수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언가의 입 속에 들어와 본다는 것은 정말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끔찍했다.

가람은 자신이 괴물의 입 안에서 혀에 몸을 누이고 이빨을 붙잡은 채 목구멍 쪽으로 발을 들이밀고 있다는 것을 순서대로 하나씩 깨달아 갔다.

그러나 그런다고 혀가 들썩여 자신을 입천장에 올려붙였을 때의 끔찍함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등 뒤로 닿는 입천장의 질척하고 차가운 느낌. 입 안의 부드러운 살이 잠수복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대로 푹 눌러져 감싸 오는 감각.

가람은 이빨을 잡고 버텼다. 배, 몸, 다리에 닿는 혀와 살의 감촉이 물컹하다. 체온이 없는 그것은 차갑고 비렸다.

이에 걸린 가람을 삼키려는지 쉴 새 없이 혀가 꿈틀거리며 이빨을 잡은 손을 훑었다.

놓으면 안 된다. 가람은 뒤로 보이는 시커먼 목구멍을 보며 온 힘을 다해 이빨에 매달렸다. 목구멍이다.

어떤 비유도 없는 가감하지 아니한 사실이었다. 목구멍 안쪽으로 자꾸 발이 미끄러졌다.

보이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가람은 섣불리 움직이지 않으려고 했다. 입 밖으로 나가겠다고 움직이다가 도리어 목구멍으로 머리를 들이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괴물의 인후가 수축하며 자신의 다리를 잡아당겨 위장으로 빨아들이려고 들자 날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사실 지금까지는 너무나 정신이 없어 깨닫지 못했으나 이러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가람은 괴물의 입 안에 차원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이빨도, 목구멍도, 자신을 삼키려고 꿈틀거리는 거대한 혓바닥도 없는 세계에 도착했다.

“으윽.”

가람은 억눌린 비명을 참으며 잠수복과 한 덩어리가 되어 씹힌 손을 들어 올렸다.

대체 어떻게 이 지경이 되어서도 움직일 수 있는지 불가사의할 정도였다. 마트의 바닥은 함께 쏟아져 나온 바닷물로 흥건했다.

가람은 통증을 참으며 되도록 손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다고 이미 봐 버린 손의 고통이 가시는 것은 아니었으나, 괜히 자각할 필요는 없었다.

바닷속보다 훨씬 따듯한 마트였으나 가람은 한기를 느꼈다. 아무도 없는 적막감은 바닷속의 그것을 닮아 있었다.

가람은 최대한 밝은 곳으로 달려가 이불 코너의 이불 속에 몸을 묻었다. 한기가 조금 누그러들었으나 여전히 어떡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물속이니 총은 사용할 수 없다. 패스로 구입할 수 있는 능력 쪽으로 생각이 흘렀으나 문양이 잠수복에 덮여 있어서 볼 수 없었다.

물론 장갑을 벗어 버리면 되지만 그랬다간 씹힌 손가락도 같이 떨어져 나갈 판이다.

가람은 장갑을 벗긴커녕 손에 무언가를 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손에서 배어 나온 피가 가람이 몸을 묻은 이불을 적셔 나간다. 가람은 마트에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독한 세제를 가져다가 입 안에 부어 버릴까. 그러면 죽지 않을까? 그렇다고 입을 벌리고 죽을 거라는 보장도 없다.

그것이 입을 다물고 죽어 버리면 그 고생을 한 보람도 없이 패스를 써야 할 거다.

가람은 이 지경이 되어서도 패스를 아끼려는 자신에게 놀랐다.

예전이었다면 눈물 콧물 흩뿌리며 아낀다거나 할 생각도 하지 않고 무조건 능력을 사 버렸을 것이다. 짧은 시야로, 당장의 고통과 괴로움에 굴복해서.

이곳에 없는 것을 생각한다. 오지 않는 아침을 생각한다. 그럴 때면 가람의 의지는 담금질되었다.

뜨거운 불에 넣어 녹아드는 슬픔을 독하게 견뎌 내었다. 텅 빈 것 같은 슬픔의 칼날 앞에서 무력하게 춤추었다.

비명도, 신음도, 눈물도 없는 그것은 이따금씩 생각이 날 때마다 지독했다.

한계까지 부하가 걸린 정신을 몰아치고 또 몰아쳐서 좋은 방향으로 꺾어 돌리지 않으면 안 된다.

언젠가 꺾인 부분이 부서지더라도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다.

가람은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언제나 그랬듯이 쥐꼬리만큼의 좋은 점이라도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저쪽으로 돌아갔을 때 바다 괴물의 입 안을 거주지 삼게 되는 것은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문을 열었을 때 도착지가 괴물의 입 안이 아니라면 어떨까.

가람은 문득 자신이 움직이는 물체 위에서 문을 열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나 여관의 방 안, 혹은 산의 위였다.

차원 문이 어떤 식으로 열리고 고정되는지에 대해 가람은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만약 문이 차원의 좌표에 고정되는 것이라면?

크페타인에서 문을 열었을 때 문은 눈 위에 열렸으나 미끄러지는 눈들과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 고정되었고, 그 몸으로 쏟아지는 눈을 받아 내었다.

만약 문이 자신을 감싼 무언가에 의해 움직인다면 눈이 움직일 때 문도 움직여야 했다.

하지만 차원 문은 실체도 다른 무엇도 없었다. 따지자면 프로젝터에서 쏟아지는 빔과도 비슷했다.

그 자리에 고정되고 모든 것을 통과시키지만 그것 자체는 어떤 물리적인 힘도 받지 않는다.

힌트를 얻은 것 같았다. 가람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아보려고 했지만 시계를 빼 놓고 있어서 시간을 알 수 없었다.

마트의 시계들은 그녀와 상관없는 영역에 있어서 그런지 여전히 12시 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가람은 사람이 없어 휑한 마트를 한 차례 둘러보았다.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어 보였다.

지금의 가람에게 도움이 되려면 혼자서 움직이는 1인 잠수함 정도가 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가람은 차원 문에 다시 뛰어들기 전에 오랫동안 불길한 상상들과 싸웠다.

만약 괴물의 위장에 바로 도착하게 된다면? 만약 괴물의 코앞이라면? 다시 잡아먹히게 된다면?

수많은 만약들에 가람의 걸음이 몇 번이고 제자리를 걷는다. 그리고 충분히 망설였다 싶었을 때, 가람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생각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다행히 질척이는 위액, 꿈틀거리는 융털, 날름거리는 혓바닥은 없었다.

가람은 깔끔하리만치 새파란 바다를 둘러보다가 그 행동이 굉장히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괴물은 투명하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투명한 괴물이었다.

가람이 삼켜지기 전에 본 것은 바다가 이빨을 벌리고 달려드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오직 이빨과 커다란 턱 외에 가람이 괴물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다. 아, 목구멍이 부드럽다는 것도 알고 있군.

가람은 오리발을 휘두르려고 하다가 문득 자신이 어딘가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서 있다니? 자신이 있던 곳은 해저도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였다. 가람 또한 플랑크톤처럼 떠 있는 패스를 흡수하지 않았던가.

어디에도 발 디딜 곳은 없는데, 서 있다니? 내려다본 발밑은 투명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가람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소름이 좌악 돋는 것을 느꼈다.

도망가야 한다.

가람은 허겁지겁 엉성한 팔다리를 움직여 몸을 솟구쳤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빨리 발밑이 움직였다.

오리발은 헤엄친다기보다 걷는 것에 가깝게 움직였고, 발밑이 움직이는 방향을 깨달은 가람은 움직이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물살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몸을 납작하게 붙였다. 붙잡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충분했다. 괴물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었으니까.

노을에 물든 바다 위로 그것이 솟구쳐 올랐다. 거대한 물보라를 동반했으므로 보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혹시나 가람이 나타날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선원들도 그 모습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들이 괴물에 대해 느낀 것은 공포가 아니었다. 비명도, 경악도 없었다. 그저 경이로운 소문을 실제로 목도한 선원들의 기쁨만 있을 뿐이다.

가람은 얼굴을 세차게 때리는 물보라와 그 환호 소리로 자신이 수면 위로 올라왔음을 깨달았다.

가람이 있는 장소는 괴물의 꼬리 부분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작은 동산 정도의 크기는 되었다.

물보라, 환호, 거대한 괴물 등 정신을 빼 놓는 요소는 많았으나 가람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지 않았다.

물에 뛰어들어 보조선 쪽으로 헤엄친 가람은 뮐러와 브라한에게 끌려 올라간 후 멀찍이서 그 괴물을 바라보고 나서야 선원들이 환호하는 이유를 알았다.

본래라면 보이지 않았을 그 투명한 몸체는 마르지 않은 물기가 햇살에 반사된 탓에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기가 다 마르면 다시 보이지 않게 될 테지만, 지금은 보였다.

그리고 언젠가 들었던,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황금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거대한 황금 도시. 누가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선원 중 누군가가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선원이 본 것은 도시가 아니었다. 가람은 거대한 투명 거북의 등에 꽃핀 황금 산호초 군락을 바라보았다.

부유하는 황금 도시는 그 색도 찬란한 금빛 산호초였고, 거북은 물속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수면에 얼비치는 금색뿐이었다.

나머지는 상상력이 채워 넣은 것이고, 사람들은 그 거대한 규모를 도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눈앞에 있는 산호초는 작은 마을 정도의 규모는 되어 보였다.

“황금 도시다!”

누군가의 외침 소리와 함께 수면을 부수는 소리가 들렸다. 선원 중 하나가 뛰어든 모양이었다.

그 크기가 너무나 커서 오히려 아무 해를 끼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는지 선원들은 겁도 없이 거북에게 다가갔다.

투명한 몸체를 반사시키며 금빛 등을 번쩍이는 그 신비로운 자태도 공포심을 없애는 것에 한몫했다.

그러나 방금까지 괴물의 입 안에 있었던 가람은 선원들이 쾌활하게 자살 시도를 하는 것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빠, 빨리 말려요! 가까이 가지 말아요. 저건 사람을 먹는다고요!”

가람의 말에 브라한은 갑자기 정신이 돌아온 듯 부산하게 움직였다. 노를 젓고, 본선으로 배를 붙인 뒤 날듯이 줄사다리를 올라 선원들을 통제했다.

그사이 뮐러는 팔목보다 정육점 갈고리에 걸려 있는 것이 어울릴 것 같은 꼴이 된 가람의 손을 살폈다.

가람은 남의 손이라도 되는 듯 자신의 손을 내어주고 갑판에서 거대한 거북이를 내려다보았다.

“몇 명이나 뛰어들었어요?”

가람의 질문에 뮐러는 질문으로 대답했다.

“손이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겁니까?”

“저 거북이가 저를 좀 씹었거든요.”

“예?”

“몇 명이나 뛰어든 거예요? 저 거북은 절대로 안전하지 않아요!”

가람의 외침에 마냥 해맑던 선원들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하지만 별일은 없었다. 거북은 굉장히 느려서 입가까지 다가오지 않으면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투명 거북은 날카로운 이빨을 딱딱 부딪치다가 곧 물보라를 일으키며 다시 잠수하기 시작했다.

금 산호를 뜯으며 즐거워하던 선원들은 재빨리 헤엄쳐 배로 올라왔다. 그사이 거북은 운 없는 선원 하나를 삼키고 싶은 듯 주위를 유영하다가 곧 천천히 멀어졌다.

배에 부딪쳐 해코지라도 하지 않을까 가슴 졸이던 사람들을 무안하게 만드는 맥없는 퇴장이었다.

가람은 금 산호를 자랑하며 즐거워하는 선원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이 매우 운이 없는 사람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극심한 탈력감에 결국 무릎을 꿇고 돛대에 기대어 널브러진 가람을 뮐러와 웨이크가 급히 수습했다.

다가오는 두 남자의 어깨 뒤로 거북을 피해 급히 서식지를 떠났던 고래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득한 그 소리를 들으며 가람은 눈을 감았다. 오늘 하루는 정말로 피곤했다. 정말이지 무진장 피곤한 하루였다.

Chapter 9

“손만 다쳤을 뿐인데 왜 전신이 다 아픈 걸까요.”

가람은 느릿하게 흔들리는 선실에 누워 붕대 감긴 손을 들어 보였다.

한계까지 당겨지던 긴장의 끈을 놓은 즉시 정신을 잃어버린 덕분에, 손가락의 너덜너덜한 살점을 떼어 내는 것을 맨정신으로 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신뢰할 수 없는 민간요법을 열렬하게 추천하는 선원들을 보거나 그 신뢰할 수 없는 민간요법들을 듣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었다.

해초를 감자거나, 혹은 신비한 힘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금 산호를 으깨어 손에 바르자거나, 또는 가람의 손을 소금에 담가 염장해 육지에 도착할 때까지 보존되도록 하자는 등 많은 의견이 나왔다.

대부분은 미신을 신봉하는 선원들의 의견이었고 차마 거절하기가 안타까울 정도로 창의적인 요법들이었다.

하지만 브라한과 뮐러의 반대 덕분에 가람은 깨어났을 때 자신의 손이 젓갈이 되어 있는 사태만은 막을 수 있었다.

“몸은 전부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아, 자꾸 움직이려고 하지 마세요. 붕대가 감겨 있어서 그렇지 진짜 끔찍한 상태거든요.”

뮐러가 젖은 헝겊으로 땀을 닦아 주며 충고했다. 가람은 불타는 것 같은 손을 얌전히 내려놓았다. 침묵 속에서 바닥이 천천히 울렁인다.

가람은 꼭 흔들리는 커다란 요람 안에 누워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믿을 수 없겠지만 가람의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어쨌거나, 당분간은 쉴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웨이크는 어디로 갔어요?”

“글쎄요. 알 게 뭡니까.”

뜻밖에 돌아온 퉁명스러운 대답에 가람은 부어서 잘 뜨이지 않는 눈을 부릅떴다. 자는 사이 통증에 계속 울었는지 일어나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아니, 부어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콧속이나 목구멍 또한 부었는지 숨을 쉴 때마다 따갑고 답답했다.

“무슨 일 있었어요?”

“별일 없었습니다.”

“싸웠어요?”

“아닙니다.”

“싸운 것 같은데요?”

가람이 거듭 묻자 뮐러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뭐, 별건 아닙니다. 그냥 제가 혼자 좀…….”

뮐러는 그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하지만 가람은 걱정스러웠다. 팀에 균열이 생기면 언제나 문제가 발생한다.

뮐러는 가람의 눈망울을 마주하다가 결국 굉장히 내키지 않는 듯 머리를 감싸 쥐고 끙끙 앓았다. 괜히 그런 말을 꺼내서는.

“그게, 가람이 기절한 동안 저도 잠을 잤습니다.”

“그런데요?”

“꿈을 좀 꿨습니다.”

가람은 잘 듣고 있다는 표정을 지어 주었다. 뮐러는 다시 한참 망설이다가 대단히 부끄러운 태도로 고백했다.

“악몽이었습니다.”

“악몽이요?”

거기까지 말한 뮐러는 가람의 표정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듯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가려 버렸다.

그리고 손바닥 뒤에서 빠르게 웅얼거리며 스스로를 땅속에 파묻기 시작했다.

“알고 있습니다. 아, 다 큰 남자가 악몽 따위에 날카로워지기나 하고. 꼴사납죠. 하지만 꽤 잘 맞는단 말입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저도 마법사니까요. 물론 특출난 편은 아니지만요. 아니, 솔직히 실력이 별로…….”

가람은 뮐러가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서서 끝없는 자기 비하의 문을 열기 전에 그를 잡아챘다. 물론 손은 쓸 수 없으니 언어로.

“잠깐, 이상하게 생각 안 해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정말입니까?”

뮐러는 손가락 사이로 가람을 흘긋 보더니 그녀의 표정이 더없이 진지한 것을 보고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이야기꾼의 자세로 자신의 꿈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별건 아니고, 숲이었습니다. 아주 불길한 숲이었어요. 거기에 제가 있었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뮐러는 멀뚱멀뚱 가람을 바라보았다. 가람도 그 시선을 멀뚱히 받았다.

잠시간의 침묵이 이어진 후 가람은 뮐러가 다음 이야기를 위해 의도적으로 침묵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게 전부예요?”

“예.”

“괴물이 나왔다거나, 뭐 그런 게 아니라요?”

“차라리 뭐가 나왔다면 더 나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 느낌이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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