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올스타전!
올스타전!
프로 스포츠 선수로서는 듣기만 해도 가슴 떨리는 그 자리에 내가 있다. 당당히 한 선수로서.
오늘도 역시나, 너무나도 당연하게 4번 타자 1루수에는 박해진의 이름이 있다. 1회부터 타석에 들어갈지 어쩔지는 모르지만, 넥스트 써클에 들어가야 함은 확정이니 타격 장비까지는 일단 준비 완료인 상태.
그라운드로 나가기 전임에도 배트를 이리저리 만져보며 전열을 가다듬는 모습은 참 뭐랄까… 같은 팀이 되니 이리 든든할 수가 없다고 해야 하나.
야구가 아무리 팀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개인 하나의 존재로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이제야 알겠다.
동부 팀의 선공으로 시작된 경기는 다소 올스타전답게 수준 높은 경기들이 연속됐다.
잘 던지고, 잘 치고, 잘 막고. 어쩌다가 안타가 나와도 더 잘 던진 공으로 어떻게든 아웃 카운트를 최소 하나, 많으면 두 개까지 억지로 잡아내며 베이스를 억제하는 올스타전다운 경기.
그런 와중에도 빛나는 이가 하나 있었으니…….
따악―!!
“갔다!”
“갔어!”
동부 리그 4번 타자, 올스타전 투표 압도적 1위, 4번 타자 1루수 박해진.
2회 선두 타자로 나와 초구부터 냅다 갈긴 타구는 까마득하게 날아 전광판을 직격했다. 대충 140m 나오려나. 어설픈 공도 아니고, 몸쪽 꽉 차게 들어가는 154km짜리 직구가 그리 쉽게 날아갈 줄이야.
덤덤하게 베이스를 돌고 덕아웃으로 들어와, 배트걸이 가져다준 마스코트 인형을 덕아웃 뒤 응원석에 던져주고 들어오며 하이파이브가 이어졌다.
멋쩍게 서 있다가 나도 다가가서 손바닥을 내미니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손바닥을 마주했다.
그 이후는 계속 비슷했다. 삼진, 땅볼, 뜬공, 어쩌다 안타가 나오면 병살, 그리고 삼진. 스코어 1 대 0으로 맞이한 4회 초 공격 2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자는 다시 박해진.
초구 바깥쪽 직구 볼, 2구 바깥쪽 슬라이더 볼, 3구 바깥쪽 직구 볼, 그리고 4구 바깥쪽 높은 직구 볼…….
따악―!!
“…미친 새끼.”
…을 툭 갖다 대었는데, 이게 우측 폴대를 맞춘다.
연타석 홈런. 덤덤하게 그라운드를 돌고 난 뒤의 모습은 조금 전과 비슷했다. 하이파이브를 하고 마스코트 인형을 받고 팬들에게 던져주고.
시합 외적으론 그러했고 시합 내적으로도 이전과 별 다를 바 없는 뭐 그런 느낌. 호투, 범타, 호수비의 향연. 올스타전이 이렇게나 수준이 높았던가?
그리고 7회 초, 1아웃에 주자 없이 다시 박해진. 투수는 뭐랄까, 이건 몰랐지?! 하는 느낌으로 아주 느린 볼을 던졌다. 이른바 아리랑볼. 릴리스와 동시에 붕 뜨는 공에 순간적으로 전광판을 향해 눈이 향했다.
89km.
따악―!
그리고, 전광판의 구속이 표시되는 시야 중앙으로, 야구공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와아아―!!
당황도 잠시, 빠르게 조금 전의 공의 흔적을 쫓아보니 야구공은 이미,
텅―
좌측 담장 상단을 넘어가고 있었다. 3연타석.
“…야. 저거 뭐냐.”
“그러게요.”
규진이 형. 내가 똥멍청이가 맞는 거 같아. 저런 새끼랑 9회 말 2아웃 만루에서 승부하겠다고?
형, 형은 진짜 쌉천재가 맞는 거 같아. 아니, 개쌉천재라는 말도 부족할 거야.
오늘만 세 번째 하이파이브, 세 번째 인형.
뭐 이런 사기캐가 다 있지.
“한울이, 준비해.”
“아, 네!”
7회 초 공격도 끝나고, 7회 말 수비가 시작될 무렵 감독님의 호출에 정신을 차리고 모자와 글러브를 집어 들었다.
터덜터덜 걸어 불펜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처음 보는 불펜 포수가 앉아 있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예예, 나두요.
적당히 인사를 받아주고, 허공에 두 팔과 두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간단하게 몸을 풀었다. 오늘 경기 흐름이면, 7회 말 수비도, 8회 초 공격도 빠르게 끝날 거다. 길어봐야 20분.
“하이, 직구!”
팡―!
하지만 20분이면 뭐 충분하지.
“커브!”
팡!
투구 중간중간 스트레칭까지 해도, 워낙 금방금방 몸이 풀리는 체질이기에 몸은 금방 달아올랐다. 슬쩍 상황을 보니 8회 초 2아웃. 볼카운트도 1-2. 금방 끝나겠네.
“라스트, 직구.”
“직구우!”
말과 동시에 글러브로 사인을 주고 왼발을 뒤로 빼며 양손을 머리 뒤로 넘겼다.
펑―!
“한울이 올라가라!”
“예에!”
살살 빠른 걸음으로, 투수 코치님이 열어주신 불펜 문을 지나 마운드로 향했다. 전광판에 그려져 있는 내 얼굴. 그리고 이번 시즌 기록.
생각보다 그렇게까지 긴장이 막 되지는 않았다. 그냥 평범한 1경기 중 1이닝이라고 생각하면.
내 등장곡이 구장 내에 울려 퍼지자, 동부 리그 응원석에서 환호성이 커진다. 그래, 마치 이번 시즌의 나는 타 팀 팬들이 보기엔 박해진 같은 존재겠지.
상대할 땐 아 X됐다, 싶다가도 같은 편이 되니 그리 든든할 수가 없겠지.
아무렇지도 않다는 말 취소.
내 팬이 아닌데도, 우리 팀 팬이 아닌데도 나를 위해 함성을 질러주는 사람들이 있으면 소름이 돋는다는 걸 알게 됐다.
평소처럼 일관된 색들이 아닌, 총천연색의 사람들이 각자의 유니폼을 입은 채 똑같은 동작을 하며 똑같은 구호를 외친다.
“후우…….”
나대려는 심장을 겨우 억누르고 마운드에 올랐다. 오른발로 플레이트의 흙을 털어주고, 자유족이 밟을 땅도 어느 정도 골라주고, 로진을 만지작만지작한다.
오늘 호흡을 맞출 포수는 KP 스타즈의 황하균 선배. 나보다 2살 위의 1년 선배로 딱히 직접적인 연은 없다.
사인은 이미 맞춰놨기에 문제될 것도 없고, 내 공을 처음 받아볼 타 팀 포수를 위해 친절하게 글러브로 사인을 알려주고 연습 투구가 시작됐다.
싱커, 커브, 슬라이더, 포크볼, 체인지업, 직구까지. 모두 마치고 포수의 2루 롱팩까지 마치고, 언제나와 다름없는 루틴.
유격수가 던져주는 공을 받기 위해 몸이 2루 쪽으로 향하자 자연스레 눈에 들어오는 전광판.
아, 1번 타자부터구나. 그렇다면…….
괜스레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다. 상대 덕아웃을 바라보았다. 모든 타격 장비를 장착한 우석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마 내 표정을 보고 해설진들은 궁금해하겠지. 왜 웃나, 미쳤나, 하고. 나중에 인터뷰하게 되면 이걸로 질문 들어오겠는데.
플레이트를 밟고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알렸다.
플레이!
그리고 그와 동시에,
띠링―!
[별들의 전쟁, 올스타전! 올스타전에서 빛나자!]
- 1이닝 9구 3삼진 (0/1)
- 보상 ― 전 구종 +5
뭐요?
전 구종 +5. 이 어마무시한 보상에 침이 꿀꺽 넘어갔다. 하지만 퀘스트 내용이 너무 말 같지도 않다. 공 9개로 삼진을 세 개 다 잡으라고? 이 뭔 개…….
띠링―!
[어렵다구요? 임시 특성 ‘압도’ 발동!]
- 포심 + 20, 변화구 +10 구위 +1
…처럼 열심히 던지겠습니다.
잠시 딴생각하는 시간이 길었나 보다. 타자는 배트를 어깨에 눕힌 채 나만 멀뚱히 쳐다보고 있고, 황하균 선배는 뭐지 싶은 표정. 얼른 몸을 움직여 미안하다는 표시를 했다.
109km 낮은 커브로 초구 스트라이크,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싱커를 건드려서 파울, 바운드 되는 스플리터에 헛스윙 삼진.
오, 오늘 좋은데.
다시 로진을 만지작거린 뒤 1루수를 쳐다보자…….
“나이스 볼.”
아… 1루수가 쟤였지.
박해진이 던져주는 공. 항상 나한테 홈런만 때리던 놈이 던져주는 공을 받으니 기분이 묘하다. 그에 잠시 실실 웃으며 고개를 젓고 다시 플레이트에 섰다.
몸쪽에서 볼로 떨어지는 싱커를 건드려서 포수 왼쪽으로 가는 파울, 이후 바깥쪽에 걸치는 슬라이더로 카운트를 하나 더 벌었다.
이후 바닥으로 멋지게 타이밍을 뺏는 체인지업에 헛스윙 삼진. 황하균 선배는 잡자마자 앉은 채 서드를 향해 공을 던졌다. 2아웃.
야구 쉽네.
그리고…….
“3번 타자, 최!! 우!! 서어억!!”
너냐?
녀석의 표정은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 내 표정 또한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겠지.
아까… 시합 전에 뭐라고 떠들었더라.
플레이트에 서기 전 평소보다 로진을 길게 만지작거리며 시합 전 녀석과 나눈 대화를 떠올린다.
집이 뭐 어쩌고, 대충 그런 소릴 한 거 같은데. 피식 웃고선 플레이트에 섰다. 두 다리를 적당히 벌린 상태에서 포수 사인을 기다리는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기다리지 않는다.
“응?”
포수와 타자, 모두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직구 그립을 보인 채, 포수에게 보였다. 일종의 도발이다.
직구만 던지겠다. 사인 필요 없다.
그 모습이 전광판에 보인 뒤, 자세한 내막까지는 모르겠지만 눈치 빠른 관객들이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고 이내, 그 환호가 더더욱 크게 번졌다.
우석이는 잠시 타임을 부르고 타석 밖으로 나가 연습 스윙을 시작했다. 부웅―! 부웅―! 하는 바람 소리가 20m 가까이 멀리 있는 내 귀에도 들리는 것 같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타석에 다시 들어선 녀석은 표정을 꽤나 재밌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본인 자체도 재미있어하는 표정이었고 그 표정을 보는 나 또한 재미를 느끼게 하는 그런 표정.
초구.
후우…….
고개를 살짝 숙이며 왼발이 한 발 뒤로 빠지고 양손이 머리 뒤로 넘어간다.
후욱…….
미세한 허리의 반동 이후, 가슴에 닿을 정도로 높게 올라온 왼쪽 무릎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며 몸이 앞으로 전진한다.
앞으로 뻗어가는 글러브 너머로 포수의 미트가 보인다. 왼발이 닿자마자 골반이 회전하고, 빠르게 오른손이 앞으로 당겨져 나온다.
“끄악!”
펑―!
붕―!
“스윙!”
와아―!!
몸이 완전히 1루 쪽으로 넘어갈 정도의 몸부림. 그래, 몸부림이라는 단어가 좋겠다. 자연스럽게 돌아간 몸의 각도는 전광판을 시야에 두게 만들었다.
142km. 괜찮네.
나쁘지 않은 구속에 고개를 끄덕이고 포수에게 글러브를 보이자 날아오는 공을 낚아채듯 잡았다. 다시 플레이트 위에 섰다. 사인 교환은 필요 없다. 말없이, 10초 전의 행동을 반복할 뿐.
“우악!”
말 그대로 우악스러운 피칭!
파앙―!
붕!
“스윙!”
또 한 번의 헛스윙. 녀석을 향해 지은 미소는 비웃음에 가까웠지만 녀석은 전혀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쁜 듯 활짝 웃고 있었다.
다시 플레이트 위로. 잠시 숨을 고르고, 로진을 손에 발랐다. 이내 잡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변화구를 던지면 어떨까. 녀석의 반응은, 또 관객은, 해설과 TV로 볼 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실없는 생각은 이내 미소와 함께 사라졌고 홈플레이트 쪽은 바라보지도 않은 채 와인드업이 이어졌다. 이전 두 번과 같은 짓, 한 번만 더. 다만 조금 더 세게.
한 발 뒤로 빠졌던 왼쪽 무릎에 가슴에 닿을 때가 되어서야 홈플레이트에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미트를 보여주는 포수도, 다음 공을 기다리는 타자도, 팝콘이 없어서 아쉬워하고 있을 구심도.
“마다악!”
손끝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 라고들 하지?
무의식적으로 나온 비명과도 같은 기합 소리는 아마 TV 중계에도 흘러 들어갔겠지, 하는 그 짧은 순간에마저 드는 의식의 흐름. 그리고 이어지는,
퍼엉―!
부웅―!!
“스윙, 아웃!”
와아―!!
띠링―!
[별들의 전쟁, 올스타전! 올스타전에서 빛나자!]
- 1이닝 9구 3삼진 (1/1)
- 보상 ― 전 구종 +5
- 어렵다구요? 임시 특성 ‘압도’ 발동!
- 포심 + 20, 변화구 +10 구위 +1
제구 ― 최상
구위 ― 중+1=상
체력 ― 하
포심 ― 66(+20)
커브 ― 48(+10)
슬라 ― 36(+10)
스플 ― 42(+10)
체인 ― 47(+10)
싱커 ― 45(+10)
특성
해탈 ― 어떤 타구, 상황에도 그러려니 합니다.
불편 ― 상대하는 타자가 타석에서 투수를 보면 어딘가 불편하게 만듭니다.
압도(임시) 포심 +20, 변화구 +10, 구위 +1
이랬던 내 스탯이,
제구 ― 최상
구위 ― 중
체력 ― 하
포심 ― 51
커브 ― 43
슬라 ― 31
스플 ― 37
체인 ― 42
싱커 ― 40
특성
해탈 ― 어떤 타구, 상황에도 그러려니 합니다.
불편 ― 상대하는 타자가 타석에서 투수를 보면 어딘가 불편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변했다.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우석이를 향해 가리켰다. 그러자 녀석도 환하게 웃으며 주먹감자로 응수했다. 아 저거, 방송에 나가도 되려나?
“아, 나이스 볼!”
“야, 멋있구마잉!”
“작살 나네!”
덕아웃으로 천천히 돌아가는 길, 내 곁을 스쳐 지나가는 야수들이 한마디씩 하며 지나갔다. 대부분 멋있다, 잘 던졌다, 뭐 그런 이야기.
“…나이스 볼입니다.”
“아, 어.”
3루 쪽 덕아웃을 향해 걸어가는 중 뒤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목소리. 그 누구보다 가슴을 떨리게 하는 목소리.
절로 돌아가는 고개는 내 옆을 뛰어가는 박해진의 옆모습을 보게 만들었다.
…멋진 새끼.
허, 하는 웃음과 함께 시끄러운 세리머니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