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익숙함, 거기서 1만큼 떨어지기
어려서부터 상당한 강견으로 소문이 났었다.
부모님께서 내려주신 기형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유연성 덕분에 운동 선수로서 중요한 피지컬 또한 뛰어났다. 중학교 2학년 때 180cm를 찍은 뒤 현재의 피지컬은 188cm에 몸무게는 107kg.
피지컬보다 더 중요한, 특히 야구 선수로서 더더욱 중요한 Baseball Quotient, 즉, 야구 지능 또한 대단했다.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고, 또 판단해야 하며 또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지능이 아니라 본능에 가까웠다.
그중 투수에게 조금 더 특화된, 실존하지 않지만 뭐라 대체할 단어가 없는 손끝의 감각 또한 대단했지. 못 던지는 변화구가 없었다.
커브는 어떻게, 스플리터는 어떻게, 심지어 너클볼은 어떻게 던지는 거야, 라는 대략적인 설명을 듣자마자 던진 공은 확연한 변화를 보이며 비행했다.
일반적인 투수는 구종 하나를 프로 씬에서 써먹기 위해 3년을 연습한다는 이야기는 내 앞에서 3분이면 충분했다.
당연히 고교 투수들 중 최고였다. 자연스럽게 1차 1지명이라는 자랑스러운 픽으로 프로에 입단했다.
구속이 상당히 느린 편이긴 했지만 프로에 입단해 프로의 몸 관리, 그리고 벌크업과 트레이닝으로 구속과 구위는 당연히 오를 거라는 기대와 함께.
근데 딱 거기까지였다. 딱 거기까지.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입단한 프로 첫해는 탈탈 털렸다. 처절하게.
처음이니까, 고졸 첫해니까 그럴 수 있어.
2년째라고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심각했지. 그리고 시즌 말미에 얻은 어깨 통증. 수술. 괴물 같은 ‘회복력만’ 보인 뒤 3년 차 말미에 얻은 팔꿈치 통증. 수술.
또 말도 안 되는 ‘회복력만’ 보여준 뒤 4년 차 시즌 마지막 등판에서 투수 직선타에 무릎 직격. 또 수술. 또 말 같지도 않은 ‘회복력만’ 보여준 뒤 5년 차.
그래, 계속 수술, 재활로 감이 없을 수 있어, 괜찮아. 6년 차, 7년 차, 8년 차…….
그렇게 시작된 올해 9년 차. 시즌 끝나고 FA 권리? 개소리. 권리 행사를 하지 않은 팀에 대한 헌신? 개소리.
매커니즘이 좋으니 프로에 입단하면 오를 거라 생각하던 구속은 그냥 그 상태였고, 딴에 유망주라고 이리저리 혹사, 그리고 부상으로 인한 구위는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
다양한 그리고 확실한 변화구는 고등학교 레벨 이야기였다. 프로는 달랐다.
제구가 아무리 좋아서 포수가 원하는 곳에 핀포인트 커맨드가 된다고 한들, 미트에 폭― 소리 나는 직구와 고등학교 수준의 변화구 따위는 어림도 없었다.
존에 들어가면 통타당했고 유인구로 빼면 밋밋한 공을 타자들은 지켜보기만 했다.
당연히 피안타, 피홈런, 볼넷의 파티의 뒤풀이는 대환장파티였다.
띠링―!
[투구의 첫걸음, 제구]
- 포수가 원하는 곳에 투구하세요. (5/5)
- 보상 ― 포심 +1
“…….”
불펜 포수 건영이가 들이대는 곳에 족족 들어간 공 다섯 개. ‘제구는’ 뛰어난 내겐 상당히 쉬운 퀘스트였다.
익숙한 인터페이스만큼 익숙한 효과음이 들리며 인터페이스가 갱신되었다.
[선수 정보]
이름 : 김한울
나이 : 28세
연차 : 9년 차
포지션 : 투수
시즌 성적 : 67게임 61.1이닝 7.42 2승 11패 4홀드 1세이브 22삼진 31볼넷 0사구 WHIP 1.51
[선수 능력치]
제구 ― 최상
구위 ― 최하
체력 ― 하
직구 ― 24+1=25
커브 ― 31
슬라 ― 18
스플 ― 23
체인 ― 29
싱커 ― 24
특성 ― 해탈
음. 내가 봐도 스탯 상향이 시급하다. 그 와중에 특성 뭐야. 해탈 뭔데.
[해탈 : 어떤 상황에도 그러려니 합니다.]
절로 면상이 일그러지는 특성 설명이다.
빠빠빠빠빠―!
아, 이닝 교대다.
“형, 힘내요.”
“아, 잠깐만.”
이닝 교대 상황이 되어서일까, 당연하게 빠르게 불펜을 나설 줄 알았던 건영이가 응원한다. 하지만…….
“하나만 더 던져볼게.”
“네? 아, 네.”
이닝 촉진 룰 때문에 시간이 별로 없다. 원래대로라면 바로 천천히 걸어가지만 오늘은 다르다. 뛰어나가도 된다. 이게 더 중요해.
다른 누구도 아닌, 투수 본인이 본인의 루틴을 깨는 모습에 건영이가 더 당황하며 엉거주춤 다시 마스크를 썼다.
오늘 첫 연습 투구와 같이 글러브의 손등이 하늘을 향해 까딱였다. 건영이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우타자의 바깥쪽 중간 높이에 미트를 보인다.
시간은 없지만 투구까지 서두를 필요는 없다. 루틴을 깰지언정, 20년 반복해 온 이 폼을 깨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되니까.
왼발을 올림과 동시에 시선이 미트로 향한다.
어?
어딘가, 몸이 다른 것이 느껴진다. 허리 회전도, 손목의 움직임도, 손끝의 감각도.
틱―
볼집으로 받지 못하고 미트의 윗 입술 쪽에 공이 맞고 미트 안으로 들어갔다.
제대로 포구되지 않은 공이 볼집에 가만히 있을 리가 없기에, 몇 번 회전하다가 퉤― 하고 공을 다시 뱉어냈다.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단순한 포구 실수로 볼 수도 있지만, 난 확실히 알 수 있다. 느껴졌다. 직구 스탯 1이 올라갔다는 게.
“야, 김한울, 뭐 하냐!”
“죄송합니다!”
마운드로 나오지 않자 투수 코치님이 다급하게 불펜까지 내려와 채근한다. 일단 내가 잘못한 건 맞기에 서둘러 뛰어 마운드로 향했다.
그 길목에서 투수 코치님이 날 부른다.
“뭐 하고 있길래 안 나와?”
“죄송합니다. 뭐 좀 해볼 게 있어서.”
“뭐?”
“그…….”
마땅한 변명거리가 생각이 안 나는데. 대충 둘러대자.
“직구 구위 좀 어떻게 해보려고 했습니다.”
“뭘 했는데.”
“좀 더 릴리스 포인트를 끌고 나와봤습니다.”
“음…….”
이런 와중에도 이닝 교대 시간은 계속 지나간다. 하지만 투수 코치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약간의 생각에 빠졌다.
“좋은데, 제구가 먼저야. 알지?”
“예.”
“고생해라.”
이러니저러니 해도 날 제일 많이 챙겨주시는 분들 중 한 분이다. 그 마음, 왜 모르겠습니까.
와아아아아―!!
일단은 한 팀에서만 9년째 뛰고 있지만 유명세 자체는 그리 뛰어나지 않다. 팀 라이트 팬층 사이에선 이냥저냥 폐급 투수 정도로 인식되는 정도.
나름 팀 사정에 대해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는 있는 정도
팀에 대한 헌신! 사랑! 애정! 희생!
지랄하네.
시즌 중반 즈음, 올 시즌이 끝나고 FA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거란 인터뷰에 달린 댓글들의 내용들.
하지만 가끔 팩트 폭력배는 있기 마련이고, 그 팩트 폭력배의 댓글에 달린 비공감의 개수가 날 참 웃프게 했다.
“뭐 했어요?”
“아니, 잠깐 뭐 좀 하느라.”
“공 많이 못 던질 텐데요?”
“세 개면 돼.”
“네네.”
팀의 주전 포수인 문규학.
전형적인 수비형 포수다. 콜링, 캐칭, 블록, 스로잉 모두 만점에 가까운 스케일을 가지고 있지만 타격은 뭐… 내가 해도 이것보다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
하지만 거의 10년 가까이 리그 자체가 포수난을 겪고 있는데, 규학이보다 나은 포수가 몇 없다는 게 참 다행이라고 할 만한 점이자 걱정스러운 점이다.
규학이가 홈 플레이트 뒤로 가 앉았다. 불펜에서처럼 커브를 던질 거란 수신호를 주고 던진 커브, 그리고 싱커를 던질 거란 사인을 주고 던진 싱커는 규학이가 댄 곳에 정확하게 박혔다. 미트가 1mm도 움직이지 않고.
그리고 시간상, 이번이 마지막 연습 투구가 될 것 같다. 직구를 던질 거란 사인을 주고 던진 직구를,
탁―!
놓쳤다. 못 잡았다.
포수의 연습 투구라고 할 수 있는 2루 도루 저지 연습.
2루수가 받고, 3루수가 받고, 1루수가 받고, 유격수가 받아 나에게 던져준다. 그때쯤이면 딱 타자가 배터 박스에 들어오고 구심이 플레이 콜을 외치는데…….
“아, 죄송해요.”
다행스레 그리 멀리 튕겨 나가지는 않았고 곧바로 공을 주워 얼른 2루로 던졌다.
워후, 강견이야. 내 직구보다 빠른 것 같아.
그 이후는 언제나와 같았다. 공을 이리저리 만져보다 이상한 부분이 없음을 확인하고 피처 플레이트를 밟았다.
상대 팀의 8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옴을 확인한 구심이 손가락으로 내 쪽을 가리키며 플레이를 외쳤고 내 눈은 규학이의 다리 사이로 향했다. 사인.
몸쪽 낮은 쪽 직구, 바깥쪽 낮은 직구, 몸쪽 높은 직구, 세 번을 젓고 나온 사인은 바깥쪽 낮은 커브.
고개를 끄덕이고 그립을 고쳐 쥐었다. 검지 손가락을 타고 날아간 커브는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고 규학이가 대고 있는 미트를 향했다.
따악―!
“…….”
폭― 하는 소리를 기대했지만 결과는 잘 맞은 3루수 직선타.
허.
고작 8번 타자 따위가 내 공을 맞춰냈다. 맞춘 정도에서 끝난 게 아니라 그냥 작살 냈다. 실투도 아니고, 내 기준에선 잘 꺾였고 제대로 제구된 공을.
서드 정면으로 가서 망정이지, 타구 각도가 살짝 높았다면?
“…으.”
홈런이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타구다.
괜한 소름에 어깨를 부들부들거리곤 1루수 기성이가 건네주는 공을 받았다.
그리고 9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고 다시 규학이의 사인을 보았다.
몸쪽 높은 직구, 몸쪽 낮은 직구, 그리고 몸쪽에서 몸쪽 볼로 떨어지는 싱커에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와인드업. 그리고.
따악―!
“…….”
또 잘 맞은 타구. 볼이었는데.
치지 말라고 던지는 구역이 볼 존이다. 즉, 안 쳐도 되는 공.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있는 힘껏 잡아당겨 좌익수 플라이를 만들어냈다. 기록지 상으로나 좌익수 플라이지, 좌익수 라이너나 다름없는 타구였다.
“타, 타임 부탁드릴게요.”
“타임!”
2아웃 잘 잡았는데. 갑자기 타임을 부르곤 마운드에 올라왔다.
“왜?”
“형, 왜요?”
“뭐가.”
“왜 직구 안 던져요.”
“뭐…….”
“직구 좋아요, 오늘.”
“아부는.”
“아뇨. 진짜로.”
“…….”
얘도 뭐 느낀 건가.
“이제 1번이에요. 최우석.”
“알아.”
“얘는 진짜 넘어갈 수도 있어요.”
“질 건데 하나 넘어간다고 다르냐.”
“형!”
“…알았어. 내려가.”
불만이 약간 섞여 있는 듯한 표정으로 규학이가 다시 내려간다. 이내 상대 팀에서 가장 잘 치고, 또 리그 슈퍼스타인 최우석이 타석에 들어섰다.
타율은 2할 9푼 2리.
타율은 썩 애매하게 좋은 편이지만 1번 타자로서 4할을 훌쩍 넘기는 출루율과 5할을 훌쩍 넘기는 장타율은 1번 타자임을 무색하게 하는 타자이다.
그리고…….
씨익―
녀석은 타석에 들어와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그리고 나도 씨익, 웃어주었고.
플레이 콜이 떨어지고 첫 사인은 몸쪽 직구.
팍!
“스트라이크!”
몸쪽 낮은 쪽, 정확하게 들어간 직구. 타자는 치러 나가다 움찔거리며 동작을 멈추었다. 5초 전의 포수와 타자의 표정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그다음은 바깥쪽 낮은 직구.
팍!
“스트라이크!”
여지없이 올라가는 구심의 오른손. 이번엔 볼이라고 판단한 건지, 잡 동작 하나 없이 지켜보기만 하다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번엔 몸쪽 높은 쪽으로 직구.
“흡!”
팍!
부웅―!
이쯤 되는 기합 소리면 아마 중계 카메라에도 들리지 않았을까.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진 직구가 규학이의 미트에 꽂힌 뒤 타자의 배트가 돌아갔다.
그보다도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타자의 반대편, 우 타자석의 메시지였다.
띠링-!
[투수의 꽃, 삼진!]
- 타자에게 삼진을 빼앗으세요. (1/1)
- 보상 ― 포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