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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불펜생활-37화 (37/190)

37화. 컨버전

“음…….”

의사분께서 컴퓨터로 MRI 촬영 영상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고심하고 있었다. 여기는? 음, 다행이고, 아… 여기가 좀. 그런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를 몇 분.

“그나마 다행이네요. 상태가 심하지는 않아요.”

“얼마나…….”

“여기, 예전에 수술하신 데죠?”

“아… 네.”

오른쪽 어깨. 언제더라. 입단하고 2년 차였나, 3년 차였나. 시즌 말미에 극심한 통증으로 인해 시즌 아웃되었던 이유였다.

투수에게 어깨는 생명과도 같다. 통증, 혹은 부상 등은 거의 사형 선고와 다르지 않다.

다른 야수들 또한 공을 던지는 동작을 취해야 하기에 치명적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공을 던지는 것 자체가 일인 투수는 말 그대로 생명과 같다.

그런 어깨 수술을 한 번 했다. 이전과 같은 기량으로 회복할 확률은 약 10%. 생각보다 높다면 높고, 낮다면 낮은 확률.

하여튼 그 시절의 나는 그 수술을 받았고, 괴물 같은 회복력을 보이며 바로 다음 시즌의 초중반 즈음부터 합류를 했다.

근데 하나 함정이 있는 건, 10%의 확률을 뚫고 재기에 성공해 봐야 어차피 예전 기량이 썩… 음… 좀. 그랬다는 것.

4월 말쯤. 갑자기 어깨에서 투둑거리는 소리나 나며 경미한 통증이 느껴졌다. 파워만 없다뿐이지 그 이외에 부분에선 대부분의 것을 타고난 어깨였기에 꽤나 뜬금없이 느껴졌다.

그리하여 투수 코치님과 방문한 구단 지정 병원.

“슬랩 재발한 건 아니니까. 진짜 다행인 거고. 요즘에 한울 씨 많이 던지잖아요.”

“그거야…….”

슥, 투수 코치님의 눈치가 보였다.

“아무래도 팀 사정이 있다 보니까요.”

“코치님, 최은구 선수는 그래도 좀 올라오는 것 같던데, 신경석 선수는 어떻게 안 돼요?”

최은구 선배는 ‘그날’ 이후, 조금씩 감을 되찾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모든 것을 본인이 해결하려고 했던 게 안 좋은 쪽으로 이어졌던 모양이다.

FA 계약을 하고 들어온 선수니까. 마무리니까.

무언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 내가 다 잡아야 한다는 부담감.

이 부담감들은 무의식 속에서 동작들을 부자연스러움으로 인도했다.

타고난 힘 자체는 만땅이니까 구속은 그래도 나와준다고 하지만 부담으로 인해 생긴 러싱은 당연스레 밸런스를 작살 냈고, 그 결과가 극악의 제구.

그런 투수가 등판해 봐야 보일 수 있는 모습은 공은 빠른데 제구 안 되는 투수의 전형적인 모습일 뿐이었다.

결과는 뻔하다. 장작 쌓기. 보통 두 명 정도, 많으면 만루까지 채운다. 중간에 삼진 하나둘 정도 첨가할 때도 있고.

하여튼 여기서 더 내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155km를 던지던 투수가 145km를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에 그냥 밀어 넣는다.

프로와 프로가 대결하는 이상 이기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내가 쟤보다 잘하거나, 쟤가 나보다 못하거나.

155km를 빵빵 꽂아대는 투수는 나보다 잘하는 투수지만, 어설프게 145km짜리를 힘없이 밀어 던지는 투수는 나보다 못하는 투수다.

쾅!

그렇게 통타. 주자 둘, 장타면 주자 셋 다 홈에 들어와 순식간에 2, 3실점. 제구 안 되는 투수의 전형적인 모습.

뜬금없는 5-4 더블 플레이로 1차 위기를 극복한 뒤 최은구 선배는 마음의 짐을 내려둔 모양이었다.

그 후 5경기에서 4.1이닝 등판해 볼넷은 단 3개만 허용했고 삼진은 8개를 잡아내며 실점은 단 1점. 이전과 비교하면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 타이밍이 너무 늦었다. 시즌 후반, 더 나아가서는 포스트 시즌에서의 활약을 기대할 수 있는 투수의 체력을 시즌 초반부터 가불한 결과는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났다.

부상.

어깨 쪽의 경미한 통증으로 인해 이런 형식으로 병원에 찾아오게 되었고 그 결과는,

“연골이나 관절 쪽 문제는 아니에요. 근육에 피로가 간 정도. 요새 등판하는 거 생각하면 이 정도에서 끝난 거면 싸게 먹힌 거지.”

머리가 훤히 벗어진 의사 선생님께선 컴퓨터 모니터의 한 곳을 펜으로 툭툭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자라나라, 머리머리.

“한울 씨가 최근 몇 년 동안 계속해서 50이닝 이상 등판했잖아요. 60이닝이었나?”

“대충 그쯤 되죠.”

“말이 50이닝이지……. 일단 좋은 소식은, 푹 쉬면 나을 거예요.”

“기간은 어느 정도면 되겠습니까?”

지금까지는 나와 의사 선생님과의 대화였다면 여기서부턴 코치님과 의사 선생님의 대화였다.

“일주일이면 충분히 원래 폼을 찾기는 할 텐데, 불안하면 10일 정도? 그래, 10일 정도는 잡고 회복시키는 게 좋을 거예요. 10일 동안 재활하고, 아니 재활이랄 것도 없어. 쉬면 낫는 거니까. 지금 이 상태에서 자꾸 무리시키면 그땐 진짜로 슬랩 또 터지는 거지. 아시겠죠?”

“네에…….”

“코치님 머리가 아프시겠네. 열흘 동안 한울 씨가 불펜에서 빠지니까.”

“아이고…….”

“신경석 선수 좀 빨리 제정신 좀 차리게 해봐요. 가능하면 다른 불펜 투수들도. 한울 씨가 이거 낫는다고 해도 지금 페이스로 계속 등판하잖아요? 늦어도 내년 이맘때고, 빠르면 올 시즌 후반에 바로 나가리에요.”

“예…….”

병원을 나선 시간은 막 병원의 점심시간이 시작된 1시.

“한울아.”

“예, 코치님.”

“밥이나 먹고 가자.”

“아, 네.”

병원이라고 하면 당연히 병원 자체의 직원들도 많고, 또 이 병원의 환자들도 많고, 또 이 병원의 환자들의 방문객도 많고.

하여튼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거치거나 지나가기 때문에 큰 병원 근처는 나름의 맛집이 있다.

구단 지정 병원이다 보니 이곳에 꽤나 익숙하신 듯 자신감 있게 앞장서신 코치님의 뒤를 따라 근처의 국밥집으로 향했다. 순댓국. 오. 오오, 순댓국.

“순댓국 두 개 주시… 넌 특이냐?”

“예.”

“특으로 두 개 주세요.”

국밥집 이모의 해맑은 네에~ 특 두 개~ 가 아련하게 메아리친다. 한창 점심때라 그런지 국밥집은 꽤나 부산스러웠다.

“진짜 코치님 머리가 좀 아프시겠네요.”

“아프기만 하겠냐…….”

실실 웃으며 도발했지만 딱히 반응이 시원치 않아 눈치껏 그만두었다. 진짜 한 대 맞을 것 같아서.

“그래도 은구가 좀 정신 차려서 다행이지.”

“신경석 선배는 어쩐대요.”

“어쩌긴. 지가 지 살 길 찾아야지.”

“흠…….”

땅볼을 유도해야 할 투수가 직선타, 혹은 뜬공을 허용한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공이 안 휘어. 안 꺾이고.”

이 부분.

잠시 신경석 선배의 투구 비율을 보자.

일단 테일링 가득히 우타자 몸쪽으로 말려 들어가는 직구. 구속은 대략 130 중후반대. 거기서 5~10km를 뺀 싱커.

직구가 약하게 우타자 몸쪽으로 말려 들어간다면 싱커 또한 우타자 몸쪽이기는 하지만 세로축의 변화가 추가되어 대각선으로 떨어지는 느낌.

그리고 110km 전후에서 형성되는 커브. 잠수함 특유의 솟아오르는 커브는 아니지만 좌타자 몸쪽으로 급격하게 파고드는, 횡적인 변화가 아주 큰 커브다.

이게 다다. 좌타자 쪽 대각선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도 있긴 한 것 같지만 거의 안 던진다고 하니 패스.

겨우 세 개?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세 개면 충분하다. 구원 투수, 사이드암, 게다가 꽤 괜찮은 제구력까지 포함된다면. 수 싸움이 가능한 머리까지 추가된다면 금상첨화.

전성기 때의 신경석 선배는 그런 투수였다. 오히려 주자가 있을 때 더 강한 투수.

왜? 땅볼로 병살 잡으면 되거든. 근데 지금은 땅볼은 안 나오고 뜬공, 라이너가 많이 나오니 얻어터지는 거고.

“커브는 각이 줄었어. 싱커는 밋밋해. 직구는 느려.”

던지는 두 변화구의 변화가 약해지고 제일 강한 무기는 부러졌다.

“폼에 대한 문제는요?”

“없어. 비디오 몇천 번 돌려봐도 똑같아.”

“음…….”

결국 여기도 멘탈 문제인가, 싶었을 무렵 순댓국이 나왔다. 뽀오오얀 국물에 다대기 때려 넣고, 새우젓에 들깻가루를 왕창.

밥그릇 뚜껑을 뒤집어 새우젓, 들깻가루, 다대기와 다진 고추를 살살 섞어두었다. 뚝배기 안의 순대를 집어다가 수제 양념장에 찍어 먹으니 아아… 순댓국 아아…….

깍두기를 한 입 베어 물자 겨우 이야기의 주제가 떠올랐다. 생각보다 여기 순댓국은 위험한 음식이었다.

“폼은 똑같은데 파워가 약해진 거면… 음…….”

어렵네.

나 따위가 쉬이 들이댈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영진 씨는 대체 내 뭘 보고 추후 날 여기 투코로 추대하려고 했던 건지 참.

“그렇다고 2군 내려보낼 생각은 없으신 거잖아요.”

“경석이 내리면 누구 올리려고. 밑에는 더 처참한데.”

작년부터의 나, 그리고 최근부터 조금씩 나아진 최은구 선배를 제외하고 그나마 성적이 괜찮은 게 그 뚜드려맞기만 하는 신경석 선배라는 점. 처참한 우리 팀.

안에 있는 순대들을 먼저 다 건져 먹은 뒤 밥을 국에 넣고 설설 말며 생각을 이었다.

무엇이 해결책일까. 어떻게 하면 신경석 선배의 예전 구위를 되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코치님.”

“응?”

“신경석 선배를 마무리로 올려보시는 건요?”

“갑자기?”

“타이밍 문제 아니에요?”

“음…….”

계속 얘기해 봐, 같은 눈빛. 움직이던 숟가락까지 멈춰졌다.

“올해 그 캠프 때 감독님이 그러셨거든요. 저한테, 경석이랑 은구가 오긴 했는데 아무래도 니가 제일 낫긴 하니까, 중간 두 자리랑 마무리 중에 어디 갈래, 하고.”

“중간에 남는다고 했냐?”

“예.”

“왜? 왜 마무리 안 가고?”

“중간이 맘이 편해서요. 하여튼, 그래서 제가 그때 구상했던 게, 선발이 힘 떨어져서 주자 하나나 둘 정도 보내면 신경석 선배가 올라가서 땅볼로 병살 잡고, 제가 8회에 던지고 최은구 선배가 9회 막는 그림이 제일 좋지 않을까, 뭐 그런 식으로 얘기했었거든요.”

“그래. 그게 제일 그림이 낫긴 하지.”

“근데 생각해 보면, 최은구 선배는 원래 중간이었고 신경석 선배는 마무리였잖아요.”

“근데.”

“중간에서 마무리 간 거면 몸을 좀 늦게 풀면 되기야 하니까… 적당한 이닝 진행 보고 아, 이쯤에 몸 풀면 9회 나가겠구나, 알잖아요. 근데 그런 마무리만 하다가 중간으로 옮기면 좀, 자기 올라갈 때 알기가 좀 애매할 텐데요.”

약간의 경험이 섞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흠…….”

하지만 꽤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 건지 숟가락이 전혀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폼의 변화도 없고, 몸의 변화도 없고. 그렇다고 멘탈의 변화도 아닐 것 같고… 느낌이긴 하지만. 그럼 그냥 단순하게 타이밍 문제 아닐까요.”

“니 말대로 한번 해보기는 해야겠다.”

그렇게, 외부 영입으로 데려온 불펜 둘의 위치가 전환되는 것으로 1차 합의가 되었다.

* * *

[단독] 원하 챌린저스 김한울, 어깨 근육 손상으로 10일간 결장 확정.

7위 한성 위너스와 5경기 차로 8위에 랭크되어 있는 원하 챌린저스가 암초와 만났다. 불펜진에서 가장 확실한 모습을 보이던 김한울이 어깨 부상과 만난 것.

구단은 보도 자료를 통해 큰 부상은 아니고 시즌 초부터 잦은 등판과 많은 이닝으로 인한 피로가 주원인으로 경미한 통증이 발생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탄탄한 수비와 응집력 있는 타선, 그리고 리그에서 최상위권으로 평가받는 선발진을 두고도 8위에 머무르는 아이러니는 불펜진의 방화에 있었다.

선발진이 탄탄한 수비와 함께 점수를 막아내고, 타선은 점수를 내야 할 곳에서 내 승기를 잡은 경기 후반 불펜진의 방화로 승리를 날려 먹는 것이 올 시즌 원하의 패배 공식이었다.

올 시즌 전 거액의 FA 계약을 한 뒤 돈값 이상의 모습을 보이던 김한울만이 유일한 불펜의 희망이었던 원하로서는 이런 상황에서의 김한울의 부상이 더더욱 뼈아플 전망이다.

그나마 최은구가 요즘 들어 다시 제구의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지만 이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으며 다른 불펜 투수진들의 안정 또한 시급한 상황이다.

구단이 발표한 김한울 선수의 휴식은 10일. 이 10일 동안 어떻게 불을 끄느냐에 따라 올 시즌 원하의 운명이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전망이다.

―ewu****

└시즌 초부터 굴려대는 거 보고 내 이럴 줄 알았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추천 845 비추천 17

―kjfh****

└원하 불펜 대체 몇 년 째냐? 투수 코치 일 안 함?

추천 746 비추천 68

―qrny****

└진짜 역대급으로 골때리는 팀. 그 선발에 그 수비에 그 타선 가지고 리그 꼴찤ㅋㅋㅋㅋㅋㅋㅋ

추천 465 비추천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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