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스파인더-142화 (142/256)

32화

남자가 외치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기 때문에 가람은 자연스럽게 그에게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나 남자가 누구인지 생각나지 않는 것은 여전했다.

“저 기억 안 나세요? 저 에루시오예요. 에루시오!”

두 번이나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청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람은 애매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름을 들어도 얼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전에 비 오는 야외 천막에서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었던! 여동생이랑 같이 다녔던 남자 있잖아요. 그때는 남자 둘이랑 같이 다니셨는데. 저 정말 기억 안 나세요? 작년쯤에.”

가람은 그제야 그를 기억해 냈다. 그리고 새삼스러운 기분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고작 1년. 남자는 옅게 묻어나던 소년티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훤칠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가람보다 머리 한 개는 커졌지만 특유의 상큼한 미소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강아지처럼 가람의 곁으로 다가와 산만하게 반가워하기 시작했다.

“우와, 어떻게 이렇게 만나지? 여기는 무슨 일이세요?”

“일이 있어서…….”

“무슨 일……. 아. 상단 일이요? 어쩌다가 여기에서 일하게 되신 거예요? 진짜 신기하다. 잘 지내셨어요?”

에루시오는 가람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폭풍과도 같이 말을 쏟아 내었다. 말의 대부분은 세상일은 참 신기하다는 투의 감탄이었다.

다시 만난 것을 너무나도 감격스러워하는 터라 가람은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렇게나 반가워할 만한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고작해야 하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한 정도다.

“아는 사이였습니까?”

두 사람 사이에 어중간하게 서 있던 서기가 가람에게 질문했다.

“아, 예전에 잠깐.”

정말로 잠깐이었지만 서기는 그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에루시오가 거의 헤어진 연인을 만난 것마냥 호들갑을 떨어 댔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마냥 이렇게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서기는 가람과 에루시오의 사이에 끼어들어 섰다.

시야에서 가람이 사라지자 살짝 이성을 되찾는 에루시오에게 도인이 빙긋 미소 지었다. 그리고 축객령.

“일해.”

그 단호한 명령에 에루시오는 마치 야단맞은 강아지 같은 태도로 주춤주춤 문을 나서서 사라졌다.

끝까지 아쉬운 듯 뒤돌아보는 그 얼굴 위로 축 처진 강아지 귀가 보이는 것 같았다.

도인은 마치 악덕 고용주 같은 자세로 그의 퇴장을 지켜보다가 가람에게 이곳에 온 목적을 상기시켰다.

“자, 그럼 이제 할 일을 가르쳐 드리죠.”

* * *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정오.

가람은 이 시간을 그렇게 평가했다. 손안에서 굴리고 있는 고급 펜의 감촉이 부드럽다.

이따금씩 시폰 커튼을 부풀게 하는 연둣빛 바람도 싱그럽고, 그와 함께 불어오는 정원 꽃나무 향도 매우 향긋하다.

고급 노동자를 위해 공작가에서 제공하는 다과의 찻잔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가람은 입 안에 찻물을 머금고 책상 앞에 놓인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본래대로라면 웨이든의 일감으로 배당되어 그의 게으름의 희생양이 될 예정이었던 이 종이는 그 불운한 운명에서 벗어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상태였다.

종이의 입장에서는 매우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무생물의 감정이 어떠하든 가람은 무심한 손길로 서류를 정리했다.

가람이 맡게 된 일은 서기의 말대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그 업무의 양에 문제가 있었다.

업무의 전산화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이 세계에서는 그 날 판매된 상품의 수량을 모조리 수기로 계산하는 수밖에 없었다.

조그마한 구멍가게의 출납을 기록하는 것도 제법 손이 많이 가는데, 이런 커다란 상회의 상품 출납에 대한 계산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올라오는 서류의 대부분은 각 점포나 거래에서 소모된 상품의 수량이 그 날 혹은 그 때별로 적혀 있는 것이었다.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이 그때그때 판매된 개수를 적어 놓은 것을 가람이 합산한다.

물론 상인이 판매할 때마다 수량을 계산해 기록한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겠지만 이 세계 사람들의 숫자 계산에 대한 효율을 생각한다면 그건 그렇게 좋은 방식이 아니었다.

그렇게 합산한 것으로 상회에 남아 있는 또 다른 장부와 대조하여 계산하는 것이다.

가끔은 다른 사람이 이미 계산해 둔 서류를 검산하는 작업이 넘어오기도 했는데, 그로 미루어 보자면 가람이 끝낸 일거리도 다른 누군가의 손에서 검산당하고 있을 것이다.

“와, 벌써 다 끝난 거예요?”

귓가에 울리는 감탄사에 가람은 서류를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감탄성의 주인은 첫날 본 에루시오와 수다를 떨던 사람으로 자신을 게릭이라 소개한 남자였다.

종종 에루시오가 놀러 오는 때를 제외하면 가람이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 함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앞에 반의반도 끝나지 않은 채 놓여 있는 서류를 부정하고 싶은 모양인지 턱을 괴고 가람에게 시선을 고정한 상태였다.

벌써라고 해도 어차피 두 자리 수 이하의 단순 계산이다. 가람에게 할당되는 서류는 약 5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으로 오전 한나절 잠깐 집중하면 금방 끝낼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게릭에게는 몹시도 버거운 일인지 그는 꽤 자주 밤늦게까지 남아 일을 했다.

이곳에서 일한 지는 이제 일주일 남짓 되었을 뿐이지만 그가 야근하는 것을 가람이 목격한 것은 그중 절반인 사흘이나 된다.

“네.”

가람은 최대한 거만해 보이지 않도록 조심하며 짧게 대답했다. 다소 심드렁하게 보이는 이 대답을 아니꼬워할 수도 있을 텐데 게릭은 그저 순수하게 미소 지었다.

“진짜 빠르다.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하죠?”

“글쎄요.”

“동양인이라 그런가? 아닌데, 전에 본 다른 동양인은 그렇게 빠르지 않았는걸요. 혹시 천재 아니에요? 사실 본국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학자라던가?”

제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게릭에게 가람은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게릭은 진지하지 못한 태도로 이것저것 산만하게 추리하다가 곧 흥미를 잃었다. 무슨 말을 해도 가람이 ‘글쎄요.’, ‘설마요.’ 등의 답변으로 일관하니 영 재미가 없어졌던 것이다.

“이제 뭐 할 거예요?”

오늘 할 일은 끝났으니 뭘 할 생각이냐는 뜻이다. 가람은 그 질문에도 ‘글쎄요.’ 하고 대답했다.

귀찮아서 대충 대답한 것은 아니었다. 정말로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람은 괜히 하녀가 가져다준 쿠키를 한 조각 집어 들어 우물거렸다.

일주일 동안 가람은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집무실을 빠져나와 공작성을 돌아다녔다. 혼자 돌아다닐 때도 있었고, 에루시오가 구경시켜 주겠다며 따라붙은 적도 있었다.

어쨌거나 성에서 처음 일하는 고용인들이 성을 구경 다니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라서 가람은 별다른 의심의 시선 없이 마음껏 패스를 찾아 성을 뒤지고 다닐 수 있었다.

넓디넓은 공작성을 다 뒤지는 것에는 정확히 일주일이 걸렸다. 가람은 지하로도 가 보고, 성의 망루에도 올라가는 등 정말로 성의 모든 장소를 꼼꼼하게 살폈다.

대부분의 장소가 개방되어 있었던 덕분에 탐색은 제법 순조로웠다. 그러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가장 중요한, 패스가 위치한 곳이 개방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개방이 되어 있다고 해도 사유지인 이상 외부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구역도 있는 법이다. 예를 들자면, 공작의 식구들이 기거하는 생활 공간이 그것이다.

공작의 침실이나 그 혈족들이 머무는 방. 그것들은 대부분 가장 전망 좋고 볕이 잘 드는 높은 장소에 위치하고 있다.

성의 5층 이상은 일반인에게 개방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적어도 7층 이상에 위치한 그 방에 가람은 접근할 방법이 없었다.

추정컨대 패스는 아마도 7층, 공작의 침실에 위치하고 있을 것이다. 차라리 집무실이라면 업무를 핑계로 들러 볼 수 있었을 텐데.

게다가 가람은 성을 돌아다닐 이유가 전혀 없는 사무직이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업무의 특성상 공작의 침실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

침실에 접근하기 가장 적절한 직업은 하인이나 하녀겠지만 애당초 가람이 하인이나 하녀를 목표로 했다면 성으로 들어오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다.

가람은 동양인이고, 다양한 언어와 교육받은 태가 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를 단순 하녀로 고용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에루시오에게 듣기론 여행자시라고 하던데, 공작가에 들어온 건 서대륙 정착을 위해서죠?”

펜을 만지작거리던 게릭이 슬쩍 떠보는 투로 질문한다. 정착. 익숙지 않은 단어다.

아마도 보통 사람이라면 긍정의 대답을 내놓았을 것이다. 웨이든이 마련해 준 이 일자리는 정말로 만족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하녀가 규칙적으로 수발을 들고, 개인 숙소까지 얻게 되며, 잘만 하면 높은 귀족의 눈에 띄어 단숨에 출세 가도를 달릴 수도 있다. 다른 대륙 사람에게 이 이상 좋은 일자리가 있을까.

“나쁘지 않죠.”

“그러면 결혼도 여기서 할 생각이에요?”

잠시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게릭은 찔끔한 기색으로 가람의 눈치를 살폈다. 너무 민감한 주제를 갑자기 꺼낸 건가. 확실히 가볍게 꺼낼 만한 주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게릭은 나름대로 이 질문을 할 이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제 친우인 에루시오가 그녀에게 마음이 있는 듯했기에.

그러나 역시 너무 섣부른 시도였던 모양이다. 게릭은 길어지는 침묵을 세며 조금 초조하게 가람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저가 청혼한 것도 아닌데 손금 사이에 땀이 차는 것 같았다.

가람의 침묵은 게릭의 염려와는 조금 다른 이유였다. 결혼이라니. 너무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주제라서 스스로와 연결시키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혼란스러워하던 가람은 가까스로 자신 정도의 나이라면 이쪽 세상에서 혼기가 꽉 찬 나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물론 이쪽 세상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언젠가 돌아갈 저쪽 세상에서도 가람은 또 이 주제를 마주해야 할 것이다.

“결혼……이요?”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며 멍한 어조로 되물은 가람이 조금 더 생각에 빠진다. 그리고 전혀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데에 도달했다.

그녀는 포기하듯 툭 내뱉었다.

“별생각 없어요.”

가람은 결혼이라는 단어에서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장밋빛 미래, 사랑스러운 자식들,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삶 따위를 인위적으로 떠올리며 어떤 감상에 빠져 보려고 했지만 텅 빈 주머니 속에 손을 깊이 찔러 넣고 헛손질을 하는 것 같은 허무함만을 맛보았을 뿐이다.

“그러실 거라고 생각은 했어요.”

“네?”

“그게, 사실 좀 무뚝뚝하시잖아요. 지금이야 그게 성격인 줄 알지만 처음에는 무슨 저런 사람이 있나 했다니까요. 에루시오와 아는 사람이라 해서 비슷한 성격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아.”

가람은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그저 추임새 같은 대답만 내놓았다. 그 대답에 게릭은 갑자기 신이 나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탈리가 그렇게 대해도 눈썹 하나 꿈쩍 않으시고.”

나탈리.

그녀는 이 성에서 일하는 하녀 중 한 명으로 에루시오에게 일방적인 호감을 품고 있는 여자였다.

첫날 가람에게도 몹시 까칠하게 굴었는데, 덕분에 가람은 뜨거운 찻물을 뒤집어쓰거나 맛없는 쿠키를 먹는 등의 가벼운 심술을 당했다. 하지만 가람은 화내지 않았다.

가람의 분노는 모르드레드가 가져갔고 정신은 패스를 찾는 데 몰두했다. 그러므로 가람은 그런 하찮은 도발에 소모할 신경이 없었다.

그녀는 지금도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고, 처음 심술을 부렸던 나탈리는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졌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가람이 일방적으로 무시하니 상대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잘됐잖아요.”

“그게 잘된 건가요. 화를 내야죠. 보고 있으면 제가 다 답답해서. 감정도 없으세요? 어휴, 나탈리 그 계집애를 정말.”

게릭이 쫑알거리면서 분통을 터뜨린다. 가람은 허허롭게 웃으며 그 말을 넘겨 버렸다. 그리고 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게릭의 일거리를 좀 덜어 와 책상에 앉았다.

이 행동으로 가람은 앞으로 한 시간은 이어질 그의 수다를 막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아, 그렇게 안 해 주셔도 되는데…….”

“아니에요. 어차피 제 몫은 다 했으니까요. 천천히 도와줄게요.”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미소를 지으며 게릭이 멋쩍게 뒤통수를 긁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탄성을 내질렀다.

“그러고 보니 오늘 에루시오가 올 텐데.”

이틀에 한 번 에루시오는 가람과 게릭이 일하는 집무실에 먹을거리를 들고 방문하곤 했다. 그 먹을거리는 때로는 좋은 술이기도 했고, 치즈나 간식거리, 고기일 때도 있었다.

그의 업무가 있어 그리 오래 머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비교적 자주 드나드는 편에 속했다.

“마침 잘됐네요. 물어볼 것도 있었는데.”

“무슨?”

에루시오가 집무실에 유독 자주 방문하는 이유를 알고 있는 게릭이 즉각 되묻는다.

귀가 쫑긋하는 환영이 보이는 것 같았다. 게릭은 혹시나 에루시오의 연애 사업에 희망적인 뉴스를 들을 수 있을까 기대했다.

“공작님 독신이에요?”

다시 침묵이 내려앉는다. 게릭의 머리가 일순 쩡하고 얼어붙었다가 질문의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활발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떤 추론도 제 친우에게 비관적인 결과로 치달을 뿐이었다. 그는 친구 대신 울어 주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독신……이시죠.”

“게릭 씨는 외부 고용인이시니 5층 이상은 올라가지 못하시죠?”

“그렇죠.”

슬슬 불안해지는 마음을 억누르며 게릭이 조심스레 대답한다. 가람의 질문이 다시 이어졌다.

“하지만 에루시오는 올라갈 수 있겠죠? 기사 지망으로 이 성에 들어왔다 들었는데.”

에루시오는 여행 도중 에르비에르만 상단이 습격받은 것을 목격하고 몸을 날려 산적을 토벌한 것이 인연이 되어 이 성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때는 두 동생을 고향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이어서 혈혈단신이었는데, 덕분에 생활력이 없는 그는 거의 무일푼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처지를 딱하게 여긴 공작이 은혜도 갚을 겸 호의를 베풀었고, 청이 있다면 들어주겠노라 말한 공작에게 이 패기 넘치는 멧돼지 슬레이어는 기사가 되고 싶다고 외쳤던 것이다.

“아직 기사는 아니지만, 호위 기사의 종자이니 올라갈 수 있죠.”

가람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우아하고 은은한 미소인데도 게릭은 그 미소에서 알 수 없는 섬뜩함을 느꼈다.

그가 이 기이한 질문들의 의도를 물어보려는 순간, 때마침 에루시오가 문을 벌컥 열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하세요!”

평소와 같은, 아니, 평소보다 더욱 활달한 기운을 흩뿌리며 방문한 그는 순간 자신에게 모여드는 시선에 조금 당황하다가 손에 든 것을 흔들어 보였다.

“왜 그래요? 저 칠면조 다리 가져왔는데……. 전에 가람 씨가 좋아한다고 했던 거 같아서.”

딱히 가람은 칠면조 다리를 좋아한다고 한 적은 없었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그저 음식이라면 다 좋지만 체력을 빨리 채울 수 있다는 이유로 ‘고기를 선호한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이어지는 어떤 고기를 좋아하느냐는 말에는 단순히 그때 먹고 있던 것이 새고기여서 새고기라고 답했을 뿐이었다.

어쨌거나 그가 찾아온 것은 반가운 일이라 가람은 칠면조 다리를 딸랑딸랑 흔들어 보이는 그에게 입을 열었다.

“에루시오, 질문이 있는데.”

“예? 뭔가요?”

요 며칠간 가람의 곁을 맴돌았지만 가람이 이렇게 먼저 질문을 꺼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제 나에게 관심이 생기신 건가? 에루시오의 눈망울이 기대에 부푸는 것을 보며 게릭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기대를 짓밟기에 충분한 내용이 묵직하게 그를 후려쳤다.

“공작님의 침실이 어디인지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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