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스파인더-123화 (123/256)

13화

누군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가람은 기겁했다. 너무나 놀라서 그 목소리가 얇은지 굵은지도 구분하지 못했다.

가람이 벌떡 일어나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몸을 돌리자, 덕분에 목소리의 주인은 가람이 등으로 반쯤 가리고 있던 것의 정체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둥글고, 머리카락이 달린.

“머, 머, 사, 사람, 히, 이익!”

거의 숨이 넘어가기 직전까지 몰린 그녀는 가람이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가람과 함께 있던 일행 중 한 명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가람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깨닫고 반사적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진정시키든, 아니면 변명을 하든 뭐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람이 한 발짝 딛는 순간.

“가, 가까이 오지 마! 꺄아아아아아아악!”

산을 뒤흔들 수도 있을 것 같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근처의 모두가 들었을 만큼 커다란 비명이었다.

혓바닥을 토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성대하게 소리를 지른 여자는,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서 악을 쓰는 여자는 비명을 지르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도 되는 양 악다구니를 써 댔다.

덕분에 가람이 여자를 달래기 위해 꺼낸 침착한 말들은 모두 비명에 묻혀 버렸다.

사실 침착한 척해도 가람은 몹시 당황한 상태라 어쩔 줄 모르고 일단 여자가 하고 있을 모든 끔찍한 상상을 부정하기 바빴을 뿐이다.

그게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람은 연거푸 부정했다.

사람들이 도착한 것은 가람이 여자를 내버려 두고 일단 모르드레드의 머리를 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솔직히, 가람은 모르드레드의 머리와 모르는 척하는 것이 더 자신에게 이로울지, 아니면 어떻게든 둘러대는 것이 더 이로울지 아직 판단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눈앞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자신을 손가락질하는데 누군들 침착할 수 있을까.

비명을 지르는 여자를 보면 사람들은 보통 무언가 굉장히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 현장에는 잘린 머리에 엉거주춤한 자세로 손을 내밀고 있는 가람까지 있다.

몰려온 사람들은 가람이 비명을 지르게 한 원인이라고 파악했다.

물론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사실과 사람들의 생각 사이에는 모르드레드와 선량이라는 단어 사이에 놓인 거리만큼이나 멀고도 깊은 오해가 있었다.

“저 여자가 금묘를 해치려고 한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목이 굵다란 남자가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비명을 지르는 금묘라는 여자와 일행인 듯싶었다.

몰려든 사람들은 열서넛 정도였는데, 뒤늦게 소란을 눈치챈 가람 쪽에서도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금묘라는 여자가 이 산에 있는 사람이라는 사람은 다 불러 모으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가 아는 사람이 나타나자 금묘라는 여자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일행의 품에 안겼다. 사람들은 날 선 눈을 하고 가람을 노려보았다.

가람의 발치에서 모르드레드의 머리를 발견한 몇몇 사람이 급히 숨을 삼킨다. 그 경악은 돌림 노래처럼 퍼져 나가서 순식간에 사람들을 침묵시켰다.

“저 여자가 사람 머리를 갖고 다닌다.”

“썩지 않았어. 저 여자가 사람을 죽였다!”

둘 다 담백한 사실이다. 가람이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자 시선에 섞인 끔찍함과 경악이 더욱 진해졌다. 가람은 뒤늦게 자신이 고개를 끄덕인 것을 깨닫고 머리를 짚었다.

사람들이 점점 모이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가람의 침착한 분위기 때문인지 흉흉한 기운만 풍길 뿐 직접적으로 덤벼드는 사람은 없다.

아까보다 더 나은 점은, 비명이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침묵하고 있고, 이 정도로 조용하다면 가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진정하세요. 여러분.”

가람은 침착하게 호소하듯 말했다. 발치에 머리통이 있긴 하지만 가람이 흉흉한 얼굴로 눈을 빛내지도 않고, 대뜸 허리에 찬 칼을 휘두르며 광소를 터뜨리지도 않자 사람들은 차츰 진정했다.

사람들 사이로 일단 들어 보자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가람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최대한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설명을 해야 한다.

“이건 저희 마을에 전해져 오는 장례 풍습입니다.”

“장례 풍습?”

먹힌다. 누군가가 되묻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였다. 가람은 남자가 보이는 흥미를 놓치지 않았다.

“네. 이 사람은 제 소중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얼마 전 사고를 당해…….”

“머리가 서대륙 사람이다! 서대륙 사람!”

“저 여자도 서대륙 차림인데?”

가람이 말문을 흐리자 그 틈에 몇몇이 소리쳤다. 똑똑한 척하기 좋아하는 몇몇이 가람이 말하기도 전에 제 추리를 풀어놓는다.

“소중한 사람이라니, 가족은 아니겠고. 연인인가?”

가람의 입이 잠시 굳게 다물렸다. 잠시 침묵한 가람은 표정 없는 얼굴로 그 머리는 약혼자의 머리라고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가람의 메마른 얼굴이 슬픔으로 인한 것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라도 함께 동대륙으로 오고 싶어서 가져온 게 분명해!”

급기야 누군가가 외치자 사람들은 반반으로 나뉘었다. 역겹다는 표정과, 애절하고 슬픈 무언가를 보는 것 같은 표정이 딱 절반씩 나뉜다.

그래도 아직 꺼림칙한 분위기가 있었지만, 그럭저럭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처음 비명을 질렀던 금묘라는 아가씨는 미안한 기색까지 내비친다. 그렇게 모든 것이 잘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내가 네 약혼자라고?”

모르드레드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바닥에 놓인 머리가 우습다는 듯 지껄이자 소름 끼치는 경악이 사람들을 휩쓸었다.

모든 사람들이 제 귀를 의심하는데, 가람이 변명할 여지도 주지 않고 모르드레드가 계속해서 말했다.

“아, 말 한번 오랜만에 해 보는군. 네가 내 턱을 자르는 바람에 답답해서 죽는 줄 알았잖아. 그러니까, 진짜로 죽는 줄 알았다고. 푸핫. 이게 얼마나 힘든 말인지 알겠지? 내가 죽는 줄 알았다니.”

말을 마친 모르드레드가 낮게 킬킬대자 그 웃음소리를 촉매로 침묵이 바삭바삭 부스러져 떨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칼날처럼 곤두서서 가람을 향해 있다.

그 찌를 듯한 느낌에, 가람은 입술을 깨물며 모르드레드의 머리를 집어 들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머리를 드는 그 행동에, 불신이 폭발했다.

“저주받은 머리다! 저 여자는 마녀가 분명해!”

“죽여! 죽여 버려!”

“괴물이야! 머리를 빼앗아! 저주를 하기 전에 머리를 부숴 버리라고!”

말과 말이 섞이고, 외침과 외침이 충돌해 사람들은 아우성쳤다. 가람은 거듭 호소하며 그런 것이 아니라고 외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였다.

완전히 아수라장이 된 와중에 누군가가 가람에게 달려들어 모르드레드의 머리를 빼앗았다.

부수려는 의도인지, 강하게 아래로 집어 던졌지만 모르드레드의 머리는 비탈을 타고 데굴데굴 굴러갔다.

가람은 핏발 선 눈으로 아우성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급히 모르드레드의 머리를 쫓았다. 일단은 이쪽이 급하다.

달려가는 가람이 도망친다고 생각했는지 사람들은 소리 지르며 가람의 뒤를 쫓았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가람을 붙잡는다.

불가사의한 일을 맞닥뜨린 사람들은 평소 맹신하던 미신이 실재가 되어 나타났다고 굳게 믿는 표정이었다. 너 나 할 것 없이 그렇다.

가람의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포 섞인 여론이란 광기와도 같아서, 일단 휩쓸리기 시작하면 절대 혼자 힘으로 벗어날 수 없다.

“놔! 놓으라고!”

가람은 자신의 팔을 잡은 손을 뿌리치다가 힘에 겨운 나머지 손을 휘둘러 후려쳤다. 얻어맞은 여자가 비명을 지르자 사람들의 기세가 불을 붙인 것처럼 뜨겁게 타올랐다.

그 사이에는 비랑과 향우도 있었다. 두 사람은 가람과 간밤에 함께 방을 쓴 것이 끔찍하기 짝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 표정을 스치듯 눈에 담은 가람은 이를 악물고 모르드레드의 머리를 쫓았다. 붙잡힌 탓에 거리가 너무 멀어졌다.

모르드레드 스스로가 의도하는 것인지, 아니면 안 좋은 일은 겹친다는 법칙이 작용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모르드레드는 아래로 계속해서 굴러갔다.

산이라는 지형적인 특성상 아래로 굴러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디 한 곳 돌부리에라도 걸릴 법한데, 걸리지도 않는다.

머리는 계속 굴러 결국 산의 가장자리까지 갔다. 조금만 더 굴러가면 거센 물살에 삼켜져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가장자리의 촘촘한 나무뿌리에 가까스로 걸렸다.

그 와중에도 가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가람이 어디로 향하는지 눈치챈 사람들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곧 날듯이 뛰어 내려온 남자 하나가 가람이 막 집어 들려는 모르드레드의 머리를 발로 차 버린다.

“악마를 내가 없앴다! 없앴다고!”

남자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외친다. 남자가 걷어찬 모르드레드의 머리는 깔끔하게 강의 물살에 삼켜져 사라졌다.

물살이 너무 빨라 벌써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도 없다. 가람이 망연한 얼굴로 올려다보자 남자는 더욱 기세등등해졌다.

“마녀가 힘을 못 쓴다! 다들 봤겠지?”

무엇이 그렇게 자랑스러운지 가람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나 말했는데. 그렇게나 호소했는데.

그래, 믿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상하겠지. 두렵고 위험하게 느껴지겠지. 그래. 다 납득할 수 있다. 납득할 수 있었다.

아니, 납득할 수 없다.

“당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

가람의 목소리에는 억양도 고저도 없었다. 한없이 가라앉아 가는 어둠만이 가득하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탁하고 어두웠다.

다급함이 사라지고 갑자기 차분해진 가람의 모습에 사람들은 어색함을 느꼈다.

그러나 압도적인 수적인 우세는 고양감을 느끼게 하는 법이다.

마녀를 죽이자고 외치는 사람은 없었지만, 사람들은 가람을 포위하고 독 안에 든 쥐를 바라보듯 했다. 그 시선에, 그 표정에, 그 분위기에.

“당신들이 산에 있는 사람 전부인가요.”

가라앉아 있던 스트레스가 터져 나왔다고 봐도 좋았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가람은 총을 꺼내 들었다. 총탄을 많이 챙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가람이 무언가를 할 것처럼 자세를 잡자, 무기를 가진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칼을 꺼내 들었다.

살금살금 눈치만 살피던 남자 하나가 갑자기 득달같이 달려든다. 우람한 덩치와 가람의 허리만 한 팔뚝, 실로 산이라도 쪼갤 기세였다.

사람들은 가람의 신체 어딘가가 잘릴 것이 분명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역사적인 베기에 대한 가람의 대답은 성의 없는 자세로 발사한 한 발의 총탄이었다. 너무 가까워 조준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남자의 이마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리고, 그가 쓰러지기도 전에 다음 총성이 울렸다.

사람들이 진짜 ‘사냥감’과 ‘사냥꾼’이 누구인지 깨달은 것은 다섯이 속절없이 쓰러졌을 때였다.

그 와중에도 근거리임을 노려 달려드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아무리 근거리라고 해도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보다 빠를 수는 없다. 곧 총탄은 사람들의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람이 약 스무 명의 사람을 학살하는 데는 3분도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남자는 완전히 겁에 질려 기듯이 도망치고 있었다. 옷과 바지, 얼굴에 튄 피가 눈물과 뒤섞여 흘러내린다.

“사, 살려 줘! 살려 주십시오! 나으리! 제발! 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가람은 들고 있던 총구를 내렸다. 부츠가 저벅저벅 바닥을 밟는 소리에 남자는 오금이 저린 표정으로 부르르 떨었다.

그래도 총구를 내렸으니,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남자의 눈이 희망으로 부풀었다. 그는 어느새 앞으로 다가온 가람을 올려다보았다.

“당신들이 산에 있는 사람 전부인가요.”

두 번째로 한 질문이다. 아까와는 달리 숨넘어갈 것처럼 다급한 대답이 돌아왔다.

“예! 예! 그렇습니다. 제가 마지막입니다.”

반사적으로 대답한 남자는 문득 답변 내용에 대해 어색함을 느꼈다. 왜 그런 질문을? 그러나 다음 순간 가람의 총구가 자신을 향하자 새카맣게 죽은 눈으로 깨달았다.

이렇게, 어떻게 이렇게 사악한. 이 여자는 처음부터 아무도 살려 둘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남자는 악에 받쳐 소리쳤다.

“너는 지옥에 떨어질 거다! 내가 지옥에서 기다리면서 네년이 오면……!”

남자의 말은 더 이어질 수 없었다. 마침표 대신 총성이 그의 말을 닫았다. 가람은 경련하는 그의 시신 앞에서 조용히 사과했다.

“정말로, 미안해서 어쩌지. 난 그런 데 갈 일 없거든.”

서리가 앉은 것처럼 냉혹한 얼굴은 창백하리만치 새하얗다. 어느새 밤이다. 가람은 사방에 즐비한 시신을 둘러보다 어두운 강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이 강의 하류가 있을 것이다. 모르드레드의 머리를 찾고 싶다면 가장 빠른 방법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