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스파인더-118화 (118/256)

8화

점원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계단이 끝났다. 가람은 점원의 말을 더 듣기 위해서는 돈을 내야 함을 깨달았다.

일부러 아래쪽의, 고용주의 눈을 피해 슬쩍 부업을 뛰는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딱 필요한 정보를 얻게 된 것은 운이 좋았다.

가람은 10실버 은화 하나를 꺼내 점원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승객으로서는 안 되지만 배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는 될지도 몰라요. 날이 밝으면 에르비에르만 상단을 찾아가세요. 거기에서 운이 좋으면 하녀나 짐꾼, 아니면 뭔가 다른 일거리라도 받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이런 장거리 항해는 늘 일손이 부족한 편이니까, 꽤 높은 확률로 일을 구할 수 있을 거예요.”

가람은 그렇게 10실버짜리 정보를 받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여관은 아주 허름한 곳이나 아주 좋은 곳만 아니면 거의 다 비슷비슷한 구조다.

안과 밖에서 걸어 잠글 수 있는 잠금쇠가 있고, 씻을 수 있는 공간과 잠을 자기 위한 공간이 있다.

제법 호화로운 곳에서조차 씻는 공간에 조악한 세면도구가 마련되어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 여관의 세면도구는 꽤 괜찮은 편이다. 방의 가구들도 깨끗했다.

“여기, 다 씻고 마개를 뽑으세요. 뭐 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

“없어요.”

점원은 일이 밀려 있는지 고개만 꾸벅 하고 방을 뛰쳐나갔다. 가람은 방의 걸쇠를 걸어 잠그고 그 앞에 탁자를 끌어다가 막아 놓았다. 유리 창문마다 커튼을 풀어 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방을 밀폐 공간으로 만든 가람은 모르드레드의 머리가 든 보따리를 챙겨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모르드레드의 머리를 얻게 된 후로 가람은 그것을 부적처럼 갖고 다니며 절대 시선 밖에 두지 않았다.

혹시나 없어지기라도 하면, 그가 재생해서 찾아와도 골치 아프고, 죽어 버려서 완전히 새로 만들어져도 짜증 나는 일이다.

한쪽에 내려놓으며 무게를 가늠해 보니 제법 재생을 했는지 묵직했다.

가람은 목욕하기 전 모르드레드의 머리 아래 부분을 잘라 놓을 생각이었다. 씻고 나서 피가 튀거나 하면 불쾌하니까.

거기다가 자르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피를 욕실에서는 쉽게 제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렇게 늘 잘라 대는 것도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지만, 가람은 도저히 그를 밀봉해서 버릴 수가 없었다.

강철 상자에 담아 꼼꼼히 밀봉해 둔다고 해도, 그 안에서 부피가 커진 모르드레드가 상자를 뚫고 나오면 어쩌나.

“이봐.”

입 안의 흙을 빼 주자 모르드레드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많이 지친 얼굴이다.

아마 그도 가람이 자신을 무슨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취급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가람은 대꾸 없이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뽑아 드는 자세가 몹시 자연스럽다.

“이제 그만 날 죽여 주는 게 어때? 이렇게 해 봐야 너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네 정신 건강에도 별로 좋지 않을걸. 게다가 이런 건, 어차피 나한테 아무것도 아냐.”

가람은 이 가치 없는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지만 거슬리는 문장이 있었다.

“내가 얻고 싶어 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는데?”

그래. 이 미친놈이 가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나 하고 있다는 말인가? 가람은 그 점이 어처구니없었다.

정말로 알고 있다면 그것대로 황당하고, 모르는데도 되는대로 주워섬기는 거라면 그건 그것대로 열받는다.

“소꿉장난?”

가람의 얼굴로 열이 확 치솟았다가 가라앉았다. 흥분해 봐야 소용없다. 가람은 길게 숨을 내쉬고 모르드레드를 똑바로 직시했다.

“미친 자식. 너같이 역겨운 놈은 없을 거야.”

“너무한데.”

“물론 나도 알아. 널 자르고, 굽고, 어떤 굴욕을 준다고 해도 너한테 그건 진정한 의미의 고통이 될 수 없을 거야. 넌 완전히 망가졌으니까. 하지만, 패스를 찾고, 찾아서 목표를 이룰 때까지 너를 이렇게 둘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해. 그리고 결국 내가 돌아가게 된다면.”

가람의 눈이 깊게 가라앉는다. 깊고 깊은 곳에서 이글거리는 감정은 너무나 깊숙한 곳에서 타오르고 있어 보이지 않을 뿐 어떤 불보다도 뜨겁다.

힘이 들어간 가람의 손이 모르드레드의 머리를 으깨어 버릴 듯 거머쥐었다.

“그게 내 승리야. 내 방식의 승리야. 그리고 넌 패배하는 거고.”

모르드레드는 씁쓸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언젠가, 가람이 그의 베이스캠프에 대해 물어봤을 때와 비슷한 얼굴이다.

“그러면 넌 절대로 승리할 수 없겠군.”

“두고 봐야겠지.”

으르렁거린 가람의 칼날이 모르드레드의 목을 내려친다. 살점이 튀고 새로운 단면이 만들어졌다.

가람은 그 날 모르드레드의 코 아래까지 잘라 내었다. 한동안 말할 수 없도록. 그리고 들고 다니기 편리하도록.

* * *

다음 날 아침, 가람을 깨운 것은 무언가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밖은 아직 동이 채 트지 않아 어슴푸레하다. 누운 상태로 눈만 가늘게 떠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본 가람은 창문에 비치는 커다란 그림자에 잠이 싹 달아났다.

급히 베개 밑의 총을 움켜쥐고 튕기듯 몸을 일으키는데, 그제야 창문을 두드린 것이 제대로 보인다.

“끼룩.”

대단히 불량한 태도의 갈매기. 날개를 접어도 가람의 머리통만 할 것 같은 커다란 갈매기였다. 통통한 가슴살이 제법 먹음직스럽다.

날개를 비틀비틀 푸드덕거리는 갈매기는 가람의 여관방 창문에 비친 자신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창문을 연거푸 쪼고, 노려보다가, 다시 날개로 후려친다. 그러다가 균형을 잃고 다급히 푸드덕거리더니 신중하게 창문에 비친 자신을 보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너 좀 하는데?’ 하는 태도다.

무리도 아니다. 모자산맥 지빠귀에 비해 칼츠버그 갈매기들은 대단히 머리가 나쁘다.

그것은 사람과 개미 수준의 지능 차이라서, 간단한 언어도 구사할 줄 아는 지빠귀들에 비하면 갈매기들은 제도적인 지원이 시급한 금치산자에 비할 정도였다.

그래서 칼츠버그 시민들은 이 갈매기들을 위해 제도를 만들었다. 물론 모든 약자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그러하듯, 결론적으로 그 제도는 칼츠버그 시민들의 배를 불리는 데 사용되었지만 말이다.

시적인 표현이 아니라, 칼츠버그 시민들은 갈매기를 잡아먹어 배를 불렸다.

보아하니 밤중에 어느 취객의 토사물이라도 주워 먹고 잔뜩 취한 모양이다.

대낮에도 술에 취해 사람에게 주정을 부리는 칼츠버그 갈매기들은 주민들의 좋은 간식거리가 되어 준다.

갈매기를 잡는 방법 중에 술에 담근 생선을 던져 주는 방법까지 있을 정도다.

바로 옆에서 취한 동료가 잡혀가는데도, 서슴없이 술에 절인 생선을 입에 넣는 갈매기의 모습은 구워졌을 때의 맛을 생각하더라도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러나 그만큼의 군침 또한 자아내기 때문에, 칼츠버그 갈매기의 숫자는 꾸준히 증감을 반복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그대로 두면 창문을 깨어 버릴 기세라, 가람은 창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겁도 없이 방 안으로 펄쩍 날아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곤 아직 가람의 체온이 식지 않은 침대에 내려앉더니 제 둥지라도 되는 듯이 자리를 잡고 잠들 자세를 취했다.

가람은 어처구니가 없어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갈매기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창문 밖으로 내던졌다.

졸지에 고약한 꼴을 당한 갈매기가 창문 밖에서 끼룩끼룩 항의하는 것을 가람은 창문을 탁 닫아 버림으로써 차단했다.

모르드레드가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잠을 설쳐 피곤한데, 주정뱅이 갈매기 때문에 몇 시간 자지도 못했다.

다시 잠이 들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다. 슬슬 동이 트고 있으니, 이대로라면 날이 밝는 것은 금방이다.

가람은 잠시 창문 밖으로 보이는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도시에서 보는 동틀 녘의 하늘은 언제나 각별하다.

새파랗게 추운 하늘의 한 귀퉁이부터 벌건 색이 차오르다가 곧 구름의 아랫부분을 달궈 낸다. 위는 검고 아래는 붉은 구름들.

이윽고 천천히 날이 밝아져 구름이 새하얗게 변할 때까지 가람은 창틀에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가람의 시선 밖, 살짝 비껴 난 장소에서 여전히 술이 덜 깬 갈매기 한 마리가 항변하고 있다.

가람을 제 둥지를 불법 점거한 불청객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싶어도 꽥꽥 우는 소리가 시끄러워 그럴 수 없었다. 푸드덕거리는 날개 또한 보통 정신 사나운 것이 아니다.

가람은 결국 한숨을 내쉬고 창문을 위협적으로 쾅, 쳐서 갈매기를 쫓아 버린 뒤 뒤돌았다.

방의 옷걸이에는 모르드레드의 머리가 매달려 있었다.

혹시나 누군가가 보기라도 하면 심장 떨어지기 좋은 모습이라, 가람은 모르드레드의 머리를 걸어 놓고 하얀 종이봉투로 감싸 가려 놓았다. 그 모습이 흡사 과수원의 배를 씌워 놓은 흰 종이 같았다.

종이를 벗겨 보니 어설프게 재생된 턱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턱뼈를 뽑아내고 볼을 찢어 냈는데도 밤사이 거의 회복을 했다.

그러나 가람의 무심한 손이 우악스럽게 턱을 뜯어낸다. 제대로 근육이 이어지지 않고 골격만 형성된 턱은 그것만으로도 쉽게 분리되었다.

가람은 위턱 위로만 남은 머리를 그대로 허공에 매달아 두고 욕실로 향했다.

모르드레드의 머리를 허공에 매달아 둔 이유는 간단하다. 옆으로도, 앞으로도 이동할 수 없는 모르드레드가 차원 문을 열고 도망갈 수 있는 방향은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오직 아래로밖에 떨어져 내릴 수 없다. 바닥에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떨어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람은 그가 바닥으로 떨어지지 못하도록 허공에 매달아 놓았다.

욕실로 들어간 가람은 뽑아낸 턱을 어제 자른 고깃덩이들과 같이 가죽 주머니에 담아 놓았다. 이것들을 차원 문 안으로 던져 넣으면 완벽하게 증거 인멸이다.

비록 모르드레드 본인을 차원 문 안으로 집어넣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의 부산물을 넣는 것은 가능했다.

가람의 차원 문 안으로 모르드레드를 던져 넣으면 모르드레드는 그 자리에 문이 없는 것처럼 그대로 통과한다.

그러나 모르드레드로부터 잘라 낸 살점, 재생하지 않는 부분은 마치 물건처럼 차원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영혼이 어느 쪽에 있느냐의 문제다.

토막을 내어도 꾸물꾸물 재생하던 그 모습을 생각하면 그의 본체가 어떤 것인가 판단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머리를 세로로 두 토막을 내고 한쪽만 보관했는데, 사실 다른 쪽이 본체라면 낭패였다.

하지만 대단히 간단하게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는데, 가람은 모드르레드를 두 쪽 내고 어느 쪽이 재생하는지 지켜본 뒤 재생하는 쪽을 본체라고 판단했다.

주먹만 하게 잘라 내어도 죽지 않을 테니 언젠가는 뇌만 갖고 다녀도 괜찮지 않을까.

가람은 농담처럼 생각하다가 뇌만 남아서도 얄미운 소리를 하고 싶어 꿈틀거리는 그 모습을 떠올리고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돌멩이만 봐도 폭소를 터뜨릴 정도의 고주망태라도 결코 웃지 못할 잔인한 상상이었지만, 가람은 그것이 다시없을 웃긴 장면인 것처럼 웃었다.

턱이 없는 모르드레드는 조용해서 좋다. 고통을 느끼긴 하는지 부릅떠진 눈에는 핏발이 서 있었다.

그 눈은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입고, 허리춤에 총칼을 매달며 부산스레 움직이는 가람을 따라 움직인다.

모르드레드가 빤히 지켜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람은 그 앞에서 옷을 벗고, 갈아입었다.

이미 가람에게 모르드레드는 사람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람의 행동에는 어떤 수치감도 없다.

채비를 끝낸 가람이 문 옆의 황동 거울 앞에 선다. 금속을 반질반질하게 손질해 놓았을 뿐이라, 거울에는 가람이 노랗게 비쳤다.

모르드레드의 살점이나 피가 튀지 않았는지 제 차림을 점검하며 가람은 오늘 할 일들을 떠올렸다.

어쨌거나 배를 타야 하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배에서 개인 선실을 쓴다면 가람이 모르드레드의 머리를 지붕에 달아 놓든 다리 사이에 매달아 두든 아무도 볼 수 없겠지만, 지금은 배를 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 할 상황이었다. 따라서 대책이 필요했다.

가람이 생각한 방법은 매우 단순한 것으로, 배의 출발 시간 전까지 특수한 금고를 주문 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금고 안쪽의 천장에 모르드레드의 머리를 매달고, 옆에는 레버를 부착해 당기면 금고 안쪽의 칼날이 움직여 모르드레드의 목을 잘라 내도록 한다.

잘라 낸 아랫부분은 금고 바닥의 숨겨진 상자 안으로 떨어지고, 밤을 틈타 바닷속으로 버리면 그만이었다.

이 방법을 위해서는 일단 공방을 방문해야 한다. 제작하는 데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한 구조이니만큼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여차하면 그냥 금고를 하나 구해서 천장에 모르드레드를 매달기만 해도 그럭저럭 괜찮은 방법이었다.

옷차림 점검을 끝낸 가람이 방을 나선다. 허리춤에는 모르드레드의 머리가 매달려 있다.

부피가 줄어든 덕분에 더는 보따리로 들고 다니지 않아도 되었다. 묵직하게 흔들거리는 그 모습이 마치 돈주머니 같았다.

그 옆에 찬 칼의 손잡이 또한 섬세하고 아름다워서, 알맹이는 어쨌든 가람은 제법 부유하고 성공한 여행자 같은 태가 났다.

어제 배를 탈 방법을 알려 준 점원이 꾸벅 인사해 오는 것을 대충 받아넘기며 가람은 여관을 나가 모퉁이를 돌았다.

일단은 칼츠버그 상단으로 갔다가 공방으로 가야 한다. 상단에서 배의 출발일을 알아야 공방을 얼마나 재촉할지 정할 수 있을 테니까.

상단의 위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적당히 음식을 사 먹어도 제법 친절한 대답을 들을 수 있었고, 혹은 은행에 가 돈을 찾으며 질문해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다.

애초에, 칼츠버그에서 칼츠버그 상단을 찾는 것이 어려울 리가 없는 것이다.

광장 쪽으로 가 일단 돈부터 찾아 둘까 하던 가람은 문득 밥을 먹지 않고 나온 것을 깨달았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근육이 제법 붙은 몸은 자주 밥을 요구했다.

마침 근처에서 새에 기름을 발라 구워 파는 노점을 발견하고 가람은 그곳에 붙어 섰다.

가람이 다가서자 숯 위에 새를 돌리며 익히던 남자가 반색하고 좋아했다. 가람의 얼굴이 납작하고 커다란 황금빛의 무언가로 보이는 것 같은 반응이다.

어쨌거나 숯 위에서 익어 가는 새의 크기가 묘하게 익숙해서, 가람이 질문했다.

“무슨 새죠?”

“갈매깁니다요. 요거, 방금 잡아서 구운 거라 아주 맛있죠.”

가람은 문득 아침에 창가로 달려들었던 갈매기를 떠올렸다. 험한 세상,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되는 새였다.

그 험한 세상을 피해 제 침대로 날아든 새를 집어 던진 사람이 할 만한 생각은 아니었지만.

“이거로 주세요.”

가람이 향초 기름을 발라 번들번들 노릇노릇한 새 구이를 가리켰다. 닭보다는 좀 작고, 비둘기보다는 좀 크다. 기름에 소금을 섞어 발랐는지 간이 적당히 배어 담백했다.

가람은 부디 이 새고기가 아는 새 고기가 아니길 바랐다. 예를 들어, 아침에 본 그 갈매기라던가.

“칼츠버그 상단이 어디죠?”

“아, 여기서 바로 보이지. 저기 높은 첨탑 보이시오? 커다란 칼을 든 여신상이 서 있는 꼭대기.”

가람은 상인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칼을 든 여신상은 아니고, 어정쩡한 각도로 세워진 옷걸이 같은 것이 보였다.

아마 옷걸이의 고리 부분이 여신의 머리인 모양이었다. 해안가의 거친 바람은 여신을 옷걸이로 바꾸어 두었다.

“잘 먹었어요.”

갈매기 한 마리를 다 뜯어 먹은 가람은 멀리 보이는 첨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걷지 않아, 문득 멈춰 섰다.

아까부터 따라오는 기척이 있었다. 따라붙은 지는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가람은 그 자리에 서서 그 사람이 그냥 지나쳐 가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등 뒤의 기척이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 붐비지 않는 길이라 가람은 미행의 기척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곧 발자국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가까워진 남자는 자연스럽게 가람 옆으로 지나쳐 갔다.

‘착각이었나?’

가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두세 걸음 앞서 지나쳐 갔던 남자가 갑자기 확 다가서더니 가람의 허리춤에 손을 대었다. 무시무시하게 빠른 속도다.

그대로 주머니를 잡아채어 뛰어 도망치려는 속셈인지 손길이 우악스럽다.

모르드레드의 머리가 든 주머니다. 가람은 순간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로 철렁했다.

모르드레드의 주머니. 일단 생각이 거기에 이르자 이성이 사라졌다. 돈주머니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모르드레드의 머리를 훔치려고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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