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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파인더-152화 (152/256)

42화

날듯이, 아니, 실제로 등의 날개를 펄럭여 저공비행하며 용이 뛰어 날아온다. 그 속도가 예상보다 훨씬 빨랐지만, 가람은 침착하게 옆으로 달려 회피했다.

분노에 눈이 멀어 달려드는 것만 생각하고 있으니 갑자기 방향을 바꾸기 힘들리라는 것이 그 계산이었다.

예상대로 용은 그대로 미끄러졌다. 중심을 잡으려 휘두른 꼬리에 그나마 성하던 수레들이 박살 난다. 부서진 술통 사이로 새어 나온 술들이 바닥에 스며들어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단숨에 가람을 짓뭉개지 못한 것이 원통하다는 듯 길게 포효하며 용이 다시 덤벼들었다.

오래 끌면 안 된다. 체력적으로 용과 상대가 안 되는 자신이니 길게 끌어야 좋을 것이 없었다.

한쪽 시야를 잃은 덕분에 자신을 쉬이 찾지 못하는 듯하니 그사이에 결판을 내어야 했다.

예전 다라즈녹을 만났을 때는 머릿속이 텅 비어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이렇게나 변한 자신이 스스로도 생경했다.

그런 감상과는 별개로, 가람은 다시 용을 회피했다.

자신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곳으로 잘도 숨어드는 가람을 쫓으며 용은 발광하고, 사방을 헤집고, 고통을 토해 냈다.

용이 눈도 잃고 이성도 잃어 반푼이가 되어 버렸으니 가람은 그 이점을 이용해 용이 눈을 잃은 방향으로만 숨어들었다. 그러면서도 호시탐탐 나머지 눈을 노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잡았다 싶으면 시야에서 사라지고, 놓치지 않으려고 눈을 부릅뜨면 어김없이 날아드는 총탄에 눈을 감는 사이, 다시 사라지는 가람을 쫓으며 용은 분통이 터져 미칠 지경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가람이 걱정해 마지않던 상황이 일어났다.

번쩍 고개를 쳐들었던 용이 잠시 숨을 멈추더니 기다랗게 불을 내뿜은 것이다. 하마터면 통구이가 될 뻔한 가람이 간신히 몸을 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주 쓸 수 있는 기술은 아닌지 용이 다시 가람을 향해 육탄 돌격했다.

설마 했지만 용이 정말로 불을 뿜는 것을 목격한 가람은 전투를 좀 더 빨리 끝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그녀는 용의 가까이로 다가갔다. 용이 단숨에 집어삼킬 수 있을 만한 거리였다. 이 영웅적인 전투를 지켜보던 이가 있었는지 어디선가 짧은 비명이 들렸다.

사방을 뒤지던 용은 제 가까이에서 가람의 옷이 펄럭이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인간들이란 모조리 조그마해서 용이 그들을 구분하는 지표는 바로 의복이었다. 말하자면 상품의 포장으로 구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어쨌거나 발견한 이상 망설일 것은 없었다. 용은 입을 크게 벌리고 가람을 물었다. 단숨에 토막 내어 삼켰던 인간들과 달리, 고통스럽게 씹어 먹어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턱에 힘을 주는 순간, 산을 무너뜨리는 것 같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매캐한 연기가 여운처럼 그 뒤를 잇는다.

전투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넋이 나가 있던 사람들도 모두 소음의 진원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마침 불어온 바람이 잠시 안개를 흐트러뜨리자 드러난 광경에 모두의 시선이 순식간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용이라는 것들은 일단 무엇이든 아가리에 처넣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어 보였기 때문에 가람은 가장 적당한 것을 한 입 가득 넣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용이 가람이라 생각하고 힘껏 씹은 것은 수류탄과 부탄가스, 그 외 폭발성 무기가 가득 든 배낭이었다. 가람은 충분히 화끈한 맛이 될 거라 생각했고, 결과는 기대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용은 머리가 없었다. 머리였던 너덜너덜한 살점이 있긴 했지만 목 위로는 제대로 형상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깔끔하게 저세상으로 간 용을 발끝으로 툭툭 걷어차던 가람은 제게 쏟아지는 경악 어린 시선을 깨달았다.

거의 다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살아남아 이 광경을 목격하고 있었다. 대충 세어 봐도 절반 정도는 살아남아 있는 듯했다.

모든 폭발은 용의 입 안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가람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약간의 생채기와 타박상을 제외하면 아주 멀쩡하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런 자신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시선의 무더기 앞에서 가람은 무언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중압감을 느꼈다.

성격상 멋있는 말을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으니, 농담이라도 해서 분위기를 풀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이거 원래 산적들한테 쓸 거였는데, 아깝게 됐네요.”

그렇죠? 하고 싱겁게 웃으며 마무리했지만 따라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살아남은 산적들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공포에 젖어 들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시오. 아니, 누, 누구십니까?”

더듬더듬 말투를 고치며 질문한 사람은 피와 엉겨 붙은 먼지로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남자였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길거리에 앉으면 동전을 얻어 낼 수 있을 법한 몰골이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멀쩡한 사람은 가람과 가람 주변에 서 있던 몇 명 정도다.

“그냥 여행자예요.”

찢어진 옷 사이로 훤하게 보이는 그의 가슴팍을 잠시 바라보던 가람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남자의 의문을 채우기에는 답변이 너무 간소했던 모양이다.

“여행자? 어디서 온 사람입니까? 대체 어떻게 용을…….”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재차 되묻는 남자를 가람이 가라앉은 얼굴로 마주 보았다.

“지금 그게 궁금한가요?”

당연히 궁금했다. 이 자리에 그 사실이 궁금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람의 태도가 워낙 비난적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 당연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 그게.”

“당신이 아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는 모양이군요.”

그렇게 말하며 가람은 사방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깨진 나무 술통과 부서진 잡목들, 죽은 말과 죽은 사람이 한데 뒤엉켜 지옥도를 방불케 한다.

가람의 시선을 따라 주변을 둘러본 남자는 그제야 입을 다물었다.

슬픔을 머금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용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금화 한두 푼에 적이 되어 서로에게 칼을 겨누던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색의 슬픔을 입고 고개 숙였다.

죽음은 정말로 손쉽게 찾아온다. 그렇기에 삶이 빛나는 것이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필연적인 종말 앞에서 모든 것을 불사르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람들은 새삼 그 무게를 느끼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너무나 무거웠다.

땅을 적신 검은 피에 눈물이 스며든다. 오열은 소리 없이 시작되었다. 사내들은 부끄러움도 잊고 어린아이처럼 울부짖었다.

죽은 이가 동료였던 사람은 그나마 나았지만 친인, 혹은 가족이었던 이는 망자의 이름을 비명처럼 쏟아 내며 혼절을 거듭했다.

그 소란 통에서 가람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자신에게 시선을 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쪽에 앉아서 눈치만 살피고 있는 산적들을 제외하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덩그러니 모여 앉은 산적들은 아까부터 몹시도 가람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겁에 질린 얼굴과 불안으로 흔들리는 눈동자 어디에도 가진 것을 내놓으라며 호령하던 기세는 없다.

산적들 중에 우는 자는 없었다. 상인들에 비해 비교적 가벼운 친목으로 이루어진 집단이다 보니 그런 모양이다.

무리도 아니다. 산적들은 가끔 제 이익에 방해가 된다 싶으면 제 손으로 동료를 베는 짓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작자들이다.

그렇다 보니 동료를 잃은 슬픔보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산적들은 가람의 부츠 코가 향하는 방향에 대해 무섭도록 예민하게 반응했는데, 그녀가 본격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하자 눈에 띄게 벌벌 떨며 움츠러들었다.

다 큰 사내들이 그 커다란 팔뚝으로 제 몸을 감싸 안고 자신의 걸음 하나하나에 부서질 듯 몸을 떠는 광경은 가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대단히 흉악하고 두려운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을 받게 했다.

그런 감정은 보통 가학심을 부채질하기 마련이라, 가람은 불쑥 치솟는 그 어두운 감정을 내리누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간 다져 온 자제력이 있던 터라 다행히 가람은 어렵지 않게 충동을 가라앉히고 그린 듯한 상냥한 낯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방금 죽은 용을 앞에 두고 그 용을 죽인 이와 산적이 나누기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인사말이었지만 감히 그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방금 전의 상황이야 어쨌든 살갑게 미소 짓는 가람의 친절한 얼굴은 경계를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되어서, 한껏 겁을 먹고 눈썹을 늘어뜨리던 산적들은 그럭저럭 평정심을 회복하는 듯 보였다.

“검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이어지는 가람의 말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산적들은 어색하게나마 웃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네, 네?”

딸꾹질이라도 할 기세로 산적이 반문했다. 돌덩이처럼 얼어붙은 산적들을 바라보며 가람은 방금 자신이 한 말을 반추해 보았다.

혹시 자신이 ‘머리 좀 잘라도 될까요?’라고 말하기라도 했던 걸까?

“제 검은 아까 도망치다가 짐과 함께 잃어버렸거든요. 그러니, 검 좀 빌리자구요.”

솔직히, 가람은 산적들의 반응이 과하다고 생각했다. 겨우 용 하나 잡았을 뿐인데 지나치게 겁을 먹었다.

무슨 곱게 자란 도련님도 아니고, 이렇게나 심약해서야 그동안 어떻게 산적을 해 먹었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어쨌거나 가람이 산적들의 정신 건강에 대해 눈곱만큼의 배려도 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산적들은 제 목숨을 챙기기에 급급했다.

눈앞의 어딘가 한구석이 이상해 보이는 극악무도한 아가씨는 방금 용을 단번에 죽인 인물이다.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그런 짓을 한 위인이니 검을 쥐여 주면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심지어 방금 전에도 살벌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하지 않았던가.

검을 제 목숨처럼 부둥켜안고 전전긍긍하는 산적들이 자신을 도와줄 것 같지 않아 보였기에 가람은 한숨을 내쉬고 빠르게 포기했다. 그러곤 곧바로 근처를 뒤져 적당한 검을 찾아 들었다.

비록 손잡이 부분에 죽은 이의 살점이 붙어 있긴 했지만 날은 아직 쓸 만했다.

용의 가죽을 뚫는 일은 망가진 날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 검을 살피는 가람의 눈에는 진지함이 떠올라 있었다.

물론 그 모습을 지켜보는 산적들은 살아도 산 기분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검이 달려들어 자신들을 한 줌 핏물로 만들지도 모르니까.

산적들의 기대와 달리 가람은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저 검을 들고 휘적휘적 걸어가 왼손을 용의 사체에 얹고 주욱 한 번 훑어볼 뿐이다.

바늘의 방향을 가늠해서 용의 몸 어딘가에 있을 패스를 찾기 위한 행동이었지만 겉으로 보기엔 마치 죽은 용을 애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안타깝게도 산적들은 그 행동을 위협으로 인식했다.

적당한 위치를 찾아낸 가람이 비늘 사이로 검을 쑤셔 넣자 그녀가 검을 든 그 순간부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산적들이 어깨를 펄떡였다.

흡사 제가 대신 찔리기라도 한 모양새다. 우연히 그 모습을 목격한 가람이 속으로 혀를 찼다.

일일이 놀랄 것까지는 없지 않나. 심드렁한 가람의 생각은 사실 어폐가 있다. 이 세계에서 용의 강력함이 가지는 무게를 생각한다면 산적들의 반응은 당연하고도 남는 것이다.

현대 무기의 힘을 빌려 비교적 용을 쉽게 잡긴 했지만 이 세계는 본디 총과 화약이 없는 세계다.

대체재로서 마법이 존재하긴 했지만 산을 부수고 바다를 가르는 위력은커녕 바위 하나 제대로 쪼개지 못하는 마법사가 대부분이라 무력은 주로 검과 화살 등 물리적인 방향으로 발전해 있었다.

불과 독을 뿜고 강철 같은 비늘을 전신에 두른 채 날고뛰는 거대한 짐승을 상대로 하기엔 칼과 화살은 너무나 빈약한 무기이다. 그런 이유로 이 세계의 강대한 짐승은 자연사로 삶을 마감하는 것이 보통이다.

용을 죽이는 건 신화 속에서 영웅이나 할 일이지, 길바닥에서 수레에 타고 있던 숙취에 절어 든 여행자가 할 일이 아니었다.

물론 용의 배를 헤집는 자신에게서 주의를 돌리기 위해 죽음의 슬픔을 이용할 정도로 무감각해진 가람은 스스로에게 쏟아지는 놀람과 경외를 공감하지 못했다.

이해는 했으나 그뿐이다. 가람은 그저 용의 사체에 아직 사후 경직이 일어나지 않아 검날이 잘 파고드는 것이 만족스러울 뿐이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산적들의 공포 어린 시선을 등 뒤에 주렁주렁 단 상태로 가람이 용의 배를 절개했다.

죽어 가는 장기들 사이로 노랗게 떠오른 패스가 반기듯이 반짝인다. 서슴없이 손을 뻗자 용의 배에 팔을 집어넣는 것을 본 산적들이 끔찍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반응에 가람은 슬슬 이들이 정말 산적이 맞는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패스를 흡수하고 손을 빼내자 용의 내장을 헤집은 팔이 온통 벌겋게 젖어 있다.

피에 젖어 패스를 얼마나 얻었는지도 알아볼 수 없는 탓에 가람은 닦을 것을 찾아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 이거 쓰세요.”

세렌이었다. 불쑥 내밀어진 손에는 이 지저분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깨끗한 천 조각이 들려 있었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신기해하며 가람은 그것을 받아 들어 팔을 닦았다.

“감사합니다.”

“벼, 별말씀을요!”

가람은 묵묵히 팔을 닦는 내내 곁에서 쏟아지는 세렌의 초롱초롱한 시선을 감내해야 했다. 눈에서 별이 튀어나올 것처럼 반짝이는 시선이 여간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다.

“저에게 무슨 할 말이라도……?”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시선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가람이었다. 강조하자면, 가람은 이런 종류의 시선에 익숙하지 못했다.

선망하듯 뺨을 붉히고 무언가 기대하는 듯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여자는 정말로 난감한 상대였다.

어쨌거나 가람이 그렇게 질문하자 세렌이 갑자기 정신이 든 듯 핫, 하고 입을 열었다.

“사,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렁찬 대답이었다. 땅바닥만 바라보며 비탄에 빠진 이들의 주목을 단숨에 불러 모으기 충분할 만큼.

가람으로서는 정말로 달갑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그 감사 인사에 동참함으로써 조용히 빠져나가려던 계획이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저, 저도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요, 정말로 대단한 분이세요.”

“감사합니다!”

세렌의 외침에 자신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 앞다투어 가람의 옷자락을 쥐고 구명의 은혜에 고개를 숙였다.

몇몇은 그제야 용의 죽음이 실감 나는지 괜히 죽은 용의 근처를 얼쩡거리기도 했다. 지금 이 상황과 풍경이 비현실적이라는 듯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본의 아니게 생명의 은인 취급을 받고 있는 가람은 어쩐지 마음 한쪽이 따끔거렸다.

솔직히 가람은 이들의 목숨이 어찌 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데다, 내심 좀 더 죽어서 입 단속할 대상이 줄어들어 주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기 때문에 감사 말을 들을 때마다 입맛이 쓰기만 했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갑자기 정신이 들었는지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둘러 부서진 수레를 수습하고 산적들을 포박했다. 이미 전의를 잃은 산적들은 저항 없이 순순히 묶였다.

도리가 없었다. 포박되어 이송되면 죄수가 되기야 하겠지만 이 자리에서 당장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 산적들의 우울한 시선이 머리 없는 용에게 가닿는다.

“이 산적들은 어떻게 할까요?”

패스도 챙겼으니 이제 슬슬 떠나 볼까 하고 은근슬쩍 몸을 빼려던 가람은 당연하다는 듯이 질문하는 남자의 말에 눈을 껌뻑였다.

“저요?”

“예.”

산적의 처분을 어째서 자신에게 묻는 것인가 하고 어리둥절해하던 가람은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자신의 객관적인 위치를 깨달았다.

비유하자면 자신은 늑대를 죽인 목동이었다. 사람들은 양들처럼 온순하게 가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무언의 시선 앞에서 가람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산적들에게 가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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