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피와 진흙으로 얼룩진 옷, 꼬질꼬질한 지친 얼굴. 팔다리 대신 얼굴로 걸어 다닌 모양인지 몰골이 말이 아니다.
측은한 마음이 들어 가장 잘 구워진 용의 고기를 권하자 석상처럼 굳어 있던 가람이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눈으로 노려봐 왔다.
“모르드레드.”
아무리 생각해도 이렇게까지 적대적인 대우를 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배가 고파서 날카로운 건가? 하긴, 뭘 제대로 먹은 꼴이 아니긴 하군.
“이거 무서운데? 앉아. 누가 보면 원수라도 진 줄 알겠네.”
가장 따듯한 자리를 권하며 용의 살점을 발라 건네자 가람이 얼떨떨하게 받아 들었다.
“누가 쫓기고 있기에 구해 줬지. 그런데 그게 네 동료라니, 대단한 우연이지? 이게 운명인가? 그런데 왜 앉아만 있어? 먹어, 독 같은 건 다 제거했으니까. 몸에 좋아.”
달래듯 말하자 가람이 한결 누그러진 기색으로 고기를 씹기 시작했다. 역시 배가 고팠던 것이로군.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마법사와 사냥꾼은 아마 가람의 동행인 모양이었다. 가람은 고기를 뜯으면서도 두 사람을 연신 흘긋거렸다.
어디 다친 곳은 없나, 멀쩡한가 하고 살피는 시선이 마치 아기 새를 보듬는 어미 새가 따로 없다. 별로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니군.
두 애송이가 용에 쫓기든 말든 알 바 아니고, 구한 것도 얼떨결에 일어난 일이지만 운명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딱히 찾으려고 들지도 않았는데 이렇게나 마주치게 된 것을 보면 가람과 나 사이에는 어떤 특별한 인연의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생각해 보면 정말로 이상한 감정이다. 가람의 상태가 꽤 괜찮아 보이면 음험한 질투가 피어올라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증오스럽지만, 또 이렇게 엉망인 꼴을 보면 먹을 것을 챙겨 주게 된다. 이렇게 답지 않게 수다스러워지는 것도 나름의 배려였다.
배려라니. 이것만큼 나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있을까. 이제 웃음도 안 나온다. 나는 대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건가.
“괜찮아요?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예요?”
배가 차자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오는지 가람이 동행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와 가람의 관계를 정의하지 못해 혼란스러워하던 마법사가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바위틈으로 들어가 숨었는데 다라즈녹이 브레스를 쓰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 남자가 놀랄 만큼 강한 마법으로 다라즈녹의 목을 그대로 베어 냈습니다. 다라즈녹도 마법으로 저항하려고 했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어요.”
그 대답이 가람을 안심시킨 모양이다. 그녀는 마법사와 사냥꾼이 챙겨 온 말들까지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갑자기 긴장이 풀린 듯 한결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이게 이상한 것이다. 저렇게 안심한 얼굴을 보면 또 그게 그렇게 못마땅할 수가 없다.
“패스를 찾으러 온 건가요? 가져요. 가져가세요.”
가람이 용을 턱짓하며 선심 쓰듯 말했다. 아니지, 아니야. 네가 지금 여기서 이러면 안 되지. 두 눈 가득한 적대감에 나는 가소로운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패스? 하하, 이거 잘 익었네. 먹어.”
“무슨 속셈이죠?”
“속셈이라니? 그런 질문을 하는 이유가 뭐야?”
“당연히 당신이라면 무슨 꿍꿍이를 갖고 있을 테니까요.”
말뜻을 못 알아듣는군. 정말로 귀여울 정도로 멍청한 여자다.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내가 무슨 속셈을 갖고 있으면 네가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으냐고.”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다.
하잘것없는 짐승조차 약자의 입장을 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한다고 해도 그중에 가람이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당장 그 몸을 갈가리 찢어발겨도, 동료라고 챙기고 있는 것들의 뼈를 산 채로 꺼낸다고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텐데.
하물며 자신에게 친절한 유일한 동족을 이렇게 차갑게 대하는 것은 정말로 멍청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내 말 한마디에 자신을 까맣게 잊게 될 수도 있는 저것들은 그렇게나 싸고도는 주제에.
“가람? 아는 사람이 아닙니까?”
“전에, 그냥 잠깐 알던 사람이에요.”
정말 마음에 안 드는군. 뭐, 좋아. 섭섭하긴 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 실제로 오래 알아 온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말이야. 우리는 오래 알아 갈 사이잖아? 어떤 것보다 긴 시간 동안.
“이런, 이거 섭섭한데? 우리 사이가 겨우 그거였어?”
“우리 사이가 뭔데요.”
퉁명스럽게 받아치는 대답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소 지었다.
“나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생각이 좀 바뀌었어.”
영원을 홀로 살아가는 것보다 이 애송이를 쓸 만하게 바꾸어 함께 다니는 것은 어떨까.
이미 성격이 굳어진 내가 바뀌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어린애 하나 물들이는 것은 그에 비해 쉬운 일일 것이다.
고독에 지친 나에게는 꽤 매력적인 생각이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예요? 이번 패스는 내 동료들을 살려 줬으니까 보답으로 그냥 줄게요. 갖고 가요. 가시라고요.”
준다니. 내가 지금 주지 않아서 패스를 가져가지 못한다고 생각하기라도 하는 건가.
그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이미 패스 따위에는 흥미가 없다.
“패스, 패스. 그놈의 패스 몇 십 정도는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뭐 원한다면 가져. 내 것도.”
용의 배를 주욱 갈라내자 세 명의 애송이가 기겁하고 벌떡 일어났다. 나는 그 심약한 모습에 혀를 찼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용의 뱃가죽을 말아 올려 가람이 용의 내장 속을 헤집고 다니지 않아도 되도록 배려해 주었다.
그런 지저분한 꼬락서니를 보는 것은 사양이다. 지금도 충분히 더러우니까.
갈라진 배 사이로 두 개의 패스가 떠올랐다.
“대단한 우연이지 않아? 이렇게 한 장소에 두 패스파인더의 패스가 있다니.”
내가 킬킬 웃자 가람의 턱이 단단하게 굳어졌다. 시선이 패스를 떠날 줄을 모른다.
“마치 운명처럼. 뭐, 저 패스는 가져. 네 꼴을 보니 동정심이 다 나는군.”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가람은 눈치도 보지 않고 패스로 달려들었다.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배 속에 손을 집어넣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그렇게나 패스에 굶주린 것인가.
천박하고 게걸스럽다. 풋내 나는 애송이 주제에 패스를 향한 욕심만은 대단하군. 무례한 것은, 그래. 어차피 어린것들이 무례한 것이 하루 이틀 일인가.
“게걸스럽기도 하지.”
“패스는, 고마워요.”
새침한 척 대답하는 것이 아주 능청스럽다. 어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대답도 할 줄 알았군.
그동안 아주 발전이 없지는 않았던 건가. 나쁘지 않다. 어쩐지 기분이 풀어지는 느낌이라 나는 부드럽게 제안했다.
“그럼그럼. 그래서 말인데, 정말 굉장한 우연이지 않아? 내가 계속 생각해 봤는데, 패스파인더가 된 것만으로 기적이 끝난 게 아니야. 널 만난 게 내 두 번째 기적이지. 한 차원에 두 패스파인더가 이렇게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 응? 그때부터 나는 계속 생각했지. 진짜야, 너를 계속 생각했다고. 그리고 이렇게 딱 같은 자리에 두 패스가 함께 있는 거야. 이건 운명이라고 생각하는데.”
진짜다. 진짜로 떠나 있는 내내 나는 종종 가람을 떠올렸다. 그녀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은 것이 그 증거다.
내가 패스파인더가 된 것, 그녀가 각성 후 처음 만난 패스파인더가 나인 것은 별것 아닌 우연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로 굉장한 것이다. 이쯤 되면 우연이라고 할 수도 없다. 정말로, 운명이라는 것이 이끌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
“별거 아냐. 잘 좀 지내 보자는 거지.”
“당신은 이미 한 번 날 배신했어요. 죽으라고까지 했다고요. 어떻게 그런 말을 또 꺼낼 수 있죠?”
“그건 왜 또 꺼내는 거야? 계산 끝난 거 아니었어?”
따지는 말을 듣고 있으니 갑자기 굉장히 귀찮아졌다.
어디 구덩이에 처박아 놓고 사흘 밤낮 도륙해서 미쳐 버리게 만든 다음 시간을 들여 세뇌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유혹이 들었다. 하지만 세뇌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오랫동안 마법을 사용해 사람을 조종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내가 그런 섬세한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아, 패스파인더에 관한 소원을 빌 수 없는 것은 정말로 귀찮기 짝이 없다.
만약 가능하다면 이 패스파인더의 정신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도록 소원을 빌었을 거다.
아닌가. 오히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이 녀석이 특별한 건가.
특별이라니. 배려에 이어서 아주 갈 때까지 가는 기분이다. 소름 끼치는군.
“좋아요. 저는 몰랐고, 당신을 진심으로 믿고 따랐지만 당신에게는 그냥 패스 장사나 다름없었다면 믿은 제가 바보라고 하고 넘어가도록 하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기에 빠진 사람을 그렇게 조롱하는 인간과 동료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이를 악문 가람이 떨리는 목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 씹어뱉듯이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중에 웃긴 말이 있었다. 패스 장사라니? 나로 인해 패스를 이득 보았으면 이득 봤지 손해 보지는 않았을 텐데.
처음에 주어지는 패스. 물론 중요하지. 하지만 내가 알려 준 지식들은 그것보다 훨씬 값진 것들이다.
내가 알려 주지 않았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 낭비를 했을까. 그리고 나는 더 악질적으로 그녀를 괴롭힐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호감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이런 태도라니.
그녀에게 이런 친절을 베푼 것은 순전히 패스파인더들끼리 가지는 동족애가 바탕이다. 그녀도 나에게 동족애가 샘솟지 않을 리가 없는데 정말로 이상하다.
내가 블리스에게 끌렸던 일을 생각하면 솔직히 내 뒤만 졸졸 따라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하지만 가람은 두 애송이를 배경으로 당당하게 눈을 치켜뜨고 나에게 맞서고 있다.
두 애송이는 어색하게 서서 가람의 옷깃이나 만지작거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음, 그렇구나.”
깨닫는 바가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가지는 동족애가 각별한 것에 비해 그녀가 내게 가지는 동족애를 각별히 여기지 않는 이유.
블리스를 마주했던 나와 나를 마주하고 있는 가람의 차이.
“그동안 다른 인간들이 생겨서 그런 거군? 저런 것들 따위에 위안이라도 받고 있는 거야?”
질문이었지만 사실 확신이었다. 블리스를 만났을 때 나는 오랫동안 혼자였다.
하지만 이 녀석은 혼자가 아니다. 함께 다니는 인간이 있는 것이다. 그 속이야 어떻든 일단 껍데기는 비슷하니까 그럭저럭 위안이 되었겠지.
그래 봤자 인형 놀이에 불과하다.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놈들이 죽고 나면 홀로 되살아나 깨닫겠지.
그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좋은 방법일지 모르지만, 역시 생리적인 혐오를 버릴 수가 없다. 겨우 장난감 따위에 홀려 휘둘리는 것이 내 동족이라니.
불쾌하다. 말할 수 없을 만큼 불쾌했다. 가장 불쾌한 것은 이 애송이를 만날 때마다 나에게는 납득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어마어마하게 충격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 애송이는 전혀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이건 정말로 불공평하다.
그래, 좋아. 그렇다면 나도 생각이 있다.
저 하루살이들에게서 위안을 얻는다면, 하루살이들과 어울릴 수 없도록 만들어 주면 되지. 너만 나를 변화시키는 건 내가 너무 억울하잖아. 안 그래?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너무 흥분하지 마. 건강에 안 좋아.”
두 놈을 무릎 꿇게 했더니 눈에 새파란 독기를 머금고 나를 노려봐 온다. 그런 시선을 받을수록 잔인한 장난기가 치밀어 올라 참기 힘들었다.
“내 동료들에게 무슨 짓이라도 하면…….”
동료? 하, 동료? 100년도 못 살 이것들이 네 동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너는 영원을 사는데.
어찌나 멍청한지 말이 안 나올 정도다. 그래, 얼마나 하찮은지 직접 체험해 보면 알겠지.
“이야, 이거 무서운데? 뭐, 나는 별짓 안 할 거야. 정확히는 네가 할 거지.”
나는 일부러 빙글빙글 웃으며 가람을 도발했다.
“뭐?”
“내가 잘못 생각했어. 너무 물렀던 거지. 지금 너는 데리고 다닐 수 없어. 속이 답답할 정도거든. 어느 정도 어울려야지.”
그래. 이깟 것들을 동료라고 감싸며 내게 경고할 정도로 멍청하니, 데리고 다니다가는 화를 참지 못하고 몇 번이나 죽여 버릴지도 모른다.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불쾌함 속에서도 나는 꽤 즐거운 기분이었다.
이렇게나 감정적으로 변해 본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그 감정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일단 감정 자체가 주는 촉촉한 느낌이 즐거웠다.
늘 이런 식이다. 가람을 보고 있으면 짜증과 증오가 치밀어 오르지만 그만큼 감정적인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느낀다.
그녀에게 본능적인 동족애가 따스하게 피어오르지만 멍청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 경멸에 가까운 불쾌감에 휩싸이는 것이다.
“그럼 데리고 다니지 마! 그런 거 안 바란다고!”
“그럴 순 없어. 자, 들어 봐. 하나 제의할 것이 있어.”
가람의 외침을 가볍게 무시하며 나는 그녀의 무기를 들어 올렸다.
대충 어떻게 사용하는 것인지는 알고 있다. 이전 차원에서 이것과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보다 훨씬 크고 모양도 좀 다르긴 했지만.
멀쩡히 옷에 매달려 있던 무기가 갑자기 허공으로 떠오르자 가람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런, 너무 놀라는데. 꼭 개벼룩 같아. 뭐, 긴장할 거 없어. 간단한 게임을 하자는 거야.”
작고, 약하고, 지저분하고, 잘 놀라고. 개벼룩이 딱 적절하군. 아무 때나 한심한 것들에게 들러붙는 것도 비슷하다.
“하기 싫어.”
“룰은 간단해. 둘 중 하나를 골라서 죽여.”
쉽게 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가람이 노골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내가 할 거라고 생각해? 이 또라이 새끼야?”
이런, 아마 본인에게 거부권이 있다고 생각하나 보군.
“하지 않으면 둘 다 죽일 거야. 하나라도 살리고 싶지 않아? 쉬운 게임이야. 네 손으로 하나를 죽이면 하나는 살고, 둘 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둘 다 죽이는 거지. 어때? 아, 나한테 너무 불리한 룰인데.”
입술을 꽉 다문 가람이 멧돼지처럼 씩씩거렸다. 분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다.
“아, 고민한다. 고민해.”
가람의 눈동자가 고통스러운 고민에 젖어 들었다. 나는 악동 같은 즐거움을 느끼며 그녀의 선택을 기다렸다.
“넌 미친놈이야. 절대로 너와 같이 다닐 일은 없어.”
한참 만에 가람이 씹어뱉듯 말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여 주었다.
“뭐, 너무한데. 다 널 위해서야.”
“내 동료를 내 손으로 죽이게 만드는 게 날 위해서라고? 이런다고 정말로 내가 너랑 같이 다니게 될 것 같아? 생각해 봐, 차라리 나를 도와주는 게…….”
“이렇게 도와주고 있잖아.”
그래, 도와주고 있지. 저것들은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저런 것들과 어울려 봐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영원히 이해받지 못하고, 영원히 이별이 계속되겠지. 그리고 스스로도 결국 저것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런 고통에서 구해 주려고 지금 이렇게 도와주고 있잖아?
“이런 방법은 틀렸어.”
“아, 감히 날 설득하려고 하나 본데, 소용없는 일이야. 오늘 여기서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 하니까.”
패스파인더가 된 지 몇 년도 안 된 애송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 따위가 나를 설득하려고 하다니.
가소로움에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다. 나는 팔짱을 끼고 입을 다물었다.
내가 침묵하자 가람은 그제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한참 만에 가람이 무기를 들어 올렸다.
“오, 결정했어? 사실 좀 지루해지고 있어서 시간제한을 만들려던 참이었어.”
“죽을 사람은 너야. 모르드레드.”
오랜 기다림 끝에 무기는 나를 향해 겨누어졌다.
“틀렸어. 정답이 아니네.”
정말 실망스러웠다. 이런 시시한 결론을 보려고 기다린 것이 아니건만. 너무 실망한 나머지 두 녀석을 거의 죽일 뻔했을 정도다.
두 쓰레기가 울컥 피를 토하자 가람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아, 아직 안 죽었어. 난 착하니까. 딱 한 번 더 기회를 줄게.”
그다음에 일어난 일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는 일이었다. 가람은 두 쓰레기를 감싸며 천천히 내 앞에 섰다.
“음? 이건 뭘까. 나랑 해보려고?”
질문하는 순간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했던 충격이 몸을 엄습했다. 이런 경험은 정말로 처음이다.
누군가의 손짓에 날아가 나무에 처박히는 경험 말이다. 놀랍게도 이 애송이는 진짜로 나와 싸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화끈한 고통이 느껴지자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주변의 나무가 금이 갈 정도의 압력이 퍼부어지고 있었다. 가만히 있으면 육포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나는 정말로 오랜만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힘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가람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녀는 의외로 능숙하게 공격을 막아 내더니 한층 더 격렬한 마법을 쏟아 내었다. 불, 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가리지 않고 한가득 날아든다.
나도 지지 않고 마법을 쏟아 냈다. 이렇게나 열심히 한 명을 공격하는 것은 정말로 오랜만이었다. 이렇게나 오랫동안 공격을 주고받는 것도 오랜만이다.
즐거웠다. 그 모든 것이 정말로 즐거웠다. 땀을 쏟아 내며 운동하는 것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상쾌함이다.
부디 이 공격이 오랫동안 이어지기를 바라는 순간, 나는 문득 내 공격이 모두 흡수되어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어라?”
목 아래가 섬뜩했다. 이어서 시야가 급격하게 기울더니 뇌가 튀어나올 것 같은 충격이 느껴졌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가람이 내 목을 잘라 낸 것이다.
그리고 머리통이 구르며 시야가 온갖 색으로 뒤섞인다. 환락과도 같은 즐거움 속에서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