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준플레이오프 1차전
“가을임에도 시원한 날씨라고 해야 할까요, 가을임에도 따뜻한 날씨라고 해야 할까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야구를 하기에도, 야구를 보기에도 너무나도 어울리는 날씨라는 것입니다.”
캐스터의 인트로와 함께 구장 전체를 비추던 시점에서 홈플레이트 뒤쪽으로 카메라가 넘어갔다.
각자 마이크를 들고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자 세 명이 카메라에 비쳤다. 가운데 안경을 쓰고 있는 남자가 다시 마이크를 움직였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2017시즌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펼쳐질 부산의 사직구장입니다. 저는 MBS 캐스터 권명훈이구요, 이영진 해설위원, 김수찬 해설위원과 함께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권명훈 캐스터가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숙이자 양옆에 서있던 해설위원 둘도 함께 고개를 숙였다.
“KP 스타즈는 비교적 순위를 3위로 일찍 결정을 지은 뒤 리그 후반부터 백업 선수들을 스타팅으로 기용하면서 주전 선수들의 체력적인 부담을 많이 줄였습니다. 다만 4위로 시즌을 마감한 원하 챌린저스는 정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야 힘겹게 4위를 확정 지었는데요.”
“아마 선수들의 체력적인 부담이 어느 정도는 있을 것 같습니다.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죠. 체력적인 부분뿐 아니라 심리적으로 많이 지쳐있을 겁니다. 하지만 바꿔 말해서 그만큼의 기세나 분위기를 타고 있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원하 또한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겁니다.”
먼저 KBO의 전설적인 홈런왕 출신, 이영진 해설위원이 한 마디 시작했다.
“실제로 어제 미디어 데이 때도 김한울 선수가 방금 이영진 해설위원이 하셨던 이야기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그쵸. 다만 저는 팀 전체적인 부분보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서 본다면 김한울 선수가 조금 걱정입니다.”
“아, 어떤 부분이 걱정되실까요?”
“체력적인 부분이죠, 체력. 권명훈 캐스터께서도 말씀하신 김한울 선수가, 마찬가지로 미디어 데이 때에서 본인이 이야기했잖아요? 키 플레이어는 본인이다. 저도 그렇게 봐요. 수비와 선발진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는 원하가 KP를 잡으려면 중간과 마무리에서 힘을 내줘야 하거든요.”
“맞습니다.”
“근데 김한울 선수가 데뷔하고 10년 동안 매년 50이닝 이상 던져왔고 최근 3년은 60이닝을 넘겨 던져온 상태에서 포스트 시즌에서까지 던져야 해요.”
“그렇죠.”
“게다가 마무리 이효재 선수가 체력적으로 달리는 게 사실이다 보니 김한울 선수가 이 부분까지 커버를 해줘야 하구요. 김한울 선수가 무너지면 원하는 많이 힘들어진다, 이렇게 봅니다.”
투수 출신이자 선수 칭찬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김수찬 해설위원은 모처럼 김한울을 칭찬하면서 또 걱정했다.
“말씀 감사합니다. 저희는 잠시 후, 광고가 끝난 뒤 원하 챌린저스의 1회 초 공격과 함께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후 경기에 대한 프리뷰가 몇 분 정도 진행되다가 광고 시간이 다가오자 캐스터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마무리하였고,
“컷입니다!”
PD의 컷 사인에 세 사람의 표정이 홀가분해졌다.
“솔직히 어디가 이길 것 같아요?”
“난 KP.”
“나도 KP.”
그라운드에서 중계석으로 향하는 동안, 이영진 해설위원이 슬쩍 운을 띄우자 나머지 두 사람은 비슷한 의견을 냈다.
“나만 원하가 이길 거라 보나 봐요?”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자 세 명 중 나이와 야구 관련 경력이 제일 긴 김수찬 해설위원이 첨언했다.
“이게, 정상적인 상태에서 붙으면 원하가 이길 것 같긴 해. 페넌트에서도 11 대 7인가 하지 않아?”
“10 대 8로 원하가 앞설 거예요.”
“그래. 야구는 수비거든. 원하가 수비가 좋아. KP가 아무리 타격이 좋아도, 원하가 다 막는다니까.”
그 부분에 대해선 나머지 두 사람도 동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너무 지친 게 보이더라고. 특히 한울이. 난 얘가 제일 걱정이야.”
“그 정도로? 김수찬 해설이 그렇게까지 한 명 편애하는 거 처음 봐요.”
“허허, 편애라니.”
장난기 가득한 세 중년의 분위기는 중계석에 도착해서도 웃음기가 멈추지 않았다.
“1선발에 황혁준, 2선발에 한규진까진 좋아. 근데 그 뒤가 문제니까. 그리고 아마 가능하다면 효재를 아끼려들 거야. 아니, 메인은 효재긴 할 텐데 무리는 안 시킬 거야. 나이 먹은 게 보여. 그럼 한울이가 올라갈 거야.”
나머지 두 사람도 그럴듯하게 느껴졌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 한울이가 올라가면 원하가 이기고 원하가 지면 한울이가 안 올라오지? 그럼 딜레마인 거야, 원하는. 리그 중위권 타선으로 승부 봐야 되거든. 이게 또 애매하지. 타격은 못 믿는다니까.”
전설의 홈런왕 출신을 앞에 두고도 시원하게 할 말 하는 모양새였지만 그 홈런왕 출신도 그 의견 자체엔 동의하는 바였다.
“전 1차전이랑 2차전에 황혁준이랑 한규진 나와서 이기고, 5차전에 다시 황혁준 나와서 이길 것 같은데요?”
“에이, 너무 소설이다.”
“야구가 소설이지 뭐.”
“라이브 10초 전입니다!”
계속되던 잡담은 PD의 콜 사인에 그대로 정지되었다.
가운데에서 깐족거리던 중년의 남성은 어디 가고 현존하는 야구 캐스터 중 가장 긴 경력과 가장 많은 인기를 가진 권명훈 캐스터가 등장했다.
“큐!”
“2017 KBO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이 펼쳐질 부산 사직구장입니다. 올 시즌 처음으로 진행될 포스트 시즌 경기는 당연 만원 관객분들과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작년 한국 시리즈 1차전부터 이번 경기까지 5경기 연속 매진이네요.”
“그렇습니다. 야구에 대한 열기가 점점 뜨거워지는 것을 저희도 느끼고 있는 중인데요. 이와 관련해 구현정 아나운서가 원하의 김한울 선수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한번 보시죠.”
화면은 조금 전 있던 찍었던 인터뷰 영상으로 넘어갔다.
“안녕하세요, MBS 구현정 아나운서입니다. 지금 제 옆엔 원하의 김한울 선수가 있는데요! 작년 한국 시리즈 1차전부터 오늘 준플레이오프 1차전까지 5경기 연속 매진 행진을 잇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 뭐. 좋죠. 많은 분들이 야구 좋아해 주시는 게 참 감사하죠.”
“김한울 선수도 인기를 체감하고 계세요?”
“조금은요?”
“어떨 때 느끼시나요?”
“퇴근할 때 사인해 달라고 하는 분이 늘었더라구요. 퇴근할 때 전철에서 알아보시는 분도 많이 늘었구요.”
“김한울 선수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께 한마디 해주신다면요?”
“감사합니다. 압도적으로 감사합니다.”
“현재 원하 챌린저스는 구단 동영상 채널을 8개 구단 중에 가장 먼저 개설하고, 또 가장 먼저 개설한 만큼 제일 많은 구독자 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채널 지분 중 김한울 선수 본인의 지분이 제일 높다는 거 인정하시나요?”
“예. 그러니까 PD님이 이거 보시면 저한테 보너스 좀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안 그러면 출연 거부하려구요.”
그 말에 아나운서는 진짜로 빵 터졌는지 잠시 입을 가리고 크게 웃다가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다시 중계석으로 카메라가 돌아갔다.
김한울의 잔망스러운 인터뷰에 중계석의 세 남자도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두 분은 원하 계정 보십니까?”
“네. 저는 구독하고 있습니다.”
“그런 게 있었어요?”
“보시면 꽤나 재밌어요.”
“호오…….”
아무래도 나이가 제일 많아 이런 쪽에 둔한 김수찬 해설은 신문물을 알아낸 듯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다.
“국민의례가 진행되겠습니다.”
부산 지역의 야구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나와 애국가를 부를 준비를 마쳤다. 그동안 선수들은 물론이고 관중석에 있던 관객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 제 왼 가슴에 오른손을 올렸다.
애국가가 끝나고 점점 솟구쳐 오르는 고양감에 팬들은 절로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고, 이내 부산 출신의 유명한 연예인이 KP 스타즈의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올랐다.
짧은 인사말 후 마운드 앞에서 던진 공은 포수 미트에 정확히 전달되었고 그것만으로 기쁜 듯 포수에게 뛰쳐 가 악수를 청했다. 구단 아나운서가 짧은 소감을 부탁했고 그는 KP 스타즈의 승리를 응원한 뒤 그라운드를 떠났다.
이내 KP 스타즈의 1선발인 임재혁이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모습이 보이자 KP 스타즈의 수비 위치가 화면에 띄워졌다.
“KP 스타즈의 수비 진형입니다, 외야에 이경무, 신용희, 이창현, 내야에는 하은민, 류승훈, 김기윤, 안병국이며 임재혁 투수와 황하균 포수의 배터리입니다. 임재혁 선발 투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입단한 지 올해로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팀의 1선발, 포스트 시즌의 1선발이다. 이 이상의 설명이 필요할까요.”
크흠!
“좋은 직구, 좋은 변화구와 좋은 제구. 모든 능력치들이 평균치 그 이상인 아주 이상적인 선발 투수입니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KP의 야수진들이 만들 확률이 큰 위기 상황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느냐입니다.”
“수비 측면에서 김수찬 해설위원께선 어느 선수를 중요히 보십니까.”
“류승훈 선수의 역할이 중요할 겁니다. 상대적으로 수비적인 측면에서 많은 약점을 보유한 팀이잖아요. 수비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포스트 시즌인 만큼, 유격수인 류승훈 선수가 모든 야수들을 조율하는 데 많이 바쁠 겁니다.”
독설가 컨셉답게 김수찬 해설위원은 시작부터 KP 스타즈의 수비를 지적했다.
“임재혁 투수에 맞서는 원하 챌린저스의 배팅 라인업입니다. 1번 유격수 이명진, 2번 우익수 강성현, 3번 1루수 남기성, 4번 중견수 박진형, 5번 지명 타자 윤승주, 6번 3루수 이성훈, 7번 2루수 전성문, 8번 포수 문규학, 9번 좌익수 유훈의 라인업입니다.”
“많은 분들이 원하가 타선이 약하다고 생각하시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폭발력은 타 팀에 비하면 떨어질 수는 있으나 짜임새가 의외로 좋은 타선입니다.”
“타선에서 가장 중책의 임무를 맡는 건 어느 선수일까요.”
“저는 윤승주 선수를 꼽고 싶네요. 정규 시즌 후반기에 들어서 어딘가 스윙이 삐걱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수비적인 측면에서 도움을 줄 수 없는 지명 타자이기 때문에 타격 측면에서 더욱 분발해야 됩니다.”
이후 짧은 이야기가 조금 오간 뒤 KP 스타즈의 1선발 투수인 임재혁이 연습 투구를 하는 장면이 잡혔다.
타석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서 임재혁의 투구에 타이밍을 맞춰보는 이명진이 보였고 구심은 설설 뛰어서 나오고 있었다.
“KP 스타즈의 선발 임재혁 투수입니다. 2017시즌 24경기 모두 선발로 나와 144이닝 평균 자책점 4.38, 10승 6패를 기록했습니다. 삼진은 98개를 기록했고 볼넷은 26개밖에 허용하지 않았으며 시즌 WHIP는 1.33입니다.”
“올해 21살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투수죠. 공이 빠르다, 구위가 좋다, 변화구가 좋다, 이런 건 엄청 특출난 건 없어요. 근데 배짱이라는 게 좋단 말이죠. 쳐봐라, 이런 맘가짐을 가진 신인 투수 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네요.”
“김수찬 해설께서 말씀하신 공 빠른, 변화구가 좋은 투수들보다 전 이 임재혁 선수 같은 배짱 좋은 투수가 더 상대하기 힘들었어요.”
연습 투구가 끝난 뒤 구심은 포수 뒤에 서서 연습 스윙을 마친 이명진을 불렀다.
투수에게 잠시 기다려달라는 의미로 손바닥을 보인 채 오른발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축발을 고정시킬 준비를 마쳤다. 이후 타격 자세를 잡고 투구를 기다렸다.
“초구는 바깥쪽 148km 직구, 존을 통과했다는 구심의 판단에 스트라이크가 올라갑니다.”
“2구는 떨어지는 공. 지켜보며 카운트 1-1.”
“3구 바깥쪽 다시 직구인데요, 살짝 빠졌습니다.”
“다시 한번 바깥쪽 직구가 빠지면서 이명진 선수에게 카운트가 유리해집니다.”
“어어, 또 바깥쪽으로 빠지는 직구인데요, 임재혁 선수가 시작부터 허무하게 볼넷을 허용합니다.”
이어 2번 타자 강성현은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출루했다.
“오늘 임재혁 선수의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시작하자마자 두 타자를 연속으로 볼넷으로 내보내고 황하균 포수가 잠시 타임을 부릅니다.”
“중압감을 아무래도 느끼는 게 아닐까요.”
“이런 자리에서 이겨내야 향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투수가 될 텐데요. 큰 경기라고 해서 그에 관한 생각을 가지고 던지면 절대 좋은 결과를 가질 수가 없어요. 무심해져야 해요. 생각이 많아요.”
김수찬 해설위원이 말처럼 이어 등장한 3번 타자 남기성을 상대할 때 임재혁은 고개를 젓는 모습이 많이 줄었다.
1-2의 카운트에서 당긴 타구는 우익수 이창현의 글러브 안에 들어가 버렸지만 꽤 잘 맞았던 타구기에 2루에 있던 이명진이 3루로 태그업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이어 4번 타자 박진형이 등장하자 포수는 벤치와 잠시 사인을 교환한 뒤 구심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그러자 구심이 다시 박진형에게 무어라 이야기를 하자 박진형의 얼굴이 구겨지며 차고 나왔던 암가드와 풋가드, 배팅 장갑까지 풀어 그 자리에 내려두고 1루로 터덜터덜 걸어 나갔다.
“아, 고의사구인가요?”
“그런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시즌 막판 박진형 선수의 타격감은 좋았고, 윤승주 선수의 타격감은 썩 좋지 않았으니까요. 그치만 경기 시작부터 만루책이 나오는 건 조금 의외네요.”
“자연스럽게 내야수들은 평소보다 조금 앞에서 수비를 시작하게 됩니다.”
“글쎄요. 이게 좋은 방향일까요.”
“김수찬 해설께선 좋은 방법이라 보지 않으시는 모양입니다.”
“예. 아무리 윤승주 선수의 컨디션이 떨어져 있다고는 해도 굳이 만루까지 만들어야 했을까요? 남기성 타자와 승부하는 모습은 평소 알던 임재혁 투수의 모습이었는데요, 그 모습을 믿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만루가 채워지고 초구입니다. 초구는 몸쪽으로 꺾여 들어가는 슬라이더입니다. 살짝 깊었습니다, 원볼부터 시작합니다.”
초구를 지켜본 뒤 타자는 잠시 타석 밖에서 배트를 휘둘러보며 타이밍을 맞춰내고 있었다. 두세 번 정도의 연습 스윙을 마치고 다시 타석에 들어갔다.
“윤승주 타자가 2구째를 맞습니다.”
“이번 공을 조심해야 해요.”
게임 보는 눈이 탁월해 토토 같은 거 하면 돈 잘 벌지 않을까, 하는 팬들의 우스갯소리가 많은 김수찬 해설이었다.
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자,
따악―!!
“어어, 잘 맞은 타구, 큰데요오오!! 이 타구는!! 포스트 시즌 시작부터, 본인의 부활을 알리는!! 윤승주의 만루 홈런입니다아아!!”
시작부터 점수가 화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