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날아온 유리 파편이 뺨을 파고들었다. 평소에도 집은 늘 난장판이지만, 오늘은 어쩐지 더하다. 평소보다 더 난장판이었다.
그 중심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눈이 뒤집어져 침을 흘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절반은 어머니에 대한 욕설인 것 같았다.
나는 그제야 기묘한 이질감을 깨달았다. 어머니가 없었다. 어머니의 몇 안 되는 물건들도, 그리고 형의 옷가지까지.
그러나 나의 물건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두 벌의 넝마로 만든 옷은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어머니는 어머니의 물건들을 모두 챙겼지만 그중에 나는 없었다. 너무나 명백하게 나는 버려진 것이다.
쓰레기 같은, 형편없는, 너저분한, 최악의, 인간 말종 같은 아버지와 함께 버려졌다.
어머니의 보드라웠던 뺨, 지쳐 있는 눈이었지만 그래도 사랑이 차올라 있던 눈. 어머니는 왜 나를 버린 걸까?
형보다 작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어 올 수 없다는 이유로? 그래도 구걸을 해서라도 내 한 몸을 책임질 수 있었는데. 어째서, 나를 버린 걸까.
감상 어린 충격에 빠져 있을 시간은 거의 없었다. 가혹한 현실의 손아귀에서 숨 막히는 비명을 지르기도 바빴으므로.
나는 어머니가 왜 나를 남겨 두고 떠났는지 곧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고깃덩이였던 것이다.
들개의 주의를 돌리게 만들 고깃덩이. 아버지의 폭력을 버티며 도망갈 시간을 벌어 줄 고깃덩이.
나의 삶은 그날부터 지옥이 되었다. 집에는 악마가 살았다. 죽지 못해 사는 나날이 이어지고 여린 몸은 부서질 것처럼 매일 폭력을 감내해야 했다.
어머니가 떠난 후의 아버지는 자신에게 남아 있던 모든 인간성을 포기한 것 같았다. 그 가혹한 나날 속에서 내가 도망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우리는 둘 다 버려졌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는 내가, 내게는 아버지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니까 언젠가는 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나의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매일 밤 부서져 나가는 희망이었지만 고작 다섯 살인 나는 아버지에게서 도망칠 수단이 없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나의 최선이었다. 그러나 두렵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래서 더 두려웠다.
아버지가 정말로 나를 죽일까 봐. 나는 정말로 간단히 죽을 수 있는 약한 아이였으므로.
커다랗고 증오스러운 그 손아귀가 뻗어 오면 나는 그저 덜덜 떨기 바빴다. 그 손아귀는 사정없이 나를 움켜쥐고 물어뜯었다.
체념과 슬픔 속에서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를 억울한 분노가 솟아올랐다.
증오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부터 나는 깊은 증오의 강에 빠져 있었다. 콧속으로 입 속으로 밀려든 그것들에 죽어 가고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친절하게 대해 주지 않을까. 그 작은 희망에 기대어 나는 아버지를 마음껏 미워할 수도 없었다.
그가 나를 거의 죽일 뻔했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작은 나에게는 오직 그밖에 없었으므로.
오직 그것이 희망이었으므로. 희망은 희망이라는 이유만으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여섯 살, 일곱 살이 되었다. 누군가가 좀 더 나은 여섯 살이 될 때 나는 좀 더 삐뚤어진 여섯 살이 되었다.
누군가가 사랑스럽게 미소 짓는 법을 배울 때, 나는 눈에 독기를 담는 법을 배웠다.
그들이 동네 어른들에게 인형과 키스를 선물 받을 때 나는 모진 대접에 눈물을 삼켜야 했다.
“너 같은 놈은 평생 안 돼. 네 아비를 보라고, 결국 똑같은 놈이 될걸?”
그것은 저주였다. 단어는 달랐지만 마을 주민들은 주문처럼 그 말을 내게 쏟아부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그 말을 거부했다. 아니야, 아니야. 나는 저런 인간이 되지 않을 거야.
내가 저런 작자가 될 리가 없어. 그때쯤, 아버지에 대한 나의 희망도 거의 사라져 가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도 나를 지켜 주지 않았다. 나는 고작 일곱 살이었는데도 세상은 내게 모질기만 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널브러진 아버지의 모습에서 다시 그 독한 말들을 떠올렸다. 몸을 떨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내 미래는 온통 검었다. 이미 끝이 나 버린 것처럼 전혀 보이지가 않았다. 저주로 점철된 그것은 죽음과 닮아 있었다.
저주의 말은 해가 갈수록 켜켜이 쌓여 갔다. 그것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언젠가부터 생명을 갖고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내 마음을 온통 뒤덮고 밝은 곳이라곤 없도록 점령한 그것은 때로는 복수심으로 때로는 살의로 형태를 바꿔 가며 나의 친우가 되어 주었다. 하나뿐인, 나의 유일한 친구.
누군가를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은 일곱 살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매일 밤 아버지와 마을 어른들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웠다.
그 증오는 내가 가질 수 없는 행복한 삶을 누리는 버릇없는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향했다.
그러나 증오심에 비해 육신은 너무나 미약했고, 나는 비참한 나날을 피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여덟 살이 되고 아홉 살이 되었다. 아홉 살이었지만 여전히 내 몸은 일곱 살배기의 몸이었고 내 지식은 여섯 살에 머물렀다.
언젠가 아버지 몰래 찾아와 나를 데려가 주지 않을까 하고 소망하던 어머니에 대한 기다림은 아버지에게서 얻은 폭력만큼의 증오가 되었다.
내 안에 가득한 것은 미움밖에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의 주변에는 그런 것밖에 없었으니, 내가 배울 것도 그런 것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사랑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 인간이었다. 세상에는 그런 인간도 있는 법이다.
애정과 사랑은 내게 있어 비현실적인 공상 속의 단어에 불과했다. 그런 단어를 좇는 어른들을 보며 나는 조소했던 것 같다. 어리석은, 있지도 않은 것을 좇다니.
아홉 살이 되자 나는 매일매일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손 아래에서 발발 떨며, 얻어 온 음식의 대부분을 빼앗길 때마다 늘 그것만을 생각했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다고, 아버지가 없는 어딘가로 떠나 버리고 싶다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고. 나의 과거와 모든 것을 지운 채로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망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나는 거짓말처럼 어딘가로 떠나왔다.
그것은 기적치고는 소박했지만 어떤 선물보다 나를 기쁘게 해 주었다. 평생 받아 본 적 없는 생일 선물이라는 것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런 게 있는지조차 잊었던 생일날, 말을 타지도 않고 늑대가 우글거리는 숲을 걸을 필요도 없이, 작은 빛의 구멍에 홀려 걷는 것만으로 나는 다른 세상으로 왔던 것이다.
처음에는 다른 세상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게는 그런 상상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잠깐 잠들어 꿈을 꾸는 사이 어머니가 옮겨 두기라도 했나 싶어 정신없이 골목을 뛰어다니며 어머니를 찾았다.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나의 외침은 어슬렁거리던 불량배 몇 명을 불러들였을 뿐이다.
생소한 국명에 생소한 사람들.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입에 빵은 넣어야 했기 때문에 나는 부지런히 일했다.
삶이 크게 바뀌지 않았기도 했고, 뒷배 없는 어린아이의 삶은 어디에서나 서러웠기 때문이다.
나는 그날 밤 골목에서 만난 불량배들의 하수인으로서 일하게 되었다.
삶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꽁꽁 언 손으로 온갖 허드렛일을 하고 조그마한 빵 덩이 하나를 얻는 것이나, 눈물을 음료 삼아 빵을 삼키는 일이나 정말로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간혹 좋은 것을 얻게 되면 불량배들이 나를 흠씬 두들겨 주고 빼앗아 가는 것까지 정말로 다를 바가 없었다.
다른 세상에 왔는데도 어떤 신비한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나는 용사가 되지도 않았고, 무언가 특별한 존재로서 군림하지도 못했다. 여전히 내 삶은 시궁쥐만도 못했고 여전히 더러운 회색이었다.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내 삶에 가득한 불합리함 속에서 내가 합리적인 일을 추구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나보다 작은 아이를 협박하고 갈취했으며, 간혹 여행자의 주머니에 손을 대기도 하고 가판대에서 먹음직스런 음식을 훔쳐 먹기도 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것은 매를 부르는 것들이었다. 욕설과 함께 커다란 발이 날아들어 나를 한바탕 걷어차면 나는 주춤주춤 몸을 추슬러 골목 안으로 숨어들었다.
어디서부터 어그러졌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삶은 나날이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스산한 바람과 함께 나를 찾아다니는 무서운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나는 다 부서진 상자 더미 뒤에 숨어서 그 목소리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훔쳤던 딸기파이는 손에 묻은 약간의 잼을 제외하고 모두 내 배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포만감과 불안함 속에서 울고 있었다. 맞는 것은 이골이 났다. 내가 우는 것은 매가 두려워서가 아니다.
그런데도 눈물은 흘렀다.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난 것은 어째서 흐르는지 모를 눈물을 닦던 중이었다.
눈물을 닦기 위해 들었던 손등 위에서 나는 문양이 빛나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처음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관심 두지 않았던 문양이다. 문양은 그저 존재하기만 했고 그것이 끝이었다.
아무 능력도 없는 그 문양은 땟국물 속에서 잊히기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문양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양이 아니라 문양 속의 바늘이 빛나고 있었다. 지금껏 없었던 일이다.
나는 쫓기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금빛으로 빛나는 바늘을 따라 걸었다.
다행히 나를 쫓던 목소리는 사라져 있었다. 찾아다니다 지쳐 포기한 모양이었다.
바늘이 가리키는 곳의 끝에서 나는 금빛의 구슬을 흡수했다. 허공에 떠 있는 경이로운 빛의 구슬.
아주 잠깐 손등의 문양이 변했지만 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교육받지 못한 나는 숫자를 읽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설령 숫자를 알았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무슨 뜻인지 몰랐을 것이다.
그 일은 천천히 내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그 일에 몰두하기에는 너무나 빨리 배가 고파졌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갔다. 훔치고 구걸하고 사기 치고 사기당하는 그 삶 속으로. 구질구질하고 쓰레기같이 냄새나는 나의 삶으로.
새로운 세상이었지만 새로운 사람은 되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고작 그런 인간이었다.
* * *
“크게 한탕 해 보자는 거야. 언제까지 푼돈이나 털래?”
그 푼돈도 제대로 털지 못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분통 터지는 말이었다. 나는 빵을 씹으며 음흉한 얼굴로 제안하는 폭커를 바라보았다.
내가 씹고 있는 빵은 그가 선물이라며 내민 것이다. 말쑥한 옷차림에 깔끔한 얼굴. 제법 실력 좋은 도둑인 그는 골목에서도 유명한 부자였다. 밑바닥에서만의 이야기지만.
“상상해 봐. 제대로 된 집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으며 사는 삶을. 크게 한탕 해서 그대로 다른 도시로 도망치면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새 인생인 거지.”
심드렁한 내 표정에 폭커가 속삭였다. 새 인생. 그 말이 나를 잡아끌었다.
구질구질한 나의 삶은 영원히 그 구질구질함을 유지할 것 같았고, 그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다.
폭커의 제안이 위험한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만큼 달콤하기도 했다.
“자세히 말해 봐.”
나는 스스로 내가 꾐에 빠지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꾐이 그러하듯 자각한다고 멈출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폭커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히죽 웃으며 말했다.
“왕자님의 주머니를 터는 거야.”
무시무시한 발언에 나는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은밀한 장소를 선택한 탓에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왕자라니, 이 나라가 소국이긴 하지만 그래도 왕자는 왕자다.
“뭘 그렇게 놀라는 거야? 촌스럽긴.”
한껏 나를 애송이 취급한 폭커는 목소리를 조금 낮추었다. 자, 들어 봐. 시간이 없으니 작전을 말해 줄게 하고 시작된 이야기는 작전이라고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조잡한 것이었다.
그러나 고작 열두 살에 불과한 나를 홀리기에는 충분했다.
믿을 만한 정보통에게서 기사와 왕자가 단둘이 시찰을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한다. 그 정보통은 아마도 어딘가의 하녀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 세계는 하나의 제국과 여러 개의 왕국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내가 빌어먹고 있는 장소는 그 왕국 중 하나다.
우리가 노리는 인물은 3왕자였다. 그가 시장에 놀러 나오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일상적인 외출은 매우 단출하게 진행되었다.
기사도 한 명만 딸려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누군가가 기사의 이목을 끈다면 그 틈에 잽싸게 그 작고 귀한 주머니를 저가 털어 보이겠다는 것이 폭커의 작전이었다.
“그래서 왕자가 언제 나오는데?”
“지금.”
짧게 말한 폭커는 자리에서 일어나 뛰어나갔다. 나는 엉겁결에 그를 따라 뛰었다.
휘말리고 있는 기분 속에서 나는 그가 다른 마음을 먹고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작전은 신속하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시장 바닥을 돌아다니는 왕자를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옷의 모양새는 흔한 것이었지만 천의 재질만은 속일 수 없다. 지나는 행인 대부분은 그가 귀한 신분의 사람임을 알고 있는 듯했다.
나와 폭커는 야채 상자 뒤에 숨어서 주머니의 위치를 살폈다. 폭커의 말대로 기사는 정말로 한 명뿐이다. 그나마도 연륜이 있다기보다 젊어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표정 없는 얼굴로 왕자가 길거리에 앉아 구운 고기 꼬치를 사 먹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기사에게 가서 부딪쳐. 아프다고 뒹굴면 널 쳐다볼 거야. 그사이에 내가 주머니를 갖고 도망칠게.”
폭커가 긴장한 얼굴로 소곤거렸다. 나는 기사와 왕자를 바라보고 있느라 조금 늦게 반응했다.
신경질적으로 내 어깨를 흔든 폭커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 등을 툭 쳤다.
“가.”
나는 반사적으로 뛰쳐나가 기사와 호되게 부딪혔다. 그러나 나가떨어진 것은 나뿐이었다.
바닥에 나뒹구는 나의 뒷덜미에 미동도 없는 기사의 시선이 서늘하게 내리꽂힌다.
직감적으로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시선 한 귀퉁이에 웃음을 참는 폭커가 보였다. 악질적인 장난에 말려든 것이다.
야채 상자 뒤에서 혀를 내밀고 도망치는 폭커를 보며 이를 갈았다. 그러나 놈을 쫓을 수는 없다.
금방이라도 기사의 칼날이 목덜미를 파고들 것 같았다. 뼈마디에 차가운 바람이 부는 기분에 나는 한껏 움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