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스파인더-160화 (160/256)

50화

가람이 일부러 순진한 척 되묻자 경비병은 조금 흥이 났는지 선심 쓰듯 입을 열었다.

“북쪽의 토끼 숲에 대한 소문 말이오. 로젠의 토끼 숲 하면 요즘 제법 유명할 텐데. 길을 헤매느라 전혀 듣지 못한 모양이군. 어쨌든 요즘 그걸로 여행객들이 북적북적하다고.”

“왕토끼라도 나타났나요?”

토끼 숲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시시한 이름이라 가람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경비병은 그 말에 동시에 풉 하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귀엽다는 듯이 가람을 내려다보았다.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지. 어쨌든 얼른 주점으로 가 보시오. 여행객이 많아서 방 잡기가 쉽지 않을 테니 서두르는 게 좋을 거요. 여관은 저쪽 안쪽으로 들어가면 몇 개 있소.”

경비병이 제법 친절한 척 안내를 덧붙였다. 그리 큰 마을은 아니었지만 덕분에 가람은 헤맴 없이 여관의 거리를 찾을 수 있었다.

마을의 규모에 비해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마도 대부분 여행객들인 모양인지 등에 커다란 짐을 가지고 있었다.

보아하니 여관은 벌써 가득 찼을 확률이 높았지만 일단 허기라도 해결하기 위해 가람은 적당히 깨끗한 여관 하나를 골랐다.

여관 문을 열고 들어서자 먹음직스러운 냄새와 온기가 훅 끼쳤다. 여행객들이 떠들어 대는 소리로 여관 내부는 매우 소란했는데, 과연 북적거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풍경이었다.

의자는 이미 다 찬 지 오래고, 아무렇게나 벽에 기대어 술을 홀짝이면서 테이블의 음식을 집어 먹는 이들도 많다.

그 사이를 미친 사람처럼 종횡무진하는 점원들은 몸이 번들거릴 정도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떠드는 소리 위로 주문이 휙휙 날아다닌다. 주문을 제대로 받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이쯤 되자 가람은 점원을 불러 세우는 것이 조금, 아니, 많이 미안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손에 아무것도 든 것이 없는 이들이 많았다. 아마 그들도 점원을 부르는 대신 그저 기다리는 쪽을 택한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다들 적당히 자리를 차지하거나 그러지 못할 경우 서 있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가람도 근처 벽에 기대어 섰다. 등불의 그을음이 스며든 여관의 나무 벽에서는 옅은 연기 냄새가 났다.

자리가 워낙 부족하니 의자가 비면 그저 감지덕지해서 합석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여관은 거의 만남의 장과도 같은 풍경이었다.

그 떠들썩함에 한없이 침전하고 있던 마음도 조금이나마 부풀어 오른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음식은 맥주랑 빵, 간단한 양념 새고기 구이가 제일 빨리 돼요.”

뜬금없는 사과에 고개를 돌리자 점원이 고개를 납죽 숙이고 있었다. 다시 들어 올린 그 얼굴은 애처로울 정도로 땀에 젖어 있다.

다 헝클어진 머리가 땀에 젖어 이마와 뺨에 달라붙어 있고 눈동자는 지친 기색으로 늘어진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빠르게 주문을 받는 그 모습은 대단히 인상 깊었다. 가람은 점원의 눈에서 빨리 다 끝내고 쉬고 싶다는 강력한 의지를 읽었다.

“음식은 그걸로 주세요. 그런데 혹시 방은, 없겠죠?”

끄덕일 줄 알았던 점원의 고개가 가로저어졌다. 가람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뜨고 점원을 바라보았다.

앉을 곳도 없어 서 있을 정도로 북적이는데, 방이 아직 남아 있다고? 무슨 수작이지?

“얼마나 묵으실 생각이에요?”

“잠깐, 방이 정말로 있다고요?”

“네. 아주 비싸지만 덕분에 남아 있죠. 1박에 30실버예요.”

가람은 그제야 방이 남아 있는 이유를 납득했다. 여행자들 대부분은 가난하다. 하루에 30실버나 하는 비싼 방에 묵을 재력을 가진 여행자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아마 이 여관에서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 대부분의 돈을 탕진한 이들도 꽤 될 것이다. 여관 주인은 이 기회에 한몫 단단히 챙길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럼 3일 정도만 예약할게요.”

“지금 주문하신 식사까지 포함해서 95실버예요. 선불입니다.”

자연스럽게 주머니를 뒤지려던 가람은 문득 떠오른 사실에 조금 당황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던 물건이 쇳물에 모두 녹아 버린 뒤 처음으로 방문한 마을이니 돈을 가지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자각하고 있었다면 아침에 반지라도 챙겨 두었겠지만 돈이 의미 없는 물건이 된 지 제법 되었던 터라 전혀 신경 쓰지 못했다.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무기와 식량, 간단한 생필품 정도를 챙겼을 뿐이다.

“95실버예요.”

점원이 재촉하듯 다시 말했다. 멈칫하는 가람이 금액을 잘 듣지 못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가람은 고개를 젓고 혹시나 하는 어조로 질문했다.

떠들썩하니 즐거운 풍경을 두고 쓸쓸한 거리로 내몰리는 것은 최대한 사양하고 싶었다.

오늘 아침에 베이스캠프를 다녀왔으니 적어도 이틀 동안은 부랑자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건 좀 우울한 일이었다.

“저기, 죄송하지만 여기 현물은 안 되나요?”

“현물?”

“그게, 돈이 없어서…….”

입 안에서 굴러 나오는 말이 혀 위를 어색하게 구른다. 패스파인더가 되고 나서 이런 말을 하게 될 일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돈이 없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돈이 있는 것이 당연한 상태로 너무 오래 지냈던 모양이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이 궁색한 소리라니. 가람의 어색한 말에 점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돈이 없는데 왜 들어온 거예요?”

손바닥을 뒤집듯이 바뀐 점원의 태도는 대단히 싸늘했다. 당장이라도 가람을 비렁뱅이로 몰아세워 내쫓을 기세였다.

내쫓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가람은 마주 화내는 대신 살짝 미소 지으며 사과했다.

“바쁜데 잡아서 미안해요. 잠깐 동안 다른 여행자들에게 물건을 팔아 볼 테니 그동안 다른 손님이라도 상대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알겠어요. 하지만 돈을 못 구하면 소란 피우지 말고 나가야 해요.”

본바탕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던지 한풀 꺾인 기세로 점원이 물러나자 가람은 적당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술에 어느 정도 취하고, 호기심도 왕성하면서 목소리도 큰 사람을 찾는 것이다.

다행히 여관에는 그런 사람들이 가득 차서 넘쳐흐를 정도였고, 가람은 어렵지 않게 그들 중 하나에 접근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

술에 얼굴이 벌겋게 익은 남자였다. 그는 가람이 갑자기 다가와 산뜻하게 인사를 건네자 엉겁결에 반 토막 난 인사말로 마주 인사했다.

가장 신명 나게 떠들던 그가 입을 다물자 테이블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새로이 등장한 가람에게로 모여들었다.

자신이 충분한 주목을 끌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 가람은 미지근한 친절을 두르고 권유했다.

“혹시 물건 좀 살 생각 있으신가요? 동대륙에서 온 신기한 물건이에요.”

“신기한 물건?”

가람의 이국적인 용모는 그 단어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충분했다. 사람들의 눈에 흥미가 감도는 것을 감지하며 가람은 스며들듯 테이블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물건들을 꺼내어 늘어놓자 여기저기서 구경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행자들답게 구경거리는 놓치지 않는 것이다.

“여기 있는 것들, 다 파는 거예요.”

가람이 꺼내 놓은 것은 조금 남은 저쪽 세계의 식량과 간편한 생필품들이었다.

가진 짐을 모두 혼자 감당해야 할 때부터 가방을 최대한 가볍게 싸고 있었기 때문에 물건의 양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도 공업품 특유의 외양은 시선을 끌기 충분한 것이다.

가난한 여행자들뿐이라 비록 돈을 많이 받지는 못하겠지만, 최소 이틀간 먹고 잘 돈 정도만 마련하면 충분했다.

가장 인기를 모은 것은 단연 펜이었다. 어딘가로 가서 되팔아도 되겠다며 10실버에 펜을 구입한 여행자를 필두로 여기저기서 가격을 불러 대어 물건은 순식간에 동이 났다. 애초에 많은 물건도 아니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1골드를 벌어들인 가람이 파장을 선언하자 뒤늦게 구매하려던 몇몇이 아쉬운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살 걸 그랬나.”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입맛을 다신다. 가람이 이 테이블로 와서 물건을 늘어놓긴 했지만 정작 물건을 사 간 사람들은 모두 다른 테이블의 사람들이었다.

돈만 마련하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가람은 어깨만 으쓱했다.

“벌써 다 팔렸어요.”

“저 녀석은 그냥 괜히 하는 소리야. 어차피 돈도 없을걸. 신경 쓸 것 없어, 아가씨.”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말하자 가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않았어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어쨌거나 가까이 다가온 점원에게 값을 치르고 음식을 다시 주문하는 사이 사람들은 턱을 짚고 느리게 눈을 껌뻑이거나 말없이 술을 마시거나 하고 있었다.

한바탕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식어 내린 것 같은 모양새였다. 몇몇은 졸린 모양인지 느리게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역시 내 생각은 변함없이 반대야. 너무 위험하잖아.”

턱을 괴고 있던 남자 하나가 뜬금없이 말했다. 아마도 가람이 끼어들기 전에 하던 이야기의 연장선인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알아듣는 분위기다.

모두 말없이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든 사이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갑자기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입에 잔을 대고 기울이고 있긴 했지만 절반은 아래로 쏟아져 수염을 씻어 내리고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보다 수염의 색이 훨씬 밝았는데, 아마도 그런 짓을 자주 한 탓에 수염이 탈색된 모양이었다. 마침내 술을 모두 비워 낸 그가 길게 트림한 후 반쯤 풀린 눈으로 소리쳤다.

“이 겁쟁이 자식!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겠다는 거냐?”

“뭐라고 해도 상관없어. 난 애초부터 여기 오는 데 반대했다고.”

턱을 괸 남자가 담담하게 다시 대꾸했다. 가람은 점원이 제일 먼저 가져다준 맥주를 마시며 그 둘이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빈속에 맥주가 들어가자 위장이 싸해지는 듯했지만 속을 채우는 고소한 액체가 그리 싫진 않다.

“소문을 듣고 여기까지 오기로 한 것도 동의했잖아.”

“마침 가까운 마을이었으니 나쁠 것 없다는 거지. 그렇게 가고 싶으면 혼자 가 보는 건 어때?”

“토끼 숲에 나 혼자 들어가라고?”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는 그 말에 충격받은 표정으로 연약하게 중얼거렸다. 대단히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곧 눈이 이글이글 불타오르더니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날 버리겠다 이거냐. 이 의리 없는 자식아!”

조금 지나면 멱살을 잡고 싸울 기세다. 그러나 흥분하고 있는 것은 턱수염 혼자뿐이었다.

턱을 괸 남자는 지루하다는 기색으로 방방 뛰는 제 친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숨을 쉬고 싶은 표정이었다.

가람은 조금 흥미롭게 그 대화를 지켜보다가 낯익은 키워드에 끼어들었다.

“토끼 숲이라니, 아까 경비도 그런 말을 하던데 무슨 일이 있나요?”

가람이 적절하게 끼어들어 맥을 끊어 준 덕분에 턱수염의 화는 푸식, 하고 식어 버렸다.

순식간에 화제가 바뀌자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턱을 괸 남자가 더 이상 자신을 상대해 주지 않음을 깨닫고 체념해 버렸다.

그가 신경질적으로 맥주를 더 주문하는 사이 턱을 괸 남자는 가람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소문을 듣지 못했나 보군.”

“그렇죠.”

가람이 심드렁하게 대답하자 남자는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 어린아이를 놀려 주려는 것과 같은 표정이다. 그에 따라 목소리도 더욱 은근해졌다.

“열흘 전부터 토끼 숲에서 유령이 나온다는군. 거기에 가면 죽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지 뭔가. 으스스하지? 머리 하나가 없거나 내장을 줄줄 쏟아 내는 유령들이 숲 가득 돌아다니다가, 여행자를 발견하면 왁! 하고 저승으로…….”

이야기하던 남자는 가람이 별 반응 없이 자신을 바라보자 조금 당황했다.

가람은 막 나와 따끈따끈하게 김을 뿜어내는 메추라기에서 다리를 뜯어 입에 물고 있었다.

무시하는 것과도 같은 태도였지만 가람의 시선은 똑바로 남자를 향하고 있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에게 가람이 차분하게 권했다.

“계속해 보세요.”

가람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매우 머쓱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오히려 떠들썩해진 것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주변 사람들이다.

특히 턱수염은 테이블을 내리치며 박장대소했다. 다른 이들이 입가를 들썩이는 정도로 웃는 것에 그쳤다면 그는 눈가에 눈물을 매달고 반쯤 흐느끼고 있었다.

“바보 같은 놈! 완전히 한 방 먹었군. 내가 언젠가 그럴 거라고 했지?”

“시끄러워.”

턱수염의 놀림에 남자가 짧게 대꾸했다. 그리고 곧 제 앞에 놓인 맥주를 들어 마심으로써 얼굴을 가려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히죽거리던 턱수염은 가람에게 호감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아가씨 정말 마음에 드는걸! 우리 통성명이나 하지. 나는 바탄이야. 아가씨를 놀리려던 저 바보 같은 녀석은 고딕이라는 이름이지.”

“가람이에요.”

가람이 메추라기를 우물거리며 대답했다. 식사로 나온 것은 메추라기 한 마리와 맥주, 그리고 아무것도 넣지 않은 잡곡 빵이었다.

메추라기는 손바닥만 한 크기였는데, 생전 운동을 열심히 한 모양인지 살결이 단단하고 별로 먹을 것이 없었다.

그나마 씹을 만한 곳은 가슴살과 다리 정도고, 나머지는 뼈에 거죽을 씌워 놓은 것 같은 모양새라 가람은 다 뜯어 먹은 뼈를 핥으며 빵을 씹어야 했다.

“동대륙에서 왔지?”

바탄이 당연한 질문을 하자 가람은 무언으로 긍정했다. 그리고 다 먹은 접시를 밀어 놓은 뒤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배를 채우니 슬슬 피로가 몰려온다. 토끼 숲인지 뭔지 하는 소문이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솔직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150패스 남았다. 앞으로 150패스면 이쪽 세계의 모든 것들과 작별이었다.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것이다. 거의 한 달 남짓,

오래 걸려야 세 달이면 이 세계를 떠난다. 그리고 원래 삶으로 돌아가게 되겠지. 곧 떠날 곳에 미련을 남겨 두는 짓은 별로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다.

사실 가람은 방금 들은 바탄과 고딕의 이름도 반쯤 흘리고 있었다. 아마도 열흘쯤 지나면 까맣게 잊어 이들이 누군지도 모르게 되리라.

그런 마당에 새삼 이런 소문 따위에 흥미를 느낄 이유가 있나.

“보아하니 소문을 전혀 못 들은 것 같은데, 내 친구의 무례도 사과할 겸 내가 대신 말해 주지.”

무례를 사과한다기보다 그저 술을 마시고 나니 떠들고 싶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가람은 그가 마음껏 떠들도록 내버려 두었다.

가람이 무언으로 긍정하자 바탄이 제법 이야기꾼 같은 자세로 입을 열었다.

“이 동네에는 토끼 숲이라는 숲이 있는데 말이야…….”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사실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 것이었다.

딱히 토끼가 많이 살고 있지도 않으면서 적당히 토끼 숲이라고 불리고 있는 이 숲에서 유령을 처음 목격한 것은 바로 나무를 하러 들어간 나무꾼이라고 한다.

공포로 달달 떠는 그를 마을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하나둘씩 목격자가 늘어나면서 어느새 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순식간에 옆 마을까지 퍼졌다.

유령은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에 목격자가 늘어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한둘이 아니었다고요?”

가람이 불쑥 말을 끊자 바탄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숲 전체가 유령 마을이라도 된 것 같을 정도로 많았지. 완전히 우글우글했다니까. 멀리서도 보일 정도야.”

갑자기 쏟아져 나온 유령 떼에 처음에는 마냥 두려워하던 마을 사람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차츰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디에나 한 명쯤 있는 객기 부리기 좋아하는 사람이 유령들의 숲으로 들어가 보겠다며 호기롭게 소리쳤다.

그때까지는 멀찌감치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 감히 들어가지 못했던 사람들은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그 청년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청년이 유령들의 영역으로 한 발자국 들어선 순간.

“순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네.”

김새게도 유령들은 마치 청년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스쳐 지나갔다. 관심이라곤 없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그럭저럭 검증된 안전 속에서 유령 사이를 거닐어 보는 신기한 경험을 해 보고 싶어 하는 자들과 혹시 모를 위험을 염두에 두고 그들을 멀찌감치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부류. 아마도 이 털보는 전자인 모양이었다.

“너무 위험한 짓이야. 분명 누군가는 저주를 받을 거라고.”

술을 마시던 고딕이 툭 내뱉는다. 그러나 바탄은 가볍게 코웃음 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바탄은 고딕을 겁쟁이라 비난하고, 고딕은 그를 무모하다고 비난하는 지루한 공방이 다시 시작되었다. 그 사이에서 가람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태도로 눈을 깜빡였다.

가람은 바탄보다는 고딕의 의견에 동의하는 편이었다. 하나뿐인 목숨 소중히 해야 하지 않겠나.

언제나 최악의 순간은 상상보다 더욱 끔찍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유령이라는 것은 친한 사람 중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더 많은 가람이 흥미를 가질 만한 소재였다.

“죽은 사람 중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네 할아버지의 소식이라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털보의 그 외침은 슬슬 올라가서 잠이나 잘까 하고 생각하던 가람을 다시 의자로 끌어다 앉히기 충분한 것이었다.

여기서 그녀만큼 죽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혹은 죽은 사람으로부터 소식을 전해 듣거나.

가람은 턱을 괴고 두 사람의 공방을 다시 지켜보았다. 다투는 두 사람만큼이나 가람의 머릿속도 치열하게 갈등을 빚어내고 있었다.

갈까, 말까. 이성은 가지 말 것을 권하고 있었지만 다른 모든 것들은 한 번 가 보기를 권하고 있었다.

가람이 이곳에 앉아 있는 이유도 이성을 설득할 만한 근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소식을 듣는다고? 이쪽을 완전히 무시하는 유령한테 죽은 사람의 소식을 어떻게 듣겠다는 거야?”

고딕의 그 말은 제법 날카로운 데가 있었다. 털보가 우물쭈물하자 대신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지금까지 잘 들었네. 하지만 죽은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경험이야. 거기 자네, 바탄이라고 했던가?”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남자였다. 지목당한 바탄이 더듬더듬 대답하자 그는 싱긋 미소 지었다.

“정 혼자 들어가는 게 두렵다면 우리들과 함께 가도록 하지. 어차피 우리들도 유령들 사이를 거닐어 보는 멋진 경험을 해 보고 싶은 사람들이니 한 명 더 끼어도 상관없어.”

말을 마친 그는 가람에게도 마찬가지로 미소 지으며 권했다.

“거기 아가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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