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평화로운 불펜생활-67화 (67/190)

67화. 대가

- 아, 인터뷰 준비가 완료됐다고 합니다. 오늘 준플레이오프 1차전 MVP 장주호 선수와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주호 선수? 나와 있나요?

- 아… 그, 네. 안녕하세요, 장주호입니다.

- 네, 반갑습니다. 우선 준플레이오프 1차전 MVP 축하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 오늘 경기 대타로 나서서 결승 홈런을 쳐냈는데요. 당시 상황 설명을 부탁드릴까요?

- 네, 그… 딱히 홈런을 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살아나가려고 했는데요,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 홈런보다는 출루를 목표로 두고요?

- 네.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고 했는데요,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권명훈 캐스터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영진 해설위원의 질문이 날아든다.

- 장주호 선수의 타격 능력은 이미 모든 구단이 알고 있을 겁니다. 타격할 때 중요시하는 부분이 있습니까?

- 타격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그… 제가 힘을 좋은 편이라고 많이 말씀들을 해주셔가지구요. 세게 맞추려는 것보다는 정확하게 맞추면, 그렇게 해서 잘 맞으면 큰 거 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아, 접근 방식이 좋네요.

- 가, 감사합니다!

전설적인 홈런왕 출신의 극찬. 까마득한 후배 입장에선 감사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 저는 타격도 타격이지만 오늘 경기에선 장주호 선수의 수비 능력을 칭찬하고 싶거든요.

이어지는 김수찬 해설위원의 칭찬.

- 평소 장주호 선수 수비가 부족한 것 또한 알고 있을 텐데요, 오늘은 전혀 아니었어요. 문규학 선수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수비였어요. 연습 많이 한 게 보이거든요?

- 아, 네. 연습 진짜 많이 했습니다.

어색하고, 쑥스러운 와중에도 본인 홍보는 제대로 했다. 또 그럴 자격이 있었고.

- 어떤 연습을 주로 했나요?

- 박은종 배터리 코치님이 일단 캐칭 부분을 많이 주문하셔서 그쪽을 많이 연습했구요, 그 외에 블로킹까지만 중점적으로 많이 연습했습니다.

- 캐칭이랑 블로킹?

- 네. 다른 부분들도 아직 많이 부족하긴 한데 아직 이쪽도 제대로 된 게 아니라 거기까지는 아직 제가…….

포수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치라는 것은 대부분 수비에 집결되어 있다. 캐칭, 블로킹 모두 중요하지만 이걸로 끝나지 않는다. 아직 한참 멀었다.

- 수비 훈련 도와주신 분들께 한 말씀 하자면요?

- 일단… 박은종 배터리코치님께서 정말 많이 도와주셨구요, 문규학 선배랑 김한울 선배도 많은 도움 주셨습니다.

- 아, 여기서도 김한울 선수의 이름이 나오네요?

- 네? 아, 네. 저랑 배터리 맞추면 김한울 선배 쪽에서 리드를 보통 해서 그… 제가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 그렇군요. 마지막으로, 이번 포스트 시즌 목표가 있다면요?

- 제가 많은 경기를 나서면 좋겠지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구요. 하하… 제가 딱, 필요한 부분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고, 그래서 한국 시리즈 우승하면 좋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오늘 인터뷰 감사합니다.

- 네, 감사합니다.

거기까지 하고 주호의 MVP 인터뷰 영상이 종료되었다.

흐흐, 웃으며 주호를 찾아가 영상을 보여주었다.

아, 안 돼요, 쪽팔려요! 그런 소릴 내며 도망가는 모습을 보면 꽤나 흐뭇했다.

2차전의 날.

언제나 그랬듯, 우리의 목표는 승리다. 승리를 목표로 두는 것은 이 상황에서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 팀이라면 더더욱 당연한 이야기.

4차전 안쪽으로 끝내야 한다.

여기서 이기면 끝이 아니라, 동성과의 플레이오프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5차전까지 가게 되면 혁준이가 등판할 테고, 그렇게 되면 우리는 플레이오프 시작부터 선발진 엔트리가 꼬이게 된다.

한규진.

오늘 2차전 선발도 그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고, 또 그 기대에 제대로 부응할 줄 아는 사람이다.

준플레이오프, 포스트 시즌이라고 해서 대단할 건 없었다. 페넌트레이스 때와 같은 루틴.

시시덕거리다가 러닝 좀 뛰고, 튜빙 좀 땡기다가 캐치볼, 또 시시덕거리다가 몸 풀고 피칭.

플레이 볼!

성운의 1번 타자는 변함없이 우석이. 투수는 규진이 형. 시작부터 고등학교 선후배들의 맞짱이 성사된 것이다.

“하잌!”

전광판을 보니 148km. 깔끔하게 들어간 직구가 바로 카운트를 뺏어냈다.

규학이는 여기서 무슨 사인을 낼까. 내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건 몸쪽 직구,

“하잌!”

그리고 바깥쪽 체인지업으로 헛스윙을 노리지 않을까.

딱―

“파울!”

거기까진 맞았는데 배트 끝에 걸리며 우석이의 타석이 연장되었다.

직구, 커브, 체인지업.

선발에게 구종이 고작 세 개? 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규진이 형이라면 괜찮다. 커브도 쓸 만하고, 체인지업도 좋은 구종이긴 하지만,

“스윙! 아웃!”

의외로 규진이 형의 결정구는 직구.

낮은 키와 극단적인 오버핸드라는 이색적인 조합은 타자 입장에선 익숙해지고 싶어도 익숙해질 수가 없다.

“하이야아앜!!”

왜냐면 저렇게 던지는 투수가 없거든.

“하아아앜!!”

1회 초,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처리한 뒤 규진이 형이 내려왔다. 투구 수도 12개로 아주 깔끔. 곧이어 성운의 2선발인 김태일이 마운드에 올라섰다.

어제의 선발 매치업이 좌우의 상대성이라고 하면 오늘은 위아래의 매치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쪼꼬미인 주제에 극단적인 오버핸드를 택한 투수. 그리고 194cm에 달하는 거인이면서도 사이드암을 던지는 투수.

키가 꽤나 큰 편인 나보다도 훨씬 큰 김태일은 본인의 기다란 팔을 옆에서 후리고 있었다.

하드웨어는 정말 막강하지만 생각 외로 구속은 느리다.

“하아아앜!”

직구가 143km.

“하이아앜!!”

슬라이더가 대충 120km 중반.

“스윙, 스윙!”

그리고 결정구로는 포크볼.

성운의 초반 세 타자가 그러하듯, 우리 쪽의 초반 세 타자도 삼진 세 개로 물러났다.

규진이 형의 콤비네이션이 익숙해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듯, 김태일의 움직임도 비슷한 부류였다.

익숙해지고 싶어도 익숙해질 수가 없는 투수.

딱!

“숏! 쇼옷!”

“어케, 어케이!!”

김명준의 내야 뜬공을 명진이가 잡아내며 순식간에 2회 초가 정리되었다.

선두타자 오영빈이 안타를 치고 나가긴 했지만 바로 김태훈에게 5-4-3 병살을 뺏어내며 또다시 세 타자로 이닝을 끝낸 셈이 됐다.

투수전?

따악―!

“갔따!!”

“박진형! 박진형! 박진형!”

아니.

따악!

“뭐냐, 얘네.”

“윤승주! 윤승주! 윤승주!”

진형이와 승주의 백투백 홈런.

4번 타자와 5번 타자로 클린업 트리오에 속하긴 하지만 홈런의 수가 절대 많지 않은 둘이 먼저 홈런을 때려내며 두 점을 앞서게 됐다.

분위기는 조금씩, 하지만 확실히 우리 쪽으로 넘어오고 있었다.

“은구야!”

“네!”

“7회 나가자!”

“네에!”

5회 초까지 무실점. 허용한 안타는 두 개. 볼넷과 몸 맞는 공 없이, 투구 수 또한 78개로 아주 좋다.

7회까지 규진이 형이 던지지 않으려나, 싶었지만 수뇌부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하잌―!”

8번 윤재관부터 시작된 6회 초. 규진이 형은 계속 덤덤하게 공을 던졌다.

초구부터 각이 큰 커브가 윤재관의 몸쪽에 박히며 카운트를 벌고 시작하게 됐다.

이어서 바깥쪽으로 떨어져 나가는 체인지업에 헛스윙. 그리고,

“스윙, 아웃!”

높게 보이는 직구에 또 한 번 헛스윙. 5.1이닝 동안 삼진만 9개. 말 그대로 압도적인 모습.

이후 9번 타자는 어이없게도 높은 직구 세 개를 모두 헛스윙하며 규진이 형의 탈삼진 수를 두자릿수로 맞춰주었다.

거기서 드는 묘한 느낌.

아, 힘 떨어졌네.

코치님, 혹은 감독님의 선택에 그제야 수긍이 되었다. 저건 헛스윙, 혹은 눈에 보이게 하려는 직구가 아니다. 그냥 손에서 힘이 떨어져서 높게 들어갔을 뿐.

9번까지는 통했는데, 우석이한테도 통할까? 앞선 두 타석에서는 모두 삼진으로 물러났다. 어떻게, 얘까지만 형이 잘 막아주면 좋겠는데.

“볼!”

또, 또 직구가 높게 떴다.

허무한 반응을 보이던 앞선 두 타자와는 다르게 우석이는 여유롭게 몸을 살짝 뒤로 기울이며 골라냈다.

“하이 볼.”

방금 공보다는 살짝 낮기는 했지만 그래도 존보다는 살짝 높다는 판정.

지금까지 계속해서 덤덤하게 공을 때리던 형이 플레이트를 밟은 채, 공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무언가 생각을 정리하는 듯.

이내 정리를 끝내고 다시 플레이트를 밟는다. 사인을 교환하고 두 손을 자기 아랫배에 모은다.

“하잌―!”

결국 선택한 공은 128km의 커브.

직구가 높다면 커브를 던져라.

공공연하게 퍼져 있는 속언을 충실히 이행하여 첫 번째 스트라이크를 따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2-1, 아직까지는 타자의 카운트.

뭘 던질까.

가만히 지켜보며 나라면 뭘 던질까 고민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바깥쪽 체인지업.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계속해서 공이 뜨는 상황에선 체인지업마저 뜬다.

차라리 볼을 주면 줬지 점수를 주는 것보단 낫다.

커브를 한 번 더? 차라리 이게 나을 수도 있다. 우석이는 여기서 하나 정도는 더 지켜볼 수도 있지 않을까.

직구는 글쎄. 키가 작은 오버핸드는 특이한 거지 강점이 있는 게 아니다.

힘이 빠진 지금 직구를 던지면 큰 거 한 방 얻어맞지 않을까.

따악―!

“릴레이―!! 투투! 세컨!!”

“기성이 왼쪽으로 붙어!”

지금처럼.

우중간을 꿰뚫는 타구. 성현이와 진형이 사이 정확하게 중간 지점에 떨어진 뒤 넓디넓은 잠실구장의 펜스를 터치한다.

“중계 쓰리 돌려!!”

거기다가 타자는 발이 빠르다. 2루? 어림도 없지.

촤악―

“세입!”

급브레이크를 위한 벤트 슬라이딩으로 3루를 찍은 뒤 관성을 이용해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침 바로 옆에 있는 덕아웃은 본인의 덕아웃. 양손 검지로 팀메이트들을 가리키며 화이팅을 뽐낸다.

타임―

바로 타임이 걸렸다. 투수 코치님이 아닌 감독님께서 직접 올라가셨다. 규진이 형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를 짧게 한 뒤 내려오는 표정은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애초에 바꿀 것 같지는 않았다. 슬슬 상위 타선으로 연결은 되지만 그중 그나마 제일 타격이 떨어지는 2번 김성훈이니까.

딱히 작전이 나올 타이밍은 아니지만 규학이는 홈플레이트 앞을 가로막고 내야수들에게 사인을 돌렸다.

미트, 마스크, 팔꿈치, 미트, 어깨, 마스크, 어깨,

별거 없이 코너만 조금 당기자.

“하잌!”

초구는 바깥쪽 애매한 높이의 체인지업.

왜 안 쳤지? 싶을 정도로 애매한 공. 여기까지만 보고 됐다, 싶었다.

엄히 말해 지금 상황에선 실투의 범주에 속하는 공.

“로볼―”

다음 공은 커브.

규학이가 열심히 퍼 올려 봤지만 주심은 단호하게 허리를 폈다.

배터리도 딱히 미련은 없는지 다음 사인을 이었다. 던지자마자 높게 뜨는 것이 다시 한번 커브였다.

촥!

“아이, 퍼스트! 여유 많아, 천천히!”

2루 베이스를 타고 나가려는 타구를 성문이가 슬라이딩까지 하며 잡아냈다.

옆에 기성이가 천천히 상황을 중계하며 공을 받고 이닝이 종료.

“아이, 성문이 멋있다!”

“성문이 형 날 가져요!”

“호오오오오!!”

약간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성문이답게 쑥스러운 듯 에헷, 에헷하며 덕아웃으로 돌아왔다. 그런 성문이를 뒤따르는 우리 수비진들.

분위기가 좋다.

“규진이는 여기까지 하고. 은구 올라갈 거야.”

“아… 네.”

강판을 통보받은 뒤 규진이 형은 곧장 아이싱을 위해 덕아웃 안쪽으로 들어갔다.

고생했다는 의미로 등을 툭툭 쳐주고 그라운드로 몸을 돌렸다. 김태일이 다시 나와 연습투구를 진행하고 있었다.

두 점? 아니면 한 점이라도.

한 점만 어떻게 더 얻어내면 꽤 쉽게 풀릴 것 같은데. 이 마음을 타석 옆에 떨어져 빈 스윙을 돌리고 있는 훈이에게 전달했다. 훈아, 쳐줘.

9번 타자, 유우우!! 후우운!!

유훈, 유후훈! 유훈, 유후훈!

펜스에 가려져 있던 훈이가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관객석은 난리가 났다.

응원가와 함께 양손을 펄럭펄럭거리는데 몇천, 몇만 명이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걸 보자니 좀 무섭기도 했다.

플레이!

퍽!

“악!”

시작과 동시에 훈이가 등짝에 공을 얻어맞았다. 맞는 소리가 덕아웃에까지 크게 들리는 걸 보니 꽤나 아플 것 같다.

바로 덕아웃에서 감독님과 트레이너님이 출동했다. 타석 주변에 김태일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감독님께서도 눈을 돌리다 그 모습을 봤는지 오히려 상대 투수를 안심시켰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다행히 잠시의 충격만 컸었는지 훈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하다가 모자를 벗고 사과하는 김태일에게 괜찮다고 손을 흔들어주고 설설 뛰어서 1루 베이스를 밟았다.

자, 꽁으로 주자를 내보냈으니까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지.

명진이는 시작도 전부터 배트를 내려두며 앞으로의 고난을 예고했다.

“빽!”

시작부터 견제.

몸에 맞춘 건 맞춘 거고, 경기는 경기다.

“빼액!!”

주자가 투수를 귀찮게 만드는 게 정상이지만 김태일은 그런 흐름을 거부하고 있었다.

초구를 던지지도 않았는데 견제만 연속 세 번을 날리며 주자를 귀찮게 하고 있었다.

좋은데?

상대 팀이지만, 같은 투수로서 공감이 갔다.

“하잌!”

드디어 초구, 낮게 깔리는 슬라이더를 빠지는 걸로 봤는지 배트를 뺐지만 들어왔다는 판정으로 스트라이크 하나가 올라갔다.

명진이 특유의 뚱한 표정. 그 꼴로 다음 공을 대비했다.

“빽!”

중간중간 견제도 잊지 않고.

“볼!”

투구와 동시에 배트를 당겨서 타격을 대기했지만 볼이었기에 굳이 치지 않았다.

아주 치열한 기 싸움은 그라운드 뿐이 아닌, 양 팀 덕아웃에서도 활발했다.

감독, 주루 코치, 배터리 코치 모두가 칼군무를 추는 것처럼 양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마지막 상대 포수의 사인까지가 끝나고 나서야 김태일이 다시 셋포지션에 들어갔다.

1초, 2초, 3초, 4초, 그리고 왼발이 떨어졌다.

“꼬오!”

퉁!

배트를 당기지 않고 그대로 퉁 밀어낸 뒤 1루로 열심히 뛰어갔다.

2루를 슬쩍 보니 훈이는 일단 안착. 그 사이 공을 잡은 손민혁이 김성훈에게 공을 던졌다.

“아웃!”

1루에서는 아웃. 하지만 명진이는 이내 우리 덕아웃을 보며 네모를 그렸다. 감독님도 발맞춰 비디오판독을 요청.

“아웃―”

하지만 번복되지 않았다.

우헹헹, 이게 왜 아웃이양, 헹헹.

뭐 그딴 소릴 하는 명진이의 등을 툭툭 쳐주었다.

괜찮아. 다음은…….

2번 타자, 강!! 성!! 현!!

깡패니까. 알아서 때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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