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패스파인더-245화 (245/256)

46화

“용이에요.”

“농담이겠지?”

고한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경악했다. 피오린과 라일도 마찬가지로 기겁한 표정이었다.

가람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어깨를 으쓱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사람에게도 담요를 나누어 주었다.

극세사는 나일론과 폴리에스테르 혼방으로 만들어지고, 나일론은 석유에서, 그리고 그 석유의 재료는 공룡이니 따지고 보면 용으로 만든 것이니까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대답이 나오면 오히려 말문이 막히는 법이다. 고한과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없이 멍하게 이불을 받아 들고 그것을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모든 사람에게 용으로 만든 이불을 하나씩 나누어 준 가람은 쿠션의 날개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리고 부드러운 오리털에 몸을 묻고 잠을 청했다.

고한과 피오린도 이불의 날개를 덮고 잠이 들었다. 잠들지 않은 것은 라일과 하스펠뿐이다.

라일은 여전히 경계 어린 태도로 하스펠을 응시하며 모닥불을 지켰고, 하스펠은 잠이 오지 않는다는 말로 불침번을 자처했다.

사실 이미 마법을 깔아 두었기 때문에 불침번은 설 필요가 없었지만 딱히 지적하고 싶지 않았던 터라 가람은 침묵했다.

무언가 대화가 오갈 거라고 생각했던 가람의 예상과 달리 두 사람은 새벽이 밝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작별 인사를 할 때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짧은 만남 후 가람의 여행 물품을 나누어 받은 그들은 남쪽으로 떠났고, 가람은 다시 북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스펠은 아주 오랫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 * *

고한과 헤어진 후 하스펠은 며칠 내내 기분이 저조해 보였다. 팔렘시아의 두 남매가 그에게 별로 반갑지 않은 기억을 불러일으킨 것이 분명했다.

가람이 말을 걸긴 했지만 짧게 대꾸하는 것이 고작이었고, 먼저 입을 여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건넨 질문인 만큼 가람은 상냥하게 대답해 주고 싶었지만 그 내용이란 것이 하필이면.

“혹시 죽은 이를 되살릴 수도 있습니까?”

또박또박 걷던 쿠션이 우뚝 멈춰 섰다. 가람이 저도 모르게 고삐를 강하게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옆에서 걷던 이불도 덩달아 걸음을 멈췄다.

갑자기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두 마리 오리가 의아한 시선을 교환했다. 슬쩍 움찔거리는 보드라운 날개깃이 가람과 하스펠의 다리를 간지럽혔다.

“그렇다면요?”

짧은 침묵 끝에 가람이 우울하게 되물었다. 언젠가는 이런 질문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겪으니 생각보다 충격이 더 강했다.

그의 질문은 가람이 저질렀던 최악의 실수 중 하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속수무책으로 가라앉는 기분에 가람은 그것을 바로잡을 의지조차 가질 수 없었다.

“저는 그저…….”

가람의 어두운 분위기에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던 하스펠이 입을 꾹 다물었다. 가라앉은 시선이 그를 똑바로 응시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느끼는 위압감이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구멍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에 하스펠은 아찔해졌다.

“말해요.”

가람이 낮게 말했다. 하스펠은 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아도 가람은 이미 자신의 속내를 다 알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는 결국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고백했다.

“제가 죽였던 할라트의 죄인들을 살려서 사죄하고 싶습니다.”

익히 예상했던 말이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가람이 툭 내뱉는다.

“실망이군.”

서리처럼 차가운 말에 하스펠은 한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실수했다.

자신이 어리석은 소리를 했음을 깨닫는 동시에 그는 겁에 질렸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굳어 버린 그의 위로 가람의 날카로운 말이 떨어져 내린다.

“만약 그들을 되살린 뒤 용서받아 편해지고 싶은 마음이라면 안일하기 짝이 없는 회피에 불과하다고 말해 두죠. 당신의 과오를 되돌리도록 도울 이유도 없고, 돕고 싶지도 않아요.”

“편해지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하스펠은 덜덜 떨면서도 항변했다.

“그저 제 어리석음이 불러일으킨 비극을 바로잡고 싶을 뿐입니다.”

“어리석었던 자신의 실수를 바로잡고 싶은 거겠죠.”

가람과 하스펠이 동시에 말했다. 그는 멈칫해서 입을 다물었다. 가람은 씁쓸한 얼굴로 지친 한숨을 내쉬었다.

“속죄하고 싶다던 그 말은 무엇이었죠? 제게 빌어 잘못을 없었던 것으로 덮고 싶었나요? 그게 당신의 방식인가요?”

하스펠이 피가 배어 나올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가람은 그를 너무 몰아붙였음을 깨닫고 조금 풀어진 어조로 말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요. 최대한 많이 돕고, 착하게 살아요. 팔렘시아의 남매를 쫓아가 도와주는 편도 좋겠지요.”

부드러운 가람의 말에도 불구하고 하스펠은 여전히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부끄러움과 공포, 그리고 약간의 야속함이 담긴 눈동자가 혼란으로 흔들린다.

그 표정은 가람이 익히 알고 있는 것이었다. 한때 자신이 늘 짓고 있던 표정이니까.

사실 그의 생각이 그렇게 모진 소리를 들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는 모를 뿐이다. 가람 자신이 몰랐듯이.

“한때 저도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 싶었던 적이 있죠.”

쿠션의 털을 쓰다듬으며 가람이 탄식처럼 말했다. 좀처럼 듣기 힘든 가람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에 하스펠이 숨죽여 경청했다.

“저 같은 사람에게는 아주 빈번하게 벌어지는 일이죠. 좋아하던 사람이 먼저 죽어서, 그리고 후회해서, 슬퍼서, 복수하고 싶어서 등등. 이유도 아주 다양했어요. 그리고 저는 충분히 실행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죠.”

짧은 침묵.

“그래서 했어요.”

가람은 사라지고 싶은 표정으로 쿠션의 털 사이를 집요하게 응시했다.

패스로 사람을 살리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일반적으로 패스로 비는 소원은 패스파인더의 생각을 기반으로 구축된다. 그러니 패스파인더가 기억하는 그 사람을 물질로서 형상화할 수 있다.

하스펠을 예로 들자면, 가람이 기억하는 하스펠의 외형을 한 고깃덩이가 가람이 아는 성격을 가지고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람이 몰랐던 그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다. 이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두 번째는 그 차원에 잔재하는, 혹은 이미 저승 문을 지난 영혼을 불러들인 뒤 육체를 구축해 불어넣는 것이다.

대부분이 생각하는 부활의 형태가 이것에 해당한다. 첫 번째 방식에 비해 완벽한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는 아주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저승에서 영혼을 꺼내어 온다는 것은 한 방향으로만 작용하는 문을 반대로 꺾어 여는 것이나 다름없다.

처음 한두 번은 제대로 열리겠지만 반복하는 과정에서 경첩에 부하가 걸리고 결국 완전히 망가지고 마는 것이다.

그 경첩의 이름은 죽음이다.

가람은 그런 식으로 한 세상의 죽음을 완전히 망가뜨린 적이 있었다. 전능에 가까운 힘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가람은 진짜로 전능하지는 않았다.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고, 어째서 자신 같은 존재가 생긴 건지도 모른다.

가람은 그저 만들어진 세상을 돌아다닐 뿐이었다. 그러니 세상을 이루는 규칙 자체가 무너졌을 때 가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었다.

그렇게 가람은 죽었던 사람이 모조리 되살아나고 살아 있던 사람이 가끔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혼란스러운 세상을 만든 후 손도 쓰지 못하고 도망치고 말았다.

“사람을 되살리는 건 아주 굉장한 일이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러니 무언가 잘못되면 그만큼 심각해질 수 있어요. 그리고 아무도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없을 거예요.”

필사적으로 수습하려고 했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던 그 절망적인 기분을 떠올리며 가람이 씁쓸하게 말했다.

하스펠이 덩달아 침울해하자 그녀는 일부러 입가에 힘을 주어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에 감사하고 착하게 살아요. 끔찍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도우면서. 그것으로도 꽤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사실 실수는 실수고,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니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며 앞으로의 삶을 돌보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요?”

하스펠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이라도 세상에서 가장 헌신적인 봉사자가 되려는 의지가 두 눈 가득 넘실거렸다.

가람은 그가 과하게 달아오르지 않도록 일부러 농담을 덧붙였다.

“하스펠도 살아 있는 사람이니까 스스로를 돌보는 데도 집중하도록 해요.”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하스펠은 그 말에 몹시 감동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의 번쩍이는 시선이 부담스러워진 가람은 헛기침을 하며 쿠션을 걷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등 뒤에서 무언가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아연해졌다.

가람이 본 것은 자신이 선물한 펜으로 수첩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하스펠이었다.

정황상 지금까지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차후 쓰게 될 성서에 쓰이리라.

알아서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모양이니 걱정할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다 적으면 따라오세요.”

어쩌다가 이런 처지가 되었는가 한탄하며 가람은 뒤돌아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스펠의 저런 태도가 종교인이었던 특성 때문이라는 것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민망한 것은 민망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듯이 저런 짓을 하고 있으니 말리기도 뭣하다.

이래저래 복잡한 기분인 가람의 뒤로 하스펠이 탄 이불이 헐레벌떡 따라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그 후로 하스펠은 한결 풀어진 얼굴로 종종 먼저 화젯거리를 꺼내었다.

그중에는 팔렘시아에서 훈련받던 당시의 이야기들도 있었는데, 별것 아닌 내용이지만 과거에 대해서는 늘 죄책감만 가지고 있던 그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발전이었다.

* * *

“생각보다 음침한 도시군요.”

리베르튼을 떠나 북쪽으로 걸은 지 25일이 되었을 무렵, 델리움을 눈앞에 두게 된 가람의 감상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흐린 하늘 아래 물안개에 잠긴 델리움은 신성 도시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음울한 분위기가 풍겼다.

“그래도 저는 처음 왔을 때 신비로운 곳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스펠이 작게 말했다. 두 사람은 지금 델리움 관도 인근의 숲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예전에 들었던 고한의 말에 따르면 소문이 생각보다 빨리 퍼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만약 인상착의가 알려졌다면 가람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되도록 델리움의 군사를 피해야 했다.

“좋게 생각하면 뭐든 다 좋아 보이죠. 어쨌든 습기가 많아서 좀 찜찜한 곳이네요. 바다도 없는 내륙인데 왜 이렇게 습한 거죠?”

“바로 북쪽에 커다란 호수가 붙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도시의 식수를 해결하고 있죠.”

“으음.”

델리움 안쪽을 가리키는 손등의 바늘을 바라보며 가람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쨌든 델리움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아직 날이 환해서 들킬 위험이 있으니 가람은 숲에서 시간을 좀 보내기로 결정했다.

설령 자신에 대한 소문이 퍼지지 않았다고 해도 하스펠의 얼굴은 꽤 알려져 있을 것이다.

관도에서 좀 떨어진 인근 숲에서 가람과 하스펠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해가 졌을 때, 마법으로 모습을 감추고 성벽을 날아올라 델리움의 거리에 스며드는 것에 성공했다.

이대로 행인들에게 섞인다면 들킬 위험은 아주 적다고 할 수 있었다.

델리움은 생각보다 매우 평범한 도시였다. 도시를 순찰하는 치안대의 숫자가 다른 도시의 세 배 정도라는 것을 빼면 여타 도시들과 다를 바가 없다.

조금 실망스럽게 사방을 둘러보던 가람은 문득 풍겨 오는 먹음직스러운 냄새에 인근 가판대로 걸음을 옮겼다.

쇠로 만든 수레에 기다란 화로를 걸어 놓고 그 위에 고기와 작물을 간단하게 요리하거나 구워서 파는 곳이었다. 술도 함께 파는지 둘러선 사람들의 뺨은 벌써 발그레했다.

주점과 달리 이런 곳은 누군가에게 관찰당할 위험이 적다. 등 뒤로 스쳐 가는 행인들이 주의를 분산시켜 주기 때문이다.

게다가 먹고 있는 사람 대부분이 취객들이라는 점도 가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가람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움직이는 가판대 주인에게 양념을 발라 구운 새 두 마리를 주문했다.

발견당하는 일이 없을 거라는 가람의 생각과 달리 가판대에 다가설 때부터 그녀를 미심쩍은 얼굴로 살피는 순찰병이 있었다.

그는 순찰병 중에서도 감이 빠른 사람으로, 언뜻 스쳐본 가람의 인상착의가 동료에게 전해 들었던 리베르튼의 마녀와 매우 흡사함을 깨닫고 그녀를 예의 주시하는 중이었다.

“왜 그래?”

우두커니 서서 한곳만 바라보는 그에게 지나가던 동료가 의아한 얼굴로 다가선다. 그는 가람에게 눈을 떼지 않으며 대꾸했다.

“저 여자. 그 마녀랑 꽤 인상착의가 맞아 들어가는 것 같은데.”

“마녀? 리베르튼의 그 마녀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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