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스물다섯. 가람이 빠르게 산적의 숫자를 세었다. 기세등등하게 외친 것치고는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다.
상단 사람들이 죽기 살기로 저항한다면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을 만한 상대로 보였기 때문에 상인들 중에 겁을 집어먹은 사람은 없어 보였다.
세렌조차도 그렇게나 불안해하던 것이 무색하리만치 침착한 얼굴이었다. 무리도 아니다. 이쪽의 일행에는 기사도 있지 않던가.
알게 모르게 기사들을 향해 눈짓하는 상인들이 제법 보였다. 앞에 나서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실 이 정도 산적들이라면 굳이 기사들이 나서지 않아도 상인들과 수레를 얻어 탄 객들의 손을 빌리면 쉽게 퇴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인들이 기사들의 손을 빌리는 이유는 명료했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인 것이다. 게다가 애초에 이 기사들은 저 산적들을 토벌하는 것이 일이 아니던가.
오히려 상단이 기사들의 산적 토벌을 도와주는 것이니 기사들로서도 잘된 일이었다.
무서워하는 자도 없고, 지나치게 흥분하는 자도 없다. 차라리 산적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이 더 긴장감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드러난 산적의 규모가 생각보다 작다는 것이 확인되자 사람들은 일견 여유마저 내보였다. 그런 미적지근한 반응 사이로 기사들이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기사들이 상단을 호위하듯 둘러섰기 때문에 가람의 곁에도 기사 하나가 서게 되었다. 기사답게 갑옷에 둘러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큰 체구를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가람은 약간의 위압감을 느끼며 그를 눈여겨보았다. 베르하르트의 투구는 바랄라인의 치안대가 쓰고 다니던 것과 달리 눈을 제외한 모든 것을 가리는 형태였다.
덕분에 가람이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핏발이 선 눈과 조금 탄 눈가뿐이었다.
산적들은 예의 바르게도 기사들이 나설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기묘한 일이었다. 이만한 전력 차를 보았다면 말 머리를 돌리는 것이 상황에 어울리는 행동일 텐데 산적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반응이었다.
혹시 후발대가 있나? 모두가 불길하게 그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기사들 중 하나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제 곁에 선 상인의 목을 날려 버렸다.
잠시 동안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목이 잘린 상인 본인에게도 해당되는 것으로, 머리가 사라진 상인의 몸은 잠시 멍하니 앞을 향해 서 있었다. 제게 닥친 비극적인 일이 믿어지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힘 풀린 무릎이 땅을 찍는다. 잠시 그 자세를 유지하던 목 없는 상인의 몸은 얼마 지나지 않아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잘린 상인의 머리는 제 몸이 쓰러지는 것을 끝까지 다 보고서 눈을 감았다.
호위가 포위로 바뀐 것은 순식간이었다. 기사들의 검은 방금까지 자신들이 호위하고 있던 상단에게로 날을 세웠다.
가람의 얼굴 앞에도 시퍼런 검이 하나 드밀어졌다. 잘 손질된 검이다. 가람은 단조롭게 평가하며 눈앞의 기사를 바라보았다.
기사는 유들유들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미소가 배어 있는 그 눈매를 바라보며 가람은 조금 심드렁하게 마주 미소 지어 주었다. 그러자 기사가 흠칫하더니 눈매를 가늘게 하고 가람을 쏘아보았다.
사실 기사들에 대해서는 이미 의혹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가람은 이 상황이 딱히 놀랍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세상에 이보다 놀라운 일은 없다는 반응이었다.
솔직히 가람은 베르하르트의 기사들이 산적들과 한편을 먹고 상단을 등쳐 먹고 있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말도 안 돼! 저 갑옷은 정말로 베르하르트 기사들의 것이라고!”
그 말은 가람에게 두 갈래의 추리거리를 던져 주었다. 그녀는 어렵지 않게 베르하르트가 드디어 산적질에도 나섰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또 다른 갈래는, 진짜 베르하르트의 기사들이 사로잡히고 갑옷을 강탈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선입견에 사로잡혀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옳은 일이 못 되었기 때문에 가람은 후자의 가설에 좀 더 힘을 실어 주었다.
“우리에게 왜 이러는 거요!”
믿기지 않는 현실을 감당 못 한 누군가가 소리쳤다. 그러나 그 질문을 그대로 무시한 기사는 투구를 벗으며 산적들에게 인사했다.
“어이, 좀 늦었잖아.”
산적들을 향해 능글능글 미소 짓는 그 입술이 과연 악당다웠다. 그들이 익숙하게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 간신히 현실을 받아들인 상인들이 이를 악물고 검을 꼬나쥐었다.
기사들이 돌아섬으로 인해서 힘의 저울추가 확 기울었다. 패배는 정해진 수순이었지만 고분고분 죽어 줄 생각은 없었다.
필사적으로 전의를 모으는 상인들을 기사들은 그저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기사와 상인. 늑대와 양을 비교하는 것이 더 공평할 지경이다. 체구부터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몇몇 상인들은 겁에 질려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어김없이 사기를 꺾기 위한 조롱이 날아들었다. 산적들의 하는 짓이 너무나 산적다워서 가람은 고개를 모로 돌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이런 일은 놀랍지도 않다. 그저 귀찮을 뿐.
문득 가람은 수레에 함께 타고 있던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세렌은 하얗게 질려 눈물을 가득 달고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세렌과 싸웠던 남자는 검을 뽑으려는 자세로 이를 갈고 있었고, 커다란 남자는 등에 메고 있던 거대한 도끼를 앞에 내려놓고 있었다.
도끼 자루를 잡고 있는 남자의 손이 긴장으로 단단하게 굳어 있다. 어깨가 잔뜩 부풀어 딱딱하게 굳은 모습과 말라붙은 핏자국 하나 없는 도끼를 보아 무기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아마 본래 직업은 나무꾼 같은 것인 모양이다.
그래도 덩치가 크니 전투가 시작되면 제법 큰 도움이 되리라.
가람 홀로 나서서 산적들을 모조리 도륙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시선을 너무 많이 끌게 된다. 산적을 정리한 후의 일도 생각해야 했다.
그래서 가람은 난전이 시작되면 그 틈에서 산적들을 하나씩 사살할 생각이었다. 그 난전 속에서 자신을 주의 깊게 관찰할 사람은 없을 테니 누구도 산적이 왜 죽었는지 모를 것이다.
난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가람의 마음과는 달리 섣불리 달려드는 사람은 없었다. 산적들은 그 수적인 우세를 무기 삼아 상인들을 둘러싸고 포위를 천천히 좁혀 오고 있었다.
긴장한 말이 투레질하는 소리와 미처 삼키지 못한 누군가의 울음이 울컥 비집고 나오는 그 속에서, 상인 하나가 갑자기 미친 것처럼 돌진했다.
“으아아아아!”
산적들이 거리를 좁혀 오는 것이 마치 죽음이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졌으리라. 그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돌진한 상인은 깨끗하게 목이 날아갔다.
허공으로 피가 길게 뿜어져 나왔다. 그 피는 순간 강하게 불어닥친 바람을 타고 모두에게 흩뿌려졌다. 가람에게도 예외 없이 상인의 뜨거운 피가 날아들어 얼굴에 달라붙었다.
그 갑작스러운 돌풍은 한참 동안 이어졌다. 후끈한 열풍 사이로 뜨거운 흙먼지가 날아들어 눈을 뜨지 못하게 만들었다.
강하고 인위적인 바람 속에서 가람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아니, 예감에 가까웠다. 흙먼지가 잦아든 후 눈을 뜨면 아마도…….
“용, 용이다!”
눈앞에는 용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외친 외마디 비명을 시작으로 대열은 단번에 흐트러졌다.
정신력이 약한 듯한 몇몇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이건 꿈이야, 용이 나타날 리가 없어.’ 따위의 말로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말을 몰고, 혹은 수레에서 뛰어내려 이 상황에서 한 발짝이라도 멀어지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산적에게 죽은 상인들이나, 베르하르트의 기사들, 지금까지 형성하고 있던 대치가 단숨에 의미를 잃었다.
산적과 상인이 뒤엉켜 아비규환의 모양새로 도주하는 그 틈바구니에서 가람은 침착하게 용을 바라보았다.
저번의 다라즈녹보다 조금 작은 녀석이었다. 약간 검붉은 비늘에 머리에는 두 갈래의 뿔이 솟아 있다. 입에서는 입김과도 같은 증기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생김새는 다라즈녹과 많이 달랐지만 교활한 빛깔을 띠는 노란 눈동자는 완전히 똑같았다.
입 안이 엄청나게 뜨거운 모양인지 용이 물어 반 토막 낸 산적의 다리가 순식간에 익어 버렸다.
하반신을 용에게 한 입 거리 간식으로 제공한 산적은 잠시 제 몸에 무슨 일이 닥쳤는지 깨닫지 못한 채 멍하니 있다가 그대로 혼절해 버렸다.
그리고 내장을 줄줄이 쏟아 내는 남은 반 토막을 용이 날름 삼킨다. 마흔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용이 인간을 참살하는 것은 유희의 일종이다. 아니면 인간이 너무 싫어서 보는 족족 죽이고 싶어 하거나.
이곳의 무기 체계를 봤을 때 아마도 둘 다에 해당할 확률이 높았다. 인간의 도검은 용에게 젤리로 만든 이쑤시개만도 못한 무기였다.
정말로 용이 인간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발로 낚아채어 상공에서 낙하시키는 것만으로도 간단하고 확실하게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용은 발로 밟는 쪽을 선택했다. 놈들이 인간의 저항을 즐긴다는 증거였다.
“도, 도망쳐요!”
누군가가 팔을 잡아당기기에 돌아보니 얼굴이 하얗게 질린 세렌이었다.
그녀는 가람의 담담한 반응을 넋이 나가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아직 수레에 남아 있는 가람을 끌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사태의 급박함을 전달하려는 듯 얼굴이 온통 구겨져 엉망이다. 그녀의 개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뇨.”
피하라고 호통치는 사람, 비명을 지르는 사람, 말이 투레질하는 소리, 말에 걷어차여 뼈가 부러진 채 나동그라져 신음하는 사람, 공포로 반쯤 미쳐 저가 무어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어쨌거나 소리치는 사람 등으로 주변은 대단히 소란스러웠기 때문에 가람은 자신이 담담하게 말한 목소리가 세렌에게 전달되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짤막하게 가로저은 고개 덕분에 세렌은 가람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미쳤어요!? 용에게 먹히고 싶은 거예요? 도망쳐요! 도망치라구요! 빨리, 어떡해! 여기 좀 도와줘요!”
반울음으로 세렌이 소리치자 의외의 사람이 그 목소리를 들어 주었다. 세렌과 다투었던 남자다.
그는 나타나자마자 가람에게 ‘정신 나갔어!?’ 하고 윽박지르더니 강한 힘으로 수레에서 끌어 내렸다.
그 과정에서 가람이 멘 가방을 벗게 하려고 했지만 그녀가 고집스레 가방을 포기하지 않자 질렸다는 얼굴로 물러섰다.
“죽으면 재산도 다 소용없다고! 제기랄, 힘들면 알아서 버리겠지. 도망치자!”
가람은 묘한 시선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세렌이야 오지랖이 넓으니 그렇다 쳐도, 제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남을 챙길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는데.
정작 도끼를 들고 있던 덩치 큰 남자는 벌써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제일 먼저 몸을 뺀 것이 분명했다.
“빨리, 빨리 가요.”
정신이 나간 것처럼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세렌의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용이 마치 고양이처럼 날렵하게 날아다니며 도망치는 이들을 하나씩 삼키거나, 혹은 도주로의 앞에 발을 쾅 굴러 나동그라지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사적으로 달리다가 용이 내리찍는 커다란 발을 피하지 못한 몇몇은 그대로 깔려 죽었다.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할 참혹한 광경이었다.
“어떡해, 어디로 가지. 어디로 가야 하죠? 어, 어떡, 엄마…….”
살면서 이만큼이나 잔인한 광경을 본 적이 없는 세렌은 완전히 공황 상태에 빠졌다.
옆에 선 남자도 칼 밥을 먹던 짬이 있어 내색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긴 했지만 검을 쥔 손이 덜덜 떨렸다.
용 앞에서 그 쇠꼬챙이는 가시만도 못한 무기일 텐데 끝까지 놓지 않는 모습이 애처롭다. 기댈 곳이 그것밖에 없으니 소용없음을 알면서도 놓지 않는 것이다.
용을 죽여야 한다. 아마도 그럴 의도로 남자의 검은 뽑혀 있는 것이리라. 가람 또한 그 의도에 동감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남자와는 다른 것이다. 용이 목숨을 위협하거나, 혹은 위험한 생물이라서 죽여야겠다는 것이 아니다.
가람의 이유는 좀 더 건조한 것이다. 남자가 용으로부터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가람은 그저 용을 죽이는 것 자체에 이유가 있었다.
거의 길이가 없는 짧은 바늘은 계속해서 용을 가리키고 있다. 용이 패스를 갖고 있었다. 가람은 그 패스를 원했다.
그러므로 가람의 살의는 쫓기는 쥐가 고양이를 무는 형태가 아닌, 강도가 반항하는 피해자를 손쉽게 제압하기 위한 것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가람은 배낭을 앞으로 돌려 소총을 하나 꺼내었다. 어깨에 견착하고 침착하게 조준한다.
소총은 저격에 어울리는 총은 아니었지만, 저격총은 너무 무거워 휴대하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목표물이 저만큼이나 가까이 있고, 그리고 저렇게나 거대하다면 소총이든 저격총이든 총의 종류는 별로 상관이 없을 것이다.
사실 명중률만을 논한다면 권총으로도 가능할 정도다. 가람이 소총을 꺼내 든 것은 그저 권총의 파괴력이 부족할까 염려해서였다.
“뭐, 뭐 하는 거야?”
남자가 가람의 총구 앞에서 얼쩡거렸다. 그에게는 가람이 갑자기 가방에서 긴 대롱 같은 것을 꺼내어 어깨에 멘 것으로 보였다.
가늠쇠 앞에서 목표물을 가리는 것이 대단히 거슬렸으므로 실수인 척 쏴 버릴까 하던 가람은 세렌이 자신을 보고 있음을 깨닫고 차갑게 경고했다.
“안 비키면 머리에 구멍 나요.”
경고를 듣고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정말로 쏴 버릴 생각이었는데, 남자는 그 살벌한 경고가 상황의 급박함이 빚어낸 과격함이라고 생각했는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물러났다.
그가 얌전히 제 뒤로 가서 서는 것을 끝까지 바라본 가람이 다시 침착하게 조준했다.
조준은 길지 않았다. 가랑가랑하게 쉬던 숨이 잠시 멎는 순간, 총탄이 아우성치는 사람들 사이로 날아갔다. 그리고 막 기사 하나에게 입을 벌리고 있던 용의 눈을 꿰뚫었다. 동시에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번쩍 쳐들고 몸부림치던 용은 총탄이 날아온 방향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한쪽 눈에서 흐른 피가 뚝뚝 떨어져 발아래 깔려 있는 시체의 몸 위로 떨어져 내렸다.
포악함이 줄줄 흐르는 그 눈은 정확히 가람을 직시하고 있었다. 조금 난감한 일이었다.
아직 나머지 눈을 꿰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가람은 용이 총탄이 날아온 방향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설혹 알더라도 누가 했는지는 모를 거라 생각했는데 자신이 너무 얕잡아 본 모양이었다.
짐승은 짐승인지 그 놀라운 육감으로 단숨에 저를 상처 입힌 자를 알아본 것이다.
용과 눈이 마주치는 동시에 양옆에서 급하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흘긋 곁눈질하니 세렌이나 남자나 할 것 없이 얼어붙어 있었다. 죽든 살든 알 바 아니지만, 그래도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낫겠지.
가람은 소총으로 두 사람을 강하게 후려갈겼다. 넋이 빠져 있던 둘은 한 대 얻어맞자 정신이 드는지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
그들에게는 다행인 게 용은 두 사람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분노에 찬 시선으로 가람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입에서 나오는 연기도 배가되었다. 덕분에 사방은 온통 연무에 휩싸여 흡사 안개가 자욱한 새벽인 것만 같다.
안개가 축축하고 청량한 느낌인 것과 달리 매캐하고 후끈하다는 점만 빼면 거의 같았다.
얼마나 살아남았는지, 얼마나 도망쳤는지도 거의 파악이 되지 않는다. 죽었어도 바닥에 꽂혀 서 있는 사람도 있고 살았어도 쓰러진 채 공포에 젖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덕분에 안개에 가린 형상만으로는 생존자를 파악하기 힘들다. 솔직히 가람은 사람이 좀 죽어서 수습해야 할 인원이 줄어들어 줬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었다.
온다.
가람은 본능적으로 용의 다음 행동을 감지했다. 거의 동시에 용이 네발로 땅을 박차고 달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