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내리사랑
첫날 경기는 타선의 응집력에서 앞선 우리 팀의 승리로 결정 났다. 최종 게임 스코어 8 대 5.
8회 등판하여 4, 5, 6번 타자를 각각 3루수 파울 플라이, 중견수 플라이, 3루수 땅볼로 처리한 뒤 복귀전을,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퀘스트 또한 완료했다.
9회에는 나도 아니고, 신경석 선배도 아니고 최은구 선배도 아닌 원래부터 팀에 있던 불펜 투수들이 등판했다.
우리 셋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별 변화가 없었는지 2실점을 하고도 주자 둘을 남겨둔 상태에서 신경석 선배가 등판하여 두 타자를 상대하고 세이브를 챙겼다.
진짜 어떡하냐, 우리 팀 불펜.
다음 날 경기는 4선발인 태웅이의 등판. 혁준이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인 친구다.
피지컬도 좋고 구위만 따지자면 혁준이보다 좋다는 평가를 받는데 구속, 제구와 변화구 등의 측면에서 전반적인 하위 호환 느낌.
체력은 되게 좋아서 실점이 많아도 이닝도 많이 먹는다.
6이닝 동안 6실점이라는 큰 실점을 했지만 우리 팀 타선도 상대의 실책에 기대어 6점을 따라간 뒤 8회에 성문이가 쓰리런을 날리면서 승기가 넘어갔는지 딱히 우리 불펜 셋이 등판하지 않고도 팀은 승리했다.
그래, 단순한 한 번의 승리가 팀 순위에 바로 영향을 주었다. 지긋지긋했던 리그 꼴찌에서 벗어났다.
아무리 우리가 하위권 전력이라 항상 평가를 받아온다고 해도, 중하위권과 매년 꼴찌를 예약하는 팀과는 클라쓰 차이가 있다, 이마리야.
이날의 승리로 우리는 8위와 한 경기 차이가 나는 7위가 되었고, 그다음 우리 목표는 현재 6위에 랭크되어 있는 KP 스타즈.
타격을 제외한 모든 것이 작살 나 있지만, 타격 하나만큼은 또 작살이 나기에 어떻게든 중상위권은 유지하는 팀이었는데 올해는 초부터 타격도 말썽인 모습. 이 시점에서 우리 팀과의 승차는 세 경기. 충분하다.
그리고 한성 위너스와의 시리즈 마지막 날인 오늘. 양 팀은 화끈한 타격전을 펼쳤다.
그게 각 팀 투수들의 제구 불안과 수비들의 실책으로 일어난 점수 파티임은 잠시 두고서, 일단 점수 자체가 화끈하니 보는 입장에선 꽤 볼맛이 나지 않았을까. 막상 하는 우리만 속 타지.
선발이 무너지고, 불펜이 무너지고, 그러면 수비도 무너지고.
이 세 박자를 충실하게 지킨 양 팀은 7회가 끝났을 시점에서 양 팀 스코어의 합이 20을 넘기고 있었다.
오늘따라 뭐 마가 꼈는지 착실한 수비 하나는 인정하는 우리 팀들 수비들이 엉망진창이다.
견실한 수비로 유명한 성훈 선배의 알까기부터 시작해, 훈이의 송구 에러, 규학이의 패스트볼, 기성이의 포구 실책까지.
개판.
근데 저기도 마찬가지였다.
틱―
와아아!!
7회 말, 기성이가 선두 타자로 나와 안타를 친 후 대주자 기범이와 교체되었다. 기범이 특유의 능글맞은 짓거리로 상대 투수와 수비의 멘탈을 야금야금 갉아먹더니 폭투로 2루를 쉬이 쟁취했다.
2루에선 더했다. 유격수 땅볼에 슬쩍, 하고 3루로 뛰는 척하며 실책을 유도한 뒤 본인은 3루에서 살고 진형이 또한 1루에서 살렸다.
“빠졌어!”
“고고고!!”
“뛰어, 뛰어, 뛰라고오오옥!!”
그리고 승주의 적시타.
좌전 안타로 3루에 있던 기범이가 홈에 거의 걸어오다시피 하며 득점을 올렸다. 승주는 1루를 밟고 기분이 좋은지 주먹을 쥐고 있었다.
거기서부터 우리 팀의 분위기는 화끈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대거 5득점을 뽑아내며 승기를 굳혔다.
“한울아.”
“예. 나갑니까?”
“부탁한다.”
“예.”
14 대 15.
한 점 차 8회 초 수비, 감독님은 최근 페이스가 좋은 최은구 선배도 아니고 다시 마무리 자리를 양도받은 신경석 선배도 아닌 나를 선택했다.
두 사람의 최근 등판일지를 보면 내가 나가는 게 나을지도.
천천히 마운드로 향했다. 이제는 익숙한 내 등장 곡. 크게 함성 짓는 홈 팬들. 양 팀 다 점수가 개판 나 있긴 하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내가 신경 써야 할 건 지금이 몇 점 차인지, 그리고 선두 타자가 누구인지.
띠링―!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 무실점으로 이닝을 막으세요. (0/1)
- 보상 ― 슬라이더 +1
퀘스트의 등장 때문에 안 그래도 딱딱해졌던 마음이 더욱 결연해졌다.
이내 연습 투구를 위해 로진을 바르고 있자 포수가 헐레벌떡 마운드로 올라왔다.
“서, 선배님.”
“엉.”
“리드는 그…….”
“아, 내가 할게. 압도하는 느낌으로 가자.”
“예, 예. 알겠습니다.”
난타전 속에 규학이는 6회였나 7회에 빠지고 백업 포수인 주호가 있었다. 스탯을 수비에 몰빵한 규학이와는 정반대로 스탯을 타격에 몰빵한 주호.
캐칭, 블로킹, 리드 등 딱히, 냉정하게 말해… 그래, 그냥 나쁜 편. 그래도 힘은 좋아 송구 속도는 좋지만 정확도가 영 좋지 못하다.
컨버전이 시급하다.
7번 타자, 지명 타자 정성훈.
장내 아나운서의 무기질적인 알림이 울렸다. 타자는 내 시야 왼쪽 타석에 들어와 배트를 휘휘 저으며 자기 루틴을 찾았다. 애써 그쪽으로는 시선을 주지 않고 주호에게만 시선을 고정했다.
플레이!
압도. 과연 나 따위에게 가당키나 한 단어일까.
“후우…….”
가능해.
볼을 요구하는 처음 두 사인을 거절하자 몸쪽 직구 사인이 나왔다. 고개를 끄덕이고 양손을 머리 뒤로 넘겼다.
“하―익!”
뭔 소린지 알 수가 없는 스트라이크 콜을 뒤로 하고 다음 사인을 기다렸다. 이번엔 바깥쪽으로 가는 직구. 단번에 맘에 드는 사인이 나와 고개를 끄덕였다.
“볼.”
들어갔다고 생각했는데, 프레이밍이 약한 주호 탓인지 약간 빠진 걸로 보였나 보다.
주호는 볼을 잡은 채 2초를 더 기다리며 무언의 항의를 했지만 나는 딱히 개의치 않았다. 빠진 건 빠진 거니까. 스트라이크야 언제든지 집어넣을 수 있으니, 크게 미련은 없었다.
몸쪽으로 파고드는 슬라이더, 바운드 되는 슬라이더, 바깥쪽 백도어 슬라이더.
세 사인 연속 슬라이더가 나왔다. 두 번 고개를 저어도 이어지는 슬라이더 사인에 뭔가 있나 싶어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던지는 공 중에 제일 자신이 없는 슬라이더였기에 가능하면 버리고 싶은 구종인데,
딱―
역시나.
이건 좀 내가 봐도 볼인가 싶었던 공을 무지막지하게 당겨서 기성이의 옆을 지나쳤다. 주호도 그제야 내가 계속 고개를 젓던 이유를 알았는지 자기 실책이라며 프로텍터를 툭툭 쳤다.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기에 괜찮다는 의미로 손바닥을 보였다. 상대 덕아웃 쪽에서 타임이 걸려오자 밟았던 플레이트에서 발을 뺐다.
뭐지, 하고 보니 대주자. 슥, 하고 누군지만 확인한 뒤 다시 플레이트를 밟았다.
8번 타자 최형선이 등장했다. 하위 타선이기에 큰 부담 없이 던지려고 생각했는데 시작부터 꼬인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했다. 딱히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정도는 되지 못했다.
“볼!”
그게 바깥으로 표출이 됐나. 이번엔 좀 집중해서 던진 슬라이더가 크게 빠지며 볼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어딘가 영 맘에 들 지가 않는다. 다음으로 던진 싱커는 원하는 곳으로 잘 들어가긴 했지만 타자가 쉽게 골라내었고 동시에,
촤악―
“쎄이입!”
타이밍으로는 누가 봐도 아웃이지만 2루수가 점프까지 해가면서 잡아챈 공으로 태그해 봐야 한참 늦은 뒤였다.
괜찮아, 괜찮아.
주호를 애써 격려하며 전광판을 흘끔 봤다. 이내 다시 플레이트를 밟았다.
2-0, 카운트부터 잡아야 한다. 상대방도 그걸 알고 있을 거고, 따라서 역으로 볼을 던져서 변수를 창출해 보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닐 테지. 어차피 1루도 비어 있고.
하지만 그러기엔 점수가 겨우 한 점 차, 게다가 상대 타자는 8번 타자. 공짜로 1루 보내주긴 아쉽다. 로진을 오른손 곳곳에 쳐발쳐발해 주고 그립을 쥐었다.
“끅!”
부웅―!
“스위잉―”
있는 힘껏 던진 직구에 헛스윙. 다시 한번 전광판을 흘끔 보니 141km. 오늘따라 공이 좀 뻗는다.
검지 하나를 왼쪽 어깨에 대자 주호는 잠시 멈칫하다가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소지, 검지와 중지, 검지와 엄지. 바꿔 말하면 바깥쪽 직구, 바깥쪽 커브, 몸쪽 슬라이더.
그거 아니라고.
웬 생뚱맞은 사인만 세 개가 연달아 나오자 재빨리 플레이트에서 발을 뺐다. 그와 동시에 타자 또한 박스에서 한 발을 뺐다. 시합 중에 포수를 불러서 뭐라뭐라 하기는 애매해서 대충 시그널을 보냈다.
고간에 오른손을 두고 손가락을 흐느적흐느적한 다음에 검지와 중지로 내 눈을 가리킨 다음 검지로 포수를 가리킨다. 바꿔 말해,
야, 사인 제대로 안 보냐.
다시 플레이트를 밟았다. 당황한 게 눈에 보인다. 눈알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게 딱 수비 어려워하는 야구 선수처럼 보였다. 그래도 프로 타이틀 딴 게 거짓말은 아닌 듯, 이내 제대로 된 사인이 나왔다.
“끄악!”
부웅―
“스윙!”
이전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전력으로 냅다 던진 높은 직구. 이전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헛스윙이 나왔다. 투 볼로 시작했던 카운트가 다시 동률을 이루었다.
자, 주호야. 여기선 뭘 던져야겠니. 노아웃에 2루엔 빠른 주자. 타석엔 타격이 썩 좋지 않은 우타자. 변화구 두 개를 골라내고 높은 직구 두 개에 헛스윙이 나왔어.
주호는 타자를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생각을 정리한 듯 사인을 냈다. 스플리터. 꽤 괜찮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고개를 끄덕인 후 셋포지션에서 고개를 돌렸다. 2루 주자는 꽤 살벌하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눈빛이 맘에 안 들어 빠르게 180도 돌아 2루를 향했다.
촤악!
던지는 모습만 취했을 뿐인데 주자는 이내 쫄았는지 슬라이딩까지 하며 귀루했다.
그래, 그래야지. 으딜.
다시 플레이트를 밟자 조금 전과 앞뒤 순서만 바뀐 사인이 나왔다. 공에 검지 손가락 하나만 붙인 채 빙글 돌리자 손쉽게 포크볼 그립이 완성됐다.
“스윙, 스윙!”
존 아래 걸치는 선보다 하나 반 정도 높게 들어가던 공은 훅! 하고 아래로 추락했다. 이미 배트를 내보낸 타자는 어떻게든 맞춰보겠답시고 보는 입장에선 몸개그나 다름없는 스윙으로 화답했지만,
“세잎!”
진짜 몸개그는 따로 있었다.
아, 규학이가 아니지.
미트로 막는 것도 아니고, 블로킹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동작으로 멋진 알까기. 끝까지 공을 보던 타자는 배트를 내던지고 1루로 뛰었고 그 모습을 본 2루 주자도 3루로 뛰기 시작했다.
“던지지 마!”
“스톱!”
뒤로 굴러간 공을 잡고 1루로 던지려는 주호를 나와 내야진들이 합심해 겨우겨우 막아냈다. 심판의 타임 콜이 나오자마자 자책하며 주호가 고개를 숙였다.
괜찮아. 포수 생각 안 하고 깊게 지른 내 잘못도 있으니까.
괜찮다는 의미로 글러브로 툭툭 박수를 쳐주었다. 지금은 주자 하나에 진루 하나까지 허용했다는 거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무사에 주자가 양 코너에 있다는 점이 문제지.
다음 우리 공격이 누구부터지.
성현이부터.
전광판을 한 번 본 후 우리 덕아웃을 보자 다음 공격 선두 타자가 예약되어 있는 성현이와 눈이 마주쳤다.
한 점은 괜찮지 않을까.
9번 타자는 일단 삼진으로 잡아내며 급한 불을 껐다. 그리고 1번 타순에 송인호.
- 대타, 이용호.
갑자기?
뜬금없이 이용호가 등장했다. 갑자기? 얘가? 여기서? 송인호를 빼고? 왜? 애써 감정을 보이지 않으려고 하긴 했는데, 그게 잘 됐는지는 모르겠다.
이용호는 이전처럼 날 비웃지 않았다. 이제 지도 슬슬 지 처지 아는 거지. 남 비웃을 때가 아니라는 걸. 더구나 다른 누구도 아닌 나는 더더욱.
아, 그렇다면 더더욱 맞을 수 없지.
주호가 새끼손가락 하나만 펴 보였다. 고개를 끄덕인 뒤 1루 쪽에 있는 주자만 체크한 뒤 던졌다. 평소처럼 꽉 차게는 못 던지겠다. 그래도 충분하지 않을까.
“볼―”
엥.
관계가 썩 좋지 않은 이용호가 더 당황할 만한 판정이 두두둥장했다. 미트를 안쪽에서 바깥으로 잡으려고 달려드니, 당연히 볼로 보이지 않겠니 주호야.
모두가 알겠는데, 이게 왜 볼인지는 주호만 모르는 것 같다.
“하익―!”
뭘 던져야 돼, 대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싱커를 존 안으로 넣었다. 일단 스트라이크로 잡혔다.
“볼!”
“볼―”
이후 던진 슬라이더와 싱커가 볼이 되자 이용호는 본인이 유리한 상황이라는 걸 눈치챘는지 평소의 비웃음을 달기 시작했다.
무시하고 다음 사인, 새끼손가락 하나만 보이자 속으로 움찔했다.
주호가 잡아도 확실히 스트라이크로 보이게, 그러면서도 타자가 못 치게 던질 수 있을까.
딱―
어림도 없지.
띠링―!
[이 전쟁을 끝내러 왔다!]
- 무실점으로 이닝을 막으세요. (0/1)
- 보상 ― 슬라이더 +1
- 실패한 퀘스트입니다.
생각과 힘이 과다첨가된 공은 치기 좋게 한가운데로 정확하게 몰렸다. 그래도 이용호 얘도 프론데, 그 공을 놓치지 않고 좌익수 앞으로 공을 배달시키며 그렇게 점수가 동점이 되었다.
내리사랑.
규학아. 내리사랑이 필요할 것 같다.
1루를 밟고 암가드를 풀어 1루 코치에게 내미는 이용호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생명 연장의 웃음 아닐까.
X발.
타들어 가는 속을 억지로 눌러 내리고 다음 타자를 기다렸다. 왜소한 체구의 김영국이 들어서는 모습을 보며 게임 플랜을 짰다.
힘으로 누르자.
파워는 한참 떨어져도 3할 초중반은 너끈히 치는 김영국한테 변화구로 유혹해 봐야 썩 좋은 결과는 못 볼 것 같다.
게임의 신이시여, 제발 버프를 주소서.
틱―
파울!
몸쪽으로 들어간 싱커가 예상 지점보다 낮게 들어갔음에도, 아니 오히려 낮게 들어간 덕인지 파울로 초구 카운트를 잡게 되었다. 공을 받으며 생각했다. 또 뭐 던지지.
모자, 팔꿈치, 글러브, 팔꿈치, 어깨, 글러브. 검지 손가락으로.
머리는 복잡한 와중에도 몸은 알아서 사인을 내고 있었다. 주호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손가락들을 움직였다. 고개를 끄덕인 뒤 스트레치.
후우…….
여기서 좀 끝났으면 좋겠는데.
“깍!”
딱―!
던진 공이 내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걸 보면서, 이번 기합이 중계 소리로 나가면 꽤나 웃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빠르게 몸을 돌려 뒤를 보자 성문이가 열심히 달려가는 게 보였다. 거의 다이빙하듯이 몸을 던져 잡아낸 뒤, 2루로 보지도 않고 토스했다.
“아웃!”
하나 올라가고.
명진이는 공을 잡고, 또 마찬가지로 제대로 보지도 않고 1루로 냅다 공을 던졌다.
주루 플레이 더럽기로 소문난 이용호가 1루 주자임을 인지하고 있는지 크게 점프까지 뛴 공이 땅바닥으로 꽂혔다.
X됐다.
공이 잔디와 찐한 키스를 나누는 걸 보며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냥 던지지 말지. 기성이가 저거 어떻게 잡으라고.
타닥―
어떻게 잡긴!
“아우웃!”
기성이가 아니면 되지!
“나이쑤우!!”
“얌마, 똑바로 안 던지냐아아.”
“데헷, 1루 주자가 무서워쪄염.”
아까 기성이의 대주자로 들어간 기범이가 1루로 들어가 있었다. 신이시여!
기범이의 멋집 스쿱으로 병살이 완성되었다. 제일 먼저 성문이에게 달려가 꽈악 끌어안아 주었다. 형 숨 막혀요, 소릴 듣고 나서야 놓아준 뒤 기범이와도 하이파이브.
“김기범 싸라있네!”
“내가 좀 생겼지.”
또 다른 동갑내기와 실실거리며 덕아웃으로 향했다. 좋은 수비 덕에 더 이상의 실점은 하지 않아 기분이 상승했다가도 이내 실점을 허용했다는 생각에 다시 하강했다.
아니, 실점이야 할 수 있지.
그치만 그게 블론이라면.
블론 할 수도 있지! 사람인데.
그게 40이닝 이상 던지다 첫 블론이라면.
시즌 내내 0점 하려고?
아니. 난 그리 대단한 놈이 아니다.
단지, 이 세상 다른 누구보다도 안타를 내주기 싫었던 자식한테 안타를, 그것도 적시타를 처맞았다는 게 기분이 더러웠다.
팀이 우선인데, 내가 동점타를 허용했다는 것에 분노해야 하는데 반대 덕아웃에서 실실거리고 있는 꼬라지가 어지간히 X같았다.
지켜보자. 우리 팀 타격. 8회 말도 있고, 9회 말도 있다. 성현이가 어떻게든 해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