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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파인더-199화 (외전 완결) (199/256)

19화

저 쓰레기들을 되살려 주겠단 말이야.

패스로 사람을 살리는 것은 간단하면서도 어렵다. 살리는 것 자체는 아주 쉽다.

그 사람의 형태와 모양을 가진 고깃덩이를 패스파인더가 기억하는 모습대로 동작하도록 구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진 되살아난 인간이 생전의 그와 똑같은가 하면 그건 장담할 수 없다.

패스파인더가 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얼마나 기억하느냐에 따라서 다르니까.

완벽하게 알고 있다면 완벽하게 같겠지만, 아니라면 많이 다르겠지.

그 사람을 모르면 살려 낼 수 없다. 외형이든, 기억이든, 성격이든, 그 사람에 대해 되살려 내는 패스파인더가 아는 만큼만 살려 낼 수 있다.

이것은 절대적인 규칙이지만, 그래도 약간 다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그 망령이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라면 그 사람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혼의 정보를 읽어 살을 입힐 수 있는 것이다.

육체에 혼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혼에 살을 덧씌운다. 이것은 가장 효율적으로 사람을 되살려 낼 수 있는 방법이다.

물론, 가장 완벽한 방법은 시간을 그 사람이 죽지 않았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지만 이건 정말 비싸다.

이 녀석들에게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마음은 안 든다.

육체의 가격은 500패스. 혼이 있든 없든 가격은 같다. 두 놈을 살리는 데에는 1천 패스가 들었다.

솔직히, 정말로 저렴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얼마든지 되살릴 수 있으니 그야말로 하찮은 녀석들이 아닌가.

어쨌든 보란 듯이 혼을 준비해 주었으니 해 주는 것이 예의가 아니겠는가.

손을 들어 올려 소원을 빌자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던 두 녀석이 순식간에 실체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팔, 다리, 몸통 따위가 차례대로 살색을 입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알몸이라 나는 수고스럽게도 옷을 입혀 주었다.

순식간에 육체를 입은 혼이 나란히 누워 호흡하기 시작한다.

적당히 기억을 조작해 둘 생각이지만 아무리 기억을 만진다고 해도 눈을 뜬 순간 보이는 것이 무리 지은 망령들이라면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일단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남은 것은 기다리는 것뿐이다.

모습을 숨기고 조금 기다리자 잠시 후 두 녀석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혼란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더니 나름대로 둘이서 말을 맞추어 기억의 빈 공간을 납득 갈 만한 기억으로 채워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집으로 돌아간다는 목적하에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런 두 사람의 뒤를 묵묵히 따랐다.

지금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예감이 든다.

이 둘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가람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리고 마침내 어떤 식으로든 끝이 나게 될 것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연마된 감이 나에게 그렇게 속삭이는 기분이었다.

* * *

두 녀석을 따라다닌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하나의 점으로 끌어당겨지듯이 만남이 뒤얽힌다.

홀가분한 얼굴로 두 녀석과 작별하는 가람을 보며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

내가 처음 쳐 둔 사소한 장난에 가람은 아직 속고 있다. 그런 이상 나에게 시간은 꽤 남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궁금했다.

인간을 아끼고 사소한 것들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이니 분명 적지 않은 패스를 모아야 할 텐데, 정말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안 될 이유가 뭐가 있지? 이제 곧이야.”

결연하게 말하는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집착 이상으로도 이하로도 보이지 않는다.

그 후는? 만약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 이후는 전혀 생각지 않는 건가.

“이봐, 굳이 그렇게 집착할 이유가 있나? 대체 뭐가 좋은 게 있다고. 그냥 여기에서…….”

“난 집으로 돌아갈 거야.”

전혀 듣지 않는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지만, 베이스캠프를 되찾는 데에는 얼마나 들지? 얼마나 들기에 그런 무모한 짓을 하려는 거야?”

“1천 패스.”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웃어 버렸다. 너무나 의외의 숫자였기 때문이다.

최소 1만, 혹은 그 이상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는 뜬금없기까지 한 숫자였다. 가만, 이 녀석 설마.

“1천 패스? 걸작이군. 좋아, 여기서 내가 문제를 하나 내지. 사람을 살리는 데 드는 패스는 얼마지?”

가람이 갑자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 정말 너는 나를 웃게 해.

“혹시 네 원래 세상에서 너에게 의미가 있는 사람이 두 명밖에 안 돼?”

한 사람을 만들거나 살리는 데 500패스. 그것으로 유추하자면 가람이 원하는 것은 단 두 명이다.

셋도, 넷도 아닌 단둘. 네가 그토록 그리는 세상에 있는 사람이 두 명밖에 안 된단 말이지.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없다고…….”

무엇을 생각했는지 가람이 갑자기 뒷걸음질 쳤다. 아마도 그 상상이 꽤 들어맞을 것이다.

거의 패닉에 빠진 그녀는 완전히 넋을 놓았다. 슬슬 달래면서 주워 먹으면 될 것 같은 분위기인데.

“그러니까, 부모님을 되찾는다고 했던가? 가족을 되찾고 싶어 했었지 너? 너만을 위하는 가족. 그래, 알아, 이해해. 이계에서 홀로 떠도는 건 정말 외롭지. 내가 왜 모르겠어. 원할 법한 소원이야.”

가람이 비틀비틀 무너진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더 무너져. 완전히 무너져서 내가 내미는 손을 거부할 수 없을 만큼이면 좋겠어.

“하지만 단 두 명밖에 안 된다는 건 정말로 걸작이었어. 멀쩡한 척 혼자 다 하더니 그 많은 사람 중 단 두 명을 원한다고? 나보다 더하잖아.”

그래. 나는 최소한 다섯은 되었다. 나에게 저주를 퍼부었던 놈, 나를 죽일 정도로 때렸던 아버지, 언제나 나를 속였던 대장장이, 조롱과 멸시의 시선을 던지던 얼간이들. 모두 그대로 살려 내어서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혀 주었지.

“아, 물론 의미를 가진다는 게 너와는 조금 다른 의미였어. 보다시피 나는 이런 놈이라, 너처럼 그렇게 ‘소중한 사람을 되찾겠어요.’ 같은 간지러운 목적은 없었거든. 나는 잔뜩 모은 힘으로 내게 굴욕을 주었던 놈들에게 지옥을 선사하고 싶었지. 잠깐, 이거 진짜 대단하잖아? 복수해 주고 싶은 만큼 미운 사람도 없었던 거야? 대체 어떻게 산 인생인 거야? 연인도 뭣도 없어?”

멍하니 앉아 있던 가람의 눈이 희번득 빛을 발했다. 핏발 선 눈동자가 거의 반광인의 그것이다.

“네가 처음에 말했잖아. 패스를 모아서 살 수 있을 것처럼 말했잖아. 그렇게 말했잖아. 네놈이, 그렇게 부추겼잖아!”

“살 수 없는 건 아니지. 다만 아주 오래 걸릴 뿐이야.”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군. 내가 장난친 부분은 그 부분이 아니야. 그리고 숨기고 있는 것도 그 부분이 아니지. 적잖게 안심하며 나는 주절거렸다.

“멋대로 생각한 건 네 쪽이잖아? 사실 베이스캠프를 원래대로 되돌린다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지. 베이스캠프는 원래 베이스캠프라고. 뭐가 더 될 수가 없단 말이야. 하지만 네가 그때 떠올린 형태대로 새로운 사물을 캠프 내에 생성해 낼 수는 있어. 아주 작은 공사를 하는 거지. 베이스캠프는 패스파인더들의 집이니까. 말하자면 가구를 구입하는 것 같은 거야.”

“가족을 생성한다고…….”

“그래. 두 생명을 만들어 내는 거지. 죽었던 생명을 새로 만들어 내는 것처럼. 되살리는 거야. 아, 조금 다른가? 거기에는 두 사람의 혼이 없을 테니까. 그래도 네가 원하는 이상적인 인간 둘을 배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어.”

“그래, 당연하지.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여기서 네가 선택해야 하는 길은 두 개야. 아예 그런 것은 포기하고 나와 함께 패스파인더로서 살아가던가, 아니면 다시 그 끝나지 않는 패스 수집을 계속하던가. 네가 원하는 만큼 가구를 구입하기 충분한 양을 모을 때까지.”

가람의 입매가 비틀렸다.

“너와?”

“그래, 함께.”

“꿈 깨.”

재미있는 표현이군.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건가.

“우리가 잘 맞지 않는다는 건 알아. 하지만 그래도 말이야, 너는 그 고독이 어떤 것인지 알아 버렸잖아? 생각해 봐. 평생, 아니, 우리는 죽지 않으니까 영원히 그렇게 사는 거라고. 혼자보다는 둘이 낫지 않아?”

“내가 널 용서할 수 있다고 생각해?”

용서? 우리가 용서가 필요한 사이인가. 의아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달래 주는 방향으로 대답했다. 거의 다 되었다. 거의 다.

“넌 나를 좌절하게 하고, 나를 부수고, 바꾸어 놓았지.”

“맞아. 내가 널 바꾸어 놓았지. 봐, 여기 이 강철과도 같이 단단한 너를 말이야. 멋진 일이지.”

누가 이 여자를 처음의 그 애송이라고 생각할까. 가족조차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

“네 입맛대로 나를 바꾸어 놓은 거야.”

“하지만 좋은 방향이잖아? 연은 역풍에 가장 높이 나는 법. 널 봐. 누구도 너를 이용할 수 없어. 너의 불사, 너의 패스, 너의 시간, 너의 재물, 너의 육체까지. 이렇게나 가진 것이 많은데도 그 무엇 하나 너에게서 빼앗아 갈 수 없을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었지. 너는 반드시 나에게 감사할 거다. 나는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 우린 시간이 아주 많으니까.”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지?”

“말했잖아. 우리에겐 이제 서로밖에 없어.”

“내가 왜 네 말을 믿었을까.”

이건 좋지 않다. 아주 좋지 않다. 가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아직은 안 된다.

나는 그녀의 생각을 멈추려고 입을 열었다. 그러나 가람은 무언가를 들으려 하는 상태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내가 직접 패스를 써서 알아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가람은 구역질을 참으며 창백하게 말했다. 아니, 하지 마. 그냥 내가 주는 지식을 받아먹으라고. 그게 쉽잖아?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전혀 통하지 않을 말이라는 것을 내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그렇다곤 해도 시도조차 안 해 볼 수는 없었다.

“괜히 아까운 짓 하지 마. 내가 왜 그러겠어?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그렇다고 진실을 알려 주지도 않지.”

정확하다. 가람이 손등을 들어 올린다. 진심인 것이다. 나는 다급해졌다.

“네가 패스를 쓸 리가 없어. 그걸 쓰면 아무것도 구입하지 못할 거야. 네 가족들을 구입하지 못할 거라고!”

“그 레퍼토리는 이제 지겹지 않아?”

“잠깐, 그만둬……!”

아주 짧은 간격 후에 나는 다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확연하게 달라진 가람의 표정이 나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넌 불쌍한 놈이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를 그렇게나 잡아 두고 싶었던 거야?”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물러났다. 그저 웃고 있을 뿐인 눈앞의 어린 패스파인더가 누구보다도 압도적으로 느껴진다. 그만, 그만 말해.

“사랑받는 데 재능이 없으니 증오로라도 옭아매고 싶었겠지. 무엇이든, 네게 의미를 가지도록 해서 나를 잡아 두고 싶었던 거야. 하지만 그걸로는 역시 부족해. 그렇지?”

“닥쳐.”

다급히 말했지만 별 영향력이 없는 욕설이었다.

“역시 내가 널 좋아했으면 했던 거지? 하지만 잘 되지 않았잖아. 불쌍하게도.”

아.

진실이다. 그래, 그것이 결국은 진실이다. 빌어먹을, 하지만 나는 모른다.

그녀의 말이 전부 옳았다. 나는 그녀를 잡아 두고 싶었다.

눈앞에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일부러 차가운 고독으로 걸어가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가 내 곁에 남게 하는 법을 모른다.

언제나 버려지고, 언제나 남겨지는 쪽이었다. 가장 익숙한 것은 적의, 증오, 공포 같은 것.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것은 정말로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의식적으로 하려고 해도 어느 순간 정신 차리면 적의와 증오만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가람이 나를 증오할 때 조금 안심했던 것이다. 나를 증오하고 미워하고 복수에 불타서 끝까지 내게 집착하기를.

가람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지도 않는다. 어리석고 무례한 애송이. 천박하고 게걸스러운 멍청이.

하지만 그녀가 나를 원했으면 했다. 그것이 이글거리는 증오라고 해도, 혹은 본능처럼 일어나는 진심 없는 욕구에 가까운 호감이라고 해도.

“사실은 패스를 찾으러 다닐 필요 같은 건 없었는데 말이야.”

그래. 사실 그렇다.

이건 사소한 장난이었다. 언제든지 가람에게 진실을 알려 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에게 진실을 은폐했고, 나중에는 그녀가 이 사실을 알지 않기를 바랐다.

“너는 강력하지. 그리고 고독하지. 유한한 삶의 의미를 절대로 공감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네 주위엔 온통 너와 다른 것들뿐이야. 어떤 것도 네 마음과는 짝 맞추지 못해. 그래서 나를 너처럼 만들려고 했겠지. 쓸데없는 사실을 교묘하게 왜곡해서 알려 주면서 말이야. 하지만 실패했지.”

쏟아지는 말이 칼날 같다. 일말의 희망조차 처참하게 부수는 차갑고 커다란 비수.

이것은 작별 인사다. 나에게 건네어지는 작별 인사다.

아니, 안 돼. 아직은 안 돼. 이러면 안 되지. 나에게 이러면 안 되는 거라고.

“제발…….”

내가 방금 애원했나? 아니, 그런 것은 대수롭지 않다. 가람이 떠나지만 않는다면 그 발바닥이라도 핥아 줄 수 있다. 그러나.

“모르드레드. 난 네가 정말 싫어. 난 여기서 떠날 거야. 넌 영원히 홀로 떠돌도록 해. 그렇게 미쳐서 완전히 무너져 버렸으면 좋겠다.”

담담하게 저주한 가람은 짧게 인사하고 그대로 사라졌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럼.

그렇게 짧은 말로 완벽하게 끝나 버린 것이다.

나는 그제야 문제를 깨달았다. 결국 내가 문제다. 이미 망가진 나에게는 어떤 기회도, 어떤 희망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영원히 이 삶이 비참함과 고독함 사이를 방황할 것임을 알고 있지만, 나는 구차한 줄 알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그 결과가 이거다.

나는 미쳐 가고 있다.

앞으로 수를 헤아리기 힘든 숫자의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나는 절대로 그것을 붙잡을 수 없을 것이다.

썩고 비틀린 내 영혼 앞에서 행운 같은 것은 닿기도 전에 스러지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념조차 하지 못하는 멍청한 이 생물을 무어라 불러야 할까.

아니, 부를 필요도 없지.

아무도 불러 줄 일이 없을 테니까.

― 모르드레드 2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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