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아, 극찬
0 대 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터져 나온 투런 홈런.
“한울아!”
“예이!”
성현이가 딱 3루를 밟았을 무렵, 콜이 떨어졌다. 이기고 있는 상황, 최근 4일 동안 등판 없음. 아마 큰 점수 차로 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등판 콜은 떨어졌을 거라 예상하고 있었다.
이미 예상했던 상황이 더 좋은 상황으로 바뀌었을 뿐.
곧장 글러브를 왼손에 끼고 공을 집어 들었다.
“건영아!”
“예!”
바로 건영이를 불렀다. 건영이도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는 순간부터 장비를 차고 있었는지, 포수 마스크를 허리춤에 덜렁거리며 홈 플레이트 뒤에 앉았다.
어깨 오케이, 팔꿈치 오케이, 허리 오케이, 골반도 오케이.
피처 플레이트 뒤에 서서 아직은 서 있는 건영이에게 공을 던졌다. 확실히 이전과는 달라진 구위.
빡―!
야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이보다 편안한 소리가 얼마나 더 있을까.
불펜 포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장 열심히 움직여야 할 선수들보다 훨씬 일찍 출근한다. 선수들이 바로바로 훈련에 임할 수 있도록 온갖 궂은일들을 도맡아 하는 것이다.
게다가 시합 중엔 언제라도 지금처럼, 불펜 투수의 공을 받아줄 수 있도록 항시 대기하고 있어야 하며 시합이 끝나면 나머지 마무리 정리를 그들이 한다.
제일 먼저 출근하여 제일 늦게 퇴근하는 이들.
“…건영아.”
“예!”
“오늘 끝나고 밥이나 먹자.”
“예에!!”
결정적으로, 박봉이다.
정말 어지간하게 팀에 대한 헌신과 야구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
“하이, 직구!”
팡―!
“씽카아!”
퍽!
“굿, 굿! 나이스 볼!!”
받는 거로 끝이 아니라, 잘 받아야 한다.
프로 투수의 살벌한 직구와 변화무쌍한 변화구를 공 하나짜리 구역인 볼집으로 빡! 정확하게 잡아야 한다. 던지는 사람의 기를 살려줄 수 있게. 격려와 화이팅을 빙자한 온갖 괴성은 덤.
“한울이 올라가자.”
“예.”
벌써 이닝이 끝났나 보다. 불펜 문이 열렸다.
“다녀오십셔!”
“…….”
마스크를 벗고 씨익 웃는 건영이가 보인다.
“야, 건영아.”
“예.”
“삼겹살 먹자.”
“야아아!!”
미친놈.
피식 웃고 마운드로 향했다. 원정 시합이기에 팀의 불펜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는 내가 등장해도 환호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지.
“후우―”
그러나 내 멘탈은 강력하다. 9년 동안 처맞아 가며 단련된 내 멘탈은 감히,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투수 멘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야.
김한울 2017시즌 ― 46게임 52이닝 1.73 6승 0패 28홀드 4세이브 57삼진 32볼넷 0사구 WHIP 1.19
제구 ― 최상
구위 ― 중
체력 ― 하
포심 ― 51
커브 ― 43
슬라 ― 31
스플 ― 37
체인 ― 42
싱커 ― 40
특성
해탈 ― 어떤 타구, 상황에도 그러려니 합니다.
불편 ― 상대하는 타자가 타석에서 투수를 보면 어딘가 불편하게 만듭니다.
해탈이라는 특성. 처음 봤을 땐 뭐 이딴… 같은 마음에 들었던 게 사실이지만 강력했던 내 멘탈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주었다. 땡큐.
불편이라는 특성. 이 또한 처음 봤을 땐 뭐 이딴… 같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본인조차도 눈치채지 못한 미세한 차이 하나가 세이프와 아웃을 결정하는 프로의 세계에서 불편이라는 단어 자체가 가지는 가치는 거대했다.
점수 2 대 1로 한 점 차. 타순은 1번 타자 송인호. 타율은 2할 중반에 머무르고 있지만 출루율은 거기에 8푼 정도를 더해야 한다. 컨택 자체는 썩 좋지 않지만 좋은 선구안으로 이를 상쇄하고 있다는 것.
“스윙.”
하지만 그런 타자는 내 입장에선 편하다.
“파울!”
컨디션 좋은 날엔 cm 단위 제구까지 되는 느낌인데, 선구안 그거 뭐. 컨택 안 좋은데 뭐.
“스윙, 아웃!”
공 다섯 개로 마무리하고 내야수들끼리의 라운딩이 끝나길 기다렸다. 어디 상처 난 곳은 없는지 다시 돌아온 공을 확인하고 다시 선 마운드.
2번 타자, 1루수 김영국, 좌투좌타.
특이하게 1루수 하면 생각나는 거포가 아니다. 좀 안 좋게 이야기하면 똑딱이. 게다가 키도 작고 체구도 왜소한 편.
하지만 언제라도 3할 초반대를 기대할 수 있는 타격과 별의별 송구를 다 받아내는 스쿱을 생각하면 여기 감독의 선택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규학이의 사인. 몸쪽 직구. 콜.
“보올―”
좀 빠졌나? 얼떨떨한 표정으로 공을 다시 받고 2구를 준비했다. 바깥쪽 싱커.
틱―
“파울!”
그리고 바깥쪽 하나 빠지는 볼.
틱―
…을 억지로 건드려서 3루수 정면으로 가는 내야 땅볼. 침착하게 잡아서 1루수가 잡아 2아웃이 되었다.
그리고 3번 타자 김홍주. 파워는 진퉁이긴 한데 컨택과 선구안에서 많은 약점을 드러내는 타자다. 원래대로라면 6번 내지는 7번 타순에서 자리 잡아야 할 타자지만 어지간히도 빈약한 팀 뎁스 탓에 3번에서 치고 있다.
따악―!
와아아아―!!
“오메…….”
스윗 스팟에서 아주 약간이기는 해도, 조금이나마 벗어났는데 저만치 하늘을 가르는 것을 보고 식겁했다. 폴대 옆으로 빠져나가서 다행이지. 치라고 주면 안 될 것 같아. 살살 꼬셔야지.
스트라이크 하나 먼저 잡은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나올 거라 생각하고 던진 바깥쪽 커브는 볼이 되었고 그다음으로 떨군 몸쪽 싱커는 파울이 되었다.
1-2. 뭘 던져야 되지. 몸쪽 직구, 하이패스트볼, 바깥쪽 커브, 바깥쪽 슬라이더, 떨어지는 포크. 좋다. 그걸로 가자.
와인드업 자세 후 이어진 리프팅 자세에서 곁눈질로 홈플레이트 뒤를 보았다. 규학이 왼쪽 무릎 부근에서 보이는 하얀색 미트. 거기를 노리고 포크볼을 있는 힘껏 던지면,
“스윙, 낫!”
치기 좋게 가다가 땅으로 푹 꺼진다. 여지없이 끌려 나오는 배트. 멋들어진 블로킹 후 얼른 공을 집어 들었지만 김홍주는 딱히 1루로 뛰거나 하려는 행동을 보이지 않고 곧장 몸을 돌려 자기 덕아웃으로 향했다.
“아웃.”
그에 따로 태그가 되지 않았지만 구심은 아웃 콜을 냈고 글러브를 벗으며 우리 덕아웃으로 향했다.
“우리 9회 누가 던지지.”
“효재 선배는 안 될 텐데.”
“음…….”
나와는 다르게 이전 주말 시리즈에서 무려 3연투를 하셨다. 나이가 어린 편인, 또는 전성기인 투수가 오늘 올라와도 혹사 논란이 나올 법한데, 40세 언저리의 노장에겐 더더욱 힘들다. 하물며 나온다 한들 제 기량을 발휘하실지도 의문이고.
“…난가?”
“너 말고 없을걸.”
“그치?”
“가서 몸이나 풀고 있어라.”
“음.”
불펜으로 다시 향하려다, 아이싱 티를 입고 그라운드를 바라보는 규진이 형에게 다시 몸을 돌렸다.
“형.”
“왜.”
“둘 중 하나만 골라봐. 이용호 개쪽 당하고 승리 날아가는 게 좋아, 아니면 그냥 평범하게 이기는 게 좋아.”
“뭐래.”
흐흐.
“난 말했다.”
경멸하는 시선을 뒤로하고 불펜으로 향했다. 그러는 동안에 벌써 1아웃 적립. 대충 이런 흐름이면 5분, 길어야 10분 안쪽으로 다시 올라가야 하지 않을까.
“코치님, 9회 제가 올라갑니까?”
“너 말고 없다.”
“예이.”
대충 예상했던 바. 잠시 동안 주어진 몇 분의 쉬는 시간 동안 공을 던지지는 않고 여기저기 스트레칭을 해주며 가동 범위를 늘려주고 있었다.
헛둘헛둘.
그러는 사이 차곡차곡 올라가는 우리 팀 아웃 카운트. 어깨에서 허리로 스트레칭 순서가 넘어왔을 무렵에 2아웃이 되었고, 글러브를 집어 찬찬히 공을 던지기 시작할 무렵 3아웃이 되었다.
다시 마운드로.
연습 투구까지 끝나고 내야수들이 라운딩하는 동안 로진을 만지작거렸다. 슬쩍 고개를 돌리다 규진이 형과 눈이 마주쳤다.
저 새끼가 뭔 지랄을 하려고 하는 건가, 미심쩍은 눈빛에 나는 엄지척을 선사했다.
4번 타자 조태풍. 그냥 전형적으로 있는 하위권 팀에서 혼자 야구 하는 우투좌타 유격수.
이어지는 5번 타자는 포수 이재명. 이효재 선배와 동기로서, 타격 피지컬 자체는 그렇게 뛰어나다고 하기 어렵지만 포수 특유의 강한 수읽기로 상대하는 것 자체는 꽤나 까다로운 타자.
이 둘만 지나면 나머지 6, 7, 8번은 딱히 별 볼 일 없는 타자들이다. 대타로 나올 카드들 또한 썩 석연치 않은 타자들이고. 해볼 만하다는 판단하에 시작된 9회 말 수비.
“볼.”
틱―
“볼!”
딱―
와아―!!
존 아래로 떨어지는 싱커가 아니라 존에 걸치는 싱커가 삼유 간을 뚫었다. 타격을 조금 더 세분화했을 때 나올 수 있는 툴들이 아주 균등하게 평균 이상을 유지하는 조태풍에게 잔재주는 딱히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볼넷을 줄 수도 없고, 장타는 더더욱 안 되고. 단타로 막으면 개이득이라는 맘가짐으로 임했고, 개이득을 보았다.
이어지는 5번 타자 이재명. 타자의 등장과 동시에 상대 덕아웃에서 타임이 걸려왔다. 조태풍이 빠지고 발 빠른 대주자 투입.
수비 툴에서도 뛰어난 유격수가 빠지는 셈이지만, 이번 이닝에서 점수를 못 내면 그대로 게임을 내줘야 하는 한성으로서는 당연한 선택.
도루? 줘도 돼. 홈에만 안 보내면 되니까. 게다가 리그에서 손꼽히는 강견인 규학이가 홈 뒤에서 버티는 한 상대 주자도 그리 쉽게 뛰지는 못한다.
주자 견제와 투구 후 수비에서도 리그 상위권인 내가 있기도 하고.
타자와의 상성상으로는 글쎄, 5 대 5가 아닐까. 수읽기가 강한 타자라고 해도 가진 수가 너무 많은 투수. 하지만 그 사인을 내야 하는 포수는 결국 띠동갑보다 어린 포수.
이 상황에서 중요한 건 과연 번트를 대느냐 아니냐다. 규학이도 그걸 아는지 곧장 홈플레이트 앞을 막아서고 야수들에게 사인을 낸다. 내야수들은 뭐 알아서 판단할 거고, 외야수들은 조금씩 뒤로.
초구 사인.
팡―
“세잎!”
포수 규학이가 아니라 1루수 기성이에게 향했다. 견제 사인에 맞춰 기성이의 1루 미트가 주자의 등에 태그되었지만 이미 손이 베이스에 닿은 뒤였다.
무시하고 진짜 초구를 기다렸다. 견제 때문에 타자의 움직임을 보지 못했다. 대신 규학이가 봤겠지.
몸쪽 높은 직구로 볼.
살짝 의외인 선택에 두 눈가가 움찔거리려는 것을 힘겹게 막았다.
“볼!”
타자는 반응 없음. 초구부터 볼이 들어갔음에 신이 났는지 상대 3루 코치의 양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에 맞춰 똑같이 양손을 움직여 응수하는 규학이.
이후 나한테 오는 사인은 이전과 똑같은 코스. 글러브 안에 오른손이 들어가자 타자의 몸이 앞으로 숙여진다. 대놓고 번트를 대겠다는 움직임.
“세잎!”
그럼 나는 또 견제.
“세잎!”
한 번 더.
이후 맞이한 투구 사인은 이전과 변함이 없었다. 몸쪽 높은 쪽으로 향하는 볼. 그러나 이번엔 스트라이크로.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스트레치를 잡았다.
타자는 내 투구를 기다리는 동안 아예 배트를 내려놓고 있었다. 기어코 번트를 대겠다는 의지. 원하던 곳으로 공이 향했다. 근데 보여야 할 배트가 보이지 않는다.
딱―
와아아―!!
“뭔…….”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
50% 번트 수비로 움직이고 있던 1루수와 2루수의 사이를 스치듯이 빠져나간 공은 성현이가 잡아 뒤로 안 돌아보고 3루로 쏘아 던졌다. 1루에 있던 주자는 굳이 무리하지 않고 2루에서 정지. 무사 1, 2루.
“타임이요!”
그에 흐름을 끊으러 규학이가 올라왔다.
“뭐 하러 올라왔어?”
“어떻게 하시려구요?”
“어쩌긴.”
보자…….
전광판에 나타나는 상대 라인업을 확인했다.
“삼진 잡고 삼진 잡고 삼진 잡으면 끝나.”
“예?”
“안타만 안 맞으면 되잖아. 하나 정도는 괜찮을지도 모르겠어. 하위 타순인 데다 대타감도 거기서 거기라 괜찮아.”
“…네.”
작전이랄 게 있나. 그냥 던지는 거지.
“아, 야.”
“네?”
“…아까 나 견제할 때. 이재명 선배 자세는 어땠는데?”
“저도 그거 봤는데요. 똑같았어요. 선배 던질 때만 슬래시 올라갔어요.”
“아아, 오케.”
연륜은 무시 못 하는구만.
6번 타자, 채! 지! 훈!!
와아―!!
동점 주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역전 주자까지 나가니 아주 신이 났다. 게다가 여긴 상대방의 홈팀. 응원석에선 떠들썩하게 다음 타자의 이름을 연호하며 역전을 기대했다.
“파울!”
쉽게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다음으로 나온 사인은 바깥쪽 커브. 비껴 맞춰서 병살 잡자는 이야기. 고개를 끄덕이고 던진 공은 정확하게 규학이의 미트를 향했고,
탁―
우리가 원하던 대로 타자가 당겨치며 타구가 3루 쪽으로 향했는데…….
“샹.”
타구가 생각보다 많이 느리다. 3루수 성훈 선배가 있는 힘껏 달려들어 공을 퍼내 올렸고 1루를 향해 제대로 시선을 주지도 못하고 무너지는 자세로 공을 던졌다.
“아웃!”
1루, 2루 주자에게 쓸 신경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1루에서 카운트 하나 잡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호수비.
“호에에에에엥! 형! 날 가져요!”
거기에 극찬을 아낄 이유는 없다.
“시끄러.”
“넵.”
라운딩 된 공을 본인이 마지막으로 받은 뒤 던지는 게 아니라 내게 직접 건네주며 피식 웃었다. 나도 즐겁게 웃으며 다시 마운드에 섰다.
7번 타자 정성훈. 우투좌타의 거포 외야 유망주이지만 수비는 아직 많이 좀… 그래서 지명 타자로 뛰고 있다. 거포? 내가 참 좋아하는데.
“스윙.”
“스윙.”
“츄라라악!”
구심의 삼진 콜들은 항상 뭐라고 하는지 알 수가 없다. 4개로 삼진 잡아내며 2사 2, 3루 유지.
8번 타자, 이!! 용!! 호오!!
아, 왔다. 이 순간이.
슬쩍, 우리 덕아웃 쪽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규진이 형과 눈이 마주쳤다.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투수가 공 던질 준비는 안 하고 덕아웃이나 쳐다보고 있자 자연스레 타자의 시선 또한 상대 덕아웃으로 향했다. 규진이 형을 봤나보다.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다, 이내 씨익 하고 웃는다.
니가?
아직 정신 못 차린 게 분명하다.
띠링―!
[복수혈전]
- 감히 니가? 지금까지 쌓여온 분노, 삼구삼진으로 갚아주세요! (0/1)
- 보상 ― 포심 +3
때마침 등장한 퀘스트. 다른 것보다 퀘스트 이름 참 맘에 든다.
규진이 형 공 쳤다고 기분이 좀 상승하신 것 같은데.
그래, 확실히 구위만 보자면 규진이 형이 나보다 몇 단계는 위에 있지. 최고 구속 155km랑 최고 구속 143km 따리, 그것도 버프 받고도 그 정도인 나랑은 다르지. 암. 다르지.
“스트랔!”
근데 그래서 뭐.
손끝을 떠난 공은 느리게, 그대들이 생각할 수 있는 그것보다 더욱 느리게, 그리고 더욱 큰 포물선을 그렸다. 87km의 커브.
아마 나를 지켜보는 감독님이나 투수 코치님은 마찬가지고, 해설하는 중계진들도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내게 반구하고 나서도 동공지진이 끊기질 않는 규학이를 보면 알 수 있다.
다음은 뭘 던질까.
잠시 고민했다. 뭘 던질까. 뭘 던져야 타자가 더욱 거지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규학이의 사인을 거르고 거르며 생각하다가 결국 내가 엄지 하나를 펴 보였다. 규학아, 표정 관리 안 하냐.
87km 커브에 투수의 팀 덕아웃이 놀라고, 공을 받는 포수가 놀랐다면 당연히 그 공을 쳐야 하는 타자 또한 놀라지 않았을까.
아, 정정.
어지간히 X같지 않았을까.
“스라아앜, 투!”
한가운데 직구. 131km.
타자의 표정이 아직까지도 볼만했기에 한번 시도해 봤는데, 먹혔다. 멍청히, 느린 직구가 존 정가운데를 통과하는 것을 지켜본 후에야 정신을 차린 듯, 이용호의 표정은 아주, 꽤나 볼만했다.
웃고 싶다. 실실 쪼개고 싶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웃음을 표출하지 못하는 건 꽤나 큰 고문이었다.
하지만 참자. 억누르자. 억누르고, 마지막의 마지막에 더더욱 환하게 웃자.
규학이의 다음 사인을 기다렸다. 말고, 말고, 말고, 말고. 정 원하는 사인이 나오지 않자 중지, 약지, 소지를 왼쪽 어깨에 내보였다. 두 눈을 껌뻑거리며 다시 사인을 낸다.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고, 와인드업을 잡았다.
퍼억―!
부웅―
“스윙, 아웃!”
“X발!”
경기 종료.
138km짜리의 느린 하이패스트볼.
용호야, 또 속냐.
안도와 즐거움으로 뛰쳐나오는 팀 메이트들을 뒤로하고 규진이 형을 찾았다.
“넌 진짜, 미친 새끼야.”
“아, 극찬.”
자기가 생각해도 웃기는지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하이파이브를 하는 와중에도, 작은 키의 규진이 형 머리 위로 떠 있는 텍스트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다.
띠링―!
[복수혈전]
- 감히 니가? 지금까지 쌓여온 분노, 삼구삼진으로 갚아주세요! (1/1)
- 보상 ― 포심 +3
제구 ― 최상
구위 ― 중
체력 ― 하
포심 ― 51+3=54
커브 ― 43
슬라 ― 31
스플 ― 37
체인 ― 42
싱커 ― 40
특성
해탈 ― 어떤 타구, 상황에도 그러려니 합니다.
불편 ― 상대하는 타자가 타석에서 투수를 보면 어딘가 불편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