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스파인더-179화 (179/256)

13화

“그, 그래요.”

정세원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선물을 앞세워 밀고 들어오자 부모님은 얼떨결에 방문을 허락해 버렸다.

“집이 정말 좋네요.”

자연스럽게 칭찬을 늘어놓으며 안쪽 소파에 앉아 버리자 어머니는 관성적으로 일단 마실 것을 꺼내 왔다.

그래도 황당하긴 한 듯 가람에게 이게 무슨 일이냐는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정세원이 한껏 웃음기 띤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훈훈한 청년일지도 모르지만 가람에게는 사기꾼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따님께 부탁드릴 게 있어 방문했습니다.”

“우리 가람이에게요?”

“예.”

“두 사람이서 해결하면 될 걸 왜 여기에…….”

“워낙 중요한 일이라 국가적인 측면에서 성의를 보여 드리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해서요.”

다시 사기꾼 냄새가 나는 환한 웃음을 머금은 정세원은 이어서 한껏 가람의 능력을 추켜세웠다.

물론 초능력은 아니었다. 가람이 언어 쪽 일을 한다는 것을 참고해서 통역이나 가진 기질에 관한 부분을 열심히 칭찬했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는 가람조차 얼굴이 뜨거워질 정도로 빤히 보이는 아첨이었는데, 이게 통했다.

“그, 그래요? 우리 가람이가 그렇게까지…….”

정세원의 말을 홀린 듯이 듣고 있던 어머니가 뺨을 긁적였다. 좀 갑작스럽긴 하지만 싫지만은 않은 기색이었다.

하긴, 누군가 찾아와서 댁의 자식이 아주 훌륭하고 뛰어나다고 칭찬을 퍼붓는데 불쾌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가람의 아버지는 약간 떨떠름하게 앉아 정세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많은 통역사들을 봤지만 따님처럼 훌륭한 분은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즉각적인 임기응변, 어느 상황에서도 차분한 성격까지. 흔치 않은 자질이죠. 그래서 이렇게 몸소 찾아뵈어 좀 더 중요한 일에 그 능력을 써 주십사…….”

“그래도 아까 수사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위험한 일이 있는 거 아닌지?”

가람의 어머니가 거의 넘어가기 직전으로 보이자 그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던 아버지가 상황에 난입했다. 그 말에 어머니도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그, 그래. 위험한 일이죠? 그래서 여기까지 허락을…….”

“아닙니다. 가람 양은 전투 요원이 아니니 현장에 나갈 일은 없을 겁니다. 안전한 사무직에 가깝다고 보시면 됩니다. 몸을 다칠 일은 거의 없을 테니 걱정은 접어 두셔도 됩니다.”

“아예 없다고는 안 하는구먼.”

아버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리자 어머니가 급히 옆구리를 꼬집었다.

“말을 뭐 그렇게 해! 흠흠, 아무튼 이야기는 잘 들었어요. 하지만 역시 본인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어요? 가람이가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니까. 우리 의견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어머니가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 틀린 말이었다. 가람의 의사로만 결정되는 일이었다면 세원이 이렇듯 집까지 들이닥칠 일은 없었을 테니까.

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의사와의 상담으로 정세원의 그룹에 합류하려고 했던 가람이었다.

정세원은 가람의 응답이 늦어지니 거절할 거라 생각하고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이다. 장수를 잡으려면 말을 쏘라고 했던가. 솔직히, 꽤 잘 먹히고 있었다.

당혹스러워하긴 하지만 어머니의 얼굴에 희미하게 떠오른 것은 역시 자랑스러움이었다.

이런 식으로 의전을 갖춰 가며 따님의 능력을 나라에 빌려주십사 하고 찾아오니 무척 고양된 것 같았다.

이렇게 기뻐하시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는 것은 사실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 가람은 결국 충동적으로 대답했다.

“할게요.”

어차피 수락하려던 일이었지만 어머니가 은근히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가람도 마음이 끌렸다. 정세원이 노리던 대로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좀 찜찜했지만 어차피 손해 볼 것은 없었다.

가람의 대답이 나오는 순간 정세원의 눈이 기쁨으로 빛났다. 한 건 했다는 뿌듯함이 얼굴 위로 확 떠오른다.

그는 처음으로 진심 어린 웃는 얼굴을 보여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결정하셨습니다. 절대 후회할 일 없을 겁니다. 그러면 며칠 뒤 다시 방문드리겠습니다.”

공손하게 허리를 꾸벅 숙이고 정세원이 물러나자 가람은 곧바로 어머니의 질문 공세에 직면했다.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저 사람이랑은 어떻게 알게 된 건지 쏟아지는 질문에 가람은 적당히 모른다고 흘리기도 하고 거짓말로 둘러대기도 하며 응수했다. 그래도 아예 거짓말만 한 건 아니었다.

“그렇구나. 봉사 활동에서 만난 사람 통해서 소개받은 일이 그렇게 됐다구?”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엮였더라고.”

정세원이 늘어놓고 간 선물들을 열어 보며 가람이 태연하게 거짓말했다. 어머니는 믿는 눈치였다. 딱히 의심할 이유도 없긴 하다.

“그런데 왜 집까지 찾아왔을까?”

“한 번 거절했거든. 그래도 계속 부탁한다고 하기에 생각 좀 해 본다고 했어.”

“왜?”

“알다시피, 지금 병원도 다니고 있고……. 아직 본격적으로 일을 열심히 할 준비가 되지는 않은 것 같아서.”

가람은 어머니가 아차 하는 얼굴로 당황하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뻔하다.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엄마가 거절할 걸 그랬다.”

“아냐. 하다 보면 적응되겠지. 해 보고 안 되면 그만둬도 되는 거고.”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지만 가람의 어머니는 꽤 오랫동안 시무룩한 눈치였다.

이런저런 말로 화제를 돌리려고 노력하던 가람은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아빠는 어디 갔어?”

“술 사러 갔겠지 뭐. 저거 봐.”

미연이 슬쩍 눈짓한 것은 정세원이 가져온 한우 세트였다. 그 옆에는 커다란 망고와 살구만 한 체리가 잘 포장된 과일 세트도 있다.

“안주로는 좀 과하지 않나?”

가람이 그렇게 말했지만 어머니는 어깨만 으쓱했다.

“네 아빠도 심란하겠지. 그나저나 이거 얼른 냉장고에 넣어야겠는데. 공간이 있을까 모르겠네.”

가람이 얼른 냉장고를 대신 열어 보았다. 아주 넉넉한 건 아니지만 고기 정도는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니는 약간 안도하며 선물을 뜯어보다가 갑자기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어머, 이 편지 좀 봐. 대통령이 쓴 거 아냐? 그러고 보니 이거 상자에 봉황 무늬도 있네.”

정말이었다. 선물 상자 사이에는 대통령의 친필로 작성된 ‘귀하의 따님인 한가람 양을 나라에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로 시작되는 정중한 편지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게 진짜 대통령이 쓴 편지인지 의심할 생각도 없이 가람의 어머니는 즉시 믿어 버렸다.

“세상에, 세상에. 어쩜 이런 일이 다 있니?”

편지를 흔들어 대는 자신의 어머니를 보며 가람은 멀지 않은 시기에 어머니의 친구분들이 모두 이 소식을 알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녀가 무슨 말로 이 일을 자랑하고 다닐지도 알 수 있었다. 이미 벌써부터 이 자리에서 자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딸이 정말 성공했어. 실력이 있다고 나라에서 이렇게 부탁도 하고, 선물을 바리바리 싸 줬네. 너무 자랑스러워서 어쩌지?”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가람은 뿌듯한 기분으로 기쁨을 만끽하는 어머니를 감상했다.

건조하고 차갑게 메마른 가슴에 온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이런 따듯함을 얼마나 오랫동안 꿈꿨는지.

“그나저나 얘, 아까 그 청년 능력 있다. 나이도 어려 보이던데 벌써 높은 자리에 있나 봐.”

“그런 것 같더라.”

가람은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과일 선물 세트를 뜯어 씻지도 않은 체리를 한 알 입에 물었다. 그걸 못마땅하게 보던 어머니가 얼른 일어나 체리를 씻는다.

농약이 얼마나 많이 묻어 있는데 이걸 씻지도 않고 어휴. 한바탕 잔소리를 하고 싶어 했지만, 그녀에게는 지금 그것보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잘생긴 것 같지 않았니?”

어땠더라. 미추의 구분만 한다면 정세원은 쾌활한 미남이었다. 그렇게나 많이 다치는데 뛰어난 재생 능력 덕분에 신체에 흉터도 없는 편이다.

“어, 그런 편인 것 같아.”

굳이 어머니의 말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가람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어질 어머니의 말을 예상했다면 결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너랑도 잘 어울리는 것 같던데.”

“엄마!”

미연은 흐흣 하고 음흉하고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선 어느새 가람과 정세원이 식을 올리고 신혼집을 차려 공무원 부부로 살면서 2세까지 낳아 잘 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어처구니없이 쳐다보던 가람은 결국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책이야. 정말!”

드물게 목소리를 높였지만 미연은 계속 가람을 놀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너도 잘생겼다며? 관심 있는 거 아니니?’ 하고 하나라도 건수를 잡기 위해 하이에나처럼 맴도는 미연과 투닥거리며 평화로운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마치 꿈같이 행복한 평범한 하루가.

* * *

비가 올 것 같았다.

제 속처럼 구름으로 꽉 막힌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람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장마철도 아닌데 어두운 하늘이 어쩐지 불길하다. 첫 출근인데 날씨 한번 끝내주네. 아무래도 조만간 쏟아질 것 같은데.

“비 올 것 같은데. 아, 우산은 안 챙겨도 돼요. 돌아올 때도 태워다 줄 테니까.”

정세원도 같은 생각인지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가람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이 왜 그렇게 어두워요?”

“오늘부터 출근인데 굳이 밝아야 할 이유라도 있나요?”

“아, 그건 그렇네.”

퉁명스러운 대꾸에도 속없는 사람처럼 마냥 웃어 버린 정세원이 차 문을 열어 주며 눈짓했다.

조수석이다. 차는 리무진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세단이었다. 국산.

가람은 정말 타고 싶지 않았지만 열린 문 안으로 몸을 적당히 올려놓았다.

자연스럽게 시동을 걸고 출발하자 창밖의 풍경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핸들을 잡은 정세원은 전방을 주시하다가도 때때로 가람을 흘끔거렸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무심하게 창밖을 바라보는 가람이 무척 신경 쓰였던 것이다.

하긴, 거의 강제로 집으로 밀고 들어가 강요하다시피 계약서를 받아 냈으니 가람의 심경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결국 차 안의 가라앉은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정세원이 먼저 입을 열었다.

“화났어요?”

오랜 침묵 동안 차는 시내를 벗어나 교외를 달리고 있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느라 시간도, 차 안의 적막도 신경 쓰지 못하고 있던 가람에게는 조금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왜요?”

“그게…….”

제 입으로 차마 말 못 하겠는지 정세원이 말끝을 흐렸다. 가람은 대신 말해 주기로 했다.

“제 의견을 존중할 것처럼 행동하다가 갑자기 자택으로 들이닥쳐서 제 주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압박으로 계약서에 서명을 받은 것이요?”

“음…….”

날카로운 대답에 정세원이 침음했다. 한참 변명거리를 찾던 그는 결국 눈치를 보며 불쌍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미안해요. 그게, 갑자기 상황이 무척 급박해져서. 제 상부에서도 압박이 내려왔거든요.”

“공무원은 공무원이네요.”

대답하면서 가람은 다시 혀를 찼다. 상부에서 압박이 내려왔다는 이야기는 이미 가람에 대해 아는 사람이 무척 많다는 소리였다.

기억을 지워 평범한 삶을 지키려는 생각은 이미 접어 버린 것이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 모르게 정부 기관에 제 이름이 퍼져 나간다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차피 서명하려고 했어요.”

“정말요!?”

정세원이 반색하며 좋아했다. 그리고 정말 잘 생각했다느니 이 직업이 대우가 좋은 편이라느니, 위험한 일은 없을 거라느니 하는 이야기를 줄줄이 쏟아 내었다.

그러더니 가람의 가라앉은 태도가 계약서 때문이 아니라고 결론 내린 모양이다. 계약서 때문이 아니면 뭘까?

잠시 생각하던 그는 가람이 새 직장에 대한 긴장 때문에 굳어 있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괜찮을 거예요.”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밑도 끝도 없는 위로에 가람은 정세원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는 그 시선을 앞에 둔 채로 말을 이었다.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 없어요. 다 착하고 가람 씨한테 무척 잘해 줄 테니까 긴장하지 마세요.”

“적이었던 사람도 있다면서요?”

“……이제는 동료니까요.”

정세원의 머릿속을 살짝 훑어보니 그는 진심이었다. 정말로 저렇게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가람은 그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뒤통수를 맞아도 천 번은 맞았을 성격인데. 운이 좋은가? 아니면, 저 바보 같은 말대로 적이었던 사람들이 진짜로 변심해서 여기에 붙은 건가?

가람이 정세원의 불가사의한 생존 능력을 고찰하는 동안 차는 어느새 속도를 줄여 어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산 아래 터널로 들어가 조명 앞에 서니 벽처럼 보이던 입구가 슥 위로 당겨 올라갔다.

그걸 보니 새삼 비밀 조직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좀 허술하긴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자 아주 좁은 통로가 나타났는데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로 사람 하나가 간신히 지나갈 것 같은 곳이었다. 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구조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야 해요.”

그렇게 말하는 정세원의 뒤를 따라 통로로 진입하자 가람은 그 통로 자체가 거대한 트랩이며 스캔 장치라는 것을 깨달았다.

온갖 장비들이 두 사람의 몸을 훑고 확인했다. 몸에 닿는 장치는 없었지만 피부가 따끔따끔할 만큼 많은 탐지를 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기분이 갑자기 더러워지는 걸 보니 머릿속을 읽는 종류의 결계 같은 것도 펼쳐져 있는 모양이다. 가람의 정신에 접근한 무언가가 정신 장벽에 데미지를 준 것이다.

이 통로를 지나는 동안 온갖 방법으로 스캔을 한 후 부적합자라는 판단이 내려지면 마찬가지로 통로에 장치된 무기에 공격당하게 된다.

그야말로 무방비한 상태로 학살되는 것이다. 게다가 시설이 산 안쪽에 있으니 산을 날려 버리지 않는 이상 이 통로를 이용해야 그들의 본부에 진입할 수 있었다.

예산이 없다더니 그래도 나름 방비는 철저히 하고 있었다.

약 50미터 가까이 되는 통로를 벗어나자 이제야 본부라고 부를 만한 광경이 나타났다.

여기저기 놓인 무기와 시설, 그리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정세원을 보며 인사해 왔던 것이다.

“어, 지부장님! 신입분도 오셨네. 전에 말했던 힐러?”

그렇게 말하며 다가온 사람은 가람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물이었다. 정세원이 싸우는 현장에 없었던 것 같다.

그가 다가오자 정세원은 무척 반가워하며 뒤로 살짝 물러나 가람을 앞으로 내세웠다.

“맞아. 인사해. 이쪽은 힐러로 합류할 가람 씨. 가람 씨 인사하세요, 아마 자주 볼 거예요. 방어 특화 능력자 우진이에요. 둘 다 후방 지원이니까 배울 게 많을 거예요.”

“강우진입니다.”

싹싹하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 강우진은 마치 정세원을 절반쯤 섞어 놓은 것 같았다.

외모보다는 분위기가. 형제인가 싶었는데 성이 다른 걸 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그나저나 이 사람이랑 같이 다녀야 한다고? 잘 안 맞을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떨떠름하게 손을 잡아 흔들자 강우진이 더욱 활짝 웃었다.

“와, 엄청 강하시네요.”

“네?”

딱히 손을 세게 잡지는 않았는데. 가람은 어리둥절해졌다. 하지만 곧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저는 손을 잡아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강한 능력을 가졌는지 얼추 파악 가능하거든요. 힐러라고 하셨죠? 염동력 능력자면 진짜 역대급이었을 것 같은데요.”

감탄하는 강우진에게 정세원이 코끝을 문지르며 자랑스럽게 덧붙였다.

“아직 미각성자야.”

“예? 미각성요? 아직 미각성인데 이 상태라고요?”

믿을 수 없는 눈으로 가람을 쳐다본 우진은 입을 딱 벌리고 경악하다가 약간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지부장님이 그렇게 매달린 이유를 알겠네요. 진짜 이 정도 힐러면 목 잘린 사람도 뇌 죽기 전에 붙여서 살려 낼 수 있는 수준인데요.”

호칭은 지부장인데 나오는 말은 무척 편안했다. 그러고 보니 정세원의 다른 동료들은 그를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지부장이라는 직책을 달고 있긴 하지만 꽤 수평적인 구조인 모양이다.

“그렇지? 그나저나 테스트 부서에 가서 우리 도착했다고 이야기 좀 해 줄래? 두 번 걸음하기 싫거든. 나는 바로 가람 씨 테스트실로 데려갈 테니까.”

“예이예이.”

강우진이 떠나자 정세원은 몹시 뿌듯하고 기쁜 얼굴로 가람을 돌아보았다.

자신의 안목을 알아봐 준 사람이 나타나자 무거운 분위기의 차 안에서 가라앉았던 기분이 확 살아난 것이다.

가람이 좀 까칠한 태도이긴 하지만 우진의 말대로다. 자신은 지구에서 가장 강력할지도 모르는 힐러를 팀원으로 영입했다.

이제 우리 애들 다쳐도 금방 낫고, 어지간하면 부상이나 사망 걱정 없이 싸울 수 있어!

앞으로의 길에 꽃잎이 뿌려지는 것 같아서 정세원은 그저 싱글벙글 웃었다.

“가실까요?”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정세원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가람은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본부 안으로 들어오니 정말로 발을 뺄 수 없어진 것 같아 자신은 무척 심란한데 이 상황에 몰아넣은 당사자가 웃고 있으니 마냥 속이 뒤틀렸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가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웃는 얼굴만으로 가람의 기분을 확확 가라앉게 만들던 정세원이 테스트실에 도착한 후에는 어디론가 사라졌단 것이다.

테스트가 끝나면 다시 오겠다는 말만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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