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뒤늦게 달려온 경비병이 개를 흠씬 두들기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의식을 잃었다. 얼핏 웃었던 것 같다.
* * *
3왕자의 바람대로 나는 죽지 않았다. 아마 향후 몇 년간 팔은 제 구실을 하기 힘들겠지만 목숨은 건졌다.
왕자는 반병신이 되어 살아난 나를 붙잡고 엉엉 울었다. 내가 누워 있는 침대맡에는 1왕자와 데파르가 머무르고 있었다.
데파르는 언제나와 같은 삭막한 표정이었지만 나는 그가 안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저 오랜만에 본 그가 반가워서 나는 밝게 웃었다.
“뭘 그렇게 웃는 거야. 팔을 못 쓸지도 모르는데!”
왁왁거리는 3왕자를 지그시 눌러 쓰다듬으며 나는 다시 웃었다.
“이쪽 팔은 성하지 않습니까. 전하.”
나의 태연한 말에 3왕자는 다시 엉엉 울었다. 온몸이 아팠지만 나는 전에 없이 부드러운 기분이었다.
진리를 깨달은 현자가 된 것처럼 평화로웠다. 검은 짐승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의 마음은 햇빛이 비치는 리넨 커튼같이 환한 빛깔이었다.
사실 소리 내어 웃고 싶었다. 결국 그런 인간이 될 거라며 나를 시궁창 속으로 쑤셔 넣었던 자들에게 외치고 싶었다.
봐, 보라고! 내가 사람을 지켰다. 나도 지킬 것이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소중한 것을 가지고 지키면서 살아가는 인간이 되었단 말이다.
네놈들이 말했던 술주정뱅이 폭력배 따위는 되지 않았어. 나는 왕자를 지켰다. 아이를 지켰다고.
기쁜 것과는 별개로 죽음은 두려운 것이었다. 왕자에게는 태연한 척 굴었지만 나는 매일 밤 커다란 개 이빨에 물려 삼켜지는 꿈을 꾸었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나면 언제나 말랑한 뺨을 침댓가에 붙이고 잠든 왕자가 상냥한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보다 두 살이나 어린 꼬맹이 주제에.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가로 그 온도가 흘러내렸다. 꿈이 두려워 우는 척했지만 사실 그런 것이 아니었다. 참을 수 없이 안도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뜻밖의 제안이 들어온 것은 내 팔이 거의 아물어 갈 무렵이었다. 입양되어 왕실의 일원이 되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물론 1왕자가 계승권을 공고히 하고 있는 지금 입양된다고 해도 내가 왕위를 잇거나 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혹여 반역을 꾀한다 하더라도 평민인 데다 무식한 나를 밀어줄 세력은 아무 데도 없었다. 그러니 이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적으로 들어온 제안이었다.
왕자의 목숨을 구한 데다 왕자가 너무나 잘 따르니 심복을 하나 두어도 좋겠다 여겨진 모양이었다.
아마도 3왕자의 파괴적인 어리광이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어쨌거나 나는 더럭 겁이 났다. 갑자기 너무 큰 선물 보따리를 받게 된 기분이었다.
너무나 크니 안에 괴물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받아들이기 머뭇거려졌다.
그러나 나는 중요한 것을 착각하고 있었다. 결정권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데파르는 그 제의를 수락했다.
그 후로도 일사천리였다. 보기에도 찬란한 왕궁 안에 내 궁이 마련되고 4왕자라는 직함까지 얻게 되었다.
나는 꿈꾸는 것 같은 기분으로 그 모든 일들을 지켜보았다.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모든 일의 끝에 나는 4왕자로서 완성되었다.
입양은 내부적인 말이고, 대외적으로는 잃었던 4왕자를 찾았다고 알려지게 되었다.
다시없을 행복한 시간이었다. 삶이 그렇게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몰랐다. 불행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행복이 달콤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내팽개쳐질 줄도 모르고 행복의 동아줄을 붙잡고 한없이 높은 곳으로 올랐다. 아름다고 따듯한 빛나는 그곳으로 말이다.
* * *
사실 평화에 안주하는 작은 왕국의 운명이란 너무나 뻔한 것이다. 불행의 서막은 화려하게 시작되었다.
대륙은 현재 태평성대였다. 그러나 제국은 남아 있는 왕국을 모두 집어삼키고 싶어진 모양이었다.
나라 간에 오가던 공기가 차갑고 날카롭게 변해 갈 무렵 사건이 터졌다. 제국에 유학 가 있던 2왕자가 죽었다.
2왕자의 죽음은 짧은 서신 한 통에 담겨 있었다. 왕비는 편지를 받고 혼절했고 왕은 어금니를 사리물었다.
정세에 무지한 나는 그저 구름처럼 일어나는 불안감에 3왕자를 더욱 부둥켜안았다.
3왕자는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1왕자는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주먹을 쥐었다.
2왕자의 죽음은 선전 포고였다.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강자들이 제 힘을 휘두르기 직전 내비치는 잔인함은 특유의 냄새를 갖고 있다.
나는 삶을 파고 들어오는 그 냄새에 전율했다. 잊고 있던, 나의 원래 삶이 떠올랐다. 4왕자가 되기 전의 삶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치 예정되어 있던 것처럼 1왕자가 죽었다. 암살이었다. 아름다운 청년은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했다.
나는 겁에 질렸다. 다음이 누구인지는 너무나 명확했다. 제국에서 보낸 암살자는 왕실 식구들을 차례대로 없애고 있었다. 3왕자가 위험했다. 나의 작은 꼬맹이가 위험했다.
다행히도 내 예상과 달리 다음은 왕비였다. 독살당한 그녀는 한 줌 핏물이 되어 그대로 녹아 죽었다고 한다.
3왕자가 아니라고 안도한 것이 원인이었을까. 며칠 후 나는 3왕자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말은 실종이었지만 사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암살이었다. 제국에 의한.
세 왕자가 다 죽었다. 왕비 또한 죽고 말았다. 남아 있는 유일한 왕실 혈통은 왕뿐이었다. 제국은 암살자의 칼날을 혓바닥 삼아 왕을 협박하고 있었다.
왕을 살려 두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었다. 공식적으로 그 머리를 잘라야 정당하게 왕국을 흡수하는 것이니까.
아, 아니다. 대외적으로는 나도 있었다. 암살자의 칼날은 나를 향해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국정에 멍청한 꼭두각시가 필요할지도 모르니 나는 살려 둘지도.
왕궁에는 왕과 가짜 왕자인 나만 남았다. 꼬맹이를 보낸 슬픔도 잠시, 두려워졌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이렇게 무력하게 죽고 싶지 않았다. 끝까지 살아남고 싶었다.
너무나 쉽게 죽어 버린 왕자들 때문에 나의 삶에 대한 집착은 무시무시하게 강해져 있었다.
나를 달래 주던 3왕자도 사라지고 나자 사냥개의 악몽이 나를 덮쳤다. 뱃속에서 검은 짐승이 킬킬 웃는다.
나는 두려움 속에서 빌었다. 누군가 나를 도와준다면, 제발. 데파르!
그러나 나의 도움 요청에 응답한 것은 데파르가 아니라 내 왼손 손등이었다.
길거리에서 벗어난 후로 내내 잊고 있던 손등의 문양은 선명하게 200의 숫자를 떠올렸다.
나는 그것이 가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500을 갖고 있었다. 무엇이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500의 금빛 그것을 갖고 있었다.
나는 200으로 불사를 구입하고 나머지 300으로 마법을 손에 넣었다. 마법은 내 오랜 소원이었다.
아니, 강함은 나의 오랜 소원이었다. 물론 검도 좋지만 마법에 비할 바가 아니다. 신비롭고 강력한 마법은 오래도록 선망의 대상이었다.
200으로 불사를 구입했으니 300으로는 얼마나 강한 마법을 살 수 있을지도 궁금했다. 솔직히, 기대되었다.
손에 넣은 마법은 단숨에 산을 날려 버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강력한 수준이었다. 불똥 하나 튀기는 것이 전부였던 한심한 마법사는 이제 없다.
나는 내 마법에 하얗게 불타오른 아름드리나무 하나를 올려다보았다. 사용한 후 많이 지치긴 했지만 그래도 만족할 수준이다.
설마 했는데 정말로 마법을 얻었다. 그렇다면 불사의 소원 또한 이루어졌을 것이다.
나는 시험 삼아 단검으로 손바닥을 얕게 그어 보았다. 상처는 생긴 속도만큼이나 순식간에 아물었다. 불사. 나는 불사의 마법사가 된 것이다. 이렇게나 간단하게!
분명 마법보다 불사가 더 대단한 것인데도 나는 불사의 금액이 마법보다 저렴한 것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아는 게 있어야 궁금증도 생기는 법이다. 아는 게 없으니 그저 그러려니 하고 말 수밖에.
마법이 그렇게 엄청난 수준이 아닌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래도 불사의 육체는 나의 불안을 상당히 덜어 주었다.
그렇다곤 해도 언제 암살자가 들이닥칠지 모를 현실이 바뀐 것은 아니라 나는 늘 아슬아슬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특히 자고 있는 사이 머리가 달아나거나 할까 봐 매우 초조했다. 만약 머리가 떨어져 나간 것을 누가 목격하기라도 한다면 다시 살아났을 때 굉장히 곤란해질 것이다. 살아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고 해도.
그러나 암살자의 방문은 없었다. 칼날 같은 시간은 지루하게 흘렀다.
보통 왕자들은 수족 같은 신하를 거느리고 있기 마련이지만 무늬만 왕자인 나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덕분에 나는 궁 밖의 사정에 매우 무지했다.
그저 왕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갈 때 그가 점점 수척해지고 있는 것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이 앓아누웠다. 그는 무슨 생각인지 나를 대리로 내세웠다.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나를.
“국민들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 왕께서 편찮으시더라도 일단 대외적으로는 왕자인 네가 있으니 국민들이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데파르가 그렇게 설명했다. 희망. 희망 중요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태위태한 나라에 위태위태한 왕보다는 그래도 후계가 번듯하게 있는 것이 보기에도 좋겠지.
사실 꼭두각시에 가까운 왕이었기 때문에 내가 할 것은 없었다. 나는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 속에는 약간의 계산도 깔려 있었다.
임시라고 해도 왕이 되면 일단은 암살자가 덤비지 못할 것이다. 불사를 구입했다곤 하지만 어디까지 불사인지 알 수 없었다.
머리가 잘려도 살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단순히 상처가 빨리 낫는 수준이라면 암살의 위험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없을 것이다.
그 외에도 좋은 점은 있었다. 데파르가 언제나 나와 함께했던 것이다. 일단 그는 왕족을 호위하는 왕실 기사였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내가 왕좌에 앉아 있고 그가 내 뒤에 시립해 있는 식으로 예전과는 구도가 많이 달랐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했다.
왕자가 된 것보다, 왕좌에 앉은 것보다 데파르와 함께 있다는 점이 더 기뻤다.
왕좌는 내게 어색했다. 왕의 옷도 내게는 어색했다. 왕이 되던 날도 얼마나 어색했는지 모른다.
허둥대는 나에게 한심하다는 시선을 줄 법도 하건만 데파르는 무섭도록 표정 없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괜히 들떠 헤헤거리던 나는 그 차가운 얼굴에 묘한 불안감이 드는 것을 억눌렀다.
임시라고는 해도 골목길의 모르드레드가 왕이 되었는데, 대단한 출세인데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어쨌거나 왕이 되었는데도 나는 정세에 무지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꼭두각시 왕이었으므로.
당연하게도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나는 왕좌에 앉아 최대한 번듯한 모습으로 굳건함을 과시했다.
그것이 내 임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속이 타들어 가 숯처럼 새카매진 지 오래였다.
내가 정치나 현재 돌아가는 판도에 대해 판단할 능력이 없다고 해도 평화에 안주해 아둔해진 머리와 달리 내 본능은 여전히 날카로웠기 때문이다.
상황이 결코 내게 좋은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음을 나는 일찌감치부터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그 날이 왔다. 크고 부드러운 비단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갑자기 밖이 환하게 불타올랐다.
테라스로 나가 밖을 내다본 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바닥에 주저앉았다. 믿을 수 없게도 밖에는 제국군이 가득했다.
수도 안에 꽉 들어찬 그것들은 고요하고 불길하게 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겁에 질려 침전을 뛰쳐나갔다. 아직 익숙지 않은 왕의 궁을 달려 정신없이 데파르를 불렀다.
너무나 두려워 텅 빈 성의 복도가 이상하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평소라면 시녀가 두셋은 있고 경비도 잔뜩 있었을 텐데 마치 빈 성처럼 고요했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유독 성이 한산했던 것 같다. 그런 것 따위 상관없고, 데파르. 데파르는!
악몽 같은 헤맴 끝에 마침내 데파르를 찾아내었다. 그는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이 선량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어전의 왕좌 앞이었다. 나는 달달 떨리는 손을 추스르며 허겁지겁 그에게 달려갔다. 그는 왕좌 옆에 서서 내내 나를 기다려 주었다.
“데, 데파르. 밖에 제국군이…….”
묻고 싶은 것은 산더미 같았지만 패닉에 빠진 나는 얼간이처럼 더듬더듬 질문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래. 기습이다.”
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혹시 그는 오늘 일어난 이 일을 미리 알고 있었던 걸까?
“기습이라니, 성에 사람이 왜 이렇게 없습니까? 폐하는요?”
나는 의혹을 내리누르며 전 왕, 병상에 드러누운 진짜 왕의 행방을 질문했다.
“폐하는 떠나셨다.”
담담한 말에 의혹이 실체를 얻는다. 기묘한 기시감이 찾아왔다. 나를 아버지에게 버리고 간 어머니와 데파르가 순간적으로 겹쳐졌다.
말도 안 된다. 상황적인 특성 때문이겠지. 내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던 그녀와 나를 밑바닥에서 건져 내어 준 데파르가 어찌 같을 수 있단 말인가.
“떠나시다니요?”
“제국군의 기습을 피해 안전한 곳으로 떠나셨다.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서지.”
상냥한 대답이었으나 나는 독사 굴에 빠진 것 같은 절망을 느꼈다. 입술이 떨려 제대로 말을 빚어낼 수 없었다.
설마, 내가 왕이 된 이유는, 그렇게나 급박하게 나를 왕으로 내세운 이유는.
“저는 미끼였습니까?”
올가미가 걸린 것처럼 목이 조여 와 나는 간신히 질문했다. 등을 켜지 않아 어두운 왕좌에서는 데파르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선량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를 주워 왔을 때의 그 선량한 눈. 모든 것을 바치고 싶게 만들었던, 그 눈.
“그래.”
상냥하고 따스한 시간들. 말도 안 되게 커다란 선물들. 지금까지 내가 받았던 모든 꿈결 같은 대접들이 그 대답에 산산조각 났다.
폭풍 속의 쪽배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끌어안고 그에게 질문했다.
아니다. 아닐 거야. 그는 나를 기다려 줬잖아. 나를 데려가려고 온 거야.
“제가 미끼라면 왜, 왜 저를 기다린 거죠? 저를 데려가려는 거죠? 저를 구해 주시려는 거죠?”
턱을 타고 무언가 흐른다 싶었더니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애원하는 나를 향해 데파르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칼날로 자른 듯이 단호한 부정이었다. 그의 이어지는 말이 못처럼 귀에 박혔다.
“아니. 너는 여기서 패배를 기다려야 한다.”
패배. 묵직한 그 말은 어떤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 제국군의 칼날은 왕성을 두르고 있다.
그는 내가 그 칼날에 죽기를 바라고 있었다. 기사답게 절도 있는 언행이었으나 나는 기사가 아니었다.
겁에 질려 발발 떨며 매달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나, 나는 무서워요. 죽고 싶지 않아요. 데파르. 제발.”
그의 단단한 시선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죽는다는 것보다 그가 나를 죽게 한다는 점이 더 서러웠다.
죽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나를 데려가 주었으면 했다.
그러나 내가 반불사의 육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아마도 죽음이 아닐 것이다.
“살고 싶나?”
“네! 살고 싶어요. 죽고 싶지 않아요. 무서워요, 데파르. 제발 저를 버리지 마세요.”
나는 너무나 기뻐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열렬히 외쳤다. 엉망일 것이 분명한 내 얼굴을 비스듬히 내려다보던 그는 담담하게 대안을 제시했다.
이 상황에서도 단정하기 짝이 없는 그 얼굴을 나는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희망을 그러쥐며.
“방법이 있다. 네 대신 내가 왕의 옷을 입고 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