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가람은 동글동글한 고기 경단을 베어 물었다. 어떤 요리가 어떤 맛인지 모르니 무엇 하나를 입에 넣을 때마다 모험하는 기분이다.
조심스레 이 사이에 두고 씹자 경단 안에서 걸쭉한 육즙이 팍 튀어나와 주르륵 흘렀다.
설마 고기 안에 이런 게 있을 줄 몰랐던지라 가람은 턱을 타고 줄줄 흐르는 육즙을 닦아 냈다. 뒤에 서 있던 종업원 하나가 방심했던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린다.
“저기, 저 사람들 좀 나가게 하면 안 돼요? 좀 불편한데.”
가람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다가 곧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별실을 빌린 것은 자신이다. 거슬리면 나가라고 하면 그만이었다.
가람은 간단하게 나가 줄 것을 요청했고, 곧 방 안에는 긴 식탁과 음식, 가람과 웨이크, 뮐러만이 남았다.
“나갔으니 말 편하게 해도 되겠군요.”
“지금까지도 편하게 했잖아요. 지스나하에 들어가느니 뭐니 하면서. 그런 거 말하면 안 되지 않아요?”
“허무맹랑한 허풍이라고 생각할걸요. 아니면 별생각이 없거나. 어디 이야기책의 이야기라도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대수롭잖게 말하며 뮐러가 다시 낙타 다리에서 살점을 떼어 내 우물거린다. 비법의 양념을 넣었다는 이 다리구이는 낙타 특유의 고기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아무튼 독특한 식감이라, 가람 또한 얇게 부친 밀전병에 코코넛 속과 낙타 고기를 넣고 쌈을 쌌다.
“여기 음식 괜찮네요.”
“그렇습니까? 전 향신료 냄새가 너무 강해서……. 그나마 이게 덜하니 먹을 만하군요. 웨이크는 어떻습니, 아. 아닙니다. 계속 먹어요.”
커다란 새 다리 하나를 통째로 들고 씹던 웨이크가 눈썹을 들어 올리다가 다시 다리에게 덤벼들었다.
칠면조인가? 다리가 굉장히 크네. 가람은 대충 추측하다가 그 생각을 날려 버렸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하지만 음식이 정말 괜찮네. 실로 오랜만에 단순히 구운 고기, 삶은 고기가 아닌 요리가 된 고기를 먹는 기분이었다.
기차에서도 음식이 나쁘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곳의 음식은 가람이 살던 곳과 거의 흡사한 느낌이다.
“어디까지 말했었습니까?”
툭 질문을 던진 뮐러가 가람이 먹었다가 얼굴을 구겼던 꿀에 절인 대추를 집는다. 입 안에 넣더니 곧 얼굴이 구겨졌다. 하지만 따라서 입에 넣은 웨이크는 제법 마음에 드는 얼굴이었다.
“지스나하에 들어가는 게 그렇게 미친 짓이냐고 물었었죠.”
야자 술로 입을 헹궈 낸 뮐러가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사실 꼭 들어가야 하는 게 아니라면 말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꼭 가야 해요. 그러니까 이야기나 해 줘요.”
단칼에 자르는 가람의 말에 뮐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고민도 안 하는 겁니까?”
“안 해요. 빨리, 설명.”
바늘이 저런 곳을 가리키다니, 세상에나 무서워라, 들어가야 하나 어쩌나 하며 갈팡질팡하는 것은 망망대해에서 뭐가 살고 있을지 모를 시커먼 바닷속으로 뛰어들 결심을 해야 했을 때 끝내 버렸다.
베녹사스에서 용에게 쫓기다가 간신히 도망친 후 다시 자살이나 다름없는 짓을 하며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는 그나마 남은 망설임마저 날려 버렸다.
사실 목숨을 소중히 여긴다면 할 수 없는 일들이다. 가람은 잠시 생명의 소중함을 잊기로 했다. 물론 그 생명이란 자신의 생명이다.
매우 단순한 원칙에 의해 가람은 움직였다. 패스가 가리키면 간다. 그곳이 어떤 끔찍한 곳이라도 간다.
가서 패스를 찾아오지 않으면 바늘은 다음을 가리키지 않으니까. 오래 고민해 봐야 저울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은 바뀌지 않는다.
가서 찾아오던가, 아니면 영원히 패스를 찾지 않고 이쪽 세계에 남아 있던가.
“사실 미궁이긴 하지만, 거긴 사람을 버리는 쓰레기통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감옥이라는 걸 알았을 때부터 각오는 했어요.”
“가람도 책을 읽어서 알겠지만, 수감된 죄수들은 모조리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입니다. 물론 그중 그나마 덜 극악한 작자들도 있지만, 결국 지옥에서 살아남으려면 악마가 되는 수밖에 없단 말입니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것은, 지금까지 그 미궁으로 들어가서 멀쩡하게 나온 사람이 없습니다. 미치거나, 팔다리가 하나씩 없거나, 아니면 다 없거나 해서 나오죠.”
“팔다리가요?”
“미궁 속에 밭이나 식료품 상점이라도 있겠습니까?”
“음, 하긴 그렇겠죠.”
“그리고 들여보내기만 하고 나오는 건 확인하지 않아요. 모든 지하 미궁 형은 1년 동안 내려집니다. 하지만 겨우 1년을 그 안에서 버티는 사람이 없어요.”
가람은 무심코 앞에 있는 것을 뜯어 먹다가 그것이 도마뱀의 앞다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친절하게도 재료의 형태를 보존한 섬세한 요리법 덕분에 도마뱀에는 혀까지 멀쩡하게 붙어 있었다.
잠시 멈칫했던 가람은 도마뱀의 나머지 다리까지 뜯어 입 안에 던져 넣었다. 담백한 것이, 꽤 괜찮다.
“그래도 영원히 가두는 게 아니라 다행이네요. 들어갔다가 나와야 하는데, 어떤 방법이 좋을까요. 사실 나오는 게 제일 걱정이네요.”
“가장 교과서적인 방법은, 간수를 매수하는 거죠.”
“매수당하지 않으면요?”
“공간 이동이라도 해야겠죠. 스크롤을 구할 수 있을 때의 말이지만, 제 생각에 못 구할 것 같은데요. 이런 남쪽에는 마법이 귀해요.”
가람은 벤실럿을 떠올렸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공간 이동 마법을 사용하다가 자신마저 백치가 되면 큰일이다. 하지만 굳이 마법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법은 많았다.
단 1회에 한한 공간 이동이라면 패스도 얼마 들지 않을 테니 그렇게 빠져나와도 된다.
슬쩍 가격을 알아봤더니 1회의 공간 이동에는 5패스가 들었다. 근거리에 한한 것이지만, 그 정도로 충분하다.
그래도 5패스가 아니라 단 1패스도 쓰고 싶지 않은 것이 가람의 솔직한 심정이라 가람은 간수를 매수해 보는 방향으로 마음을 굳혔다.
“좋아요. 간수를 매수해 보죠. 뮐러가 매수할 수 있을 만한 간수를 좀 알아봐 줘요. 아니면 간수가 누구인지라도 알아봐 주면 좋고요. 부디 청렴한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전 안으로 들어갈 때 가져갈 만한 걸 좀 챙겨야겠어요.”
“그런데 들어갈 때는 어떡할 겁니까? 간수는 이미 잡힌 죄인만 관리합니다. 간수가 따로 들여보내 줄 순 없을 것 같은데요.”
뮐러의 질문에 가람은 대수롭잖게 대답했다.
“범죄자가 되면 되죠.”
* * *
매수는 낚시와 비슷하다. 목표물의 앞에 미끼를 흔들어 보이는 것이다. 물고기는 미끼를 물 수도 있고, 물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식성 좋은 물고기는 반드시 미끼를 물기 마련이다.
매수의 어려움은 식성 좋은 물고기를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있다. 만약 식성 좋은 물고기가 아니라면 물고기들에게 경각심만 주게 될 뿐이다. 가람은 그 사실을 깊이 숙지했다.
나이 서른세 살, 이름은 가파르탐.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로, 황금 모래 여관의 시종에게 이야기책에서 읽은 지하 미궁이 흥미로워 그런데, 혹시 관련된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을 만한 사람, 감옥을 담당하는 간수를 알고 있냐고 운을 띄웠더니 그중 한 명이 자주 가는 술집이 있다며 냉큼 알려 주었다.
물론 가람의 손안에서 반짝이는 10골드 금화는 횡재했다는 얼굴의 점원에게 넘어갔다.
요즘 들어 점점 더 금전 감각이 무뎌져 가는 기분이다. 물론 가람의, 가람 본인의 입장에 한한 금전 감각은 멀쩡했다.
무한한 재산을 가졌는데 억만금이라고 아까우랴. 가람의 현재 금전 감각은 본인의 자산 상태에 대비해서 완벽히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었다.
무뎌져 가는 금전 감각이란 다른 사람 입장에서의 금전 감각을 이야기한다.
돈의 무게가 거추장스러울 지경이 되니, 금화나 보석은 같은 무게의 돌 정도 가치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될 수 있으면 가벼운 거액 금화를 갖고 다니고 싶었지만 이목을 끌지 않을 정도로 금액을 조절할 필요는 있었기에 가람은 늘 소액 금화를 들고 다녔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목을 끌지 않을 정도를 측정하는 기준 금액이 점점 높아지는 것이다.
물론 그리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다들 동양에서 온 어디 귀한 집 아가씨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으니.
“의심스럽지 않도록 술을 한 잔 사도록 하세요.”
뮐러가 물고기를 구별하는 법을 다시 한 번 경각시킨다. 가람은 고개를 끄덕이고 바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가파르탐에게 접근했다.
괜히 경계심을 갖게 만들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접근하는 사람은 가람 하나뿐이다.
뮐러와 웨이크는 일행이 아닌 척 멀찌감치 탁자에 앉아 식사를 하는 시늉을 했다.
가파르탐의 옆자리가 좀처럼 비지 않아 한참을 기다려야 했기에 그동안 먹은 음식들로 배가 부른 상태라 뮐러는 스푼으로 고깃국을 휘젓기만 했다.
“그거, 맛있나요?”
이런 식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지만 가람은 자연스럽게 가파르탐의 옆에 앉으며 말을 건네었다. 자리가 비길 기다리면서 꽤 마시는 것을 보았는데, 가파르탐의 안색은 멀쩡했다. 별로 좋지 않은 징조였다.
“아가씨가 마시긴 독하지.”
“아, 정말요? 뭐가 맛있나요? 이곳 음식은 완전히 모험을 하는 것 같아요. 좀 무난한 것 없을까요?”
가람은 일부러 그에게 친근함을 주기 위해 현지인들이 입는 옷을 챙겨 입고 있는 상태였다.
아주 얇은 직물을 차도르처럼 헐렁하게 몸에 몇 겹 두르고 긴 띠를 허리에 묶어 늘어뜨린다.
띠의 끝에는 화려한 수가 놓여 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끝에 보석을 달기도 한다. 어쨌거나 노출이 심한 의복만 있는 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방에 딸린 하인에게 부탁해 이곳 식으로 머리도 땋고 오랜만에 옅게 화장도 했다. 최대한 유순한 인상을 만들어 내기 위해 거울 앞에서 표정을 만드는 연습도 했다.
뮐러와 대화의 패턴도 연습했지만, 그렇게 많은 연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연습의 성과가 발휘된 덕분에 겉으로 그 긴장이 표출되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그렇게 꾸민 보람이 있었는지 남자는 무뚝뚝한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상냥하게 굴었다.
“꼬모도는 어때?”
“윽, 그건 너무 많이 마셨어요. 여긴 마실 게 그거밖에 없어요?”
가파르탐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꿀을 넣은 야자 술을 추천해 주었다.
가람은 바를 지키는 남자에게 두 잔의 야자 술을 주문했다. 한 잔은 가파르탐의 몫이다.
“제가 한 잔 살게요.”
가람은 술을 주문하고 내심 긴장해 그의 반응을 살폈다. 이것이 일차적 탐색이다. 매수가 가능한 사람은 무엇이든 공것을 받아먹는 데 익숙하기 마련이다.
만약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좋으니 답례로 무언가를 건넬 것이다. 아니면 크게 불편해하거나.
보통 가람은 비리꾼들을 싫어하지만 지금만큼은 제발 가파르탐이 비리꾼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인지, 가파르탐은 조금 어색하게 야자 술 잔을 받았다. 그러나 잠시 생각하더니 곧 술잔을 가람 쪽으로 밀었다.
“왜 나에게 술을 사는 건가?”
가파르탐의 눈매가 가늘게 좁아진다. 어색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의심스러워하고 있다. 실패였다.
가람은 순간적으로 얼굴에 떠오르려는 실망감을 재빨리 잡아채어 숨겼다. 그러곤 순진한 척 의아한 얼굴을 만들었다.
“그냥 사고 싶으니까 사는 거죠. 뭐 재밌는 이야기 없나요? 아저씨는 여기 토박이 같은데.”
“나는 이야기꾼이 아니라서, 아가씨 같은 사람이 좋아할 재밌는 이야기는 잘 몰라.”
가파르탐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마시던 술에 집중했다. 가파르탐이 비리꾼이 아니라면 가람도 별 흥미가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흥미를 거두면 의심을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가람은 괜히 투덜거리며 야자 술로 입술을 적셨다. 마시지는 않는다. 취해서는 안 되니까.
“친절한 사람인가 했더니.”
가파르탐은 대꾸 없이 술만 마셨다. 가파르탐의 다른 동료들에 대한 정보라도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금 괜히 질문해 봐야 의심만 사게 될 뿐이다.
밖으로 나가서 다른 주점을 뒤져야 하나, 아니면 어디 다른 곳이라도 뒤져 봐야 하나 고민하는데 갑자기 가파르탐의 옆에 웬 남자가 곱지 못한 기세로 걸터앉았다.
“오늘도 싸구려 술인가, 가파르탐?”
가볍게 가파르탐을 조롱한 남자는 보란 듯이 고급술로 보이는 것을 주문했다.
가람은 남자가 입고 있는 복장의 특징으로 보아 그가 가파르탐과 같은 간수임을 깨달았다. 가람은 숨을 죽이고 가파르탐과 그 남자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가파르탐은 명백히 시비로 보이는 말들을 깨끗이 무시하고 조금 빠르다 싶은 속도로 술잔을 비우더니 주점을 뛰쳐나가 버렸다.
“흥, 재미없는 놈.”
한 차례 이죽거린 남자는 바에 놓인 술잔을 들었다. 기하학적인 세공으로 뒤덮인 놋쇠로 만든 잔 속에서 기묘하게 푸른 술이 출렁인다.
언뜻 보면 꼬모도처럼 보였지만 훨씬 투명했다. 가람은 남자가 조심조심 술을 마시는 것을 지켜보았다.
호기롭게 주문하긴 했지만 남자도 함부로 마시는 술은 못 되는 모양인지 아끼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쨌거나 새로운 목표물이 제 발로 들어온 셈이라 가람이 말을 붙여 볼까 하는데, 마침 술잔을 내려놓는 남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여행자?”
남자의 눈동자가 가람을 위아래로 한 차례 훑는다. 아주 찰나였으나 남자는 순식간에 가람이 돈푼깨나 있는 여행자라는 것을 알아챘다.
손톱만 한 새끼 도마뱀의 부드러운 가죽을 놀랄 만한 기술로 엮어 만든 가죽 부츠와, 허리끈 끝의 금 자수, 전체적으로 좋아 보이는 영양 상태.
덧붙여 여행자의 신발은 여행자나 마찬가지이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냥 가죽 부츠에 그냥 옷이지만, 남자는 눈썰미 하나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었다.
“맞아요. 술이나 한잔 하실래요?”
가람은 가파르탐이 두고 간 야자 술을 권했다. 남자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로 술잔을 받아 들며 말했다.
“내게 더 좋은 술을 사 줄 수 있으리라고 믿어. 나는 가파르탐보다는 융통성이 있지만, 고급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