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가람이 덜 트인 목소리로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자 하인들이 깜짝 놀랐다.
목소리가 커서 잠을 깨웠다며 사과하는 것을 내버려 두고 가람은 재차 질문했다.
양친을 잃다니? 람카차로가 있잖은가? 혹시 미궁에 들어갔으니 살아 나올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잃었다고 표현한 걸까?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미로에 갇혔다는 뜻인가요?”
가람의 질문에 하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누명이요? 그 자리에서 일가족이 다 죽고 딸 혼자만 간신히 살아남았어요. 당시에도 잔인하기 짝이 없는 범죄라 크게 화제가 되었었지요. 악마에 쓰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니까요.”
“아버지, 아버지가 누명을 쓰고 지하 감옥에 간 게 아니에요?”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죽었어요. 감자 찌는 솥뚜껑으로 후려치며 저항하는 바람에 범인의 눈가에 커다란 상처가 나긴 했지만 막지는 못했지요. 상처가 꽤 커서 흉이 크게 남았을걸요. 재판소에서도 피를 줄줄 흘리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지 뭐예요.”
람카차로의 눈가에 있던 상처. 갑자기 그 모습이 눈앞을 스친다. 가람은 천천히 시선을 떨어뜨렸다. 불현듯 깨달음이 온 것이다.
딸이 흘리던 눈물은 감동의 눈물이 아니었다. 끅끅거리는 목소리는 아버지를 부르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필사적으로 꿈틀거리던 남은 팔뚝은 포옹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범죄자를 다시 마주한 피해자의 공포에 찬 도움의 손짓이었던 것이다.
충격에 빠진 가람을 내버려 두고 하인 둘의 수다가 이어진다.
“그런데 편지에 ‘마무리를 짓는다.’라고 적혀 있던데, 무슨 뜻이었을까?”
가람은 더 듣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람카차로의 마지막 인사가 떠오른다.
‘그때는 제 딸과 함께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요.’
그것은 경고, 독니를 감춘 뱀의 미소였다. 아마도 그의 딸, 아니, 피해자는 이미…….
Chapter 14
눈물은 나지 않았다. 불처럼 화가 나지도 않았고, 세상은 더럽다며 비난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 피가 줄줄 흐르는 것 같은 진실을 깨닫는 순간, 가람은 잠시 멈칫했다가 푹신한 이불을 껴안고 다시 누웠다.
옳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 옳다고 여기는 것들은 간혹 그 순간에만 옳은 경우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옳다 여겼던 결정들이 더 나쁜 결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선택이 옳다고 결과가 늘 좋은 것은 아니다.
가람은 당시 옳은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충분히 인간적으로, 그리고 혹시나 해서 확인까지 하지 않았던가.
미래를 가리고 있는 시간의 장막은 너무나 두꺼워 결코 열어 볼 수 없다. 아주 잠깐, 미래를 먼저 알면 어떨까 싶어 가람은 예지의 능력을 고려한 적도 있었다.
미래를 안다면 이런 일들이 생기는 것을 피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그 고려는 세 가지 이유로 인해 무산되었다.
하나는 베이스캠프를 찾는 값에 버금갈 정도로 값이 너무 비쌌고, 또 하나는 미래를 보고 있는 동안 그 순간이 사라지기 때문이었다.
미래의 10초를 보고 있는 동안 현재에서도 10초가 지나 버리기 때문에 크게 소용이 없었다.
보고 싶은 시점만 보게 해 주는 수정구 같은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었지만, 세 번째 이유가 발목을 붙잡았다.
현재의 선택이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전제하에 가람은 그 능력이 갖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만약 가람이 볼 수 없었던, 선택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작은 사슬들에 의해 결국 그 미래가 나쁜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면 의미가 없다.
그러한 의심 속에는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 바꿀 수 없는 비극적인 미래를 본다면, 그 끝이 정해져 있음을 알게 된다면 견딜 수 있을까.
때로는 백 개의 선택을 할 수 있어도 백 개의 선택 전부가 좋지 않은 길로 이어지는 수도 있었다.
세상은 옷감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진짜 미래를 제대로 바꾸려고 든다면 가람은 그 미래에 도달하는 시간 동안 내내 ‘현재’들을 보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쪼갤 수도 없을 정도로 작은 시간의 단위 동안 이루어지는 일들을 모두 막거나 비틀어야 한다.
하려면 못 할 것도 없겠지만, 같은 삶을 수십 번 살아야 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비록 지금은 람카차로의 일이 몹시 충격적이지만 가람은 그를 잡으러 가지도 않을 것이고, 잡으러 간다고 치더라도 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를 찾기 위해 패스를 쓸 생각 따위는 털끝만큼도 없다.
헤람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람카차로가 어딘가에서 제2의 피해자를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잡을 생각 또한 없다. 람카차로를 잡아들이는 것은 그 일을 담당하는 자의 몫이다.
세상에는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가람은 아이가 아니었으므로 불가항력이라는 말을 이해하고 있었다. 사실 그 말도 최근에 이해하게 된 것이지만.
서글픈 사실이지만 그러했다. 람카차로를 풀어 준 결과에 대한 죄책감은 있었지만, 람카차로의 잔혹성까지 가람의 탓은 아니었으니까.
람카차로를 잔인하게 만든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그러니 가람은 그의 잔혹성의 결과까지 책임질 생각은 없었다.
그 책임은 람카차로 본인이 질 것이다. 스스로의 인생 전체로. 그리고 만약 다시 한 번 그와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가람이 직접 책임을 물을 수도 있었다.
“가람, 혹시 축제에 관심 있습니까?”
소파에 길게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던 가람에게 뮐러가 읽고 있던 종이 뭉치를 들어 보이며 질문했다.
뮐러가 읽고 있는 것은 마법 열차에서 새로이 서비스하는 것으로, 열차를 이용해 여행하는 여행객을 위해 정차하는 역 근처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행사나 볼거리를 안내해 둔 일종의 소책자였다.
돈을 받아먹은 간수가 수작을 부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람은 최대한 서둘러 미르드를 떠났다.
고가의 객실을 예약하면 트라키아의 이목을 끌 수 있기 때문에 현재 가람이 빌린 객실은 처음 마법 열차를 탔을 때와 같은 등급의 객실이었다. 미르드가 종점인지라, 기차는 북쪽으로 향해 가는 중이었다.
“축제요?”
천장의 나뭇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가람이 반문한다.
미르드를 떠나온 후 내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가람의 기분을 위해 뮐러가 궁여지책을 짜내었지만 본인은 별로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가람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예. 팔탐이라는 곳인데, 칠면조 배 속에 치즈를 듬뿍 넣고 솥 한가득 토마토와 바나나를 넣은 뒤에 꿀을 발라 굽는 요리법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새의 배 속에 치즈를 넣고 통째로 구워 내는 음식을 팔탐식 구이라고 하지요.”
“먹어 본 적 있는 것 같네요.”
“좋은 동네입니다. 워낙 자연환경이 좋은 데다 베록과도 가까워서 풍요로운 곳이죠.”
거듭 말하지만, 가람은 놀 기분이 아니었다. 그녀가 다시 심드렁하게 맞장구만 치는데, 오히려 웨이크가 크게 관심을 보였다. 하고 있던 근육 단련까지 멈출 정도다.
“괜찮은 곳입니다. 괜찮다면 꼭 들르고 싶습니다.”
웨이크가 이렇게까지 주장하는 경우는 몹시 드문 일이다. 가람은 젖은 빨래처럼 소파에 늘어져 있던 몸을 일으켰다.
“볼일이라도 있어요?”
뮐러와 가람의 시선이 웨이크의 얼굴로 모인다. 그는 조금 곤란한 기색이었다.
무언가를 원하는 것 같기는 한데, 말해도 되는 것인지 망설이는 투가 역력했다.
“괜찮다면, 팔탐에 계시는 동안 필모른에 잠시 다녀왔으면 합니다.”
결국 웨이크는 어렵게 말을 꺼내었다. 목구멍에서 마른 빵이라도 꺼내는 것처럼 껄끄러운 어조였다.
사실 이렇게까지 눈치를 볼 필요는 없는데, 임무에 대한 책임감이 투철하다 보니 자연히 그렇게 되는 모양이었다.
“필모른에요?”
“예. 여동생을 보러 잠시 다녀왔으면 합니다.”
가람과 뮐러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웨이크의 여동생이 필모른에 산다고 했던가.
지리적으로 필모른은 팔탐과 아하른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아주 약간 동쪽으로 치우치긴 했지만 그래도 팔탐과 필모른과 아하른을 선으로 이어 그리면 약간 서쪽으로 치우친 세로 직선이 그어진다.
필모른과 아하른은 제법 거리가 있지만, 팔탐과 필모른은 말을 타면 3일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말을 바꿔 가며 꼬박 달리면 하루 반나절 만에도 도착할 수 있다.
“그러면 팔탐에 내려서 잠깐 축제를 구경하고 필모른으로 가는 건 어때요? 늘 말하던 웨이크의 여동생이 어떤 사람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웨이크를 닮았으면 제법 미인이겠는데요?”
뮐러가 가볍게 웃으며 농담처럼 제안하자 웨이크가 갑자기 긴장했다.
역시 좀 껄끄러운가 싶어 가람이 만류하려는데, 웨이크가 몹시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여동생 결혼했습니다.”
“예?”
순간 대화의 맥을 놓친 가람과 뮐러가 턱을 짧게 내밀며 동시에 반문했다.
“제 여동생 이미 결혼했습니다.”
몹시 진지해 비장하기까지 한 어조였다. 뮐러는 웨이크의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진심으로 뮐러를 경계했던 것이다. 여동생 사랑이 지극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간 함께 지낸 시간이 얼마인데.
섭섭한 마음에 괜히 동생에게 관심 있는 척 장난이라도 쳐 볼까 하던 뮐러는 웨이크라면 진심으로 화를 내고도 남을 것 같다는 생각에 곱게 그 생각을 접어 버렸다. 어쨌거나 이 오해가 계속되면 굉장히 불편해질 것 같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빨다 만 걸레마냥 축 늘어져 쿰쿰한 기운을 흩뿌리고 있는 가람만으로 뮐러는 충분히 분위기가 무겁다고 생각했다. 괜히 웨이크와 칼부림이 날 일은 피하고 싶었다.
“워낙 웨이크가 여동생을 아끼니 그냥 한 번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요. 오해하니 섭섭하군요. 웨이크가 말하는 그런 마음 따위 없으니 안심하세요.”
“그, 흠. 그렇습니까.”
웨이크는 괜히 민망해져 헛기침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러면 팔탐에 들렀다가 필모른으로 가는 걸로 하죠. 축제 구경이라도 하면서 잠깐 기분 전환 좀 하자고요. 가람. 괜찮지요? 이러다가 곰팡이라도 필까 무섭습니다.”
뮐러가 깔끔하게 정리하며 결론짓는다. 가람은 반대할 의욕도, 이유도 없어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다시 소파에 드러눕는 가람을 보며 뮐러가 짧게 한숨짓는다. 뮐러를 위해서라도 좀 밝게 행동해 주고 싶었지만, 가람은 도저히 의욕이 나지 않았다.
소파의 팔걸이를 베개 삼아 베고 천장의 나뭇결에 멍하니 시선을 던지는데, 가람의 귓가로 어색한 웨이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여동생이 결혼했다는 거 사실 거짓말입니다. 그, 거짓말해서 미안합니다.”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없는 거짓말인데 그게 걸렸던 모양이다. 뮐러가 짧게 실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가람은 이어진 뮐러의 대답에 결국 웃어 버리고 말았다.
“아, 괜찮습니다. 저도 그런 마음 없다는 거 거짓말이니까요.”
* * *
마을에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기차 안은 축제에 참가하는 승객들로 잔뜩 들떠 있었다.
축제라는 것은 원래 그 자체로도 즐겁고 흥겨운 것이지만 주머니가 두둑하다면 한층 더 재미가 깊어지기 마련이다.
기차에 탄 승객 중에 형편이 궁핍한 승객은 거의 없었지만, 그중에서도 가람의 주머니는 두둑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물건이라 축제를 즐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 의미로, 가람 또한 언제든지 꺼내어 쓸 수 있도록 작은 단위의 금화와 은화를 잔뜩 챙기고 도착을 기다렸다.
기차를 내리기 직전까지도 내심 트라키아를 마주할까 조마조마하던 가람은 기차 문이 열리고 나자 훅 끼쳐 오는 축제의 기운에 걱정을 저만치 밀어 두었다.
역에 내리자마자 풍겨 오는 풍요로운 축제의 향취에 아닌 척해도 가슴이 설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웨이크와 뮐러가 말들을 챙겨 오는 사이 가람은 한쪽에 서서 축제의 열기로 넘실거리는 마을을 둘러보았다.
마을 지붕과 지붕, 횃대와 기둥을 이은 줄에 헝겊으로 만든 치즈와 짚으로 만든 닭 다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흔들린다. 제법 질이 좋아 멀리서 보면 진짜 치즈와 닭 다리 같았다.
그 아래에 한 손에는 정체불명의 음식을,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맥주잔을 든 남녀가 얼굴이 붉어져서 돌아다닌다. 아직 해가 벌건 대낮인데도 그런 술꾼들을 흉보는 사람이 없었다.
허리를 약간 넘을 것 같은 작은 아이들이 그 사이를 와― 하고 좋다며 뛰어다니고, 그 발에 걷어챌까 행상인들이 그때마다 제 물건을 챙긴다.
물건들은 초라한 것들이다. 축제 특유의 기념품인지, 나뭇잎이나 종이로 만든 조잡한 공예품과 먹을거리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간혹 예쁜 것들이 있는지 연인들이 좌판 앞에 앉으면 상인들은 열과 성을 다해 영업에 나섰다.
그러고 보니 바랄라인이던가. 웨이크가 저런 영업에 넘어가 다산의 상징을 자신에게 선물했던 곳이.
가람은 엊그제 같기도 하고 아주 옛날 일 같기도 한 그것을 떠올리며 입매를 풀어 버렸다. 웨이크가 선물한 다산의 부적은 가람의 가방 한쪽에 고이 모셔져 있다.
그래도 이곳에서 받은 첫 선물이라, 쓸모가 없고 짐만 되는데도 선뜻 버릴 수가 없었다.
언젠가 이들과 헤어지게 된다면 그것을 보며 추억할 수 있으리라.
언젠가 헤어진다.
언젠가라는 것은 기약이 없는 말이다.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단어라, 가람은 스스로 다짐하면서도 자신을 의심했다.
홀로 서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누군가가 있어 주었으면 했다. 불량배나, 고약한 상황을 처리하는 것은 이제 어느 정도 손에 익었다.
처음 도덕심이니 뭐니 하며 울고불고했던 일이 아득해서, 지금은 정말로 그러고 싶지 않다기보다는 그래서는 안 되니 자제한다는 측면이 강하다.
자신의 예감은 정확했다. 한 번 저질러 버리니 굴러떨어지는 것 같아 스스로 멈출 수가 없다.
비교적 간편한 방법이기에 정답처럼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답이 정해져 버리면 다른 차선책을 찾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게다가 정당성을 부여하는 이유도 있다. 상황이 이리되었으니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은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그것에 더욱 박차를 가해 주었다.
그 아래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가람은 더 아래로 떨어지기 전에 뮐러와 웨이크를 보내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두 사람의 안전 문제도 있지만 나중에 보았을 때 편한 사이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다. 옳다고 해서 그것이 쉬운 일일 수는 없었다. 옳은 일이 보통 더욱 힘든 일이기 마련이다.
옳은 일이 쉬운 일이라면 어째서 사람들이 그렇게 옳은 일을 하도록 강요받겠는가? 내버려 두어도 쉬운 일을 할 텐데.
이르다면 이번 마을에서, 늦어도 다음 마을을 떠날 때쯤에는 헤어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
가람의 시선이 흔들리는 지푸라기 닭 다리를 좇다가 천천히 아래로 향한다. 새로 구입해 흙 하나 없는 질 좋은 고동색 가죽 부츠와 검은 물소 가죽옷에 싸인 다리가 보인다.
새카만 색 덕분인지 곧게 선 두 다리는 몹시 단단해 보였다. 그 단단한 다리에는 이제 완전히 손에 익은 권총 두 자루와 탄창이 매달려 있다.
잠시 남의 몸을 관찰하듯 제 차림을 살피던 가람은 익숙한 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승무원에게서 말을 인계받은 두 남자가 인파를 헤치고 다가오고 있다.
기척에 민감한 성격이 아닌데도 언젠가부터 이렇게 되었다.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뮐러와 웨이크만은 그 속에서 단번에 찾아낼 수 있게 됐다.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