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1,500만 원짜리 투자
- 이 타구는! 승부의! 쐐기를 박고! 역대 시즌 최다 홈런을 경신하는! 박해진의! 만루 홈런입니다! 점수는! 11 대 2! 상수 타이거즈!!
- 아, 이건 정말. 뭐라 할 말이 없네요. 김한울 투수의 공도 나쁘지 않았어요. 여태까지 봐왔던 공을 생각한다면 아주 좋은 공이죠. 보세요, 몸쪽 낮은 쪽에 볼을 줘도 할 말이 없게, 꽉 찬 공이잖아요. 저걸 저렇게 잡아당겨 가지고 넘길 거라는 걸 대체 누가, 어느 투수가, 포수가 예상하겠어요!
- 홈런을 너무 많이 쳐와서 그런가요? 베이스를 도는 표정이 덤덤하네요, 허허.
얼마 지나지 않아 포털 사이트에 뜬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았다. 덤덤하게.
그리 막 서글픈 감정 같은 것도, 분한 감정도, 억울한 감정도 없다. 정말로.
만약 다른 녀석에게 저런 공을 저렇게 맞는다고 하면 약간의 분한 감정이라도 생겼을지도 모르지. 나름 혼이 담긴 직구였으니까.
근데 박해진이라 그런 걸까.
문득 공을 던지고, 또 청량한 소리와 함께 빠른 속도로 내 시야로부터 벗어나는 타구가 생각났다.
영상이 끝나고 광고가 나오자 주저 없이 화면을 끄고 핸드폰을 엎었다.
시즌 54호.
박해진이라는 타자는 그렇게 한국 홈런 신기록을 세웠다. 나한테서.
덕분에 몇 년간, 혹은 절대 깨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기록의 희생양이 되었다.
아마 두고두고 회자될 이 그림에서 나는 박해진이라는 슈퍼스타를 빛내준 조연으로 남겠지. 기록으로도, 영상으로도,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후우…….”
깊게 들이마셨던 담배 연기를 후우, 뱉어내니 좀 착잡했던 마음이 가시는 것 같다.
덤덤하지 않았냐고?
덤덤과 착잡은 다른 경계에 있는 감정이다. 분함, 억울함이 없다고 착잡함까지 없으라고 하면 그건 감정을 못 느끼는 기계한테서나 따질 수 있겠지.
나도 사람인데. 그러니까 이 모양이고.
그렇게 시즌이 끝났다. 박해진에게 만루 홈런을 처맞고 허탈하게 웃던 내게 다가온 투수 코치님은 묘한 표정으로 내 어깨를 두드렸다. 그게 올 시즌 내 마지막 등판이었다.
그렇다고 각 팀들의 마지막 시합은 아니었다. 남은 몇 경기에서 박해진은 홈런 세 방을 추가해 숫자를 57로 늘렸다.
제멋대로 홈런왕의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하며 시즌 MVP까지 사실상 확정을 지었다. 어찌 보면 그 57번째의 희생양이 내가 아님에 감사해도 되는 걸까.
“한울 씨.”
“예에.”
멍청히 앉아 있던 내 옆에 누군가 다가와 앉았다. 스윽 하고 시야 한편에서 나타나는 캔 커피를 망설임 없이 받고선 바로 땄다.
칙-
소리와 함께 캔커피의 달달한 향과 쌉싸름한 향이 풍겼다. 아 또 담배 땡기네.
주머니에서 은근슬쩍 담배 하나를 더 꺼내 입에 물자,
“너무 줄담배 아닙니까.”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는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주었다.
“남이사요.”
나 또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과 몸짓, 표정을 모두 이용하여 감사함을 표시했다.
“진짜로 FA 안 나가요?”
“나가면 새 될 거 뻔한데 뭐 하러요.”
“음.”
권영진.
이 사람은 구단 직원이다. 정확한 나이는 모르지만 30대 초반으로 알고 있다. 비교적 젊은 나이지만 구단 요직에 앉아 있는 사람.
이유는 모르겠지만 날 알게 모르게 챙겨주는 사람이기도 하고.
“왜 새가 돼요.”
위로랍시고 하는 건지.
헛헛한 웃음을 짓고 내 나름의 논리를 펼쳐 보였다.
“저 같아도 저 같은 투수 안 써요.”
통산 방어율 6점대.
이 한마디로 모든 게 설명된다. 다른 팀 가면 그냥 볼 것 없이 바아아로 방출감이다.
“그건 다른 팀 입장이잖아요.”
“우리라고 다르겠어요? 영진 씨 앞이니까 이런 소리 하지, 저도 솔직히 부담스러워요. 왜 안 내보내는지.”
“내보내 드려요?”
갑자기 그렇게 명치를 때리면…….
묵직한 한 방에 인상만 찌푸리고 있자 영진 씨는 꺄르륵 웃곤 말을 이어갔다.
“냉정하게 다른 팀 입장이라면 한울 씨 이야기가 맞죠. 하지만 챌린저스잖아요. 이거 하난 확실해요. 김한울이라는 투수가 지금까지 이어온 역할은 절대 아무나 못 해요.”
그냥 쩌리 투수라는 표현을 뭐 저리 길게 하시남.
“지금까지의 보상이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아요?”
“그렇게 낙관적으로만 생각하시다가 한번 크게 당하시지 않았어요?”
1차 1지명.
그 대단한, 1년에 단 한 명만이 가질 수 있는 상징성을 가능성‘만’ 가지고 있던 나에게 부여했다. 본의 아니게 난 그 상징성을 배신한 셈이고.
“그나저나 웬일이에요? 영진 씨가 여기까지 오고.”
“아, 그냥 선수들 얼굴이나 볼 겸해서요. 심심해서.”
“너무 날로 드시는 거 아닙니까.”
“가끔 날로 먹는 날도 있어야죠.”
시답잖은 농담에 둘이서 피식피식 웃다가 그 웃음이 잦아들었을 때, 영진 씨는 진지한 표정으로,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새로운 주제를 꺼냈다.
“…앞서 이야기는 그냥 농담에 가까운 얘기구요.”
“예.”
“사실 오늘 목적은 한울 씨예요.”
“…….”
음. 내가 예상하는 그건가.
어느 정도 이 이야기의 시나리오가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저절로 고개가 앞뒤로, 천천히 흔들린다.
‘내보내드려요?’라는 말.
결코 가벼운 말이 아니다. 이리저리 날 챙겨줬던 영진 씨라면 아마 설득 정도는 해줬겠지.
지금까지 팀에 보내온 헌신, 그리고 팀이 그에게 요구했던 것들과 그가 그에 대해 얼만큼 이행해 왔는지.
옆에서 영진 씨가 하는 얘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이제 새롭게 시작될 제2의 인생에 대해 설계를 가볍게 해보기 시작했다.
나름 1차 1지명이라는 타이틀 덕인지 계약금은 빠방하게 받았고, 거의 10년 전 이야기라곤 해도 그리 씀씀이를 크게 써오진 않았기에 모아둔 돈은 꽤 있다.
레슨장이나 차릴까. 아님 다른 사업을 해야 하나. 구단 직원 쪽 자리라도 알아봐 달라 해볼까.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던 중,
“한울 씨?”
“예?”
“듣고 있어요?”
“아… 죄송해요. 앞으로 무슨 일 할지 잠깐 생각하느라.”
이 말에 영진 씨의 눈이 동그래진다.
“진짜 나가시려구요?”
“예?”
이번에 내 눈이 동그래졌다.
“…….”
“…….”
“죄송해요. 한 번 더 얘기해 주실래요?”
“그러니까… 한울 씨가 FA 권리 행사를 안 하셨잖아요?”
“그쵸.”
“윗분들이 한울 씨를 좋게 보시더라구요.”
왜요?
라는 말이 순간 튀어나올 뻔했으나 겨우겨우 참아냈다.
“아시다시피 FA 권리 행사를 안 하셨으니 단년 계약으로 내년 시즌 돌입하실 거예요. 해서 연봉은…….”
거기까지 말을 마치고 주위를 슥 둘러보곤 내 귓가에 입을 가져왔다.
“…….”
“어때요?”
1.5배였다. 이전 연봉의.
사실상 야구 선수로의 최저 연봉에서 쬐끔 위 정도였던 연봉이었다. 거기서 갑자기 1.5배가 뛴다고?
“왜요?”
이 타이밍쯤이면 이 말을 꺼내도 되겠지.
“뭐가요?”
“왜… 방출 안 시켜요?”
“진짜 나가고 싶으세요?”
“나가기 싫으니까 물어보죠. 아니, 아까 얘기했잖아요. 나 같아도 나 같은 투수 안 쓴다고. 닥치고 연봉 삭감에 사인해라 해도 예, 감사합니다, 할 판에 연봉을 올려준다구요?”
“일단… 아직까지 원팀맨이시고. 또 팀 내 리더 역할 잘해 주고 계시고. 또…….”
한마디로, 성적 빼고 다 좋다. 이거였다.
“그리고… 요건 진짜 비밀이에요. 한울 씨 입 무거운 거 아니까 하는 얘긴데, 장차 코치직까지 앉힐 생각인 것 같던데요?”
“코치가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자리였어요?”
“전 모르죠.”
이래서 비선출들이란.
“아니… 예. 그래요. 예.”
“일단 시즌 고생하셨어요. 내년 시즌 준비 잘 하시구요. 다음에 뵐게요.”
사실 1.5배까지는 아니었지만 본인의 입김으로 1.5배까지 올려줬으니 다음에 김치찌개나 사달라는 깜찍한 생색을 내곤 영진 씨는 돌아갔다.
* * *
“…야.”
“왜.”
“넌 너 같으면 나 쓰냐.”
“뭐에.”
“계투진에.”
“미쳤냐?”
“개새끼가.”
“잘 던지든가.”
오늘만 두 대째 맞는 명치.
“나한테 삼진 처먹은 새끼가.”
나도 한번 때려본다.
“…….”
우석이의 집이다. 야구 선수로서는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이 잠깐, 한 달이 조금 안 되는 시기. 성운 호크스의 간판타자인 최우석의 집에 와있었다.
술도 거나하게 들이켰고 배도 부르고 하니, 둘 다 적당히 널브러진 채 영양가 없는 말들이나 주고받고 있었다.
0.301 / 0.412 / 0.532의 슬래시 라인. 홈런 21개, 도루 23개로 20-20 클럽 통산 두 번째 가입.
전체적으로 투고타저였던 시즌에서 오히려 커리어 하이를 찍어버리니, 이 녀석의 주가는 아주 그냥 하늘을 뚫어버릴 기세였다.
마침 시장엔 이 녀석급의 외야수가 없다. 이젠 가만히 앉아서 대박 터뜨릴 준비만 하면 된다.
“야. 새끼가, 자신감 좀 가져.”
“갑자기?”
“막말로, 팀빨이네 운빨이네 해도 팩트잖아. 너 여태까지 버티고 있는 거.”
“이게 버티는 거냐. 얹혀사는 거지.”
“그거나 그거나.”
딴에는 위로, 내지는 격려다. 근데 하도 많이 들어온 레퍼토리는 이미 내성이 생겨버렸다.
“잘될 거야.”
“잘돼야지…….”
막연한 위로에 막연한 대답.
그렇게 고교 동기동창은 비슷한 시간에 잠에 빠졌다.
* * *
“얘기는?”
“잘 됐습니다.”
“반응은?”
“의아해하더군요. 예상대로요.”
“허허…….”
중년을 넘어가려고 하는 남자는 영진의 대답에 사람 좋게 웃었다.
“이제는 슬슬 상위권에 올라가도 될 것 같은데.”
“쉽지는 않을 텐데요.”
“그러니까 하고 싶은 거지. 저기 상수 봐봐. 쟤네 이제 리그 우승도 귀찮을걸.”
“그렇지만 맛있는 거 먹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맛있지만 매 같은 메뉴만 먹다 보면 질리게 되어 있어. 그 때문에 쉬이 매너리즘 같은 거에나 빠지는 거고.”
치익―
남자가 재떨이에 담배 끝을 가져다 대자 불꽃 하나가 사그라들었다.
“솔직히 말하지. 자네가 뭔 생각으로 그 친구를 그렇게 밀어주는 건지 모르겠어.”
“좋잖아요. 보고 있으면.”
“뭐가? 시원하게 날아가는 타구가?”
“아니요. 그 타구를 보는 그 친구의 태도가요.”
“어떤 태도를 지녔길래?”
“인정하잖아요.”
“무엇을?”
“자기가 못한 게 아니라 상대방이 잘한걸요.”
“그게 어려운가?”
“어렵죠.”
망설임 없는 대답에 남자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일단 자네 말처럼 1년은 더 볼 거야. 그 이상은 못 기다려줘.”
“그거면 됐습니다. 그 친구도 딱히 미련은 없어 보이더라구요.”
“그럼 됐지. 나가서 일 봐.”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영진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자 구단주는 인자하게 미소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 * *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전지훈련장. 내가 여기 왜 있지.
“형, 뭐 해요?”
“아… 어.”
얼 타고 있으니 규학이가 다가와 등을 툭 친다. 그제야 정신을 약간 차리고 투포수조에 합류했다.
“스트레칭부터!”
가운데에 투수 코치님이 이런저런 동작들을 보이며 스트레칭이 시작되었다. 투수들은 그 주변을 둘러싼 채로 코치님의 동작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지만 선천적으로, 심지어 기형적으로 유연한 내 몸에서만 유일하게 평온함을 유지했다.
투수 한 명, 그리고 포수 한 명씩 짝.
불펜 피칭이 시작됐다. 새로운 시즌 역시 팀의 주전 포수의 짝은 당연히 팀의 1선발, 에이스인 황혁준.
피지컬은 나와 비슷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나와 다른 두 가지가 있었으니, 하나는 우완인 나와는 다르게 왼손으로 던지는 점, 그리고 하나는…….
펑!
“나이스!”
퍼엉!
“좋아, 좋아!”
퍽!
“야이, 구속 또 오른 거 아냐?”
“에이, 아니야.”
130km를 간당간당하게 넘기는 나와 다르게 150km를 훌쩍 넘어 160km에 가까운 구속을 쉽게 뻥뻥 뿌려댄다는 점이지.
실제로 아직 160km까지 던지지는 못했고 158km가 최고 구속이다. 좌완 한정으로 하면 국내 공인 최고 구속이다.
“…….”
시원시원하다. 확실히, 강속구를 뛰어넘는 광속구 투수들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있다.
같은 프로 씬에 뛰며 심지어 같은 팀이기에 거의 매일 같이 지지고 볶고 사는 사이임에도 눈길을 이리 뺏어가는 걸 보면.
아직 제대로 몸이 만들어지진 않았기에 150km는 아니고 140km 중반에 머물지 않을까 싶다.
흔히 생각하는 황혁준을 기준점으로 잡으면 몸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의 구속.
이마저도 KBO 투수들의 평균 직구 구속인 140km 초반을 훌쩍 뛰어넘는다. 그리고 난 그 KBO 평균 구속에도 미치지 못하고.
흠.
“뭐 해.”
“아, 아닙니다.”
일단 지금에 집중하자. 스탯이 어쩌건, 캠프가 어쩌건, 구속이 어쩌건, 지금 당장에 집중해야 다음이 있으니까.
팀의 최고참인 이효재 선배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사람 자체는 꽤 좋은 사람인데, 쓸데없는 곳까지 프로 같은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솔직히 지금 혁준이 공 정도면 구경할 만한 가치가 있는 피칭인데 말이지.
이 착한 꼰대는 그걸 허락하지 않을 거다.
지금 불펜 피칭을 하는 투수 1조 다음에 이어 던져야 하는 투수 2조에 속해 있는 내가, 어깨는 안 풀고 딴짓을 한다는 게 있을 수가 없는 일인 거지, 이 사람한테는.
띠링―
[훈련은 몸을 움직이는 것만이 훈련이 아닙니다]
- 국내 최고의 강속구를 보유한 황혁준의 직구를 5개 관찰하세요. (0/5)
- 보상 ― 포심 +5
근데 어떡하지. 이 대선배를 무시해야 할 때가 와버렸다. 너무나 달콤한 보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