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아.”
서로를 확인한 순간 가람과 수풀 속의 사람이 동시에 탄성을 터뜨렸다.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가람이 아닌가?”
먼저 인사한 것은 용케도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은 남자 쪽이었다.
안면이 있는 사이라는 것은 확실했지만 이름까지는 기억해 내지 못한 가람이 애매하게 반가운 표정을 짓자 그의 뒤에서 자그마한 그림자가 빠르게 달려 나와 가람을 덥석 껴안았다.
“누나!”
“어허, 제렌. 인사부터 해야지.”
갑자기 품에 파고든 체온을 얼떨떨하게 껴안은 가람은 그것이 남자아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이의 어깨 너머로 남자가 웃으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 그의 옆으로 작은 여자아이와 불안한 표정의 남녀가 다가설 무렵 가람도 남자의 이름을 기억해 냈다.
“고한 씨군요.”
텐트를 나와 패스를 찾으러 가던 중 만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인색한 기사들의 음식 냄새를 맡고 칭얼대는 아이에게 이런저런 음식을 나누어 주었던 기억이 났다.
자세한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리베르튼으로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째서 델리움에 있는 것일까.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 정말 반갑군. 불을 좀 빌려도 되겠나?”
고한의 말에 가람은 흔쾌히 모닥불가의 자리를 권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섯 사람은 몰골이 엉망이었다.
씻은 지가 오래되었는지 가까이 오자 쿰쿰한 냄새가 진동한다. 게다가 고한의 일행으로 보이는 두 남녀는 굶주린 기색이 역력했다.
고한과 그 아들딸도 배가 고파 보이긴 했지만 이 남녀는 정말로 심한 모습이었다.
“일단 이것 좀 드세요.”
너무나 측은한 모습이었기 때문에 가람은 결국 하스펠의 몫으로 끓이고 있던 스튜 열매를 권했다.
그리고 가방에서 열매 몇 개를 더 꺼내어 불 위에 올려놓았다. 지금 익히고 있는 열매로는 한참 부족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매번 얻어먹기만 하는군. 미안하네.”
가람이 내미는 열매를 받아 들며 고한이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가람은 스튜 열매를 찍어 먹을 수 있도록 빵을 꺼내어 건네며 빙긋 웃어 주었다.
“별말씀을요.”
“사실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빈말로라도 사양하기가 힘들다네. 염치없음을 이해해 주게나.”
고한이 그렇게 말하며 빵을 받아 들자 옆에 앉아 있던 두 사람과 아이들도 고개를 숙여 보였다.
“감사합니다.”
“누나 정말 좋아요…….”
눈을 반짝이는 제렌의 말에 가람은 결국 웃어 버렸다. 통통하던 뺨이 꽤 홀쭉해져 있는 것을 보니 며칠 굶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모양이었다.
제렌은 숨도 쉬지 않고 빵을 흡입했다. 엘렌도 비교적 얌전한 모습이긴 했지만 그리 다르지 않았다.
“길이라도 잘못 드신 거예요?”
대체 어쩌다가 이런 처지가 되었단 말인가. 의아한 마음에 가람이 질문하자 빵을 먹던 남녀가 딱 굳었다.
그리고 슬금슬금 눈알을 굴리는 것이 한눈에도 겁에 질린 모습이라 가람은 두 사람의 정체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 심경이 표정에도 드러났는지 그들은 가람의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침묵 끝에 결국 고한이 대답했다.
“은혜를 입었는데 거짓말을 할 수는 없지. 이들은 라일 팔렘시아와 피오린 팔렘시아라네.”
“귀족인가요?”
“그래. 최근 할라트를 받은 소레인 팔렘시아의 조카야.”
가람은 침묵했다. 할라트를 받은 죄인의 인척이었던가. 이들이 이런 몰골이 된 것은 집행자들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였던 모양이다.
피부 위에 말라붙은 생채기들로 그간의 고생을 짐작하며 가람은 불안하게 눈알을 굴리는 두 사람을 응시했다.
워낙 지저분해서 처음에는 몰랐지만 자세히 보니 이제 갓 성인이 된 어린아이였다.
죽을 만한 죄를 저지를 만큼 나빠 보이지도 않는다. 슬쩍 읽은 머릿속에는 집행자들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밖에 없었다.
가람의 침묵이 불길하게 느껴졌는지 두 사람은 먹던 빵을 움켜쥐고 조심스럽게 엉덩이를 들썩였다. 여차하면 냅다 달려 도망치겠다는 생각인 것이다.
“스튜 열매가 끓네요. 한 사람에 하나씩 먹으면 되겠어요.”
그렇게 말한 가람이 열매를 하나씩 나누어 주자 두 사람은 그제야 조금 안심한 얼굴을 했다. 심지어 한 명은 너무 안심했는지 먹던 빵이 목에 걸려 캑캑대기 시작했다.
“라일!”
피오린이 당황한 얼굴로 크게 이름을 외쳤다. 그녀는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가람에게 물을 부탁했고, 가람은 무심결에 옆에 놓여 있던 페트병에 든 생수를 건네었다.
페트병이라는 것이 없는 세계에서 뚜껑을 돌려 여는 방식은 익숙지 않은 것이다.
미끈미끈한 몸체를 황망한 손짓으로 문질거리는 그녀로 인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깨달은 가람이 뚜껑을 열어 주려고 손을 뻗었지만 그보다 피오린의 행동이 빨랐다.
그녀는 단검으로 페트병의 옆구리를 쑤셔 구멍을 낸 뒤 라일에게 급히 물을 마시도록 만들었다.
“이상한 열매로군.”
옆에서 보고 있던 고한이 슬쩍 한마디 했다. 나무로도, 금속으로도, 가죽으로도 보이지 않는 데다 손으로 우그러뜨리면 우그러졌다 펴지니 돌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래서 안에 물이 들어 있는 열매의 일종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재밌는 착각이라서 가람은 가볍게 웃었다.
“딱히 열매는 아니지만……. 그보다 이 사람들과는 어쩌다가 만나게 된 거예요? 원래 델리움으로 가시는 게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가람은 다른 생수를 한 병 꺼내어 뚜껑을 따서 마셨다. 그 모습을 본 피오린이 한 대 얻어맞은 듯 충격적인 표정을 지었다.
망연한 그 시선에 속으로 웃으며 가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생수를 한 병씩 나누어 주었다.
“음, 그렇지. 처음에는 리베르튼에서 귀리를 팔 생각이었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리베르튼에 귀리값이 너무 떨어졌지 뭔가. 국경을 넘어 델리움 쪽으로 가면 좀 더 값이 낫다고 해서 에일즈까지 가기로 했지.”
생수를 받아 들고 신기한 듯 만지작거리던 고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에일즈?”
“벨루스의 북동쪽에 있는 도시라네. 델리움과도 가까운 편이지.”
“팔렘시아도 그 근처에 있나요?”
두 사람의 팔렘시아라는 성을 기억한 가람이 질문했다. 팔렘시아라. 꽤 익숙한 이름이다. 어디에서 들었던가.
“아니, 팔렘시아는 델리움에서 한참 북쪽으로 가야 있는 땅이라네. 델리움에서도 춥고 황량한 곳이지. 두 사람을 만난 건 에일즈에서 귀리를 팔고 나오던 중이었어.
이 두 사람은 팔렘시아에서부터 아래로 계속 도망치는 중이었는데, 내가 야탈카의 상인이라는 것을 알고 음식을 부탁하기에 측은한 마음에 도와주었거든.
그런데 그 모습을 사냥개들에게 들켜 버렸지 뭔가. 그때부터는 나도 한패로 몰려서 같이 도망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네.”
“야탈카의 상인이라는 게 무슨 관계가 있죠?”
“야탈카는 델리움처럼 할라트의 인척까지 박해하진 않거든. 사실 할라트도 안 믿는 사람이 많아. 무서워하긴 하지만 그뿐이지. 재수 없으면 걸리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
애초에 야탈카는 그런 확인되지 않은 미신을 믿지 않아서. 인간들의 일은 인간들의 힘으로. 이게 야탈카인들의 철학이지.
그래서 야탈카 사람들은 할라트를 당한 사람의 인척이라고 해도 불쌍하다는 이유로 도와주기도 해. 혹 도와주지 않아도 적어도 공격하진 않지.”
그렇게 말한 고한은 넉넉한 웃음을 지었다. 그사이 빵을 삼키는 데 성공한 라일이 조금 쉰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때문에 수레도 짐도 잃으신 것은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델리움을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면 후에 이 일은 꼭 은혜를 갚겠습니다.”
“그럴 것 없어. 야탈카 인심이 그렇게 야박하지 않다구. 사 오라던 물건을 몽땅 잃었으니 아내가 바가지를 좀 긁긴 하겠지만, 두 사람을 보면 잘했다고 할 거야.
우리 마을에 가서 숨어 살면 거기까지는 추적해 오지 못할 테니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지 생각이나 하게.”
고한의 말에 두 사람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던 고한이 문득 다행이라는 듯 입을 열었다.
“그래도 리베르튼에 갑자기 마녀가 나타났다면서 사냥개들이 모두 몰려간 덕분에 최근에는 비교적 숨어 다니기가 수월했어. 마녀가 아니라 사실 성녀였다지? 그 일로 리베르튼이 난리라던데 궁금하군.
심지어 그 철혈의 기사 렉시온도 포로로 잡혀 들어갔다던데. 그러고 보니 가람은 어디에서 오는 길인가? 이 소식 들었나? 뭐 아는 것 있으면 말해 주게.”
고한의 말에 가람은 뺨만 긁적였다. 그 몸짓을 아는 게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그는 곧 가볍게 웃으며 스튜 열매를 떠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한쪽에서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 나무를 주우러 갔던 하스펠이 돌아온 것이다.
워낙 기척이 없는 사람이라 다른 사람들이 그를 발견한 것은 그가 수풀 밖으로 나와 몇 걸음 걸어온 후였다.
별생각 없이 모닥불로 다가오던 하스펠은 인원이 늘어나 있는 것에 조금 멈칫했다. 그러나 곧 고한을 알아보고 정황을 짐작하며 모닥불가로 접근했다.
하스펠이 한 아름 안고 있는 장작 탓에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슬쩍 보이는 머리꼭지의 색을 보고 고한이 빙그레 웃었다. 오빠가 어디로 갔나 했더니 나무를 하러 갔던 건가.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 반가운 분이 오셨군요.”
불가에 나무를 내려놓으며 하스펠이 나직하게 말했다. 고한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초면인 라일과 피오린에게 하스펠이 가람의 오빠라고 소개했다.
갑자기 낯선 남자가 등장하자 잔뜩 긴장했던 두 사람도 그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하스펠이 장작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는 순간, 그 얼굴을 확인한 피오린이 짧게 비명을 질렀다. 라일도 무섭게 굳은 얼굴이었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얼어붙어 달달 떨며 겁에 질린 눈으로 하스펠을 바라보았다.
등 돌린 모습이라 미처 보지 못했던 남자의 얼굴은 지금 그들이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중 하나였다.
새벽의 기사.
믿기지 않는 현실에 라일과 피오린은 악몽을 꾸고 있는 느낌이었다.
절망과 공포 속에서 두 사람은 도망칠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다가올 미래를 끔찍한 기분으로 응시했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하스펠은 검을 뽑지도, 무서운 표정으로 그들을 노려보지도 않았다.
그저 조금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꺼져 가는 모닥불에 주워 온 나뭇가지를 던져 넣을 뿐이다.
설마 아닌가?
아주 찰나 두 사람의 머릿속으로 같은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 가정은 강하게 부정되었다. 두 사람은 팔렘시아에서 기사 훈련을 받을 때부터 그를 알고 있었다.
하스펠은 어릴 때부터 장래가 기대되는 기사였고, 팔렘시아에서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때 그가 팔렘시아에서 훈련받은 기사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만나고 싶지 않은 악몽에 불과했다.
“저는 이제 집행자가 아닙니다.”
하스펠의 담담한 말에 두 사람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람은 그제야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채고 짧게 혀를 찼다. 침착한 척하고 있었지만 하스펠의 뺨이 가늘게 경련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정말로……?”
피오린의 미심쩍어하는 말에 하스펠은 대답 대신 스튜 열매를 퍼 먹기 시작했다.
그가 검을 뽑을 생각이 없어 보이자 두 사람은 조금씩 불안을 떨쳐 갔다. 그러나 경계까지 지운 것은 아니었다.
피오린은 언제든지 뛰어 도망칠 수 있게 엉덩이를 멀리 뺀 상태였고, 라일은 여차하면 뽑을 수 있도록 검 자루에 손을 올려 둔 자세였다.
그의 실력으로는 하스펠의 칼받이가 되는 것이 고작이겠지만 적어도 피오린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 줄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정말이에요. 그는 이제 델리움의 기사가 아니에요. 그리고 사실 제 오빠도 아니에요. 그냥, 음, 일단은 동행이라고 해 두죠.”
가람의 말에 놀란 것은 고한이었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닮은 두 사람에게 번갈아 시선을 던졌다.
무언가 묻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지만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꺼낼 만한 화제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는지 잠자코 입을 다무는 쪽을 선택한 것 같았다.
“그리고 저는 할라트도 믿지 않아요.”
가람이 그렇게 덧붙이자 피오린이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갑자기 다급한 표정으로 가람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말인가요? 정말로 믿지 않으시나요?”
“네. 믿지 않아요.”
“아…….”
피오린은 눈물을 글썽이며 두 손을 모아 쥐었다. 사실 그 말은 피오린의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울려 퍼지던 말이었다. 동시에 누군가에게서 꼭 듣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고백했다.
“소레인 삼촌은 사악한 짓을 하지 않았어요.”
한 글자 한 글자 호흡에 새길 듯이 강하게 말한 그녀는 다시 한 번 강조하듯 그 말을 반복했다.
“삼촌은 절대로 사악한 짓을 하지 않았어요.”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피오린은 결국 글썽이던 눈물을 뺨으로 흘려보내며 격양된 울음을 터뜨렸다.
“삼촌은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사악한 짓을 하지 않았다고요. 할라트를 받을 만한 어떤 일도 하지 않았어요. 하지 않았다고요. 안 했다고!”
그녀가 외치는 동안 하스펠의 강하게 쥐어진 주먹에는 핏물이 맺혔다. 그가 수없이 많이 들은 이야기였다.
단죄를 하는 순간 죽어 가던 죄인은 절규하며 스스로의 죄를 부정했다. 당시에는 코웃음 쳤었지만 지금은 차라리 벼락에 맞는 것이 나을 것 같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그래요. 내 생각도 마찬가지예요.”
“나도 그렇다네.”
가람의 목소리에 고한의 말에 얹어졌다. 피오린은 한참 동안 흐느껴 울었다. 체력을 아끼기 위해 울음조차 참아야 했다.
그러나 하스펠을 본 순간 그 슬픔이 모두 폭발한 것이다.
가람은 절절하게 피오린의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라일은 그저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떨궜다.
음식을 먹던 두 꼬마도 숨죽인 채 눈치를 살핀다. 고한은 입맛이 쓴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이 알던 새벽의 기사는 벨루스 영애를 징벌하던 중 죽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그저 어리석은 과거를 가진 검사일 뿐입니다. 제 과거의 어리석음을 반복하고 있는 델리움의 기사들을 대신해 사죄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한 하스펠은 아주 정중하게 피오린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어 보였다. 피오린은 멍하게 그 모습을 보았다.
과거, 꿈속이었나 싶을 정도로 멀게만 느껴지는 과거에는 델리움의 기사들이 이렇게 무릎을 꿇어 보였던 적이 있다.
성스러운 팔렘시아의 영주와 그 친족들에게 보이는 경의였다.
그러나 삼촌에게 할라트가 내려진 후에는 다시는 이런 예를 받을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과거의 영광스러운 기억과 현재의 비참함, 그리고 하스펠에게 향하는 복잡한 감정이 뒤얽혀 피오린은 망연히 그를 바라보았다.
라일의 뺨에는 결국 참지 못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 사람이 한참 동안 울고 나자 분위기는 가라앉긴 했지만 한층 안정되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침묵 사이로 모닥불의 불똥만 신이 나서 떠든다.
두 꼬마는 오랜만에 안전한 장소에서 몸을 피하게 된 덕분인지 오리들의 깃털에 휩싸여 잠에 빠져든 지 오래다. 이불과 쿠션은 기꺼이 작은 인간들을 품어 주었다.
“덮어요.”
아래쪽 지방인 야탈카나 리베르튼에 비해 델리움의 밤은 추웠다. 이불도 없어 보이는 이들이 아직 감기에 걸리지 않은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가람이 건네는 담요를 받아 든 두 사람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신기한 가죽이었기 때문이다.
“이건…… 무슨 가죽인가?”
고한이 놀란 표정으로 가람에게 질문했다. 이곳저곳 다니며 여러 물건을 많이 접하는 그도 처음 보는 가죽이었다.
마치 직물처럼 가벼웠지만 털이 촘촘하게 박힌 것을 보아 가죽이 분명했다. 심지어 털은 양면으로 나 있었다.
“극세사예요.”
고한이 가죽이라고 착각한 것은 바로 극세사 담요였다. 가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고한은 묘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극세……? 처음 듣는 가죽이군. 어떤 동물의 가죽인가?”
가람은 가죽이 아니라고 설명하려다가 대화가 길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되는대로 둘러대기로 결정했다.
극세사가 어떤 동물에게서 만들어지는가 하고 생각하던 가람은 곧 가볍게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