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스파인더-94화 (94/256)

94화

“베록과 무르하라를 오가는 상인입니다. 우연히 만났는데, 무르하라까지 간다기에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무르하라요?”

“예. 저기요.”

뮐러의 턱짓에 가람의 시선이 달라붙는다. 과연 멀찌감치 있는 황무지의 능선에 커다란 빛이 보였다. 그 빛으로 가늠하건대, 보통 번화한 도시는 아닐 것이다.

황무지의 바람은 거칠고 메마른 땅의 밤하늘은 유독 검다. 그 땅을 걸었던 여행자들은 검은 하늘을 잉크 삼아 메마른 땅에 마을을 그렸다.

거대한 도시를 그리는 것은 펜촉이 아닌 검 끝이다. 도시는 거친 바람과 싸워 이긴 전사들의 핏방울로 채색되었다.

태양의 붉음에 지지 않는 온통 새빨간 도시.

그것이 남부로 떠나는 여행자들이 처음으로 들르는 도시, 무르하라다.

밤하늘에는 별이 있고, 황무지에는 도시가 있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고운 모래가 휘몰아치는 사막이라, 여행자들은 사막의 두려운 소문들을 이 도시에서 삭이곤 했다.

사람을 집어삼키는 유사와 돌연 나타난다는 용권풍, 셋이 잠들어 둘이 일어나게 된다는 독충의 무서운 독과 신기루에 홀려 실종된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시 북부로 걸음을 돌리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반드시 사막을 지나야 하는 사람들도 있는 법.

많은 사람들은 무르하라에서 동료가 되기도 했다. 나도 두렵고, 너도 두렵다면 함께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술은 피를 달아오르게 한다. 많은 여행자들이 술로 피를 데우고 그것을 용기라 착각한 채 일행이 되었다.

그리하여 무르하라로 향하는 이들은 거짓 용기에 발을 담그고 동료를 찾는 여행자, 목숨과 돈을 맞바꾼 카라반, 젊었을 적 혈기를 소모하기 위한 무모한 이들이 많았다.

“언니.”

가람이 앳된 목소리에 고개를 숙이니 무릎에 바짝 달라붙은 꼬마가 보였다.

가람과 눈이 마주친 꼬마가 입을 한껏 벌리며 웃어 보인다. 마냥 좋은 듯했다.

구경거리마냥 구경당하고 있는 느낌이었지만 그 웃음이 너무 해맑아 별로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안녕, 이름이 뭐야?”

“마야!”

“몇 살?”

“어? 어…….”

마야는 갑자기 혼란에 빠지더니 열 손가락을 다 더해서 제 나이를 셈하기 시작했다.

어, 어, 하고 벌린 입으로 빠진 이가 훤히 보인다. 그게 귀여워서 가람은 뮐러가 먹여 주는 음식을 넙죽넙죽 받아먹으며 대답을 기다렸다.

“백 살!”

아무리 생각해도 백 살까지는 안 되어 보였지만 마야는 대답하곤 자랑스러운 얼굴로 우쭐거렸다.

꼬마의 입장에서 백 살은 어딘가 전설 속에서나 나오는 나이인 모양이다. 그 모습이 아주 해맑아서 가람은 손의 통증을 반쯤 잊어버렸다.

“대단하구나.”

“응응!”

“이는 언제 빠진 거니?”

“옛날에!”

대답 한번 간결하다. 가람은 저도 모르게 웃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굳이 웃음을 멈추고 싶지는 않아서 그대로 웃으며 다시 질문했다.

“아프지 않았어?”

“응, 괜찮아. 아빠가 새 거 준댔어!”

“아빠?”

“저기, 저어기― 우리 아빠 있다! 지금 마야 새 이빨 사러 가는 길이야.”

손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아까 가람과 인사했던 남자다. 아마 이 상단의 리더인 모양이었다. 심각한 얼굴로 다른 상인과 무언가를 의논하다가 곧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 앞에서 웨이크는 솥의 고기만 건져서 먹어 치우고 있었다. 가람은 한숨을 쉬려다가 뮐러가 먹여 주는 음식을 입에 담았다.

“좋은 걸로 샀으면 좋겠네.”

“응! 사탕 맛 나는 이빨로 사 달라고 하려고. 언니는 이름이 뭐야?”

그런 이빨을 사면 금세 녹아 사라지거나 새 이빨을 구해야 할 텐데.

가람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별말 없이 대답했다.

“한가람.”

“한가람 언니야?”

“한이 성이고, 가람이 이름이야.”

갑자기 아이의 얼굴이 조심스러워졌다.

“귀족이야?”

“어? 아니, 그런 거 아냐. 언니네는 다 성이 있어.”

“그렇구나. 대단하다.”

대화를 나누던 가람은 문득 일행들 사이로 이질감이 드는 사람이 있음을 깨달았다. 낯선 사람들은 모두 사십 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들이다.

그러나 유독 그 사이로 이십 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키 큰 남자가 끼어 있었다.

훤칠한 키는 앉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웨이크보다 머리 한 개는 크다. 지금까지 보았던 사람들 중 가장 컸다. 한 덩치 하는 돛새치 용병대장 브라한보다 더 큰 듯했다.

“뮐러, 저 사람 누구예요? 저 사람도 상인?”

“예? 아, 말 안 했네. 저 사람 케르타입니다.”

“네?”

“이상한 풀을 막 먹더니 저렇게 변하던데요. 옷은 웨이크 옷입니다.”

“아, 그래서 옷이 낯익었, 아니, 왜 따라오는 거예요?”

“글쎄요?”

뮐러는 도리어 가람에게 질문했다. 웨이크의 옆에 앉아 솥의 야채만 골라 먹던 케르타가 제 이름이 나오는 것을 알고 고개를 돌린다.

밤에 녹아들 것 같은 새카만 머리칼에 불 앞에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공과 홍채가 구분이 가지 않는 새카만 눈동자가 마치 빨려들 것 같다.

그는 가람이 깨어난 것을 이제야 안 모양이다. 웨이크와 짝을 맞춰 웨이크는 고기를, 그는 야채를 탐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여어.”

손을 들어 인사해 오는 목소리가 굉장히 좋다. 어쩐지 능글능글한 기색도 묻어 있었다.

그러나 다음 말 때문에 가람은 기껏 뮐러가 먹여 준 음식을 그대로 땅에 뱉어 버리고야 말았다.

“똥 싸기 좋은 밤이지?”

가람의 표정에 생각이 차올랐다. 그러나 사실 생각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멍하게 케르타를 바라보던 가람은 뒤늦게 자신이 입을 벌리고 있음을 깨닫고 턱을 다물었다.

한참 대답을 고르던 가람은 그 적응 안 되는 농담에 답할 만한 재주가 없음을 인정하고 단순히 긍정하기로 했다.

“그렇군요.”

“같이?”

이번에도 조금 늦었다. 뭘 같이 하자는 건가 하고 잠시 생각하던 가람은 몇 박자 늦게 거절했다.

“됐어요.”

별로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는데 어쩐지 힘겨운 기분이다. 그러나 조금 유쾌하기도 했다.

아니, 유쾌한 것이 확실하다. 지나고 나니 이 말은 대단히 유쾌한 성격이었다. 사람을 당혹시키긴 하지만, 악의는 없다.

자리에서 일어나 어둠 속으로 향하는 케르타를 바라보다가 그가 허리춤을 풀며 말라 죽은 고목나무 뒤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시선을 돌렸다.

더 보고 있는 것이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리를 피해 주는 상식은 있어 다행이었다.

“계속 따라오려는 걸까요?”

“모르죠.”

대충 대답했지만 뮐러는 은근히 케르타가 함께해 주길 바라는 듯싶었다. 가람도 케르타가 함께하겠다면 마다할 생각은 없었다.

농담이 곤혹스럽긴 했지만 똑똑하고 유쾌한 성격이라 동행해 준다면 분위기가 한층 즐거워지리라.

그를 보고 있으면 트리거가 떠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새하얀 털 사이로 코를 박으면 은근히 맡아져 오던 동물의 체취, 따듯한 체온과 강한 박동은 생각하는 것만으로 위안이 된다.

가람은 잠시 그 온기를 떠올리다가 코끝을 스치는 찬 바람에 정신을 차렸다. 나무 온기가 없는 황무지의 바람은 밤이 되면 시리도록 차가워진다.

그러나 날이 밝으면 반대로 뜨거워질 것이다. 그루들의 숲으로 들어가기 전, 먼발치에서 보기만 했던 이글거리는 땅을 내일은 걸어야 한다. 많이 먹고, 최대한 자야 했다.

뮐러는 나머지 음식을 가람에게 더 먹여 주려다가 가람의 거절을 받아들였다.

가람은 붕대 감은 손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모닥불의 빛을 받은 손에 길게 음영이 진다.

정상적으로 움직여지는 것을 보니 아주 크게 다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잠시 심호흡을 한 가람은 그대로 주먹을 쥐었다.

손이 통째로 으스러진 것 같은 고통이었다. 뭘 하나 보고 있던 뮐러가 뜨악한 표정으로 대신 비명을 질렀다. 모닥불에 앉은 상인들과 웨이크가 의아한 얼굴로 돌아본다.

가람은 어금니를 으스러뜨릴 듯 악물고 천천히 손을 폈다. 경련에 가깝게 떨리는 손가락들은 각자 생명이라도 가진 듯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천천히 쫙 편 손바닥을, 가람은 다시 말아 쥐었다.

뮐러가 황급히 손을 붙잡아 만류하고, 상인들은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그 당황한 시선 속에서 가람은 뮐러의 만류를 뿌리치고 몇 번 더 손을 쥐었다 펴 본 후 총을 쏘기까지 해서 사방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 후로 계속 손을 움직여 충분히 고통에 익숙해진 가람은 뮐러가 들고 있던 숟가락을 받아 들고 직접 식사를 끝냈다. 뮐러의 질린 시선이 식사 내내 가람에게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대체 왜 그런 겁니까?”

“전에 다쳐 보고 느낀 건데, 아프다고 계속 움직이지 않으면 더 아파지거든요.”

“그래도 도시로 가서 치료받았어야죠! 그렇게 막 움직이다니.”

“도시까지 적어도 사흘은 걸릴 것 같던데요. 그동안 내내 저 밥 먹여 주시려구요?”

“그보다 더한 것도 해 줄 수 있습니다! 배에서도 다쳤을 때 제가 수발을 들었잖습니까?”

뮐러는 황당함을 분노로 바꾸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단호하게 외치는 소리에 가람이 갑자기 입을 꾹 다물었다.

뮐러는 정말로 화를 내고 있었다. 당황하던 가람은 변명처럼 대답했다.

“그때는 제가 바로 움직일 필요가 없었으니,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잖아요. 그때보다 훨씬 덜 다쳤고, 움직일 수 있을 정도면 움직여야죠.”

뮐러의 턱이 단단하게 다물리더니 곧 몇 차례의 심호흡이 이어졌다. 깊게 들숨과 날숨을 내뱉던 그는 좀 진정되었는지 이번에는 소리 지르지 않고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애초에 왜 그렇게까지 움직여야 하냐는 겁니다. 마을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도 아니고, 저기 바로 마을이 보이는데, 마치 나와 웨이크가 없기라도 한 것처럼 왜 다 혼자 하려고 하는 겁니까? 우리는 동료가 아니었습니까?

비록 시작이 노예 경매장이긴 하지만, 그리고 가람도 이계, 아니, 아무튼 그렇지만, 가람은 단 한 번도 우리를 노예 취급하지 않았잖습니까? 그래서 저는 동료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겁니까? 그 정도도 그렇게 불편하게 생각할 정도로?”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럼 의지를 좀 하십시오. 그렇게 다 찢어진 손으로 뭘 하려고 들지 말란 말입니다.”

섭섭함이 듬뿍 묻어나는 그 말에 가람은 고마우면서도 들어줄 수 없어서 서글펐다.

그러나 입으로나마 그러마 하니, 뮐러는 조금 부끄러운 기색으로 흠흠 목을 가다듬고는 침낭을 펴 주겠다며 일어섰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모닥불가의 상인들이 눈치 없이 휘파람을 불어 댄다. 뒤늦게 돌아온 케르타도 나무 뒤에서 일을 보며 뮐러의 열변을 다 들은 눈치였다.

히죽히죽 기분 나쁘게 웃는 얼굴을 피해 뮐러는 서둘러 설거지를 하고 잠자리를 준비했다.

의지를 해 달라니.

가람은 그 말을 곱씹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언젠가, 헤어져야 할 사람들이다. 빠를수록 좋다. 헤어져 주는 것이 두 사람에게도 좋을 거라 생각해서 은연중에 정을 떼려고 했던 모양이다.

어차피 본래 세계로 돌아가면 이 세계와는 끝이다. 정을 줘서 좋을 것이 없었다. 의지를 해서 좋을 것도 없었다.

홀로 걷게 될 때는 의지할 사람이 없을 테니까. 익숙해지지 않는 편이 좋다.

가람은 침낭을 펴며 붉어진 목덜미로 어서 자라고, 환자는 더 자야 한다며 타박하는 뮐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의지는 하지 않아도 기억해 두는 것 정도는 좋을 것이다. 이곳에서 모르드레드와 처음 만났던 것이 액땜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좋은 사람들이었다.

뮐러는 그 시선에 공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주춤주춤 물러서다가 급히 뽀삐를 끌어다 놓고 자리를 떴다.

얼떨결에 끌려온 뽀삐만 영문을 알 수 없어 눈을 끔뻑이는데, 가람을 사이에 두고 다른 편에 케르타가 슬쩍 다가와 앉는다.

옆에서 자려나 보다 하고 내버려 두던 가람은 케르타가 바짝 밀착해 오자 당황했다. 케르타는 반짝반짝 빛나는 얼굴로 은근슬쩍 귓속말로 질문했다.

“혹시 아까 그거 사랑싸움이었어?”

“아니거든요.”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콧방귀를 뀌자 금세 시무룩해진다. 얼굴은 말도 안 되게 잘생겨서, 몸매도 쭉 빠져서, 외형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주제에 성격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가람은 내내 옆에 붙어 쓸데없는 질문을 퍼붓는 케르타를 외면하고 도망치듯 눈을 감았다.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 졸리지 않았지만, 망상 어린 질문을 듣는 것보다 차라리 자는 것이 좋으리라. 많이 자 둘수록 좋을 것이다. 내일은 또 고될 테니까.

가람의 그런 결정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날이 밝고 이동하기 시작하자, 등 뒤에 그림처럼 훌쩍 멀어진 숲이 그리워 못 견디도록 황무지는 무더웠다.

겨우 3km 만에 이렇게 기온이 바뀔 수 있는가 싶을 정도다. 그루의 숲도 시원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적당히 따듯한 수준이었다.

황무지는 여행자들을 통째로 구워 버리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이다. 가람은 모래와 하늘밖에 없는 2면적인 세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도무지 가까워지지가 않네요.”

“시야를 가리는 게 없으니 실제로 보이는 것보다 멀리 있는데도 가까운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그리고 뜨거운 공기는 시야를 왜곡하거든요.”

딜런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상인 중 한 명이 설명해 주었다. 뮐러가 가람에게 고용되어 있는 몸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 상인들은 부쩍 가람에게 친절해졌다.

메마른 지역은 물 마법사가 치유 마법사만큼이나 대접받을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지역이다.

그러나 마법사가 지내기 워낙 힘든 환경 탓에, 황무지와 사막을 떠도는 물 마법사는 없었다.

“얼마나 가야 할까요?”

“말을 타고 달린다면 하루 정도, 이대로라면 사흘 정도 걸릴 겁니다.”

딜런의 말에 혀를 주욱 빼고 걷던 뽀삐가 콧김을 내뿜었다. 털이 검은 탓에 더위를 더 많이 타는 모양이었다.

마찬가지로, 케르타 또한 더워지자 급격히 말수가 줄어들었다. 덕분에 상인들과 더 대화를 많이 할 수 있게 된 것은 좋은 일이었다.

“제 말을 보니, 달리는 건 좀 힘들겠네요.”

“그건 저희도 마찬가집니다. 보통 해 지기 시작하는 시간쯤부터 밤이 깊기 전까지 달리지요.”

“그렇게 해서 하루라는 건가요?”

“뭐, 대충 그렇습니다.”

갑자기 모래바람이 불었기 때문에 가람과 상인은 입을 다물었다. 뮐러는 상단 사람들까지 쓸 물을 뽑아내느라 지친 탓에 말이 없었고, 웨이크는 원래 말이 없어서 현재 상인들과 대화하는 것은 가람뿐이었다.

“그런데 무르하라는 무슨 일로 가는 겁니까? 이렇게 땀을 흠뻑 흘리면서. 보아하니 더위에 익숙지도 않은 사람들 같은데.”

“가장 가까운 도시라고 들어서요.”

“뭐, 그거야 그렇지만.”

딜런의 말대로 가람은 코끝으로 땀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나마 습기가 없어 불쾌지수는 낮았지만, 콧속까지 말려 버릴 듯한 열풍은 오븐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조금 구워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상인들이 제공해 준 사막 옷이 아니었더라면 가죽옷을 입은 사람구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길을 어지간히 잘못 든 모양입니다. 그런 옷을 입고 무르하라로 가다니.”

“그런 옷이요?”

가람의 질문에 딜런은 어쩐지 능글맞게 히죽 웃었다. 가람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대답을 구하는 시선을 쭈욱 흩뿌리는데, 어쩐지 하나같이 묘한 얼굴이다.

“몸을 꽁꽁 싸맨 옷 말입니다. 저 남쪽보다 덜한 무르하라에서조차 그런 옷은 입지 않아요.”

가람은 더욱 의아해져서 상인들을 둘러보았다. 확실히 속에 무엇을 입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죽옷이 아닌 것은 알겠다.

얇은 천을 하늘하늘하게 몇 겹 걸친 것 같은 옷이었는데, 바람이 불 때마다 속에 공기가 차서 너울거리는 것이 시원해 보인다.

그에 비해 빈틈없이 몸을 조여 맨 가람의 차림은 확실히 더워 보일 만도 했다.

하지만 이 능글맞은 미소는 이 사막에서 가죽옷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을 향한 것이라고 보기는 좀 힘들었다.

짓궂거나, 안타까운 표정이라면 이해하지만 왜 음흉하기까지 한 미소를 짓는 건지?

“암암, 안 입고말고.”

“아, 벌써부터 그립구만, 무르하라.”

동경과 황홀함, 음흉함이 뒤섞인 기이한 표정들이다. 상인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떠들어 대자 가람도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저기, 무슨 말을 하고 있으신 건지 모르겠는데 설명 좀 해 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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