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평화로운 불펜생활-43화 (43/190)

43화. 기복

슬라이더… 슬라이더…….

내가 슬라이더에 대한 감을 잃어버리든 지지고 볶든 쪄먹든, 그건 리그가 알 바 아니었다.

내가 계속 슬라이더에 매달리고 있는 와중에도 리그는 계속해서 진행 중이었고 KP 스타즈전 이후 우리 팀도 순항을 잇기는 했다.

돌겠네.

구종 하나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그 구종이 A급이든 폐급이든,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타자의 생각 하나를 더 만들 수 있다.

무(無)가 되어라.

간단명료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주문을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주문하고 있다.

사실 슬라이더가 빠진다고 해도 그 자체가 내게 커다란 타격이 되지는 않는다.

당연히 존재해야 하는 직구와 이 거지 같은 슬라이더를 제외하고서도 무려 네 가지가 더 있으니까.

안 되면 되는 거 하라.

모 개그맨의 반농반진 명언은 내게 큰 힘이 되었다.

KP전에서 슬라이더만 고집하다가 연타석 처맞은 이후 슬라이더에 대한 처분은 꽤 간단하게 결정되었다.

봉인.

어차피 중간 투수다. 지금 던지는 비율에서 심지어 ‘스플리터도’ 버려도 된다.

그래도 4구종이다. 내 고집 때문에 스플리터는 유지하고 있을 뿐.

그다음 경기부터 슬라이더는 아예 던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성적이 위로 오르거나 아래로 깔리지도 않았다. 그냥 그대로.

그럼에도 나는 슬라이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6구종에 대한 집착?

아니, 그냥 줬다 뺏는 거 같아서.

투수라면 누구나, 어떤 구종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있을 터.

강력한 직구로 헛스윙 삼진!

느리지만 각이 큰 커브로 루킹 삼진!

바운드 되는 포크볼에 헛스윙 삼진!

타이밍을 뺏는 체인지업에 헛스윙 삼진!

날카롭게 파고드는 싱커로 더블 플레이를 만들어 위기 탈출!

슬라이더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슬라이더로 헛스윙 삼진!

이게 내 욕심이고 집착이라고 하면 인정해야겠지.

하지만 난 프로고, 그렇기에 결과를 내야 한다. 슬라이더로는 결과를 내지 못했다.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 잠시 봉인할 뿐이다.

캐치볼 때도, 불펜 피칭 때도, 인 게임의 연습 투구 때도 슬라이더만 던졌다.

“왜 안 휘지.”

근데 안 휜다. 이게 참 사람을 돌게 만들었다.

나중에 가서는 슬라이더가 왼쪽으로 꺾이는 게 아니라 오른쪽으로 꺾이는 환각까지 보일 정도였다.

정신 나갈 것 같애.

“한울이, 7회 나간다.”

“…예.”

덕아웃에 앉아 공만 부여잡고 있을 때 출격 대기 명령이 떨어졌다.

슬라이더에 집착하는 와중에도 팀은 나름 순항하고 있었다. 리그 7위 시절 한 단계 위의 팀이었던 KP는 뛰어넘은 지 오래.

지금은 성운 호크스와 공동 5위에 랭크되어 있다.

“스라이다!”

건영이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슬라이더를 던졌다. 여전히 휘지 않았다.

썅.

“직구우!”

버리자. 무(無)가 되자.

애써 마음을 비우고 직구를 던졌다. 커브를 던졌다. 싱커를 던지고 체인지업과 스플리터를 던졌다.

“아이, 나이스볼!”

젠장.

* * *

리그 초반부터 박살이 난 불펜진에 어느 정도 안정이 찾아왔다.

그나마 1인분 이상을 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 인원이 세 명. 나, 신경석 선배와 최은구 선배. 나머지는… 음…….

우리가 모든 경기에 등판할 수는 없듯, 우리 팀 또한 모든 경기에서 이길 수는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길 수 있는 경기에만 등판하면 된다.

이 논리 덕에 고작 세 명의 1인분들 가지고도 일단은 잘 굴러갔다.

타격은 믿을 게 못 된다. 올라갈 때 올라가고 내려갈 땐 내려가는 기복이 존재하는 한, 타격은 절대 믿을 수 있는 것이 못 되었다.

아우웃!

스트롸아악!!

스윙, 스윙!!

어쩌다 이렇게 됐지.

선발진은 아직 건재한 상태에서 불펜진에 안정이 찾아왔지만, 함께 찾아오는 점수는 팍 줄었다.

한 점, 두 점.

하지만 우리가 점수를 내지 못하면 그조차도 의미가 없어진다.

“X발!”

삼진 먹고 덕아웃에 들어온 성현이가 배트를 내려치듯 배트꽂이에 꽂으며 시원하게 외쳤다. 듣는 사람 마음이 더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타격 깡패 강성현. .313/.401/.519. 홈런 9개, 타점은 32개.

“아니, 저길 왜 잡아주는 거야 대체, 눈깔 나갔나.”

귀요미 남기성. .284/.421/.476 홈런 8개 타점은 38개.

“미치겠네.”

우리 진형쨔응. .331/.397/.467 홈런 7개 타점은 35개.

“저 새끼들 단체로 토토 걸었냐? 미친 거 아냐?”

입 걸걸한 클러치 히터 승주. .276/.353/.478 홈런 7개 타점 44개.

6월 중순에 돌입한 현재 우리 팀 주요 타자들의 시즌성적.

성적이라는 단어 앞에 시즌이라는 필터를 씌우고 보면 썩 나쁜 성적들은 아니다.

하지만 6월 보름 정도가 지난 지금, 이 네 명의 성적을 종합해 보자면 타율은 고작 .194. 출루율은 2할 후반에 머물고 있으며 장타율 또한 비슷하다.

점수가 나질 않는다. 투수진에서 잘 막아도 타선이 점수를 내질 못한다.

그러니 쉽게 이길 수 있는 게임은 어렵게 이기고, 그냥 이길 수 있는 게임이 넘어간다.

허허…….

“한울이, 몸만 풀어두자.”

“넹.”

출격 명령.

글러브를 집어 들고 불펜으로 향했다. 시야 한구석에 전광판이 보이자 절로 눈이 갔다. 8회 말 수비 중. 1 대 0으로 지고 있다.

규진이 형이 아직 던지고 있으며 안타 3개와 볼넷 두 개로 선전 중.

우리 타선…은…….

“…아까 우리 안타 누가 쳤냐?”

“아까 전성문 선배가 쳤는데요?”

“저거밖에 없냐?”

“예… 뭐…….”

1안타.

3회 선두 타자로 나서 시원한 2루타를 날리고는 뭐 없다.

애써 내색은 안 하고 있지만, 또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몇몇 투수진들 맘 속에 불만 아닌 불만이 살짝 생겨나고 있지 않을까.

그찮아, 사람인데.

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하이, 직구!”

전광판에서 눈을 떼고 불펜의 플레이트를 밟았다. 몇 번 공을 던지며 감을 이었다. 나쁘지 않다.

등판의 직전 상태까지만 열을 내고 그다음은 적당히 그라운드 상황도 구경하면서 천천히 던졌다.

1 대 0으로 지고 있는 상황, 9회 초에 점수를 못 내면 9회 말에 올라갈 필요조차 없어지니까.

흠.

규학이가 9회 초 선두 타자로 등장했다. 노림수를 가지고 들어간 듯, 상대 마무리 투수의 초구부터 방망이가 나갔다.

3땅.

“…….”

훈이의 차례.

이전 규학이처럼 섣부르게 들이대다가 빠르게 아웃당하는 걸 경계하는 모양이다.

1구와 2구는 찬찬히 지켜본 후 3구째, 드디어 방망이가 나갔다.

헛스윙 삼진.

“…아.”

좀 기운을 바꿔볼 생각인지, 명진이가 빠지고 주호가 타석에 들어갔다.

주호라면 큰 거 한 방으로 분위기를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대결을 지켜봤다.

초구, 148km 직구. 2구, 146km 직구.

각각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을 한 번씩 받아 카운트 1-1이 되었다.

거기서 주호는 잠시 발을 빼고 심호흡을 했다. 후우… 후우… 하는 게 여기 멀리 있는 불펜에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마음의 정리가 끝났는지 다시 타격 준비 자세를 잡았고 3구째,

따악―!!

“오, 오오, 오오오!!”

간만에 보는 제대로 맞은 타구!

아웃―!

그 타구는 중견수가 담장 앞에서 점프하며 캐치. 쓰리아웃, 경기 종료. 1 대 0의 영봉패.

등장도 못 한 채 새삼스러운 투타의 언밸런스를 더더욱 공고히 한 시합이었다.

* * *

하나를 해결하니 다른 하나가 말썽을 일으키고, 그걸 해결하니 이전의 문제가 다시 말썽을 일으킨다.

하여 어렵게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하니 다른 두 가지에서 문제가 터졌다.

야구계의 유명한 격언 같은 거다. 이걸 우리 팀에도 적용할 수 있음에 슬픔을 금치 못했다.

야발.

성운 호크스와의 주말 3연전. 3시까지 출근하여 덕아웃의 분위기를 살폈다.

최근의 팀 성적은 6승 4패. 이 성적에 비해 덕아웃 분위기는 생각보다 그리 좋지 못했다. 특히 양택균 타격 코치님의 말수가 적어진 것이 마음에 걸렸다.

부상에서 복귀했을 때, 보자마자 나에게 달려와 꼬옥 안아주시던 분.

이 한마디로 이 분의 성격을 정의할 수 있다. 그 누구보다 상냥하고 그 누구보다 다정하신 분.

선수, 코칭 스태프, 프론트의 3박자가 아주 잘 맞아떨어져야 그 구단의 성적이 비상하지만, 아주 당연하게도 결국 플레이를 하는 건 선수다.

구단이 아무리 좋은 선수를 사다 줘도, 코칭 스태프가 아무리 열정적으로 가르쳐도 선수가 못 하면 이 모든 게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코치님께선 선수들 한 명 한 명에게 다가가 본인의 노하우를 전수했다. 한 명에게 붙는 시간이 많아지는 만큼 다른 선수들까지 제시간에 봐주기는 어려웠다.

그럼 코치님은 본인의 출근 시간을 당기고 퇴근 시간을 밀었다. 물론 그에 선수들 또한 맞추며 화답했다.

성현이가 그렇게 이를 악물고 배트 휘두르는 건 처음 봤다.

순둥순둥하던 기성이가 상욕을 지껄이는 것도 오랜만에 봤다.

항상 조용하던 진형이는 웬 괴성을 지르며 배트를 휘둘렀다.

아, 승주는 간만에 좀 조용해져서 이건 좋았다.

덕분일까.

따악―!

“가쒀, 가쒀!!”

성현이는 드디어 아홉수를 깨고 두 자릿수 홈런을 달성했다.

“좋아, 이어가, 이어가아악!!”

9회 말 3 대 1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터진 솔로 홈런.

틱―

“야, 빠진다! 뛰어, 뛰어!”

기성이의 행운의 안타.

딱―

“돌아, 돌아!!”

진형이의 갭 히팅.

따악―

“…X벌. 또 갔다.”

승주의 마무리.

“야아아아아악!!”

양손에 음료수병을 하나씩 들고 승주에게 달려갔다. 홈을 밟자마자 음료수병을 쏟아붓고 엉덩이를 있는 힘껏 발로 차며 기뻐했다.

우리뿐 아니라 홈 팬들 또한 자리를 떠나지 않고 승주의 응원가를 목놓아 부르며 기뻐했다.

아아, 이렇게 좀 살아나나.

“수와아악!”

어림도 없지.

바로 다음 날 또다시 영봉패.

실점이 꽤나 많은 태웅이가 모처럼 6이닝 1실점, 그리고 지호가 3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잘 막아낸 시합이라 더더욱 아쉬움이 컸다.

아, 안 되는 갑다, 하고 마음을 놓을라치면 또,

따악―!!

“갔다아악!!”

“강성현!! 강성현!!”

“성현이 형 날 가져요!”

8회 초, 두 점 뒤지고 있는 상태에서 터진 성현이의 만루 홈런.

이후,

따아악―!

“가써! 또 갔어!!”

기성이의 백 투 백까지. 두 점으로 뒤지고 있던 점수 차는 순식간의 세 점의 리드로 역전되었다.

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하는 걸까.

“한울아, 대기!!”

“예예.”

세 점의 리드를 가져오자마자 투수 코치님이 다급히 나를 불렀다. 간만에 터진 타격에 잠시 멍을 때리셨던 걸까.

하지만 내 짬이 얼마던가, 그럴 줄 알고 이미 자리에서 일어난 상태였다.

2아웃. 아마 많이 풀지는 못할 듯싶다.

“건영아, 바로 던지자.”

“네.”

스트레칭은 생략하고 공을 집었다. 빠르게, 템포를 빠르게 하여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대략 10개 정도의 캐치볼 후 2개 정도 피칭했을까,

“올라가자.”

생각보다 이르게 출진하게 되었다.

아, 좀 생각보다 어깨가 뻐근한데.

띠링―!

[긴급 상황!]

- 몸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무실점으로 이닝을 막으세요. (0/1)

- 보상 ― 커브+2

마운드로 걸어가며 어깨를 휘휘 젓자, 간만에 퀘스트 창이 떴다.

“커브라…….”

이번 퀘스트 보상인 커브, 이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 내 커브 스탯이 몇이더라.

제구 ― 최상

구위 ― 중

체력 ― 중

포심 ― 58

커브 ― 49

슬라 ― 35

스플 ― 41

체인 ― 46

싱커 ― 44

특성

해탈 ― 어떤 타구, 상황에도 그러려니 합니다.

불편 ― 상대하는 타자가 타석에서 투수를 보면 어딘가 불편하게 만듭니다.

49. 직구 다음으로 제일 좋다. 좋아, 이번에 커브도 50 찍는다.

연습 투구 때 커브의 비중을 조금 높였다. 어깨가 완벽히 풀리지 않아 안 그래도 느린 편인 직구는 더더욱 느릴 거다.

슬로우가 뭔지 보여주갓어.

선두 타자는 2번 타자 김성훈부터. 안경을 쓰고 나온 모습이 이색적이다.

초구는 직구. 볼이 되어도 좋다. 아니, 볼이 더 좋다.

바깥쪽 꽉 차는 쪽으로 던져보았다.

“하잌!”

다행히 잡아주었다. 공을 받고 다음 사인은 몸쪽으로 가라앉는 체인지업.

“볼.”

움찔하기는 했지만 배트는 나오지 않았다.

이쯤에서 한 번 던져볼까.

이리저리 사인을 고르다 커브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잌, 투!”

100km는 나왔나 싶어 뒤를 슬쩍 보니 102km가 나왔다. 생각보다 빨랐네. 다시 심호흡하고 사인을 기다렸다. 또 커브. 좋다.

띡!

바깥쪽보다 살짝 낮은 곳으로 떨어지는 커브는 아주 보기 좋게 3루 쪽으로 굴러갔다. 정말 딱, 펑고칠 때의 속도와 바운드.

아무런 부담 없이 잡은 성훈이 형이 1루에 던지며 1아웃이 되었다.

3번 타자, 김! 태! 훈!

여기서부턴 조금 집중해야 된다. 김태훈도 그렇고, 오영빈도 그렇고 꽤나 치는 타자들.

“아웃!”

하지만 조금은 허무하게, 김태훈은 초구부터 또 커브를 건드려 조금 전의 김성훈과 완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아웃 되었다.

그리고 맞이하게 될 4번 타자 오영빈.

대타, 최!! 우!! 서억!!

…이 아니네?

자타가 공인하는 국대 1번 타자. 5툴 플레이어. 그리고 내 친구.

이제는 일례 행사 같은 게 된 걸까, 녀석은 또 타석에 들어서며 씨익 웃었다.

그 모습에 나도 절로 미소가 나온다. 애써 미소를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 뒀다.

그대로 사인을 기다렸다. 또 커브.

“사잌!”

우석이 정도 되면 좀 눈치채고 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가운데 낮은 곳에 떨어지는 커브를 지켜보기만 했다.

반구를 받고 마운드로 돌아가는 길에 전광판을 슬쩍 보니 109km. 딱 좋다.

딱―

“파우울!”

다음은 137km짜리 직구. 확실히 몸이 덜 풀렸는지 나름 세게 던졌는데도 생각보다 구속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무려 30km의 차이. 쉽게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고 뒤로 넘어가는 파울이 되었다.

다음 공, 다음 공, 다음 공, 뭘 던지지.

바깥쪽 직구 한 번 더, 높은 직구, 몸쪽 직구, 세 번을 연달아 걸러내었다.

고개를 젓는 동안 재밌는 설계가 떠올라 검지와 소지를 보였다. 규학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볼!”

“보올!”

바운드 되는 스플리터, 바깥쪽으로 낮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을 모두 연속으로 골라냈다.

하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이게 다 설계다, 이 말이야.

다시 커브 사인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몸쪽 커브 사인이 나오긴 했지만, 미안 규학아. 거기로 던질 생각은 없어.

부웅― 하고 커브가 느릿하게 날아갔다.

몸쪽 낮은 곳, 애매하게 간 공을 멋지게 프레이밍해서 삼진 잡을 생각하는 규학이가 무안하게, 커브는 생각보다 많이 위로 향했다.

우석이는 높은 곳에서부터 수직으로 떨어지는 공을 멍청하게 바라만 보고 있었다.

포수 프로텍터에 프린팅된 원하의 마크 앞에서 공이 잡혔다. 커브의 낙차를 생각하면 어마무시하게 높은 공.

하지만 확실히, 존의 윗부분을 통과했다.

“솨이이잌, 아웃!”

[긴급 상황!]

- 몸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무실점으로 이닝을 막으세요. (1/1)

- 보상 ― 커브+2

제구 ― 최상

구위 ― 중

체력 ― 중

포심 ― 58

커브 ― 49+2=51

슬라 ― 35

스플 ― 41

체인 ― 46

싱커 ― 44

특성

해탈 ― 어떤 타구, 상황에도 그러려니 합니다.

불편 ― 상대하는 타자가 타석에서 투수를 보면 어딘가 불편하게 만듭니다.

존을 사각형이 아닌 입체로 생각하라.

신영준 코치님의 말씀을 떠올렸다. 허탈하게 웃으며 가만히 홈플레이트를 바라보는 우석이를 놔두고 덕아웃으로 돌아갔다.

속으론 별의별 환호가 다 나왔지만 겉으로는 애써 내색하지 않고 들어갔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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