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사람이었다.
웅크리고 있어 키는 가늠할 수 없지만 체격은 꽤 큰 편이다.
몸 여기저기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벽에 부딪혀 생긴 상처 같지는 않았다.
살짝 보이는 뺨이나 살갗마다 멍과 핏자국이 있었고 옆구리와 허벅지, 팔에 자상을 입었는지 그 부위의 옷이 피로 푹 젖어 있었다.
단순히 불량배의 폭력 사태라고 하기엔 너무 심각한 부상이다.
그를 그렇게 만든 사람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남자가 날아온 방향에서 누군가가 여유작작한 태도로 걸어왔던 것이다.
눈이 가늘고 전체적으로 얄팍하게 생긴 남자였는데, 뼈대도 약해 보이고 체구도 왜소한 편이다.
그냥 봐서는 맞아서 쓰러져 있는 남자보다 덩치가 절반 가까이 작았다. 아무리 봐도 힘이 셀 것 같지는 않은데, 근처에 다른 한 패가 있나?
가람이 관찰하는 사이 희한하다는 표정으로 가람을 쳐다보던 그가 불쑥 말을 걸었다.
“어라, 누구세요?”
이쪽이 할 말이다. 어쨌든 그가 말을 검과 동시에 쓰러져 있던 남자도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이, 일반인이잖아. 건들지 마.”
말하는 동안에도 입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는데 쓰러진 남자는 떨리는 손을 들어 가람에게 손짓했다.
도망가라는 시늉이었다. 성의는 고맙지만, 가람은 그냥 가만히 서 있기로 했다. 경험상 이런 상황에서 괜히 몸을 빼면 일이 몇 배나 귀찮아지게 된다.
어차피 범상치 않은 상황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 답답한 감각. 일종의 결계를 친 것 같은데.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어라? 명령이야? 애석하게도 나는 네 부하가 아니거든. 정 지키고 싶으면 직접 지켜 보시던가.”
입꼬리를 야비하게 올리고 쓰러진 남자를 비웃는 얼굴에 가람은 겁먹은 척 뒤로 두어 발자국 물러섰다.
쓰러진 남자가 가람을 지칭한 ‘일반인’이라는 단어에 장단을 맞출 생각이었다.
피투성이 남자를 발견하자마자 반사적으로 그의 머릿속을 읽으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읽히지 않는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 두 사람은 일반인이 아니다.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 벌어졌는데 아는 것이 없으니 가람은 일단 상황 파악을 위해 숨죽였다.
“물러서요.”
쓰러져 있던 남자가 비틀거리는 몸을 간신히 갈무리해 가람의 앞을 막아섰다. 출혈 과다로 당장 쇼크가 와도 이상할 것 없는 부상인데 대단한 의지였다.
그 모습에 왜소한 남자가 다시 미소 지었다. 쥐를 앞에 둔 고양이 같은 표정이었다.
앞으로 자신이 할 잔혹한 행동이 얼마나 재미있는 상황을 끌어낼지 기대하는 표정. 가람이 굉장히 싫어하는 얼굴이다.
겉으로야 겁먹고 떠는 모습을 꾸며 내고 있었지만 사실 가람은 약간 짜증이 난 상태였다. 기껏 평범한 삶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이건 또 어디서 튀어나온 버러지야.
이쪽 길로 오지 말걸. 후회와 동시에 눈앞의 두 사람을 깨끗하게 처리하고 없었던 일마냥 가던 길을 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너무나 유혹적인 선택지였지만 가람은 억지로 그것을 외면했다.
방해 좀 된다고 사람을 서슴없이 죽이다니. 마치 모르드레드나 할 짓이다.
물론 모르드레드는 그것보다 좀 더 미쳐서 방해가 되지 않아도 변덕만으로 사람을 마구 죽이곤 하는 놈이지만.
가람이 사람을 죽여 문제 해결을 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면 애초에 직전 세계의 좀비 사태 같은 것도 그렇게까지 심각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감염되었지만 아직 발현하지 않은 감염자나 위험 지역에 살던 사람들을 깡그리 모아서 죽이고 소각한 뒤 격리 및 정화 처리를 하면 끝이었겠지.
한 10억 명쯤 죽었을 테고, 그 가족들이 울부짖으며 가람에게 애원하고 욕하고 혼절했겠지만 말이다. 부수적으로 가람의 감성도 큰 폭으로 인간과 거리가 벌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가람은 슬픈 일을 슬퍼하고, 무서운 일을 무서워하며, 즐거운 일을 즐겁게 여기는 인간이고 싶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벌써 무섭다는 게 어떤 감각인지 약간 잊어 가고 있었으니까. 슬픈 일도 이제 크게 와닿지 않았다. 대신 씁쓸한 공허감이 느껴질 뿐.
“내가 상대할 테니까 기회를 봐서 도망쳐요. 몸 상태가 이래서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지만, 시간은 좀 끌 수 있을 테니까.”
앞에 선 남자가 피거품 이는 거친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무래도 재수 없게 웃고 있는 저 왜소한 남자보다
눈앞의 그가 조금 더 호감이 간다. 가람 자신을 일반인이라고 지칭해 준 것도 꽤 마음에 들었다.
“도망? 그 몸으로 시간을 어떻게 끌겠다는 거야?”
왜소한 남자가 비웃으며 손을 치켜들었다. 가람은 눈앞의 다친 남자가 어떤 경위로 그런 상처를 얻었는지 곧 알 수 있었다.
손도 닿지 않았는데 상처 입은 남자의 몸이 붕 뜨더니 벽에 처박혔다. 그리고 무언가에 깔리기라도 한 것처럼 숨이 막히는 소리를 내며 버둥거렸다.
‘염력?’
아무리 봐도 어디 조폭끼리 싸우는 건 아닌 것 같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이상한 놈들인가 싶어 가람은 다시 한 번 머릿속을 읽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허탕이었다. 아무것도 읽히지 않는다.
이 능력으로 가람이 읽어 낼 수 있는 생각은 극히 표면적인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현금 인출기를 이용 중인 사람이 떠올리고 있는 비밀번호나 머릿속으로 외우고 있는 영어 단어 같은 선명한 것들 말이다.
좀 더 집중하면 비정형적인 생각들, 장면이나 냄새 같은 것도 읽어 낼 수 있으나, 사람의 생각이라는 건 대개 극히 찰나간에 지나가는 것들투성이다.
읽어 낸다 하더라도 단편적인 것들로 정신적인 피로가 극심했다.
게다가 간혹 만나는 이름 높은 스님이나 정신적인 수양을 거친 사람들에게는 이런 능력이 아예 통하지 않았는데, 이들은 아무리 봐도 그런 쪽은 아닌 것 같았다.
가람이 그들을 관찰하는 동안에도 벽에 처박힌 남자는 맥을 못 추고 있었다.
내버려 두면 곧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를 조롱하듯 왜소한 남자가 빈정거렸다.
“지키고 싶은 거 아니었어? 이 여자 울기 직전인데. 시간 끈다더니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이렇게 손을 뻗고 있는데 왜 아무것도 안 해?”
그 도발이 먹혔는지 죽은 듯이 쓰러져 있던 남자가 발악하듯 무언가를 했다.
하지만 그 능력이라는 건 정말 보잘것없고 미미한 수준이라 가람조차 코웃음이 나는 것이었다. 애초에 힘의 차이가 너무 크다.
자신을 보고 도망치라 했지만 그도 애초에 글러 먹은 것 같고. 어떻게 할까.
그나저나 울기 직전처럼 보인다니, 자신의 연기 실력이 꽤 쓸 만한 모양이다.
가람의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방금 한 말대로 지척까지 다가온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움켜쥐듯 잡았기 때문이다.
무례하고 우악스러운 행동에 가람의 고민이 휙 날아갔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살의였다.
‘죽일까?’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눈앞의 이 남자. 이 왜소해 빠진 남자는 자신의 목숨이 가람의 기분 하나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애초에 이놈들 자체가 방해 요소야. 이 정도는 제거해도, 되지 않을까?’
가람이 자신의 규칙과 흥정하는 것도 모르고 남자는 손에 쥔 얼굴을 장난감처럼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겨우 둘이야.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아무도 모르게 없애 버리면…….’
거기까지 생각하던 가람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또, 또다. 이렇게 쉽게 사람을 죽일 마음을 먹다니. 이래서 스스로에 대한 경계를 늦출 수가 없었다.
가람은 두 사람을 해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곳에 와서 단 한 번의 살인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손에 피를 묻힐 수는 없다. 사람을 적게 죽여 본 것은 아니지만 살인의 뒷맛은 언제나 끔찍하니까.
우습게도, 그 사실에 위안받긴 한다. 적어도 아무렇지도 않거나 그걸 즐기는 괴물은 아니라는 뜻이니까.
“귀엽게 생겼는데. 죽기에는 아직 어려 보이고…….”
뒷말을 질질 끌던 남자가 가람의 뺨을 손가락으로 튕기며 싱긋 웃었다.
“이렇게 하자. 오늘 여기서 본 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으면 그냥 보내 줄게.”
“정말요……?”
가람은 능청스럽게 겁먹은 연기를 해 보였다. 눈물도 좀 고이면 좋았겠지만, 안색을 좀 어둡게 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그럴게요. 경찰한테도 말 안 할게요.”
“정말? 경찰에게도 말 안 할 거야?”
“네, 네.”
마음에 든다는 듯 남자가 씨익 웃었지만 이어서 나온 말은 서릿발 같았다.
“너 지킨다고 나섰다가 쟤는 반죽음이 됐는데 입을 싹 닦겠다고? 성격이 아주 못돼 먹었는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믿고 보내 주겠어? 어이, 정세원. 들었어? 이 배은망덕한 소리.”
이런 놈이었군.
분통이 터질 만한 태도였으나 오히려 가람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애매하게 착한 모습을 봐 버리면 나중에 죄책감이나 잡생각이 든다. 차라리 이렇게 대놓고 악당인 것이 편했다. 역시, 손을 좀 쓰는 게 낫겠어.
“어이, 정세원?”
쓰러진 남자의 이름이 정세원인 모양이었다. 왜소한 남자는 가람을 내버려 두고 그에게 다가가 발로 툭툭 차며 이름을 불렀다.
정세원이라는 남자는 무언가 저항을 하고 싶은 듯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정말로 그냥 꿈틀대고 있을 뿐이었다.
“정신 차리고 잘 봐. 지금부터 이 여자를 죽일 건데. 네가 약해서 죽는 거야. 네 탓이라는 뜻이지. 그러게, 주제를 알고 나섰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