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국대 1선발
이현진.
고등학교 졸업 후 데뷔와 동시에 13승을 거두며 신인왕을 차지. 2년 차에는 곧바로 18승, 2.45 평균 자책점으로 최고 투수상을 수상.
3년 차 시즌인 2012시즌이 끝난 후 있던 프리미어 12에 곧바로 발탁되어 국가 대표 1선발로 지금까지 쭉 활약하고 있는 누가 뭐래도 국가 대표 1선발 투수.
“식사는 하셨습니까?”
…인데…….
“…끝나자마자 바로 집에 가는 길인데 먹었겠냐.”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본인이 실수했다는 점을 지적하자마자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한다.
여기서 다시 지적하고 싶은 점 두 가지. 왜 굳이 사과를 하는가. 왜 굳이… 허리를 또 한 번 90도 가까이 숙이는가. 왜.
“어… 여튼. 무슨 일이야?”
“배고프지 않으십니까?”
“그렇기야 하지.”
지금 시간은 10시 30분 정도. 지금 시간의 다른 선수들은 뭘 하고 있을까. 집에 가거나, 아니면 술 마시러 갔거나. 아니면 광란의 파티를 즐기거나.
근데 이놈은 담배도 안 피워, 술도 안 마셔, 이런저런 구설수도 없어… 인터뷰에서 뭐랬더라, ‘이현진 선수는 경기 끝나고 집에 가면 뭐 하세요?’라는 질문에 다음 게임 플랜 짠다고 대답했다.
진짜다. 내가 봤다.
뭐랬더라, 선배님, 저는 아직 야구가 너무 좋습니다. 재밌습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습니다. 크, 멋진 놈.
“그럼 같이 식사라도 하러 가시겠습니까?”
밥 안 먹었다는 말에 놈의 얼굴이 화악 밝아진다. 인기 아이돌 비주얼 담당한테 같은 소리를 들어도 저만큼 기뻐하진 않는 녀석이다. 남자 좋아한다는 소문이 도는 건 전부 본인 때문인 거다.
“어… 뭐. 그래. 가자.”
그건 그거고. 국대 1선발이고 나발이고, 내 입장에선 같은 고등학교에서 같이 있던 후배기도 하고 워낙에 이미지도 좋은 녀석이고.
또 오랜만에 보는 녀석이기도 하니 반가운 마음에 선뜻 같이 밥을 먹으러 갈 마음이 생겼다.
“뭐 먹으려고?”
“예약해 둔 곳이 있습니다.”
“…내가 안 먹겠다고 하면 어떡하려고 뭘 예약까지 해놔.”
“그럼 저 혼자 2인분 먹으면 됩니다.”
미친놈인가.
근처에 주차되어 있던 녀석의 차를 향했다. 오, 역시 연봉 많이 받는 녀석이라 그런지 해외 유명 외제 차 브랜드.
대형 SUV 차량의 오른쪽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는 느낌으로 조수석에 올라탔다. 확실히 높은 차를 타니 시야가 넓긴 하다. 나도 나중에 차 사면 SUV로 살까.
차를 타고 한 20분 정도 이동했을까. 도착한 곳은 한눈에 봐도 고오오오급진 일식집이었다. 슬쩍 핸드폰의 시계를 확인해 보니 11시 정도. 익숙한 조작으로 차를 주차하는 현진이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 묵직한 차량답게 문이 닫히는 소리 또한,
쿵!
묵직하다.
“예약했습니다. 이현진인데요.”
“아, 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안내해 주는 종업원을 따라 천천히 자리로 향했다. 은근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손님이 없다. 설마…….
“야.”
“예, 선배님.”
“근데 이런 식당이 이런 시간까지 하냐 보통?”
“여기 10시 정도면 마감합니다.”
“근데 왜 우릴 받아.”
“돈 더 주면 됩니다.”
“…….”
Flex인가, 이게.
“그래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고작 한마디 했을 뿐인데. 그 사이에 젓가락과 앞접시, 식전에 마실 물 한 잔이 마련되어 있다. 애써 사양하지 않고 일단 한 모금 마신다.
“무슨 일로?”
“그냥 오랜만에 선배님 뵙고 싶었습니다.”
“그게 다야?”
“예.”
“…….”
이놈아는, 대체 나의 무엇을 보고 이렇게 된 걸까. 난 무슨 짓을 해왔던 것인가.
“실례합니다.”
식전으로 나온 애피타이저부터 대단해 보인다.
뭐 어쩌다 이리됐나 싶은 마음을 접고 일단 정갈하게 썰린 회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그나저나, 많이 놀랐습니다.”
“뭐를?”
“이번 시즌 선배님 말입니다.”
“나? 아… 그럴 만하지. 허허.”
“무슨 비결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운이 좋았지.”
틀린 말은 아니다.
“단순히 운이 좋았다기엔…….”
뒷말은 생략되었지만 모를 수가 없다. 더구나, 내 빠돌이인 녀석 입장에서 내 안 좋은 얘기나 다름없는 저번 시즌까지의 내 모습을 말하긴 더더욱 껄끄럽겠지.
“원래 작년까지 하고 그만하려고 했어.”
“은퇴… 말씀이십니까.”
“그치.”
“너무 이른 것 아닙니까?”
“이르긴. 늦어도 한참 늦은 거였지. 생각을 해봐라, 야. 통산 7점대인가 6점대인 투수인데. 이닝 많이 먹는 것도 아니고, 구위가 좋은 것도 아니고, 뭐… 장점이 없잖아, 데리고 있을. 그냥 팀 사정 따라서 남아 있던 거지.”
“그치만 선배님께선…….”
“씁. 거기서 더 하면 내 맘 더 아파진다.”
“…….”
진짜 다무네.
“그만두려고 했는데 구단 직원분이 오더라고. FA 신청 안 한 걸 구단에서 좋게 보고 있고… 또 그것 때문에 내년 연봉 올려줄 거라고. 그러니까 잘해 보자고.”
“오…….”
“그래서 이것저것 해봤어. 진짜 마지막이니까. 그랬는데 이렇게 됐네.”
“어떤 것들을 하셨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부담스럽게시리, 녀석의 얼굴이 상당히 가깝다.
“네가 알아서 뭐하게?”
“…죄송합니다. 선배님만의 기술일 텐데.”
“아아, 아냐. 알려주기 싫다거나 뭐 비꼬는 그런 게 아니라.”
“예?”
“궁금해서 그러지. 진짜 네가 알아서 뭐 어디다 쓰려고 그러나.”
“저도 투수입니다. 아무리 지금의 제 성적이 뛰어나다 해도, 더더욱 강력한 투수가 되고 싶은 게 모든 투수들의 생각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극적인 변화를 이루어내신 선배님의 고견이라면 더더욱 듣고 싶을 뿐입니다.”
“그전에. 부담스러우니까 제발 그런 표현 좀 안 써주면 안 되냐.”
“어떤 부분 말씀이십니까?”
“…말끝마다 까까, 선배님까진 이해하겠는데 고견이니 뭐니… 부담스럽다, 야. 다른 사람들 알면 내가 욕먹어.”
“그, 그치만……!”
X발, 킹치만만큼은 제발!
그치만 이후로 할 말을 골라내고 있었는지 중간 텀이 길어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님께선 제 우상이십니다. 몇 번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혹시 이현진 선수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가 있을까요?
원하 챌린저스의 김한울 선배님이십니다.
예? 김한울… 선수를요?
예. 문제 있습니까?
아, 아뇨. 전혀요, 하, 하하하… 혹시 그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선배님께선 모든 투수의 귀감이 되셔야 할 분입니다. 그분의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은 그저 시대를 잘못 타고나셨을 뿐입니다.
…….
“그냥 립서비스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아닙니다. 진심입니다.”
“뭘 보고? 남들이 알면 내가 욕먹는다니깐?”
현진이는 제 앞에 있던 물을 한 모급 마시고 말을 이었다.
“선배님과 제가 같은 팀에서 뛴 건 1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1년 동안 전 선배님께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만약 그 1년 동안 선배님과 함께하지 못했다면 전 지금의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아, 제발. 제발 알겠으니까. 알았으니까 제발 얼굴 좀 붉히지마, 소름 돋잖아.
그나저나 이쯤 되니, 대체 난 고등학교 시절 뭔 짓을 하고 다녔나 싶다. 벌써 10년 전 얘긴데.
“…그냥. 적당히 해. 적당히.”
“적당히입니까?”
“그래. 어차피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잖아. 직업이라고. 사실대로 말하면 팀의 우승을 위해 헌신하겠다, 이 한목숨 팀에 바치겠다 같은 사명감 같은 건 없어. 애초에 나랑 팀이랑은 계약 관계고, 계약 관계는 비즈니스니까. 거기서 생겨나는 정으로 가는 관계 또한 있지. 있지만 거기까지야. 난 내가 우선이야.”
“그건…….”
“넌 이해 못 해. 너한테 이해하라고도 안 해. 오히려 넌 이해 못 했으면 좋겠는데. 나야 리그에서 그저 그런 투수지만 넌 국대 1선발이잖아. 그런 애가 적당히 하면 국가 망신이야, 안 돼. 야, 넌 지금보다 더 빡시게 해라. 오케?”
“예, 명심하겠습니다.”
대체 이 의식의 흐름을 얘는 어떻게 이해한 거지. 나도 뭔 소린지 모르겠는데.
“우리 팀에 혁준이 있잖아.”
“아, 예.”
“혁준이 던지는 거 보면 시원시원하잖아.”
“맞습니다.”
“…그냥 나도 그렇게 던지고 싶더라고. 그래서 그렇게 하려고 하니 이렇게 되더라.”
녀석에게 스탯의 존재를 알려줄 수는 없으니, 이렇게 뭉뚱그려 이야기할 수밖에. 하지만 녀석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왜 이해한 거지.
“한 가지 더 여쭤도 되겠습니까?”
“뭐?”
“앞으로 선배님 목표 같은 거 있으십니까?”
“목표?”
“예.”
…어…….
“개인? 아니면 팀?”
“개인적인 목표 있으십니까?”
리그 MVP, 홀드왕, 세이브왕, 최고 투수상, 삼진왕 등등이 머릿속을 스쳐 가는 사이,
“…박해진한테 삼진 잡는 거.”
입은 제멋대로 움직여 최고의 답변을 꺼냈다.
* * *
“바로 집에 들어가십니까?”
“가야지. 늦었는데.”
하암, 하고 스며드는 하품을 뒤로하고 담배를 땅에 비벼껐다. 빛을 내다가 끄트머리를 잃고 빛을 잃은 담배꽁초를 주워다가 쓰레기통에 넣었다.
“늦은 밤까지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네가 다했지.”
“아닙니다.”
녀석은 희미하게 웃었다.
“오늘 덕분에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막혀있던 혈이 뚫렸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습니다.”
“너한테 막힐 혈이 있었어?”
“예. 요즘 계속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 답답했는데 억지로 시간을 내서라도 선배님의 이야기를 듣길 잘한 것 같습니다.”
…올해 얘 성적이 어떻게 되더라. 지금도 1점대 찍고 있지 않던가. 그런 놈이 뭐… 사실 지금까지는 봐준 거였다! 뭐 그런 클리셰인 건가. 에이, 소설이라도 너무하네.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고. 너넨 내일 어디냐?”
“홈에서 상수랑 만납니다. 선배님도 홈 경기 아니십니까?”
“엉. 근데 아마 한 이틀은 안 나갈 거 같아서 좀 느긋하긴 해.”
“저번 주 일요일까지 포함하면 4경기 연속 등판 아니십니까?”
“그렇게 되네. 여튼 그래서 이틀은 쉬게 해주지 않을까 싶네.”
“알겠습니다. 편히 쉬십쇼.”
“어, 너도 조심히 가고.”
놈은 마지막까지 허리를 90도로 숙여 보였다. 적당히 손을 흔들어주고 녀석의 차가 멀어지는 걸 구경하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자취방에 들어와 짐을 대충 던져두고, 대충 씻고, 대충 닦고, 대충 입고 대충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자기 전 빼놓을 수 없는 핸드폰.
가장 대중적인 포털에 들어가 스포츠 쪽 탭을 클릭하니 오늘 있던 경기들의 하이라이트와 더불어 각 경기들을 정리한 기사들이 보인다. 그중 우리 경기였던 고척 경기를 터치.
기사엔 오늘 경기의 흐름이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선취점을 어디가 냈는데 금방 다음 공격에 또 누가 홈런을 쳐서 동점을 만들었고, 그러다 잠시 동안은 0의 행진이 계속되다가 어디가 또 솔로 홈런을 쳐서 먼저 달아나다 다음 공격에서 투런을 맞아 역전당한 뒤 상대하는 투수가 바로 나.
8회 3 대 2로 한 점 앞선 상황에서 세 타자를 삼진, 우익수 플라이, 포수 플라이로 공 7개로 막은 뒤 내려갔다.
그 뒤 이효재 선배는 안타 하나를 맞기는 했지만 병살타를 곁들여 타자 셋으로 마무리, 경기는 그대로 우리 원하가 이겼다…라는 이야기.
시즌의 반환점을 돌기 시작하며 어느덧, 팀 순위에 대한 이야기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흥미가 없는 이야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우승 팀에 대한 이야기.
언제나처럼 상수 타이거즈가 너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 가다 보니… 가장 흥미로워야 할 주제가 가장 뻔하니 가장 흥미를 잃는 모습.
오히려 사람들이 주의 깊게 보는 건 4위 싸움이었다. 작년 시즌 6위로 마감했던 우리 원하는 저번 달 5위, 가야 퍼펙터스에게 승리하며 5위로 뛰어올랐던 전적이 있다.
그리고 또 한 달 정도가 지난 지금, 현재 리그 4위인 비스코 러너즈와의 승차는 2게임. 그리고 내일 맞붙을 팀 또한 비스코 러너즈. 스윕하게 되면 팀 순위는 바로 역전되어 우리가 포스트 시즌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오오.”
생각만 했을 뿐인데도,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턱걸이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여,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에서도 승리, 한국 시리즈에 진출하여 박해진에게 삼진을 잡고 시합을 종료하여 우승을 확정 짓는 상상을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