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불―편
그 왜, 만화 같은 거 보면 있는 그런 거, 투수가 던진 공이 포수 미트에 박히고 나서,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미트 안에서 하얀 연기가 나며 몇 바퀴 헛도는 뭐 그런 연출.
물론 내 공으로 그런 건 어림도 없지. 지금 공이면 아마… 느낌상으로 134km 정도?
실제로 그만큼은 안 되겠지만, 이 느낌으로 시즌에선 그 정도는 될 것 같다. 그런 느낌적인 느낌 정도는 느껴볼 수 있잖아, 그치?
“…한울아.”
“예?”
규학이가 반구하는 공을 받아 다시 플레이트를 밟으니 뒤에서 코치님이 부른다. 습관적으로 플레이트에서 발을 빼고 뒤를 돌아보았다.
“뭐냐, 방금 거.”
“직구인데요.”
“아니…….”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상황에 답답한 모양이었다. 손을 이리저리 흔드는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그, 혁준이 참고했다고 했지.”
“네.”
“정확하게 어떤 부분.”
“예?”
아니, 그렇게 훅 들어오시면…….
“릴리스 포인트를 어떻게 끌고 나간 건데.”
“그…….”
“아니, 말이 안 되잖아. 아무리 릴리스 포인트를 어쩌네 하는 것가지고 그렇게 공이 훅 올라간다는 게.”
“그건 저도 잘…….”
시스템 덕이라고 하면 누가 믿어줄까. 미친놈 취급만 안 해주면 감사할 것 같은데.
“아냐. 일단 계속 던져봐.”
“네.”
다시 직구 사인을 내고 투구.
빵―
“아이, 굿볼, 굿볼!”
연신 좋은 호응을 보여주는 규학이.
나 이외의 투수들도 옆 마운드에서 투구를 하고 있기에 공이 미트에 깔리는 소리가 겹쳐 들리지만 그 와중에 난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평소와 다른 규학이의 포수미트 소리를.
그 이외의 공들은 딱히 특별하지 않았다.
스탯은 직구만 올랐기에 직구만 보면 확실하게 달라진 느낌이 있었지만 다른 변화구들은 평소와 같았다.
다만 실전 등에서는 다르겠지. 직구만, 혹은 변화구만 던질 게 아니라 섞어서 던질 테니까.
불펜 피칭은 성공적이었다. 아니, 대성공이었지.
직구 스탯 5 추가의 위력은 대단했다. 우리 투수 코치님은 물론 옆 마운드의 효재 선배와 다른 투수들, 심지어는 캠프에 따라온 기자들의 이목까지 집중되었으니까. 심지어 그에 따른 인터뷰까지.
올해는 다르다.
이 마법의 한마디에 팬들은 또 속는다.
하지만 올해는 보장할 수 있다. 올해는 정말 다르다. 정말. 인생 최초로 140km를 넘겨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 * *
캠프 기간은 생각보다 길다. 1차 캠프, 그리고 2차 캠프. 두 번의 길고 긴 담금질이 끝나고 나서야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시즌을 준비하지.
여기는 우리 구단 2차 캠프지인 일본의 모처. 비행기에서 열심히 날아와 피곤한 와중에도 야구해야지, 야구해야지, 모두 다 같은 마음가짐으로 짐을 챙겨 들고 숙소로 향했다.
첫날은 휴식. 한 달 동안 고생한 선수와 코칭 스탭들에게 내려지는 진짜 달콤한 휴식. 그 아무도 터치하지 않았다.
이 하루짜리의 휴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달콤한지 모두가 뼈저리게 알기에 오히려 선수들이 선을 넘지 않으려고 했다. 그 누구도 모처럼 일본에 왔다며 시내에 놀러 나가는 이가 없었다.
“아…….”
그치만 다음 날이 되자 모두 생각이 바뀌었다.
아, 선 좀 넘을걸.
빡세다. 생각보다 좀 더.
앞선 1차 캠프에서 피지컬이 부족한 선수는 피지컬을, 테크닉이 부족한 선수는 테크닉을 중점적으로 훈련했다면 이제부턴 이 둘을 융합시켜야 한다.
연습 경기.
그래, 경기다. 앞서 붙은 연습이라는 두 글자 때문에 무게감이 떨어지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이 자그마한 연습 리그는 그래, 하나의 예선전과 같다. 아니, 예선전 축에도 못 끼지.
시범 경기라는 예선전, 정규 시즌이라는 본선, 그리고 나갈 수 있을지 어쩔지 모르는 포스트 시즌이라는 결선의 무대.
내가 이만큼 준비했다, 내가 이만큼 대단하다, 그래도 나 안 쓸 거야? …를 지금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야 내 자리 차지하고 내 밥그릇을 챙길 수 있는 거다.
물론… 이미 한자리 제대로 닦아둔 주전급 선수들한텐 그런 거 없다. 그들에게 이 연습 경기는 딱히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테지.
시범 경기도 넘어 정규 시즌에 맞춰 몸 상태를 끌어올릴 거다. 그들에겐 말 그대로 연습,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입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급들, 혹은 나이가 어중간하거나 꽤 찼지만 확실한 제 자리가 없는 선수들은 다르다.
절박함의 정도가 아주 다르다. 보면 눈시울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처절하고, 비참하게 임한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내 앞에 경쟁자 하나 제치려고 필사적으로 임한다.
팀 내 시즌 구상은 이 시기에 보통 80%, 주전이 솔리드한 팀의 경우는 이미 90% 정도의 윤곽이 그려져 있다. 나머지 10% 시드, 그거 조금 뺏어 먹으려고
나?
나는 그 중간 어딘가에 속해있다. 성적이 좋지 않아 사실 당장 방출당하거나 2군에서 시즌을 시작해도 불만이 없을 투수이기는 하지만…
올해도 팀은 딱히 투수 보강은 없었다.
작년 시즌이 끝나고 시장에 나온 FA 투수들 중 S급, A급 정도는 아니더라도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모든 투수들을 패스했다.
무슨 자신감으로?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관두었다. 덕분에 이렇게 캠프도 따라올 수 있었고, 무난하게 내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으니까. 무슨 철밥통마냥.
“한울아, 준비해라.”
“예.”
작년 6위였던 우리 원하 챌린저스의 연습 경기 상대는 우리보다 두 계단이나 아래였던 한성 위너스.
이렇다 할 장점도, 이렇다 할 단점도 없다. 위너스라는 이름값을 조금도 하지 못하고 패배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팀.
나는 이 팀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는…….
8번 타자, 좌익수 이용호
이 새끼 때문에.
언제나와 같이 몸을 풀고 마운드에 올랐다. 8회 초, 4 대 1로 이기고 있는 상황.
첫 타자를 안타로 내보냈지만 다음 타자에게 몸쪽 싱커를 던져 무난하게 초구 내야 땅볼로 병살을 잡아낸 뒤 세 번째 타자를 맞이했다.
타자는 우타석에 들어서서 제 루틴을 취했다.
왼손으로 배트를 잡아 홈플레이트 앞을 툭툭 치고, 배트를 크게 한 번 돌린 뒤 오른쪽 어깨에 배트를 올렸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새끼, 해봐라.
날 가소롭게 보고 있었다.
오냐.
일단 사인. 초구 몸쪽 슬라이더. 오케이.
빵!
“스트라이크!”
몸쪽 볼에서 몸쪽으로 붙는 스트라이크. 무난하게 초구를 잡는다. 두 번째 공은 똑같은 코스에서 몸쪽으로 빠지는 싱커.
“볼.”
바깥쪽에서 빠지는 슬라이더.
“볼.”
지켜보며 볼. 다음은 바깥쪽 볼에서 들어가는 싱커.
“…볼!”
심판이 살짝 고민한 후 볼 판정을 내렸다. 이렇게 3-1.
들어간 것 같은데… 아니, 들어갔는데.
음?
타자에게 유리한 볼카운트가 되자 이용호는 씨익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작년의 우석이와는 다른 의미의 웃음이다. 명백하게 비웃고 있다.
‘풉. 니가 그러면 그렇지. 너 따위가?’
이 새끼가…….
다음 사인을 기다린다.
존에 들어가는 스플리터, 몸쪽 커브, 바깥쪽 커브까지 고개를 젓고 나서 결국 오른손을 오른쪽 어깨 쪽에 가져다 댔다.
뻥!
“스트라이크!”
바깥쪽 낮게, 아주 정확하게 들어갔다. 원하던 대로. 카운트는 3-2, 풀카운트.
이용호는 조금 의아한 눈치다. 놀랐다기보다는 이해가 안 되는 듯한 표정.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모를 때 나오는 답답한 표정에 내 속이 더 시원하다.
결국 안 되겠는지 먼저 타임을 부르고 타석 밖으로 나와 스윙을 두세 번 돌려본 뒤 타석에 다시 들어선다.
암만 준비해 봐라, 넌 절대 못 친다.
다시 나오는 사인.
몸쪽 직구, 바깥쪽 직구, 바운드 체인지업, 몸쪽 슬라이더.
하지만 이번엔 새끼손가락만을 보인 채 왼쪽 어깨, 글러브, 다시 어깨, 팔꿈치, 글러브에 대었다.
왼발을 살짝 뺐다가 다리를 들며 미트를 쳐다본다. 그리고, 있는 힘껏 던졌다. 공이 손에서 빠져 저 새끼 면상에 맞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부웅―!
뻥―
“스윙! 아웃!”
존에서 공 세 개 정도는 빠졌을 어처구니가 없는 몸쪽 하이패스트볼.
3-2 카운트에서 135km도 안 나올 똥볼에 헛스윙을 한 녀석의 표정은 아주 볼만했다.
그에 나는 애초에 너 따위에겐 관심조차 없었다는 듯이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마운드를 내려갔다.
* * *
일본 팀의 1.5군급 선수들과 연습 경기까지 마치며 전지훈련 일정이 끝났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알찬 캠프였다. 내 자리를 보전했고, 스탯도 나름 빠방하게 얻었으니까.
퀘스트는 혁준이의 직구 5구를 관찰하라는 조건을 시작으로 생각보다 꽤 많이, 그리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튀어나오며 날 흥미롭게 만들었다.
1이닝 3구 3아웃을 잡아라, 145km를 넘겨봐라, 삼중살을 잡아라, 견제 아웃을 잡아봐라, 연속 안타를 맞아봐라, 낫아웃으로 출루시켜봐라, 심지어는 홈런 한 방 처맞아봐라.
당연히 모든 퀘스트들을 달성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꽤나 쏠쏠했다
띠링―
[선수 능력치]
제구 ― 최상
구위 ― 중
체력 ― 하
직구 ― 41
커브 ― 36
슬라 ― 24
스플 ― 29
체인 ― 35
싱커 ― 34
특성 ― 해탈, 불편
특히 직구에서 대단한 발전이 있었다. 맨 처음 내 스탯인 24에서 무려 17이 올랐다. 살짝 과장하여 두 배 가까이 뛴 셈.
여타 다른 변화구들의 스탯들 또한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과장이 아니더라도 두 배 정도 구위가 올랐다 봐도 과언은 아닐 테지.
실제로 구위도 최하에서 중으로 두 단계나 상승했고.
특성도 새로 하나 얻었다. 어떤 타구를 봐도 그러려니 한다는 말 같지도 않은 특성 이외에 불편이라는 특성. 처음엔 이름만 보고 뭔 또 개 같은 특성이 날 슬프게 하나 했지만…….
[불편 : 괜히 타자들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좋은 특성이었다. 그저 ‘불편’ 정도에 그칠지언정, 0.01초, 0.01도에 운명이 갈리는 이 세상에서 그 불편함으로 인해 나오는 나비 효과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표정 좋아 보인다?”
“암요. 좋을 수밖에요.”
옆에 다가온 효재 선배가 어깨를 툭 치며 한마디 건넸다.
“하긴.”
“이 상황에서 안 좋아하면 그게 멍청한 거 아닙니까.”
캠프 결과, 패전 처리 정도였던 내가 세컨더리 셋업조에 포함되었다.
신분 상승. 그것도 수직 상승. 이 말 이외의 말론 대체할 단어가 없다.
한편으로 씁쓸하기도 하다. 고작 구위 그거 조금 올라갔다고 이렇게 훅 바뀐다니. 그만큼 우리 팀 불펜진이 허약했었나, 싶은 마음에.
한국으로 돌아와 잠시 팀을 정비하자마자 바로 시범 경기가 시작되었다. 팀이 아닌 개인들로 보았을 때, 진정한 예선전 무대가 시작된 것이다.
“한울이, 준비하고.”
“옙.”
신분 상승.
글러브를 집어 들며 전광판을 확인했다. 확실히 팀 내 위상이 달라지긴 했다.
지고 있을 때 올라가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이전처럼 경기를 그냥 놓은 것이 아닌, 어느 정도 손에 잡힐 법한 상황에서 투입되는 것이 달라졌다.
쓰임새가 달라졌다는 것이지.
팡!
“형, 진짜 비시즌 때 뭐 한 거 맞죠?”
“뭘 해, 하긴. 이 나이 먹고.”
“아니, 근데 이게…….”
어제 선발 등판으로 불펜에서 노가리나 까고 있던 혁준이가 계속 툭툭 한마디 던진다.
하긴, 놈 입장에서도 어이가 없겠지. 고작 자기 폼 조금 참고했다고 구위가 이리 훅 달라지니.
얌마, 내가 제일 어이가 없다. 좋은 의미로.
와아아아―
불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홈팬들이 환호해 준다. 듣기 좋은 시끄러움을 등 뒤로 하고 마운드에 오른다.
루틴은 언제나와 같다.
마운드에 올라 오른발로 플레이트에 있는 흙을 대충 슥슥 치워낸다. 몇 발자국 움직여 왼발이 닿는 지점의 상태를 확인한다.
공을 받고 땅을 한 번 골라주고선 이어서 연습 투구 몇 개. 연습 투구가 끝나면 포수는 2루로 공을 던진다.
내야수들이 라운딩하는 동안 로진을 만지작대면 타이밍 맞게 유격수가 내게 공을 던질 준비가 끝나 있다.
플레이트를 밟으며 심판의 플레이 콜을 기다린다.
후.
심호흡과 함께, 내 시야에 비친 건 언제나와 같이 내 공을 받아주는 규학이, 그리고 심판. 그리고…….
7회 초 상수 타이거즈 공격, 4번 타자 박해진.
타석에는 나만의 라이벌이 들어왔다. 어디 한번, 바뀐 내 공도 때려봐라, 자식아!
따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