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파인더> 2부
1화
프롤로그
전체 가구의 숫자가 백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마을.
검을 들거나 말을 타는 사람보다 호미를 쥐고 소를 모는 사람이 더 흔한 작은 마을.
주점의 손님은, 당연하겠지만 대부분 농부였다.
딱히 특색 있는 마을도 아니라서 오가는 행인도 거의 없다.
그나마 도시물 좀 먹은 농부 하나가 으스대며 자랑거리를 풀어놓으면, 그저 감탄하기에 바쁠 만큼 순박함이 가득한 마을이었다.
주점이라 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취객이나 싸움꾼이 있기 마련인데도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매우 힘들 만큼 대부분 순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땀 냄새와 구운 감자, 미지근하고 잡맛이 가득한 싸구려 맥주 한 잔에 행복한 미소를 짓는 사람들. 감자와 빵 굽는 연기 사이로 좋아서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림으로 그린 것 같은 평화로운 풍경이 맞물려 마을을 만들어 낸다.
그 사이로 낯선 여행자가 방문한 것은 노을이 지고도 한참이 지난 한밤중의 일이었다.
체구는 작았고, 옷차림도 남루하고 지저분해 거지가 아닌가 싶었지만, 그 말을 쉽게 꺼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행자가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부터 천천히 번져 나간 정적이 차마 깨뜨리기 힘들 정도로 위협적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깨뜨리려고 하면 그 사람을 집어삼킬 것 같은 위협적인 정적.
넝마가 되어 원래 어떤 형태였는지 알아보기도 힘든 괴상한 복식의 옷에도 불구하고 여행자의 복장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것보다 더욱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커멓게 더럽혀진 옷은 온통 얼룩덜룩한 것이 아무리 봐도 원래 검은색 옷은 아닌 듯싶었다. 그런고로 사람들은 저마다 옷에 묻은 것이 무엇인지 바쁘게 유추하기 시작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차마 입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동일해졌다.
여행자의 옷을 시커멓게 물들인 것은 마르고 썩은 오래된 피가 분명했다.
여행자의 몰골이 워낙 대단했던 탓에 점원들은 바짝 얼어붙어 그저 당황하고만 있었다.
노동력이 부족한 이런 작은 마을은 보통 다섯 살부터 작은 수공업을 시작하고 열 살이면 그럭저럭 쉬운 직업을 갖는다.
어릴 때는 콩을 꿰거나 하며 일을 하고, 열 살 이후로는 여관이나 상점에 취직해 물건을 정리하거나 하는 일을 도맡는 것이다.
덕분에 여관의 점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도 열다섯을 넘지 못했다. 점원이라곤 하나, 아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어, 어떡해.”
정식 점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열한 살의 빈디가 울상을 지었다. 큰언니이자 점원 중 가장 높은 직위를 가진 하디가 술 창고로 내려가 있었기 때문에 저 손님을 받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었다.
혹시나 해서 요즘 일을 배우고 있는 막내 남동생을 바라보았지만 빈디 자신보다 더 심한 상태였다.
새하얀 얼굴로 겁을 잔뜩 집어먹곤 딱딱하게 얼어 있다. 뭐라도 시키면 오줌이라도 지릴 얼굴이었다.
“유령은 아니겠지?”
손님 중 누군가가 중얼거린 말에 빈디는 더욱 겁을 집어먹었다. 피딱지가 엉겨 붙어 산발을 한 머리라 그 의혹은 꽤 신빙성을 가지게 되었다. 새카맣게 헝클어진 머리카락 속에서 뭐라도 튀어나올 것 같다.
“어떡해, 어떡해. 엄마…….”
여행자가 그냥 나가 주었으면 했지만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지라 빈디는 발만 동동 굴렀다. 목소리에는 울먹임이 섞여 들고 있었다.
그런 빈디의 사정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님들은 저마다 추측 섞인 의견을 내어놓기 시작했다.
“마녀 아닐까?”
“미친 마법사?”
“나 저거 알아. 예전에 도시에서 봤어.”
“뭔데?”
“아는데 안 가르쳐 줄래. 아, 거참. 진짜 안다니까. 그냥 알려 주기가 싫어서 그래.”
“역병이나 악마의 일종이 아닐까?”
“그러기엔 너무 멀쩡해 보이는데.”
“저 몰골이 멀쩡해 보인다고? 너 눈 맛이 갔냐?”
여행자의 정체에 대한 토론으로 정적이 조금씩 깨어져 나갔다. 그러나 조잘거리던 입이 다시 딱 다물리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마녀, 혹은 악마, 혹은 미친 마법사가 갑자기 움직였기 때문이다. 아주 의미심장한 동작이었다.
마녀, 혹은 악마, 혹은 미친 마법사는 주먹을 내밀었다. 그대로 펴면 그 손안에서 무시무시한 마법이 튀어나와 여관을 날려 버리기라도 할 것 같았기에 여관 안의 사람들은 어떡하면 이곳에서 도망칠 수 있을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술꾼의 감정은 즉흥적이고 직선적인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은 어린아이들이 술꾼들과 비슷한 행동을 한다는 점에서 어린아이들의 감정 또한 그와 비슷하다.
어린 빈디는 상대가 손님이라는 것도 잊고 그 고민에 동참했다. 여관 지하의 뒷문을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도망칠 수 있지 않을까?
어울리지 않는 발랄한 목소리가 끼어든 것은 바로 그때였다.
“여어, 여기 주문한 사탕무 스무 개 가져왔어!”
낡은 나무문이 삐꺽이고 어느덧 남색이 된 하늘이 슬쩍 비치더니 제법 키 큰 인형 하나가 침묵 속으로 불쑥 머리를 들이민다.
여행자의 뒤에서 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마을의 식품점에서 일하고 있는 청년이었다.
청년은 여느 때처럼 배달해 주고 맥주나 한 잔 얻어 마실 생각으로 매우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그러나 여관으로 들어서서 한 발짝을 떼려던 차, 그는 여관을 지배하는 무거운 공기에 몹시 당황했다.
“다이덴 오빠!”
빈디가 구세주를 만난 얼굴로 고개를 번쩍 든다. 실제로 그는 종종 빈디의 크고 작은 곤란한 일거리들을 해결해 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얼굴에는 화색이 가득했다.
다이덴은 그 부름에 응해 주는 대신 바로 앞에 서 있는 괴상한 몰골의 여행자를 살폈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빈디에게 질문했다.
“이거 손님이냐?”
예의나 예절 따위 딱히 배워 먹은 적이 없는 인생이라 튀어나온 말에는 꾸밈이 없었다. 그 어투에 빈디가 기겁했다. 선 그대로 펄쩍 뛰어오를 기세였다.
다이덴의 등장으로 잠시 잊었지만, 손님이 풍기는 기괴한 분위기는 여전했기 때문이다.
빈디는 무서운 그림이라도 걸려 있는 듯이 손님이 서 있는 자리를 대했다. 시선을 피하고 애써 외면한다. 차마 몸을 돌리지 않은 것은 칭찬해 줄 만한 태도였다.
“모, 몰라!”
빈디는 거의 울기 직전이 되어 뺨을 새빨갛게 붉히고 소리쳤다. 얼른 내쫓아 버리라 말하고 싶지만 여행자가 들을까 차마 이야기하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빈디의 대답이 별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이덴은 직접 질문하기로 했다.
그맘때의 시골 청년들이 그러하듯 그는 모든 일을 그리 깊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무식하면 용감해지기 때문이다.
“이봐……요, 손님이……시오?”
가시나무 덤불처럼 우거진 머리칼 사이로 다이덴은 무언가 보았다. 옷과 마찬가지로 매우 더러워진 얼굴이었다.
다이덴은 여행자가 손을 내밀고 있음을 깨닫고 일단 그 안에 든 것이 마법이든 무엇이든 내려놓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점 안의 사람들 대부분이 의자에 엉덩이를 반도 걸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이거. 이거 내려놔요. 사람들이 무서워하지 않소.”
급히 꾸며 낸 존댓말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같이 어색하다. 여행자가 다시 움직였다. 크지도 않은 동작에 주점 안이 들썩인다.
마치 유령처럼 소리 없이 움직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다이덴도 좀 쫄아들었다. 그러나 그 동요에도 아랑곳없이 여행자는 다이덴의 손에 무언가를 떨어뜨렸다.
둥그렇고 납작한, 흙먼지에 더러워진 금화 한 닢.
그것이 500골드 주화라는 것을 확인한 다이덴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부풀었다. 이런 촌 동네에서는 만져 보기는커녕 구경하기도 힘든 단위의 액수다.
당황한 그의 귀에 짧은 소리가 스쳤다. 너무 놀라는 바람에 잠시 청력을 상실했던 다이덴은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뭐요?”
“방.”
짧은, 먼지를 뭉쳐 만든 것처럼 곧 스러질 것 같은 목소리. 너무나 짧아 여운조차 없는 목소리는 언어나 말이라기보다 소리에 가까웠다. ‘방’이라는 형태의 소리.
다이덴은 그제야 눈앞의 여행자가 범상치 않음을 인정했다.
“방 달라는데?”
“예?”
빈디는 다이덴이 받은 금화를 들어 보이자 비명을 지를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더러워지긴 했지만 다이덴의 손 안에서 금화는 본연의 찬연함을 뽐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디는 얼굴을 접어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사람처럼 표정을 구겼다. 흡사 징그러운 뭔가를 본 것 같은 표정이다.
“돈을 받아 버리면 어떡해요! 난 몰라! 이제 진짜 손님이잖아!”
얼굴이 새하얘진 빈디는 금화 한 번, 여행자 한 번 번갈아 보다가 곧 굳게 결심한 것처럼 앞으로 몇 발짝 디뎠다.
다이덴은 여행자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했지만 가면보다 견고하게 얼굴을 가리고 있는 헝클어진 머리칼 덕분에 여의치 않았다.
그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머리칼 아래로 살짝 튀어나온 턱이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고 둥글다는 것뿐이다.
“아, 어떡해. 어떡해!”
다이덴이 여행자를 살피고 있는 동안에도 빈디는 두 걸음 걷고, 다시 두 걸음 물러서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눈에는 벌써 눈물이 고였다. 그대로 두면 엉엉 울어 버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다이덴은 빈디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발견했다. 저건 안 좋은 신호인데.
“아, 몰라! 난 못 하겠어! 오빠가 돈을 받았으니 오빠가 책임져요!”
“어어, 그래도 난 여기 직원도…….”
“몰라요. 오빠가 돈 받았잖아요! 난 못 하겠어. 언니는 돌아오지도 않고, 너무 무섭단 말이야! 난 이제 겨우 열한 살인데!”
발악하듯 소리친 빈디가 곧 엉엉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여관 안의 모두가 다이덴을 주목하자 그는 난감한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이렇게 어린 꼬마들이 울어 대면 잘못한 것이 없어도 괜히 뜨끔해진다. 빨리 울음을 그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이덴이 급히 빈디를 불렀다.
“아, 나 참, 진짜 미치겠네. 빈디, 빈디야. 울지 마. 그냥 오빠가 할게. 방 안내해 주면 되지? 빈방?”
“2층 두 번째 방이 비었어요.”
끅끅 울면서도 다이덴이 한다는 말에 빈디가 잽싸게 대답한다. 그 약삭빠름에 허 하고 헛웃음 지은 다이덴이 여행자의 앞에 나섰다.
“자, 이렇게 되었으니 내가 안내하겠소이다.”
미동 없이 서 있는 여행자는 마치 석상이나 조각 같은 무기물을 연상하게 만들었지만 미동이 생겨도 마찬가지로 무기물을 연상시켰다.
마치 인간이 아닌 기계나 실에 연결된 인형을 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걷고 있음에도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관절을 굽히고 발을 땅에 번갈아 내딛는, 걷는 동작 자체만 느껴질 뿐이다.
여행자를 안내해 계단을 오르던 다이덴은 새삼 여행자에게서 나는 지독한 악취에 얼굴을 찌푸렸다.
저도 그렇게 잘 씻지는 않지만, 어디 시체 구덩이에라도 처박혀 있다가 온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외형도 그렇고,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산 사람이라곤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어서 다이덴은 등 뒤의 여행자가 영 떨떠름했다.
“여기 이 방이오…… 아닌가? 아, 맞는 것 같네.”
어설픔을 드러내며 헤매던 다이덴이 손수 문을 열자 여행자가 뒤따라 들어왔다. 침대 하나, 작은 탁자와 양초 램프가 전부인 단출한 방이었다. 벽난로조차 없다.
제대로 불을 켜지 않아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여행자는 더욱 괴기스럽게 보였다.
어쩐지 섬뜩해진 다이덴이 되는대로 작별 인사를 건네며 방을 나가자 여행자는 반걸음 방 안으로 들어서서 묵묵히 서 있었다.
그 의욕 없는 모습에 결국 다이덴이 문을 닫아 주어야 했다.
닫힌 문 앞에서 한숨 돌린 표정을 짓던 다이덴이 얼굴을 문지르려다가 무심코 손에 쥔 것을 깨달았다.
500골드 금화.
지금 제 손안에 이런 물건이 들어와 있다는 것이 어쩐지 현실감이 없다. 멍하니 그것을 내려다보던 그가 문득 정신을 차린 듯 입을 열었다.
“아, 근데 이거 거스름돈은 어떡하지. 그나저나 저렇게 그냥 놔둬도 되나? 진짜 저러다 죽는 거 아냐? 일단 씻기기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망설이던 다이덴은 여행자가 말을 했으므로 의사소통은 된다고 판단, 목욕을 권해 보기 위해 문을 열기로 했다. 스스로도 미친 짓이다 여겨졌지만 이러다 진짜로 시체 치우게 될지도 모른다.
빈디와 하디, 그 어린것이 울상을 하고 시체를 치우는 상상을 하자 결단은 어렵지 않았다.
다이덴이 다시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양초가 뻔히 보이는 위치에 있는데 켜지도 않았는지 창문도 없는 방 안은 새카맣다.
솔직히 여행자가 촛불을 환히 켜고 있었다면 그게 더 어색할 것 같기는 하다.
문틈으로 흘러드는 미약한 빛살에 의지해 방 안을 살피던 다이덴은 별로 신기하지도 않은 모습을 발견했다.
침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벽과 침대 사이의 구석에 구겨져 있는 여행자의 모습이 그것이다.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팔다리가 제멋대로 수납되어 있었다. 여행자의 차림에 어울리는 자세다.
그대로 쓰러져 대충 벽에 기대어 앉은 것인지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다이덴은 여행자가 절대로 정상적인 인간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목욕을 제안하려던 결심이 거세게 흔들렸지만 그는 꿋꿋하게 입을 움직였다.
“저기, 손님. 거스름돈을 안 받으셨는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역시 대답은 없었다. 다이덴의 질문은 허공의 공기를 조금 떨리게 하는 의미밖에 없는 듯했다.
“이봐, 손님? 살아 있는 거요?”
몇 번 대화를 시도하던 다이덴은 이래서야 진전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방으로 들어갔다. 대충 양해를 구하고 초에 불을 붙여 방을 밝히니 그래도 어둡지 않아 한결 낫다.
하지만 흔들리는 촛불 그림자에 비친 여행자는 어디 숲에서 나오는 귀신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을씨년스러웠다.
“손님, 유령 아니지? 으흠.”
여행자는 눈앞의 자신이 보이지도 않는지 머리를 푹 고꾸라뜨리고 앉아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던 다이덴은 혹시 이자가 정신을 잃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흠흠 헛기침을 하던 다이덴은 마침내 슬쩍 손을 뻗어 여행자의 얼굴을 가린 머리칼에 가져다 대었다.
“잠깐 실례하겠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