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가람은 눈짓으로 대답하며 따끈한 고기파이를 입 안 가득 베어 물었다.
씹을 때마다 갈무리된 육즙이 고소한 파이와 어울려 혀에 달라붙는다. 다져 넣은 사과가 달착지근한 감칠맛을 더해서 제법 괜찮은 느낌이었다.
음식 문화는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이니 일단은 안심이다. 호의로 건넨 빵 하나가 사람을 죽이는 일 따위는 다시 겪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음식을 나눠 먹고 잔 사람이 그 음식 때문에 간밤에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건 정말로 최악이다.
“저를 어떻게 살리신 겁니까?”
“음, 악마냐고는 더 안 물어요?”
가람의 놀림에 하스펠은 얼굴을 붉히는 대신 진지하게 대답했다.
“물론 아직 의심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보여 주는 것들은 제가 살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들입니다. 인간의 재주가 아니라고 생각될 정도의 경이로운 능력에 이상한 물건들…….”
하스펠은 자고 일어나서 보았던 천장에 붙은 책장을 떠올렸다.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통증이 없는 자신의 복부도.
“흐음, 그래서 아직 내가 악마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으시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존재가 아닐지.”
가볍게 던진 농담이 무거운 진담으로 돌아오자 가람은 조금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그러나 곧 턱을 긁적이며 나름대로 납득했다. 아마 악마나 뭐 이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발달한 문화인가. 어쩌면 뭐 진짜로 자신을 닮은 악마들이 돌아다니는 세상인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고기파이는 정말로 맛있다. 이 사람 꽤 요리를 잘하는데.
“진지하게 말하는데, 저는 정말로 악마가 아니에요.”
“그러면 저를 어떻게 살리신 겁니까? 제 부상은 가벼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신관이라고 해도 이렇게 간단히 아물게 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검이 허리뼈를 완전히 부수어 관통하고, 내장까지 꿰인 상태였으니까요.”
“허.”
가람은 그가 그렇게나 세세하게 스스로의 부상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그리고 아무리 다 나았다지만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던 상처를 거리낌 없이 말하는 것도 대단했다.
고통의 기억을 잊는 데는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사람은 평생 자신이 받은 고통을 이야기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 떠올리는 고통이 마치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 같은 아픔을 주기 때문이다.
“말씀해 주십시오.”
“음. 말해 주는 건 그렇게 어려운 게 아닌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대체 왜 저를 악마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따지자면 당신을 치료해 준 사람인데, 천사나 뭐 그에 준하는 좋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왜 하필 악마로?”
뜻밖에도 하스펠은 대답하기를 망설였다. 그리고 한참 뒤에 더듬더듬 흘러나온 말에 가람은 이마를 짚었다.
“그게, 죽어 가는 저를 재미있게 구경하고 있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결국은 가람의 탓이다. 숨이 넘어가는 사람의 머리맡에 앉아서 쿡쿡 웃은 가람의 책임이었던 것이다.
가람이 할 말을 잃고 고기파이만 씹고 있자 하스펠이 흘긋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자신 몫의 고기파이를 먹기 시작했다.
“어, 음. 일단 웃었던 건 사과드릴게요. 웃겨서 웃은 건 아니었어요. 오랫동안 웃을 일이 없다 보니 별것 아닌 것에도 웃게 되나 봐요. 일단 저는 정말로 여행자예요. 악마도 뭣도 아니고.”
“여행자라면, 야탈카에서 오는 길입니까?”
“야탈카라. 여기에 있는 나라 중 하나인가 봐요? 그건 아니고. 음, 아주 멀리서 왔다고만 해 두죠.”
“멀리서?”
가람은 혀를 찼다. 결국은 이렇게 된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이상 가람의 대답은 하나같이 수상한 것들뿐인 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을 하는 것도 달갑지 않았기 때문에 가람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리는 쪽을 선택했다.
“일단 그건 그렇고, 그쪽 소개부터 해 줘요. 제가 누굴 살린 건지 정도는 알고 싶은걸요.”
그러자 놀랍게도 하스펠의 입이 딱 다물렸다. 번듯한 갑옷을 입고 있기에 꽤 자랑스럽게 떠들 만한 게 많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가람으로서는 의외의 반응이었다.
그는 난감한 얼굴로 자신이 만든 고기파이를 우악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그것으로 입을 막아 버리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가 고기파이를 다 먹어 치울 때까지 가람은 여유롭게 앉아 기다려 주었다.
패스가 충전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고, 굳이 그것뿐만이 아니더라도 가람에게는 시간이 많았다. 아주 많았다.
무한하리만큼 많은 시간이 있으니 기다리는 것은 가람이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도 패스가 차길 기다리는 것이 일상이다.
“이름은 하스펠, 스물일곱입니다.”
하스펠은 입술을 우물거리긴 했으나 거기에서 더 말하지 못했다. 아마도 말하지 못할 떳떳한 이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가람은 선수를 치기로 했다.
“기사예요? 그렇게 보이긴 하지만.”
“그렇습니다.”
대답하는 그의 표정이 너무나 씁쓸했기 때문에 가람은 손가락으로 턱을 짚었다가 곧 옷소매로 닦아 냈다. 고기파이 탓에 고기 기름이 손에 묻어 있었던 것이다.
“혹시 뭐 배신당했다거나, 버려졌다거나?”
“비슷합니다.”
“그럼 잘린 거네요.”
가람이 덧붙였다. 백수네. 전직 기사, 현직 백수. 가볍게 말하자 하스펠의 표정이 덩달아 조금 가벼워졌다.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할 일 없어요? 고향으로 돌아간다거나?”
“고향도, 돌아갈 곳도 없습니다.”
“으음.”
갈 곳도 없고, 원래 몸담았던 곳에서는 배신당하거나 버려지는 비슷한 짓을 당했고. 이쯤 되면 하스펠이 다음으로 할 말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폐가 되지 않는다면 은인의 곁에서 구명의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가람이 떠보듯이 질문한다.
“제가 악마나 뭐 수상한 인물일지도 모르는데요?”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믿을 생각입니다.”
“믿는다곤 해도 이것저것 수상하니까 일단 옆에서 지켜보면서 정체를 캐어 내 보자 하는 마음도 있죠?”
“없지는 않습니다.”
영 딱딱한 줄만 알았더니 제법 능청스럽게 대답하는 구석도 있다. 가람은 푸핫,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가 입가를 매만졌다. 정말로, 요 며칠 많이 웃게 된다.
하긴 늘 홀로 다니기만 했으니 웃을 일이 영 없었긴 했다. 아무도 없으니 아무 일도 없고, 아무 일도 없으니 웃을 일도 없었던 것이다.
이쯤에서 동행 하나를 만드는 것도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니리라.
이 남자가 자신의 정체를 알아냈다며 떠들고 다닌다 해도 그거 하나 처리하지 못할 자신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정 귀찮아지면 다시 다른 차원으로 훌쩍 떠나도 그만이다.
그리고 알려지면 뭐 어떤가. 가볍게 유지하기만 한다면 별로 심각해지지도 않을 것이다.
“뭐, 좋아요.”
그렇게 말한 가람은 허공에서 찻잔과 과일 푸딩을 꺼내어 내려놓았다. 찻잔에는 이미 따듯한 찻물이 차올라 찰랑이고 있었다.
그것을 엉거주춤 내려다보는 하스펠에게 가람이 슬쩍 권했다.
“독은 안 들었어요.”
가람의 고요한 눈동자는 분명히 상냥한 빛을 띠고 있었지만 하스펠은 자신이 압도되고 있다고 느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여자. 앳된 얼굴로 보아 여자아이라고 할 수도 있을 법한 작은 여자인데 풍겨지는 그 기묘한 분위기가 어쩐지 이질적이다.
선량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하스펠은 그 속에서 선명한 권태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고독.
“당신, 인간이 아니군요.”
‘인간이 아니지요?’도 아니고, ‘인간이 아닙니까?’도 아닌 단언하는 어조에 가람은 고개를 기울였다.
일단은 인간인데. 제대로 늙기도 하고, 병도 걸린다. 물론 얼마든지 치유할 수 있고 늙어 죽더라도 금세 다시 살아나지만.
“왜 그렇게 생각하죠? 나한테 무슨 뿔이나 꼬리라도 달린 걸로 보여요?”
“그건 아닙니다.”
하스펠이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얼버무렸다. 가람은 짧은 고민 끝에 충동적으로 결정했다.
어차피 가볍게 만나고 헤어지는 사이니까 말하지 못할 것도 없다. 일이 틀어지면 대충 기억을 지우고 적당히 버리면 알아서 살겠지.
맛있는 고기파이가 조금 그리울 것 같긴 했으나, 가람에게 있어서 하스펠은 딱 그 정도의 무게였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아니면 내 이런 능력들 때문에?”
가람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하스펠이 요리하며 어질러 놓았던 주방이 알아서 정리되기 시작했다.
제 몸에 붙은 음식을 알아서 물에 씻어 내고 차곡차곡 쌓이는 접시들을 홀린 듯이 바라보던 하스펠이 얼떨떨하게 대답했다.
“그런 것도 없지는 않습니다.”
가람은 조금 의아했다. 그에게 보여 준 것들은 꽤 괜찮은 재주이긴 했지만 마법이 있는 세계라면 그리 대단치 않게 여겨지는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스펠은 가람이 마법을 쓸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여긴 마법이란 게 없나 봐요?”
“마법? 당신이 쓰고 있는 게 마법이란 말입니까? 그런…….”
아연한 얼굴로 입을 다문 하스펠이 곧 입을 열었다. 감추지 못한 선명한 혼란이 그의 얼굴을 뒤덮고 있다.
“그러면 당신은 마법사란 말입니까? 이야기에나 나오는 그런 마법사? 그런 게 진짜로 있다니. 그런 건 모두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니, 잠깐.”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던 그가 문득 깨달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의혹 어린 눈동자.
“아까부터 이상한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여기’에 마법이 없다니, 무슨 뜻입니까? 당신은 여기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까? 당신이 말하는 여기라는 것은 대체…….”
쓸데없이 날카롭다. 과연 기사라는 건가. 뭐 어차피 감출 생각도 없었으니. 가람은 가볍게 웃으며 고백했다.
“사실 저는 이계인이에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
그 말은 혼란스러워하던 하스펠을 차갑게 얼어붙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농담인가 하고 가늠하는 듯한 시선으로 가람을 바라보던 그는 곧 그것이 농담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약간의 공황 상태에 빠졌다.
가람은 식탁에 놓인 푸딩을 떠먹으며 하스펠이 충격에서 헤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가람이 푸딩 하나를 다 먹어 치울 무렵이었다.
그는 여전히 반신반의하는 기색이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가람이 한 말을 다 믿기로 한 모양이었다.
어쩌면 단순히 은인을 의심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질문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했던 가람으로서는 생각보다 싱거운 반응이었다.
그러고 보면 웨이크도 그렇고, 몸을 쓰는 사람들은 다들 이런 걸까? 자신의 이해 범주를 넘어가면 어차피 말해도 알아듣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고 그러려니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마법사들이 질문을 퍼부으며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나름의 이론과 비교해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하는 것과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알겠습니다.”
“으음, 그러면 이거 드세요. 아, 그리고 말한다는 거 깜빡했는데, 더러워진 갑옷은 도저히 입을 만한 상태가 아니기에 일단 버렸어요.”
고치려고 들면 능력으로 얼마든지 수선할 수 있었지만 단순히 귀찮다는 이유로 가람은 남자의 물건을 전부 그곳에 두고 왔다.
만약 정 필요한 것들이라면 그때 가서 찾아오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솔직히 가람은 이 남자를 살린 데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긴 했지만, 책임감을 느낀다고 모두가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
가람 또한 자신의 충동적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은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많았다.
“상관없습니다. 그보다…….”
다시 기사로 돌아갈 생각은 없으니 물건들이야 어찌 되든 상관없다. 그러나 아까부터 한 가지 계속해서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 내지 못하던 하스펠은 가람이 갑옷에 대해 말을 꺼내자 그제야 그것의 정체를 깨달았다.
“제 옷 말입니다.”
하스펠은 처음에 입고 있던 옷 대신 하얀 리넨 셔츠에 조금 헐렁한 밝은 회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가람이 마트의 남성복 코너에서 적당히 집어 온 물건이다. 원래 입고 있던 것은 피와 고름, 땀으로 더러워져서 버려진 지 오래였다.
“버렸어요. 옷 세탁까지 하긴 좀 싫어서. 그리고 다시 입을 만한 상태도 아니었어요. 엄청 낡았던데.”
낡긴 낡았을 것이다. 기사단에서 지급된 옷으로, 몸이 더 이상 크지 않게 된 무렵부터 계속해서 입었던 것이니까. 그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제 옷은 직접 갈아입힌 겁니까?”
“아, 그거요? 네.”
가람은 별것 아닌 듯이 대답했지만 하스펠은 그대로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