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의외로 아무것도 없네요.”
가람이 단지를 레커드에게 툭 던지며 말했다. 레커드는 혼란스러운 얼굴로 펼쳐진 단지를 만지작거리다가 연신 이럴 리가 없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거기서 찾은 서적에는 도시 하나를 멸망시킬 수 있는 힘이 들어 있다고 했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시간이 지나서 망가졌거나, 아니면 그냥 허풍이었을 수도 있죠.”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지만 가람은 어쩐지 찜찜한 기분으로 단지를 바라보다가 애써 근거 없는 불안을 털어 버렸다. 그리고 피로해 보이는 하스펠을 배려해 슬슬 마무리를 짓기로 했다.
“물건도 다 찾았으니 이만 가죠.”
레커드와 모거스는 맥 빠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수레에 가득한 보화를 보고 조금 기운을 차렸다. 하지만 가람은 보화를 들려 보낼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두 사람이 자기 짐을 챙기는 것을 보고 있다가 기습적으로 뒤통수를 후려쳤다.
그러자 두 사람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스르륵 무너지듯 바닥에 널브러졌다.
“갑자기 무슨…….”
당황하던 하스펠은 두 사람이 숨을 쉬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황당한 얼굴로 가람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가람은 가볍게 웃으며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뻔뻔하잖아요. 도움받는 처지에 끝까지 하대하는 것도 그렇고, 사례에 대해서는 입을 싹 닦는 데다 당연한 듯이 도둑들의 물건을 챙기려고 하는 것까지. 뭐, 이런 사람들에게서 뭘 받을 생각도 없고. 사례는 이걸로 대신하죠 뭐.”
허공에서 갑자기 오색 빛깔로 일렁이는 빛무리가 나타나더니 보물을 모조리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텅 비어 가는 도둑들의 보물 방을 바라보며 하스펠은 텐트 안에 있던 금은보화가 쌓인 방을 떠올렸다. 그 방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이어서 빈 수레에 기절한 두 사람을 담은 가람은 밖으로 나가 도둑들을 모두 기절시켰다.
그리고 간단하게 오늘 밤에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을 지워 버렸다. 일일이 어설프게 기억을 만들어 심기도 귀찮았던 것이다.
사라진 보물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긴 하겠지만, 어차피 기반이 사라졌으니 금방 와해될 것이다.
배에 구멍이 뚫린 도둑들을 치료하고, 자신이 열었던 단지를 다시 닫은 후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기절한 두 사람을 그들의 여관방에 던져 넣고 방으로 돌아오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만 같다.
그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가람은 사방에 마법을 걸었다. 악의가 있는 사람의 침입을 막는 마법이다. 이번에는 도둑도, 방해도 없이 잠들 생각이었다.
“도둑들의 목숨도 귀하게 여기시더군요.”
떨어진 태피스트리를 다시 걸며 하스펠이 불쑥 입을 열었다. 뜻밖의 내용에 모포를 털고 누우려던 가람이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딱히 도둑의 목숨을 귀하게 여긴다기보다는 기억을 지웠는데 배에 구멍이 뚫려 있거나 죽은 사람이 있으면 지나치게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지웠던 기억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딱히 그런 건 아녜요.”
“하지만 급소를 피해서 찌르시더군요.”
“괜히 쓸데없이 살생을 할 필요는 없겠죠.”
피가 나긴 했지만 장기를 모두 피해서 찔렀기 때문에 가람이 보물 창고를 모두 털고 돌아올 때까지 죽은 도둑은 한 명도 없었다.
쇼크사 직전에 빠진 사람이 하나 있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 무사했다.
“자비로우시군요.”
가람은 하스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빤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아부라도 하고 싶어진 건가? 그런 성격으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뭐, 원래도 좀 싱거운 성격이니 대충 아무 말이나 하고 싶어진 건지도 모른다.
가람은 더 신경 쓰지 않기로 하고 깔개 위로 길게 누웠다.
새카만 벽과 옅게 일렁이는 불빛.
아늑하고 평화로워서 역시 쉬기에는 좋은 분위기다. 가만히 눈을 감자 하스펠이 자리에 눕는 기척이 느껴졌다.
이런저런 일이 많았으니 그도 피곤했으리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쿠션과 이불, 하스펠과 가람 모두가 잠에 빠져들었다.
조용한 어둠 속에서 새근거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그러나 그 잠은 길게 이어질 수 없었다.
“손님, 아침입니다. 더 묵으실 겁니까? 아니면 방을 비워 주셔야 하는데요.”
해가 들지 않는 특성상 여관의 주인은 아침마다 일일이 방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깨웠다.
가람은 결국 열흘 치의 숙박비를 한꺼번에 지불하고 그제야 방해 없이 여관의 아늑함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Chapter 6
아늑한 어둠도 좋고 횃불이 화려하게 빛나는 끝없는 여관의 길거리도 좋았지만 역시 사람은 볕을 보고 살아야 한다.
게다가 횃불의 밝기에 의지해 책을 읽는 것은 아주 피로한 일이었다. 그리고 책을 읽을 만한 분위기도 아니다.
낮이든 밤이든 컴컴한 이 지하 여관은 술꾼들의 천국이나 다름없어서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여기저기서 술잔을 부딪치고 노래를 부르는 소리로 아주 시끄러웠다. 가람은 결국 거푸 시도하던 독서를 포기했다.
거의 유일한 취미인 독서를 못 하게 되자 가람도 어쩔 수 없이 술꾼들과 어울려 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 흥겨움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여흥도 잠시 화로 앞에 다닥다닥 모여 앉아 고기를 씹고 있는 덩치들의 풍경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산뜻하고 상큼하고 밝은 무언가가 필요하다. 결론 내린 가람은 충동적으로 베이스캠프로 넘어가 이것저것 집어 왔는데, 그중에는 커다란 딸기 케이크가 섞여 있었다.
“먹어요.”
크네프는 가람이 내민 접시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는 가람이 최근 여관에서 사귄 술친구 중 한 명이었다.
마치 산 도적 같은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섬세한 감성을 가진 남자로, 간혹 슬픈 이야기나 딱한 사연이 술안주로 올라오면 그 시커먼 수염이 다 젖도록 눈물을 줄줄 흘리곤 했다.
“뭐야?”
“케이크예요. 받아요.”
가람은 거의 떠밀듯이 크네프의 품에 케이크 접시를 안겨 주었다.
얼떨결에 접시를 건네어 받은 크네프는 조심스럽게 하얀 빵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맡아 보지 못한 달착지근한 냄새가 났다.
“먹어 봐요.”
대충 권한 가람은 그의 옆에 기대어 앉아 제 몫의 케이크를 맛보기 시작했다.
사실 혼자 먹을 생각이었지만 고기와 술밖에 모르는 야만인들에게 달콤한 디저트의 맛을 알려 주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져온 것이었다.
어제 술을 퍼마신 덕분에 살아남은 술꾼이 얼마 없어서 케이크를 권할 만한 사람은 크네프뿐이라는 점이 조금 아쉬웠다.
“먹어 보라니까요?”
케이크를 푹 떠서 입 안에 밀어 넣은 가람이 촉촉하고 부드러운 빵에 박힌 딸기를 씹으며 다시 권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조금 웃었다. 자신이 권하긴 했지만 눈앞의 이 곰 같은 아저씨와 케이크는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다.
털이 덥수룩한 시커먼 손으로 앙증맞은 케이크 접시를 들고 있는 모습이라니.
“아, 알았어. 먹을게.”
가람의 입가에 묻은 크림을 잠시 바라보던 크네프가 마침내 조심스럽게 케이크를 떠서 입 안으로 가져갔다. 눈을 질끈 감은 표정이 독이라도 마시는 듯한 느낌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눈이 크게 뜨였다. 황소 같은 커다란 눈동자에 촉촉하게 감동이 차오른다. 잠시 말을 잊지 못하던 그가 더듬더듬 감탄했다.
“괴, 굉장해. 이거 뭐지?”
“케이크.”
심드렁하게 대답한 가람은 포크로 남은 케이크를 모두 쓸어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단것이 입 안에 들어가자 기분이 좀 나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무료한 것은 여전했다.
“우리 둘만 먹어도 되나?”
맛의 여운이 서린 얼굴로 남은 케이크를 내려다본 크네프가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가람은 그가 쥔 포크가 꼭 장난감처럼 느껴져서 짧게 웃다가 남은 커다란 케이크를 모두 건네었다.
“이거 줄 테니까 사람들 일어나면 나눠 먹어요.”
크네프는 100년 만에 처음 선물을 받아 본 사람처럼 감격해하는 얼굴로 케이크를 받아 들었다. 혹여라도 떨어뜨릴까 받아 드는 손이 조심스럽기 짝이 없다.
갑자기 툭 쳐서 케이크를 떨어뜨리게 만들면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지만 가람은 얌전히 케이크를 넘겨주었다.
아침부터 털보 아저씨가 우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람은 같이 안 먹나?”
케이크를 건넨 가람이 무릎을 펴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크네프가 조금 당황했다.
입가의 수염에 허연 생크림이 묻은 것이 산타가 따로 없다.
“전 오늘 좀 나가 보려고요.”
“혼자 가게?”
“오빠는 자고 있어요. 어제 대단했잖아요?”
가람의 대답에 크네프가 음, 하고 납득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많은 술자리가 있었지만 어제만큼 술을 들이부었던 적은 없었다.
가람도 하스펠도 아마 각자 한 통씩은 마셨을 것이다. 그 결과 하스펠은 숙취에 완전히 뻗어 버린 상태다. 마법으로 숙취를 없애 주긴 했지만 그래도 좀 자 두는 편이 좋을 것이다.
“그래도 가람은 대단한걸. 나야 술이 세기로 유명하지만 가람 같은 작은 아가씨가 그만큼이나 마시고 이렇게 일찍 일어날 줄은 몰랐어.”
가람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애초에 보통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중간부터 술기운을 날려 버리면서 마시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가람은 거의 취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것을 모르는 하스펠과 다른 술꾼들은 가람을 이겨 보겠다며 생으로 간을 학대했으니. 어찌 보면 속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오늘은 좀 나갔다 와야겠어요. 저녁까진 돌아올 테니 혹시 걱정하면 전해 줘요.”
“잠깐, 내가 같이 가 줄까?”
“케이크 나눠 줘야죠.”
가람이 그의 옆에 놓여 있는 케이크 상자를 눈짓하자 그가 조금 시무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마치 엄마라도 된 듯 엄하게 조심할 것들을 일러 주기 시작했다.
가람은 그 모든 말들을 싫은 기색 없이 듣고 있다가 가볍게 인사하고 여관을 나왔다.
그리고 슬쩍 돌아보자 케이크를 조금씩 아껴 먹고 있는 크네프가 보였다. 먹을 때마다 커다란 덩치를 가늘게 떠는 것이 꽤나 귀여운 모습이다.
처음 들어왔던 길을 되짚어 문밖으로 나가자 시원한 공기가 훅 밀려들었다. 문득 이불과 쿠션을 데려오지 않은 것이 아쉬워졌지만 가람은 그냥 걷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홀로 있는 것도 꽤 오랜만이다. 소란스러움도 좋지만, 가끔은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이 필요했다.
중앙 분수를 빠져나온 가람은 근처 가판대에서 마실 것을 사서 벤치에 길게 드러누웠다.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여행자와 연인들이 보인다. 작은 수레를 끌고 분수대 아래로 내려가는 상인들도 보였다.
그들을 잠시 바라보던 가람은 메고 온 작은 가방에서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가람이 꺼낸 책은 귀족이 쓴 여행기의 일종이었는데, 고급스러운 단어와 기묘한 경험을 유려한 문체로 풀어놓아 제법 읽는 맛이 있었다.
중간중간 산적이나 강도를 만났던 경험과 어떤 식으로 위기를 극복했는지에 대해 허세 없이 담백하게 적어 놓아서 시간 가는지 모르고 읽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정오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쯤에서 책도 끝났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가람은 미지근해진 음료수를 삼켰다. 달다기보다 시큼하고 짭짤한 음료는 적당히 싱거워서 갈증을 풀기에 좋다.
결코 맛이 있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맛을 따질 거라면 길거리에서 뭔가를 사 먹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조금 출출해진 가람은 근처의 고기를 구워 파는 가게에서 적당한 크기의 구운 고기 한 덩이를 샀다.
옆에 있는 샌드위치도 먹을 만해 보였지만, 허기가 질 때는 고기가 최고다.
내내 끝없는 여관에서 술과 고기를 먹어서 질렸지만 가판대에서 향초 소금을 쳐서 굽는 고기 냄새는 정말로 먹음직스러웠기 때문에 거부하기 힘들었다.
가판대 앞에 놓인 간이 의자에 앉아 크게 한 입 고기를 베어 문 가람은 가판대 옆에 앉아 있는 지저분한 개를 발견했다.
늙고 병들어 듬성듬성 털이 빠진 비쩍 마른 개였다. 착 달라붙은 뱃가죽이 무척 배가 고파 보여서 가람은 먹고 있던 고깃덩이를 조금 뜯어 내밀었다.
그러나 개는 그 자리에 앉은 채로 꼼짝도 않고 정신없이 지나는 사람의 얼굴을 살피기 바쁘다. 가람이 고기를 준 것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결국 가람은 조금 더 다가가 개의 앞에 고깃덩이를 놓아 주었다. 그제야 개는 허겁지겁 고기를 먹었다.
무언가 바쁜 일이라도 있는 듯 급히 식사를 마친 개는 다시 지나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간간이 지나는 사람들의 뒤를 쫓다가 귀찮음 담긴 발길질을 당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시무룩하게 앞발에 머리를 괴고 새카만 눈에 눈물을 그렁거리다가 곧 기운을 차려 고개를 들곤 했다.
“매일 여기 있어요.”
개를 바라보던 가람은 가판대의 아주머니가 건네는 말에 고개를 돌렸다. 아주머니는 화로의 고기가 타지 않도록 부지런히 뒤집으며 개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 개. 여기에 늘 앉아 있어요. 어디 다른 데 가지도 않고, 가끔 고기 먹는 사람들이 한 조각씩 던져 주지 않았으면 벌써 굶어 죽었을 거예요.”
주름이 자글자글한 눈으로 딱한 시선을 던진 아주머니는 혀를 차며 쓸모없어 보이는 자투리 고기를 툭 던졌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던져진 고깃덩이는 정확하게 개의 앞에 안착했다. 손님이 주는 고기 외에 아주머니가 이런 식으로 던져 준 고기도 상당할 것 같았다.
“주인이 없는 개인가요?”
“그건 나도 모르겠어요. 어느 순간 여기 와서 앉아 있더라고요.”
가람은 남은 고기를 우물거리며 개의 머릿속을 살펴보았다. 개는 어떤 남자를 찾고 있었다. 아마도 개의 주인인 모양이었다.
어찌나 간절하게 찾는지 대충 훑어보는 가람의 머릿속에도 그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를 정도다.
조금 아쉬운 점은 그의 얼굴 외에 아무것도 기억에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오로지 주인의 얼굴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가 살고 있던 집이라든가 옷차림 같은 것은 거의 희미하다.
게다가 방금 가람이 고기를 던져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람에 대한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직 주인만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만큼이나 애절한 모습을 보면 인간적으로 도와주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주인 잃은 개에게 주인을 찾아 주는 것 정도는 가람에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은 시간 낭비라고 할 테지만, 심지어 가람은 시간마저 많았다.
패스가 충전되고 있을 때만이 아니라 가람에게는 정말로 무한한 시간이 있었고, 그것을 사용할 방법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그리고 가람은 비교적 인간보다 동물을 돕는 데 거리낌이 덜한 편이었다.
지금까지 인간을 도와서 무언가 잘못된 경우는 있어도, 동물을 도와서 일이 잘못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동물이 인간보다 탐욕스럽지 않은 생물이라기보다 상대적으로 복잡하지도, 교묘하지도 않은 생리를 가지고 있어서 뒤탈이 생길 확률이 적기 때문이다.
가람은 개의 기억을 참고해서 주인이 사는 곳을 찾아냈다. 차원을 넘나들며 그리운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동안 사람을 찾는 것에는 아주 이골이 난 가람이다.
게다가 개의 주인이 사는 곳은 멀지도 않았다. 가람은 남은 고기를 한 입에 던져 넣고 개 앞에 앉았다.
“나를 따라오면 네 주인에게 데려다줄게.”
개의 지친 시선이 가람을 향했다. 두려움과 절망으로 주눅 든 늙은 눈동자에는 한 방울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개는 앙상하게 마른 다리로 자리에서 비척비척 일어났다.
가람은 걸을 힘도 없어 보이는 개를 기꺼이 품에 안고 일어섰다. 오랜만에 사람의 품에 안긴 개는 불안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날뛰지는 않았다.
이윽고 가람과 개가 도착한 곳은 못질 소리가 요란한 목공소였다. 한가득 쌓인 톱밥 사이로 땀에 젖은 인부들의 얼굴이 보였다.
한쪽에는 제재소에서 가져온 목재가 가득히 쌓여 있었는데, 개의 주인은 그 목재를 적절한 크기로 자르는 인부 중 한 명이었다.
기다란 각목을 크기에 맞춰 톱질하던 남자는 문득 시선을 느낀 듯 가람이 서 있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가람의 품에 안긴 개를 발견하고 덤덤한 얼굴로 다가섰다.
잃어버렸던 개를 찾은 사람이 보이는 반응치고는 지나치게 건조하다.
가람은 개가 주인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어쩌면 주인이 개를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오신 건진 모르겠지만, 이 녀석을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가까이에서 본 남자는 개의 기억보다 조금 더 늙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알아보는 데 무리는 없었다. 가람은 고개를 숙여 오는 그에게 최대한 상냥한 어조로 질문했다.
“제가 괜한 짓을 한 건가요?”
“아닙니다. 저도 찾고 있었습니다. 어디에 있던가요?”
“분수대 옆 가판대가 있는 곳에 있었어요.”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자연스럽게 개를 받아 품에 안았다. 가람은 묘한 기분으로 개를 보았다.
남자의 담담함이야 그렇다 쳐도 개가 너무 조용한 것은 이상했다. 그토록 간절하게 찾던 주인을 만났으니 소리 내어 울지는 않더라도 꼬리를 흔드는 모습 정도는 보여 줄 줄 알았다.
그러나 개는 가람의 품에 안겨 있을 때와 같이 꼼짝도 않고 숨죽이고 있었다.
“음, 주인분 맞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