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긴장한 웨이크의 눈은 모닥불의 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가람은 웨이크의 시선을 따라 키 높은 풀숲을 노려보았다.
잠시 기다리던 웨이크는 검을 앞세우고 아주 느리게 그곳으로 다가갔다. 소리는 전혀 없었다.
발바닥이 땅을 딛는데도 흙이 우그러지는 소리나 사각거리는 소리 하나 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긴장 속에서도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웨이크는 풀숲 바로 앞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신중한 태도로 그 너머를 꿰뚫어 보려고 노력했다. 청력과 안력, 모든 감각이 그 한 점에 집중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숨도 쉬지 못하고 있었다. 폐가 비틀리는 것 같은 그 침묵 속에서, 웨이크가 갑자기 움직여 풀숲을 횡 베기로 베어 버렸다.
헉, 소리 나도록 빠른 동작이었다.
허리 아래를 잃은 풀들이 나풀나풀 나부끼다 쓰러진다. 그 뒤로 나타난 것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새 한 마리였다.
얼굴은 거위를 닮았고, 체형 또한 거위와 비슷했다. 하지만 색깔이 마치 공작새처럼 화려한 데다 긴 날개깃을 드레스 자락처럼 두르고 있었다.
그쪽도 어지간히 놀랐는지 날아서 도망갈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멈춰 있었다.
“후.”
가람만 제외하고 저 새가 무엇인지 다들 아는 눈치였다. 모든 긴장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가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결국 어리둥절하게 뮐러에게 질문했다.
“저 새가 뭔데 그래요?”
“저도 소문만 들었지 실제로 보는 건 처음입니다. 저건…….”
뮐러의 대답보다 빠르게 새가 움직였다. 새는 눈치를 살피더니 곧 흙 묻은 발을 털고 훨훨 날아 떠나 버렸다.
가람은 그 모습을 보고 새가 흙 속에 무언가를 파묻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웨이크는 새가 떠난 빈자리의 흙을 파더니 곧 무언가를 쥐고 돌아왔다. 엄지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은, 메추리알만 한 새하얀 알.
“알?”
“예. 아마 저 새의 알일 겁니다.”
웨이크는 가람에게 보라는 듯 내민 후 충분히 구경했다 싶어지자 다시 원래 자리에 알을 파묻었다.
긴장이 좀 풀렸는지 뮐러가 이 숲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웃으며 설명했다.
“다른 곳보다 기온이 높은 베녹사스 숲에서는 새들이 바닥에 저렇게 알을 묻는다고 하더군요. 그러면 지열로 싹이 튼다고 합니다. 뭐, 모든 새가 그런 건 아니고 특별한 새만 그렇지만요. 방금 본 무지개 거위도 그 특별한 새의 일종입니다.”
“바닥에 알을 묻으면 포식자라거나 그런 피해를, 잠깐, 뭐라고요? 싹이 튼다구요?”
가람은 뮐러가 단어를 잘못 선택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뮐러는 너무나 태연한 표정으로 재차 그 말을 긍정했다.
“예. 싹이요. 그리고 포식자 말인데, 원란은 너무 단단해서 아무도 먹지 못합니다. 저렇게 심어 두면 싹이 나서 알이 주렁주렁 열리죠. 적당히 빛과 영양을 받게 되면 열린 알에서 부화하는 겁니다.”
가람은 말을 들으면서도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불가해한 영역이었다. 가람의 기묘한 얼굴을 본 뮐러가 웨이크에게 손짓해서 무언가를 지시했다.
웨이크는 근처를 뒤지더니 무언가를 통째로 뽑아 왔다. 흙 묻은 뿌리를 탁탁 털며 그가 뽑아 온 것은, 믿을 수 없게도 알이 주렁주렁 열린 식물이었다.
“대체, 이건, 설마 여기 새들은 모두 이런 식으로…….”
가람은 고기나무를 알았을 때와 비슷한 가치관의 붕괴를 느꼈다. 혼란스러워하는 가람의 말을 뮐러가 간단히 부정했다.
“아뇨. 보통은 알을 낳고, 품어서 부화시킵니다. 뭐, 그런 새도 있고 이런 새도 있고 그런 거죠.”
그렇게 말한 뮐러는 웨이크가 뽑아 온 식물에서 알을 따 내었다. 알은 마치 오리알처럼 새하얗고 둥글었다.
크기는 마치 달걀만 했는데, 뮐러는 알을 솥에 넣고 물을 채우더니 모닥불 위에 올려놓고 삶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문득 생각났는지 웨이크에게 확인했다.
“이거 먹어도 괜찮은 겁니까?”
“예.”
가람은 멍한 기분으로 다 익어 포슬포슬한 김이 올라오는 새알의 껍질을 까 한 입 베어 물었다. 탱글탱글한 식감은 달걀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가람은 알 하나를 다 먹어 치울 무렵에야 간신히 이 충격적인 세상을 받아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말도 안 되는 것들을 접할 때마다 지금까지 적응했던 것마저 낯설어지는 기분이었다.
적응해야 한다. 적응하자. 가람은 재차 되뇌며 납득 가지 않지만 납득했다. 그런 게 있는 모양이지.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그런 것이 있는 모양이지. 어차피 낯선 세상이다.
그래, 그냥 있으면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부정해도 의미 없는 짓이었다.
가람은 다시 알 하나를 까서 베어 먹었다. 식물을 닮은 외형과는 달리 무지개 거위의 알은 제법 좋은 단백질원이었다.
짧은 해프닝으로 분위기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하지만 웨이크는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노로안은 알 하나를 입 안에 쑥 넣어 통째로 씹어 삼킨 뒤 말했다.
“그럼 이제 자도록 합시다. 불침번 순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이 말은 웨이크에게 묻는 것이었다. 웨이크는 뽀삐와 말들을 턱짓한 후 대답했다.
“불침번은 필요 없습니다. 대신 불침번을 서 줄 똑똑한 말이 있으니.”
노로안은 그 말에 대단히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을 보며 가람은 리더가 생각보다 여행 경험이 많은 사람은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그건 다른 여행자들의 실정을 잘 몰라 한 착각이었다.
말은 동물 중에 꽤 고가에 속하는 짐승이다. 형편이 뻔한 여행자들은 말과 함께 다녀 본 적이 없고, 있다손 치더라도 멍청한 동물들이 불침번을 서 봐야 얼마나 서겠냐는 식으로 업신여겼다.
물론 어지간히 똑똑한 짐승이 아니라면 불침번의 의미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뽀삐는 아니었다.
“누워서 자면 안 되고, 앉아서 주변에 재를 뿌리고 자야 합니다.”
사람들은 착실히 웨이크가 시키는 대로 잠자리를 마련했다. 가람도 아직 식지 않은 모닥불의 재를 퍼서 뽀삐와 자신 주변에 뿌려 두었다.
사람들은 각자 뭉쳐 잠들었고, 가람과 웨이크, 뮐러도 서로의 등을 마주한 채 말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잠을 청했다.
가람은 양쪽에서 닿아 오는 두 남자의 체온과 숨소리를 들으며 잦아드는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몸이 이렇게나 피곤한데도 잠에 빠져들기가 쉽지 않았다.
너무 시끄러워서 그런지도 모른다. 무슨 풀벌레가 이렇게 말이 많은지 소리 높여 떠드는 통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와 더불어 가물가물 피로 속으로 의식을 내던지려고 할 때마다 부엉이가 머리맡에서 홰치며 날아오른다. 가람은 그때마다 깜짝깜짝 놀라 깨어났다.
다시 의식이 들었을 때, 가람은 누군가가 자신을 흔들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내 자다 깨다 한 덕분인지 잠들기 전보다 더 피곤했다.
그러나 긴장한 웨이크의 얼굴과 목소리가 바로 앞에서 들리자 억지로라도 잠을 떨쳐 버리고 눈을 떴다. 막 동이 트는지, 세상은 새파란 색이었다.
“일어나십시오.”
웨이크는 새벽을 입어 남색인 나뭇잎들을 배경으로 말했다.
그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가람의 손에 직접 메이스를 쥐여 주었다.
“포위되었습니다.”
가람은 잠과 피로에 젖은 힘없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에 힘을 줘 메이스를 잡았다.
몸에 피가 돌기 시작한다. 방금 들은 말의 의미가 천천히 뇌 속으로 파고들었다.
손안에서 메이스 손잡이의 가죽 감촉이 선연하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가람은 서둘러 품에서 권총을 꺼냈다.
웨이크는 미덥지 못한 시선으로 권총과 메이스를 바라본 후 말 세 마리에게 가람을 지킬 것을 당부하고 떨어져 나갔다.
가람이 옆을 보니 뮐러도 함께 서 있었다. 그는 입술을 짓씹으며 허공에 물 덩이 몇 개를 떠올려 두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날이 다 새지 않은 탓에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잠시만요.”
가람은 등 뒤 뽀삐의 등짐에서 손전등을 있는 대로 꺼냈다. 모두 꺼내니 세 개였다.
저번 여관에서 각자의 몫으로 하나씩 챙겨 온 것이다. 가람은 버튼을 눌러 세 개의 전등을 모두 켜서 사방을 밝혔다.
그리고 마침내, 어둠 속 포위자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수십, 아니, 수백 마리는 될 것 같은 끝없는 벌레 인간들이었다.
“벌레!”
“라쿠카잖아!”
“미쳤어, 이렇게 많은 숫자가 대체 어디서?”
“우린 다 죽을 거야!”
“싸워, 죽더라도 싸우다가 죽으라고!”
카착, 카착, 앞발을 비비고 등 날개를 떠는 소리 사이로 남자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가람은 뽀삐와 자신들의 바로 뒤에도 라쿠카가 도사리고 있음을 깨닫고 기겁했다.
거대한 바퀴벌레의 키틴질 눈이 얼비친 손전등의 빛을 반사해 반들반들 빛난다. 그 안에서 사마귀의 것을 닮은 동공이 스르륵 움직여 가람을 쳐다보았다.
가람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권총으로 라쿠카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총성과 함께 벌레의 체액이 튀었다. 털이 숭숭 난 주름진 배가 바닥에 쓰러져 꿈틀거렸다.
가람은 뺨이 차갑게 당기는 것을 느끼며 메이스를 세워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푸르스름한 나무들 뒤로 검은 형상들이 보인다.
바퀴벌레를 닮은 그것들은 바퀴벌레와는 달리 두 발로 서서 제 배를 다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서 더 끔찍했다.
“캬아악!”
그 소리가 신호였다. 수백의 라쿠카들은 마치 행군하는 것처럼 발맞춰 밀려 들어왔다.
가람은 메이스를 휘둘러 두 개의 다리를 막고, 라쿠카가 주춤하는 사이 오른손에 든 권총으로 머리를 날려 버렸다.
웨이크는 앞을 가로막는 라쿠카들을 모조리 베어 버리며 가람과 뮐러 쪽을 걱정했지만, 연신 총성이 터져 나오며 가람 주변에 라쿠카의 시체가 쌓여 가자 곧 자신의 몫에만 집중했다.
생각보다 가람은 잘 싸웠다. 두 다리로 땅을 짚고, 여섯 개의 다리를 팔처럼 휘두르며 배 주름을 꿈틀대는 그 끔찍한 형상이 가람에게서 측은지심을 앗아 갔다.
가람은 그야말로 무자비한 악귀처럼 날뛰었다.
뺨에 벌레의 내장이 묻고, 머리에 체액을 뒤집어쓸 때마다 가람은 더욱 난폭하게 변해 갔다.
라쿠카의 갈고리 같은 손가락이 뺨에 닿아 생채기가 났지만 가람은 스스로가 상처를 입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차츰 그 기세에 질렸는지 가람 쪽으로 가는 라쿠카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가람은 세 개째의 권총을 꺼내 들어 라쿠카들을 한 마리씩 사살했다.
그러나 라쿠카들은 여전히 많았다. 권총으로 한 방씩 쏘는 것으로는 한참 동안 싸워도 끝이 나지 않을 거다.
이러다가 누군가의 체력이 바닥나기라도 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가람은 이런 모습 처음 본다는 듯 휘둥그레져 굳어 있는 뽀삐의 등짐에서 사납게 소총을 꺼내 들었다.
손가락이 뻐근하고 아팠다. 손목도 아프다. 가람은 이를 악물고 어깨에 소총을 견착했다.
그리고 자동으로 놓은 뒤, 자신의 등 뒤에서 슬금슬금 다가오던 라쿠카들에게 탄창이 다 비어 버릴 때까지 발사했다.
뮐러는 이제 더 벌릴 턱도 없었다. 그는 경악한 얼굴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가람이 소총으로 라쿠카들을 도륙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귀청을 찢는 총성의 폭격 속에서 악몽의 그림자는 희미해져 갔다.
탄창 다섯 개를 모두 긁는 것으로 자신들의 등 뒤를 노리던 라쿠카를 모두 처리한 가람은 이번에는 웨이크와 노로안의 일행을 돕기 위해 총을 들었다.
견착했던 어깨가 욱신욱신했지만 가람은 소총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대로 발사하려던 가람은 주춤 멈춰 섰다. 가람과 달리 사람들은 모두 검이나 도끼, 프레일 같은 근거리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덕분에 그들은 라쿠카와 한 덩어리가 되어 뒤섞여 싸우고 있었다. 몇몇은 이미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비틀거리기도 했다. 가람은 목청을 돋우어 소리 질렀다.
“빨리, 이쪽으로 와요!”
가람의 외침에 그녀가 어떻게 싸웠는지 보았던 사람들은 커다랗게 무기를 휘둘러 라쿠카를 떠민 뒤 몸을 뺐다.
웨이크에 노로안, 그리고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등 뒤에 자리한 것을 확인한 가람은 어깨의 통증을 외면하며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실로 속이 시원해지는 광경이었다. 팔과 다리, 체액을 흩뿌리며 라쿠카들은 산산조각이 났다.
가람은 뮐러에게서 계속 다음 탄창을 보급받아 갈아 끼우며 라쿠카들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총탄을 발사했다.
마침내 라쿠카들이 모두 도망치고 나자 가람은 뜨거워진 총신을 천천히 늘어뜨렸다.
경악할 만한 무력에 넋이 빠져 있던 사람들은 라쿠카가 한참 멀어지고 나서야 환호했다.
“아가씨 정말 엄청난 마법사로군!”
“굉장해! 저 남자 마법사보다 훨씬!”
“살면서 이렇게 대단한 마법사를 보는 건 처음이야!”
“대체 이건 무슨 마법이지? 진짜 엄청나군! 불 마법이라고 해도 이렇게 위력적일 수는 없을 거야!”
가람은 마법사가 아니었지만 굳이 그 말을 부정하진 않았다. 설명하기가 오히려 더 귀찮았다.
단지 모든 감탄사에 무언의 미소로 답해 주었다. 그러면서 사방에 산재한 라쿠카의 시체를 떠밀고 그 아래에 깔려 버려진 탄창들을 모았다.
그리고 다시 사람들이 질문을 퍼붓기 전에 뽀삐를 잡아끌고 바위 하나에 자리 잡은 뒤 비어 버린 탄창에 다시 총탄을 채워 넣는 작업에 몰두했다.
이렇게 채워 둬야 급할 때 탄창만 꺼내서 바로바로 쓸 수 있다.
“음, 대체― 혹시 전에 눈사태를 냈던 그겁니까?”
슬쩍 다가온 뮐러가 가람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가람의 검은 머리는 라쿠카의 체액이 말라붙어 굳어 있었다. 그 머리가 짧게 끄덕여지는 것을 보며 괜히 침을 삼켰다.
어쩐지 지금까지 알던 가람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강력한 힘은 사람의 느낌을 완전히 바꿔 버린다.
웨이크 또한 놀란 눈치였다. 그는 뮐러와는 달리 말없이 가람의 옆을 지켰다. 언제나 그랬듯이 묵묵히.
“피곤하네요. 당장 기절해서 쓰러지고 싶을 정도예요.”
“잠을 못 잤습니까?”
“전혀요.”
웨이크는 가람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린 것을 걱정스럽게 내려다보았다.
“여기서는 못 잡니다. 자리를 옮기면 조금 자도록 하죠.”
전투가 끝나자 어느새 날은 밝아 있었다. 이런 밝은 숲속에서 잠을 자 보는 건 처음이지만, 가람은 마다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행군 도중 이런 숲에서 낮잠을 자려고 하면 비난을 면키 힘들 것이다.
하지만 웨이크는 아무도 가람을 비난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확신했다. 생명의 은인이 잠 좀 자겠다는 게 대수인가. 게다가 정말로 가람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강렬한 돌풍이 불었다. 숲속에서 돌풍이 불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바람을 막아서는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돌풍의 끝에는 기이한 울음소리가 함께 따라왔다.
캬아악 하는 그것은 라쿠카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절대로 사람의 언어로는 들리지 않았다.
가람은 손질하던 총을 그러쥐며 벌떡 일어났다. 남자들도 초원의 미어캣처럼 발딱 일어서서 무슨 일인가 하고 사방을 살폈다.
라쿠카가 다시 나타난 건가 했지만 숲속 어디에도 라쿠카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 점이 더욱 불길하게 느껴졌다.
긴장 속에서 수색이 계속되었다. 소리는 들리는데 괴물의 그림자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때였다.
“하늘! 하늘이야! 하늘이라고!”
누군가가 발작하듯 연이어 외쳤다. 그와 거의 동시에 활에서 화살이 쏘아져 나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쐐에엑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강풍이 불어닥쳤다. 처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한 바람이었다.
가람은 마치 비행기에 매달려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날아가지 않기 위해 부둥켜 잡은 나무 위로 뮐러와 웨이크의 팔이 단단히 눌러진다.
모래와 낙엽 온갖 것들이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마치 작은 회오리바람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그것들이 찔러 대서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가람 일행은 눈을 감고 바람이 멎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바람이 멎은 후 눈을 떴을 때, 눈앞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