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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불펜생활-44화 (44/190)

44화. 기부

“오… 오, 오오…….”

“어떠십니까.”

무광이지만 약하게 흐르는 윤기. 길게 뻗은 손가락, 심플 이즈 베스트를 몸소 실천한 바둑판무늬의 웹.

손등 쪽엔 롤링스톤즈만의 빨간 사각형 마크가 직자수로 박혀있고 포구면 부분의 은장은 빤짝빤짝하게 빛나고 있다.

무엇보다 엄지 부분에 자수로 박힌 내 이름.

[4. Kim Han-Wool]

“제, 제가 이런 걸 써도 되는 건가요!”

“그럼요. 쓰라고 만든 건데요.”

“…글러브에서 왜 빛이 나는 겁니까!”

진심으로 한 말이었지만 제작부장님께선 립서비스로 받아들이신 건지 허허 웃기만 하셨다.

“이, 이거 못 쓰겠는데요.”

“예?”

“아니, 이런 작품을 어떻게… 어, 어떻게 써요.”

“아, 아하하하핫!!”

진심인데. 부장님, 그렇게 웃으실 때가 아니에요. 진짜 못 쓰겠는데요, 이건 집 잘 보이는 데에다가 케이스 씌워서 소장해야 되는 거예요.

“걱정 마시고 편히 쓰세요. 똑같은 걸로 해서 소장용으로 하나 더 해드릴 테니까. 그건 제 개인적인 선물로 드리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마시고.”

“진짜요?!”

“예예. 걱정 마시고.”

“세, 세상에…….”

사실 프로쯤 되면 글러브, 혹은 글러브 회사에 대한 정보나 지식은 오히려 한참 떨어진다.

어디 브랜드의 몇 등급은 무슨 가죽을 무슨 공법으로 가공해서 무슨 패턴으로 만들고 어쩌고… 전혀 모른다.

그저 받아보고, 껴보고, 만져보고, 몇 번 받아본 뒤 좋네, 아니네 정도 판별 가능한 수준.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글러브가 뭔데, 공만 잘 받으면 됐지.

하지만 글러브에 환장하는 아마추어 야구인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이건 글러브가 아니다. 작품이다.

조심스레 받아 손에 껴봤다. 전혀 이질감 없이 손에 착 달라붙는 착수감.

아직 브레이킹이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오물오물거리기엔 거부감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더더욱 성스러운 마음이 느껴졌다.

“그럼 잘 쓰시고… 아, 혹시 전에 쓰시던 글러브는 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 전에 쓰던 거요? 예 뭐, 상관없…….”

…아.

“…아.”

“어렵나요?”

“…예. 혹시 안 드리면 뭐 계약에 위배되고 뭐 그런가요?”

“아뇨. 그런 건 아니고. 저희 작업실에 소장하려고 그러죠. 우리가 김한울 선수 글러브도 만들었다, 뭐 그런 느낌으로.”

“아.”

“아니면 혹시 파시게요?”

“아뇨. 이거 팔아봐야 뭐 얼마 나온다고… 선물하려구요.”

“오호, 그것도 좋죠.”

제작부장님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거리셨다.

“길들이기는 따로 안 해놨어요. 다른 야수면 어느 정도 해서 드리는데, 투수다 보니까 오히려 건드리기가 애매해서요. 아무래도 워낙 예민하잖아요, 투수가.”

“그쵸, 아무래도.”

듣고 보니 제작부장님께서도 고등학교 때까지 야구를 하셨던 분이시란다. 더구나 포지션은 투수.

카페에 청년 하나와 중년 한 명이 앉아 수다꽃을 피웠다.

비록 현역의 문을 두드리지는 못했지만 야구 경력으로 따지면 엄연한 선배님이시기에 나도 예를 다했고 부장님께선 사람 좋게 웃으시며 이야기를 하셨다.

나이 많은 남자 둘이었지만 이야기가 끊기는 일은 없었다. 요즘 글러브 가죽들이 어떠네, 배트들 원목은 어떠네.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가 부장님이 엘리트 뛰시던 때까지 이어졌다.

비록 나와 나이 차가 20년 가까이 나기는 하지만 꽤나 공감되는 이야기가 많았다. 특히나…….

“…저기. 부장님.”

“예.”

“어… 하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예예. 말씀하시죠.”

음. 나 따위가 이런 말 해도 되나.

“이거, 아까 말씀하신 등급? 그게 대충 어느 정도인가요?”

“음… 등급으로 따지면… 골든글러브급? 롤링스톤즈 최고 등급이죠. 오더 가격으로 따지면 80만 원에서 90만 원 선이고.”

“아, 그러면. 그냥 일반적으로 야구하는 사람들이 쓸 수 있는 등급으로 따지면 최소 어느 정도 등급이면 되나요?”

“일반적인 야구면 아마추어? 아니면 프로?”

“엘리트?”

“HOH는 써야죠, 그래도. 우리 회사지만, HOH랑 그 밑에 등급이랑 차이가 너무 심해. 그건 애들이나 쓰는 거고.”

“HOH는 가격이 대충 얼마나 돼요?”

“대충… 30만 원 생각하면 되죠.”

음… 애들이 몇 명이더라.

“그, 부장님.”

“예.”

“대량 구매 가능해요?”

“대량 구매?”

“한… 한… 한 30개? 아니, 40개? 그쯤요.”

“되기야 하는데… 뭐에 쓰시려구요?”

“아, 저 야구부 애들한테 좀 갖다주려구요.”

“오…….”

짝짝짝―

부장님은 놀란 표정으로 박수를 치셨다. 나도 당황해 박수를 짝짝짝 따라 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아, 예.”

“일단 내가 견적을 내줄게. 그거 보고 한울 씨가 판단해요. 아까 엘리트 얘기하더만, 고등학교 애들 기부하려고 하는구만?”

기부?

“…아. 기부…가 되네요.”

“뭐야. 생각도 없이 그냥 지른 거예요?”

“제가 좀… 생각 없이 사는 편이라…….”

“이런 쪽으로 생각 없는 건 좋지. 우리 회사도 좋고, 한울 씨도 좋고.”

껄껄껄 웃으시며 가방에서 작은 노트와 펜을 꺼내셨다. 노트의 빈 공간을 찾아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글러브들에 대한 시안들이 가득했다.

“보자… 엘리트 애들이면은…….”

혼자 중얼중얼거리면서 펜을 슥슥 써 내려가셨다. 그렇게 약 3분 정도.

“자, 이렇게. 어때요? 일단 포지션별로 가격이 약간씩은 다르긴 한데 그건 그냥 무시하고, 일괄로 드릴게. 미트류…는 어떡할까.”

“포수는 아무래도 좀…….”

“그치. 타카케야마가 너무 세지.”

허허.

“그럼 미트는 1루만 보고.”

글러브류 40개. 포수 장비 풀세트 2개. 배트 40개. 총합이 천만 원.

“…오메.”

생각보다 판이 커져서?

“진짜 이렇게 주셔도 돼요?”

아니, 생각보다 엄청 싸서.

“허허, 내 이래도 부장 아닙니까. 이 정도 힘은 있지. 걱정 마시고.”

야구부 생활할 때, 그리고 무명 선수일 때 가장 힘든 건 다름 아닌 야구용품에 대한 것이었다.

비싸다.

합리적인 걸 사도 싸지는 않은 정도.

지금이야 중고 시장도 많이 활성화되어 있고 이런저런 브랜드들의 등장으로 가격 경쟁이 시작됐다지만…….

라떼는 말이야, 그런 것도 없었어, 으잉? 동대문 야구장 가가지고 으이? 직접 껴보고 얼마예요? 좀만 깎아주시면 안 돼요, 으이? 다 했어!

관리 잘하면 뭐 5년을 쓰네, 10년을 쓰네, 그건 아마추어들 이야기였고.

글러브, 신발, 배트와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엘리트, 혹은 선수들은 달랐다. 특히나 내야랑 포수들.

하루가 멀다 하고 글러브 끈은 끊어지고, 가죽은 찢어지고, 배트는 부러지고.

그걸 자기 사비로 감당해야 한다. 프로야 돈 받으니까 그렇다 치고, 엘리트들한테 그런 돈이 어딨어. 다 자기 부모님 돈이지.

부모님한테 아무렇지도 않게 글러브 사달라고 말해야 될 때의 비참함이란…….

부장님께서 내주신 물건들의 합을 정가로 따져보자면 약 2천만 원. 거진 절반 가격이다.

“…세상에.”

절로 다리가 펴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가 제멋대로 숙여졌다.

“가, 감사합니다, 부장님.”

“아우, 그러지 마요. 다 사람 좋자고 하는 일인데.”

“와…….”

“그냥, 우리도 갖고 있던 재고품들 떨이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도 회산데, 막 퍼주기는 어렵고. 그래서 싸게 주는 거라 생각해요.”

“아이고, 그래도 감사합니다.”

“그럼 어떻게, 조만간 같이 가실까? 준비는 며칠이면 될 텐데.”

“아, 네. 담주 월요일에 한번 같이 가시죠.”

“좋네, 좋아. 연말이 아니라 바로 다음 주에 만나네.”

부장님은 껄껄껄 웃으시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일단 나도 회사 측에 얘기는 해야 하니까, 이야기해 보고 다시 연락 드릴게요.”

“옙.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들어가시고.”

“예. 부장님도 조심히 들어가십쇼.”

부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차에 탔다.

스타트 버튼을 누르고도 웅장해진 가슴에 멍청히, 몇 분을 그렇게 있고 나서야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릴 수 있었다.

* * *

바로 다음 날, 대구에 있을 때 부장님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고 한다.

심지어 사측에서 일을 더 키워버렸다. 정가로 따지면 약 2천만 원을 천만 원으로 깎는 것으로 모자라 거기에 기타 물품들도 추가 지원.

세상에.

“아이고, 부장님.”

내 출신 고등학교인 양안 고등학교. 오늘은 월요일, 시간은 오후 1시. 애들 딱 점심 먹고 슬슬 움직일 시간이다.

학교 정문 앞에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자 커다란 용달 트럭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거 참. 생각보다 일이 커져 버렸네.”

“이런 쪽으로 일 커지는 건 환영이죠.”

사람 좋게 껄껄껄 웃으시곤 나를 데리고 트럭 뒤편으로 향하셨다. 대충 무슨 글러브가 왔고 무슨 장비가 왔고 무슨 배트가 왔다.

앞서 이야기되었던 장비들에 타자들 암가드와 풋가드, 그리고 헬멧을 비롯한 보호장비. 그리고 이런저런 트레이닝에 도움이 될 법한 트레이닝 용품도 가득했다.

심장아, 나대지 좀 말아봐.

그중 몇 가지를 직접 꺼내 손에 껴보거나 만져보거나 했다. 재고품이라고 말씀은 하셨지만 생각보다 아직 멀쩡하고 품질이 좋아 놀랐다.

“갑시다.”

트럭 조수석에 탄 뒤, 조심스럽게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학교 감독님과는 이미 이야기가 완료되어 있었기에 아무런 거슬림 없이 당도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슬슬 애들이 기어 나와 몸을 풀고 있었다.

“선배!”

“뭐야.”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엘리트 시절 선배. 지금은 양안고에서 투수 코치 파트를 맡고 있다.

“뭐야, 선배는 얘기 못 들었어?”

“뭔 얘기?”

난 대답 대신 트럭을 가리켰다. 흘끔, 하고 트럭을 보더니 선배의 입이 떡 벌어진다.

“…뭔데.”

“기부.”

“…….”

“감독님은?”

“아… 곧 나오실 거야. 여기, 도움 주신 롤링스톤즈 제작부 부장님.”

“아이고, 감사합니다.”

절로 선배의 허리가 숙여졌다. 본인에게 내밀어지는 손을 부장님은 부드럽게 잡고 위아래로 흔드셨다. 절로 흐뭇해지는 광경이다.

“아, 왔구나. 한울이.”

“오랜만에 뵙습니다, 감독님. 연락도 못 드리고…….”

이승재 감독님.

나 고등학생 시절 여기 양안 고등학교의 감독님이셨고 잠시 원하의 감독직도 맡으셨다.

썩 좋은 성적은 내지 못하시고 다시 양안 고등학교의 감독으로 컴백, 이후 지금까지 잇고 계신 분.

“그나저나 놀랐다, 한울아. 이게 웬일이냐.”

“저도 돈 좀 벌었는데, 이미지 관리 좀 해야죠.”

농담이 먹혔는지 감독님이 크게 웃으셨다.

“감독님, 여기 제작부장님이십니다. 이번에 도움 많이 주셨습니다.”

“반갑습니다, 부장님. 말씀 들었습니다.”

“아닙니다, 고생 많으십니다. 한울 씨 선수 때 많은 도움 주셨다면서요? 덕분에 저도 이렇게 좋은 일 합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하지요. 얘들아, 다 와봐라!”

감독님이 크게 목소리를 내어 애들을 모두 불렀다.

우상.

엘리트 선수들에게 프로는 우상이자 선망의 대상. 본인들이 목표로 하는 곳에 당도한 사람들이니까.

멀리서 ‘어?’ 하면서 쭈뼛거리기만 하다가 드디어 접근을 허락받자 두두두 모여든다.

“다 알지? 여기 김한울. 여기 출신이야. 학생 때 꽤 괜찮은 투수였다가 프로 가서는 똥만 싸…….”

“아, 감독님.”

“그래도 지금은 잘하고 있고. 일단 알지?”

예!

“여기 선배가 너희들을 위해 기부하러 왔다. 인사하자.”

선배님, 감사합니다!

약 50명쯤 되는 아이들이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괜스레 벅차오르는 가슴에 코 밑을 슥슥 훑었다.

“그리고 여기, 롤링스톤즈 제작부 부장님이시고. 부장님께도 감사 인사드려라. 도움 많이 주신 분이야.”

부장님, 감사합니다!

인사 한 번 더.

“한울이, 한마디 해야지.”

“예?”

갑자기, 연설 자리가 마련됐다.

“마, 여기 애들 선배인데. 또 이런 일 하는데 한마디 해야지.”

“어…….”

어물쩍거리다가도 나를 향해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는 애들을 보니 빼기도 어려웠다.

멋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 일단…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몇 가지만 기억해. 잘 먹고 잘 자고, 아프면 바로바로 얘기하고. 기본기만 잘 지키고. 그러면 충분히 프로 갈 수 있어.”

예!

됐죠? 하는 눈빛으로 감독님을 보자 꽤나 맘에 든 연설이었던 모양이다. 눈을 감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리신다.

이후 애들 몇 명을 시켜 트럭에서 짐들을 내렸다. 생각보다 판이 커진 트럭인 만큼 무거울 텐데, 전혀 그런 감 없이 기쁘게 짐들을 날랐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자 감독님이 다가오셨다.

“한울이, 걱정 마라. 기사에는 크게 써줄게.”

“예?”

“저기, 롤링스톤즈 쪽도 언급은 해야될 거 같고.”

“아, 아뇨아뇨, 감독님. 제 이름은 빼주세요.”

“왜? 이미지 관리 한다면서?”

“아니, 그건 농담이고. 진짜 저 엘리트 때 생각나서 그냥 드린 거니까. 아니지, 기사는 써야 되는구나.”

이 기부는 나만의 기부가 아니다. 오히려 롤링스톤즈 쪽의 파이가 더 큰 기부다.

“…그냥 제 이름 빼고, 롤링스톤즈만 언급해 주세요. 그냥 저기서 막, 어? 단독으로 그랬다고.”

“그건 어려운데요, 한울 씨.”

“아, 부장님 제발.”

감독님과 부장님은 마음이 맞았는지 끌끌끌 웃으셨다.

몇 번이고 더 설득해 봤지만 전혀 먹히지 않자 그냥 포기하고 즐기기로 했다.

히히, 내가 기부왕이여.

오후 훈련 시간, 부장님은 감독님과 따로 이야기를 나눈다며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나는 그라운드에 남아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라운드 쪽엔 야수와 포수들이 모여 실전 펑고를 치고 있었다.

수비 코치님이 좌익수 앞으로 안타성 타구를 쳐내자 좌익수와 중견수가 달려갔다.

좌익수가 공을 잡을 무렵 중견수가 위치를 바로 콜했고 릴레이를 받을 3루수는 포수가 위치를 조정한다.

공을 받은 포수는 홈에서 태그 모션을 취하자마자 바로 2루로 공을 던졌다.

날카롭게 날아간 송구는 2루수가 받아 2루에서 한 번 더 태그모션.

깔끔한 라운딩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요즘 애들 수준 높네.

고개를 돌려보니 투수조는 몸을 풀고 있었다. 슬슬 공을 던지려는 모양새에 불펜으로 향했다. 아까 선배가 왔다.

“왜?”

“좀 보게.”

“잘됐네, 애들 코칭 좀 해봐라.”

“내가?”

“프로 현역인데, 뭐 다른 게 좀 있겠지.”

감독님, 이거 직무유기 아닙니까.

하지만 난 기꺼이 애들 옆에 섰다. 익숙한 코치가 아닌 프로 현역이 옆에 있자 긴장한 게 보인다. 내 시절이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나 때는…….

“라떼 끓이지 마라.”

“X발.”

이후는 편했다. 애들이 워낙 잘 던져서.

다만 프로 레벨에서 보이는 몇 가지 수정 사항들이 보이자 가볍게 툭툭 던져주는 정도.

그 정도로 충분했는지 애들 공이 좋아진다.

“야. 너 코치할래?”

“아, 꺼져. 서른 살짜리한테 뭔 소릴 하는 거야.”

“나도 서른하나밖에 안 됐거든.”

“저 계약 4년 남았는데요.”

“4년 뒤에 와라.”

으.

조용히, 불펜에는 공 던지는 투수와 공 받는 포수의 소리만이 전부였다.

저 포수들은 라운딩 안 하냐 물어보니까 1학년이라 캐칭이 우선이란다.

“프로 언제까지 하려고?”

그렇게 구경하고 있자 선배가 툭 물어온다.

“프로라…….”

남은 계약, 올해 포함해서 4년. 농담조로 50살까지 해먹을 거라 얘기는 하지만 잘 모르겠다. 이미 몸이 많이 아프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야지.”

“아프지 마라.”

“이미 많이 아파.”

“그건 늙어서 그래.”

“X발.”

“아프지 말고. 잘해 봐.”

“…….”

잘해 봐.

그 쉬운 세 글자가 참 어렵게 들렸다. 가만히 서서, 몇 번이고 곱씹어보았다.

나이스 보올!

다시 불펜에는 공 받는 소리만이 전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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