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브이로그
또 한 번 올스타전의 시기가 찾아왔다.
올스타전!
아직 게임 자체가 다가온 것은 아니고 이를 위한 포석, 올스타전 투표가 시작되었다.
총 3주간의 투표 기간 중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 좀 치열하다 싶은 포지션들이 몇몇 있다면 벌써부터 반쯤 확정으로 봐도 될 법한 포지션들이 몇몇 보였다.
서부 리그는 딱히 관심 없고, 우리 동부 리그 쪽 1루수에는 박해진.
이제는 얘가 올스타전에 없으면 그냥 뭐 서운한 수준. 그 외 2루수엔 KP의 김기윤, 우익수에는 우리 팀 성현이까지.
전통적으로 상수의 홍석진이 강세를 보이던 지명 타자 자리는 웬일로 승주가 약간 달리는 수준으로 비벼보고 있다.
그 외에 우리 팀에서 분발하고 있는 친구라면 혁준이 정도? 나머지는 유감.
나는 전자에 속했다. 중간 투수 부문에서 압도적인 1위.
작년 시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타고투저의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 대부분의 투수들이 박살 난 가운데 정상인으로 취급받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한울 선수! 한마디만 해주세요!”
“아, 왜요.”
“아잉.”
“자꾸 쓸데없는 앙탈 부릴래요?”
“그, 그치만! 원하의 팬분들이 원하시는걸!”
“사랑합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지만 저에겐 건물주 위에 팬 여러분들입니다, 항상 아껴주시는 마음 잊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지금보다 더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이 어깨는 제 어깨가 아니라 팬분들의…….”
뭐 이런 캐릭터 덕분에.
통상적으로 생각하길 빡겜보단 즐겜에 가까운 올스타전이지만 작년의 올스타전은 거기서 조금 벗어나 있었다.
개빡겜.
평소 하하호호 즐기며 던지고 치던 사람들이 뭐에 꽂힌 듯 아주 이를 갈고 게임에 임했던 것이다.
덕분에 반응은 좋았다.
이런 게임도 재밌네요~ 같은 약한 반응부터 마! 그래, 이게 올스타전이지! 같은 강한 반응까지.
올해의 올스타전이 어떤 양상을 띨지는 모르지만, 여튼 또 한 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내 나름도 기대하고 있다.
작년 올스타전에서 받았던 퀘스트와 이를 해결하고 받았던 전 구종 +5. 말도 안 되는 개꿀이다. 올해도 비슷한 경험을 하길 기대하고 있다.
“오늘은 오랜만에 김한울 선수 특집이에요.”
쑥쑥 커서 구독자 10만 명을 넘긴 원하 챌린저스의 미튜브 계정. 그중 가장 많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 중 하나가 나였다.
하루에 최소 한 편, 많으면 두세 편까지 동영상이 올라오는 원하의 미튜브 계정은 잠들기 직전 보면 딱 좋았다.
“나요?”
“네!”
“전에 또 했잖아요.”
“그때는 소개였고, 이건 브이로그 느낌으로.”
“음…….”
수, 목, 금. 어제까지 3연투. 그럼 오늘은 아마 쉬게 해줄 테지. 그럼 오늘 하루는 은서 씨랑 놀아도 괜찮겠다.
“근데 나 찍어서 뭐하게요? 오늘 나 아마 안 올라갈 것 같은데. 분량 얼마 안 나올 텐데?”
“아, 그래서.”
혼자서 중얼중얼거리더니 작은 노트 한 권을 꺼냈다.
“…뭐예요?”
“질문지요.”
“나에 대한?”
“그럼요.”
“얼마나 본격적으로 하려고…….”
순식간에 덕아웃 한 편이 작은 스튜디오로 변모했다. 이거 괜찮냐고 옆에 계신 감독님께 눈치를 주니 신경 쓰지 말라며 손짓하신다. 더 신경 쓰인다.
“일단 팬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남자 김한울입니다.”
짝짝짝.
아련하게 들리는 한 쌍의 박수 소리가 참 초라하기 그지없다.
“어…일단 첫 번째 질문이에요. 집에 가면 뭐 하세요?”
“퇴근하면? 일단 밥부터 먹고… 그날 등판했으면 등판한 거 좀 복기하고. 등판 안 했으면 다음 게임 플랜 잠깐 짜고.”
“취미는요?”
“게임?”
“무슨 게임 하시는데요?”
“이거 말해도 돼요?”
“네네.”
“풀카운트요.”
“야구 게임인가 보네요?”
“네.”
“오. 그럼 혹시, 게임 안에서 본인 캐릭터 써보신 적 있으세요?”
“네. 꽤 좋게 나와서 잘 쓰고 있어요.”
“오홍. 다음 질문. 아, 이거는 취미로 야구를 하시는 분이 질문해 주신 거 같은데. 김한울 선수가 던지는 변화구가 많잖아요? 뭐뭐 던지세요?”
“어… 커브랑, 슬라이더랑, 스플리터랑, 싱커랑, 체인지업이랑 직구?”
슬라이더는 사실상 봉인이지만 블러핑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럼 각 변화구들별로 던지는 팁 같은 거 있으세요?”
“팁?”
“네네. 사회인 야구하시는 분이 아닐까요? 학생이거나.”
“뭐…….”
슬쩍 주위를 둘러보다 굴러다니는 야구공 하나가 보이길래 집어왔다.
“커브는 이렇게… 안 꺾고 빼고. 슬라이더는 이렇게 자르고. 스플리터는 그냥 벌리면 스플리터고. 싱커는 그립 잡으면 알아서 꺾이고. 체인지업도 뭐… 그립으로 던지면 알아서 떨어지고.”
“…그게 다예요?”
“이 이상 더 친절하게 알려줄 수가 없는데.”
할 말이 많아 보였지만 은서 씨는 입을 꾹 다물었다.
“팀 내에서 가장 친한 선수는 누구인가요?”
“다 두루두루 친하기는 한데… 규진이 형? 부대끼고 살아온 게 거의 15년이니까. 성격도 잘 맞고.”
“팬분들이 두 분 보고 전생에 부부였을 거라고 말씀들 하시는 건 아시죠?”
“아니, 누가 대체 그런 불쾌한 소리를 하는 거죠?”
야! 지랄하지 마!
“…….”
저 멀리서부터 아련하게 들려오는 절규는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아, 그럼 올해 김한울 선수가 현실적으로 봤을 때, 원하의 순위는 어느 정도로 예상하세요?”
“현실적으로? 현실적으로면 4위 정도?”
“그럼 목표는?”
“목표야 당연히 한국 시리즈 우승이죠.”
“저기… 이건 팬분들 말씀이 아니라 그냥 제 개인적인 궁금증인데요.”
“네.”
“그냥 빈말로라도 정규시즌 우승하겠다, 뭐 그런 식으로 말씀해 주시는 게 좋지 않아요?”
“그렇기야 한데… 못 하면 뒷감당은 피디님이 하시겠습니까.”
“어… 네! 제가 하죠, 뭐!”
“오케이. 이거 자르지 말고 넣어요.”
“그래요! 넣어요!”
혼자 부들거리며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10년 뒤의 김한울 선수는 뭘 하고 있을까요?”
“10년 뒤? 10년 뒤면 40이네. 아니, 와, 내가 벌써 30살이구나. 와, 와! 나 언제 이렇게 늙었지?”
뒤질래?
아, 아닙니다, 감독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10년 뒤면 40이고… 40? 40살이면 아직 야구 선수하고 있지 않을까요? 이건 예상이라기보단 그냥 목표나 꿈 같은 거긴 하네.”
“그럼 약간 기출 변형해서, 몇 살까지 야구 선수하고 싶으신 거예요?”
“평생 해먹고 싶기는 한데 현실적으로 어렵고… 몸만 버텨준다면 50살까지는 하고 싶은데요.”
“50살? 20년을 더?”
“못 할 거 있나. 몸 버티고 성적 나오면 계속하는 거지.”
“흠. 그럼 지금 야구 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 같은 게 있나요?”
“지금 엘리트 애들?”
보자…….
“여기서 라떼 끓이면 편집이겠지?”
“당연하죠.”
“아씨. 근데 라떼 끓일 썰 밖에 없는데.”
“좀 잘 좀 해봐요, 좀.”
“잘 먹고. 잘 자고. 운동이니 뭐니 막 그런 거에 신경 쓰지 말고, 기본기.”
“잘 먹고 잘 자고 기본기를 잘 익혀라?”
“그치그치. 기본기가 얼마나 중요한데. 너네 막, 어? 저기 어디야, 성운에 명규도 그렇고 우석이도 그렇고 어? 나랑 야구할 때 얼마나 기본기기본기기본기기본기했는지 알아? 으이? 폴대폴을 몇 번을 뛰었는지 알아? 진짜 나 때는…….”
“스돕.”
“…에씨.”
“이건 여성분이 주신 질문 같은데요. 김한울 선수 혹시 여자친구 있으신가요?”
“여자친구요?”
음…….
당연하게도 순간 민영 씨가 떠올랐다. 썸…이라고 감히 생각해도 되는 걸까.
“아뇨. 아직은.”
“저런.”
“저런의 의미가 뭐죠.”
“뭘까~요.”
은서 씨는 실실 웃더니 노트를 다음 장으로 넘겼다.
“은퇴하고 나면 가장 먼저 뭘 하고 싶으실 것 같아요?”
“은퇴하면 아마… 아 끝났다, 하면서 막 치킨이랑 피자랑 막 시켜서 먹고 그러지 않을까요. 아, 말하고 나니까 치킨 먹고 싶네.”
“아, 나도… 아, 아니. 아, 그러면 그. 은퇴하기 전에. 은퇴 전에 김한울 선수의 목표가 있을까요?”
박해진한테 삼진 잡는 거.
언젠가 현진이가 나한테 했던 비슷한 질문이 떠올랐다. 아직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선 조금 순화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지.
“한국 시리즈 우승이요.”
“몇 년 안에?”
“뭐… 3년 안에는 되지 않겠나.”
“올, 자신감.”
“크으… 멋있다.”
“아, 그건 좀.”
“에이.”
대충 그렇게 투닥거리다가 인터뷰가 마무리됐다.
카메라 전원을 끄고 노트를 접고. 모든 마무리를 마친 은서 씨가 인사를 하고 돌아가기 전 한 번 멈칫했다.
“아까 말씀하셨던 거 있잖아요.”
“어떤 거요?”
“마지막에 왜, 한국 시리즈 얘기.”
“아… 네.”
“가능하죠? 진짜죠?”
절박함마저도 보이는 질문에 나는 조용히 미소 지었다. 대답은 따봉으로 대신했다. 그걸로 충분한지 은서 씨도 귀엽게 웃고선 몸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했다.
* * *
“여어, 한울이. 몸은 좀 어때.”
“아,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대선배님의 등장에 절로 허리가 숙여졌다.
김수찬 선배님께선 내 손을 잡고 계신 오른손 대신 제 왼손으로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반겨주셨다.
“어깨는? 다 나은 거지?”
“예. 애초에 그렇게까지 쉴 부상도 아니었습니다.”
“아프지 마라. 아픈 게 제일 서러워.”
팀의 레전드이자 현재는 MBS에서 해설을 하고 계신 대선배님께서 방문하셨다. 옆에 카메라를 하나 대동하고 오신 걸 보니 방송과 관련이 있는 만남으로 보였다.
“어쩐 일이십니까?”
“귀한 곳에 누추한 사람이 와서 당황했지?”
환갑에 다다른 선배께서 치는 개드립을 듣는 건 꽤나 신선했다.
어억, 누추한 곳에 귀한 분이 아니라 귀한 곳에 누추한 분이라니! 누추한과 귀한을 뒤바꾼 재치가 돋보입니다! 이 후배, 선배님의 센스에 무릎을 탁! 치며 웃습니다, 아학학학!
그 정도는 아니고.
옙. 죄송합니다.
“아, 다름이 아니고 잠깐 인터뷰 좀 부탁하고 싶은데.”
“인터뷰요?”
오늘은 인터뷰 특집인가.
“괜찮아? 스탯 관련된 얘기야.”
“예예. 괜찮습니다.”
“한주한테는 얘기해 놨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예예.”
감독님을 이름으로 부르다니. 새삼 엄청난 짬이다.
“아… 됐어? 오케이.”
크흠흠.
“안녕하세요, MBS 김수찬 해설입니다.”
무난하게 서두를 꺼낸 선배님께선 이내 카메라를 향해 혼자 이런저런 말씀을 하셨다.
그리 긴 이야기는 아니었다. 시작부터가 이번에는 김한울 선수를 만나보았다, 라고 하는 걸 보니 여러 선수들을 만나는 것 같았다.
“야구에 참 여러 가지 스탯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렇죠.”
“야구가 발전하면서 참 많은 스탯들이 발명되고 또 알려졌는데요, 김한울 선수가 특별히 중요히 생각하는 스탯이 있나요?”
“제가 생각하는 스탯이요?”
스탯이라 하시길래 순간 내 ‘스탯’이 떠올라 멍때리고 있었다.
“어…….”
뭐가 있지.
“저는… 음… 클래식하게 보면 평균 자책점?”
“흠. 생각보다 흔한 답이네요?”
약간 실망하신 듯한 말투. 무슨 답을 기대하셨던 걸까.
“일단… 제가 투구 스타일이 조금 특이한 편이다 보니까요. 투구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임하는 자세? FIP니 WHIP니 BABIP니 많잖아요? 그쪽도 생각은 해봤는데 제 스타일이랑은 안 맞는 것 같아요.”
“근데 평균 자책점은 수비가 강한 팀이면 당연히 좋게 나오지 않나요?”
“그쵸. 근데 저 같은 경우는 차라리 안타 맞을 것 같으면 그냥 쳐서 나가라는 주의고 여기서 이 타자를 내보내는 게 이득이다 싶으면 그냥 편하게 볼넷 주고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은 어느 정도 상쇄가 된다고 생각해요.”
“호오.”
그제야 흥미를 가지고 이것저것 여쭤보신다.
“제가 몇 점을 주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팀이 이겨야 하니까요. 아, 물론 제가 삽질… 아, 이거 괜찮아요?”
“좀 그렇다.”
“넵. 제가 삐끗하게 되면 연쇄적으로 다음 투수들한테 부담이 가고, 또 그게 시즌으로 보면 삐걱거리게 할 요소인 건 맞지만요, 일단 제 기준이잖아요? 제 평균 자책점을 낮추면 제 다음 부분에서도 충분히 편해질 것 같아요.”
“근데 타자를 일부러 내보내는 게 이득인 상황이라는 게 있나요? 나도 투수였지만, 당연히 전부 다 막을 수 있으면 막는 게 좋잖아요.”
“이건 좀… 팬분들 들으시면 뭐라 하실 것 같긴 한데… 선배님도 투수셨으니까 아시잖아요. 왠지 맞을 것 같은. 근데 그게 점수로는 안 갈 것 같은. 아니면 점수 줘도 상관없을 것 같은 때.”
“아아. 있지 있지.”
“그럴 때죠. 덧붙여서, 9회 말 수비에 2사 만루예요. 점수는 한 점 차고. 근데 다음 공격이 우리가 타순이 아주 좋아요. 그럼 차라리 전 볼넷을 줄 수도 있어요.”
“아, 그건 좀 극단적이지 않나요?”
언젠가 규진이 형과 나누었던 이야기였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만루에서 거른다? 한 점 차인데?”
“근데 거기서 안타 맞으면 그대로 경기가 끝나는데요?”
“호오…….”
새로운 관점이기는 할 거다.
“이건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네요. 감사합니다.”
“아, 넵. 고생하셨습니다.”
인터뷰는 얼추 마무리된 듯 카메라맨이 카메라를 내리자마자 평소의 인자한 선배님으로 돌아오셨다.
“근데 그건 진짜야?”
“네?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2사 만루에서 거를 수도 있다는 거.”
“아… 그거요.”
그땐 내가 선배님과 같은 생각이었지.
“저도 당연히 선배님이랑 같은 생각이었죠.”
“이었죠?”
“근데 당해 보니까 알겠더라구요. 차라리 그게 더 나을 때가 있더라구요.”
“흐음…….”
영 이해를 못 하겠다는 표정. 어쩔 수 없다. 실제로 겪어보지 않고선.
오늘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난 그때 정말로 그런 행동을 할까.
상대 덕아웃에서 장비를 하나둘씩 차는 박해진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