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장주호
“야.”
“네?”
경기가 진행되고 바로 얼마 되지 않아서, 주호의 모습을 멍청히 바라보다 옆에 앉아 있던 규학이의 옆구리를 툭 쳤다.
“솔직히 너가 봤을 때 말야. 주호 수비하는 거 어떠냐.”
“주호 수비…….”
흐음…….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있는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하자면 좋은 단어가 나오지 않을 것이 뻔했기에 필요한 필터링이 생각보다 어려워 보였다.
“…솔직하게 말해. 다 아는데.”
“안 좋죠. 심하게.”
“어디어디가? 아니…다. 다 그렇지. 특히 뭐가? 뭐가 제일 그래 보여?”
볼!
볼!
스롹!
볼!
“저거요.”
볼!
손가락을 따라가자 보이는 건 애매한 위치에서 멈춰 있는 포수 미트였다.
“다른 건?”
“흐음… 사실, 블로킹은 공식이거든요.”
“아, 그래?”
“네. 어느 바운드가 오면 어느 좌표로 움직인다. 그것만 생각하면 돼요. 결국 목적은 자기 앞에 공을 떨구는 거잖아요. 최대한 가까이에.”
“그치.”
“내야수들 땅볼 잡을 때 숏바운드로 잡는 게 제일 쉽잖아요. 그래서 숏바운드 맞추려고 스텝 밟는 거고. 그거랑 똑같아요. 우리는 단지 훨씬 더 빠르게 보는 게 아니라 몸이 먼저 움직이게 하는 게 어려운 거고.”
음… 알겠다.
“그건 연습하면 된다는 거네.”
“연습도 연습인데… 많이 해봐야 돼요.”
“…강하게 컸구나, 너.”
“그쵸… 우리 원하 투수들…….”
녀석은 코 밑을 한 번 쓰윽, 훑고서 말을 이었다.
“정말 많이 컸죠.”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 바로 최근 5년째 우리 팀에서 주전 포수를 맡고 있는 규학이.
그땐 구단 단장이 좀 멍청해서, 모처럼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자마자 좋은 선수를 죄다 트레이드로 팔아넘겼다.
그 덕에, 혹은 그 탓에 규학이는 반강제로 주전 마스크를 쓰게 됐다. 그나마 남아 있는 포수들 중 가장 수비가 좋다는 이유로.
아니, 문규학 수비 좋은 건 알겠는데 타격은 어쩌려고? 2군에서도 2할 치는 애를 주전으로 쓴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맞는 말도 아니었다.
타격은 분명 성장한다, 라는 당시 감독의 지론…이라기보단 진짜 어쩔 수 없이 녀석은 성장했다.
“근데 니 말처럼 블로킹이 공식이면 빠지는 공 같은 건 없어야 되는 거잖아.”
“말이 그런 거죠. 야구가 수학이 아닌데, 어떻게 모든 상황상황에 대입을 하겠어요. 주자 상황, 카운트 상황 같은 외적인 요소는 제외하더라도 당장 내 앞에 박혀 있는 요만한 돌맹이 하나 때문에 이상한 데 튀는 게 블로킹인데요.”
투투!
아냐, 스톱!
생각보다 크게 떨어진 커브가 땅바닥에 꽂혔다.
규학이급의 블로킹이 아니더라도 툭, 무릎만 대면 될 것 같은 블로킹에 손만 어설프게 따라가다가 뒤로 흘려버렸다.
곧장 일어나 공을 주워 2루로 던질 자세를 잡았다. 생각보다 멀리 튀지는 않았기에 주자가 뛰는 참사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송구는 오히려 전 좋게 보는 편인데요?”
“송구를?”
“네. 주호가 지금 다리가 흔들리니까 공도 높게 뜰 뿐이지, 아시잖아요? 주호 어깨 좋은 거.”
“뭐… 그치.”
“그리고 형이 누구보다 제일 잘 알지 않아요? 구속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올라가지는 않는다는 거.”
“갑자기 뼈 때리기 있냐.”
“혀, 형이 제일 잘 알 것 같았으니까요!”
“…그래서.”
“주호 어깨는 완성되어 있는 어깨잖아요. 어깨만, 봤을 때는.”
뛴다아악!!
“주호도 어깨 좋지. 작살 나지.”
촤악―
“좋죠. 쟤는 진짜 스텝만 좋으면 팝타임 평균으로 1.8초는 찍을 거예요.”
아우웃!!
멋진 2루 송구…라기보다는 멋진 2루수의 태그.
살짝 까치발을 들어서야 잡을 수 있는 공을 몸을 내던지듯 굴려 겨우겨우 주자의 허벅지 뒤쪽에 태그해 냈다.
“그럼 뭐… 리드? 리드가 문제인 건가? 근데 리드야말로 진짜 경험 아니야?”
“사실 리드가 정답이 없다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형이 제일 잘 알지 않아요?”
“그렇…지.”
“라인 태운다, 꼭짓점이다, 대각선이다, 하이로다, 인아웃이다, 다 필요 없어요. 결국엔 운빨이에요.”
“우리나라에서 투수 리드 제일 좋다는 니가 그런 말 하니까 되게 색다르다, 야.”
“사실인 걸 어떡해요.”
“틀린 말은 아니지…….”
“전 타석에 140km짜리 몸쪽 직구에 삼진 먹고 이번엔 155km 몸쪽을 넘길 수도 있는 거고. 반대로 155km짜리 밀어서 넘기는 타자가 바로 다음 타석에 140km짜리에 루킹 당할 수도 있는 거고. 이유는 당연히 수도 없이 많고.”
“그럼? 지금 주호의 리드로도 충분하다?”
“아뇨. 당연히 그건 아니죠.”
“뭔데, 그럼.”
“정답은 없어도 정석은 있잖아요. 지금 이렇게 볼이 흐르는 게 정답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가이드는 만들 줄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야 게임 플랜을 짜지.”
“맞지.”
“아니면 당장에 얘가 바깥쪽 직구에 늦었어. 아주 그냥 한참 늦었어. 다음 공에 바깥쪽 체인지업 갈 거예요?”
“…나라면 몸쪽 직구 하나 갈 거 같은데.”
“그거죠. 이게 정답이라는 건 아닌데… 확률이잖아요.”
따악―!
“조금이라도 덜 맞을 수도 있는 확률. 촉이라는 것도 생기거든요. 아, 이거 여기서 던지는 맞을 텐데. 그런 것도 경험에서 나오는 거고.”
“맞지.”
“주호가 진짜 문제인 건 뭐냐면…….”
틱―
고고!
투투투!!
“캐칭.”
쓰리쓰리!!
뛰어!!
숏 말고 바로 써드!!
“그리고 멘탈이요.”
낮기만 할 뿐, 바운드는 되지 않았던 커브를 빠뜨렸다.
주자는 2루로 스타트를 끊었지만, 공이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아 바로 줍고 정확하게만 던진다면 충분히 잡을 수 있어 보였다.
그러나 공은 명진이가 아닌 진형이가 잡아야 할 정도로 멀리 날아갔고, 잡자마자 3루로 냅다 던졌지만,
“세잎!”
이미 주자가 먼저 베이스를 손으로 터치한 뒤.
패스트볼입니다.
굳이 말 안 해줘도 알 텐데, 장내 아나운서는 친절하게 패스트볼이라 설명했다.
3루에 서서 벨트에 낀 흙을 털고 있는 주자를 멍청히 바라보던 주호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볼.”
“보올.”
“로 볼!”
“볼!”
포수가 흔들리면 당연히 투수도 흔들린다. 투수가 흔들리면 수비도 흔들린다.
“타임!”
아주 당연한 공식을 막기 위해 투수 코치님이 타임을 부르고 일찍 모습을 드러냈다.
나가서 뭐라뭐라 하는 이야기에 배터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럼 어떡해. 캐칭 연습시켜야지.”
“근데 그게 잘 안 되나 봐요. 배터리 코치님도 그쪽으로 생각하고는 계신 것 같은데… 쉽지는 않겠죠.”
흐름을 끊은 것이 주효했는지 가만히 주호만을 따라가던 규진이 형의 고개가 이전보다 많이 좌우로 움직였다.
띡!
투투!
아예 포수가 잡지를 못하게 하려는 의도. 빠르게 인플레이를 만들려는 의도.
그 결과는 잘 맞아 2구째, 체인지업의 위를 때려 땅으로 굴러간 공은 정석적인 6-4-3 병살로 연결되었다.
무실점으로 이닝을 막은 건 사실이다. 더구나 위기를 넘겼기에 더더욱 가치가 큰 무실점 이닝.
하지만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주호의 얼굴은 꽤나 어두워 보였다.
* * *
집에 가자.
경기가 끝나고 퇴근할 시간이 다가왔다. 옷 갈아입고 가방 들쳐메고 가려고 하는데 시야 한 편, 주호와 규학이가 걸쳤다.
투수의 입장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포수들과 가장 부대끼며 살게 된다. 하여 관심도 제일 많이 갈 수밖에 없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슬쩍 다가갔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규학이는 괜찮고?”
“네. 괜찮습니다.”
둘이 아니라 셋이었다.
“뭐하고 계셔요?”
“집에 안 갔나?”
“가려고 했는데 보여가지고요. 뭔가 싶어서요.”
현재 원하 챌린저스 1군에 등록되어 있는 포수 둘, 그리고 이 둘을 담당하는 박은종 배터리 코치님.
“너네 뭐했냐?”
“수비 연습 좀…….”
“집에 안 가?”
“어…….”
“애가 연습 좀 할 수도 있죠.”
왜 기를 죽이고 그래요!
규학이의 표정은 그러했다.
“아니. 뭐라 하는 건 아니고. 안 피곤하냐?”
“둬라. 지가 하고 싶다 안 카나.”
“주호가 하겠대요?”
“그래.”
“호오.”
흥미가 생겼다.
“코치님. 저도 따라가도 돼요?”
“니는 와?”
“그냥 궁금해서요?”
“니는 집에 안 가나?”
“가도 할 거 없는데요. 구경이나 하죠. 도울 거 있으면 돕구요.”
“됐네. 온나.”
그렇게 네 명의 파티가 구성됐다.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얼마 전, 서연 씨에게 시구 지도를 해줬던 실내 연습장에 도착했다. 가만히 앉아 두 현역 포수가 장비 차는 것을 구경했다.
애벌레같이 생긴 렉가드를 왼쪽 다리에 붙인 뒤 네 개의 클립을 하나씩 채우기 시작했다. 반대편 다리도 마찬가지.
이후 무슨 두꺼운 후드티를 껴입는 것처럼 프로텍터를 뒤집어쓴다. 마찬가지로 클립질을 한 번.
이후 포수 헬멧을 머리 위에 올리고 마스크를 덮으면 완성.
보기만 해도 답답해 보이는 저 풀메이크업을 매순간 하고 있을 걸 생각하니, 어우 난 못 하겠다.
변신을 완료한 두 포수는 벽을 등지고 쪼그려 앉았다. 딱히 내가 할 만한 일은 없었기에 코치님 옆에 서서 구경했다.
“주호, 니는 뭐가 제일 부족한 것 같나?”
“저…는. 전부 다 부족하지 않습니까.”
“알긴 아네.”
코치님, 갑자기 그렇게 뼈를 때리시면…….
“그럼 포수의 기본이 뭔데. 한울이랑 규학이는 가만 있어 보라.”
“어…….”
갑자기 퀴즈. 무릎을 꿇은 자세는 훈련을 위한 자세가 아니라 무슨 고해성사를 위한 자세처럼 보였다.
“투수… 리드 아닙니까?”
“아이지. 포수. 그 단어 뜻이 뭔데. 한자, 무슨 한자로 돼 있노. 받을 포에 손 수. 받는 손. 알겠나. 포수는 공 잡는 사람이지 않나. 던지고, 막고. 응? 으찌 던지고 카는 건 그다음이야. 잡는 거. 포수는 그럴라고 있는 사람이야.”
“아, 예!”
“그럼 공을 잘 잡알라카면, 뭘 잘해야겠노?”
“눈이 좋아야 합니까?”
“그건 당연하고. 아니, 잘잡는다의 기준이 뭐고?”
“안 빠뜨리고…….”
“그것도 당연한 기고.”
“어…….”
주호는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스트라이크를 볼로 안 만드는 거.”
“그치. 한울이 아네.”
제가 얘한테 좀 당해 봐서…….
“규학이, 잡아봐라.”
“아, 네.”
가벼운 토스가 규학이에게 향했다. 지점은 규학이의 정가운데, 상하로 따지면 무릎 정도.
팡!
“봤나. 잡은 대로 가마안히 있음 돼. 뭐 할라 안 해도 돼. 볼은 볼이고, 스트라이크는 스트라이크야. 주호 니가 잡는 거 보여주까? 규학이.”
“네!”
틱―
이번엔 규학이가 코치님에게 토스했다. 커다란 움직임으로 인해 흔들리는 미트. 딱 주호의 캐칭이었다.
“주호 니가 이렇다. 규학이, 다시.”
“네.”
다시 토스된 공은 미트에 들어간 뒤 움직이지 않았다. 잡힌 위치 그곳에서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주호야. 니가 가서서 뭐 할라 하지 마라. 넌 포수다. 포수는 포수의 역할이 있다. 포수가 나서서 뭐를 할라 하는 순간, 그 순간에 게임은 망한다. 알겠나.”
“…네.”
이후 여러 번의 토스들이 이어졌다. 코치님의 입에서 그렇지! 보다 아니지! 가 훨씬 더 많이 나오기는 했다.
시간이 지나자 그 비율은 조금씩 역전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그거면 됐다는 극찬까지 듣고야 말았다.
“이건 단순한 연습이니까 되고. 막상 게임 들어가서 하는 거는 또 다른 얘기야. 안 될 거야, 아마. 아나?”
“네, 알겠습니다!”
이제 겨우 캐칭이 끝났는데도 시간은 11시를 훌쩍 넘겼다.
포수에게 요구되는 수비 사항은 많다.
캐칭은 그저 기본 중 기본일 뿐, 아직 블로킹이며 송구며, 상황별 리드까지. 남아도 한참 남았다.
아마 당분간은 이런 추가 근무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무급임이 분명함에도 주호는 열정페이를 지불할 용의가 충분히 있어 보였다.
약간의 마무리가 추가된 후, 코치님은 뜬금없이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주호야. 주호는 포수가 하고 싶나?”
“예? 예.”
“포수가 좋나.”
“예.”
“와? 힘들고, 재미도 없고. 니 잘해 봐야 그 아무도 안 알아주는데 와 포수가 좋노.”
“그냥… 포수가 좋습니다.”
“그니까 와.”
“재밌습니다.”
“재밌나.”
“예.”
“보람차나.”
“예.”
대답은 썩 만족스러운 대답으로 보였다. 코치님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다.
“됐다. 그거 하나로 넌 포수할 자격이 충분하다. 가자. 피곤타.”
“네!”
극찬.
포수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을 받은 주호의 표정은 아까와는 다르게 아주 해맑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