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스파인더-177화 (177/256)

11화

숨죽이고 침입자를 경계하던 가람은 곧 맥이 풀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건 다름 아닌 가람의 부모님이었다.

늦게 집에 와 이제야 가람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아버지가 심각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방 안으로 들어선다.

그 옆에서 어머니가 뭔가를 속닥거렸다. 간간이 운전면허 이야기도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 다리를 살살 걷어 상처를 드러내더니 다시 약을 바른다. 고작 무릎 좀 다쳤을 뿐인데.

부모님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람이 차 버린 이불을 목까지 잘 덮어 준 뒤 방을 나갔다.

가람은 결국 부모님의 기억을 지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이곳을 떠나지도 못한 채 아침을 맞이하고 말았다.

* * *

“일찍 일어나네요.”

대문을 열고 나오자 정세원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었다.

사실 아예 잠들지 않은 것이지만 가람은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부모님 얼굴을 마주하기 불편해서 일부러 아침밥을 먹자마자 책 사러 간다는 핑계로 집을 뛰쳐나왔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방에 있을 걸 그랬다.

그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세원은 반들반들하게 웃었다.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어요?”

“어제부터요.”

능청스러운 얼굴로 대답한 정세원이 다시 생글생글 웃는다.

넌더리가 난다는 뜻으로 비난할 겸 물은 것인데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으며 뻔뻔한 태도로 흘리는 모습이 마치 다른 사람 같다. 가람이 할 말을 잃고 쳐다보자 그가 권했다.

“좀 걸을까요?”

거침없는 정세원의 태도는 몹시 거슬리는 것이었지만 가람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걷지 않는다고 하면 여기에 서서 이야기를 나눌 기세였다. 가람에게는 별로 좋지 않은 일이다.

여기까지 온 정세원이 꺼낼 이야기라는 건 뻔한 것인데, 부모님은 물론 이웃들에게 그런 수상한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었다.

이른 아침의 주택가는 행인이 많았다. 주로 학생이나 직장인이다. 가람은 새삼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제 아버지가 늦게 퇴근한 덕분에 오늘 오후 출근이라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대문 밖에 서 있는 정세원을 발견한 건 가람의 아버지였을 것이다.

말없이 골목을 걸은 끝에 도착한 곳은 가람도 알고 있는 카페였다. 케이크가 끝내준다며 가람을 잡아끌었던 그 카페다.

그러나 유리 너머로 보이는 불 꺼진 내부와 꽉 닫힌 문 등 어디를 보나 영업을 하지 않는 상태인데 정세원은 매우 당당하게 카페 문을 가리켰다.

“들어갈까요?”

“오늘은 휴무인 것 같은데요.”

가람이 유리문에 적힌 영업시간을 가리켰지만 정세원은 태연했다.

“다 방법이 있죠.”

의미심장하게 웃는 모습을 보자 가람의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여기가 그 본부?”

생각해 보면 이상하게 이 동네에 자주 나타났지. 지난번 길가에서 자신을 불러 세웠던 것도 그렇고.

카페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그건 위장 가게이고 안쪽의 비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또 다른 사무실이 나타난다거나 하는 것 아닐까? 그런 가람의 추측을 정세원은 약간 애잔한 얼굴로 부정했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어요. 예산 없어요.”

“……여기서 아르바이트는 왜 했어요? 초능력자인데.”

“각성 전에 했다는 이야기죠.”

“여기 사장님도 관련자예요?”

“그건 아닌데, 제가 각성할 때 이래저래 사건이 좀 있었거든요. 그때 휘말려서 어느 정도 알고만 있는 사람이죠. 능력자는 아니에요.”

그렇게 말한 정세원은 다시 빙긋 웃으며 문을 가리켰다.

“궁금한 게 많아 보이는데 앉아서 말하는 건 어떨까요?”

가람도 계속 서서 대화할 생각은 없었다. 어제 밤새도록 고민해도 결국 이 세계를 버리지 못했다. 앞으로도 버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여기에 계속 남아 있는다면 필연적으로 정세원과 자주 마주치게 될 텐데 계속 피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테니 이왕 이렇게 된 것, 가람은 들을 것을 모두 듣고 앞으로를 결정할 생각이었다.

열어 주는 문으로 들어가 소파에 앉자 정세원은 능숙하게 커피 머신을 만지고 냉장고에서 케이크를 꺼내 왔다. 자신의 가게마냥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금세 뜨거운 커피 두 잔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과일을 올린 조각 케이크 몇 개도 그 주변에 같이 자리 잡는다.

“아으.”

앓는 소리를 내며 가람의 건너편 자리에 앉은 정세원이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뒤늦게 생각난 듯 고개를 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커피 안 마시죠?”

지난번 정신과에서 받은 약을 먹고 있어 커피를 거절했던 것을 기억해 낸 모양이다.

가람은 말없이 커피에 손을 뻗어 향을 맡았다. 한 입 맛보니 맛도 훌륭한 편이다. 솔직히 이제 뭐든 아무래도 상관없는 느낌이었다.

가람이 아무 말 없이 커피만 홀짝거리자 정세원은 약간 무안한 얼굴로 케이크 한 조각을 먹어 치웠다.

어제 내내 밖에 서 있었다더니 제대로 된 걸 먹지 못했는지 무척 허기진 모습이었다. 바로 두 번째 케이크에 손을 뻗으며 정세원은 그제야 약간 정신이 돌아왔는지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어제는 많이 놀랐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안을 거절한 이유도 이해해요. 어제 같은 싸움을 보고 나서 냉큼 하겠다고 나서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겠죠. 무서운 생각도 들고, 피하고 싶기도 할 거예요. 하지만 저희는 가람 씨의 도움이 필요해요.”

“어떤 도움이요?”

정세원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가람이 무작정 부정적이던 태도를 접어 두고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상대의 마음이 바뀔까 봐 서둘러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전투에 함께 갈 일은 없을 거예요. 가람 씨는 안전한 곳에서 작전을 마치고 온 대원들을 치료해 주면 됩니다. 저는 재생 능력이 있어 괜찮지만 그런 능력이 없는 다른 대원들은 큰 부상이 곧 이탈로 이어지니까요. 각성 후의 능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모르겠지만, 회복 속도를 올려 주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저희는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이라…….”

“저에게 능력이 있다고 확신하시는 것 같네요.”

“제가 감이 좀 좋은 편이거든요.”

대수롭지 않은 척 미소 짓고 있긴 하지만 그가 능력자인 이상 단순히 감 이상의 것으로 가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날카롭게 벼려진 기감으로 무언가를 느낀 것이 틀림없다.

가람이 침묵하며 커피만 마시자 정세원은 가지고 있던 작은 가방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올려놓았다.

“계약서예요. 공무원 계약서. 한번 읽어 보세요.”

오늘 당장 계약을 하겠다는 열의를 내보이며 정세원이 적극적으로 권한다. 가람은 무성의한 태도로 계약서를 대충 훑어보았다.

기밀 유지 부분이 엄격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근로 계약서와 비슷한 내용이었다.

업무 내용, 시간, 급여와 그로 인해 국가의 이름으로 보장하는 부분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다.

사실 기재된 대부분이 가람에게는 의미가 없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소망했던 평범한 삶과는 일 자체가 거리가 있기에 어떤 대우도 감흥이 없다. 하지만 정세원은 그것을 다른 의미로 해석한 듯 다급하게 덧붙였다.

“기본급은 적지만 그래도 수당을 받으면 근무 시간 대비해서는 고연봉이에요. 전투에 나가지 않아도 위험 수당이 지급되고, 퇴직 연금도 보장하니까요. 해외로 휴가를 갈 경우에는 대원들의 보호도 받을 수 있고, 외교관 여권도 따로 발급돼요.”

정세원이 열렬히 장점을 호소했다. 그가 알고 있는 가람은 기껏해야 프리랜서로 벌이가 적고 미래가 불안정한 직업인이었다.

가람이 정말로 그런 형편이었다면 눈앞의 이 계약서에 눈이 돌아갔을지도 모르지만,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았다.

무관심한 가람의 태도에 정세원은 무척 당황했다. 적극적인 태도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꽤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오산이었다.

계약서에 서명을 받아 내는 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던 것이 철저하게 빗나갔다.

실제로 가람은 처음 잠깐 계약서를 들여다보았을 뿐 그 후로는 만지지도 않았다.

가람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패스뿐이다. 만약 협조하는 대신 매달 일정량의 패스를 주겠다고 약속했다면 가람도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람은 잠시 ‘패스를 매달 지급하죠.’라고 의기양양하게 떠드는 정세원을 상상하다가 고개를 저어 버렸다.

“왜, 왜 그러세요? 조건이 별로예요?”

갑자기 고개를 내젓는 가람에게 정세원이 당황을 숨기지 않고 물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내심이 섞여 있는 말이었다.

“그게 아니라. 누구를 상대로 싸우는 거예요?”

정세원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의심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는 곤란한 듯 눈알을 굴리다가 난처하게 웃었다.

“작전 내용은 기밀이라 가람 씨가 계약서를 쓰고 이쪽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알려 줄 수가 없어요. 그래도 나쁜 일을 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거기까지만 말했지만 가람은 정세원의 머릿속에서 의심과 걱정, 그리고 두려움을 읽었다.

그가 능력자인 탓에 많은 정보를 읽어 낼 수는 없었지만 어렴풋한 느낌만으로 그가 어떤 존재, 혹은 단체에 두려움에 찬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정세원 쪽의 세력이 무척 약한 것 같다.

“알았어요. 그러면…… 대략적인 이야기라도 해 줘요. 솔직히 당신들이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미친 사람처럼 보이거든요. 이해하죠?”

가람은 자신의 정신과 의사가 자신을 볼 때마다 떠올리는 감상을 그대로 들려줬다. 다소 직설적인 말에 정세원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억지웃음을 지었다.

“그럼요. 어디 보자, 어디부터 시작할까요.”

그렇게 시작된 정세원의 이야기는 거의 정오가 지날 때까지 이어졌다.

아주 옛날부터 이능력자들은 존재했다. 민담이나 전설에 등장하기도 하고 놀라운 사건을 다루는 방송에 간접적으로 노출되어 알음알음 알려지기도 했다.

뱀파이어나 반인반수, 혹은 초능력자나 무협지에 나올 것 같은 기공술 등 능력자들의 종류는 말도 못하게 많았다.

각 나라와 도시별로 문화에 영향을 받아 가지고 있는 영적 능력을 제각각 다른 방식으로 개화시킨 능력자들은 물밑에서 그들끼리 뭉치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인간 사회에 자신들의 특수 능력을 휘두르며 부와 권력을 누려 왔다.

물론 모두가 자신의 능력으로 부와 권력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성향에 따라 마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신선처럼 산중에 은거해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고,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아가다가 능력이 개화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사람도 많았다.

“세원 씨처럼요?”

“그런 편이죠.”

“어쩌다가 각성한 거예요?”

“음, 평범해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경찰이나 소방관 둘 중 하나를 고민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강도가 여기에 들어온 거예요. 그런데 그 강도가 이능력자였던 거죠. 치고받고 싸우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되었더라고요.”

거짓말이었다. 가람은 그가 많은 부분을 다르게 말하고 얼버무렸음을 알았지만 캐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은 순간적으로 정세원의 머릿속에 스쳐 간 장면 몇 개만으로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와 가족으로 보이는 닮은 사람들.

정세원의 기억 속에서 그들은 어떤 가정집을 배경으로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었다.

그가 능력자로서 지니는 정신 방어 능력 때문에 머릿속을 읽어 내는 능력을 써도 감정 정도를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을 뿐이지만 이번에는 강렬한 기억이라 그런지 구체적인 모습까지 보였다.

정세원이 순식간에 감정을 추스른 덕분에 오래 읽을 수는 없었지만.

“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아, 여러 성향이 있다는 것까지 말했죠. 기억력이 너무 떨어져서. 하하.”

정세원이 기억력 이야기만 하면 찔리는 곳이 많은 가람은 그저 커피만 연거푸 들이켰다.

그는 잠시 할 말을 고르다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선한 성향이나 중립적인 성향인 사람들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 별문제가 없었어요. 하지만 어디든 악한 사람은 있죠. 법과 규칙을 무시하고 사욕을 위해 타인의 희생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

“그렇겠죠.”

“지금까지는 민간에서 결성된 비밀 결사단들이 그들을 제지해 왔어요. 능력자라곤 하지만 가족이나 친구, 주변인들은 일반인인 경우가 많아요. 그들이 피해를 입으니 나 몰라라 할 수가 없었던 거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립각은 점점 선명해졌어요. 능력으로 이득을 챙기기가 갈수록 어려워지자 범죄자들도 뭉치기 시작한 거죠. 그리고 탄생한 것이 국제적 이능력자 범죄 단체인 ‘메시아’예요.”

대단히 시시하고 유치한 작명 센스라고 생각했지만 가람은 진지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어두운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던 그가 문득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에 맞서서 우리도 국제적으로 공조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잘 되고 있지는 않아요. 다들 선의와 정의감이 넘치긴 하지만 그래도 각자 자국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우리는 약해요. 아직 한국은 그들의 수뇌부를 상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도 희생이 컸던 싸움이 많았어요. 그런데도 언제나 메시아 놈들의 끄나풀이나 좀 잡는 게 고작이었죠.”

거기까지 듣고 나니 가람은 문득 의아해졌다. 생각보다 필사적으로 이 싸움에 응하고 있는 듯한데 어제의 그 전투는 뭐였지?

사망자 하나 없이 마무리된 데다 막판에는 그들 중 일부를 놓치기까지 했잖아?

“궁금한 게 있는데.”

“예?”

“왜 안 죽이는 거예요?”

거의 반사적으로 튀어 나간 말이었다. 진심으로 이상하다는 듯한 가람의 질문에 정세원은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고 어리둥절하게 반문했다.

“무슨 말인지…….”

“어제 그 싸움에서 쓰러뜨려 놓기만 하고 죽이진 않았잖아요. 다 죽이면서 싸웠으면 놓치지도 않았을 텐데.”

정세원은 익살스러울 정도로 경악한 표정으로 가람을 보다가 질린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정말로 놀란 것은 아니고 그저 꾸며 낸 표정이었다. 그는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더니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무서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요.”

그 말에 가람은 문득 말실수를 했나 싶어 찔끔해졌다. 하지만 다행히 어깨를 으쓱한 정세원은 잠시 턱을 긁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일반 시민이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범죄자한테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당장 죽여 버리는 게 시민의 안전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겠죠. 그런데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거든요. 으음, 이걸 말해도 되나?”

잠시 말을 끊고 고민하던 정세원은 본인도 답답하다는 듯 다시 한숨을 푹 쉬었다.

“그 사람들은 원해서 합류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납치당해서 세뇌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세뇌?”

“맞아요. 속았거나, 세뇌되었거나.”

“그렇다고 해도 출혈이 너무 큰 것 아닌가요?”

“그건 그렇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납치당해 세뇌된 뒤 싸우는 사람을 공격할 수는 없으니까요. 전투도 중요하지만 구조도 중요해요.”

“그럼 그 사람들이 전부 세뇌된 사람들이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어요. 메시아가 한국에 상륙하면 한자리 받기로 약속하고 가담한 사람들도 있죠.”

“흠.”

그런 사람들은 공격해도 상관없지 않느냐는 시선에 정세원은 씁쓸하게 고개를 떨어뜨렸다.

“하지만 메시아 측에서 약속을 지키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들도 결국 그냥 속았을 뿐이죠. 진실을 알고 나서 본부에 들어와 우리를 돕는 사람들도 많아요.”

“본부에 들어와요?”

가람은 아무런 내색도 없이 그저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정세원은 제풀에 찔려 가람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니까, 예전에 적이었던 녀석들.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를 자들도 마음을 바꿔 먹었다고 하면서 찾아오면 동료로 받아 주고 있다는 소리다. 정말로 태평하군.

“내부 첩자 같은 건 걱정 안 해요?”

그냥 넘어가려던 가람이 결국 툭 찔러 보듯 물었다.

“걱정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저는 안 해요. 메시아가 한국을 먹으면 다 같이 끝장난다는 걸 잘 이해시켰으니까요. 자살하고 싶은 게 아니면 뒤통수는 안 칠 거예요.”

“세뇌는 누가 시키는데요? 그 메시아라는 단체를 이끄는 사람인가요?”

정세원은 잠시 침묵했다. 그동안 가람은 그의 머릿속에서 공포와 걱정이 구름처럼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한참 만에 입을 뗀 그의 목소리는 무척 가라앉아 있었다.

“그 부분은 아직 밝혀진 게 없어요. 하지만 그 조직의 보스는 괴물이에요. 완전히 공포의 상징이죠. 단신으로 미 국방부를 습격해서 기밀을 다 털어 가고 혼자 요원을 몇백이나 학살한 전적이 있어요. 국적은 브라질이라고 알려져 있긴 하지만, 확실하진 않아요. 사람을 재미로 죽이는 사이코패스예요.”

거기까지 말한 정세원은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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