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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파인더-102화 (102/256)

102화

죄수들이니 정중한 대우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가람은 그야말로 짐짝처럼 취급되어 지하 미궁의 입구까지 걸어야 했다.

걷고 있는데도 등이나 엉덩이 따위를 몽둥이로 쿡쿡 찔러 왔다. 노새나 돼지라도 치는 것 같은 태도였다. 그러나 불평하는 대신 가람은 걷는 것에 신경을 집중했다.

어느새 정오인지 햇살이 눈부시다. 긴장 때문에 잠을 전혀 못 잔 가람의 눈 밑으로 거뭇거뭇한 그림자가 졌다. 덕분에 그럭저럭 죄수처럼 보이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시커먼 구덩이가 나타났다. 지름 5미터는 넘을 것 같은 커다란 구멍이다.

마치 개미굴을 연상시키는 형태였는데, 내리쬐는 뙤약볕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깊은지 구멍은 검기만 했다. 구멍 옆에는 맨홀 뚜껑 같은 거대한 뚜껑이 놓여 있다.

그동안 들었던 모든 얘기들은 조금의 시적 비유도 허락되지 않은 거였다. 이곳은 정말로, 사람을 버리는 쓰레기통이다.

“걸어. 뛰어내려라.”

간수가 각진 목소리로 지시한다. 죄수들은 쭈뼛거리다가 그제야 불에 덴 듯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난 아니야! 겨우 이런 걸로 날 여기에 집어넣을 순 없어!”

그 고함 소리를 시작으로 다른 죄수들도 불평을 터뜨린다. 그러나 맨 먼저 고함을 지른 죄수를 간수가 걷어차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구덩이 속에서 죄수의 비명이 길게 이어지다가 뚝 멈췄다. 남은 죄수들은 공포에 질려 간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제발, 제발 이러지 마시오!”

간수들은 무자비했다. 다섯 명의 죄수 중 일흔은 넘어 보이는 늙은이를 걷어차 구덩이에 밀어 넣자 웨이크와 가람만 남았다.

가람은 구덩이 앞에 서서 높이를 가늠했다. 약 2층 조금 넘는 높이다. 아래에는 먼저 떨어진 사람들이 뒤엉켜 나뒹굴고 있었다.

웨이크가 먼저 뛰어내리고, 가람이 뒤이어 뛰어내린다. 바닥을 구르며 충격을 완화하는 사이 구덩이의 뚜껑이 닫혀 버렸다.

남은 것은 어둠과 신음하는 죄수들이다. 가람은 몸을 일으켜 조용히 벽에 달라붙었다. 웨이크 또한 민첩한 동작으로 그 옆에 따라붙었다.

바닥이 모래로 되어 있어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죄수들은 지하 미궁에 들어와 버렸다는 정신적 충격으로 계속해서 나뒹굴고만 있었다. 그건 별로 좋은 태도가 아니다.

가람은 벽에 바짝 달라붙어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길 기다렸다. 처음 이 안으로 들어왔을 때부터 시선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 하나인지, 여럿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뒤통수가 따끔따끔할 정도로 강렬한 시선이 느껴진다.

가람은 소리 없이 왼손에는 권총, 오른손에는 날카로운 단검을 꺼내 쥐었다. 그 옆에서 쌍검을 든 웨이크가 좀 더 넓은 범위를 경계한다.

갑자기 왁 하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헉, 으아악―! 뭔가 있다! 뭔가 있어!”

가람이 어둠에 익숙해지는 것보다 무언가의 습격이 더 빨랐다. 그녀는 계획을 바꿔서 손전등을 꺼내어 켰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어슴푸레한 빛이 어둠을 밀어 낸다. 습격의 현장이 가감 없이 빛 아래 드러났다.

습격자들은 이곳에 들어와 있던 기존 죄수들이다. 얼마나 굶었는지 앙상한 뼈만 남아 있는데, 눈빛은 형형해서 인간이 아닌 무슨 괴물처럼 보였다.

갑자기 빛이 나타나자 그들은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며 가람에게 달려들었다. 그 바람에 빵 주머니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실랑이하던 죄수가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

그러나 긴 도주는 아니었다. 여러 갈래로 난 굴 중 하나로 뛰어들었던 죄수의 목소리가 곧 사라져 버렸다.

곧이어 둔탁한 소리와 무거운 무언가를 질질 끌고 가는 소리가 이어진다.

다른 죄수들의 사정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죄수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와르르 벽으로 도망쳤다가 곧 팔다리를 휘둘러 적극적으로 싸우기 시작했다.

가람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죄수 하나를 그대로 후려쳤다. 악으로 덤비긴 해도 뼈만 남은 몸은 가람과 겨룰 수 없다.

웨이크는 짚단이라도 되는 듯 죄수들을 집어 던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닥을 나뒹굴다가도 금세 달려드는지라 끝이 나지 않는다.

처음에는 막기만 하던 가람의 손속이 점점 거칠어져 갔다.

“빌어먹을!”

어둠 속에서는 시간이 얼마나 갔는지 가늠할 수 없다. 가람은 욕설을 내뱉으며 단검을 죄수 하나의 목뼈에 박아 넣었다. 메마른 몸에서는 피도 튀지 않는다.

목에 단검이 박힌 죄수는 움찔움찔 피를 토하다가 곧 추욱 늘어졌다. 다른 죄수가 목의 단검을 뽑아 희희낙락하며 덤벼들었다.

그러나 죄수는 가람의 왼손에 든 권총을 상대해야 했다.

공이가 탄약의 뇌관을 거세게 후려친다. 권총이 뿜어내는 섬광과 함께 격발음이 공기를 찢어 냈다.

확 밝아진 빛 속에서 달려들던 죄수의 형상이 허물어졌다. 격발음은 계속된다. 한 발에 한 명. 귀청을 찢는 소음 뒤에는 매캐한 화약 냄새가 이어졌다.

웨이크는 가람의 옆에서 근거리로 접근하는 죄수를 처리했다. 소음 때문인지, 아니면 무기의 정체를 알 수 없어서 그런지 더 이상의 습격은 없었다.

손전등을 비추어 바닥에 굴러다니는 죄수들을 확인한 가람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금 애매하다 싶은 죄수들의 목뒤를 단검으로 끊어 주었다.

과연, 죽은 척하면서 기회를 보고 있던 죄수가 있었는지 그중 몇몇의 몸이 거세게 튄다. 묵묵히 그 작업을 반복하던 가람은 막아서듯 잡는 손에 고개를 들었다.

웨이크는 가람의 표정 없는 얼굴에 매우 당황했다. 번들거리는 눈은 마치 딴사람처럼 냉혹했다.

이전 바랄라인에서 자신이 죽인 것도 아닌 죽음에 흔들리며 자괴하던 가람을 기억하던 웨이크는 지금 눈앞의 여자가 그때의 여자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괜찮습니까?”

“뭐가요?”

“그게…….”

“어쩔 수 없잖아요. 일단, 어디 보자. 좀 더 안쪽이네요. 이동하죠.”

가람은 손등을 보고 가늠하다가 권총의 탄약을 채우고 굴 하나를 손짓했다.

앞장서려던 가람을 웨이크가 슬쩍 막아서고 대신 앞으로 나섰다. 가람은 반 걸음 뒤에서 내색하지 않으며 땀으로 흥건한 손으로 떨리는 가슴께를 꾹 눌렀다.

괜찮아.

어둠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굳이 어둠이 아니어도 호시탐탐 앙상한 손을 뻗어 오는 유령 같은 죄수들 또한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미궁 속에는 상점이나 목욕탕, 침대는 당연히 없었고, 그 외에도 없는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자면, 시간 감각이나 밤, 낮, 편안함과 숙면, 수다스러움 같은 것.

패스는 가까워질 듯 말 듯 하며 숨바꼭질을 반복하고 있었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피골이 상접한 죄수들은 더욱 기괴한 모습으로 달려들었다.

이미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지하 미궁의 기묘한 무언가가 그들을 괴물로 만든 것 같았다.

스산한 바람에 묻어나는 기이한 울음소리는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다.

눈앞이 캄캄한 상황이라 불을 켜고 싶었지만, 불을 켜면 이쪽의 위치를 잘 알려 주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소리는 일그러진 비명 같은 것밖에 없었다. 걷다가 돌인가 싶어 훌쩍 건너뛰면 누군가의 갈비뼈가 발밑에서 바스라졌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굴속의 풍경에 두 사람은 불을 켜지 않고 걸은 지 오래되었다.

귓속을 파고드는 귀곡성에 흠칫흠칫 몸을 떨면서 가람과 웨이크가 취할 수 있는 휴식은 새우잠이 유일했다. 밤도 낮도 없는 굴속에서 죄수들은 때를 가리지 앉고 습격해 왔다.

간혹 영리한 죄수들은 살금살금 눈치를 살피며 먹을 것만 잽싸게 훔쳐 달아나는 재주를 선보였다.

고단한 가람과 웨이크는 굳이 그들을 쫓지 않았다. 먹고 기운을 차려 다시 습격하려고 든다면 귀찮아지겠지만, 굴을 헤집듯이 이동하는 탓에 죄수들이 두 번째로 가람을 털기 위해 다가올 때쯤이면 이미 두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다.

정신을 옥죄는 그 상황 속에서도 가람은 새우잠을 자며 꿈을 꿨다. 꿈속에서 가람은 광부였다.

새카만 어둠 속에 광맥이 빛줄기처럼 박혀 있었다. 패스의 광맥이었다.

금빛 선을 향해 곡괭이를 내리치면 광맥에 곡괭이 끝이 박혀 들 때마다 불똥처럼 패스의 조각이 튀었다.

주먹만 하고, 머리통만 한 패스들. 패스의 덩어리들. 가람은 그것을 손등에 주워 담기만 하면 되었다.

손목이 묵직해지도록 손등에 패스를 넣고 또 넣었다. 황금빛의, 너무나 황금빛의 그것들.

방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르드레드도, 괴물도 없었다. 한껏 패스를 손등에 담고 나오자 밖에는 금빛 비가 내렸다.

패스의 비였다. 비가 여울을 이루고 흐른다. 황금 여울에 손을 담그고 흐르는 그 물결을 느끼고 있자니 손등 가득 온몸 가득 충만하게 패스가 차올랐다. 천, 만, 억 단위가 넘도록 자꾸자꾸 스며든다.

행복했다.

“가람!”

단꿈의 흔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시커먼 풍경에 가람의 심장이 꽉 조여든다.

며칠 사이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가람의 바로 정면에 앉은 해골의 윤곽을 어슴푸레하게 비쳤다. 그 해골을 잡초나 되는 듯 무심하게 훑은 시선이 저를 부른 목소리를 좇는다. 웨이크였다.

“아. 그러니까. 음. 맞다. 이번에 일어나면 저쪽에 가서 먹을 것 보충해 오기로 했었죠. 맞나요?”

“예.”

가람은 물먹은 솜처럼 처지는 몸을 일으켰다. 수면 부족 탓에 온몸이 삐걱거린다.

10분, 30분씩 잠을 자니 잠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새우잠이라곤 해도 어떤 새우도 이렇게 자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다녀올게요.”

가람이 굴 안에서 차원 문을 탄 것이 벌써 세 번째다. 들어오고 나서 이틀마다 꼬박꼬박 저쪽으로 넘어갔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해졌을 때 차원 문을 열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기를 바라지 않았다. 스스로도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만약 기회가 남아 있다면, 웨이크를 두고 홀로 저쪽으로 넘어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해도, 급박해지면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는 것이다. 사람이란 정말로 알 수 없는 존재니까. 자신이 이렇게 변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마트는 늘 모든 물량이 완벽하게 채워져 있는 상태다. 가람은 화장실에서 잽싸게 씻고 카트에 생수와 먹을 것들을 담았다.

쓸어 담듯이 카트를 채운 다음에는 경찰서로 향해 총탄을 보충한다. 아끼면서 쓴다고 썼는데도 하루에 거의 100발을 소모했다.

한 번에 챙길 수 있는 양은 300발 정도다. 무게야 그렇다 치더라도 부피는 무시할 수 없다. 기동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너무 욕심을 부려선 안 된다.

캔 음식과 과일 같은 되도록 조리 없이 먹을 수 있는 것들로 구성된 음식은 마트라는 특성상 제법 호화로웠다.

뮐러가 없으니 가장 아쉬운 것은 물이었는데, 특히 머리를 감거나 할 수 없으니 가람과 웨이크 모두 거지꼴을 면치 못했다.

빛이 없어 서로의 모습을 거의 확인할 수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어쨌거나 모든 것이 다 열악해도 먹는 것 하나만큼은 풍족했다.

다시 차원 문을 열고 물건들을 집어 던진 가람은 단검과 권총을 꺼내 들고 신중하게 문 안으로 진입했다.

아니나 다를까, 문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눈앞에서 검과 검이 충돌했다.

반사적으로 몸을 젖혀 주저앉자 한순간 나타났다 시야에서 사라진 가람을 쫓아 죄수들이 길게 울었다.

늘 이렇다. 지켜보고 있기라도 한지 웨이크가 홀로 남으면 죄수들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높은 확률로 습격해 오곤 했다.

“웨이크, 괜찮아요?”

가람은 바로 앞으로 달려드는 죄수의 머리를 날려 버리며 총 든 손을 그대로 휘둘러 총의 손잡이 단단한 부분으로 옆에서 뻗어 오는 손을 후려쳤다.

빠악 하는 소리와 함께 부실한 손목이 그대로 부러져 버린다.

스스로가 저지른 끔찍한 참상은 이미 마비된 가슴에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갑자기 뒤에서 달려든 죄수를 팔꿈치로 찍기도 바빴기 때문이다.

흉부를 후려치고 죄수가 살짝 떨어져 나간 사이 역수로 든 단검이 같은 자리에 달려들었다.

갈비뼈 사이를 파고들 만큼 단호하게 내질러진 단검은 박혀진 즉시 가로 그어져 뱃가죽을 갈라 버렸다.

그러나 깡마른 배는 내장도 다 말라 버렸는지 아무것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식량, 식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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