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스파인더-154화 (154/256)

44화

약탈품 사이를 돌아다니며 혹시라도 숨어 있을 산적을 찾던 상인 중 하나가 크게 소리쳤다. 기사들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가람은 딱히 반갑지도 않아서 동굴 벽에 기대어 앉은 채 손만 들어서 흔들어 보였다. 엉덩이를 땅에 붙이니 그제야 피로가 물밀듯이 밀려왔기 때문에 가람에게는 한 톨의 의욕도 없었다.

그런 가람의 옆에 세렌이 바짝 다가앉더니 간이라도 빼 줄 듯이 살살거리기 시작했다.

“많이 피곤하시죠?”

“조금 그런 편이에요. 세렌은?”

“서서라도 잘 수 있을 정도예요.”

가벼운 농담에 가람이 피식 웃었다. 남은 사탕이라도 있다면 좀 주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가람의 소지품은 소총과 돈주머니, 단검과 복대에 늘 상비하고 다니는 진통제와 약간의 조미료가 전부였다.

모든 짐을 다 잃어도 이것만 있다면 숲에서든 어디서든 주변의 짐승이나 새를 잡아 이틀은 버틸 수 있었다. 물론, 예전이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을 일이지만.

“저기 기사들이 나오고 있어요.”

세렌의 말대로였다. 어색한 표정의 기사들이 벌건 손목을 쓰다듬으며 약탈품 사이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지치고 긴장한 얼굴 위로 횃불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기사들은 경계 어린 시선으로 동굴 안의 사람들 하나하나를 새길 듯이 강하게 응시했다. 이들이 정말로 상인인지, 아니면 자신들을 납치한 산적들이 무언가 수작을 부리는 것인지 확인하려는 듯했다.

가람은 나른하게 앉은 상태로 기사들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걸어오는 동안 상인들은 간간이 기사들에게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동굴이라는 환경적인 특성상 작은 목소리도 쉽게 울렸기 때문에 가람은 어렵지 않게 그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기사들이 갑자기 이런 질문을 던져도 별로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당신이 산적들에게서 상인들을 구하고, 용을 잡았다고 하던데. 사실이오?”

기사는 자신보다 한참 작은 가람을 가소로운 시선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를 상인들을 솜씨 좋게 속여 먹은 사기꾼 정도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실이냐 묻고 있긴 했지만 기사는 가람의 부정을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감히 제 앞에서도 거짓말을 할 수 있는지 보겠다는 듯 기세등등한 시선이 내리박힌다.

가람은 딱히 왈가왈부하며 체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아서 그를 곧게 응시하며 대답했다.

“산적들에게서 구해 준 은혜는 갚지 않아도 괜찮아요, 별말씀을.”

가람은 목숨을 구해 준 은인을 다그치는 그의 무례를 돌려서 꼬집었다.

그것을 못 알아들을 만큼 눈치 없는 사람은 아니었던지 기사는 무안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런 기사를 내버려 둔 채 가람은 동굴 안쪽을 한 바퀴 휘둘러보았다. 벌써 몇몇이 모닥불 위에 솥을 걸어 놓고 있었다. 신이 나서 산적들의 식량 창고를 털어 대는 사람들의 얼굴은 전에 없이 활기차다.

“일단 밥이나 먹죠.”

가람이 모닥불 위에서 끓고 있는 솥을 턱짓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사들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 걸음 물러섰다가 자신이 뒷걸음질 쳤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다가섰다. 그런 그들에게 가람이 흘긋 시선을 던지며 조언했다.

“그 전에 뭐라도 걸치셨으면 좋겠지만요.”

당연한 말이지만 갑옷을 빼앗긴 기사들은 위아래로 아주 얇은 리넨 속옷 하나만을 착용하고 있었다.

속살이 비칠 정도로 얇은 옷감으로 만들어진지라 보통 민망한 차림이 아니다.

세렌은 아까부터 손가락 사이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기사들이 벌겋게 익은 얼굴로 두 손을 모아 제 치부를 가렸다.

기사들은 급한 대로 모포를 두르고 모닥불 앞에 둘러앉았다. 뒤늦게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는 가람에게도 상인들이 얼른 한 자리를 내어준다.

그녀가 앉기가 무섭게 기사들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그러나 가람은 끓고 있는 스튜에게만 관심을 줄 뿐이다.

절인 고기를 푸짐하게 넣고 산에서 나는 온갖 작물을 넣어 끓여 내는 스튜는 생각보다 그럴듯해서 바라보기만 해도 침샘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거의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저쪽에서 무기를 보충하며 가져온 과자 몇 개를 맛본 것이 전부다.

그 사실을 자각하자 갑자기 강한 허기가 몰려와서 가람은 진심으로 스튜가 완성되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스튜가 풍기는 고소한 냄새와 모닥불의 온기 속에서 사람들은 조금 풀린 얼굴로 늘어졌다.

이윽고 스튜가 끓기 시작하자 솥 가장 가까이에 앉아 있던 몇몇이 그릇에 음식을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가람에게 스튜를 건네었다.

기사들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모습을 응시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마침내 모든 이가 스튜 한 그릇씩을 건네어 받아 맛보게 되었다. 오늘 처음으로 하는 제대로 된 식사가 몹시 반가운 눈치였다. 개중에는 희미하게 웃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쨌거나 고단했던 하루다. 그 끝을 따뜻한 음식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된 것이 기쁜 모양이었다.

가람도 그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스튜에서 커다란 고깃덩이 하나를 꺼내어 삼켰다.

모두가 음식에 열중하는 사이 산적들은 애달픈 시선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들에게는 식사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묶인 상태로 약탈품들 사이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흙먼지에 꼬질꼬질해진 얼굴로 스튜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것이 거지가 따로 없다.

사실 그들도 아침부터 습격을 준비하느라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람은 군침을 삼키며 헐떡이는 그들은 바라보며 혀를 찼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일이면 처형될지도 모르는데 스튜에 침 흘릴 정신이 있다니. 낙천적이라고 해야 할지, 대범하다고 해야 할지.

“갑작스러운 말이지만, 구해 줘서 고맙소. 베르하르트에서 여러분에게 사례할 것이오. 나는 베르하르트 제3추격단 단장 캄펜 데르차요.”

기사들 중 하나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둘러앉은 기사들 중에서도 유난히 체구가 크고 튼튼해 보이는 남자였다. 가람보다 머리 하나 반은 더 크다. 팔뚝도 무시무시할 정도로 굵었다.

그러나 어딘가 이질적이었는데, 가람은 곧 그 이질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대단히 남성적인 그 외형에 어울리지 않게도 그는 체모가 거의 없었다. 다리나 팔도 아주 매끈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마치 제모라도 한 것처럼 깨끗했다.

이곳의 남자들 대부분이 땋을 수도 있을 만큼 덥수룩한 털을 손과 발에 매달고 다닌다는 사실과 비교했을 때 매우 놀라운 사실이었다.

“별말씀을요. 저희도 이분께서 구해 주시지 않았다면 모두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가람이 캄펜을 쳐다보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자 눈치를 살피던 상인 하나가 조심스레 대신 말을 받았다. 가람은 그때까지도 캄펜을 응시하고 있었다.

여자에게 그런 종류의 관찰 어린 시선을 받아 본 적이 없던 캄펜은 옅은 모욕감마저 느꼈다. 가람의 무례한 시선을 지적하려던 캄펜은 문득 무언가를 깨닫고 멈칫했다.

상인들은 절대로 가람을 ‘아가씨’, 혹은 ‘여자’라는 호칭으로 부르지 않았다. 가람을 호칭할 때는 언제나 ‘그분’이었다.

어차피 용을 잡았다느니 하는 말은 다 헛소리일 것이 분명하지만 상인들이 가람에게 이만큼이나 우호적이라면 괜히 꼬투리를 잡아 분란을 만들 필요는 없다.

게다가 지금은 무기도 없으니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대체 어떤 수단으로 상인들을 속여 넘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히 껄끄러운 상대였다.

하지만 거짓은 결국 밝혀지기 마련이다. 그는 자신이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요?”

“아닙니다. 얼마 전 술을 사 오는 길에 동행하게 된 분입니다.”

말하던 상인은 갑자기 씁쓸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용이 박살 낸 술통이 생각난 것이다.

나무 술통은 그리 튼튼한 물건이 아닌지라 안타깝게도 살아남은 술은 거의 없었다.

장사를 해야 할 밑천이 그런 식으로 박살이 났으니 속이 쓰릴 만도 하다. 그러나 그 표정을 읽은 가람은 내심 감탄했다.

사람들이 죽은 지는 이제 겨우 반나절밖에 되지 않았다. 비탄에 빠져 있어도 아무도 한심하게 여기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인들은 금세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 부서진 것들을 수습하고 입에 밥을 밀어 넣었다.

그 단단한 정신은 박수 받아 마땅한 것이다. 스튜를 삼키다가 간혹 울컥한 얼굴로 남몰래 눈시울을 붉히는 사람은 있었지만 결코 그것을 표 내지 않는다. 오히려 가벼운 농담을 하는 이들까지 있었다.

슬픔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떠난 이의 빈자리를 자각할 때마다 삼켜 내기 힘든 고통이 목구멍이 아리도록 치밀어 오르리라. 가람 또한 그것을 알았다.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손해를 계산해 내며 스스로의 살길을 찾아 걷고 있다.

패스의 힘을 빌릴 수 있는 가람과 달리 그들은 다른 방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고 있었다. 그 씩씩한 태도는 정말로 감탄스러운 것이다.

“얼마 전부터 알게 되었다고?”

“예.”

상인의 말에 캄펜은 더욱 불신이 짙어진 얼굴로 가람을 응시했다. 그가 재차 질문했다.

“그녀가 용을 잡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았소?”

“예, 물론이지요!”

“저는 아주 가까이에서 봤습니다.”

“그렇고말고요!”

상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음에도 불구하고 캄펜은 의심스러운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용의 시체를 직접 보기 전에는 절대 믿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상인들이 가람에게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판단하고 목표를 바꾸었다.

“용을 대체 어떻게 잡은 거요?”

가람은 잠시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입 안에 커다란 고깃덩이를 막 쑤셔 넣은 참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고기를 우물거리며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자 캄펜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부글부글 끓는 속을 가라앉히는 것을 가람은 느긋한 기분으로 바라보았다. 방금까지 꽁꽁 묶여 있던 양반이 팔팔하기도 하지.

사실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을 사람은 이쪽이었다. 식사 중인 사람에게 말을 걸어 놓고 음식을 삼키는 것을 못 기다리면 어떡하란 말인가. 뱉고 대답하기라도 하라고?

“대충 잘 잡았어요. 머리를 날려서.”

가람의 성의 없는 대답에 캄펜의 얼굴이 굳었다.

“머리를 날렸다고? 어떻게?”

“동대륙의 신비한 비전을 사용했죠.”

능청스럽게 대답한 가람은 스튜의 마지막 고깃덩이를 입 안에 털어 넣고 질겅이며 말을 이었다.

슬슬 이 까칠한 기사가 성가셔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쯤에서 이 소모적인 대화를 매듭지을 생각이었다.

“이봐요, 정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내일 용이 죽은 곳으로 가 봐요. 어차피 그거 처리도 해야 할 테니까.”

“그게 좋겠습니다! 내일 일찍 가 봅시다. 누가 훔쳐 가기라도 하면 어떡합니까.”

그깟 거 누가 훔쳐 가든 말든 가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상인들은 용을 도둑맞을까 봐 매우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살아 있을 때는 공포의 대상이던 용이지만 죽고 나면 고작 값비싼 물건 취급인가.

물론 용은 ‘고작’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한 대상은 아니었지만 물질적인 것을 초월한 지 오래인 가람에게는 모든 것이 덧없을 따름이다.

“알겠소. 내일 가 보도록 하지.”

캄펜이 납득하고 물러나자 가람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슬슬 잘 준비를 해 볼까 싶어 벽 근처로 걸어가던 가람은 상인 중 하나가 기사들의 검을 옮기는 것을 발견했다.

“그거 어디로 가져가는 거예요?”

“기사님들이 무기를 돌려 달라고 하셔서…….”

“그거 이리 주세요.”

상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한 무더기의 검을 가람에게 건네었다. 가람은 제 잠자리 옆에 검들을 옮겨 두고 지키듯이 그 곁에 앉았다.

기사들이 우호적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무기를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생각 같아서는 그냥 산적들과 함께 묶어 뒀으면 싶었다. 배은망덕한 태도부터 시작해서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그런 가람을 기사들이 굳어진 시선으로 응시했다. 분한 듯이 주먹을 움켜쥐는 이도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가람이 들으란 듯이 말했다.

“의심스러운 건 피차일반이니까요. 산적들이 왜 당신들을 살려 뒀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거든요.”

안 그래요? 하고 상인들에게 공감을 이끌어 내기까지 한 가람은 죽일 듯이 살벌하게 노려보는 기사들의 시선을 깨끗하게 무시하며 반듯하게 누웠다. 그리고 한 손에는 소총의 방아쇠를 걸고 몸 위에 올려 둔 자세로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기사들이 검을 되찾겠다느니 하는 헛소리를 하며 난동을 부리면 용을 어떻게 잡았는지 알려 줄 생각이었다.

살벌하게 노려보던 시선과 달리 기사들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가람은 눈을 감은 채로 모닥불이 타는 소리를 들었다. 상인들 몇몇이 기사들에 대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기사들은 분통이 터지는 모양이었지만, 애초에 그들이 먼저 시작한 것이다. 사실 가람은 정말로 이런 소모적인 짓거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럴 만한 의욕도 없었다.

패스를 찾은 후에는 늘 모든 것이 귀찮아진다. 성취감과 상실감, 그리고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을 모조리 잃어버리게 된다.

특히 요즘처럼 목표한 패스를 거의 다 모아 가면 그 감정은 더욱 강해졌다. 적당히 어디 조용한 곳에 스스로를 방치하고 싶기만 하다.

예를 들어, 고급 여관 같은 식사와 잠자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장소 같은 곳에.

기사들은 가람에게 적대감을 내비치고 있지만 가람은 감탄할 만큼 친절하게 그들을 대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상대해 주지 않았던가.

모조리 죽여 버리는 대신에 살려 주기도 했고, 이야기도 들어 줬고, 그 성가신 태도를 눈감아 주기까지 했다. 굉장한 친절이었다.

선량함과 냉혹함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가람의 가치관이 어떤 형태로 굳어지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때가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쉽게 동정심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계 없이 잔인해질 수도 있었다.

선의에는 선의로 답하고 악의에는 악의로 답한다. 비록 예전보다 동정심이 적어지긴 했지만 선의에도 악의에도 악의로 대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가람이 뿌듯한 감정마저 느끼며 잠이 들고 그 뒤를 이어 피곤했던 상인들이 줄줄이 누워 기절하듯 잠들었다.

마지막으로 기사들까지 눈을 감자 남은 산적들은 어둠 속에서 눈을 끔뻑이며 한숨 쉬었다. 스튜, 남았던데 좀 주면 안 되나.

* * *

다음 날 아침, 밤새 기사들의 접근을 경계하며 잠들었음에도 가람은 어렵지 않게 눈을 떴다.

지열 덕분인지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공기가 제법 훈훈하다. 이렇게 쾌적하게 눈을 뜨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보통 야영을 하게 되면 이슬에 축축하게 젖은 머리칼과 옷 속에서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일어나게 된다.

간혹 입 안에 벌레가 들어와 있거나, 밤새 잠결에 먹은 벌레의 잔해가 혀 위에 남아 있기도 했다.

아마 밤중에 따듯하고 촉촉한 입 안을 적절한 주거지로 착각한 작은 생명들이 방문하는 듯했다.

그에 비해 산적들의 이 동굴은 매우 쾌적한 편이었다. 비록 벽 쪽에 기다란 지네가 기어 다니긴 했지만 충분히 귀엽다고 여겨 줄 만한 것들이다.

가람은 기사들의 칼 위를 기어 다니는 지네 한 마리를 집어다가 동굴 벽에 붙여 주었다.

쭈욱 기지개를 한 번 켜고 돌아보니 일어난 사람은 아직까지 자신뿐인 듯했다.

어지간히 고단했는지 사방에는 코 고는 소리가 합주를 이루고 있었다. 동굴이라 소리가 울려 잘못 들으면 곰이 우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래도 입구로 어슴푸레한 빛이 비치는 것이 곧 해가 뜰 것 같았기 때문에 가람은 적당히 부싯돌을 부딪쳐 모닥불을 피우고 횃불을 켰다.

곧 상인과 기사들이 부스스 일어나 동굴 안은 금세 분주해졌다. 상인들이 말에게 여물을 먹이고 산적들의 창고에서 수레를 꺼내 와 짐을 싣는 동안 가람은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기사들은 그런 가람과 상인을 감시했고, 산적들은 동정을 얻기 위해 불쌍한 표정을 짓고 구걸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늘 아침까지 굶으면 꼬박 이틀을 굶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산적들에게 식사는 제공되지 않았다.

대충 아침 식사를 마친 그들은 산적들의 소굴을 깨끗하게 털어 길을 나섰다. 상인들의 부서진 수레는 산적들의 창고에 있던 튼튼한 것으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술통 대신 약탈품이 가득 채워졌다. 약탈품과 함께 굶주린 슬픈 표정의 산적들도 실렸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한 입만이라도 먹을 것을 달라고 호소했으나 들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겁도 없이 지나가던 가람의 바짓가랑이를 입으로 물고 늘어지다 괜히 걷어차이기만 했을 뿐이다.

“저기, 그런데 만약에 말입니다. 용의 몸은 아주 크지 않습니까? 클 테니 눈에도 잘 띄겠죠? 만약에 주변을 지나다니던 다른 용이 죽은 제 동족을 보고 기다리고 있으면 어쩌지요?”

덜컹거리는 수레 위, 가람의 뒤쪽에 앉아 있던 산적 하나가 심각하게 질문했다.

‘지금 당신이 걱정해야 할 것은 그게 아닐 텐데.’ 하고 생각하던 가람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죽으면 되죠.”

“죽……. 그, 그런! 용을 잡아 주시지 않을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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