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스파인더-222화 (222/256)

23화

군살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넓은 등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을 가람이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가람이 안내된 방은 창고 옆에 붙은 조그마한 다용도실 같은 단칸방이었다. 대충 한 겹짜리 나무에 못질을 해서 모양만 그럴듯하게 만든 나무 상자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봐도 제대로 된 방이라기보다 주정뱅이를 잠깐 눕혀 두는 용도의 공간에 불과했다.

“이 정도면 뭐 됐지. 모포도 있어.”

주인이 대충 바닥에 깔려 있던 천을 들추자 토사물 냄새가 물씬 풍겨 오른다. 가람은 순간 역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것보다 더 심한 곳에서도 잠을 청한 적이 있지만 그것은 오래전 이야기였다. 능력을 갖추고 난 후에는 언제나 제대로 된 곳에서 자거나, 혹은 잠을 청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편한 것을 삼가긴 하지만, 더럽고 고생스러운 것을 사서 할 이유도 없었다.

“혹시 헛간이나, 그런 것은 없나요?”

“없어.”

주인의 즉답에 가람은 결정했다. 마을에 머무는 것을 포기하기로. 밤까지 머물다가 적당히 늦어지면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 패스를 찾아 떠나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패스를 찾은 후 이동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스스로가 세운 규범을 위반하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설령 위반한다고 하더라도, 이번만큼은 그렇게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방은 없어도 될 것 같네요. 그냥 술이나 두 잔 주세요. 적당히 먹을 것도 좀 주시고. 그리고 오리 두 마리가 있는데, 둘 곳이 있을까요?”

가람의 첫마디에 헛수고를 했다는 생각에 순간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던 주인이 이어지는 주문을 듣고 조금 누그러진 표정으로 툭 내뱉었다.

“마구간 같은 건 없어. 그냥 앞에 기둥에 묶어 둬. 술은 뭐로 줄까?”

“제일 좋은 것으로 주세요.”

주인이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던 가람은 밖으로 나가 하스펠을 찾았다.

주인은 그냥 묶어 두라고 했지만 입구에서 본 자경단을 생각하면 이 마을의 치안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것은 좋지 않은 생각이었다.

가람은 오리에 마법을 걸며 선술집의 문을 턱짓했다. 누군가 고삐를 채어 가면 가람이 바로 알 수 있도록 하는 간단한 도난 방지 마법이었다.

“들어가요.”

오리의 주변으로 투명한 문양이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하스펠이 그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선술집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적당히 깨끗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자 가람이 자연스럽게 그 앞에 앉았다.

“사람이 거의 없군요.”

선술집을 한 바퀴 돌아본 하스펠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선술집의 떠들썩한 모습에만 익숙한 하스펠에게 이 고요함은 매우 낯설었던 것이다.

“낮이라서 그럴 거예요.”

테이블 위로 턱을 괴며 가람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가게가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데, 방은 구하셨습니까?”

“아니요. 아무래도 일을 해결하는 대로 떠날 것 같아요. 오늘 새벽쯤?”

하스펠은 일을 해결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을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묻지 않았다.

그렇게 삼킨 질문들이 쌓이고 쌓여 궁금증의 산맥을 이루더라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습니까?”

가람은 이채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가람이 선을 긋듯이 그도 선을 긋는다.

선과 선 사이에 간격을 두고 함께 있지만 함께하진 않는다. 그것은 암묵적인 동의하에 만들어진 규칙이었다.

“아니요. 없어요.”

하스펠은 침묵했다. 가람은 괜히 여관에 걸린 마른 향신료에 시선을 두고 테이블을 두드렸다.

하스펠은 경계를 허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비치지 않던 갈망이 그의 눈에 차오르는 것을 가람은 얼핏 발견했다.

그러나 갈망이라는 것은 대부분 탐욕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보여 준 능력들이 그의 마음속에 탐욕을 키운 것일까.

달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깜짝 놀랄 만큼 의외의 일도 아니었다. 가람은 자신이 베풀었던 호의가 어떤 방식으로 권리가 되는지 이미 보았다.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돕다 보면 어느 순간 그 호의는 당연한 것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 능력이 본디 누구의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누구의 것이든 어차피 제공될 텐데. 내리는 비가 누구의 것인지 따지는 사람이 없듯이.

그때부터는 탐욕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겹고, 어처구니없고, 잔인하고, 멍청한 싸움이다.

하스펠이 만약 그런 마음을 키우고 있다면 가람은 망설임 없이 그를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아니, 처리할 필요도 없이 그냥 자신이 떠나면 그만이다.

“음식 나왔소. 술은 우리 집에서 담근 거야. 다 합해서 10만 슬링.”

어색한 침묵을 깨고 불쑥 나타난 주인이 소란스럽게 테이블에 술과 음식을 내려놓았다.

제법 맛있는 냄새가 나는 고기볶음에 납작한 빵 두 장, 묵직한 색감의 커다란 술잔이 푸짐하게 테이블을 차지했다.

앞에 놓인 술잔에서 올라오는 그윽한 술 냄새를 맡으며 가람은 10만 슬링을 지불했다.

외지인이라 아마 바가지를 좀 씌운 모양이지만 딱히 신경 쓸 만한 일은 아니다.

가람은 묵묵히 술로 입 안을 적셨다. 조금 텁텁하긴 했지만 고소한 밀과 과실주 특유의 은근한 단맛이 제법 괜찮은 술이다.

“소원이 있어요?”

술잔이 반쯤 비어 갈 무렵 묵묵히 음식을 맛보던 가람이 불쑥 질문했다.

굳이 술기운을 없애지 않은 덕분에 가람의 두 뺨은 조금 상기되어 있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질문의 의도를 찾아내려는 듯 가람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하스펠이 대답했다.

그리고 아직 한 번도 입을 대지 않은 술잔을 들어 올렸다. 그러나 마시지는 않고, 그저 찰랑거리는 그 수면을 바라보기만 했다.

“없으면 없고, 있으면 있는 거지 그런 대답이 어디 있어요? 나한테 살려 달라고 했잖아요. 살고 싶었던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 살아서 이루고 싶은 야망이나 뭐 그런 건 없었어요?”

하스펠은 복잡한 기분으로 이 대화를 가늠했다. 보통 때의 가람이라면 술맛이나, 음식의 맛, 선술집에 걸려 있는 향신료의 모양 따위에 대해 말했을 것이다.

질문을 하기도 했지만 결코 개인적인 질문, 깊어질 만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이것이 좋은 변화인지, 아니면 나쁜 변화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살고 싶었을 뿐입니다.”

“으음, 소원도 바라는 것도 없다는 건가요.”

고개를 끄덕인 하스펠은 술을 삼켰다. 가람은 그의 대답이 진실일까 생각하다가 곧 머릿속을 털어 버렸다. 실제로 일어나기 전까지는 괜한 노파심에 불과한 것이다.

하스펠이 자신을 갈망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탐욕에 기초한 것이라고 확신할 수도 없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저를 왜 살리셨습니까?”

이번에는 하스펠의 질문이었다. 가람이 술잔을 내려다보던 시선을 들었다.

“글쎄요. 당신이 아직 살아 있었으니까? 죽은 것보다는 살아 있는 게 낫잖아요. 전에도 말했듯이 그냥 변덕이에요.”

“저를 살려서 무언가 이루고 싶은 야망이 있었습니까?”

“네?”

이런 질문은 처음 받아 보았던 터라 가람이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반문했다.

그리고 하스펠의 진지한 태도에 술이 조금 깨는 듯한 기분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요.”

“당신이 저를 살린 것이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듯이, 저도 무언가를 이루고 싶어서 살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삶은 삶 자체로 좋은 것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오랫동안 잊고 있던 것이기도 했다. 하스펠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의 눈동자에 스며 있는 갈망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가람이 겪어 본 종류는 아닐 것이다.

가람은 새삼 자신에게 깊게 뿌리내린 불신을 발견하며 가볍게 웃어 버렸다.

“제가 멍청한 말을 했네요. 미안해요. 한 잔 더 마시죠. 술맛이 아주 괜찮아요.”

가람은 손을 들어 몇 잔의 술을 더 주문하고 하스펠과 주거니 받거니 하며 나누어 마셨다.

그러는 사이 해가 저물어 선술집을 찾아오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더럽고 냄새나는 초라한 선술집은 이 마을에 없어서는 안 될 휴식처였던 것이다.

“잠시 다녀올게요.”

얼큰히 취한 것이 연기였던 것처럼 가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벌떡 일어났다. 능력으로 술기운을 모두 날려 버린 것이다.

놀란 하스펠이 눈을 크게 뜨자 가람은 제 몫의 술잔을 밀어 주었다.

“이거 마시고 있어요. 금방 올 테니까.”

하스펠이 얼떨떨하게 술잔을 감싸 쥐는 것을 뒤로하고 가람은 선술집을 나섰다.

떠들썩한 선술집과 달리 해가 진 마을의 거리는 조용했다. 각자 집에서 저녁을 먹거나, 잠을 자거나, 혹은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리라.

보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 가람은 구불거리는 골목길에서 자신을 투명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무런 방해 없이 우물가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예상대로 우물가에는 아무도 없었다.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 것이다.

밤의 우물가는 을씨년스러웠다. 만개한 달이 밝다고 해도 우물 속의 물을 비추기엔 역부족이라, 우물은 한없이 시커먼 구덩이처럼 보인다.

그 안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지간하면 하고 싶지 않은 일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더욱 꺼려지는 일이지만 가람은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띄웠다.

몸에 힘을 둘러 옷이 젖지 않도록 조치한 가람은 우물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훅 끼치는 물비린내와 이끼가 무성한 벽이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떠오른다. 가람은 아래로, 더욱 아래로 내려갔다.

보이는 것 하나 없는 밤의 우물은 아래에 끔찍한 것이 똬리를 틀고 있을 것 같은 상상을 불러일으키지만 가람은 불도 켜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것은 수면 저 아래에서 반짝이는 패스뿐이다. 어둠 따위가 가람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예전이었다면 이런 일들이 가람을 정말로 힘들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물 아래에서 패스를 찾은 가람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골목길에서 투명화를 해제하고 선술집으로 걸어왔다.

얼마의 패스를 손에 넣었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 모은 패스가 거의 10만에 다다랐으나 딱히 원하는 소원도, 능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선술집 입구에서 가람은 문득 멈춰 섰다. 언제나와 같은 탈력감이 몰려왔다. 패스를 찾은 후에는 늘 이렇다.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저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은 감정에 휩싸이고 만다.

이대로 그저 다시 훌쩍 떠나고 싶은 느낌이다. 방황에 중독된 것이 분명했다.

가람은 한참 동안 문 앞에 서 있었다. 선술집의 문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을 열고 싶은 충동이 치솟았다.

그렇게 하면 이쪽 차원과의 연결 고리는 끊어지고 다시 새로운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선술집의 문이 열린다 싶더니 안에서 하스펠이 나타났다. 밖으로 나온 그는 가람을 보고 잠시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그녀가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서 있는 것을 보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섰다.

“괜찮으십니까?”

가람은 잠깐 낯선 사람을 바라보듯 그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뒤 간신히 그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하스펠.”

“예. 접니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아. 네. 괜찮아요.”

가람의 불안정한 정신이 천천히 자리를 잡았다. 낡은 정신은 이렇게 손쓸 틈도 없이 갑자기 무너지곤 했다. 슬슬 고장이 나는 것이다.

하지만 고칠 방법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최대한 나쁜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스스로를 추스르는 수밖에.

“볼일은 끝나셨습니까?”

“네. 음, 이제 여기를 떠나도 될 것 같아요.”

하스펠은 고개를 끄덕이고 말뚝에서 오리를 풀어내었다. 바닥에 앉아 멀뚱멀뚱 두 사람을 바라보던 오리가 영 달갑지 않은 기색으로 일어섰다. 아무래도 조류는 밤에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느 쪽 입구로 나가실 생각입니까?”

투덜거리듯 부리를 흔드는 쿠션과 이불을 어르며 하스펠이 물었다.

“으음. 슬슬 길바닥에서 자는 것도 지겨우니까 제대로 된 도시로 가죠. 존 라드도 좋고, 다른 곳도 괜찮구요. 혹시 가고 싶거나 추천하고 싶은 곳 있어요?”

조금 당황하던 하스펠은 약간의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리베르튼은 어떻습니까?”

“리베르튼? 아, 그러고 보니 구란사가 거기 ‘끝없는 여관’이라는 게 아주 유명하다고 했던 것 같네요. 좋아요.”

가볍게 결정한 가람이 엘리베이터를 불러내었다. 벌써 두 번째 보는 것이지만 하스펠은 이 네모난 상자가 정말로 괴상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두 마리 오리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타지 않으려고 반항하는 두 마리를 욱여넣은 가람이 문을 닫고 투덜거렸다.

“다음부터는 다른 방식으로 이동할까 봐요.”

하스펠은 그 방법이 최대한 덜 괴상한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Chapter 5

리베르튼은 창날처럼 높게 솟은 첨탑이 인상적인 도시였다.

세상의 모든 것이 몰려든 것 같은 소란스러움조차 하늘을 살해할 듯 살벌하게 치솟은 첨탑 앞에서는 한풀 꺾이는 느낌이다.

게다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강철로 만든 성벽이 도시 전체를 무겁게 내리눌렀다.

“꼭 요새 같은 느낌이네요.”

목이 뻐근해질 만큼 높이 솟은 첨탑을 향해 시선을 던지며 가람이 평가하자 하스펠이 당연하다는 어조로 대답했다.

“실제로 요새였습니다.”

하긴, 대륙의 전쟁을 가로막고 있는 핵심 도시이니 이만큼이나 삼엄하지 않으면 그 역할을 다하기 힘들 것이다.

한나절 만에 집어삼킬 수 있는 도시가 무슨 전쟁을 막을 힘이 있겠는가? 가람이 가볍게 납득하며 쿠션의 고삐를 바짝 당겨 잡았다.

아샤를 떠나 리베르튼의 으슥한 골목길로 내려선 것까지는 좋았는데, 너무 으슥한 곳으로 온 탓인지 벌써 한참 걸었는데도 번화가가 나오지 않았다.

대륙의 모든 교역상이 모이는 도시답게 어디를 가도 사람이 북적거려서 어지간한 곳이 아니면 눈을 피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도 부지런히 걸어가니 멀리서 북적거리는 기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시간인데도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

존 라드도 제법 번화한 도시였지만 그래도 리베르튼과 비교하면 거의 시골 동네나 다름없는 느낌이다.

오리, 닭, 말, 거대한 도마뱀과 온갖 동물을 타고, 끌고 돌아다니는 상인들에다,

눈이 돌아갈 만큼 기상천외한 물건들이 수레로 운반되고 있어서 하루 종일 길바닥에 앉아 구경만 해도 심심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여관은 어디에 있을까요.”

동물의 머리뼈를 잔뜩 싣고 지나가는 수레를 쳐다보며 가람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번화가로 들어와서 꽤 걸었는데도 여관으로 보이는 곳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만한 인구가 이동한다면 당연히 여관도 길거리에 가득한 것이 정상일 텐데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저도 리베르튼에 묵어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어? 없어요? 하지만 델리움이 북쪽에 있고 하스펠이 남쪽에서 발견되었으니까 리베르튼에서 하루쯤 머물렀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임무 중에는 마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하스펠의 말에 가람은 그에게 가이드로서의 능력을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다면 결국 방법은 하나뿐이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물어보는 것. 하지만 그나마도 여의치 않을 것 같았다.

오가는 사람들이 모두 분주하기 짝이 없는 기색이라 붙잡는다고 해도 좋은 반응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일단은 여관이 나올 때까지 조금 더 걸어 볼까 하고 가람이 생각하는 순간, 얌전한 척 하스펠을 따라 걷고 있던 이불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말 그대로 하스펠을 질질 끌고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당황한 하스펠이 온 힘을 다해 고삐를 잡아당겨도 그 전진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스펠에게 극심한 패배감을 선사한 이불이 멈춰 선 곳은 온갖 것을 구워 파는 가판대였다.

가판대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는 교육 정도는 받았는지 무턱대로 달려들지 않은 것이 하스펠에게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런 교육에는 따르면서 주인을 인형처럼 끌고 달리는 것에는 거리낌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 하스펠을 조금 우울하게 만들었다.

가판대에서 구워지고 있는 고구마를 바라보며 침을 줄줄 흘리는 이불을 본 가람은 그제야 오리 두 마리가 아침부터 먹은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으로 무심한 주인이었던 것이다. 쿠션도 참고 있긴 했지만 새카만 눈이 가판대의 음식에서 떨어질 줄을 모른다.

“그나저나 이거 오리가 먹어도 되는 음식인가?”

가람의 의문에 답한 것은 고구마를 굽는 주인이었다.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올려 묶은 그녀는 별 당연한 소리를 다 듣는다는 듯이 웃었다.

“먹어도 되고말고요. 구운 고구마는 오리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걸요. 달달하고 부드러운 고구마에는 아주 사족을 못 써요. 사실라우?”

사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가람은 고구마 하나를 사서 일단 쿠션에게 먹여 보았다.

주먹 두 개만 한 커다란 고구마였지만 쿠션의 부리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작은 크기라 한 입에 쏙 들어갔다.

고구마의 맛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쿠션이 부리를 부비며 가람에게 애교를 부렸다. 고구마를 더 주지 않고서는 못 견딜 만큼 사랑스러운 애교였다.

그 모습을 불타는 눈으로 바라보던 이불이 하스펠의 어깨에 제 부리를 턱 올려놓고 눈을 깜빡였다.

나름대로 애교인 것 같았지만 문제는 이불의 입에서 폭포수처럼 흘러나오는 침이었다.

어깨가 젖어 가는 불쾌한 감각에 하스펠이 무뚝뚝한 손길로 이불의 부리를 치워 냈지만 이번에는 부리가 그의 머리에 놓였다.

어깨에 이어 머리까지 오리의 침에 젖자 고구마를 먹기 전에는 침이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 하스펠이 결국 내키지 않는 기색으로 고구마를 내밀었다.

그대로 고구마 하나를 덥석 받아먹은 이불이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 몸뚱이를 가늘게 떨며 날개를 짧게 파닥였다.

새카만 눈이 별이 튀어나올 듯이 반짝거렸다. 어지간히 감동이었는지 눈물까지 글썽이고 있을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이불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구마를 맛본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불이 그간 먹어 온 것은 수확이 끝나 낟알이 드문드문 붙어 있는 지푸라기와 세상에 나와 먹은 잡풀, 물고기가 전부였으니 감동할 만도 했다.

“여기 고구마 구워진 것 다 살게요. 얼마죠?”

이불의 감동을 지켜보던 가람이 돈주머니를 꺼내며 질문했다.

“아이구, 통이 큰 아가씨네! 한 개당 3천 슬링이에요. 그러니까 구워진 게 서른 개 정도 되니까 9만 슬링이지요.”

가람이 값을 치르자 주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녀는 화로에서 익은 고구마를 모두 옆으로 옮기고 새 고구마를 구우며 연신 가람을 칭찬했다.

“오리가 주인을 아주 잘 만났네!”

무심하게도 하루 종일 굶게 만들었으니 이만한 보상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게다가 고구마 하나를 먹을 때마다 온몸을 떨며 감동하는 이불을 보는 재미가 꽤 쏠쏠했다.

“그나저나 여기 여관 어디 있는지 아세요?”

마침 고구마를 사는 김에 알아볼 요량으로 가람이 묻자 군고구마 상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오면서 끝없는 여관에 대한 이야기도 듣지 못했단 말이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