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무리
다전제 게임에서 1차전 승리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를 하고 강조를 해도 그 정도에는 지나침이 없다. 있을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팀은 아주 큰 의미를 지닌 채 2차전에 임하게 됐다.
와! 1차전에서 승리한 팀이 한국 시리즈로 올라갈 확률이 몇 퍼센트래! 와!
1 대 2.
어림도 없었다.
규진이 형이 6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잘 막았다. 은구 선배는 볼넷을 두 개나 허용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아무도 제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했다.
띠링―!
[환기]
- 1이닝 무실점하세요. (1/1)
- 보상 ― 전 구종 +1
제구 ― 최상
구위 ― 중
체력 ― 중
포심 ― 61+1=62
커브 ― 54+1=55
슬라 ― 42+1=43
스플 ― 43+1=44
체인 ― 50+1=51
싱커 ― 48+1=49
특성
해탈 ― 어떤 타구, 상황에도 그러려니 합니다.
불편 ― 상대하는 타자가 타석에서 투수를 보면 어딘가 불편하게 만듭니다.
편안 ― 본인을 보는 이들이 편안함을 느낍니다.
8회 또한, 내가 세 타자를 깔끔하게 처리하며 한 점의 리드를 지켰을 때까지도.
따악―!!
와아아아악!!
갔다! 갔다아!!
근데 거기서 경석 선배가 끝내기 투런을 맞을 거라고 누가 예상했겠어.
플레이오프 스코어는 결국 동점이 되었다. 첫 경기를 먼저 가져온 것에 비하면 다소 허무한 원정 2연전.
하루를 착실히 쉬고 우리 집으로 돌아와 3차전을 준비했다.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 ‘준’이라는 글자 하나가 붙고 안 붙고의 차이지만 그 장면에 한 다리를 걸치고 있는 이들이 느끼기로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작년, 그리고 올해 준플레이오프라는 결선의 시작을 겪어본 우리에겐 너무나도 생경했다.
팬들의 함성. 인게임의 압박감.
어쩌다 올라왔다는 인상이 강한 우리 팀과는 다르게 동성은 이런 환경에 이미 익숙한 이들이었다.
착실하게, 지금 본인이 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 내가 이행해야 할 모토를 그들이 보여주고 있었다.
2 대 2. 그리고 8회 초.
띠링―!
[진짜 홀드]
- 1이닝 무실점하세요. (0/1)
- 보상 ― 전 구종 +1
어제 하루 쉬긴 했지만 게임 트랙으로 봤을 때는 3연투.
오른손에 공을 쥔 채 모자를 다시 고쳐 썼다. 내가 여기서 막아내면, 최소한 한 점은 내주지 않을까.
동성의 덕아웃 한 편에 걸려있는 텍스트를 곁다리로 두던 시야를 옮기니 주호가 보였다.
7회 말 공격 때 규학이를 빼고 대타를 넣는 초강수의 여파였다.
흠.
왼쪽 타석엔 9번 타자 김석호가 타격 준비를 마쳤다. 오늘 김석호는 앞선 두 타석에서 삼진과 안타를 기록했다.
불펜 투수이기 때문에 힘든 점. 바로 내가 지금 만나는 타자에 대한 ‘오늘의’ 정보가 없다는 것.
그저 포수가 얻어냈던 힌트들과 먼저 저장되어 있는 기록들에 의존해야 한다.
어쩌다가 먼저 상대한 앞 투수가 넌지시 걔 오늘 어디가 어떤 것 같더라, 이야기를 해줄 때도 있고.
플레이!
로진을 만지작거리며 보던 전광판에서 눈을 뗄 무렵 플레이 콜이 들렸다.
집중, 집중. 일단은 주호를 따라가 보자.
시선이 자기 오른쪽을 훑고 나서 검지손가락이 한 번 까딱거렸다.
팡!
“스톼잌―!”
두 번째 1번 타자로 여겨지는 9번 타자.
특히나 선두타자로 등장했다면 어지간한 실투가 아니고선 쉽게 배트를 내지 않을 것이다, 라는 판단으로 바깥쪽 직구부터 시작한 것 같다.
그래서, 다음은?
단순함.
주호의 볼 배합을 보고 있자면 그랬다.
직구, 직구, 변화구.
변화구, 변화구, 직구.
이번에도 딱히 다르지는 않았다.
딱!
“파울!”
똑같은 로케이션으로 들어간 직구를 툭 밀어치고 1루로 스타트를 끊었던 김석호가 다시 타석에 널브러져 있는 배트를 집어 들었다.
그립 부분에 묻은 흙을 살짝 털어주고 다시 자세를 잡는다.
엄지와 검지.
대단히 클래식한 볼 배합. 김석호가 속아줄까?
빵!
“볼―”
바깥쪽으로 도망가는 체인지업이었지만 김석호는 딱히 반응조차 하지 않았다.
싱커에 파울이 한 번 더 난 뒤 맞이한 스플리터, 슬라이더도 모두 아무런 반응 없이 지켜봤다.
안 되겠다.
다급함은 검지와 중지가 모자챙을 만지작거리게 만들었다.
딱―!
“1루, 1루우!”
빼봐야 의미는 없다.
아싸리 존 안에 집어넣은 체인지업은 강하게 잡아 당겨져 2루수를 향해 빠른 속도로 굴러갔다.
마지막에 바운드가 튀어 성문이의 배를 맞고 튕겨 나오긴 했지만 타구 자체가 빨라 아웃시킬 여유는 충분했다.
내야수들이 라운딩할 동안 전광판을 쳐다봤다.
1번 타자, 최용환.
아씨.
어떤 의미로 보면 우석이보다 상대하기가 거지 같은 타자.
“스윙―”
다시 한번 직구로 카운트를 잡고 시작해 보자, 라는 마음이 강한 직구였지만 어설픈 스윙으로 화답 받았다.
왜 저러지.
최용환도 굳이 따지고 들자면 국대급으로 뽑힐 만한 선수다. 그런 것치곤 스윙이 어딘가 이상하다.
어디 아픈가?
반구를 받아내고 마운드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자 전광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전광판 한구석에 있는 최용환의 오늘 기록. 삼진 세 개.
안 되는 날이네.
그런 날이 있다. 공이 하나도 안 보이는 날. 최용환에게 오늘이 그런 날인 것이다.
135km짜리 쳐주세요~ 하고 들어오는 공도 보이지가 않는 날.
“스윙―”
그렇다고 진짜 한가운데에 던질 수는 없기에, 이전 공과 똑같이 바깥쪽 공을 던져보았다. 마찬가지로 어설프기 짝이 없는 스윙.
됐다.
낮게 떨어지는 포크볼, 도망가는 슬라이더, 떨어지는 체인지업.
볼이 다 왜 이래.
답답함에 내 쪽에서 사인을 냈다. 어벙벙하게 눈을 껌뻑거리고 다시 사인이 돌아온다.
“스톼아아아잌!!”
깔끔하게 몸쪽 직구 던지면 끝날 것을.
2스트라이크를 잡은 뒤 유인구가 국룰인 시대는 지났다.
나이도 어린놈이 언제까지 구식 볼 배합에 사로잡혀 있을까.
좀 나아졌나 싶었는데, 아직 많이 배워야겠구나, 주호야.
곧바로 2번 타자가 나타났다.
첫 사인은 슬라이더. 고개를 저었다.
싱커 사인이 나왔다. 고개를 저었다.
직구 사인이 나왔다. 고개를 저었다.
어어…….
다시 슬라이더 사인이 나왔다. 첫 사인과는 다른 로케이션으로.
그러나 세 번째 사인 사이에 마가 좀 뜬 것을 보아 일단 아무거나 보인 것 같은 느낌이 강하다.
슬라이더도 나쁠 것 같진 않은데…….
결국 새끼손가락이 이곳저곳 움직여야 했다.
그래도 구종을 여섯 개나 가지고 있는 투수인데, 좀 써먹자.
“스톼잌―!”
내가 던지고 싶었던 것은 커브였다.
좌우의 변화는 거의 없이 위아래의 커다란 낙차는 타점에서의 출발부터 타자의 타격 의지를 꺾어놓았다.
억!
하는 순간 타이밍은 이미 망가져 있다. 노렸던 게 아니라면 안 치는 게 이득인 공.
자… 그리고. 높은 직구 사인이 나왔다.
과연 이 사인은 얻어걸린 걸까, 주호가 제대로 생각의 생각을 거듭해서 낸 사인일까.
부웅―
“스윙―”
이따가 한번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금세 사라졌다.
이전 공과 똑같은 공, 하이패스트볼을 요구하고 있었다.
얻어걸린 거였구나.
고개를 저으니 스플리터 사인이 나왔다. 하긴, 직구랑 싱커만 아니면 됐으니까 맞출 확률은 높았겠지.
양손을 머리 뒤로 넘기며 잠깐 생각했다.
얘가 막을 수 있나?
그렇다고 그립을 딱히 풀거나 하지는 않았다.
알아서 하겠지!
부웅―!
일단 내 시야엔 배트가 허공을 가르는 모습은 확인이 되었다. 그리고 나서야 눈동자가 아래로 떨어졌다.
홈플레이트 뒤편에 박힌 공이 주호의 미트에 살짝 걸치는 모습.
일단 조희진은 낫아웃을 확인하자마자 재빠르게 1루로 뛰어갔다. 주호도 얼른 마스크를 벗고 재빠르게 공의 위치를 확인한다.
“밑에, 밑에!!”
손가락으로 주호의 다리 사이에 있는 공을 가리키며 뛰어갔다.
“밑에에엑!!”
한참 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리고 나서야 공을 잡고 1루에 공을 던진다.
“아웃!”
와아따마.
두리번거리는 짓거리를 한 번만 더 했다면 세이프였을 상황에 간담이 순간 서늘해졌다.
띠링―!
[진짜 홀드]
- 1이닝 무실점하세요. (1/1)
- 보상 ― 전 구종 +1
제구 ― 최상
구위 ― 중
체력 ― 중
포심 ― 62+1=63
커브 ― 55+1=56
슬라 ― 43+1=44
스플 ― 44+1=45
체인 ― 51+1=52
싱커 ― 49+1=50
특성
해탈 ― 어떤 타구, 상황에도 그러려니 합니다.
불편 ― 상대하는 타자가 타석에서 투수를 보면 어딘가 불편하게 만듭니다.
편안 ― 본인을 보는 이들이 편안함을 느낍니다.
퀘스트를 완료하고, 또 그 덕에 모든 구종의 스탯이 하나씩 올라갔음을 확인해도 어딘가 기쁘지가 않았다.
긴장이 탁 풀린 채 불펜의 의자에 널브러졌다.
정신 나갈 것 같애.
그게 딱 지금의 내 심정이었다.
“한울아.”
“예이?”
잘했다고 칭찬이라도 해주시려는 걸까.
“혹시 9회도 괜찮냐.”
“…예?”
어림도 없지.
“일단 생각은, 8회에 점수 나면 경석이 올리고 못 내면 너 올릴까 싶거든.”
“아…….”
일단 8회 초를 막은 덕에 2 대 2라는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규 시즌이면 다른 투수를 올려도 되겠지만 엄연한 플레이오프 무대.
당장의 시합에서 이길 가능성이 보인다면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 게 맞다.
8회 말에 우리는 몇 점을 낼 수 있을까.
“…네. 그렇게 할게요.”
“고맙다.”
기약 없는 약속을 믿어보기로 했다. 타순도 마침 3번부터의 공격이다. 믿어도 되겠지.
“…가자, 얘들아.”
히히, 어림도 없지.
어쩜, 세 명 모두 삼진 먹고 돌아올 줄이야. 어이가 없음에 실실 웃으면서 마운드로 다시 향했다.
내가 이렇게 개고생을 하는데, 퀘스트라도 한 번 더 나와주지 않을까, 했지만 아니, 아무것도 없었다.
“아웃!”
9회 초를 다시 세 타자로 깔끔하게 막았음에도 아무것도 뜨지 않는 텍스트는 괜스레 내 마음을 허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허망한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고야…….”
내 9회 등판과 비슷한 이유로 10회에 등판하게 된 신경석 선배.
2아웃까지 잘 잡아두고 기성이의 실책.
이후,
따악―!!
승부의 추가 동성 쪽으로 크게 기울게 만드는 김석호의 투런포.
그렇게, 그대로, 연장 10회 말, 우리는 아무런 발악조차 하지 못하고 진짜 집에 돌아가야 했다.
* * *
중간의 휴식일 하루가 있긴 하지만 기록지 상으로는 3연투가 되었다. 거기다 어제는 멀티 이닝까지.
어깨가 좀 뻐근하다.
트레이너분께 마사지도 빡세게 받고, 진통제도 먹고 튜빙도 많이 땡겨 주니 그나마 사람답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면 끝인 엘리미네이션인 게임.
연장까지 돌입해야 했던 어제보다도 더욱 무리를 해야 한다. 일단 이기고, 그러고 나서 모레를 기약해야 한다.
이게 지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스탠스였다.
하지만 그러기엔 오늘 선발의 무게감이 아무래도 조금 떨어진다.
4선발이라기보다는 그냥 네 번째 선발에 가까운 태웅이.
앞서 3일 동안 등판했던 세 명보다는 아무래도 계산이 어렵다.
하여 꺼내 든 감독님의 전략은 태웅이에 지호까지 끼워파는 1+1 선발 전략.
이 둘이서 7이닝 정도 막아주면 타선에선 점수를 내줄 테고, 그럼 선배 둘이서 막겠지, 뭐 그런 생각.
막겠지, 치겠지, 잡겠지, 알아서 하겠지.
내가 아는 ‘나’처럼 무책임한 발언의 극단임을 아는 단어지만 오늘은 정말로 어쩔 수가 없음을 이해한다.
정말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플레이!
태웅이는 일단 생각보다 잘 던지고 있었다. 4이닝 동안 볼넷을 여섯 개나 허용했지만 막상 허용했던 한 점은 뜬금없이 터진 김석호의 솔로포 하나.
어제에 이어 2게임 연속 홈런이다.
앞서 태웅이가 허용한 볼넷이 4이닝 동안 여섯 개라고 했지만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해 보자면 세 개다.
그럼 나머지 세 개는?
지금, 주자 세 명이 베이스를 하나씩을 밟은 채 지호를 포위하고 있다.
이 사단을 만든 당사자는 5회에 올라와서 세 타자를 모두 볼넷으로 내보낸 뒤, 강판당하고 지금 내 옆에서 안쓰럽게 고개를 숙이고 있는 중이다.
지호를 믿어야지 뭐.
불펜의 난간에 몸을 기대고 지호의 투구를 계속해서 지켜봤다. 종합적인 지호의 성적은 2이닝 동안 1자책.
그러나 앞서 태웅이가 내보냈던 세 명의 주자를 모두 들여보냈음을 생각하면 애매한 성적이 된다.
6회 초 수비가 끝났을 때 이 두 명이 허용한 실점은 총 네 점.
앞서 세 점을 뽑았던 우리 팀은 6회 말 공격에 다시 하나 점을 따라가며 동점을 만들어냈다.
아, 나이쓰보올!!
은구 좋다!
아아악, 성훈이 나이쓰!!
7회 초, 은구 선배가 올라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처리했다. 오늘 긁히는 날인가 보다.
8회 초 또한 은구 선배가 볼넷 하나를 포함해 세 타자를 잘 막았다.
9회 초, 경석 선배가 올라가서 안타 하나를 맞았지만 병살 하나를 포함해 세 명으로 일단 막았다.
그리고 9회 말, 우리 팀 타선은 한 점도 내지 못했지만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연장 10회 초. 경석 선배는 다시 한 번 마운드로 향하고 있었다.
“아, 선배 화이팅, 가즈아아아!!”
후배 된 도리로 기를 팍팍 쏟아붓고 있을 때,
“한울아.”
“예?”
투수 코치님이 찾아왔다.
“…미안한데.”
미안하면 그냥 말씀 안 하셔도 되는데.
“공격 때 점수 못 나면 11회 때 올라가 줬으면 하거든.”
“아…….”
설마 했는데.
불펜을 슬쩍 둘러봤다.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다음이 있을까 말까 한 시합.
그 모든 것엔 당연히 나도 포함되는 부품이었다.
“…오래는 안 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그래. 최대한 만큼만 부탁할게.”
“네. 어쩔 수 없죠.”
어쩔 수 없다.
이 쓰레기 같지만 마법 같은 단어는 내 몸뚱어리를 강제로 움직이게 만들었다.