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남자들은 정말로 가람을 설득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술꾼들이란 원래 쓸데없는 것에 열정적이기 마련이다.
어차피 패스는 충전 중이니 어디로 가도 상관은 없다. 홀로 떠나면 저도 모르게 야수들판으로 향할지도 몰랐기에 가람은 선선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아요.”
순순한 태도로 대답한 가람은 그 대답대로 다음 날 아침 도착한 상단과 다시 길을 떠나게 되었다. 아쉬워할 틈도 없었다.
새벽같이 도착한 상인들이 남자들을 닦달하며 술통에 값을 매기는 통에 주변은 순식간에 정신없이 소란스러워졌고, 작별 또한 소란에 묻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몇몇 여린 성정을 가진 이들은 몰래 눈물을 찍어 내기도 했으나 그것이 작별의 아쉬움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자식 같은 술들을 떠나보낸 데에 관한 것인지 가람으로선 알 도리가 없었다.
덜그럭거리는 수레. 부서지기 쉬운 짐이 망가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가람은 조금 나른하게 앉아 있었다.
멀어지고 있는 길의 끝에서 연신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남자들에게 간간이 손을 흔들어 주던 가람은 문득 자신이 수레에 앉게 된 과정을 떠올리고 미소 지었다.
오늘 새벽에는 정말로 대단했다. 새벽의 찬 공기를 두르고 나타난 상인들은 시간이 곧 돈이라며 숙취에 얼룩져 널브러진 남자들을 쥐어짰다.
냄새나는 걸레처럼 늘어져 있던 그들에게 그것은 썩 잘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어쨌거나 그 소란은 모닥불가에서 이슬을 들이마시며 내팽개쳐져 있던 가람을 부스스 일어나게 만들기 충분한 것이었다.
상인들은 마치 사냥개처럼 사방을 헤집으며 술을 맛보고, 계약하기도 하고, 질문을 쏟아 내었다.
그 틈바구니에서 가람은 잠에 취한 머리로 잠시 멍청하게 앉아 상황 판단을 위해 노력했다.
멍하니 앉아 있는 그녀에게도 몇몇 상인이 접근해 술을 팔 거냐고 질문했지만 반사적으로 가로저은 머리에 미련 없이 떠나 버렸다.
얼마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은 수레에 앉아 있었다. 어느 틈에 앉게 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짐작컨대 아마도 남자들 중 하나가 폭풍 속의 병아리마냥 앉아 있는 가람을 안쓰럽게 여기고 대신 상인들에게 이야기해 준 모양이었다.
가람으로서는 정말로 어어 하는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수레에 앉게 된 정황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들 중 하나일 상인들은 가람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출발했다.
사실 상인들로서는 어쩌다가 끼게 된 동행인에게 상황 설명을 할 이유가 없었다.
설명에도 품이 드는 법이라, 상인들 중에 그런 귀찮은 일을 나서서 할 만큼 여유로운 사람은 없었다.
정 궁금하면 가람이 물어보거나, 아니면 적당히 누군가에게 듣겠지 하는 태도였다.
어쨌거나 구입한 술을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생각으로 몹시 분주해 보였다.
상념에 빠진 사이 길 끝의 남자들은 하나둘씩 제자리로 돌아가 이제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 텅 빈 그곳에서 눈 돌려 상인들을 바라보던 가람은 문득 찌를 듯한 시선을 느끼고 돌아보았다.
사실 수레 위에 앉아 있는 것은 가람뿐만이 아니었다. 가람보다 훨씬 이전부터 수레를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있었는데, 가람을 제외하고 모두 세 명이었다.
커다란 덩치를 욱여넣은 남자 하나와 짜증스러운 표정의 다른 남자, 그리고 십 대로 보이는 소녀 하나. 시선은 소녀의 것이다.
“아.”
가람과 시선이 마주친 그녀가 짧게 당황하더니 곧 다급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마주 인사하며 가람은 그녀를 찬찬히 관찰했다. 어중간한 길이의 머리칼을 하나로 질끈 묶은 소녀는 조촐해 보이는 짐 가방을 가슴팍에 꼭 끌어안고 있었다. 가방에 둘러진 팔의 옷소매는 다 해어져 있다.
그 옆에는 여유로워 보이는 작은 강아지가 그녀에게 반쯤 기댄 상태로 엎드려 있었는데,
수레의 덜컹거림에 살짝 몸을 들썩일 뿐 미동도 없는 자세가 이런 종류의 여행에 몹시 익숙한 모양이었다.
“얘는 더비예요. 저는 세렌이구요.”
가람의 시선이 강아지에게 닿는 것을 눈치챈 소녀가 재빨리 소개했다. 붙임성이 좋은 성격이다.
어쩐지 긴장한 것으로 보이던 그녀는 가람이 선선히 자신의 이름을 말해 주자 마른침을 한 번 삼키고 가람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뚫어질 것같이 집요한 시선이라 가람이 슬슬 불편해할 때쯤 그녀가 별안간 진지하게 고백했다.
“저 동양인 처음 봐요.”
그렇게 말한 그녀는 정말로 세상에 다시없을 진귀한 것을 보듯이 가람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닿은 곳에 불이 붙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열렬한 시선이었다.
사람을 절로 어색하게 만드는 태도라서 가람은 조금 당황했다. 이렇게나 노골적으로 관찰당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저기요. 머리 만져 봐도 돼요?”
신중하기 짝이 없는 어조로 소녀는 대단히 뜬금없는 부탁을 해 왔다. 가람은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하고 잠시 당황했다.
“역시, 싫으신가요?”
싫다기보다 사실 곤란한 것에 가까웠다. 여행을 하다 보면 위생 관념이 흐려지기 마련이다.
예전에는 이틀에 한 번 꼬박꼬박 베이스캠프로 돌아가 샤워를 하곤 했지만 요 근래에는 특별히 오물이 묻지 않는 이상 가람은 거의 씻지 않았다.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법이라, 주변 누구도 자주 씻지 않으니 가람도 적당히 그렇게 변한 것이다.
덕분에 가람의 머리는 감은 지 일주일이 가볍게 넘어가는 상태였다. 꼬질꼬질하고 퀴퀴한 냄새를 풍기는 가람을 보고 술을 빚던 남자들이 사내가 아닌가 착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싫은 건 아닌데…….”
“정말요? 그럼 제발요. 동양인 처음 본단 말이에요. 머리카락 한 번만 만져 보게 해 주세요. 네? 집으로 돌아가서 동양인의 머리칼도 만져 봤다고 자랑하고 싶단 말이에요. 제발 부탁드려요.”
길게 사정한 그녀는 말을 마친 후 두 손을 모아 쥐고 기대 가득한 눈으로 가람을 응시했다.
머리카락쯤이야 얼마든지 만져도 상관없지만, 가람은 지저분한 상태임이 분명한 제 머리를 만질 아가씨의 손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렇게나 사정하는 것을 보니 차라리 한 번 들어주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어차피 그렇게 어려운 부탁도 아니니까.
“만져 보세요.”
가람이 허락하자 세렌은 꺄아 하고 짧게 비명을 지르며 두 손을 맞잡았다.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녀가 이윽고 조심스럽게 가람의 머리칼로 손을 뻗는다.
가만히 앉아 그 손길을 기다리던 가람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지?
“동양인의 머리칼에는 윤기가 돈다고 들었는데. 기름기가 유난히 많은가 봐요. 반질반질하네요.”
가람이 묶은 머리 꽁지를 쓰다듬던 세렌이 감탄했다. 가람은 그 내용이 정말로 감탄인지 헷갈렸지만 어조로 보아 감탄이 분명했다.
내용을 들어 보니 오해를 하고 있음이 분명했지만 가람은 굳이 자신의 비위생적인 면을 고백해 그 오해를 풀어 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사실, 좀 부끄럽기도 했다.
“눈동자가 굉장히 검고 예뻐요. 빨려들 것 같아.”
가만히 가람의 눈을 들여다보던 세렌이 불쑥 칭찬했다. 관찰당하는 것도, 면전에서 이렇게 노골적인 칭찬을 듣는 것도 처음인 가람은 그저 곤혹스러울 따름이었다.
가람을 좋아한다고 고백했던 에루시오조차 이런 종류의 찬사를 한 적이 없다.
아니, 살면서 누구에게도 이런 칭찬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보니 이런 일에 대한 가람의 면역력은 한없이 제로에 가까웠다.
“저기 얼굴도…….”
세렌이 말을 꺼내는 순간 수레가 거세게 위아래로 요동쳤다. 굴러떨어지지 않으려면 수레를 단단히 붙잡아야 한다.
수레는 그 후로도 한참을 덜컹거려 가람이 세렌에게서 벗어나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렇게 당혹스러운 칭찬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온 것은 좋았지만, 가람은 자신이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음을 깨달았다.
나무로 바퀴를 단 싸구려 수레의 승차감이란 정말로 좋지 않은 것이다.
낡은 바퀴가 닳아 잘 굴러가지 않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별달리 돌부리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엄청나게 덜컹거린다.
그 위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누군가가 간헐적으로 엉덩이를 걷어차는 것만 같았다. 전날 술을 마신 사람에게 그런 종류의 충격이 가해지면 보통은.
“우웁.”
가람은 갑자기 치밀어 오르는 구토감을 삼키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동시에 덜컹하고 수레가 흔들렸다. 덕분에 몸이 기우뚱 기울어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짐 하나를 깔아뭉개게 되었다.
“조심해!”
말을 타고 가던 상인 중 하나가 용케 그 광경을 발견하고 날카롭게 소리친다. 동시에 가람이 수레 밖으로 구토했다. 그 전날 먹었던 생선이 반쯤 소화되어 위액과 술에 뒤섞인 죽 같은 모양새로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길 위로 철벅거리며 떨어지는 토사물을 바라보며 몇몇이 진저리 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한바탕 쏟아 내자 속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아서 가람은 조금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토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예전에야 뽀삐의 등에서 하루 종일 흔들리다 자주 토하곤 했지만 이런 생활에 적응이 된 후로는 거의 없었다.
여러 종류의 술을 섞어 마시는 것은 역시 구토를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가람이 그 진리를 다시 한 번 숙지하며 생리적으로 맺힌 눈물을 닦는데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세렌이 중얼거리며 감탄했다.
“저 동양인이 토하는 것도 처음 봐요.”
자신이 토악질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그 집요한 시선으로 여과 없이 관찰했음이 분명한 그 말에 가람은 정말로 사정하고 싶었다. 아, 제발 그만 좀 감탄하라고.
한껏 가람을 민망하게 만든 세렌은 슬슬 가람에게도 익숙해졌는지 활달하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아마 가람에게 처음 말을 걸 때의 긴장한 모습보다 이쪽이 본래의 성격인 듯싶었다.
적당히 활달하고 꾸밈없는 그 태도는 무례하다기보다 천방지축 같은 인상이 강했다. 그 둘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악의가 있고 없음의 차이일까.
“진짜 신기하다. 동양인도 토하는군요!”
“아, 예…….”
가람이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거기 사람들은 뭘 먹어요? 여기까진 어떻게 왔어요?”
“그냥 다 똑같은 음식……. 배 타고 왔어요.”
“배? 굉장히 큰 배겠죠?”
“작지는 않지요.”
세렌은 점점 더 흥분해서 빠른 속도로 질문을 쏟아 내었다. 가람은 그중 적당한 것에는 대답을 하기도 하고, 몇 개는 흘려버리기도 하면서 그녀를 상대해 주었다.
그래도 대화를 나눈 덕분에 구토감이 거의 사라진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떠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
“거참 시끄럽네. 동양인 처음 보나? 칼츠버그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모양이지? 촌스럽긴.”
아까부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남자였다. 허리춤에 찬 칼에 적당히 손때가 묻어 있는 것이, 검사로 보인다.
그러나 세렌은 그런 것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표정으로 남자에게 소리쳤다. 위풍당당하기 짝이 없는 기세였다.
“당신 뭔데 시비야?”
“뭐?”
남자는 아마도 자신이 소리치면 세렌이 조용히 기가 죽을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는 대단히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세렌을 내려다보았는데, 슬쩍 시선을 깔아 보는 그 모습이 어지간히 사람을 약 오르게 하는 구석이 있다.
세렌은 그것에 홀딱 넘어가 수레만 아니었으면 벌떡 일어날 기세로 씩씩거렸다.
“이봐, 수레를 타고 휴식을 취하는 사람도 좀 배려해야지. 아, 너무 천박해서 그런 건 안 배우셨나? 시골 무지렁이나 다른 대륙에서 온 촌것이 뭘 알 턱이 있나.”
단숨에 가람과 세렌을 싸잡아 천박하다고 비난한 그의 말은 사실 거의가 억지였다. 휴식이라니. 가람도 토할 정도로 덜컹거리는 이 수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남자 본인도 휴식은커녕 아까부터 짜증 어린 얼굴로 앉아 있지 않았던가. 이것은 공연한 트집이었다.
“뭐야?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 잘 놀고 있는 사람한테 그러고 싶어? 이런 여행길에선 친구를 사귀는 거라고. 댁같이 성격이 꼬인 사람은 그런 경험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말이야!”
세렌의 말에 남자는 입을 꾹 다물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이글이글 불타는 눈이나 비스듬하게 내린 손이, 금방이라도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 것만 같아 가람이 슬쩍 권총을 꺼내어 두었다. 권총까지 쓸 일도 없을 것 같았지만 만일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검을 뽑아 들 것 같던 남자는 다시 기세를 회복하고 비아냥거렸다.
“친해지는 게 그렇게 말만 나불거려서야 되겠어? 정 친해지려면 거기 옆에 개라도 잡아서 대접하지그래?”
그 직후 세렌의 강아지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신 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렌은 돌아가는 분위기도 모른 채 나른하게 뒹굴던 제 강아지를 거칠게 낚아채어 꽉 끌어안았다.
“이, 이! 더비는 먹는 게 아니야! 내 가족이라고!”
“개 따위가 가족이라니. 아, 자세히 보니 너 개랑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승기는 완연하게 남자 쪽으로 기운 것처럼 보였다. 눈물마저 맺힌 얼굴로 남자를 쏘아보는 세렌은 분해서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세렌으로서는 이런 말싸움 때문에 가족 같은 더비와의 관계를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집을 떠나온 후 줄곧 함께해 주었던 이 강아지는 그녀에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였다.
세렌의 약점이 강아지임을 알아낸 남자는 그 후로도 개는 어떻게 요리하는 것이 좋으니 하며 조리법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히죽거리는 얼굴이 정말로 악한이 따로 없었다.
세렌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으므로 가만히 지켜보던 가람이 결국 끼어들었다.
“작은 강아지보다야 사람 하나 잡는 게 고기가 더 많이 나오지 않겠어요?”
이런 말은 가람도 하기에 썩 달가운 말이 아니었지만 어째서 이 말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바랄라인의 기억이 무의식 속에서 큰 작용을 한 모양이었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고 끔찍하기 짝이 없는 것인데도 어째서 이런 말을 해 버린 걸까.
하긴, 바랄라인의 그 일은 지금에 와서는 이제 그렇게 끔찍한 것도 아니다. 잔혹하기로 따지자면 모르드레드의 몸을 끊임없이 잘라 대었던 자신이 훨씬 잔혹했다.
“뭐라고?”
남자는 뜨악한 얼굴로 가람을 돌아보았다. 세렌조차도 그런 말을 한 가람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맛도 사람이 더 있고.”
마치 먹어 보기라도 한 것처럼 가람이 능청스레 말하자 남자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세렌은 끔찍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는 얼굴이었다. ‘정말 먹어 봤어요?’ 하는 표정이다. 가람은 그 얼굴을 일단 무시했다.
“너, 너. 역시 미개한 동양인들은! 난 사람이라고, 저건 개고! 사람을 먹을 수는 없다고!”
“누가 그래요?”
“뭐?”
“바랄라인에선 많이 먹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남자는 말문이 막힌 얼굴이었다. 아연한 그 얼굴에 대고 가람이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봤을 때 죽어도 고기가 얼마 나지 않는 저 귀여운 강아지보다는 공연한 사람에게 시비 걸기 좋아하는 고기가 많이 나올 만한 남자가 잡아서 대접하기엔 더 낫지 않겠어요? 사실 당신이 저 강아지보다 뭐가 더 나은지도 모르겠는데.”
말싸움으로는 이기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남자의 얼굴이 살벌하게 변했다.
그가 진지하게 검에 손을 올려놓는 순간, 그동안 내내 방관하고 있던 덩치 큰 남자가 끼어들었다.
“거기까지 하지. 자네가 썩 잘한 것도 없는데.”
검을 잡은 남자의 손 위로 제 손을 덮어 제지한 남자가 조용히 말했다. 세렌과 싸우던 남자는 덩치 큰 남자의 손이 제 손의 거의 두 배는 됨을 깨닫고 조용히 꼬리를 말았다.
짧게 욕지거리를 뱉어 낸 그는 세렌과 가람을 매섭게 노려보곤 외면하듯 두 사람에게 등을 보인 채 돌아앉았다. 그 등에 대고 세렌이 혀를 내밀어 조롱했다.
“쉿. 이제 그만.”
슬쩍 미소 지은 남자가 커다란 손으로 세렌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 솥뚜껑 같은 손은 단숨에 사람을 조용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서 세렌은 언제 흥분해 소리쳤었냐는 듯 얌전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떠오른 얼굴로 가람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정말로 사람 먹어 봤어요?”
“글쎄요.”
짜증을 내던 남자가 아직 자신의 말을 듣고 있었으므로 가람은 애매한 미소와 함께 적당히 대답했다.
세렌은 더 파고들고 싶은 눈치였으나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수레가 갑자기 멈춰 섰기 때문이다. 동시에 상인 중 하나가 고함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